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화
가벼운 리듬 기타의 사운드가 곡이 시작됐음을 알린다.
이어서 등장하는 펜타토닉 스케일(5음 음계)의 멜로디라인은 웅장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하고 깔끔했다.
화사한 원색의 파스텔톤 무대 위에 소녀연맹이 올라 있다. 그녀들은 저마다의 ‘르 스모킹’을 입은 채 뒤돌아 서 있다.
이윽고 기타의 리듬에 맞춰 어깨를 흔들고, 신아름이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봄으로써 카메라를 응시한다.
카메라가 그녀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하자 눈동자는 은하가 되고, 클로즈업하자 태양이 되고, 클로즈업하자 지구가 보이고, 클로즈업하자 옥상 위에 앉은 신아름이 가까워져 온다.
그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거리에서, 그녀가 하늘 위의 카메라를 올려다보았다.
[다들 말해 내 날개가 커졌다고
맞아 난 알고 날고 있어]
신아름은 카메라를 손으로 가렸다.
손이 떼어지자 그녀는 소녀연맹의 데뷔 무대 위에 서 있었다.
‘아니’에서 ‘롱 포’를 거쳐 ‘아라베스크’로.
그에 비례하여 무대를 채우는 관객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알고 있어
이 날개는 네 거라고
You brought me to sky so fast
I fly so fast that I can’t see you
So.]
신아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배경은 길거리로 바뀐다.
높디높던 무대는 사라지고 신아름은 땅을 딛고 섰다. 그럼에도 관객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아름이 그들의 사이로 나아간다.
[다시 내려갈게.]
신아름의 앞에 사람들이 원을 그려 만든 무대와 하늘을 향한 계단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팬에게로 향한다.
[너와 같은 높이로 너와 눈 맞추러
하늘 아닌 너에게로]
신아름이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댄다.
그 검지를 천천히 움직여 옆을 가리켰다.
화면이 바뀌고 HPT 뮤직 어워드가 펼쳐지는 고척 스카이돔이 나타났다.
무대 위에선 소녀연맹 멤버들이 수십 명의 보조 댄서들과 함께 ‘아라베스크’를 추고 있다.
조아라가 시계와 같이 정확한 리드로 모든 댄서들을 이끌고. 마침내 관객들에게 언어 없이 춤만으로 ‘아라베스크’를 이해시켰을 때.
소녀연맹을 미워하여 박수 대신 침묵으로 답했던 이들에게, 증오 대신 환호성을 받아냈던 순간.
그 주인공인 조아라는.
[우리 대회엔 포도알이 없어
지껄이며 몰려드네 취객이]
더는 과거와 같이 당황하지 않는다.
톱의 자리에 선 아티스트로서 아라베스크를 펼치는 댄서들에게로 나아간다.
분명 침묵했어야 할 관객들이 우레처럼 쩌렁쩌렁한 환성과 박수를 보낸다.
[재료는 없어 물지 거품만
내가 걔래 개래]
자리를 잡고 춤을 추려던 조아라는 갑자기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아 미안
对不起 Sorry すまん]
어느 순간 그녀는 비행기에 타 있었다.
[구름과의 데이트 flight airline
하늘 위라 안 들려서 alright
얘기하려면 쫓아와 봐 성지에
내가 밟은 땅 세계를 순례]
멀어져가는 비행기.
그걸 땅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조아라였다.
그녀는 고척돔의 외곽에 서서 환호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과, 저 멀리로 떠나는 비행기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곤 카메라를 향해 멋쩍은 미소를 보인다.
[미안, 허세 좀 부려봤어
진심 좀 말해볼게 두려웠어
네가 날 우러러봐
마주 않고 돌고 싶어]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관객석의 계단을 내려가 조심조심 무대로 향한다.
[but 나는 너의 영웅이니까]
소녀연맹을 부르는 수만 명의 함성에 답한다. 다만, 아까보다는 조금 더 쑥스러움을 간직한 채로.
그녀는 무대 위로 올라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네가 나를 부르니까
그게 나도 좋으니까]
자신만만한 미소 대신, 사람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번엔 위가 아닌 아래에서
너와 같은 곳에 서볼게]
조아라가 카메라를 손으로 가린다.
