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9화
‘왜 노래를 돈 주고 사?’
학창 시절, 유빈이 친구에게 들은 말이었다.
애플 사(社)의 미디어 재생기기 안에 든 아이돌의 노래들을 자랑하니 돌아온 말.
그에 유빈은 이리 답했다.
‘좋아하니까.’
친구들은 유빈을 이상하게 보았다.
국민 대부분이 저작권 의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불법 광고로 도배된 사이트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보았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영상 콘텐츠마저 그러할진대 노래는 취급이 더욱 박했다.
음원 불법 다운로드를 옹호하는 어느 미국 뮤지션의 발언을 캡처하여, 소위 네티즌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던 시대였다.
‘좋아해서 샀어.’
유빈의 이런 발언은 바보 취급받기 딱 좋았다. 혹은 혼자만 깨끗한 척하는 위선자로 취급받거나.
앨범을 사는 건 더 그러했다.
쉽고 편하게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는데 왜 굳이 필요도 없는 앨범을 산단 말인가?
그에 유빈은 또 이렇게 답했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
이러한 유빈의 아이돌 사랑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X세대로 묶인 유빈의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서도 신세대처럼 살고 싶어 했다.
디지털카메라 같은 고가의 사치품이 경제력을 지닌 X세대들에게 불티나게 팔린 것도, 유빈의 아버지와 같은 이들이 많아서였다.
현재 한국 최대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된 디씨인사이드의 발원도 디지털카메라로부터 시작되었다.
본인이 최초로 디지털 시대를 경험한 신세대임을 어필하고픈 마음이, 그들에게 있었다.
디지털카메라가 그 도구였고, 이는 아이돌도 마찬가지였다.
‘유빈아, 이거 봐라.’
아이돌은 ‘신세대’가 좋아할 법한 것이었다.
삼촌팬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
30대·40대 남자들이 아이돌을 좋아하는 광범위한 현상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멋지지?’
아내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어코 아들을 아이돌의 콘서트장까지 끌고 갔었다.
그날 유빈은 엄청난 경험을 했다.
‘나를 보고 있어.’
아버지가 구한 좌석은 무대에서 아주 가까웠다.
그 덕분에 유빈은 아이돌을 매우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아이돌도 그러했다.
‘나를 보고 있어…….’
유빈은 그 그룹의 어느 멤버와 눈이 맞았다.
고작 몇 초에 불과했지만, 유빈에게는 그 시간이 몇 분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동차에 치이기 직전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끝났을 때, 유빈은 덕통사고를 당했다.
유빈은 고작 몇 초 동안 아이돌과 교감했다.
그녀가 예능에 나올 때마다 말했던 ‘팬 여러분 정말 사랑해요’란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그녀의 눈에는 사랑이 가득했으니까.
‘왜 노래를 돈 주고 사?’
이 질문에 유빈이 ‘사랑하니까’라고 답한 건 부끄러워할 게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받았기에 사랑한다.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아이돌은 유빈을 팬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해주었다.
아무런 위험성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너무나 달콤한 환상이다.
아니, 그건 환상 따위가 아닌 사실이다.
‘아빠, 아이돌은 어떻게 만나?’
‘콘서트에서 볼 수 있지.’
‘얘기하고 싶어.’
‘뭐어……?’
아빠는 크게 웃고는.
‘그럼 아이돌이라도 되어야겠는데?’
‘아이돌이 어떻게 돼…….’
유빈은 현실 감각이 뛰어난 아이다.
그의 주변엔 아이돌이 없다. 그러니 아이돌이란 건 매우 희귀한 것이며, 따라서 되기도 매우 힘들 것이었다.
당연히 아빠의 말도 농담이었다.
‘팬사인회를 가면 얘기할 수 있지.’
‘팬사인회는 어떻게 가는데?’
당시 아이돌에겐 변변찮은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다. 모두가 미숙했던 시대였으니.
미숙했던 시대이지만, 일찍이 아이돌 산업이 발달했던 일본에게서 배워온 게 있었다.
바로 팬사인회다.
앨범을 사면 응모권을 주고, 당첨되면 아이돌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앨범을 사면 돼.’
