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산적 (1)
오크는 보기 힘들다.
아니, 보통 사람이라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못 볼 확률이 더 높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서 나올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모른다. 오크에게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어떤 의미로는 인간보다도 더욱 확고한 심지를 지니고 있다는 걸 말이다.
위협적인 겉모습 때문에 두려워서 객관적인 판단을 못 하는 거다.
만약 그들이 인간이었다면 훌륭한 기사의 표본일 수도 있었겠지.
물론 문화가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기에 그럴 일은 없다.
우리에게는 ‘선’이고 당연한 것들이 저들에게는 ‘악’이고 의문스러운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마차의 바퀴가 고장 났으니 수리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고치겠다고 했다.”
“아뇨, 아닙니다. 사실 바퀴가 아니라, 그……. 편자! 말의 편자를 바꿔 낄 때가 돼서…….”
“그럼 대장간으로 가면 되겠군. 가서 받아오면 되나?”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으음, 마, 말도 쉬어야 합니다.”
“여태껏 쉬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오늘 출발한다고 사람을 불러 모았던 거 같은데.”
“제가 언제 그랬다고, 하하.”
“음…….”
자세히 들어보면 딱히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협박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자신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와주겠다고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알아들을 만도 한데 아쉽게도 두 사람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바로 서로의 표정을 구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크가 무서워서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마부와 최대한 친절하게 행동하고 있음에도 그저 무섭게만 보일 수밖에 없는 오크.
안타까운 일이다.
뭐, 마부가 산적과 내통하고 있는 이상 알고도 모르는 척 어떻게든 떼어내려 하는 걸 수도 있다.
딱 봐도 강해 보이지 않나.
저만한 체구에 저런 근육이라면 마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맨손으로 곰을 때려잡을 수 있을 거다.
“아무래도 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있는 거 같군요.”
슬슬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
내가 나타나자 마부의 표정이 마치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발견한 여행자처럼 밝아진다.
뭐, 마부가 나를 구세주처럼 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난관을 함께할 사람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그야 그렇겠지.
반면 오크는…….
“무슨 문제라도?”
“간혹 흰색 털을 지닌 동물들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곤 하지.”
내 머리 색에 관한 얘기다.
하긴, 눈에 띄는 색이긴 하다.
“샛노란 눈동자도 마찬가지. 맹수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특징이지. 우습게 봐선 안 될 녀석들이야.”
“……그래서요?”
경계. 아니, 호기심인가?
어쩌면 호승심이라고 부를 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도 지금의 내 저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가급적이면 이 자리에서는 싸우고 싶지 않다.
전성기의 육체에 신성력, 거기에 이단심문관으로서 살아가던 삶이 더해진 지금,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마부가 마음속에 정해둔 위협 인물 리스트에 내가 올라갈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인 거다.
“흠.”
오크가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리며 나를 쳐다본다. 그에 따라 살을 에는 듯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크는 한발 물러났다.
내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테니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예의를 보일 생각이리라.
“제가 들어보니 서로 간의 오해가 있는듯한데, 참견해도 괜찮겠습니까?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신성력을 피워내 가볍게 성호를 그어낸다. 신성력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신성력은 단지 신을 믿는 것만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제셨군요!”
“사제? 그게 뭐지?”
“음, 오크들의 문화로 봤을 때, ‘주술사’라고 보면 될 겁니다.”
최대한 선량하게, 약해 보이게, 그저 사제일 뿐인 것처럼.
그렇게 별 볼 일 아닌 상대인 것처럼 자신을 위장한다.
“그쪽의 오크 형제님은…….”
“타이탄이다. 그리고 존대는 필요 없다. 나도 하지 않을 테니.”
아주 대단한 위인 납시셨다.
하지만, 그래.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이쪽도 편히 가자.
저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어울려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설득하는 게 더욱 수월해질 테니까.
오크는 당당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면야 뭐. 아무튼, 타이탄은 어디까지나 선량한 의미로 도와주려고 하는 거지? 마차를 타고 싶기도 하겠지만 말이야.”
“그렇다. 나는 굉장히 선량하지.”
타이탄이 고개를 끄덕인다.
저 밑도 끝도 없는 자존감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녀석은 아닐 거다.
“반면 형제님은 타이탄이라는 오크에 대한 신뢰가 없고, 위협을 느끼니 그가 마차에 타지 않도록 변명을 일삼고 있는 것이겠지요?”
“아니, 그…….”
마부가 타이탄의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흘린다.
과연 그렇다고 대답해도 괜찮을지 걱정하는 거다.
