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산적 (2)
그렇게 한 놈을 처리한 타이탄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주술사, 말해봐라. 네놈은 뭘 할 수 있지?”
“글쎄, 이런 거?”
곧바로 신성력을 피워낸다.
나는 마부의 앞에서 화로와 가정의 여신, 베스타의 힘밖에 선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사제는 신을 한 분만을 섬긴다.
그러니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상당히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
타앙!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신성력을 그대로 마차 바닥을 향해 쏟아 넣는다.
그리고 곧바로 그 힘을 대가로 신이 선사하는 기적을 빌려온다.
이번에 대가로 받아오는 것은 하늘과 땅을 잇는 무지개다리를 지키는 수호신, 헤임달의 하얀 그늘.
새하얀 장막이 나와 아이들이 있는 마차를 감싼다.
“좋군.”
그에 대한 타이탄의 평가는 간단했다. 대답과 함께 곧바로 들고 있던 망치를 크게 들어 올린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이미 한 차례 본 적이 있다.
타이탄이 나타났을 때 산적째로 흙과 자갈을 날려 보내던 폭발.
그게 다시금, 더욱 강력한 위력으로 찾아왔다.
콰아아아앙!
특별한 기술도 아니었다. 그 일격에 담겨 있는 건 오로지 힘.
그밖에 모든 것들이 그 일격에서는 제외됐고 그 방식이 옳다는 게 곧 결과로 나타났다.
“아아아악!”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굉음이 지나간 후 들려온 건 비명이었다.
망치가 떨어지는 위치에 있었을 산적, 그 주변. 그리고 그 주변을 넘어 마차가 있는 곳까지 휩쓴 막대한 힘의 파동이 만들어낸 결과.
“어중이떠중이들을 걸러낼 심산이었다만, 유감이로군.”
한 번의 일격으로 만들어낸 지옥도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남아 있는 건 신체의 일부를 잃고 비명을 지르는 이들과 비교적 먼 거리에 있었기에 넘어진 채로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자들뿐.
산적이라는 게 그렇다.
제아무리 규모가 크고 배후가 있다고 한들 결국 산적이다.
애초에 실력이 있었다면 산적질을 할 이유도 없었겠지.
“자, 잠깐! 살려……!”
“어중이떠중이들밖에 없었으니.”
콰직!
타이탄은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산적들의 목을 창으로 찔러 확실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도망치는 자들은 하나하나 쫓아가며 그 머리를 터트렸다.
산적 중 생존자는 없다.
“상처 입은 짐승을 놓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후환을 남겨두지 않는다. 생긴 것과 달리 철저한 녀석이다.
“이제 토마토들을 전부 으깼군, 주술사, 할 말은 있나?”
잔당을 완벽하게 처리한 타이탄이 마차를 향해 다가온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그 입가에는 하나도 부서지지 않은 마차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그려낸다.
지척까지 가까워진 순간, 헤임달의 그늘을 해체한다.
다른 아이들이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리고 마침내 타이탄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타이탄이 약속했던 대로 내 멱살을 틀어쥔다.
표정은 무표정이었고 눈빛은 얼음장처럼 싸늘하다.
“잠시.”
그 압도적인 위압감을 나는 무시한 채 눈을 감고 베스타의 불씨를 빌려와 손가락 끝으로 피워냈다.
“오래 참고 있었거든.”
품속에서 마을에서 구매한 연초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렇게 연초를 한 모금 머금고.
“후우…….”
베스타의 불씨를 꺼트리며 조용히 눈을 뜬다. 눈앞에는 여전히 흉악하게 생긴 오크가 있다.
“하고 싶은 말 같은 거 없는데? 뭐, 불만이라도 있나?”
“하하하하하하!”
약자 행세를 집어치우니 타이탄이 유쾌하다는 듯이 폭소한다.
그래, 오크라면 이런 당당한 모습을 더 좋아할 줄 알았다.
“결과가 시시하긴 했지만, 썩 재미있는 판이었다.”
내 멱살을 잡고 있던 타이탄이 그제야 손을 뗀다.
“그리고 그쪽의 깜장 여우, 용기는 가상하나 살기가 너무 짙군. 그래서는 기습에 성공할 수 없다.”
타이탄이 삿대질한 곳을 바라보자 폭풍의 여파 때문인지 후드가 벗겨진 상태의 리네아가 보였다.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그녀의 머리 위에 자리한 여우 귀가 쫑긋거린다. 갑자기 시선이 집중된 게 부담스러운 것이리라.
