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74화 (674/760)

674화

‘애플뮤직’ 차트 30개국 1위.

‘스포티파잉’ 글로벌 송 일간 차트 10위권 진입.

쉽게 표현하면, 현 시각 전 세계를 합쳐 사람들이 가장 자주 듣는 음악 중 하나라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지표에 익숙하지 않다. 한국은 해외 글로벌 플랫폼보다 워터멜론 같은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얼마나 잘나가는지 이해시키려면 국내 차트를 가져와야 한다.

“워터멜론 차트 일간 1위.”

성필이 ‘송 포 피플’의 성적을 알렸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탄성을 흘렸다. 물론 소녀연맹은 1위를 찍은 적이 꽤 있지만, 이렇게나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적은 없었다.

“우리 발매하자마자 1위 찍은 적 없잖아.”

정확히는, 이렇게 빠르게 1위에 도달한 적이 없다.

아직 3일밖에 안 지났으니.

일간 차트 1위는 보통 대단한 게 아니다. 일간 차트 1위가 된다는 건, 오랫동안 차트에 걸려 있던 쟁쟁한 곡을 전부 밀어냈음을 뜻하니까.

그 안에는 저번 주간 차트 1위 곡들이, 저번 월간 차트 1위 곡들이 진열되어 있다.

온갖 뮤지션들의 역작이 쌓아둔 벽을 뚫기 위해선, 아무리 좋은 곡이더라도 보통 1~2주의 숨 고르기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곡을 듣기보다, 이미 익숙한 곡을 재생하는 데 익숙하니 말이다.

충분한 노출 시간과 홍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 근데 해냈어.”

언젠가 해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가까운 시기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조아라는 어안이 벙벙하여 말했다.

“하양 언…….”

그러나 장하양이 이 자리에 없단 걸 깨닫곤 입을 닫았다.

소녀연맹.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으나, 이례적으로 한가하다. 앨범 활동기 1주 차인데도 이렇게 한가하기란 어려우리라.

성필은 멤버들을 쭉 보고, 마지막 자리가 빈 것을 보곤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양이 정말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성필이 듣기로, 장하양은 숙소에서 목욕재계 중이라고 한다.

부정 타선 안 된다면서, 최대한 정갈한 정신과 신체를 유지하고 있다던가.

그녀는 ‘송 포 피플’이 성공했단 소식만 들었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는지는 몰랐다.

‘참는 편이 더 기분이 좋잖아요.’

그렇게 말했었다.

대체 얼마나 참으려고 이러는 걸까.

컴백 후 일주일이 지나 ‘송 포 피플’이 얻어낸 성과를 보면 기절하진 않을까 싶다.

“괜찮아요.”

답한 건 백설하였다.

“나올 때 이마에 손대 봤는데 괜찮았어요.”

“그래, 설하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근데.”

신아름이 조심스럽게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 진짜 엄청 성공한 거죠?”

“응, 진짜 엄청 성공한 거지. 이 상태로 ‘커트!’를 외쳐도 축포 터트릴 수준이야.”

“…….”

“아름아 왜 그래. 걸리는 점이라도 있어?”

“……팀장님이, 별로 안 기뻐 보이셔서요.”

멤버들은 내심 그리 생각해왔다.

성필은 ‘송 포 피플’이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반응이 옅다고 할까, 부족하다고 할까.

지금까지 성공을 성필이 얼마나 우느냐로 판단해온 멤버들로선, 정말 성공했는지 긴가민가했다.

“기쁘지. 왜 안 기쁘겠어.”

“그런데 왜 안 울어요?”

“내가 우는 걸 보고 싶단 뜻으로 들리네. 아니, 솔직히 뭐랄까. 감이 안 잡혀. 이게 현실이란 생각이 안 들거든. 너흰 안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회사 사람들이 소녀연맹의 성공에 대해 떠든다.

그런데 회사 사람들은 항상 그래왔다.

‘아니’에서 시작하여 ‘송 포 피플’에 이르기까지, 회사 사람들은 정해진 일처럼 호들갑을 떨어왔었다.