유빈은 기뻤다.
고작 몇천 원으로 아이돌과 만날 수 있다니.
‘앨범을 아주 많이 사면 돼.’
유빈은 슬펐다.
한 달 용돈이 만 원 남짓인데, 아이돌을 보려면 몇만 원 혹은 몇십만 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유빈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친구들과 PC방도 가지 않고 군것질도 하지 않고 돈을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 정도면 팬사인회에 반드시 당첨된다’고 확신할 돈이 모였다.
이젠 그 그룹이 컴백하길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당첨됐어!’
유빈이 똑같은 앨범을 수십 장 구매한 것을 보고 엄마는 허파가 뒤집혀 길길이 화냈다.
아빠도 그땐 조금 당혹스러워했으나, 일단 축하해주긴 했다.
그날 엄마와 아빠는 각방을 썼다.
유빈은 마음이 약간 불편하긴 했으나 행복이 더 컸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날이 왔다.
‘만날 수 있어.’
얼굴을 마주하고 말할 것이다.
앨범이랑 곡 전부 다 샀어요. 잡지 화보는 전부 스크랩해두고 있어요. 출연하는 방송은 꼭 본방사수해요. 끝까지 응원할게요.
그리고, 그녀에게 직접 말했다.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이게 답이었다.
그토록 만나길 바랐던 아이돌에게서 돌아온 답.
그녀의 눈가엔 사무적인 웃음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눈동자 안에 띤 색은 너무나 칙칙했다.
유빈이 몇 주간 고민하고 고심했던 말은, 그녀에게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콘서트에서 눈을 마주쳤던 그때는 순간에 불과했으나 영겁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은 그보다 훨씬 길었으나 순간으로 느껴졌다.
가장 기뻤던 건 그녀의 앞에 앉았을 때였다. 이후로는 그녀가 내뿜는 피로한 기색과 단답에 쩔쩔매다가 일어났다.
‘그래, 피곤하겠지.’
몇 시간이나 앉아서 사람과 마주하는 일이다.
‘응원의 말은 지겹겠지.’
수천 번은 들었을 것이다.
처음엔 기뻤을 테지만, 그게 반복되면 감흥이 사라질 수밖에 없을 터다.
더는 감정이 생기지 않아 무미건조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
‘나는 수만 명 중의 한 명일 뿐이니까…….’
인간의 마음은 하나.
그 하나를 수만 갈래로 찢는다면 형체도 남지 않는다.
유빈은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며칠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다. 방에 틀어박혀 우울함에 빠져 지냈다.
그때 유빈은 깨달았다.
‘만인의 연인’이란 호칭은 그녀가 모두에게 사랑을 주기 때문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사랑받기에 얻는 호칭이다.
마침내 방에서 나왔을 때 유빈은 더 이상 그녀의 팬이 아니었다. 그녀를 사랑하기를 관두었다.
그는 아이돌까지 사랑하지 않게 됐을까?
아니었다.
그는 아이돌이 되기로 결심했다.
* * *
목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노래가 부드럽게 새어 나온다.
여태껏 없던 컨디션으로 몸이 움직이며 춤을 이뤄낸다.
숨이 전혀 차지 않는다.
유빈은 모두 아는 문제가 나온 수능 응시생이자, 게임에서 승리 조건 이상의 오버킬을 달성한 플레이어이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골을 여러 번 터뜨린 축구 선수였다.
하지만 희열은 없었다.
‘저분과는 눈을 맞췄던가.’
그의 모든 신경은 눈앞의 관객들에게만 쏠려 있었다.
‘저쪽으로 몸을 돌렸던가.’
그의 모든 정신은 관객 한 명 한 명을 머릿속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나를 보고 있을까.’
당신들에게 내 사랑이 전해질까.
유빈은 이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다. 팬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다. 행복하기 위해 자신을 선택해준 이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려, 아이돌이 되었다.
어릴 적의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 팬이 결코 없도록.
‘과대망상.’
성필은 아이돌의 믿음을 그리 표현했었다.