“인정하셔도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여기서 제가 맹세하겠습니다.”
화륵!
고민하는 마부를 위해 눈을 감고 신성력을 풀어낸다.
신성력을 대가로 받아온 건 화로와 가정의 신, 베스타의 불씨.
그 불씨가 사그라들도록 내버려 둔 뒤, 천천히 눈을 뜬다.
“어떻습니까?”
마부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은 신의 이름까지 걸고 맹세한 거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할까?
“그럼 먼저 서로 간의 오해를 다잡겠습니다.”
마부의 생각이 짧았다.
타이탄을 쫓아내고 싶었다면 저런 구질구질한 변명을 할 필요 없다. 상황에서 오는 객관적인 지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거다.
“첫 번째로, 타이탄은 마차에 타지 못합니다. 본인의 체구가 거대한 건 둘째치더라도 짐이…….”
타이탄은 맨몸이 아니다.
그 체형으로도 믿기 힘든 무기들을 지니고 있다.
언뜻 봐도 사람 몇 명의 무게보다도 더 나갈 듯한 망치, 기둥을 통째로 뽑아온 듯한 창.
둘 다 손잡이까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중량 병기다.
타이탄이라면 모를까 그의 무기까지 싫기에는 중량 초과다.
“그러니 변명하지 않더라도 타이탄은 마차를 타선 안 되죠.”
마차에는 애초에 그가 위장용으로 실어놓은 교역 상품들이 있다.
무료로 태워준다는 것도 교역품 외에도 빈자리가 있다는 식으로 꿰어낸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제야 그걸 깨달았는지 마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공포에 눈이 멀어 이런 간단한 이치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거다.
“그리고 타이탄. 음, 잠시…….”
마차에 올라타 짐을 뒤진다.
과일류를 비롯한 신선 식품이 일부 있는 걸 봐서는 원래 오늘 출발할 예정이 맞았을 거다.
그런데도 3일 뒤로 미뤘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인신매매범이다.
“형제님, 채소 두 개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아, 예…….”
마부의 허락도 떨어졌기에 적당히 채소류를 물색한다. 그렇게 찾다 보니 적당한 것이 나와 그걸 타이탄의 손 위에 올렸다.
“이쪽이 마차고, 이게 너야.”
내가 타이탄에게 건넨 건 토마토와 호박. 토마토가 마차고 호박이 타이탄이다.
이거면 이해하기 쉬울 거다.
“그런 네가 마차 위에 올라타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지 않겠어?”
저만한 크기의 호박을 토마토 위에 올려두면 어떻게 될지.
타이탄은 해보지 않고서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은 버틴다고 해도, 움직이기 시작하면 반드시 으깨지겠군.”
“그리고 타이탄. 너는 애초에 마차를 탈 필요도 없지?”
회귀 전, 나는 타이탄을 본 적 없다. 내가 탔던 마차는 이곳에 있고, 지금부터 3일이 지난 시점에 탈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타이탄은 결국 마을을 떠났다는 소리.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이탄을 태울 수 있을 마차가 이런 작은 마을에 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걸까?
“그렇잖아? 네가 말보다 더 빠르고 체력도 좋을 테니, 사실 길만 알면 되는 거 아닌가?”
원래부터가 숲과 늪을 뛰어다니며 수렵 생활을 하는 오크다.
그런 그들의 체력이 이런 탁 트인 길에서 떨어질 리도 없고, 들짐승 따위를 두려워할 만큼 감각이 무디지도 않다.
적어도 내가 본 오크들은 모두 자다가도 습격을 먼저 알아차릴 정도로 감각이 예리했다.
“다른 애들에게도 너는 너무 낯선 존재니까. 그렇게 위엄 넘치는 모습이 근처에 있으면 애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어?”
“……맞는 얘기군.”
“그래, 그럼 이제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이 나왔어?”
“마차에는 타지 않겠다. 나는 약자들을 핍박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니.”
이걸로 오크의 문제는 해결됐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 * *
문제가 해결된 직후.
마부는 마차에 탈 사람들을 불러 모아 곧바로 출발했다.
마음이 급한 양반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마차에 탄 아이들은 제각각 담소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물론 내게도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야 이 일을 해결한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다.
“사제님! 사제님은 아까 그 괴물이 무섭지 않았나요?”
“하하, 저도 무서웠지요. 어찌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적당히 그들이 듣고 싶을 법한 말로 대꾸한다.
평소에도 하던 일이다. 나는 이단심문관 이전에 사제니까.
이런 대외적인 이미지 역시 착실하게 쌓아왔다.
