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81화 (681/760)

681화

가로 엔터 사장실.

액자 설치가 끝났다.

한구인은 사다리에서 내려와 홍규헌의 곁에 섰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액자에 담긴 사진을 감상했다.

타임스 스퀘어 중앙에 걸린 ‘송 포 피플’의 광고판이다. 고층 빌딩이 사방을 메운 가운데 중앙에 서 있는 장하양의 모습은, 마치 전투 끝에 언덕 위에 세운 깃발 같았다.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심장부에 소녀연맹의 깃발이 꽂힌 것이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아.”

“그렇습니다.”

비록 가로 엔터가 돈 주고 한 게 아니긴 하지만, 상징적인 풍경이란 데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박 이사는 어때?”

홍규헌은 여전히 시선을 사진에 두며 물었다.

“가보로 물려주고 싶은 사진이에요.”

“그게 아니라, 이 성과를 만들어낸 프로듀서의 심정이 어떠냐고.”

‘송 포 피플’은 소녀연맹 역사상 최대 제작비가 들어갔다. 그리고 최대 제작비를 들인 만큼 최대 수익을 거두었다.

앨범 손익 분기점은 일주일 만에 진즉 돌파했으니, 팔리는 대로 돈이 들어오는 경지에 들어섰다.

그뿐인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홍보된 ‘송 포 피플’은 지속적인 음원 수익을 발생시킬 것이다. 그 인지도에 힘입어 인민이들이 늘어나고, 그와 비례하여 굿즈도 날개 돋친 듯 팔리겠지.

수익의 연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실, 콘서트도 하게 될 것이다. 이번엔 진정으로 월드 투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콘서트가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최고의 아이돌 아니야?”

홍규헌의 물음에 성필은 웃음을 돌려주었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모르겠다니?”

“고작 첫발을 내디뎠을 뿐인걸요.”

고작 첫발을 내디뎠다.

홍규헌은 그게 어떤 뜻인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

한구인이 운을 뗐다.

“개척자로선 첫발을 뗐다, 그런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개척자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면 박 이사님이 기분이 나쁘실 수도 있지만, 여태껏 소녀연맹이 걸어왔던 길은 케이어스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진짜 기분 나쁘겠네.”

“아녜요, 한 이사님 말씀이 맞아요.”

성필이 선선히 인정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경로를 정해야 할 때가 오잖아요. 그 경로는 누군가 걸어봤단 점에서 확률의 영역이에요. 스스로 정한 길에 이탈하지 않도록, 그렇게 성공의 확률을 쌓아가다 보면 길의 끝에 도착하게 되죠.”

뒤따라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길은 확률이자 가능성의 영역이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이 길을 만들어낸 개척자의 경로를 되짚고 연구해가며, 자신이 똑바로 걸어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소녀연맹이 걸어왔던 길은, 케이어스를 따라갔던 길인 거죠.”

그래서일 것이다.

소녀연맹이 ‘케이어스를 이긴다’는 것을 그토록 강렬하게 바라왔던 건 말이다.

소녀연맹이 나아가는 길은 전부 케이어스가 먼저 해본 것이었고, 먼저 밟아본 곳이었고, 먼저 보아온 풍경이었다.

그러니 케이어스를 이기는 건 곧, 소녀연맹이 나아가는 길의 끝에 다다름을 뜻한다.

승리다.

“그런데.”

그게 최종적인 승리는 아니다.

케이어스와 같은 선상에 서서, 아니.

과장을 보태서, 케이어스를 앞질러 본 풍경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 앞으로는 길이 없어요. 허허벌판밖에 없어서, 이대로 나아가야 하는지 꺾어야 하는지 돌아가야 하는지도 몰라요.”

이 앞에 정말 존재하는 건가?

“최고의 아이돌이란 이름이, 정말 저희가 가는 경로에 존재하는가 질문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성필의 목소리엔 일종의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살면서 개척자를 동경하기만 했다. 그들이 닦아놓은 길을 더듬어 나아가며, 그 만듦새에 감탄했다.

그런데 이젠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개척자의 마음을 생각해봐야 할 때다. 과연 그들은 빛 한 점 없는 공허를 어떻게 나아갔던 것일까. 무엇을 보고 방향을 잡았을까.

어떤 마음으로, 어느 정도로 커다란 공포와 맞서가며 다리를 움직였던 것일까.

“우리가 가는 경로라니, 철학적이네. 예를 들면?”

“소녀연맹이 한국어를 포기하면 어떨까요. 아예 미국에서만 활동하면서 영어로 노래를 부르면요. 그렇게 빌보드 핫 100 차트에 계속 진입하고, 아예 미국 아티스트가 되면요?”

