7화. 셰이드 (1)
“자, 뭐가 궁금해서 왔을까? 뭘 내놓을 수 있지? 보아하니 돈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은데, 정보를 대가로 정보를 구매하게?”
“내가 그렇게 거지는 아닌데……. 일단 그쪽 방면으로.”
“거래할 만한 정보는?”
“그쪽에서도 한창 궁금해하고 있을 오크에 대해서.”
“나쁘지 않네. 그런데 우리는 그 오크보다 그쪽이 더 궁금한데?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행보야.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어?”
“그쪽 정보로 거래하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말할 것도 별로 없다.
10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온 걸 제외하더라도 나에 대한 정보는 없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숲 한가운데에서 자라났으니까. 이제야 세상에 나온 상황인데 정보랄 게 있을까.
그런 내력에 더해 아침에 선보인 이단심문관으로서의 기술들.
궁금한 게 당연하다. 궁금해하라고 일부러 내비친 것도 있다.
나에 대해 궁금해할수록 내 가치는 올라갈 테니까.
“로크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더군. 물론 그대처럼 수상한 녀석이야 많지. 하지만 산적단의 본진을 처리했을 때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내가 했다는 증거는 있나?”
“없지. 그냥 정황 증거상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본 거야.”
셰이드는 나를 가늠하고 있다.
그보다 이 녀석들은 이미 산적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으니 그들이 인신매매를 벌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 정보를 나중에 팔아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려는 건가? 셰이드. 교단과 사이가 틀어져서 좋을 게 없을 텐데.”
“물론이야. 우리는 청렴하게 정보를 팔 생각이니까. 내 딸아이 앞에서는 떳떳하게 있고 싶거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일까? 기묘한 신경전이 이어진다.
말 한마디 한마디로 정보의 단락으로. 서로의 반응을 확인한다.
그렇게 한동안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가고. 셰이드가 일련의 과정이 귀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와 동시에 그 느긋했던 기운이 순식간에 일변한다.
“그런데 말이야.”
마치 목 바로 아래에 날붙이가 들이밀린 듯한 감각이다.
이러는 걸 보면 전직 암살자라는 게 단순한 소문은 아닌 거 같다.
다른 누군가가 내 뒤를 잡는 건 아니다. 그저 이 사내가 기세를 바꾼 것만으로도 선명한 죽음의 기척을 느끼게 한 거다.
“허리춤에 그 검. 생각 이상의 명검으로 보이는데.”
“말할 생각 없다고 했는데.”
셰이드는 방식을 바꿨다.
내 명확한 거절 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녀석은 밀어붙여 왔다.
“한 번 볼 수 있을까? 그 정도 명검을 보는 건 처음이거든.”
“일을 아주 귀찮게 하네?”
이 녀석은 끝까지 내가 산적을 토벌했다는 걸 밝히고 싶은 모양.
내 검을 토대로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
내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스승님이 알려주신 검술은 위협적이니까.
명확하게 하고 싶은 거다.
“좋아, 이쪽도 시간은 많거든. 다만 그 대가는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야. 분명 손해 볼 테니까.”
“어이쿠 무서워라.”
* * *
로스트가 셰이드를 찾기 위해 골목을 헤매고 있던 시점.
타이탄은 자기 방에 놓여 있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험악한 인상과 달리 타이탄은 꽃을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음, 훗날 내가 떠난 뒤에 멋진 꽃을 피울 수 있다면 좋겠군.”
화분에 물을 주고 난 뒤, 타이탄은 만족스럽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그렇게 방을 나서고 난 뒤, 타이탄은 로스트의 방 앞에 쪼그려 앉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는 리네아를 발견했다.
“뭘 하는 거지? 깜장 여우.”
“흐꺅?!”
리네아는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튀어 올랐다.
실제로 남의 방을 염탐하고 있었으니 죄를 지은 게 맞긴 하다.
“아, 누군가 했더니 타이탄 씨였군요? 난 또 누구라고…….”
“로스트는 먼저 나갔다.”
“어쩐지…….”
리네아는 상대가 타이탄이라는 걸 알자마자 아무래도 좋다는 듯 당당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 뻔뻔한 모습에는 타이탄이라고 해도 질릴 수밖에 없었다.
“아, 같이 가요.”
“…….”
타이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뒤를 따르는 리네아를 흘끔 쳐다본 후 곧바로 여관을 나섰다.
원래라면 아침부터 먹었겠지만 리네아가 있는 게 껄끄러웠다.