수십만 명에게 사랑받으리라 의심하지 않는 과대망상이 있어야만 아이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유빈은 그와는 다른 의미의 과대망상증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를 기쁨에 겨워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받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전해주고팠다.
‘알아.’
그게 불가능한 일이란 것쯤은 안다. 사랑은 주는 것보다 받아들이는 게 더욱 중요하다.
100을 주어도 상대가 느끼는 건 1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1을 10으로, 50으로, 1,000으로 만드는 게 유빈의 사명이다.
곡이 라스트 하이라이트에 들어섰다.
유빈은 시선을 객석의 가장 끝으로 주었다.
‘웨이퍼센트를, 우리를.’
나를.
‘너무너무 보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뒷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던 나의 팬.’
키가 작아 자꾸만 까치발을 드는 그녀.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요.
팬사인회에 왔던 걸 기억해요.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99명에게 모두 미소를 전했고 눈을 맞추었지만, 당신은 아직이에요.
‘마지막까지 아껴뒀어요.’
잊지 못할 하루가 되도록, 마지막의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새겨줄 수 있도록.
이 하루는 언젠가 기억에서 잊히겠지.
어느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과일과 같아서, 처음엔 보기 좋고 향기로우나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웠던 형체와 향을 잃어버린다.
다른 아이돌을 좋아하게 될 수도 있고.
덕질의 대상은 배우나 가수로 바뀔 수도 있고.
혹은 애정의 차원을 바꾸어 자신을 사랑해줄 평생의 반려를 만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오늘 하루가.’
언젠가 먼지 덮인 책장을 뒤져 찾아낸 이 하루의 기억이, 끝내 과거가 될 오늘의 기쁨을 조금이라도 전해줄 수 있다면 만족한다.
유사 연애적인 감정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녀가 품은 사랑은 이 순간만이라도 진짜이길 바란다.
사랑은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드니까.
어릴 적의 유빈이 품었던 일방적인 사랑처럼.
그걸 위해 유빈은 이상적인 애인이 되고자 한다. 우상으로 군림하는 게 아닌 만인의 연인으로서 모두의 곁으로 다가가는 아이돌이 되려 했다.
그게 나의.
‘아이돌리즘.’
객석 끝의 팬이 까치발을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빼꼼 나타났다.
유빈은 그녀를 향해 검지를 뻗었다.
그리고 노래했다.
“해가 뜬 건가.”
그녀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이윽고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도 어릴 적의 유빈이 느꼈던 계시와 같은 사랑을 느꼈으리라.
“아니면.”
유빈은 만족스럽게 미소를 띠었다.
“네가 웃은 걸까.”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꽃가루가 터졌다.
하트가 잔뜩 뜬 스크린을 배경으로 분홍 꽃가루가 눈처럼 내렸다.
* * *
한 장의 사진이 트잇터에서 유명해졌던 적이 있다.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서, 눈이 돌아가도록 아름다운 남자가 미소를 짓는 움짤이었다.
고작 1초의 미소는 뭇여성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분홍 머리 얘 누군지 아는 사람?]
정체는 곧 밝혀졌다.
웨이퍼센트라는 무명 그룹의 멤버였다.
사람들이 답했다.
[웨이퍼센트의 유빈.]
흔히 인생샷이라고 불리우는 움짤은, 딱히 유빈을 덕질하지 않는 이들의 하드에도 저장됐다.
허나 그의 이름은 금방 잊혔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움짤만은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움짤이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웨이퍼센트 분홍 머리 걔.]
혜정도 그 움짤로 웨이퍼센트의 팬이 됐다.
그리고 그때의 움짤이 눈앞에서 재현됐다. 심지어 웨이퍼센트 분홍 머리 걔는 혜정 본인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혜정 근처에 있는 이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전부 다 유빈이 자신을 가리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혜정도 그리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근처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을 가리켰노라고, 확신했다.
“아, 아아…….”
혜정이 눈물을 터뜨렸다.
황홀함이 핏줄을 타고 전신을 질주했다.
이 감정을 영원히 기록하고 싶다.