리네아는 우물쭈물하며 조용히 후드를 다시 뒤집어썼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렇게 후드를 뒤집어쓴 리네아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한순간 어떻게 살기를 알아차렸는지에 관한 질문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타이탄 쪽이 아닌 내 쪽이었다.
나에 대한 질문이다.
“뭐가 말입니까?”
“제가 귀족이라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처음에도 날 신경 쓰는 것 같긴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관심이 의심까지 다다른 모양.
사실 당연한 일이다.
일 처리를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의심을 안 할까.
하지만 변명은 간단하다.
“후드만 문제가 아니니까요.”
“앗.”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던 리네아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에 빠진다. 폭풍의 여파로 날아간 건 후드만이 아니다.
그녀가 위장용으로 걸친 싸구려 로브의 앞섬도 마찬가지.
“제국과 다른 해외 나라들에서는 볼 수 없는 복식. 그 옷, 니다벨리르산 특주품 아닙니까?”
“아앗.”
연분홍색 셔츠와 검은색 치마.
치마 아래로는 검은색 스타킹.
그 위에 걸쳐져 있는 백의까지.
완성도가 일반적인 문명 수준보다 2~3단계는 더 앞서있다.
미래 도시, 니다벨리르가 아니라면 아직 현 문명 수준의 기술로는 만들 수도 없는 옷이다.
설령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하는 건 마찬가지.
그녀가 귀족이나 부유한 상가의 딸이라는 것 정도는 내가 아니더라도 쉽사리 눈치챌 수 있으리라.
“싸구려 로브라고 입는 법도 제대로 모르시는 것 같던데, 정체를 숨기고 싶으신 거라면 옷깃을 더 잘 여미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아앗.”
마지막으로 그녀를 위한 충고를 하자 마침내 고개를 들질 못한다.
후드를 눌러 써서 가려진 얼굴은 분명 붉게 달아올라 있겠지.
마을에서부터 생각한 거지만 어벙한 구석이 많이 보인다.
“죄, 죄송합니다아…….”
리네아가 구석에 찌그러진다.
아이들이 그런 그녀의 곁에 다가가 위로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에게는 귀족이라는 직위로도 감출 수 없는 허술함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허술한 모습이 아이들과의 거리감을 줄인 것이리라.
그녀가 사람들에게 멸시받았던 건 수인이나 귀족이어서가 아닌, 원래 오늘 있었어야 했던 한순간의 풍경 때문이었을 뿐이니까.
“그런데 주술사. 이젠 어떻게 할 거지? 길잡이를 잃었지 않나.”
마부는 타이탄의 망치질에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렇네, 그럼 내가 잠깐 길잡이를 찾으러 다녀오도록 할까?”
“내가 가는 게 더 빠를 텐데?”
“네가 가면 여기 있는 애들은 누가 지키고?”
“흠…….”
타이탄이 고개를 돌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을 살핀다.
그 시선이 닿을 때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다.
“하긴, 제 몸 하나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 보이는군.”
타이탄은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들은 비탄에 빠졌다.
제법 많은 수가 나를 원망까지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긴, 본색을 드러낸 마당에 날 예전처럼 봐줄 애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존경심은 사라지고 배신감만 남았다.
이단심문관에게는 흔한 일이다.
* * *
산적은 무리 지어 움직이지만, 모두가 동시에 움직이지는 않는다.
물론 규모가 작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산적이라면 거점에서 대기하는 인원이 없을 수가 없다는 거다.
산적에게도 상하관계가 있을 테고, 그런 인물들은 대부분 앞으로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말은 즉.
“지금부터 한 놈만 살려둘 거야.”
아직 이 근처에는 산적의 본대가 남아 있다는 소리다.
길잡이를 찾으러 멀리 있는 마을까지 돌아갈 필요는 없다.
한 놈쯤은 길을 알 테니까.
전초전은 타이탄 쪽으로 떠넘겼으니, 이제 내가 일할 시간이다.
애초에 나는 성녀님과는 다르기에 그들을 회개시킬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나답게, 만신전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이단심문관답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할 차례.
검을 뽑는다.
스승님이 하산 선물로 주신 순백의 검신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세한 얘기는 일단 절반 정도 치우고 하지.”
처음에는 당혹감에 멀뚱멀뚱 쳐다보던 산적들이 내가 검을 뽑자 크게 고함치기 시작한다.
