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751화 (751/760)

751화

“저……!”

에리카를 지적하려던 윤희연은 세상만사 다 귀찮아졌는지 체념의 한숨을 푹 내뱉었다.

노려보는 성필 때문이었다. 에리카를 가만두는 게 대화하는 조건이라고 했던가.

‘에리카 쟤 왜 저러는 거야?’

윤희연이 내건 미끼에 걸려 이 자리에 오긴 했지만, 성필과 사무라이 걸즈에게 밉보이긴 싫다는 건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에리카는 세상에 둘도 없이 음흉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설득하도록 도와준다고 약속했잖아. 나랑 척지면서까지 사무라이 걸즈 쪽 인간들한테 평판을 잃기 싫은 거야? 이 뭔…….’

이 자리가 파하고 윤희연이 득달같이 달려들면 에리카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윤희연의 요구대로 자리에 나왔고, 윤희연에게 불리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투와 표정이 문제였다고 하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거짓말은 안 했잖아요?’

윤희연은 성필이 앞에 있는 것도 잊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원한을 사야 해?’

케이어스 아티스트십 프로젝트를 주류에서 밀어낸 건 KS 엔터를 위한 결정이었다.

물론 안다. 노사(勞使)관계는 원활할 수 없다. 노동자는 사용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수익이 안 나와서 사업부와 제조업소를 폐쇄한다고 하면, 노동자들은 본인의 생계를 빌미 삼아 시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반대로 노동자가 열악한 작업 환경과 재해 처리를 개선해달라고 해도 사용자들은 아예 무시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 에리카가 완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행동해?’

연예계 일이 힘든 이유는 사람 관리가 어려워서라더니, 진짜 그렇다.

인간의 감정은 숫자와 통계로 파악되기 힘들고, 그래서 훗날 예상치도 못한 장애물이 된다.

“네, 알겠어요.”

윤희연은 감았던 눈을 떴다.

아예 에리카를 시야에 담지 않았다.

“알겠으니까,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성필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윤희연은 굳게 다문 그의 입을 보자 한숨부터 나오려고 했다.

그냥 불러와도 그를 설득하기 힘들었을 텐데, 신이 내린 에리카의 연기 때문에 더 힘들어지게 생겼다.

“아시겠죠?”

성필은 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현재 그는 에리카의 연기력과 자신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조금은 들뜬 터라, 지금 목소리를 내면 거짓말을 들킬 것 같았다.

“먼저 제 제안을 다시 말씀드릴게요. 사무라이 걸즈는 KS 엔터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성필은 다시금 윤희연의 의지를 확인했다.

에리카와의 통화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그녀는 성필의 생각보다 훨씬 더 사무라이 걸즈에 진심인 듯했다.

KS 엔터의 자원을 이용하게 해주겠단 제안부터 그녀의 절실함을 드러냈다.

‘국내 최고의 인하우스 프로듀싱 시스템을 갖춘 회사가 KS 엔터야.’

사무라이에게 최고의 도공이 만든 카타나를 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성필은 기대감을 표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대신 관심 없지만 들어는 준다는 식으로 가볍게 물었다.

“정확히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요.”

“……제가 잘못 들었습니까? 본인을 지칭하신 거 같은데요.”

“저요, 저.”

윤희연은 자아도취적인 발언을 하고서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비주얼 디렉터. 케이어스의 보이는 모든 것을 발끝부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만들어낸 사람이 도와주는 거예요.”

“이야기를…… 제가 정리해보겠습니다.”

“하세요.”

“윤희연 이사님은 사무라이 걸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십니다. 맞죠?”

“예.”

“대신 에리카 씨가 정식으로 음원 발매하는 걸 허락해주시고, KS 엔터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손을 써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맞죠?”

“예.”

“그러니까, 윤희연 이사님이 사무라이 걸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조건인데 그 대가가 윤희연 이사님이 이 프로젝트에 들어오는 거라고요?”

“간단하게 표현하면, 그렇네요.”

장난하자는 거냐?

그런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필은 그리 말하지 않았고, 못했다. 윤희연의 저 자신감 넘치는 발언은 허언이 아니다.

윤희연은 엔터계에서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다.

엔터사 중 여자 임원이라곤 한 명도 없던 시절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대한민국 최고 기획사의 임원이 된 인물.

시대가 가하는 모든 억압과 편견을 이겨내고 압도적인 능력만으로 정상에 오른. 현재의 성필과도, 심지어 전생의 성필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걸물(傑物)인 것이다.