‘성가시군.’
타이탄에게 있어서 리네아라는 사람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게 뻔히 보이는 로스트 쪽이 낫다.
리네아는 뭔가를 꾸미고 있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으니까.
“흠, 이건 무슨 과일이지?”
현재 자신이 머물고 있던 여관에서의 지리 파악도 끝난 마당이다.
타이탄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잔뜩 있었다.
“그, 그건 파인애플이라고 하는 건데 어, 그……. 드릴까요?”
물론 오크를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흉악한 외모의 괴물이 돌아다니는데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는가.
마법사나 기사와 달리, 육안으로만 봐도 보이는 압도적인 피지컬이 그 공포를 증폭시켰다.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힘보다는 눈에 보이는 힘이 더욱 무서운 건 당연한 일이다.
“아니, 됐다.”
타이탄은 얌전히 파인애플이라는 이름의 과일을 내려놓은 채 다른 가게를 순회했다.
그런 타이탄의 뒤를 리네아는 아무 말도 없이 따라다녔다.
처음과는 달리, 타이탄에 대한 공포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로스트조차도 타이탄과 대화할 때는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는데 리네아에게는 그게 없었다.
경계하지 않는 게 아니라, 타이탄이라는 존재 자체를 타인과 마찬가지로 보고 있는 거다.
“장미가 있군. 그리고 이쪽에 있는 건 시클라멘인가?”
“어, 그걸 아십……. 아닙니다.”
꽃집 주인은 외형과 달리 꽃에 대해 해박한 타이탄의 모습에 충격이라는 것처럼 말을 더듬었다.
“꽃에 해박하시네요?”
“그러는 너는 흥미가 없나 보군.”
“아, 저는 꽃은 잘 몰라서…….”
“아니, 꽃만이 아니지.”
“…….”
“내가 들린 곳 중 단 한 곳도 네놈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뿐일까? 남들은 나를 두려워하는데 그조차도 없어. 관심 자체가 없지.”
타이탄이 주변을 물색한 이유는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리네아가 의심스러웠다.
지금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렇기에 단 한 번도 리네아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거다.
“네놈은 처음부터 로스트에게만 흥미를 보이더군.”
“그야 생명의 은인이잖아요?”
리네아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는 너무나도 꾸며낸 것처럼 정교했다.
“그렇게 따지면 산적을 직접 토벌한 나 역시 은인일 텐데?”
“아, 그렇죠. 감사했어요.”
“하!”
로스트에게는 아득바득 빚을 갚겠다며 달라붙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사가 고작.
이 노골적인 차별대우에 타이탄은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로스트에게서 뭐가 보이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좋을 법한, 특별한 무언가가 보이는 건가?”
“글쎄요. 무슨 소리인지 잘…….”
다른 사람이라면 소녀의 순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타이탄의 눈에는 달랐다.
그녀는 흡사 겁에 질린 사람처럼 로스트에게 관심을 갈구하고 있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첫 만남에 빠져들기 너무 깊은 감정이다.
“흠, 그렇군. 상관없겠지.”
타이탄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리네아의 태도에 고개를 돌려 다시 화분들을 살폈다. 생각난 김에 하나 정도는 살 생각이었다.
“……로스트 씨에게 무언가가 보이는 건 아니에요.”
“상관없다고 했다. 이제 흥미도 없다. 로스트가 해결할 일이니.”
“정확히는 로스트 씨에게서만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 거죠.”
“…….”
타이탄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없이 싸늘한 리네아의 시선이 보였다.
로스트에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녀는 다른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소리다.
“이거 사도록 하지. 그리고 로즈마리는 따로 없나?”
“아, 지금은 재고가 없습니다.”
“그럼 이것만 사도록 하지.”
“예, 손님. 포장해드릴까요?”
꽃집 주인은 타이탄의 이성적인 모습에 금세 경계를 풀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꽃에 대해 이렇게 해박한 걸 보니 말이 상당히 통할 상대로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물어야 할 건 있었다.
“그런데 돈은 있으십니까? 저희는 제국 금화밖에 안 받아서…….”
“물물교환은 안 되나?”
“예.”
“어쩔 수 없군. 그래도 로스트 녀석에게 받은 게 있으니…….”
제아무리 문명과 떨어진 장소에서 자라난 타이탄이라고 해도 돈에 대한 개념은 있었다.