그나저나 신경 쓰이는 건…….
“사제님, 저분은 괜찮을까요? 아까부터 사제님을 보고 있는데.”
“낯을 가리시는 거겠지요. 나중에 쉴 때가 되면 제 쪽에서 한 번 말을 걸어보겠습니다.”
아까부터 구석진 자리에서 조용히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리네아 스피린의 존재다.
명백하게 이쪽을 신경 쓰고 있다.
아까 일 때문에 이상함이라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수인 특유의 감각이 내게서 뭔가를 감지하고 있는 걸까?
“아…….”
그 순간, 고개를 숙이고 있던 리네아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들어 올린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와 동시에 마차가 멈춰 서고, 마부가 마부석에서 뛰어내린다.
“어라?”
갑작스러운 상황에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한다.
쉬기 위해 멈춰 섰다고 생각하기에는 주변이 너무 소란스럽다.
사람들의 발소리, 철제 기구가 부딪치는 소리, 고함과 웃음.
그러한 선명한 소리가 지금 상황을 쉽사리 이해시킨다.
“나와 새끼들아!”
걸걸한 목소리가 쐐기를 박는 것과 동시에, 마차의 천막이 걷혀나가고 주변에 몰려든 사람의 형상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대략 50명. 상당한 숫자다.
예전에는 당황해서 몰랐지만 지금 보니 확실하다. 이 녀석들은 평범한 산적이 아니다.
이런 좁은 골목에 자리 잡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다.
더군다나 집단이라는 게 크면 클수록 통제하기도 힘든 법이다.
이런 체계가 잡혔다는 건 아마 뒤가 더 있다는 소리겠지.
뭐, 그건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 지금은 먼저…….
“아.”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처리한다고.”
굳은 표정의 리네아를 만류한다.
손에는 수술용 메스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의사 지망생 아니랄까 봐 참 대담한 무기 선택이다.
아니, 무기도 아니겠지. 상황이 이렇게 돼서 들었을 뿐일 거다.
만류하듯 붙잡은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그래, 그녀도 다른 애들과 다를 게 없었다.
이런 상황이 두려웠겠지. 그럼에도 그녀가 앞장서려 했던 건.
“귀족 정신(noblesse oblige)도 좋지만, 그 일에 적성이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 그걸 어떻게……?”
리네아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보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그 시선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그야 이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의연히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분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제가 해결할 문제는 아닌 거 같군요. 사실 지금은 저보다도 더 적성이 있는 분이 있습니다.”
쾅!
그와 동시에 산적들의 후미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흙과 돌조각들이 산적 몇 명과 함께 하늘로 솟구치고 떨어진다.
“너는 자신을 주술사라고 소개했지. 그리고 내가 아는 주술사들은 보통 말 속에 뜻을 숨기더군.”
수십에 달하는 산적들의 숫자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시선은 단 한 명에게로 쏠린다.
오크, 타이탄의 등장이다.
“나는 마차를 탈 필요가 없다. 네놈 말대로 길만 알면 될 일이지.”
그러니 우리 뒤를 밟았다.
마차에는 타지 못해도, 우리가 길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인간과는 종족이 다른 내가 위압감을 준다는 것도 이해했다.”
그러니 우리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움직였다.
저 거대한 체구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오크는 수렵을 통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사냥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타이탄이 나를 향해 아까 내가 건네줬던 토마토를 던진다.
고개를 살짝 꺾어 그 토마토를 피하자 마차 바닥에 부딪힌 토마토가 간단히 으깨진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썩었더군.”
내가 마차로 비유한 토마토의 안쪽이 썩어 있었다.
이 마차 안쪽에 추악함이 깃들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내가 전한 속뜻을 완벽하게 풀어냈다.
멍청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상황 파악이 빠르다.
“말해봐라, 주술사. 겁에 질린 아이들과 날붙이를 들고 있는 어른들, 둘 중 누가 정당한가?”
“정당함은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니, 네 마음이 향하는 쪽이 정당하겠지.”
“그렇군, 내 마음은 이런 같잖은 수작에 나를 끌어들인 네놈의 멱살을 잡으라고 말하고 있는데.”
한순간, 희비가 엇갈린다.
위압적인 자태로 등장한 타이탄의 모습에 당황하던 산적들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고 아이들은 불안감에 몸을 떤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중간에 거슬리는 모든 토마토를 으깨면서 말이지. 하하!”
저게 농담하는 표정이라는 걸.
“우선 하나!”
콰직!
타이탄의 가장 근처에 있던 산적의 머리가 토마토처럼 으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