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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6화 (6/42)

6화. 포리스 공작령 (2)

공작령으로 입성한 이후, 아이들은 대부분이 흩어졌다.

진귀한 경험이긴 할 테지만 오크와 계속 함께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너는 안 가나?”

“안 가.”

“그럼 인간의 관습이라는 거나 얘기해 봐라.”

“일단 숙소부터 잡자.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피곤하거든.”

“인간은 나약하군.”

타이탄은 내가 남겠다는 것에 일절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시원시원한 녀석이다.

아마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자신에게는 문제없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너는? 안 가나?”

“어, 저는…….”

내가 동행한다는 걸 확인한 타이탄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남아 있는 또 한 사람.

리네아에게 물었다.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아직 빚을 갚지 못해서…….”

리네아가 부끄러움에 몸부림친다.

이해는 간다.

큰맘 먹고 자신의 정체를 밝혀 상황을 진정시키려던 건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문제는 타이탄이 해결했고 그녀는 괜히 정체만 들켰다.

물론 그녀가 나서줬기에 상황이 일시적으로나마 진정된 건 맞지만 끝내 영지 내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건 타이탄 덕이라고 볼 수 있다.

원인도 저 녀석이지만 해결도 저 녀석 덕분에 어떻게든 됐다.

“사태를 진정시켜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리네아는 단호한 태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저렇게까지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빚이라고 해봤자 산적들의 습격을 미리 알고 대비해둔 게 다다.

물론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으니 가볍게 여겨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리네아 혼자 빚이라고 보답하려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 아닌가. 다른 애들은 고개를 꾸벅이고 전부 흩어졌는데 말이다.

귀족이라는 점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리네아 스피린은 귀족이라는 점에 목을 매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녀에게 빚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그녀가 짊어졌던 오명을 지웠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내 마음속에는 의혹이 싹트고 있다. 내 은인이었던 리네아 스피린의 목적이 뭔지 의심하게 된다.

“여관비는 제가 낼게요! 저는 귀족이니까요!”

“나는 왕족이다만.”

“…….”

물론 저런 어벙한 모습을 보면 그 의혹마저도 사라지지만 말이다.

의기소침해서 귀도 꼬리도 축 늘어진 리네아를 어떻게든 다독이고 머물 숙소를 찾았다.

당연하지만 타이탄을 받아들일 수 있을 법한 장소는 적었고.

튼튼한 여관이라고 해도 1층에 방이 없을 상황에는 포기.

2층에 방을 잡았다가 타이탄의 무게로 인해 무너지기라도 하면 1층 투숙객에게 대참사다.

그렇게 여러 조건과 귀족인 리네아의 체면까지 고려해서 여관을 구했을 때는 이미 밤이 돼 있었다.

*     *      *

여관에 도착한 직후. 푹 잘 수 있는 환경에 마음을 놓았을 때.

나는 깊이 잠들었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악몽에 빠져들었다.

-■■■ 씨. 이거 봐요. 클레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랑 ■■■ 씨가 좋아하는 홍차예요.

-그렇군요. 그런데 문제가 조금 있는 거 같습니다만……. 어째서 초콜릿을 홍차 안에 넣는 겁니까?

-클레어가 좋아하는 것과 ■■■ 씨가 좋아하는 것을 합친 궁극의 음식이에요. 둘이 나눠 먹고 화해하셨으면 좋을 거 같아서요.

-아하.

나는 그 괴악한 음식을 앞에 두고 머리를 쓸어내렸다.

-성녀님은 이게 정말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홍차에도 설탕이나 우유를 넣잖아요? 그거랑 같아요. 특별히 밀크 초콜릿을 넣었으니 풍미가 더욱 특별할 거라고 자신한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논리다.

반대라면 그럴싸하겠지만…….

녹다 만 초콜릿이 찻잔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절로 식욕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드세요.

-성녀님은 안 드십니까? 준비하셨으니 먼저 드셔보시죠.

-저는 둘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답니다.

-무슨…….

-성녀님에게 무슨 말버릇이지? 성녀님이 하사하신 음식이다. 얌전히 받아들도록.

험한 말이 채 튀어나오기도 전에 나를 힐난한 건 성녀님의 호위기사이자 교단 최강의 팔라딘. 클레어 라이안이었다.

그보다 험한 말의 ‘험’자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녀석은 그냥 나를 비난하고 싶을 뿐이다.

-아, 예. 먹죠, 먹겠습니다.

클레어는 나보다도 빠르게 그 괴식을 마시고 있었다.

저렇게 직접 실천하니 내가 뭐라고 반박할 수 있겠는가.

성녀님이 준비하신 음식은 실로 이도 저도 아닌 맛이었다.

못 먹을 만한 건 아니지만 맛이 따로 논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라.

그런 추억의 파편이었다.