“방송국에 안 가서 그런가?”

신아름이 말하자 다들 ‘아’ 소리를 냈다.

“그래! 원래 이쯤에 방송국 가면 다들 축하한다면서 얘기 걸고 그러잖아! 아저씨도 막 음흉하게 웃고!”

그런데 이번엔 음방 두 개 나가고 쉬는 중이다. 다음 음방도 이틀 뒤다. 멤버들은 하릴없이 회사에 모여 연습할 뿐이었다.

특히 조아라가 대단했다.

그녀는 지금도 스포티한 브라탑에 레깅스 차림이었다. 아까까진 혼자 연습실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말이다.

조아라는 스스로 납득한 듯 자꾸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그르네. 무대를 좀 뛰어야 실감이 나는데, 그러질 못하니까 자꾸 허했구나. 아저씨 그거 알아요? 우리 점점 성공할 때마다 사람들 눈빛 바뀌는 거?”

“알지. 나를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지는걸.”

“그거 보는 재미도 있었는데. 아, 무대 서고 싶다.”

“야 조아라. 너 이제 춤추는 거 재미없다면서? 의무로 하는 거라면서? 근데 이젠 말 바꿔서 무대에 서고 싶어?”

“아니, 그, 너도 느낄걸?”

“뭘 느껴. 성희롱이야?”

“‘송 포 피플’ 춤 있잖아, 너무 쉽지 않냐?”

이례적으로 쉽다.

소녀연맹의 퍼포먼스들은 매 순간 한계를 넘는 것이었다. 하지만 ‘송 포 피플’은 그러지 않았다.

멤버들은 보컬이든 춤이든 제스처든 표정 연기든, 무엇이든 여유롭게 퍼포먼스를 소화했다.

“숨이 안 차.”

조아라의 그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됐다.

“막 무대 끝내고도 ‘이게 맞나? 내가 대충했나?’ 하면서 찜찜해. 넌 안 그래?”

“난 좋은데? 지금까진 무대 끝나면 바로 탈진해서 쓰러지고 싶고 그랬잖아. 익숙해지면서 나아지고 그랬지. 이런 것도 좋지 않나. 쌤 안 그래요?”

“아, 응, 어, 모르겠어. 일장일단이…….”

“쌤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오토마타’ 땐 무대 끝나면 바로 개 혓바닥 호흡법 했잖아요.”

“내가?!”

“암튼, 그렇다고.”

조아라가 다리를 떨었다.

“연료가 다 안 타.”

“아라가 그래서 연습실에 계속 박혀 있었구나.”

“네. 이젠 안 힘들면 죄책감 느낄 거 같아요. 지금도 연습실 가고 싶은데. 아저씨도 가서 한 판 뜰래요?”

“미친년 진짜…….”

신아름이 혐오감을 담아 조아라를 흘겼다.

성필도 어느 정도 신아름에게 동조했다.

“우리 아라가 사회 공부가 많이 부족하구나? 그런 말을 하면 나한테 경멸받고 경찰서까지 갈 수 있어요.”

“뭐래. 춤요. 아저씨 춤 배우잖아요.”

성필이 떨리는 동공으로 리카를 응시했다.

리카가 곧바로 도리질 쳤다. 자신이 말하지 않았다고 눈빛으로 강렬히 항변했다.

“내가 뭘 춤을 배워. 헛소리 그만하고, 너희들 성적 또 말해주면…….”

“진짜요? 안 배우고 그렇게 추는 거면 아저씨 신이 내린 재능인데?”

“신이 내린 재능이 있나 보지. 암튼, 너희들도 분마다 워터멜론 실시간 차트 보고 있겠지만…….”

백설하가 재빨리 테이블에 놓아둔 폰을 뒤집었다.

“공개했던 너희들 개인곡 뮤비 전부 다 워터멜론 일간 차트에 들어갔어!”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음원 사이트 개편 전에는 유명 그룹이 컴백하면 앨범 수록곡 줄 세우기가 흔했다. 하지만 요즘엔 그게 녹록지 않다.

