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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760화 (760/760)

760화

히무라가 노심초사하며 아이돌관리본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때 어느 한 명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전쟁!”

그가 외치자 다른 이들도 손을 치켜들었다.

“결코 전쟁!”

히무라조차 당황할 정도로 열정적인 호응이 뒤따랐다.

“여러분…….”

이곳의 전원은 가수관리본부와의 투쟁으로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었다.

한 밥그릇을 가지고 싸워왔던 삶 때문에, 같은 회사 사람에게 분노를 품어왔던 이들.

파벌 정치의 희생자이자 가해자들이다.

“결코 다시 전쟁!”

박수갈채와 함성.

마치 사무라이들이 새 주인이 된 어린 다이묘를 향해 충성을 불태우는 모양새였다.

사무라이들은 잃어버린 영광을 회복하길 바란다. 히무라가 말했듯이, 잃어버린 황금시대의 재현을 바라는 것이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나, 언제까지 그래야만 하는가?

억눌러져 있던 마음이 히무라에게로 향했다.

그 속에서 히무라가 눈동자에 불꽃을 피워올렸다.

‘됐다.’

판이 짜였다.

이젠 실행할 일만이 남았다.

‘이사회 놈들, 나를 비웃었지?’

평범하게 가수관리본부로 들어가 로열 로드를 걸었으면 될 텐데, 괜히 헛바람이 들어 어려운 길로 갔다고.

그래서 온갖 치욕과 불명예 속에 웨벡스의 수장이 될 거라고 했었다.

직접적으로 그리 말하진 않았으나, 뒤에서 들리는 소문이 있다.

히무라는 자신이 뭐라고 불리는지 알았다.

‘사업가가 아니라 단순히 아이돌 빠돌이라고.’

자신이 겪은 치욕과 불명예는 진흙탕이었다. 그리고 히무라는 진창에서 핀 연꽃이 될 것이다.

‘내 성공을 증명하지 않고선, 절대 사장 자리에 오르지 않겠다.’

히무라는 본부장을 보았다.

본부장이 히무라와 같은 불꽃을 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히무라가 그들처럼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재계약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열성적인 지원과 지지를 바랍니다.”

또다시, 환호가 뒤따랐다.

* * *

가로 엔터 사장실.

홍규헌과 한구인이 초조하게 성필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필은 아침에 회의에 들어갔을 것이다.

지금 시각은 오후 3시가 넘었다. 아직도 연락이 오지 않는 것을 보면 회담이 꽤 길어진다는 건데…….

“내일로 넘어가겠지?”

홍규헌이 묻자 한구인이 긍정했다.

“오늘 바로 결정할 사안은 아닐 겁니다. 숫자 하나에 몇억이 오가는 제안이니 말입니다.”

“상대가 히무라 실장이었지? 사장 아들이라는.”

“그렇습니다.”

“세이코 그 인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세이코는 웨벡스의 간판스타다.

그녀는 작년에 낸 앨범 ‘페이디드 러브’를 200만 장 판매했다. 작년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었다.

그런 아티스트를 성필이 살렸다.

이는 웨벡스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지우는 데 꽤 유용하겠지만…….

“박 이사님 성격으론 그러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겠지…….”

여태껏 쌓았던 인간관계를 죄다 박살 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성필은 웨벡스와의 비즈니스 때문에 세이코를 살린 게 아니다. 계약도 뭣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 일을 비즈니스 현장에 가지고 가는 건 도의적으로 해선 안 된다.

웨벡스 쪽에서 사정을 봐줄지언정, 성필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선 안 된단 뜻이다.

‘뭣보다, 그 이야기를 세이코가 들으면 어떻게 될지 몰라.’

홍규헌이 세이코라면 세상이 다 무너지는 듯할 것이다. 성필이 세이코를 구할 때 했던 말이 있으니…….

“박 이사가 세이코랑 데이트했다지?”

“예, 아마 작년인가 그랬을 겁니다.”

“마음이 있을까?”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적어도 계속 관계를 이어 나갈 마음은 있겠지?”

“혹시 박 이사님이 인간관계를 전부 파탄 내고 어떻게든 계약을 유리하게 이끌길 바라시는 겁니까?”

“혹여나 어그러지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이미 마음을 거절한 상대잖아. 어떻게 되든 알 게 뭐야?”

“…….”

한구인은 홍규헌에게서 묘한 시니컬함을 느꼈다. 꼭 소녀연맹 멤버들처럼 세이코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만 같다.

그야 그녀를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가 간다만…….

“설령 저희가 바라는 계약을 맺게 되더라도, 히무라 실장님이 저희를 좋게 볼 리가 없습니다.”

