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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이단심문관의 악마 사냥법-2화 (2/42)
  • 2화. Restart

    크게 잡은 목표는 셋.

    하나, 내 손이 닿는 범위에서 죽어야 했던 이들을 구해낸다.

    둘, 성녀님을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 셋.

    전설 속의 악마.

    <암흑의 왕>, 벨리알의 계략을 방해하고 그 목숨을 취한다.

    “그렇다면 일단…….”

    사실 당장에라도 성녀님을 찾고 싶지만 성녀님의 정확한 행적이 드러나는 건 지금부터 3년 뒤.

    그러니 당장에 그녀를 찾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만신전까지 가서 찾는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있는 장소를 생각해보면 너무 멀다.

    그리고 벨리알은 아무 기반이 없는 지금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니 우선해야 할 건.

    “첫 번째.”

    나와의 인연들. 혹은 벨리알이 암약하며 치워버린 영웅의 재목들.

    그들을 벨리알이 설계한 계략의 늪에서 건져내는 것. 첫 번째 목적은 결국 세 번째 목적과 연관된다.

    만신전을 향하는 길목 사이사이에 그들과의 연결점을 만든다.

    그 과정 중에 살려낼 사람은 살려내고 죽일 사람은 죽인다.

    “이쯤 되면 계획은 잡혔고, 우선 밥부터 먹을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생각해보면 급하게 움직여야 할 테니까.

    *     *      *

    공교롭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는 비교적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이 마을에 들어온 이후 지낸 시간은 고작해야 이틀 남짓.

    하룻밤을 여관에서 보내고, 다음 날 마차를 타고 대도시인 포리스 공작령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숲에서나 살고 있던 어리숙한 내가 처음으로 인생의 쓴맛을 느끼게 된 장소여서다.

    나는 여관에서 아침을 먹고 마차를 타기 전까지의 사이 동안. 소매치기를 당해 소지금의 대부분과 스승님이 남겨주신 검을 잃었다.

    지금 나는 그 과정 사이에 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지금은 그때처럼 어수룩하지는 않다는 점.

    “나도 참 머저리였어.”

    “크아악!”

    콰직!

    내 뒤를 스치듯 이동하며 내 주머니와 검을 훔치려던 녀석의 손목을 끌어와 나이프를 꽂는다.

    이렇게 대놓고, 이렇게 뻔히 보일 정도로 소매치기를 당하는 데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말이다.

    녀석의 손과 식탁을 나이프 한 자루로 연결해둔 뒤,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인지 확인한다.

    “하하……!”

    여관의 종업원이었다.

    이건 또 재미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된 걸 보면 우연히 내 주머니를 턴 게 아니라는 의혹이 생긴다.

    분명 어제의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부주의하게 가진 돈 전부를 여관 주인에게 보여준 거겠지.

    주머니 안에 생각보다 돈이 많다는 걸 알았으니 이 어리숙한 꼬맹이의 뒤를 노려보자는 생각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소, 손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여관 주인이 그제야 내게 고함친다.

    “아, 미안합니다. 종업원 손버릇이 좀 안 좋은 거 같길래. 깊이 새길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교육을 해도 제가 합니다!”

    “그럼 책임도 그쪽이 지시나?”

    “…….”

    갑자기 입을 다문다.

    종업원이 다치는 건 못 보겠고, 책임은 지기 싫고. 뭐 어쩌겠는가.

    보통 사람은 다 그런 법이다.

    “정말 책임을 지겠다면 이 이상 폭력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입니까?”

    “예.”

    척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을 텐데. 알면서도 내버려 두는 건지, 아니면 한패인 건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결국 나는 내 검과 소지금을 안전히 지켜낼 수 있었으니까.

    이 이상 할 필요는 없다.

    “그럼 그렇게 해주십시오.”

    “그러지.”

    “크악!”

    나이프를 뽑은 뒤 녀석을 내쫓듯 여관 주인의 곁으로 보낸다.

    “……너는 들어가서 상처를 치료하거라.”

    “예…….”

    참 돈독한 관계다.

    점점 더 의혹이 짙어진다.

    “그럼, 조금 대화를 해보죠.”

    나는 나이프를 든 채로 여관 주인이 서 있는 카운터를 향했다.

    폭력적인 행동을 이어가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이렇게 있는 이상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주인장, 신을 믿습니까?”

    “……신 말입니까?”

    “예, 이 세상에 신 안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토록 많은 신이 존재하는 세상인데.”

    오죽하면 만신전이라고, 신의 명부를 기록하는 집단이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신앙이 있고 그 모든 게 힘이 된다.

    당장에 천공의 신이라고 불리는 분만 해도 셋을 넘는다.