그리고 손을 떼어냈을 때, ‘우파루파’를 추는 백설하가 보였다.
그녀는 일본의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여, 함박웃음을 짓는 게스트와 방청객들을 향해 혼신의 ‘우파루파’를 춘다.
오리콘 연간 4위, 더블 플래티넘 앨범.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 최고의 비주얼 아트 부문. 올해의 ‘클락’ 뮤직상.
믿기지 않는 업적을 토해내는 텔레비전.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실용 보컬 학원, 강사 대기실에서 삼각김밥을 오물거리는 백설하다.
트로피를 든 텔레비전 안의 백설하가 노래한다.
[그날을 상상하곤 해
도전을 포기한 삶으로]
텔레비전 안의 백설하가 삼각김밥을 먹던 백설하를 가리킨다.
백설하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아이돌이었지
노래를 불렀었지
내 꿈의 주인은
낮이 아닌 밤이었겠지]
텔레비전 안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백설하는 혼비백산하여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어지르곤 도망가려 한다.
하지만 붙잡혔다.
[관객 하나 없는 들판에
홀로 소리치는 나를]
백설하가 멈칫한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를]
백설하는 여전히 갈팡질팡한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가 그녀를 민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미소를 짓고 있는 것만은 안다.
백설하는 그들이 미는 힘으로, 텔레비전 안으로 들어간다.
어느 순간, 그녀는 마이크를 쥐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 ‘뉴아사’ 무대였다. 옆에는 소녀연맹 멤버들과 세이코가 서 있었다.
세이코가 고개를 갸웃한다.
백설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 노래한다.
[영원히 기다리는 삶을…….]
신아름이 웃으면서 백설하의 어깨를 톡톡 친다.
백설하가 돌아보니, 신아름이 검지를 위로 향했다.
백설하는 얼떨떨해하다가, 검지를 하늘 높이 치켜든다. 모든 멤버들이 하늘을 향하여 손가락을 든다.
입술이 달싹인다.
[이젠 노래해 내 목소리가]
소죠렌메가 키타―!
[너에게 닿을 걸 알아]
일본을 제패했던 다키스트의 오마주.
검은 제복을 입고 쿄세라돔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던 다키스트와, 지금의 소녀연맹은 같다.
다키스트와 달리 백색의 제복을 입은 소녀들.
높이 솟은 원형의 기둥 위에서, 하늘을 향해 외치는 다섯 명의 소녀들이 있다.
반겨주는 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빛.
사람의 망막을 태울 듯한 열기.
천둥과 비견되는 함성.
전후좌우를 가득 채운 인간의 파도.
인류 역사상 극히 소수의 인간만이 누려본 수만 명의 시선.
백설하는 황홀하여, 하늘로 뻗은 자신의 검지를 올려다본다.
이제야…….
[히어로 랜딩!]
그림 같던 장면이 종잇장처럼 찢기며, 그 안에서 리카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다리에 걸린 종이 뭉치를 털어버리곤, 다시금 멋진 포즈를 취했다.
주먹을 바닥에 대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씩 미소 지으며 정면을 본다.
[영웅 두둥등장!]
지금까지의 모든 무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리카는 그 파노라마를 건너다니면서 깽판을 쳤다.
‘아니’ 무대 위에 오른 신아름 대신 그녀의 리볼버 파트를 춘다거나(신아름이 어처구니없단 표정으로 노려봄).
HPT 뮤직 어워드 무대 위의 조아라를 대신하여 하이라이트 댄스를 춘다던가(리카가 조아라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억지로 중앙에 섬).
‘뉴아사’ 무대에 선 백설하를 밀어버리고 본인이 중앙에 서서 ‘쇼죠렌메가 키타―!’를 외치거나(백설하가 지레짐작 겁먹고 먼저 물러남).
[날 기다린 걸 알아 슝!]
리카가 숨을 헥헥 대며 드디어 본인의 무대에 섰다. 케이콘 인 파리의 ‘오토마타’ 무대였다.
[Distant―yet―mysterious!]
그런데 파르크 데 프랭스는 텅텅 비어 있었다.