팬들이 미친 듯이 스트리밍해봤자, 개인의 스트리밍은 한 시간에 한 번밖에 집계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아주 열성적인 사람들 수백, 많으면 수천 명 정도가 하겠지.

모든 스트리밍을 집계했던 과거엔 수천 명의 스트리밍이 쌓여서 시간당 수만·수백만이 됐었다. 하지만 이젠 안 된다.

오죽하면 과거 차트 개편 이후 아이돌 곡들이 대거 빠져나가자, 아이돌 다 망했다며 기사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겠는가.

“대단해 얘들아.”

멤버들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하양이 프로듀싱한 ‘송 포 피플’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과 멤버들의 개인곡이 차트에 들어간 건 다른 의미였다.

자신의 이름이 박힌 곡이 차트에 들었단 건, 멤버 개개인에게 의미가 깊었다.

“역시,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니까 주목도가 남다르네.”

이건 성필에게 실험이기도 했다.

설령 수록곡이더라도,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면 타이틀곡 수준의 프로모션 능력을 갖게 되는가?

결과는 성공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수록곡에 휑하니 들어 있는 것보다야, 뮤직비디오로 존재하는 편이 사람들이 들어볼 확률이 훨씬 높을 테니 말이다.

“우리 내기할래요?”

조아라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넘쳤다.

“지금 실시간 차트 봐서 순위 제일 높은 사람이 아저씨한테 밥 얻어먹기.”

“아라야, 내 의사는 안 물어보니?”

“너희들 지금 차트 확인 안 했지? 쌤도 안 했죠? 하자, 해봐요.”

그녀의 개인곡은 쾌활한 댄스곡이었다. A&R팀 수록곡 투표에서도 ‘가장 듣기 편하다’는 평가를 들은 곡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

백설하가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자.”

“쌤 봤네. 안 해요.”

“어?!”

“그럼 이렇게 할래?”

신아름이 가세했다.

“제일 순위 낮은 사람한테 팀장님이 밥 사주기.”

조건이 바뀌자 신아름이 의기양양해졌다.

그녀의 개인곡인 ‘줄타기’는 재즈 라틴 R&B라는, 이름조차 명확하지 않은 데다 케이팝에서 찾아보기 힘든 장르였다.

케이팝에 익숙한 청자라면 처음 들어보는 악기 사운드에 이질감을 느끼고, 또한 신기하다고 느낄 법하다.

이질적이란 건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 있으나, 역으로 표현하면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

신아름이 이런 곡을 개인곡으로 선택한 이유는, 사실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정지음 때문이었다.

‘이번 앨범에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정지음이 고른 곡이 바로 이 ‘줄타기’였다.

신아름을 그걸 듣곤.

‘제 개인곡으로 해요.’

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아육금에서 김민주와 라틴 댄스를 추었던 게 영향을 끼친 듯했다.

아무튼, 그래서 신아름의 ‘줄타기’는 신기하단 평가를 받으면서도 차트에선 그다지 힘을 쓰지 못했다.

“……뭐.”

조아라는 재미없단 듯 나른히 턱을 괴었다.

“그러든가.”

개인곡이 모두 차트에 들었다. 이러면 상대적으로 순위가 낮은 멤버도 있기 마련이다.

멤버들도 성필이 개인곡 차트 순위를 언급하기 전까지 이 주제를 이야기하길 꺼려왔다.

괜히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

그런데 최하위 유력 후보인 신아름이 긍정적으로 나오니, 조아라도 곤혹스러움에 받아들였다.

“헤, 그럼 하는 거다?”

신아름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성필을 보았다. 오랜만에 같이 식사할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성필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폰을 꺼냈다.

“내가 볼게. 먼저, 1위는 설하.”

“아…….”

백설하는 좋아하는 동시에 아쉬워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아마 멤버들을 앞에 두고 대놓고 좋아하기는 꺼려져서 일부러 연기하는 거겠지. 성필은 백설하의 넓은 마음에 또 감탄하며 다음 순위를 읊었다.

“2위는 아라.”

“아차상은 없어요?”