시인, 그래, 이 장소에 자신 말고 시인이 있어야 했다. SF 영화의 어느 인물은 우주를 보고 그리 말했지만, 혜정은 유빈을 보고 그리 생각했다.
시인이 당장 달려와 유빈의 저 아름다움을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언어로 기록해야만 한다.
“아…….”
아.
아이돌을, 좋아하는 건, 끝나고 보면 허망하다.
상대는 하늘처럼 항상 존재하며 언제든지 그게 실제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에게 자신은 금방 흩어져버리는 구름보다 더욱 덧없다.
그걸 떠올리면 현실이 다 의미 없이 느껴지고 심각하면 탈덕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감히 누가 이 순간의 황홀함마저 부정할 수 있을까. 이 순간 혜정이 느끼는 더없는 행복을, 감히 누가 부정할까…….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런 순간이 있기에 유빈을 계속 덕질해 왔다.
그를 덕질하다 보면 진실로 사랑받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기에.
아니, 그는 진실로 팬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러분!]
사전 녹화 무대가 끝나고 유빈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니.]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한 명 한 명 다 저의 소중한 팬이죠. 여러분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고 싶지 않아요. 너라고 부를게요. 너!]
유빈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진짜, 계속 좋아해줘서 고맙다! 사랑한다 야!]
기쁨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 * *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4’ 사전 사전미팅.
사전 사전미팅인 이유는 본래 예정된 사전미팅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성필이 돌발적으로 이번 메인 프로듀서가 될 리카를 불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가로 엔터 1층 현관 앞.
리카는 성필의 맞은편 테라스에 앉자마자 음흉하게 웃었다.
“일 핑계를 대고 아타시(저)를 불러서 술을 마시다니, 속내가 너무 보여요! 음흉해요!”
그녀의 말대로 테이블 위엔 맥주캔이 네 개 올라와 있었다.
“리카, 우리 친구 맞지?”
“뭔가요!”
리카가 양팔로 가슴을 감싸며 몸을 홱 돌렸다.
“친구란 걸 빌미로 뭘 부탁할 셈인가요!”
“하소연 좀 하고 싶어서 그래.”
“음, 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싶다는 뜻인가요! 좋아요, 몇 번 정도는 봐드릴게요!”
“너한테도 좋은 말일 수 있어. 곧 프로듀서가 될 거잖아. 진짜 프로듀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기회야.”
“그거 아시나요? 똑똑한 사람들이 멍청한 결정을 더 잘 내린대요! 멍청한 결정을 합리화하기 쉬워서 그렇대요! 온갖 빌미를 붙여봤자 저를 일 이야기로 꾀어내 같이 술 마신단 사실은 바뀌지 않……!”
성필이 테이블에 올라온 캔을 검은 종이봉투에 쓸어 넣었다.
“에.”
“혜빈이 누나한테 가야겠다. 온갖 부끄러운 말을 해서 놀림당하겠지만, 네 말이 옳아. 친구라는 허울 좋은 베일을 씌워놓았을 뿐, 넌 결국 비즈니스 관계인 회사 아이돌이니까…….”
리카가 성필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농담이었어요!”
성필은 다시 앉아 맥주캔을 쭉 깔았다.
그러곤 하나를 따서 순식간에 절반을 마셨다.
리카가 캔으로 손을 가져가자 성필이 쳐냈다.
“나만 마실 거야.”
“네 캔이나요?!”
“너희가 대견해.”
리카의 놀란 표정이 순식간에 영문을 모르겠단 듯 의문을 표했다.
“정말 대단해. 몇 번이나 말했지만 정말 대단해.”
“가, 갑자기 뭔가요! 술을 마시면서 할 이야기란 게 칭찬인가요! 칭찬 정도는 취하지 않고도 할 수 있잖아요! 마아(뭐어).”
리카가 헤실헤실 웃었다.
“칭찬은 달게 듣지만요! 아! 유빈 선배님이 컴백 무대 클로징 멘트로 한 것처럼 해주세요! ‘너희’로 뭉뚱그리지 말고 저만 칭찬해주세요! 그럼 더 기쁠 거 같아요!”
“대단해 리카, 최고의 아이돌이야.”
“에리카보다도요?”