    내가, 만신전의 사제들이 모르는 신들 역시 있기 마련이고.

    “주인장은 여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안락함의 신이나, 평화의 신, 온기의 신을 믿을 수도 있겠죠. 아니면 뭐……. 도둑의 신?”

    “…….”

    개중에는 악신으로 분류되는 신 역시 있기 마련이다.

    제멋대로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을 믿는 자들은 이단이며, 사이비라고도 불린다.

    믿는 것만으로도 그 신의 힘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권능을 행사하면 골치 아프니까.

    “주인장이 건실한 신을 믿고 있다면 참 좋겠는데 말입니다.”

    그그극.

    가져온 나이프를 이용해 여관 카운터에 상흔을 새긴다.

    가로로 짧게 한 번 그리고 세로로 길게 한 번. 칼끝이 그은 장소에 옅은 빛이 남는다.

    총합 두 번의 칼질로 새겨진 상흔에 여관 주인의 표정이 의문에 물들었다가 뒤늦게 질려간다.

    “신을 대행하는 자들은 많고, 그들의 시선이 당신을 향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정도면 된다.

    신의 이름을 빌려 말해뒀으니, 내 말뜻이 뭔지는 잘 이해할 거다.

    “그럼 다음에 또 보죠, 주인장.”

    내가 먹은 아침 식사에 대한 값을 치른 채 떠난다.

    그렇게 걷다가 잊고 있던 말이 떠올라 뒤돌아 말했다.

    “바가지도 정도껏 하시고.”

    내가 떠나갈 때쯤에는 주인장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     *      *

    손등을 나이프에 꿰뚫렸던 사내는 붕대로 감은 손을 부여잡은 채 씩씩거렸다.

    하지만 다시 나왔을 때는 이미 상대가 사라진 뒤.

    “이런 씨발!”

    자신의 손을 찌른 사내를 그냥 보내줬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내가 열불이 나서 소리쳤다.

    “형님! 그놈을 그냥 보냈소? 내 손이 이 꼴이 됐는데?”

    “아서라.”

    “지금이라도 애들 모아서 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내가 이 꼴이 됐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

    “멍청한 새끼야, 네가 건드린 놈이 누군지는 알아? 이거 보여?”

    “뭐?”

    여관 주인은 사내를 향해 화를 내며 카운터에 새겨진 상흔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십자가 형태의 상흔이 아직도 옅은 신성력의 빛을 흘리고 있었다.

    “십자가? 뭔데, 그놈 사제래? 지금 천벌이라도 받을까 무서워서 그 새끼를 보내줬다는 거야?”

    “병신 새끼야, 그놈이 이걸 내 옆에 서서 새겼겠냐?”

    “뭔 소리야?”

    “그놈은 내 정면에서 이걸 그렸어, 내가 보기에 십자가면, 놈이 보기에는 어땠을 거 같은데?”

    “십자가가 반대면 뭐, 역십…….”

    소리치던 사내가 뒤늦게 여관 주인과 비슷한 안색이 되어간다.

    상대는 역십자를 새기고 갔다.

    그게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사람은 전부 안다.

    “신을 받들지만 송구스러워 고개를 못 드는 자들. 만신전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는 전문 처리반.”

    “이단심문관……?”

    “차라리 기사나 귀족이라면 모를까 이단심문관을 건드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걸린다.”

    여관 주인은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상흔을 매만졌다.

    귀족이나 기사라면 그들이 사칭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은 예외다.

    그걸 굳이 사칭하는 정신 나간 놈은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여간 미친놈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사제였다. 뻔히 보이는 신성력의 흔적이 그 증거.

    사제까지 돼서 떳떳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칭을 할 리가 없다.

    “그놈 마을 떠날 때까지는 사고 치지 마라. 괜히 불똥 튈라. 아니, 그냥 당분간은 사고 치지 마. 이미 주목받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여관 주인의 말에 사내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에 찾아온 이단심문관이 한 사람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이미 다른 이단심문관들이 여기서 일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으며, 자칫 그들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끔찍한 꼴로 살해당할 수도 있다.

    “……일단 숙박비부터 내리자.”

    *     *      *

    내 인생이 안 그랬던 적이 있었겠느냐만은 내 첫 여행은 순조롭지 못했다. 상당히 말이다.

    오늘 아침의 건만 해도 그렇듯, 처음으로 도착한 마을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다.

    그렇다면 그 뒤는 어떨까?

    아무리 찾아도 검과 돈은 찾을 수가 없고, 먹고 살아야 하니 일자리는 구해야겠고.

    그때 마침 눈앞에는 애들을 공짜로 대도시인 포리스 공작령까지 태워다주는 마차가 존재하고.

    그럼 어떻게 할까?

    “타겠지.”