비록 물물교환을 더욱 선호하는 그였지만 로스트가 사고 치지 말라고 건네준 돈을 챙겨두긴 했다.
“반짝이 몇 개가 필요하지?”
“어우, 반짝이에 따라 가격이 다른데. 보여주시겠습니까?”
물론 타이탄이 금화와 은화, 동화의 차이 같은 걸 알 턱이 없었다.
타이탄에게 화폐라는 건 그냥 장식용 조약돌과 다를 게 없다.
“음?”
샤샥!
타이탄이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내던 순간이었다.
그의 앞을 순식간에 지나가며 그 주머니를 강탈해간 사람이 있었다.
“호오…….”
타이탄은 알고 있었다.
이건 소매치기라는 거다. 그리고 그건 범죄에 해당한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타이탄의 주머니를 건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알 바가 아니다.
결론은 단 하나.
“죽음을 자초한다면 그 머리를 깨트려줄 뿐이지.”
“타이탄 씨?”
“여기서 기다리도록 깜장 여우.”
“엑?”
자신을 업신여긴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 *
셰이드가 애지중지하는 딸.
마르에게는 한 가지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바로 인정욕구가 과하다는 점이다.
그녀는 셰이드의 딸이라는 것만으로도 조직 내에서 상당한 위치에 자리할 수 있었다.
다들 아가씨라고 부르며 그녀에게 굽신대니 그녀로서는 자신이 그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게 아닌지 생각한 거였다.
그녀는 셰이드의 딸이라는 걸 제외하더라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렇기에 사사건건 그걸 선보이려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조직 내에서도 신경 쓰고 있는 오크. 모두가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이다.
분명 특이한 생물이긴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큰 만큼 맞을 곳이 많지 않겠는가. 강한 만큼 굼뜨지 않겠는가.
‘저게 그렇게 대단한가?’
안타깝게도 마르에게 떨어진 정보의 양은 많지 않았다.
그건 그녀의 부모인 셰이드가 직접 내린 지시였다. 그 때문에 마르의 반항기가 더욱 짙어지긴 했지만.
셰이드는 자신이 왜 정보를 모으고 있는지 딸에게만큼은 감추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마르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힘이 좋아봤자 저런 몸집으로는 우릴 잡을 수도 없을 거 같은데.’
그런데도 셰이드의 길드원들의 움직임이 너무 소극적이다.
차라리 품을 뒤져서 확실한 정보 몇 개를 찾는 게 낫다.
이런 일은 한두 번 한 것도 아니니 뒤처리도 간단할 거다.
“좋아, 내가 직접 보여주지.”
“어, 아가씨?”
마르는 생각과 동시에 움직였다.
* * *
그리고 그 결과.
“으아아아악!”
마르는 지금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타이탄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 뒤를 쫓고 있었다.
죽는다. 살짝 삐끗하기만 해도 몸이 산산이 조각날 거다.
“날다람쥐 같구나! 으하하하!”
“이게!”
겁에 질리긴 했지만 마르의 도주 실력은 대단했다. 유연한 움직임 역시 보통이 아니다.
마르는 건물을 타고 불시에 방향을 꺾으며 타이탄이 예측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도망쳤다.
타이탄 역시 그런 마르를 쉽사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타이탄은 목표를 한가지로 좁혔다. 무조건 잡는다.
그 판단에 의한 타이탄의 대응은 실로 간단했다.
쾅!
건물을 타고 움직이거나 골목길로 불시에 들어가면 그대로 건물 자체를 박살 내며 움직였다.
그에게는 튼튼한 육체라는 이점이 있었다. 그걸 썩히고 있을 만큼 타이탄은 멍청하지 않았다.
“진짜 뭐냐고 저건!”
마르는 초조함을 느꼈다. 분명 상대는 자신보다도 느리건만 거리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거슬리는 건물은 모조리 분쇄해버리며 거의 직선이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는 공포까지 느낄 정도였다.
끼릭!
마르는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타이탄의 허를 찔러야 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해야 거리를 벌릴 수 있을 터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도망치든 타이탄은 마르의 뒤를 쫓아왔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줄곧 타이탄에게서 도망치기만 하던 마르는 타이탄이 있던 방향으로 불시에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몸을 뒤로 꺾으며 타이탄의 옆을 지나갔다.
후웅!
그녀의 머리 위로 타이탄의 망치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앗…….’
하지만 그 도박수로 인해 두 사람의 인영은 교차했다.
‘좋았어!’