“그 답은 3년 9개월 전에 이미 했잖아. 네가 에리카보다 귀엽고 예쁘고…… 또 뭐였더라?”
“사랑스러워요!”
“그래, 사랑스럽다. 그랬었지. 그래, 대단해.”
리카는 성필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었다.
성필은 또 맥주를 벌컥였다. 한 캔을 비우고 다음 캔으로 들어갔다.
“사실 너희가 너무 대단해서 무서워.”
“에……?”
“원히트원더는 뮤지션에게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야. 프로듀서도 그래. 많은 프로듀서들이 그룹 하나를 성공시키고 소리소문없이 스러져갔어.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사님은…….”
“내가 정신 나간 확률을 뚫은 극소수일 거라곤 믿지 않았어. 처음부터 그랬어.”
“…….”
“내 능력이 초심자의 운이거나 일생에 단 한 번만 일어날 기적일 뿐인 게 아닐까…….”
그래서 두려웠다.
“만약 운일 뿐이어서, 이 성공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뭐가 될까. 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할 때마다 미칠 거 같았어.”
그럴 때면 홀로 집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맨정신으로 버티기가 힘들어 강제로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 미래가 다가올 때가 되니 더 심해졌고.”
“……웨이퍼센트 선배님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나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선망 어린 눈빛이 참기 힘들어. 만약 실패했을 때 그게 사라질 거란 걸 알면 더 그래.”
성필은 거품 같은 인기를 영원할 거라 자신하고 오만해지는 연예인들을 많이 보아왔다.
거품이 꺼지면, 그들은 하나같이 견디지 못한다. 과거와 달리 추락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기 느껴져서 쉽게 우울해진다.
그런 오만이 없는 이들도 문제다.
인기는 거품 같은 거란 것을 알아도 우울하다. 거품이니, 품에 많이 안았다고 좋아할 수 없다.
성필의 심정도 그러했다.
“너희를 프로듀싱할 때는 나도 못 믿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 너희가 실패하는 걸 상상도 할 수 없어. 그런데, 두 번째는 아니더라. 웨이퍼센트는 아니었어. 절박한 애들을 끌어모았고, 걔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성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까지 너희를 프로듀싱했던 게 운 좋게 전부 아다리가 맞았을 뿐이면 어떡하지. 내가 웨이퍼센트의 것으로 택한 곡이, 의상이, 안무가, 뮤직비디오와 프로모션이 전부 잘못된 거라면? 가장 끔찍한 상상은,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프로듀서로서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대중과 괴리되어 있다면, 더는 아이돌 프로듀서로서 살아갈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괴로워.”
“……박 이사님.”
“어.”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해주시는 이유는, 제가 친구라서죠?”
“……응.”
다른 이들에겐 말할 수 없다.
홍규헌에게? 그녀는 성필을 총괄 프로듀서로서 의지하며, 그 성공을 의심하지 않는다.
한구인에게? 그 또한 홍규헌과 같다.
손혜빈은? 그는 프로듀서로서 첫 발자국을 떼는 중이며, 성필의 디렉팅에 크게 의지한다.
석세스 엔터에서부터 성필을 잘 따르던 민경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정지음은 아예 성필을 신처럼 생각한다.
그 누구에게도, 성필은 이런 고민을 말할 수 없었다. 성필이 불안해하는 인간이란 것을 알면 실망할 것이다.
아니, 그들도 성필과 같은 불안을 가질 게 분명하다. 성필은 그들에게 불안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고민을 영원토록 가슴 속에 둘 순 없다. 그러면 고민이 썩어 고통이 된다.
“이 말을 들어도 나를 다르게 보지 않을 사람을 떠올리니까, 너뿐이더라.”
리카의 입꼬리가 비식비식 올라갔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랬어. 너만은 내 치부를 보길 주저하지 않았어. 오히려 어떻게든 내 치부를 들추려고 했었지. 네가 놀리려던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네 앞에서 존엄을 잃어가는 게 은근한 쾌감을 주기도 했어…….”
“에엑…….”
“너와 일본어로 시답잖은 상황극을 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고, 서로 욕하고 싸우고…….”