한국에선 연일 ‘국뽕연맹’이라 찬양하고, 국위선양이라며 정치인들이 소녀연맹의 이름을 주워섬기겠지만.

그게 케이팝 아이돌로서 최고일까.

“아님 일본은요? 아예 일본에 최적화된 아이돌로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으고, 다키스트보다 더한 수익을 올리면요? 1년에 100만 명, 200만 명씩 끌어모아서 역사상 최대 콘서트 수익을 올리면, 그래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아이돌이 되는 건요?”

톱 아티스트는 보통 수익을 지표로 내민다. 돈을 많이 번단 건 팬이 많단 뜻이고, 팬이 많으니 인기가 많다.

소녀연맹이 일본에 붙박여 걸그룹 역사상 최고의 콘서트 수익을 올리고, 그 인지도를 이용해 해외에서도 투어를 돌고.

그렇게 최대 수익을 달성하면, 그게 아이돌로서 최고가 되는 것일까.

“아님 지금처럼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 일본에도 갔다가, 미국에도 갔다가, 여러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어느 시점에 최고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걸까요?”

과연 그 시점이 어디일까?

그래미? 미국의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면 최고라고 불릴 수 있을까?

일본 레코드 대상?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가 되면 최고가 되나?

한국에서 대상을 전부 싹쓸이하는 건?

그렇게 상을 많이 받으면…….

“아까 예시로 들었던 두 경우보다 더 뛰어난 아이돌일까요. 이 세 가지 중, 뚜렷하게 ‘이게 최고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홍규헌과 한구인은 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답이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는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니까.

칼로 자른 듯 결판이 나진 않는다.

“그러면 박 이사님이 그리는 최고의 아이돌은 존재할 수 없는 겁니까? 꿈을 이뤘다고 아는 건 먼 미래가 될 수밖에 없을까요?”

한구인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성필은 몇 초 고민하다가, 간단히 답했다.

“제가 내린 답은, 최고의 아이돌은 ‘어느 순간 되어 있다’예요.”

홍규헌이 낮게 웃었다.

“뭐야 그게.”

“정말이에요. 어느 순간, 모두가 인정하고 있을 거예요.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당연한 변화라서 즉각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결국에는 찾아오는 어떤 순간이 있어요. 그게 지금은 아니에요. 그리고, 때가 되면 저절로 제가 알 거 같아요. 그런 느낌이 들어요.”

“역대급 국위선양을 해놓고도 ‘지금은 아니다’라니…… 박 이사는 욕심이 많구나?”

“겸손하다고 해주세요.”

홍규헌과 한구인은 같이 웃으며 뒤로 돌아보았다. 그곳엔 성필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스마트 패드 영상 통화 화면 안에서,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 앉은 모습으로 있었다.

현재 그는 미국의 호텔 안에 있다.

영상 안의 성필이 말을 이었다.

[정호환 이사님도 마찬가지셨을 거예요. 다키스트를 프로듀싱하는 어느 순간, 다키스트가 최고임을 느끼셨을 거예요.]

허허벌판을 아무런 나침반 없이 나아갔던 개척자. 그는 두려운 마음에 한 발자국씩 내딛다가,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았을 것이다.

멍하니 주변을 보다가, 환희에 물들어 외쳤겠지.

아, 내가 이르렀어.

마침내 도착했어.

여기야.

내 뒤를 따라오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고 목표로 할 공간.

바로 이곳.

종착점이다.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 거라고 믿고, 묵묵히 나아가려구요.]

“그럼 말야, ‘최고의 엔터사’라는 목표도 어느 순간 나타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한구인이 즉답했다.

“최고의 기업은 시가 총액으로 표시되지 않습니까?”

세 사람이 동시에 웃었다.

“그렇긴 하네. 내 목표는 박 이사의 목표보다 훨씬 정량적이야. 어떤 의미에선 박 이사보다는 낫네.”

[꿈이라고 해주세요.]

“그래, 꿈. 근데 난 꿈보다는 목표거든. 단계가 정확하게 보여.”

[그렇겠네요. 그럼, 내년이 될까요?]

“그래.”

가로 엔터의 상장은 내년일 것이다.

내년까지, 가로 엔터의 모든 뮤지션들이 히트를 기록한다는 가정하에.

“가로 엔터도 대형 기획사와 버금가는 덩치를 가지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일로 골머리를 썩이겠군요.”

“어떤?”

“박 이사님이 제작비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며 자사주를 왕창 매각해버려서 경영권 방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던가…….”