그녀의 분야에서는 톱을 지칭해도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

하지만.

“처음 제시하셨던 제안과 전혀 달라진 게 없잖습니까. 제가 그 제안을 거절했기에 윤 이사님이 저를 여기로 다시 부르신 거 아닙니까?”

“박 이사님이 걱정하시는 걸 해결해드릴게요. 제가 프로젝트를 쥐고 흔들 가능성이 어떻게든 있어요. 제 능력 때문이든, 아니면…….”

윤희연은 에리카를 힐끗 보았다.

“에리카를 조종해서든. 그런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고 이 자리에서 선언할게요. 사무라이 걸즈 프로젝트에서만큼은 10년 전의 저라고 보셔도 돼요.”

“그 말씀은…….”

“저, 그냥 A&R팀 직원처럼 일해도 된다구요.”

KS 엔터 총괄 프로듀서를 A&R팀 직원처럼 부려도 된다니.

유빈이 안다면 기겁하겠다.

안 그래도 가로 엔터 총괄 프로듀서를 A&R팀 직원처럼 써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아이 아닌가.

“어차피 제가 권한이 있었어도 비주얼 파트에만 관여할 생각이었고요. 정지음 작곡가와 강동현 작곡가, 또 무엇보다 윤상열 프로듀서도 있으니.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파트는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해요. 어때요?”

“…….”

성필은 무심코 고민에 빠져들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윤희연에게 고민하는 기색을 내보여선 안 된다.

‘내 역할에 집중해.’

성필은 지금 화가 났다. 에리카 때문에.

성필은 애초에 이 제안에 관심이 없다. 사무라이 걸즈 전원이 믹스테입 프로젝트를 바라니까.

그러니 성필은 흥미 없는 얼굴이어야만 한다.

그때 윤희연이 두 번째 공격을 가해왔다.

“어차피 그쪽에 비주얼 파트 관련해선 인물이 없잖아요?”

“없긴 왜 없습니까? 제가 윤 이사님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감독할 역량은 안 되지만, 업체와 협의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정도는 됩니다.”

“네, 박 이사님이 있긴 한데 어차피 부업이잖아요. 또 뭐 윤상열 프로듀서가 있긴 한데…… 그래도 제가 더 낫고요.”

“이직(移職) 면접 보러 오셨습니까?”

“메리트를 말씀드리는 거예요. 저를.”

윤희연이 자신의 가슴에 오른손을 살포시 얹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비주얼 디렉터를 마음껏 써먹을 수 있다구요. 게다가 이름값에 걸맞지 않게 겸손해서 감독권을 받지도 않겠대요.”

여기까지가 윤희연이 준비한 제안인 듯했다.

성필은 옆자리의 에리카를 보았다. 에리카는 상황을 초조하게 살피는 ‘척’하는 중이었다.

연기에 굉장히 몰입한 모양이다. 눈에선 불안과 걱정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녀와 눈이 맞았다.

에리카는 천천히 고개를 떨어뜨렸다. 성필의 상상 이상으로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에 심취해 있다.

‘아니지.’

성필은 에리카의 요구가 떠올랐다.

윤희연에게 굴욕을 주는 거라고 했던가.

‘다음으로 진행해야지.’

성필은 끙 신음을 흘리며 팔짱을 꼈다.

드디어 성필이 고민하는 티를 냈다. 윤희연은 먹이를 낚아채는 사자처럼 곧바로 튀어나왔다.

“믹스테입 프로젝트로 진행하고자 했던 이유가 그거잖아요. 자유가 제약받는 거. 제약하는 사람이 저였고요. 그게 없어졌어요. 이젠 거부할 이유가 없어요. 그렇죠?”

“그게 진짜일지는 모르죠.”

“저는 일에 관련해선 거짓말하지 않아요.”

“어떻게 믿습니까?”

“저기 에리카한테 물어보세요. 제가 에리카한테 거짓말한 적이 있는지요.”

성필은 에리카에게 눈으로 물었다.

그러자 에리카는 당혹스러움을 역력히 드러냈다. 연기가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 당황했다.

“없, 어요…….”

윤희연은 에리카를 궁지에 몰긴 했지만, 거짓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에리카는 그게 충격적인 듯했다.

왜냐하면, 성필과 에리카는 윤희연에게 거짓말하고 있으니까. 심지어 윤희연을 궁지에 몰고 굴욕을 주려고까지 한다.