“욕하진 않았는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일본에 남겠다고 고집부리던 너를 공항에서 붙잡으니까 너는 나한테 붙잡혀줬어. 울면서 흐느끼는 나를 보고, 이젠 다 괜찮다며 웃어주고…….”
기쁨을 들키지 않으려 입꼬리를 붙잡던 리카는, 그 말에 무장 해제되어 헤헤 실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너는 이 세상에서 내 속을 가장 잘 아는…….”
성필의 말이 흐려졌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어. ‘이 세상’에서 내 속을 가장 잘 아는…….”
“무슨 평행 세계엔 아내라도 있는 건가요! 이상한 데서 말이 끊겼어요!”
“그런, 친구일 거야.”
“‘일 거야’라구요?”
“친구야.”
리카는 잘했단 듯 성필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가 손목을 잡혀 끼에에엑! 비명을 내질렀다.
리카는 삐친 티를 내며 손목을 쓰다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름이는요……?”
“아름이야말로 내가 가장 강하게 보여야 할 사람이지. 알잖아, 아빠는 슈퍼맨인 거.”
“우와…….”
“왜?”
“이에(아뇨), 이사님이 본인 입으로 ‘아빠’라고 부르는 걸 들으니까 소름 돋네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
곧 리카는 그 질문이 실례임을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언젠가……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이도 나에게서 졸업하는 날이 올 거야. 모든 딸이 그러하듯이…….”
“아름이랑 만나신 지 거의 10년이시죠? 곧 사춘기예요!”
“그래서,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고백?!”
“나를 환멸하니?”
“최근에 여성향 로맨스 소설이라도 읽으신 건가요!”
환멸은 여성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출처는 리카의 경험이었다.
“환멸이랄까…… 누군가에게 의지받는단 건 기분이 좋네요!”
“그래, 일본 최고 미소녀인 너는 쓰레기 같은 나와 스스로를 비교하며 자존감을 채우겠지…….”
리카는 어느새 맥주 캔이 세 개나 빈 것을 깨달았다.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4 사전 사전미팅이 시작된 지 10분밖에 안 지났는데?
“이사님.”
“쓰레기 박성필 이사입니다.”
“알고 있었어요.”
“어?”
“보면 안다구요! 박 이사님이 어떤 고충을 가지고 있으신지 훤히 꿰고 있어요! 웨이퍼센트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초조함이 눈에 비치는걸요!”
성필은 자신의 눈가를 검지로 매만졌다.
“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보였을까?”
“아뇨!”
리카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만만히 선언했다.
“아타시(저)한테만 보여요! 저는 박 이사님이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걸요! 그리고, 박 이사님에게 약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는 일 따위는 없어요! 실망할 건 박 이사님을 만나고 한 달 만에 전부 다 했으니까요! 남은 건 더욱더 좋아할 일뿐이에요!”
성필은 취기로 풀린 얼굴로 한동안 리카를 응시했다. 리카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하고 있었으나, 성필의 응시가 이어지자 부끄러운지 입술을 내밀었다.
“뭐,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세요!”
“아직도 안 믿겨……. 내가 일본 최고 미소녀와 친구라니…….”
“기쁜 게 저의 한량없는 마음이 아니라 얼굴 때문인가요! 마아, 피장파장이네요! 사실 저도 박 이사님의 얼굴 때문에 친구가 됐어요!”
성필이 오늘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리카도 같이 웃었다.
“그럼 뭐 한 이사님이랑은 베프냐?”
“갑자기 질투?! 그렇게 따지면 박 이사님은 하양 언니랑은 짱친인가요!”
웃음이 둘 사이를 기분 좋게 오갔다.
“이사님, 이 말씀을 돌려드릴 때가 왔네요!”
“어떤 거?”
“이사님인 그대로도 괜찮아요!”
“음?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성필이 겸연쩍은 투로 답했다.
리카는 일기장에 성필이 한 말 중 인상 깊었던 것을 적어두고, 자신감이 없어질 때마다 다시 읽는다고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건 조아라가 막 가로 엔터에 들어왔을 때쯤이니, 지금으로부터 4년도 더 전이다.