“나 아까 성희롱했던 거 없애줄게.”

“뭐래요. 같이 춤추자는 게 성희롱이면 아저씨가 쌤이랑 볼룸 댄스 췄던 건 성추…….”

“어허.”

성필은 차트를 꽤 오래 내렸다.

3순위 멤버의 곡은 70위로 가서야 보였다.

‘실시간 차트는 많이 떨어졌네. 이번 주 안에 일간 차트 안에선 아웃되려나.’

70위대에 걸린 멤버의 개인곡.

그 이름을 본 성필의 눈썹이 움찔했다.

“3위는 아름이…….”

“어?”

신아름은 놀라서 리카를 보았다.

리카도 놀라서 성필을 보았다.

“4위는 리카…….”

성필이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싱긋 미소 짓곤 다정하게 말했다.

“리카,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에.”

“일식 좋아해?”

“몇 위인가요!”

리카는 이번 앨범에 유일하게 자작곡을 넣은 멤버다. ‘에, 아타시? 소오, 아타시!’의 설명은 이러하다.

촉망받는 일본의 일렉트로닉 DJ인 ‘플로리 걸’과 리카의 협업으로 탄생했다고 말이다.

‘플로리 걸’은 리카의 페르소나다. 그녀는 꽤 오랜 시간 ‘플로리 걸’로서의 활동을 숨겨왔다. 그게 드러난 건 에리카의 믹스테입을 도와주었을 때니, 정말 오래됐다.

즉, ‘에, 아타시? 소오, 아타시!’는 온전한 리카의 자작곡이다.

“아타시(저)의 역작은 몇 위인가요!”

“꼭 피를 봐야겠어?”

“봐야겠어요!”

“97위.”

“에.”

리카는 폰을 꺼내어 차트를 확인했다.

워터멜론 실시간 차트 97위.

그녀는 믿을 수 없어서 새로고침을 눌렀다. 그랬더니 곡이 아예 사라졌다.

“손나(그런)!”

마침 딱 정시(定時)여서, 실시간 차트가 업데이트됐다. 업데이트되어, 리카의 자작곡이 차트 아웃 됐다.

“어, 어째서인가요!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개인곡 중에 제일 높잖아요!”

“리카.”

성필이 리카를 위로했다.

“카와이 퓨처 베이스는 아직 한국에서 받아들이기 이른 문화인 거 같아.”

“…….”

리카는 오늘에서야 이해했다. 예술가는 시대와 국적을 잘 타고나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일식 괜찮아?”

“국밥에 소주로요…….”

그렇게 소녀연맹 성적 발표회가 끝났다.

멤버들은 회의실에 들어올 때보다 더 쾌활한 얼굴이 되어 나섰다.

성필과의 식사권을 빼앗긴 신아름과, 방금 차트 아웃당한 리카를 빼고 말이다.

“저녁 때 말고 지금 먹으면 안 되나요…….”

“언젠가 네 예술이 인정받는 날이 올 거야.”

“아저씨 할 일도 없을 텐데 춤이나 추고 가요.”

“넌 진짜 내가 놀면서 돈 받아먹는다고 생각하냐?”

“우리도 할 일 없는데 아저씨가 뭐 해요.”

“아라야, 놀랍게도 가로 엔터 소속 아티스트는 이제 너희들뿐만이 아니야. 웨이퍼센트도 있고 카오틱 에너지도 있잖아.”

그에 조아라가 척 멈추더니 성필을 돌아보았다.

“나보다 걔네들이 더 중요해요?”

그 어투가 예상외로 너무나 진지하고, 또한 묘한 적개심마저 느껴져서, 성필은 당황했다.

다른 멤버들도 조아라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놀랐다.

성필이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자, 조아라는 픽 웃으면서 말했다.

“아하하, 농담.”

조아라가 멀어져가자, 성필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참고 있던 숨을 토해냈다.

“저년 왜 저래.”

신아름이 조아라의 뒤로 달라붙어 그녀의 뒤통수를 탁 쳤다. 바로 조아라가 반격할 줄 알았는데, 왠지 그녀는 신아름과 어깨동무만 할 뿐이었다.