    그게 산적과 내통하고 있던 인신매매범이라는 걸 모른다면 이보다 더 합리적일 수가 없다.

    여관에서 이어진 정교한 설계에 당해버린 내가 어쩌겠는가.

    이것 참 놀랍다.

    이 인신매매범들의 끝에 존재하는 게 돌고 돌아 벨리알 휘하의 마족과 연결된다는 점이 말이다.

    어쩌면 내가 10년 전으로 돌아온 게 운명이 아닐까 싶다.

    “저기…….”

    “…….”

    그렇게 마을 입구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어차피 마차를 탔던 게 지금으로부터 3~4일쯤 뒤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상황을 좀 살피려고 하던 차였다.

    누군가가 내 뒤를 잡았다.

    악의는 없는 것 같지만, 이토록이나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부터 보통내기가 아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그, 그게 말이죠.”

    뒤를 돌아 얼굴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 내 뒤를 잡을 법한 사람이다.

    10년 전, 산적들의 습격을 받았던 그 순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다름이 아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이 소녀 덕분이었다.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보랏빛 눈.

    “마차를 타실 생각이신 거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무래도 내 혼잣말을 들은 것 같다. 내 뒤를 밟고 있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산적의 습격에 단검 한 자루 들고 아이들을 구한 사람.

    혹은 산적을 문자 그대로 뼈와 살을 도축해버린 ‘인간 도살자’.

    리네아 스피린.

    그녀가 호들갑스러운 태도로 내게 속삭였다. 뒤집어쓴 후드 위로는 뭔가가 쫑긋 솟아올라 있었다.

    “무, 무서운 사람이 마차에 타겠다고 난리예요. 그래서 아저씨도 운행일이 3일 뒤라고 우기고 있어서요……. 괜히 지금 찾아가면 일이 복잡해질 거 같아서…….”

    과연, 내가 3일 뒤에 그녀와 같은 마차를 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그 무서운 사람 때문에 출발을 3일 뒤에 했던 모양.

    “그렇군요.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아뇨, 아뇨! 그냥 말해드려야 할 거 같아서.”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하지만 그녀 나름의 선행이다.

    아마 여기서 이렇게 서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 만류해왔겠지.

    그 누구도 그런 걸 부탁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쫑긋 솟아 있던 후드가 안도감에 축 처지는 게 보였다.

    자신이 수인이라는 걸 나름 숨긴다고 후드를 뒤집어쓴 거 같은데 의외로 어벙한 구석이 있었다.

    나를 구해줬던 첫 번째 영웅은 이렇게나 어렸다. 내 기억 속의 어른스러운 모습과는 달랐다.

    “그럼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네?”

    그래, 이렇게나.

    이렇게나 어리숙한 소녀였다.

    나와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다.

    영웅이 아닌,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용기를 냈을 뿐인 소녀.

    그런 소녀가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검을 들고 산적들과 맞서 싸운 끝에, 도살자라고 불리게 됐다.

    은혜를 생각하더라도 그녀의 손속이 과했다는 건 인정하겠다.

    그런 손속은 그녀가 수인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거다.

    수인은 특유의 난폭한 야성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하니까.

    그런 멸시를 받더라도 화를 내지 않고 꿋꿋하게 남을 도우며 살아간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사람들도 그런 그녀를 차마 비난하지는 못하고 피할 뿐.

    그렇게 고독하게 죽어간 소녀.

    “제가 처리할 테니.”

    그녀의 최후를 기억한다. 고독 속에서 홀로 목을 매달던 모습을.

    그리고 걱정에 입을 오물거리는 지금의 모습에 확신할 수 있었다.

    “괜히 무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녀는 그렇게 죽어선 안 됐다.

    “이번엔 제가 할 테니까요.”

    “이번엔?”

    다시금 후드 위로 그녀의 여우 귀가 쫑긋 튀어 오른다.

    내 말의 뜻을 고민하는 듯 미간을 조금 찌푸린다.

    그런 그녀를 지나치며 나는 마차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10년 전, 바로 지금. 소년 소녀들 사이에서 분투했던 리네아 스피린.

    이번에는 그녀의 분투를 내가 이어받고, 그녀의 오명을 지워낸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어이쿠 이건 또 뭐람.”

    언뜻 봐도 3m를 훌쩍 넘는 체구를 지닌 존재가 마차 주인과 언성을 높인 채 싸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정정할 부분이 있겠다. 리네아 스피린은 조금 어벙한 정도가 아니라…….

    “무서운 ‘사람’이 아니잖아? 저거, 인류의 기준이 너무 폭넓네.”

    조금 많이 어벙한 듯하다.

    눈앞에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초록색 근육 덩어리 괴물.

    즉, 오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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