“진짜 있을 거 같아서 무섭네.”

[하하.]

“웃네?”

“아니면 또 제작비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며 지분을 필요 이상으로 희석해버리는 바람에 주주들이 화가 나서 가로 엔터로 쳐들어오는 상황이라던가…….”

[하핳!]

“더 웃네?”

“결국엔 경영권을 탈환해내려고 자사주 매입에 돈을 전부 쓴 나머지, 제작비가 없어져 버린다든가…….”

[…….]

“박 이사 봐라 저거. 자기한테 피해 오는 일에만 정색하고 있어. 내가 사라지건 말건 자기 할 일만 중요하다는 거지?”

[어? 저를 ‘자기’라고 부르신 거예요?]

“역시 통화로 얘기하는 건 맛이 안 살아. 박 이사가 옆에 있어야 때리던가 할 텐데.”

“뭐 어떻습니까. 이제 와선,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하긴, 우리 셋이 모인지 5년이지. 거의 가족같이 느껴지니까.”

[사장니임…….]

“없어져도 신경만 쓰이지 딱히 문제없단 뜻이야.”

[에이, 그래 놓구선 외로워하시잖아요. 다 알아요.]

“……박 이사 요즘 들어 이상하게 자신감 있지 않아?”

“성과를 내셨으니 그럴 만합니다. 맞장구쳐주시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어, 외로워. 박 이사 빨리 돌아와.”

[다 들렸거든요?]

“롤라팔루자, 잘하고 있지?”

[내일 공연장 확인해요.]

“그래, 애들한테 뭔 일 없게 하고. 또, 박 이사도 몸조심해. 잘 챙겨 먹고.”

성필이 웃으며 경례했다.

[사장님 명령이시니, 꼭 지킬게요.]

가로 엔터의 5년은 치열했던 만큼 세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었다.

가로 엔터가 새벽을 보기까지의 5년이었다.

앞으로 해가 떠서 타오를 세월은 그보다 훨씬 길다. 세 사람의 인연도 그러할 것이다.

* * *

황망하다.

에리카의 마음에 들어맞는 단어는 ‘황망하다’밖에 없었다. 소녀연맹의 역대급 성적에 우왕좌왕할 새도 없이, 정호환이 총괄 프로듀서 직 사임을 선언했다.

말리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월드투어 도중 남는 시간에 급히 한국으로 오는 것뿐이었다.

용무는 오직 정호환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

당장이라도 꽃다발을 찢어발기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꽃다발은 선배가 준 것인데 말이다.

정호환의 작업실로 가는 도중.

에리카는 옆에서 함께 걷는 남자를 보았다. PTR―17의 리더인 시온이었다.

시온은 에리카의 붉은빛 꽃다발과는 달리 흰색의 꽃다발을 들었다. 이 꽃다발은 시온이 준비해왔으며, 정호환에게 줄 예정이다.

명목은 ‘은퇴를 축하한다’였다.

정호환은 나이로 정년에 이르렀다. 게다가 걸그룹 최초 밀리언셀러라는 빛나는 업적을 남겼으니, 그의 은퇴는 축하받아 마땅했다.

그렇기에 선물로 꽃다발이다.

에리카는 꽃다발이 부서지길 바라며 꽉 쥐었다. 축하 따위 하고 싶지 않다. 말리고 싶다.

“너한텐 어떨지 모르지만.”

1분 후면 정호환의 작업실에 도착할 거리에서, 시온이 말했다.

“정호환 이사님은 내게 은인이셔.”

“……저한테도 똑같아요.”

“항상 나한테, 우리한테 꿈같은 말씀만 해주셨었지. 그 꿈같은 말은 전부 이뤄졌었어. 그러다가 요즘 알게 된 건데, 그 꿈같은 말은 정호환 이사님의 꿈은 아니었던 거 같아. 우리에게만 꿈이었고, 이사님께는 꿈에 이르는 과정 중 하나에 불과했던 거지.”

그의 말은 느렸다.

원래 말투가 그런 건지, 아니면 감정적으로 이상이 생긴 건지, 그를 머나먼 선배로 여겨왔던 에리카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말은 느렸기에, 이야기를 끝내기 전에 작업실 앞에 도착했다.

시온이 이야기를 이었다.

“결국 나는 정호환 이사님께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었어. 내가 받은 수많은 꿈에 비해, 나는 정호환 이사님의 꿈을 단 하나도 이뤄드리지 못했어.”

“…….”

“네가 부러워.”

시온이 문에 노크했다.