그걸 떠올리자, 성필은 자신이 리카의 말을 이해 못 하는 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리카는 성필을 탓하지 않았다. 배시시 웃고는 ‘이걸 들으면 기억할걸?’이라고 말하듯 이야기를 이었다.
“박 이사님이 정호환 이사님보다 더 대단해요!”
“응?”
“박 이사님은 소녀연맹 제6의 멤버예요! 소녀연맹의 중심이자 가로 엔터의 중심이에요! 그리고 KS 엔터도 발견하지 못한 아타시(저)의 장점을 보고 데려오셨어요!”
리카가 눈에 모래가 들어간 사람처럼 바들바들 윙크했다.
“오케이?”
“음,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이래도 기억 못 하나요! ‘아라베스크’ 작업 때 숙소로 병문안 오셔서 하신 말씀의 변주예요!”
“변주라니, 뮤지션다운 단어네.”
“거기에 감탄하지 마세요!”
“부끄러워서 그래.”
“에?”
“칭찬받으니까 부끄러워.”
성필이 수줍게 웃자 리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처럼 굳었다.
“손나(그런)……. 수줍어하는 이사님은 SSR인데…… 심지어 취해서 수줍어하는 이사님이라니…….”
“이제 나 한 이사님 정도 베프야?”
“무슨 소리인가요!”
“그래, 얼굴 보고 친구 급수 정하는 리카야. 내 주제, 대충 알겠다.”
“저희는 실버타운 메이트잖아요!”
“음, 그게 뭐지?”
“부끄러우신 거죠?”
성필이 또 웃었다.
“응. 그, 오늘은 내 할 말만 해서 미안…….”
리카가 성필의 입술을 검지로 막으려 손을 뻗으려다가 성필에게 손목이 잡혀 비명을 내질렀다.
“내 할 말만 해서 미안해.”
“부, 부끄러움을 표시하는 방식이 과격, 과, 아파요옷!”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리카는 손목을 쓸면서 말했다.
“언제든지 해주세요! 그럼, 질문 하나 해도 되나요?”
“뭐든지.”
“박 이사님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웨이퍼센트 선배님들의 컴백이 끝났잖아요. 감상은? 과거의 이사님이 두려워했던 미래가 현재로 왔어요. 후회나 아쉬움이 있나요?”
성필은 의자에 등을 묻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하나도 없었지만, 달이 선명했다.
“없어.”
“그럼 됐네요!”
“그러고 보니, 최근엔 후회가 없었어.”
“충실한 삶이네요!”
“웨이퍼센트를 프로듀싱하면서는 단 한 번도…….”
성필이 눈을 감았다.
“후련하네. 고마워, 리카.”
“한 캔 남은 거 제가 마셔도 되나요!”
“곧 미주 투어잖아. 절대 안 돼.”
“즈루이(치사해)…….”
“겸허하게 받아들일까.”
어떤 결과가 나오든 오늘의 후련함을 잊지 말자. 성필이 소녀연맹에게 자주 했던 말대로.
“나는 최선을 다했어.”
그러니 후회는 남기지 않겠다.
“혹시라도 속상한 미래가 찾아오면 언제든지 제 넓은 가슴에 안겨서 우셔도 괜찮아요!”
“음…….”
“어디가 걸리는 건가요. 속상한 미래? 넓은 가슴? 안기다?”
“셋 다.”
“시네에(죽어엇)!”
* * *
윤희연은 마우스 휠을 죽죽 내렸다.
모니터 화면이 빠르게 내려가길 반복했다.
윤희연은 의자에 기대어 상체를 앞뒤로 움직이길 반복했다. 끼익 끼익 의자가 고통을 호소했다.
이윽고 윤희연은 ‘음’ 이유 모를 신음을 흘리다가, 딱히 이유 없이 머리를 긁적였다.
‘만약 신이 이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내기하라고 한다면, 나도 실패한다에 걸 거야.’
문규완이 그렇게 말했던가.
윤희연은 풋 짧게 웃었다.
‘나랑 회장님, 같이 손잡고 죽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