도덕을 따지자면, 에리카 쪽이 윤희연보다 비도덕적이다. 최소한 윤희연의 행동 원리는 에리카를 엿먹이는 게 아니라 사업적인 판단에 있었으니까.

에리카는 그게 충격이었다.

“들으셨죠?”

윤희연은 에리카의 반응에 만족했다. 최소한 에리카가 판을 엎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계약서 형태로 남길만한 제안이 아니라서 보증은 안 되겠지만, 저라는 사람을 믿어주세요.”

성필은 팔짱을 낀 채 윤희연을 응시했다.

윤희연도 지지 않고 성필을 보았다.

성필이 팔짱을 탁 풀었다.

“좋습니다.”

에리카는 놀랐고 윤희연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조건이 더 있습니다.”

“아, 드디어.”

윤희연은 조건이 있다는 데도 기쁜 기색이었다. 그녀는 상대의 욕망이 드러나고서야 진짜 협상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성필은 드디어 욕망을 드러냈다.

“실은 프로모션이 문제입니다. 믹스테입이 원래 그렇지만요. 그런데 윤 이사님이 에리카 씨의 정식 활동을 승인해주시고 제시하신 조건을 모두 지켜주신다면, 그 걱정도 없어지겠죠.”

“생각이라도 있으신가요?”

“사무라이 걸즈 제작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걸 가로 엔터 채널에 올릴 생각입니다. 독점적으로요.”

윤희연의 얼굴이 구겨졌다.

성필은 그녀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식 프로젝트가 됐으니 가로 엔터에서도 자원을 투입할 생각입니다. 석세스 엔터에도 요청하겠지만, 윤상열 피디는 현재 사무라이 걸즈의 방향에서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유빈이 말하길, 윤상열은 카와이 베이스로 타이틀이 정해지자 거의 좌절했다고 한다. 이마를 감싸 쥐고 나중엔 아예 손으로 팍팍 때렸다고…….

“그냥 내놓은 자식 취급할 수도 있습니다. 그땐 가로 엔터만 이 프로젝트에 돈과 사람, 시간을 쓰는 꼴이 되겠죠. KS 엔터가 도와줬으면 합니다. 특기이기도 하잖아요.”

KS 엔터는 여러 개의 프로듀싱 부서를 가지고 있다.

멀티 프로듀싱 시스템은 총괄 프로듀서의 아래에서 병렬적으로 작동하며, 그럼으로써 생산성과 작품성을 극대화한다.

일 년에 총 40개가 넘는 앨범을 만들어낸다는 기적은, 그런 체계적인 시스템으로부터 생겨난다.

“가로 엔터보다는 여유가 있으실 테니…….”

“안 돼요.”

윤희연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그리 말했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전자와 후자, 두 개 모두요.”

“받아들일 수 없다……?”

성필은 제안이 거절당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마침내 에리카의 바람을 이뤄줄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성필이 인상을 썼다.

“윤 이사님은 부탁하는 입장이십니다.”

성필은 에리카에게 약속했다. 윤희연에게 비즈니스적인 굴욕을 주기로.

위에 제시한 조건 중 한 개만 수락받아도, 아니. 열화된 조건만 수락받아도 윤희연에겐 타격이 있을 것이다.

“저희는 하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에요.”

“부탁이요? 저는 거래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새로 내건 조건을 제외하고도 저울은 박 이사님 쪽으로 기울어 있어요.”

“단순히 제 이익이 너무 많아서? 아니죠, 윤 이사님이 먼젓번에 말씀하신 대로 이건 양사(兩社)에 이익인 일입니다. 그리고 윤 이사님이 부탁하는 입장이고, 저는 윤 이사님의 부탁을 수행하여 이뤄내야 하는 입장입니다.”

윤희연이 아는 대로라면, 성필은 이 협상을 끝낸 후 사무라이 걸즈를 설득해야 한다.

“수수료를 받아야 마땅하죠.”

“박 이사님.”

윤희연은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였다.

성필은 그녀가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자세를 낮추는 건가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선 아직 의지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대로 만족해주세요. 그 두 개는 제가 절대 들어드릴 수 없는 거예요.”

그녀는 부탁해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래만을 하고자 했다.

“이건 최후통첩에 가까워요. 그 두 조건은 절대 수락할 수 없어요. 대신 다른 걸 말씀해보…….”

“그만합시다.”

성필은 그리 말했다.