“아님 세이코한테 빚 갚으라고 하면 안 돼? 히무라 실장한테 뭐라고 해서…….”

“그만하십시오.”

“응…….”

한구인은 짙은 한숨을 뱉었다.

“산책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까. 그래야겠다.”

홍규헌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빠한테 제지공장 팔지 말 걸 그랬어. 은근히 비는 시간이 있단 말야. 이럴 때 공장 쪽 일 신경 쓰면 딱 좋은데.”

“다른 사장님들이랑 친목이라도 다지시지 그러십니까. 골프나 테니스라던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거 딱 질색이야. 운동하고 싶으면 피트니스 센터를 가야지. 그리고 초대하는 인간들 다 중년 남자인데 가면 어떤 취급 받을지 뻔하지. 그 사람들도 불편해할걸.”

그때 한구인의 폰이 요란한 노래를 토해냈다. 소녀연맹의 ‘아니’였다.

한구인이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예, 박 이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예, 예,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홍규헌은 충혈될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한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보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행동이나 목소리로 감정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다. 지극히 비즈니스적인 어투로 성필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끝났다.

홍규헌이 황급히 물었다.

“뭐래? 내일로 미뤄졌대? 아니면 다음 주? 결판이 났어?”

“성공했답니다.”

“어, 어떤 조건으로?”

“프로모터, 91대 9. 매니지먼트 수익 비율은 저희가 맞춘 대로.”

홍규헌이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선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최근 이사들에게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던 듯하여, 사장의 위엄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된 겁니다, 사장님.”

“그래애…….”

단순히 소녀연맹이 일본에서 돈을 더 많이 벌게 됐기 때문에 기쁜 게 아니다.

가로 엔터가 날개를 달게 됐다.

내년, 늦어도 내후년, 가로 엔터가 상장 과정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매출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시장은 금광이다.

소녀연맹이 일본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다면, 가로 엔터의 평가 가치는 재계약 전의 예상보다 월등히 높아질 것이다.

“지원은?”

“현재 이상으로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합니다. 히무라 실장님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는군요.”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재계약 조건을 받아들일 순 없겠지. 해냈다아…….”

소녀연맹의 이익이 늘어나는 건 부차적일 수도 있다. 진짜 중요한 건 일본에서의 인기다.

엔터테인먼트사에 투자하려는 인간들이 일본 시장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소녀연맹이 일본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정점에 위치한다면, 가로 엔터의 공모가(公募價)와 시초가(始初價)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그건 곧 분위기다.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분위기를 탄다. 소녀연맹의 위상으로 비롯한 주가 상승, 그게 정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때 자사주를 매각하고…….

‘그토록 원하던 자금을 확보해서.’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의 시스템을 확립한다.

가로 엔터는 우효민, 웨이퍼센트, 카오틱 에너지로 프로듀싱 능력을 증명했다.

여기서 최소한의 반석을 마련한 것이다.

이제 가로 엔터가 최종 단계에 돌입했을 때 얼마나 거대해질지는, 오직 소녀연맹이 그려갈 미래에 달렸다.

“매니지먼트 부서에 전해. 소녀연맹의 목표는.”

일본에서 정점이 되는 것.

하지만.

“케이팝 아이돌 중 정점이 아니라, 일본의 모든 뮤지션을 통틀어 최고가 되는 거.”

일본 자체에서 가장 거대하고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할 수 있다. 웨벡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테니.

* * *

토모에 없는 토모에 공연 뒷풀이.

토모에의 매니저는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회사 동료가 물었다.

“토모에는?”

“몰라.”

“주인공은 늦게 등장한단 건가?”

“안 온대…….”

“뭐? 왜?!”

동료는 저 멀리 떨어진 테이블을 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들릴 리 없는데도, 동료는 매니저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사님들도 몇 오셨잖아. 근데 주인공이 없으면 어쩌려고!”

“모른다고 나도오…….”

매니저의 고충도 모르고, 공연 스태프들과 토모에를 맡은 부서의 직원들은 화기애애하게 떠드는 중이었다.

그 순간, 문에 달린 종이 청명한 소리를 내었다.

올 사람은 다 온 참이라 다들 토모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등장한 건 그녀가 아니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미사토 본부장이었다.

그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테이블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테이블 중에서도 상석인 이사들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미사토는 이사들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미사토 본부장. 왔나?”

미사토를 대하는 이사들의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당연한 게, 미사토는 임원직으로의 승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몇 년 전부터 그러했다.

미사토가 세이코를 돌본다는 명목으로 본부장으로의 승진을 미루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이사들의 테이블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게다가 웨벡스 최연소, 아니.

일본의 모든 대기업 중 최연소 여성 임원 기록을 세웠을 것이다.