리카 홀로 푸른 축구장 잔디 위에 서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Distant―yet―mysterious…….]
그녀가 절규했다.
[하고 싶어!]
리카가 잔디 위를 전력으로 질주하며 노래한다.
[나는 없어 널 구할 초능력도!]
축구장은 매우 매우 넓어서, 그녀의 전력 질주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날아갈 Mk.1 슈트도!]
마침내 골대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 골대는 그보다 더 먼 곳으로 가 있었다.
리카가 눈물을 한 방울 흘린다.
[그래 난 쩌리인 걸.]
그 눈물을 닦고,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뛴다.
[그래도 꽤 멋진 쩌리라구!]
리카가 골대를 뚫고 더 멀리로 나아간다.
파리의 번화가.
프랑스인들은 난데없이 나타나 번화가를 질주하는 일본인 소녀를 신기하단 듯 바라보았다.
관심은 잠시였다.
프랑스인들은 그녀가 쌩 지나감에도 본척만척, 다시 가던 길로 향했다.
[위기의 순간 날아갈 순 없어도!]
질주는 이어진다.
[달려가 꽤 가까운 거리라구!]
지독한 무관심 속 달리고 또 달린다.
[보잘것없는 나지만!
실수투성이 이런 나지만!]
그녀가 멈춘 곳엔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소를 짓고 있단 것만은 알았다.
리카도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뺨에 말라붙은 눈물을 다시 닦곤, 한 명의 사람을 위해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그래도 Hero야 난!]
파스텔톤 물감으로 화면이 흐려진다.
수많은 빛깔이 어지러운 난반사를 거듭하고, 강물에 휩쓸리듯 사라진다.
회백색의 공간.
무대처럼 보이는 곳에 장하양이 옆을 보고 서 있다.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옆모습만을 보인 채 앞으로 걸어간다.
느리고도 침착하게.
[지켜보고만 있지 마
함께 춤추고 노래하자
오, 아직 내키지 않아?
알겠어 알려줄게
사람들이 내 곁에 있는 이유]
장하양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꺼내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돈 자랑은 안 해
자랑 안 해도 보여]
장하양은 카메라를 곁눈질하며 자신의 얼굴을 슥 쓸었다.
[재능의 부유함이]
그러곤 씩 미소 지었다.
얼굴을 쓸던 손이 머리로 향한다.
[물론 아니야 얼굴만은]
그녀가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센 척하고 욕하지 않아도
건강한 몸과 올바른 마음]
장하양은 재킷을 벗었다.
브라탑만 입었기에 그녀의 신체가 훤히 드러난다. 주홍색의 조명을 받아 근육들이 선명이 빛 아래에 새겨진다.
그녀는 스니커즈를 신은 발을 아까보다 더욱 힘차게 내디뎠다.
[이걸로 충분히 아름다워]
그녀가 지나가는 뒤로 일렬로 선 소녀연맹 멤버들이 보였다.
장하양은 그녀들의 중앙에 서서 멈춰 섰다. 그리고 드디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자 이제 네 사랑을
아주 조금 떼어줄래?]
장하양이 옆의 멤버들과 어깨동무했다.
[그게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보여줄게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화면이 위아래로 끄덕인다.
그리고 카메라가 점점 멀어진다.
멀어지고 또 멀어지고.
이윽고 소녀연맹이 손가락 하나 크기로 보일 시점에서야, 배경이 드러났다.
브로드웨이 거대 극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커다란 무대.
무대엔 소녀연맹 다섯 명밖에 없었기에 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빨리 와]
카메라가 멀어지기를 멈추자, 무대 위에 무언가가 보였다.
아주 거대한 글자.
환한 빛을 내뿜는 그건.
[사람들(PEOPLE)과 쭉 기다렸어.]
PEOPLE의 네온이었다.
그녀들을 비추던 건 조명이 아니었다. 거대한 PEOPLE 네온의 빛이, 무대 위의 그녀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커다랗고 휑하게까지 보이는 무대.
하지만 소녀연맹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언제나 무대 위에서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렇기에 두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아갈 수 있었다.
무너지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쓰러져도 용기를 내어 앞으로, 또 앞으로.