다시 오지 않을 과거의 순간.

그리고 그 추억을 보고 있는 나는 이게 자각몽이라는 걸 안다.

그 풍경을 구경하고 있던 나는 어느덧 그 풍경 속에 녹아있었다.

“성녀님.”

“…….”

“원래 이런 장소에도 그 가면을 쓰고 계셨던가요?”

달랐다.

추억 속의 성녀님은 새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성녀님이 왜 가면을 쓰기로 한 건지는 잘 모릅니다.”

어느 날이었다. 그래, 어느 날 그녀는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이해했다.

아니,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가면을 쓰기 시작한 건, 마을 하나가 통째로 잿더미로 변해버리고 난 뒤였으니까.

타인에게 희망이 되어야 할 그녀조차도 그 풍경 앞에서는 미소를 그려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면을 쓰게 된 거라고, 가면으로 약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순간을 위해서였던 겁니까? 이미 그때부터 이런 결과를 보고 있으셨나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그녀는 나를 과거로 보낼 생각이었고 그 순간을 대비한 추억을 쌓으려 한 거라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 기억 속의, 추억 속의 그녀는 늘 가면을 쓰고 있다. 그렇지 않은 순간이 더 많았는데도 말이다.

사실은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다.

“가면 속에 있을 성녀님의 얼굴이 기억나질 않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 그럴 거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기적을 아무 대가 없이 행사했을 리가 없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식의 대가 정도는 오히려 싼 편이다.

“저여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차라리 클레어였다면, 다른 누군가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지금 이 세상에 그녀를 알고 있는 건 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나조차도 그녀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

“저는 겁도 많고, 상처도 많습니다. 폐품이나 다름없어요.”

내가 자신할 수 있는 나의 장점은 하나뿐이다.

살아남았다는 것.

수많은 악몽과 시련 속에서도 나는 불구가 될지언정 살아남았다.

팔을 잃고, 원래 이름과 추억을 잃고, 끝내 친구까지 잃었다.

그런 내게 도대체 뭘 본 걸까?

나조차도 모르는 무언가가 그녀에게는 보였던 걸까?

그렇다면…….

“영웅이 되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른 이를 위해 순교하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이미 도망쳐선 안 될 장소에서 몇 번이고 도망쳤던 나다.

그러니 나는 눈을 감겠다.

눈을 감고 오로지 그녀의 판단을 믿으며 어둠 속을 헤쳐나가겠다.

“그래도 단 하나, 하나만큼은 제 뜻대로 할 겁니다.”

추억의 풍경은 붕괴한다.

아름다웠던 정원도, 고풍스러운 찻잔과 티 테이블도.

모든 게 사라지고 오로지 그녀와 나 둘만이 남는다.

“당신을 찾아낼 겁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어떤 이름을 지니고 있건,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제가 당신을 찾아낼 거예요.”

그녀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가면에 가려진 채였다.

“그리고 평소처럼 한소리 해야겠습니다. 미리 좀 얘기하라고요.”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손을 뻗어야 할 순간은 지금이 아니다.

한낱 꿈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을 거다.

“시련을.”

“…….”

그때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성녀님이 말을 걸어왔다.

잘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그녀가 말한 문장 중에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들렸다.

“……조심하세요.”

‘시련’을 조심하라.

아무래도 이 악몽은, 그녀가 내게 건네는 충고였던 모양이다.

*     *      *

한줄기 여명에 눈을 뜬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 새벽의 풍경에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

나는 간밤의 꿈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시련을 조심하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직 모른다.

시련이라는 건 본디 조심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움직일까.”

이제야 막 동이 트기 시작한 무렵이다. 아마 타이탄은 몰라도 리네아는 아직 자고 있을 거다.

원래라면 어디로 튈지 모를 타이탄을 감시해야겠지만 아무래도 찜찜함이 남는다.

지금 시점의 정보가 필요하다.

“타이탄,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내게 명령이라도 할 생각인가?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의 명령이나 가르침은 따르지 않는다만.”

“네 멋대로 해. 일단 돈은 두고 갈 테니까 시간 나면 적당히 주변이라도 둘러보던가. 일단 빌려주는 거긴 한데 부탁이니까 물물교환한다고 설치지 말고 이거 써.”

나가는 김에 타이탄의 방 앞에서 말을 걸어봤더니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깨어 있었다.

깨어난 지금까지도 뭘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잠시 후 타이탄이 귀찮다는 듯한 얼굴로 나와 돈주머니를 받아들고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금세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반짝이가 굳이 필요하나? 내가 가진 샤벨 타이거의 이빨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데.”

“그럼 그럼, 샤벨 타이거의 이빨? 가치 있겠네. 그러니까 괜히 비싼 거 쓰지 말고 그걸로 처리해.”

“음, 알았다.”