“넵. 이거 빈 컵이죠?”

미사토가 잔을 하나 들자 그녀와 친했던 이사가 맥주를 부어주었다. 그녀는 감사히 술을 받은 후 시선을 가게의 중심으로 향했다.

즉, 이 가게 안의 모두를 바라보았다.

“토모에쨩은 오지 않아요.”

당황, 이어서 웅성거림이 퍼졌다.

“그래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아, 원래 오기로 했지만요. 토모에쨩 대신 제가 개회사를 할게요.”

미사토가 잔을 위로 들어 올렸다.

“음악계의 황금시대가 저문 지도 20년 가까이 됐습니다. 과거엔 흔히 보이던 앨범 100만 장 판매가 현재는 1년에 두세 개 찾기도 어려워졌죠. 100만 장, 상징적인 숫자였습니다. 꽤 인기가 있다는 증명이요. 요즘엔 그게 바뀌었죠? 1억 스트리밍. 토모에의 앨범이 각 플랫폼에서 1억 스트리밍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왁자지껄한 기쁨이 가게를 휩쓸었다.

누군가는 박수를 치고, 다른 누군가는 젓가락으로 잔을 두드렸으며, 또 누군가는 가게가 떠나갈 것처럼 함성을 내질렀다.

“뭐, 보통 1억 스트리밍이라고 하면 한 곡을 기준으로 하지만요. 모든 플랫폼 합쳐서 ‘사랑과 사람’이 1억 스트리밍을 넘었으니 대충 달성했다고 칠까요? 데뷔 앨범이니 그렇게 봐줍시다!”

웃음이 퍼져나갔다. 애초에 엄격하게 ‘그건 아닌데요’라고 말할 사람 따위 없었다.

“토모에가 데뷔했을 때 언론에 ‘제2의 가후’라고 홍보됐던 거 다들 기억하시죠? 제가 짜낸 어구지만 참…… 욕도 많이 먹고 그랬어요. 의욕이 앞섰던 걸까요?”

웃음이 싹 사라졌다.

지금 웃으면 비웃음이 되어버린다.

누구도 미사토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싶지 않았고, 날릴 수 없었다.

“그런데 그건 이목을 모으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토모에쨩을 제2의 세이코쨩으로 만들 생각이에요. 아니…….”

미사토가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맥주가 흘러넘쳐 바닥을 적셨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세이코쨩은 레거시 미디어의 시대를 장식했던 가후였어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뉴미디어가 레거시 미디어를 진짜 레거시(유산)로 만들어버릴 거예요! 토모에쨩은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가후가 될 겁니다!”

그렇다! 옳소! 맞다!

호응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토모에쨩을 정점으로! 최고의 뮤지션으로! 우리 가수관리본부가!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새로운 역사를!”

새로운 역사를!

“레이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할 최고의 뮤지션을 위하여, 건배!”

건배.

다들 잔을 입에 대고 벌컥거렸다. 술을 들이켜는 소리만이 들리는 몇 초간의 정적.

미사토는 그 속에서 다시금 속으로 다짐했다.

‘토모에쨩을 정점으로.’

토모에는 세이코의 뒤를 잇는 웨벡스 최고의 걸작이 될 거다.

‘내가, 웨벡스가 그렇게 만들 거다.’

* * *

토모에의 집은 여전했다.

사방의 벽에 요절한 뮤지션들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세심하게 관리하진 않았는지 포스터에는 희미한 먼지가 앉아 있었다.

그것들을, 토모에와 장하양이 뜯어내기 시작했다.

“찢어져도 괜찮아요.”

“응.”

장하양은 포스터들을 확확 뜯어냈다. 수십, 어쩌면 백 장이 넘을 포스터들이 중앙에 쌓였다.

하지만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장하양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도 보았던 소녀연맹의 것이었다.

“이건 안 떼?”

“네.”

토모에는 벽장을 열어 지관통을 여러 개 꺼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건 소녀연맹의 포스터들이었다. 앨범 구매 특전으로 주는 것들.

토모에는 테이프와 포스터를 장하양에게 나눠주었다.

“같이 붙여줄래요?”

“응.”

“이것만 끝내고 밥 먹어요.”

둘은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했다.

장하양이 먼저 끝냈다.

토모에는 요령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장하양보다 더 많은 양을 들었던 탓이다.

일을 끝낸 장하양이 토모에의 뒤에 섰다. 인기척을 느낀 토모에가 말했다.

“안 죽어요.”

장하양은 뒤를 보았다.

바닥에는 토모에가 그토록 선망했던 별들이 버린 신문지처럼 애처롭게 바닥에 쌓여 있다.