신아름이 기분 나쁘다며 소리치는 게 여기까지 들려왔다.

성필이 멍하니 말했다.

“아라, 장난 맞지?”

“아…… 그으, 그쵸. 장난이죠 당연히…….”

백설하가 하하 웃으며 성필의 눈치를 보았다. 성필이 기분이 나빠지진 않았는가 살피는 것이었다.

다행히 성필은 당황했던 아까와 달리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라쨩의 장난을 들으니까 소주가 더 말려요! 바로 마시러 가요!”

“난 너희처럼 프리랜서가 아니야.”

때마침 저 멀리서 성필을 발견한 민경섭이 달려오고 있었다.

성필이 은근히 재는 투로 말했다.

“봤지? 여기저기서 날 찾잖아.”

“형 빨리!”

“진짜 날 찾네?”

“빨리 와요!”

민경섭이 성필을 이끌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안에는 홍규헌과 손혜빈이 있었다.

홍규헌은 손안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자꾸만 굴리는 중이었다. 성필이 온 것을 본 그녀가 한숨을 토했다.

“애들 기분 좋게 해주고 왔어?”

“네. 아직 어안이 벙벙한가 봐요.”

“그렇겠지.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을 지경이니까. 이번 분기 끝나고 돈 찍힌 걸 봐야 실감이 나겠어. 그건 그렇고.”

홍규헌은 테이블 위에 둔 폰을 보았다.

성필을 포함한 모두의 눈도 그리로 향했다. 폰은 홍규헌의 것이 아니라 민경섭의 것이었다.

“방금 온 박 이사를 위해서 다시 말할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어.”

“어디서요?”

“영등포랑 마포.”

소녀연맹의 음방·예능 출연을 모두 캔슬시킨 공중파 방송사다. 현재 엔터계 적폐이자 악의 축으로 몰려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는 중이다.

소녀연맹의 ‘위어스’ 입점 기사가 결정적이었다.

성필은 무슨 용건일지 짐작이 갔다.

그래도 굳이 되물었다. 설마 그렇게 염치가 없을까 싶어서.

“뭐라고 했는데요?”

“2주 차부터 출연해달래.”

비웃음이 들렸다.

손혜빈이었다.

“이제 와서?”

“뭐어, 감정적인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홍규헌은 당장이라도 욕지거리를 뱉으려던 손혜빈을 만류했다.

“얘네들도 자기가 하는 말이 사람 말이 아닌 걸 아는지, 직접 얼굴을 보자고 하더라. 뭐어, 당연히…….”

이번에는 홍규헌도 목소리에서 분노를 없애지 못했다.

“방송국으로 직접 오라고 했지만 말야. 엉덩이가 무거우신 분들이라서. 참…… KS 엔터가 우리 쪽으로 오라고 했을 땐 군말 없이 왔던 분들이 이러니, 참 어이가 없고 그렇지. 이게 작은 회사의 슬픔일까.”

“형.”

민경섭이 끼어들었다.

“제가 PD들 보러 갔다 올게요.”

성필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가 생각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벽을 보았다가, 홍규헌을 보았다가, 또 민경섭을 보고, 괜히 자신의 신발 굽도 봐주고.

“아니야. 내가 봬야지. 괜히 상대하는 사람 바뀌는 걸로 그쪽 기분 상하게 하는 건 안 좋겠지. 경섭이 네가 매니지먼트 총괄이긴 해도, 얼굴 마담인 나를 더 높이 칠 거잖아. ‘르 스모킹’ 의상으로 설득하러 갈 때도 내가 갔으니.”

“……네.”

다들 한숨과 분노를 삼켰다.

소녀연맹은 손발이 잘린 채 컴백했다. 만약 텔레비전 프로모션이 더해졌다면, 지금보다 앨범을 훨씬 많이 팔았을 수도 있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도 이보다 훨씬 더 높았을 수도 있다.