“적어도 넌, 이사님의 꿈 중 하나를 이뤄드렸으니까.”

문이 열렸다.

정호환이 반겨주었다.

에리카와 시온이 꽃다발을 내밀었다. 정호환은 기쁘게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우수에 찬 눈으로 둘을 바라보다가, 손녀를 대하듯 에리카의 머리를 짧게 쓸었다.

“에리카, 작곡 수업을 끝까지 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에리카는 목구멍이 막혀왔다.

무어라 답을 돌려주기도 전에, 정호환의 손길이 시온에게로 향했다. 시온이 고개를 숙이자, 정호환은 그의 머리도 쓰다듬어주었다.

“미안하구나, 나 같은 사람이 프로듀서여서.”

시온의 목울대가 떨리는 걸, 에리카는 보았다.

정호환은 시온에게 사과하고서 아주 잠깐 에리카도 보았다. 에리카는 정호환의 사과가 자신에게도 이어진다고 느꼈다.

“둘 다 고맙구나.”

정호환은 작업실 안쪽으로 들어가 가방 안에 물건을 몇 개 넣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나왔다. 에리카와 시온이 비켜났다.

“열심히 하거라.”

정호환은 아무런 미련도 없단 듯 떠나갔다. 그의 모습은 복도 저 멀리로 희미해져 갔고, 이윽고 사라졌다.

에리카가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어째서 정호환이 떠나가는 거지?

떠나가야만 하는 거지?

그리 자문하던 에리카는, 너무나도 빨리 해답을 찾아냈다. 소녀연맹의 성과를 보고서 내심 눈치채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졌기 때문에.’

정호환은 자신이 성필에게 패배했다고, 즉, 케이어스가 소녀연맹에게 패배했다고 생각했기에 떠나간 것이다.

‘더는 추해지기 전에 스스로 떨어지겠다’라 정호환이 생각했노라고, 에리카는 판단했다.

양면적인 감정이 치솟는다.

정호환의 처신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말하는 쪽과 ‘이해한다’고 말하는 쪽이 서로 충돌했다.

당장 에리카부터 맨정신이 아니었다.

에리카가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눈물이 나서가 아니었다. 자기도 모르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지, 오래 뜬 눈이 건조해졌다.

눈이 아프다.

‘우리는, 졌어.’

소녀연맹에게 패배했다.

판매량으로는 이기지 않았느냐, 가 아니다.

완벽히 패배했다.

이견의 여지는 없다.

이건 패배 그 밖의 무엇도 아니다.

‘졌으니까, 다음엔 이겨야 해.’

다른 말로 바꾸면, 이젠 소녀연맹의 뒤를 쫓아가야 하리라.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에리카가 눈가를 가린 손을 치웠다.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무슨 허탈감인가.

속이 턱 막혔다.

‘소녀연맹은 계속 이런 기분을 느껴왔던 거구나.’

빌보드 200 1위, 걸그룹 최초.

빌보드 글로벌 200 1위, 걸그룹 최초.

오리콘 차트 1위.

한국 모든 음원 차트 주간 1위.

글로벌 송 세일즈 차트 1위.

이외에도 소녀연맹을 수식하는 수많은 ‘1위’와 ‘최초’와 ‘최고’가 있다.

정말, 헛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걸 어떻게 따라잡으란 거야?’

적어도 에리카의 머리로는 답이 안 나온다.

소녀연맹은 지금까지 케이어스의 뒤를 쫓아오며, 계속해서 끝없이, 3년 6개월이나 이런 감정을 느껴왔던 건가.

‘어떻게 이겨?’

답이 돌아오지 않는 물음.

패배감. 절망감. 좌절감.

이 지옥 같은 늪에 서고서, 소녀연맹은 어떻게 투지를 잃지 않았던 건가.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승리를 밥처럼 얻어내며 살아온 에리카라는 인간조차, 이 상황에선 승리를 단념해버렸다.

‘아.’

에리카는 깨달았다.

이거구나.

이게 바로.

‘포기구나.’

그때였다.

옆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보니, 시온이었다.

그가 주저앉은 에리카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에리카를 향해 일어나라고 하고 있었다.

에리카는 괜찮단 뜻으로 그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흠칫했다.

시온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입술을 꽉 물며 흐느낌을 참는 주제에, 눈물만은 참지 못했다.

“선배…….”

에리카가 부르자, 시온의 입술이 달싹였다.

울먹임이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나는, 어떻게, 뭘, 해야, 할까……?”

에리카라고 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없어졌다.

정호환, KS 엔터 총괄 프로듀서 직 사임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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