“저……!”
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 어떤 소리도 듣지 않았다.
신성력을 대가로 빌려온 건 밤의 신 라트리의 별빛 장식.
주변은 마치 물속에 잠긴 것처럼 침묵에 빠져든다. 한창 밝았던 세상은 고요한 어둠 속에 갇힌다.
회귀 이후 검을 다루는 건 처음.
한차례 검을 놓았던 전적과 전성기의 육체 사이의 간극을 좁힌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당황하고 있던 산적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할 무렵.
한 번 더, 신성력을 피워낸다.
이번에는 반 강의 괴물을 사냥한 신, 비다르의 힘을 빌린다.
내가 다루는 검술은 본디 내 실력으로는 쓸 수 없는 기술이다.
사용하는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을 수준의 이질.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내가 쓸 수 있는 실력의 수십 배에 달하는 기술을 쓸 수 있는 건 좋다.
하지만 그걸 육신이 버티지 못하니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지 않으면 회귀 전과 같은 꼴이 날 거다.
나는 무리해서 검을 휘두르다가 두 번 다시 검을 휘두를 수 없을 지경까지 내몰렸었으니까.
으득!
양손으로 검을 움켜쥔 채 수평으로 세운다. 밤하늘에 떠 있는 작은 별빛이 밝히는 세상을 바라본다.
눈앞의 산적들을, 나무와 숲, 바위들을. 그리고 그 너머.
지평선을 바라본다.
스칵!
한순간, 그 지평선이 다른 모든 걸 집어삼키듯 선명해진다.
“…….”
검은 휘둘러졌고 나를 향해 달려들던 산적들이 자신의 육신 위로 새겨진 지평선에 입을 뻐끔거린다.
이윽고 그들의 몸을 삼킨 지평선 위로 붉은빛이 번져나간다.
적막한 밤을 만들어내던 별빛 장식이 걷히고, 산적들과 함께 나무와 바위들이 무너져내린 끝에.
“이걸로 절반.”
내 눈앞에는 깔끔한 지평선이 보였고, 산적들의 거점에는 이제 다른 이유의 침묵이 자리 잡았다.
“포리스 공작령까지의 길을 알고 있는 녀석들만 거수.”
산적들의 전의는 꺾였으니, 이젠 간단한 선별 작업만이 남았다.
이제 남은 인원의 절반 중 살 수 있는 인원은 한 명뿐이다.
* * *
길잡이 겸 마부를 데려온 이후, 다시 포리스 공작령을 향했다.
내가 선별 작업을 끝내고 온 사이, 타이탄도 이제는 숨지 않고 마차 옆을 함께 걷기로 됐다.
아이들은 여전히 타이탄을 꺼림칙해하지만 동시에 든든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덕분에 임시로 구해온 마부가 딴생각 못 하도록 하는 효과도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예전과는 모든 게 달라졌다.
결과는 같았지만, 아이들은 이제 리네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신 그 공포가 타이탄을 향하게 됐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상황에는 뭘 저질렀느냐보다 누가 저질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리네아가 산적들을 토막 냈다면 꺼림직하게 여겨졌겠지만 타이탄이 산적을 으깨버린 건 당연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외형에 따른 이미지.
그게 있었기에 타이탄에게는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저기요.”
그렇게 한가로운 마차 여행이 다시 시작된 이후.
줄곧 부끄러움에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리네아가 나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 눈빛에는 여전히 의혹과 경계심이 남아 있다.
“저분 누구예요?”
“음.”
하긴 길잡이를 구하러 간다던 사람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겁에 잔뜩 질린 사람을 데려왔으니 의심이 가는 것도 당연하다.
“산적들의 거처에서 데려왔습니다. 마침 포리스 공작령까지의 길을 알고 있다고 해서 데려왔죠.”
보통 이렇게 말한다면 산적들에게 붙잡혀 있던 사람들을 떠올릴 터다. 물론, 산적을 잡아 왔다고도 생각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전자에 더 신빙성을 느낄 거다.
“산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네아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마부의 정체를 산적으로 단정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들킨 건 별로 놀랍지 않았지만 그 확신의 이유가 궁금하다.
다른 한쪽의 가정은 애초에 고려조차 하지 않은 모습이 아닌가.
“피 냄새가 났거든요. 저쪽이 아닌 당신에게서요.”
“저런, 튀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조금 묻었나 보군요.”
상대가 수인이라는 걸 깜빡했다.