공중파 음방은 전 세계 백수십 개국에 동시 송출된다. 그러니 아이튜브 무대 영상 중에서도 파급력과 인지도가 크다.

그렇게 소녀연맹을 궁지로 몰아놓고, 이제 와서 출연해달라니. 그런데도 가로 엔터는 그들을 향해 한마디도 못 한다니.

속이 뒤틀릴 만도 하다.

“그렇긴.”

민경섭이 겨우 화를 삼켰다.

“그렇긴, 하죠. 형이 직접 보는 게, 네, 더 낫긴 하죠…….”

“근데…….”

성필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내가 바빠서, 저쪽에서 오라고 해야겠다.”

“……네?”

“우린 아쉬울 거 없어.”

성필은 홍규헌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사장님, 제가 전에 말씀드린 거 기억하세요?”

“……어, 기억하지.”

홍규헌이 낮게 웃었다.

“국내시장 X까라.”

“형.”

민경섭은 통쾌함과 불안이 반반 섞인 얼굴이었다. 그는 성필을 진정시키려는 듯 그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겠어요? 그, 저희 이제 소련이들만 관리하는 거 아니에요. 웨이퍼센트는요? 카오틱 에너지는요? 방송국한테 그러면, 아예 척을 지게 돼요.”

“경섭아, 너는 올해 소녀연맹이 무슨 상 받을 거 같냐?”

“……상?”

“나는 대상 받을 거 같아.”

다들 숨을 헛삼켰다.

“이 성적이면 못 받을 수가 없어. 대여섯 개, 대한민국의 모든 시상식에서 대상을 싹쓸이할 거야.”

성필이 싱긋 미소 지었다.

“근데 방송국이 대상은 주는데, 받을 사람이 안 오면, 그쪽 사람들이 어떤 표정일까.”

권위가 땅에 떨어지겠지.

“그런 걸 바랄까?”

바랄 리 없다.

“받은 걸 돌려주는 데도 겁먹으면, 그건 그냥 호구잖아. 밟혔을 때 바보처럼 웃어주는 건 약할 때만으로 족해.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도 그러지 말란 법 없어. 올해만 할 수 있는 강짜를 부려보자. 겁먹지 마. 그리고 올해만 지나면.”

웨이퍼센트.

카오틱 에너지.

전부 다 성공한 상태일 것이다.

성필이 확신하고 보증한다.

옛 원한이 문제일까. 오히려 방송국이 옛 원한을 잊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이다.

“누구도 가로 엔터를 무시할 수 없어.”

“……형.”

민경섭의 얼굴은 흥분으로 달아 있었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걱정이 서려 있었다.

항상 발 닦개가 되길 자처해왔던 방송국을 향해 통쾌한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걸까?

아직은 칼을 숨겨야 하지 않을까? 과실이 충분히 여물이 않은 상태에서 이러는 게, 과연 맞을까?

되돌려주고 싶다, 한편으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숙이고 싶기도 하다.

이 양면적인 감정을 담아, 민경섭이 다시 물었다.

“정말로…….”

“경섭아.”

성필이 민경섭의 어깨를 짚었다.

“괜찮아.”

성필은 여러 차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직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건만, 민경섭의 얼굴이 밝게 물들었다. 성필의 단 한마디로.

성필은 다시 홍규헌을 향해 몸을 돌렸다.

“사장님.”

“어.”

“올해가 끝나기 전에 방송국이 고개 숙이러 오게 만든다고 했죠. 보여드리겠다고. 오늘 그 에피타이저를 맛보게 해드릴게요.”

[Girl’s League(소녀연맹) ‘Song for PEOPLE’ Official MV]

발매 70시간(사흘째).

[조회 수 80,000,0**]

8,000만 회.

[Song for PEOPLE

워터 멜론 일간 차트

1일 차: 13위

2일 차: 4위

3일 차: 1위]

[소녀연맹 ‘송 포 피플’ 초동 기록

1일 차 판매량: 532,8**장.

2일 차 판매량: 199,1**장

3일 차 판매량: 100,8**장

누적 판매량: 833,5**장]

케이어스 ‘헬리오스’의 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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