그 대신 벽을 장식한 건 소녀연맹이다.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했잖아.”

장하양이 다시 토모에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꽤 위에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까치발을 들고 끙끙대며 포스터 끝을 위로 밀어붙이는 중이었다.

장하양이 토모에의 허리를 양팔로 껴안았다. 그리고 그대로 토모에를 들어 올렸다.

토모에는 당황했지만, 곧바로 포스터를 능숙하게 붙이기 시작했다.

“넌 요절한 뮤지션을 동경했었어. 로버트 존슨도 그렇고. 이름을 남기겠단 게…… 그런 뜻이 아닌 거 맞지?”

“안 죽는다고 했잖아요.”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포스터를 다 붙였다.

장하양이 토모에를 내려주었다.

토모에는 자신이 붙인 마지막 포스터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저는 록을 하고 싶었어요. 음악에 끌린 것도 있지만, 역사와 이야기에 끌렸어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었어요. 도어즈의 짐 모리슨이, 섹스 피스톨즈의 글렌 매틀록이,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백만장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음반 시장에 저항하리라고 선언했던 저항의 아이콘들처럼.

“그렇게 이름을 남기고 싶었어요.”

장하양은 어느 말을 꾹 삼켰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고.

힙합조차 그러지 않는다. 그들은 저항한다곤 하지만, 결국 기존체제를 재생산하고 유지하는 데 일조할 뿐이다. 결국 돈 자랑으로 귀결되니.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자본은 세계를 가로지르는 가장 거대한 힘이다.

“알아요, 그런 세상은 지나갔죠.”

토모에가 장하양의 마음을 읽은 듯 그리 말했다. 그리고 장하양을 향해 돌아보았다.

토모에의 뒤로 소녀연맹의 포스터가 빛을 반사하여 매끈하게 번쩍였다.

“저항해야 할 체제는 없어요. 모든 게 체제 속에 편입됐죠. 그러면 이름을 남길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요.”

“……뭔데?”

“체제의 왕이 돼야 해요.”

토모에가 장하양을 응시했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완성품.”

인더스트리얼 베이비.

산업이 가장 인위적인 형태로 탄생시킨,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게 불가능한 존재.

댄스 퍼포머이자 노래하는 뮤지션이며, 팬의 높이까지 내려가는 걸 주저하지 않는 서비스직, 방송인인 동시에 공연 엔터테이너.

“저는 우상(아이도루, アイドル)을 넘어설 거예요. 소녀연맹은, 제게 우상의 표상이에요.”

토모에는 떨리는 손으로 폰을 내밀었다.

“사진 같이 찍어줄래요, 언니? SNS에 올릴 거예요.”

“전에 네가 거절하지 않았어?”

“오늘 드린 말씀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무슨 수를 쓰든 정상에 올라 이름을 남길 거예요. 소녀연맹과의 친분을 이용해 이목을 모으는 것도 주저하지 않아요. 소녀연맹을 꺾고 넘어서는 게 목표더라도요. 그래도, 저랑 같이 사진을 찍어주실래요?”

장하양은 폰을 꼭 쥔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처럼 떨리는 중이었다.

과거, 토모에가 말했었다.

소녀연맹의 장하양이 응원하고 싶은 스타라면, 밴드 ‘엑스’의 ‘히데’는 되고 싶은 우상이라고.

그리고 또 말했다.

그냥저냥 살다가 삶을 마감하는 건 최악.

전설이 돼서 빨리 죽는 게 최고다.

토모에에게 이른 죽음이란 저항 신화를 완성하는 열쇠였다. 삶에 대한 의지란 세계가 부여한 첫 번째 규칙이니까.

그런 그녀가, 지금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그래.”

장하양은 폰을 받고 그녀와 어깨동무했다. 토모에를 끌어당긴 모양새라, 둘은 바닥에 버려진 포스터들이 보이는 방향으로 섰다.

버려진 포스터 뭉치의 중앙엔 커트 코베인이 보였다. 토모에의 눈이 그곳에 박혀 있다.

“토모에.”

장하양의 부름에 토모에는 정면을 보았다.

카메라 안에는 장하양과 자신이 담겨 있다.

배경으로는 방금 붙인 소녀연맹의 포스터가 있다.

전설이 된 죽음들을 바닥으로 삼아.

반짝이며 타오르는 삶을 배경으로 삼아.

찰칵.

사진이 찍힌다.

“저는.”

토모에가 우상을 옆에 둔 채, 감격하여 떨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정상에 설 거예요.”

“우연이네.”

장하양이 토모에에게 폰을 넘겼다.

둘 사이로 저녁노을이 비쳐 들어왔다.

“‘우리’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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