타이탄 정도의 거구라면 달리던 힘을 멈출 수 없을 터다.
관성은 무거우면 강해지니까.
하지만…….
쾅!
타이탄은 마르가 자신의 뒤로 빠져나간 것과 동시에 등에 매달아둔 창을 땅에 꽂았다.
“잠깐만……. 설마?”
콰드드드드드득!
창은 부러질 듯 휘었지만 확실하게 제동을 걸었다.
퉁!
그리고 그 반동을 이용해 타이탄은 반대 방향으로 날았다.
“아니,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네! 그게 말이 돼?!”
마르는 절망감을 느꼈다.
아직도 머리 위로 날아가던 망치의 감각이 선명하게 남았다.
두 번 다시 해낼 수 없을 도박이었던 거다. 그런데 그걸 저렇게 간단히 파훼해버리니 답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빠아아아!”
쾅! 쾅! 쾅! 쾅! 쾅!
도망쳐야 한다. 자신이 어리석었다.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나.
어리광이나 다름없는 행동으로 일을 그르쳤다. 자신은 이렇게나 못나고 멍청한 애송이였다.
마르는 끊임없는 자아 성찰과 자기 혐오를 느끼면서도 달려 나갔다.
자신을 살릴 수 있는 건 아지트에 있는 그녀의 부모뿐이다.
그렇게 마르는 전력을 다해 셰이드가 있는 방향으로 도망쳤고.
콰아아아앙!
안타깝게도 아지트에 도착함과 동시에 타이탄에게 붙잡혔다.
창문으로 몸을 내던진 마르는 그대로 발목이 붙잡혀 있었다.
타이탄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건물을 통째로 분쇄했다.
그 망설임 없는 결단 덕에 도망치던 마르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덤이다.
“흠.”
타이탄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로스트.”
로스트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너한테 줬던 자금을 내 방식대로 회수하고 있지.”
“과연, 이건 미끼였나? 의외로 사냥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군.”
타이탄은 마르에게서 빼앗겼던 돈주머니를 회수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미끼를 단 낚싯대였던 모양이다.
자신도 낚인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지만,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아, 아빠아아.”
“마르?! 아니,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울먹이는 마르의 모습에 셰이드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상황이긴? 이제야 거래 자세가 정해진다는 소리지.”
부서진 건물의 잔해를 빤히 쳐다보던 로스트는 참담한 표정의 셰이드를 보며 방긋 웃었다.
로스트는 당대의 셰이드가 어떤 인물인지 모른다.
그가 셰이드와 접촉했을 때는 이미 대가 바뀐 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이라면 안다.
그다음 대의 셰이드. 즉, ‘마르 셰이드’에 대해서라면 안다.
그러니 미끼를 던져놨다.
“따님이 손버릇이 꽤 안 좋은가 봐? 이야, 어떻게 내 동료의 주머니를 털 생각을 했지?”
로스트는 타이탄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부탁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상황이 되도록 그에게 미리 돈을 건넸을 뿐이다.
“이거 운이 좋았네. 아직 당신 딸도 살아있으니.”
셰이드는 정보 길드다.
그렇다면 타이탄이라는 존재를 조사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들이 타이탄의 주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이탄은 특이한 생명체이기 이전에 왕족이니까.
그렇다면 아주 중요한 업무다.
그런 중요한 일에 딸을 투입해서 공을 세우게 하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겠는가.
로스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타이탄의 성향을 파악했다.
그리고 마르의 성향과 실력 역시 마찬가지다. 타이탄은 저렇게 보여도 함부로 사람의 목숨을 끊지는 않는다. 명확한 기준이 있으니까.
반면 회귀 전, 마르는 소싯적에 자신의 손버릇 때문에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다는 말을 했었다.
덕분에 미끼를 던질 수 있었다.
타이탄에게 아슬아슬하게 죽지 않을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타이탄을 해결할 능력은 없고.
일방적으로 쫓기는 상황은 공포를 낳을 수밖에 없으니.
그런 상황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대상이 있는 장소로 즉각 달려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슬슬 거래를 끝낼 생각이 드실까? 셰이드.”
결국 마르는 타이탄과 함께 거처인 셰이드로 올 수밖에 없다.
타이탄이 끝내 마르를 붙잡은 건 조금 예상 밖이었지만, 직접 나설 필요 없이 상황이 곧바로 정리됐으니 오히려 좋다.
“그러게 말했잖아, 시간을 끌면 괜히 손해만 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