소녀연맹은 언제나 사람들과 하나였다.
카메라가 장하양을 클로즈업한다.
그녀와 멤버들이 싱긋 미소 짓는다.
그리고, 장하양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양 손목을 맞추어 쓸었다.
마치 손목에 뿌린 향수를 비비듯이.
미소를 지었다.
상쾌하단 듯.
그녀의 몸이 웨이브를 타며 좌우로 움직였다.
손목도 함께.
손목을 교차시킨 장하양은 사선으로 서서 손목을 귀 뒤로 가져갔다.
아래로 쓸어내린다.
샤워기의 물을 맞듯 눈을 감으며 위를 바라보던 장하양은, 천천히 정면을 보곤 윙크했다.
네온이 발한 빛이 쏘아 들어와 장하양을 비추었다.
[‘아니’]
기다림은 끝이다.
직접 데리러 갈게.
장하양이 카메라로 다가가 렌즈를 손으로 가렸다.
어둠.
그리고.
* * *
빛.
[사람들과 쭉 기다렸어.]
무대 위에 오른 소녀연맹 멤버들이 어깨동무한다. 찰나의 정적. 하지만 음악 방송 무대에서 선보이기엔 길고 긴 정적.
그 짧은 침묵의 시간에 변화가 일어났다.
소녀연맹 멤버들이 검지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 순간 그녀들 뒤의 스크린에 무언가가 비쳤다.
방청객석이었다.
방청객들, 인민이들이 소녀연맹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써 소녀연맹이 인민이들과 함께 무대에 선 진풍경이 펼쳐졌다.
인민이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랐고 또 당황했지만,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했다.
소녀연맹이 자신들을 무대로 불러준 것이다.
인민이들은 모든 음향을 무마할 정도로 거대한 함성과 함께 피켓과 슬로건, 그리고 소녀연맹의 공식 응원봉인 ‘횃불’을 흔들었다.
무수한 응원봉의 빛과.
‘빛나는 아이돌 하양!’
‘소녀연맹 영원하라’
‘슈퍼히어로 리카’
‘아라 내가 많이 사랑해’
‘괭이아름’
‘설하 펀치! 설하 펀치!’
‘조아라! 너 좀 귀엽다?!’
‘최고의 아이돌 소녀연맹’
‘항상 기다릴게 이 자리에서’
‘리카야 지켜봐줘’
‘아름아 노려봐줘’
‘내 마음의 치사율 100%’
‘얼굴천재 하양
춤신춤왕 아라
최강보컬 설하
막내온탑 아름
일본에서 온 슈퍼히어로
파이팅!’
‘너희한테만 나는
감정이 없는 ATM’
‘사랑해 아름아’
‘소련 없는 삶은 무용’
‘하양아 다 좋은데
하나만 고쳐
내 마음 빨리!’
‘얼! 굴! 이! 다! 했! 다!’
‘충격, 공포, 백설하 실존!’
‘좋아하는 내래맘 알아달라요’
‘속보, 조각상들 루브르 탈출’
소녀연맹을 응원하는 인민이들의 플래카드.
스태프들이 놀랄 정도로 거대한 함성.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인민이들의 행복한 웃음.
장하양은 실수를 저질렀다.
마지막 가사를 불러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입술을 꼭 다문 그녀는 숨을 헛 삼켜야만 했다.
곡이 끝나고서야, 그녀가 못다 한 노래를 끝냈다.
[환영해.]
그리고 가사에는 없지만.
“고마워.”
* * *
김채현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방청객석은 이미 눈물의 도가니였다.
다들 떠올리고 있으리라.
소녀연맹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으흐끄흐으윽…….”
김채현이 양손에 쥔 플래카드가 바들바들 떨렸다. ‘속보, 조각상들 루브르 탈출’이란 글귀 스스로가 떠는 것만 같았다.
‘어떤 아이돌이 이럴까…….’
오직 팬만을 위한 곡을 타이틀로 써줄까.
보통 사람들은 평범한 이지리스닝 계열의 버블검 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인민이들은 안다.
저 가사들은 전부 소련이들이 생각한 거고, 소련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고, 또 소련이들과 함께한 인민이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어떤 아이돌이 이러냐구…….’