“이제 그냥, 그만합시다. 굳이 애들한테 밉보여가면서 원래 계획을 틀자고 설득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네요. 원래 내키지 않았는데 나온 거기도 하고요. 그만합시다, 네.”

성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협상을 뒤엎음으로써 최종적인 승리를 노리는 강수(強手)였다. 그러나 성필은 이게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윤 이사님은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어선 온갖 방법을 다 쓰셨어.’

에리카의 솔로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럼으로써 에리카를 이 자리에 불러냈다.

민폐인 것을 알면서도 억지인 명분을 붙여 성필과 재협상의 장을 만들었다.

또한 처음에 제시했던 프로듀싱의 감독권과 거부권도 포기했다. 사실상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이 사람은 협상과 승부에 능해.’

성필도 알고 있는 고전적인 협상법이다.

일부러 거절할 부탁을 하고, 뒤엔 그보다 쉬운 부탁을 하는 것이다.

윤희연은 ‘두 개 다 안 된다’고 해놓고선 ‘한 개만 된다’고 말을 바꿀 게 틀림없다. 아마 궁극적으로는 KS 엔터가 사무라이 걸즈를 지원하게 되겠지.

‘그럼으로써 내가 이기고, 에리카 씨의 바람이 이뤄진다.’

성필은 윤희연이 자신을 붙잡을 때까지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에리카 씨, 갑시다.”

“…….”

“에리카 씨?”

에리카는 계속 앉아 멍하니 앞만 보았다. 성필은 그녀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윤희연이 짙은 분노를 담아 성필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렬했다. 그녀는 씹어 뱉듯이 말했다.

“후임자는…… 필연적으로 전임자를 깎아내려야만 해요…….”

그녀가 감정적 동요로 흐트러진 호흡을 원상태로 되돌렸다.

“그래야 자신의 정당성이 입증되니까요. 우리나라 대통령들 하는 것부터 다 그랬죠. 1대부터 현재까지 전부 다 하나도 빠짐없이. 저도 그래요. 제가 정호환 이사님의 실수로 꼽은 게 뭔지 아세요? 소녀연맹과 가로 엔터에 과도하게 관대했던 거요. 엮일 필요도 없는, 인지도라곤 조금도 없는 아이돌들과 비정상적일 정도로 엮였어요. 그게 쌓여서 지금이 됐다. 지금, 케이어스가 소녀연맹에게 따라잡히기 직전이다…….”

에리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연기마저 잊고 윤희연에게 집중했다.

“세대의 정점을 만들어내는 게 KS 엔터의 숙명이고, 또한 의무예요. 그 의무가 이뤄지지 않게 만든 건 정호환 이사님의 과오다. 그렇게 말했는데, 이제 와서…… 제가 그딴 짓을 할 수 있을 거 같으세요?”

사무라이 걸즈 제작기를 가로 엔터에 독점적으로 게시하게 해? 에리카가 출연하게 될 영상을?

소녀연맹의 리카가 포함된 프로젝트를 후원해? KS 엔터의 자원을 쏟아부어서?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뻔하다.

KS 엔터 총괄직에 오르면 갑자기 세뇌되어서 가로 엔터를 도와주게 되는 걸까? 그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쉽게 말해, 어처구니없어할 거란 뜻이다.

윤희연의 비전과 정당성은 전부 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절대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주세요. 다른 조건을 거세요. 제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요.”

성필은 자신이 앉았던 의자의 등받이를 손으로 짚었다. 필연적으로 그의 상체가 윤희연을 향해 약간 기울였다.

높이로는 낮아졌지만, 그 각도는 마치 윤희연을 깔보는 것 같았다.

“윤 이사님, 사무라이 걸즈 하고 싶으시죠?”

“예.”

“그래서 저한테 부탁하시는 중이죠? 사무라이 걸즈 팀을 설득해서 윤 이사님이 들어가게 해달라고. 그런데, 제가 윤 이사님의 회사 내 정치적인 입장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완성했다.

에리카가 그토록 바라던 그림이 완성됐다.

그리고 예상대로, 윤희연의 얼굴이 굴욕을 잔뜩 담아 일그러졌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숨 막히는 침묵이었다.

이윽고 윤희연이 고개를 홱 들었다. 귀신처럼 일그러졌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상쾌한 미소만이 감돌았다.

“네, 그래요.”

성필이 짚은 등받이를 꽉 쥐었다. 승리의 표시로 주먹을 쥐는 대신으로.

‘이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