가이드라인은 대충 정해줬다.

말은 저렇게 해도 주변을 들쑤시고 다닐 일은 없을 거다.

아마 내가 말한 대로 주변을 둘러보겠지. 그렇게 되면 대략적인 준비는 모두 끝난 거나 다름없다.

*     *      *

여관을 빠져나와 골목 구석구석을 뒤졌다. 종종 술에 취한 행인들이나 뒷골목 건달들에게 시비가 걸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내가 찾고 있는 건 대륙 최고의 정보 단체, ‘셰이드’.

과거 성녀님 직속이었을 때는 몇 번이고 접선한 적이 있지만 이 시점에는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는 건 현시점에는 포리스 공작령에서 비밀리에 세를 불리고 있다는 것 정도다.

“어이, 사제 양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렇게 돌아다녀?”

“…….”

그렇게 골목을 누비고 있으려니, 내게 접선해 온 사람이 있었다.

뒷골목이라면 어딜 가나 있는 건달 같은 모습. 하지만 이 녀석은 방금 나를 사제라고 불렀다.

내가 몇 차례 나한테 시비를 걸어오는 녀석들을 쫓아내긴 했지만 그 작업은 상당히 은밀했을 터다.

더군다나 일반인은 이단심문관의 신성 마법을 본다고 해도 그걸 신성 마법이라고 인지하기 힘들다.

상대는 이단심문관에 대한 정보를 지니고 있고, 적어도 이른 아침부터 나를 탐색하고 있었던 자다.

“접선하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다 알고 찾아온 거 같으니 괜한 소리는 말아야겠네. 우리 쪽에 그쪽 인상착의와 관련된 명단이 없다는 것도 있고. 양해해주겠지?”

교단은 예전부터 셰이드와 끈이 있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토록 거대한 단체를 유지하려면 이런 거래가 필요불가결하니까.

“그런데 이렇게 외부인을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나?”

“그쪽에 대한 정보가 없다는 게 거슬리기는 하지만 문제는 없겠지. 우리가 누군지 안다면 말이야.”

“원래는 암살자 집단이었다는 사실이 그렇게 떳떳한가?”

“암살자였다고 한 적은 없는데.”

슬쩍 긁어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확실히 훈련받은 녀석이다. 괜한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라도 있었을 거다.

“내 앞에서는 쓴소리해도 상관없는데, 그래도 이 앞에서는 되도록 조심해야 할걸? 아직, 우리 길드가 업종 변경하게 된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놈들이 꽤 많거든.”

“그래, 명심하지.”

셰이드는 과거 암살자 집단이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집단.

하지만 그렇기에 그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다.

그들의 전신이 암살자였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들이 정보 길드로 업종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본디 죽여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던 이들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정보를 수집하는 상황.

그들의 전신이 뭐였는지는 누구라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런 범죄자들의 집단이지만, 그들이 누구의 암살에 개입한 건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추측일 뿐, 그들을 몰아세울 명분은 없다.

아니라고 잡아떼면 어쩌겠는가.

누가 고객이었는지부터 누구 의뢰를 받았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니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다.

그 만신전조차 말이다.

물론 선량한 일반 사제들은 만신전이 이런 장소를 알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른다. 이런 더러운 일은 이단심문관의 역할이니까.

“그럼…….”

남자는 대놓고 자신의 아지트로 나를 데려왔다. 길이 어떤지 숨기지도 않는다. 자신이 있다는 거다.

혹여라도 내가 그들을 배신할 생각을 하면 그들이 내 목을 떨어트릴 거라는 자신이.

“마침 잘 왔군. 안 그래도 당신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는데.”

텅 빈 방에서는 목소리만 들려왔다. 분명 상대는 이곳에 있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다. 당장에 눈앞에 있을지도 모르겠고 나를 둘러싸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모습이라도 드러내는 게 어떨까? 개미 관찰하듯 지켜보고만 있지 말고 말이야. 그거 은근히 기분 더럽거든.”

“이런, 손님 앞에서 예의가 없었네. 미안하군. 업종 변경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말이야.”

그 말과 동시에 내 눈앞에는 뒷골목에나 어울릴 법한 헝클어진 붉은 머리에 수염을 난잡하게 기른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방에 있던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로 발을 늘어놓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무리 좋게 봐도 건달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갑군, 이단심문관 양반. 내가 바로 ‘셰이드’야. 길드장이 직접 응대해주니 영광이지?”

이 자가 당대의 셰이드.

길드의 이름을 짊어진 대표.

그건 예상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다만 그게 거짓말이 아닐 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업종 변경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내가 알기로는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은 지났을 텐데?”

“하핫, 들켰네. 확실히 우리에 대해 아는 놈이야.”

이 녀석은 시작부터 나를 향해 낚싯대를 들이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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