곡만이 아니다.
무대 위에서도, 소녀연맹은 인민이들과 함께 섰다. 아직도 스크린엔 오열하는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는 인민이들이 보이고 있다.
소녀연맹이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이곳에 선 건 인민이들 덕분이라고.
인민이들 덕분에 힘들어도 참고 노력할 수 있었다고.
그리고, 이건 보답이야.
아무렇지 않은 척, 곡을 툭 던진다.
그 마음씨에 감동해서 김채현은 대학 합격했을 때도 흘리지 않았을 정도의 눈물을 쏟아냈다.
‘하양아…….’
김채현은 최초로 소녀연맹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친구인 이선주가 가로 엔터의 연습생들이 버스킹을 한단 정보를 알아내어, 직접 보러 갔다.
가서는 쿠키와 편지도 주었다.
그리고 김채현의 덕질 인생이 시작됐다.
‘아니’를 위해 학교도 째고 음방 방청에 갔다.
팬미팅에선 배가 찢어질 것처럼 울고,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감동했다.
‘롱 포’ 때는 성숙해진 그녀들을 보며 또 울었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지, HPT 뮤직 어워드의 ‘아라베스크’를 볼 때도 울었다.
‘뉴아사’를 통한 일본 진출도.
소녀연맹의 첫 번째 해외 투어 콘서트도.
‘애플 크러쉬’와 일본 제패도.
‘오토마타’가 빌보드 200에 걸리고, 케이콘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을 때도.
김채현은 눈물로 추억에 도장을 찍어왔다.
출석 도장.
음방에 참여할 때마다 매니저가 찍어주는 도장처럼, 김채현은 눈물로 출석표를 채워왔다.
출석표를 모두 채우면 스페셜 공방 포토 카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김채현은 스페셜 포토 카드 같은 걸 바라서 소녀연맹을 덕질해 온 게 아니었다.
그냥, 소녀연맹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렇게 큰 선물을…….’
김채현은 코를 훌쩍이며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엔딩 포즈를 끝낸 소녀연맹 멤버들이 인민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김채현은 사라지는 그녀들을 향해 외쳤다.
“속보오오오! 루브르 박물관 조각상들 탈추우우우울!”
그녀의 주접 외침에 사방이 웃음바다가 됐다.
심지어 대기하던 아이돌들과 기획사 직원들, 스태프들마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개인 멘트를 던진 거지만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채현도 뿌듯하여 헤헤 웃었다.
그때, 장하양이 김채현을 보았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본 것이다.
하지만, 김채현이 했단 걸 알 리 없다.
이렇게 오밀조밀 모여 있는데.
“아.”
장하양은 멈춰 서서는 정확히 김채현을 보았다.
김채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장하양이 입술에 검지를 가져갔다. 그리고 김채현을 향해 튕겼다.
김채현의 심장이 망가졌다.
“아, 아아, 아…….”
김채현은 소녀연맹의 첫 번째 팬미팅이 떠올랐다. 장하양과 대면했을 때, 그녀가 말했었다.
‘같이 올라가요.’
같이.
그때부터, 장하양은 인민이들과 함께라고 쭉 생각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우리들의 프로듀싱’으로 이런 곡을 만든 건 당연할 수도 있다.
항상 라이브로 ‘사랑하다’보다 더 큰 표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아이니까.
지금 팬미팅 때로 돌아간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얼어붙어서 고개만 끄덕이는 대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다.
“네에에…….”
진정으로 우리는 소녀연맹과 함께일 거라고.
* * *
음방 생방송이 끝남과 동시에 성필은 아이튜브에 접속했다.
‘송 포 피플’ 뮤직비디오 공개, 약 5분 전.
조회 수는 1만을 약간 넘었다.
‘메인 홍보 루트가 전부 막힌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과이자 동아줄은 아이튜브다.’
‘송 포 피플’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곧 성패(成敗)를 좌우할 것이다.
사무실은 소름 끼치는 정적에 휩싸였다.
저마다 뉴스 기사든 커뮤니티 반응이든 댓글이든 확인했으나, 누구도 입을 떼는 사람이 없었다.