뭐, 딱히 숨길 것도 없다.
나는 이미 타이탄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인 만큼, 이 정도 의심은 합당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이제 와서 그걸 빌미로 나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구해줘서, 궂은일을 맡아줘서 감사합니다.”
리네아는 고개를 숙였다.
사리 분별은 확실한 듯하니 내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이름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
리네아가 의심스럽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잠시 멈춰 있자, 깜빡했다는 듯이 그녀가 덧붙였다.
“아, 저는 리네아…… 그러니까 리네아 스피린이에요.”
뒷말은 나한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귀족이라는 건 이미 들켰지만 다른 애들에게 자신의 출신까지는 들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리라.
“……?”
그런 자기소개에도 내가 여전히 침묵하자 리네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녀의 고개와 함께 후드 위로 튀어나온 귀가 함께 움직인다.
보고 있으면 심심하진 않겠지.
“그렇네요. 이름이라.”
다만 그녀의 걱정과 달리 나는 그녀를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지.
나는 한차례 이름을 잃었다. 아니, 빼앗겼다는 게 옳을 거다.
그런 내게 두 번째 이름을 붙여준 건 만신전과 성녀님이었다.
그 이후 나는 줄곧 그 세례명을 내 이름으로 삼아왔다.
그렇기에 저어된다.
지금의 나는 아직 그 이름을 쓸 자격이 되지 않은 거 같아서.
“흠…….”
리네아를 보자 그녀는 마치 이상한 걸 보겠다는 듯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리네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불안에 떤 사람들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던 사람이다.
내가 바꿨고 많은 게 달라졌다.
그리고 달라졌다는 건 곧.
내가 간직하고 있던 무언가를 잃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오늘 나는 많은 걸 바꿨다.
누군가를 구했고 추억을 잃었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건, 동시에 무언가를 잃는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러니 늘 신중하게 생각하고 필요한 것들을 주워야 할 거예요. 모든 걸 손에 쥐려 했다가는 모든 걸 손에서 놓쳐버리기 마련이니까.
문뜩, 내게 세상 사는 방법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말씀이 떠올랐다.
무언가를 얻는다는 건 무언가를 잃는다고 했던가? 그때 당시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던 말이다.
그런데 이젠 알 거 같다.
나는 리네아의 밝은 미래를 준 대신 그녀와의 추억을 잃었다.
나와 그녀만이 공유하던, 씁쓸하고 아팠던 추억들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됐다.
그래, 이만한 단어가 또 있을까.
“로스트(Lost)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한테는 이런 이름이 적당하다.
앞으로도 많은 추억을 잃어버리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니까.
* * *
마차 여행은 계속됐다.
겁에 질린 산적은 앞만 보고 마차를 몰았으며, 마차에 탈 수 없는 타이탄은 마차 옆을 지켰다.
“흠…….”
나는 그사이 내가 지닌 소지품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아침에 일어나 마차에 타기까지 너무 급작스럽게 움직였기에 내가 뭘 가지고 있고, 또 뭘 가지고 있지 않은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확인 결과.
소지금은 넉넉하게 있었다. 아니, 오히려 과할 정도다.
아마 걱정 많은 선생님께서 챙겨주신 걸 거다.
그리고 스승님이 주신 검.
새하얀 검신을 보고 있으려니 섬뜩할 정도의 예기가 느껴졌다.
이것도 상당한 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걸 가지고 있었나.”
작은 돌조각 둘.
설마하니 이런 게 나한테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희소성을 따지자면 희소하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이 적은 물건.
만신전에서 그 사용처를 지워버린 양날의 검.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찝찝해지는 그런 물건이다.
<모르페우스의 꿈 조각>
옅은 빛을 발하는 돌조각이다.
선생님이 이걸 알고 넣은 거라면 상당히 혹독한 가르침이다.
상당히 찝찝한 기분이지만 혹시 모르니 이건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해 들고 있는 게 좋겠지.
“와아아!”
그렇게 소지품의 점검이 끝나갈 무렵. 마차에 탄 다른 아이들에게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저 멀리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산적 사건과 관련된 범죄자들이 숨어 있는 장소, 대도시 포리스 공작령에 마침내 도착한 순간이었다.
“멈춰라!”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순간 곧바로 쏘겠다!”
소소한 트러블과 함께.
“귀찮게 하는 녀석들이군.”
그리고 그 트러블의 주체가 조용히 망치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