성필은 홍규헌에게서 받은 십자고상을 양손으로 꼭 쥐고 기도했다.
공개 30분째.
‘조회 수 약 50만…….’
빠른 상승세다.
하루 안에 1,000만을 넘길 수 있을 듯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보자면 2,000만을 넘었으면 좋겠다.
“성필아, 2,000만 넘는 거 아니야.”
“아 제발 누나! 그런 거 입 밖으로 꺼내지 마 부정 타잖아아아아아!”
“미, 미안.”
드물게도 손혜빈이 먼저 사과했다.
성필은 십자고상을 이마에 대고 신께 기도했다.
그는 물론 신앙이 없었다. 하지만 기도는 한다.
신들이 모인 단톡방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고, 먼저 읽은 어느 신이 성필을 가엾게 여겨 소원을 들어주길 바랐다.
‘제발 부탁입니다.’
하루 안에 1,000만 돌파.
가능하다면 2,000만 돌파도 바랍니다.
30분째에 조회 수가 50만에 도달하자 사무실의 분위기가 풀어졌다.
다들 이번 컴백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리고 뮤비 공개 1시간째.
“…….”
전부 다 할 말을 잃었다.
“조회 수가…….”
안 올라간다.
“아, 하하, 하…….”
손혜빈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 뭐, 어어…… 그거지? 열성적인 인민이들은 공개되자마자 볼 테니까, 그걸로 몇십만? 이제 여기저기서 막 화제가 될 거야.”
공개 1시간 30분째.
안 오른다.
손혜빈은 사색이 되어 손발을 파들파들 떨었다.
얼마 안 가 쓰러질 듯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참는 숨소리가 들렸다.
망한 건가?
절망감이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왜, 왜 우리가아…….”
홍보팀 강지혜가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오…… 이렇게 방해하는 건데요오…….”
3대 기획사.
대형 유통사.
소녀연맹이 인기 있는 게 그렇게나 잘못인가?
“예, 예술은…… 엔터테인먼트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인데에…….”
어째서 서로 싸우고 시기해야만 하는 건가.
그리고 왜 하필, 타깃이 소녀연맹이 되어야만 하는가.
“세상이 소련이들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요오…….”
강지혜를 시작으로 희미한 울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좌절, 절망, 한탄.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그 감정은 장마처럼 다가와 절대 그치지 않을 듯했다.
손혜빈은 직원들 못지않게 속이 썩어들어가는 것 같았으나, 평정을 연기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슬플 건 성필일 것이다.
손혜빈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성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성필아.”
성필은 도저히 이 상황을 못 믿겠단 듯 새로고침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다고 조회 수가 팍 올라갈 리는 없다.
“어쩔 수 없어. 이번엔 정말 어쩔 수 없었어.”
한국 최고의 엔터사들이 전력을 다하여 소녀연맹을 방해했다.
그러니 어떡할까.
앞으론 웨이퍼센트에게도, 카오틱 에너지에게도 같은 일이 펼쳐질 것이다.
손혜빈은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토할 듯했다.
그래서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성필을 일으켜야 한다.
소녀연맹이 돌아왔을 때, 성필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사기가 꺾이는 수준이 아니다.
“같이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자.”
“……누나.”
“응.”
“조회 수가 안 올라.”
손혜빈이 조용히 그의 등에 이마를 대었다.
그녀도 울고 싶었다. 그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손혜빈도 눈물을 삼켰다.
“성필아, 일단 나가서…….”
“조회 수가 안 오른다니까. 아까부터, 하나도 오르지 않아.”
다들 성필을 바라보았다.
“새로고침을 몇 번을 해도. 수십 번을 해도. 시간이 지나도, 조회 수가 안 올라.”
성필이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렸다.
수십 명의 직원들이 그의 입만 보았다.
성필의 입술이 떨려왔다. 그 입술을 억지로 열고, 목소리를 내었다.
미소와 함께.
“아이튜브가 고장 났어.”
성필은 이런 현상을 본 적 있다.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본 적이 있다.
“사이트에 과부하가 걸렸어요.”
이유는.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봐서…….”
세계 최고의 영상 미디어 플랫폼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