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65화 (665/760)

ㅅ665화

“과연 소녀연맹의 다음 초동 판매량은 얼마일까요?”

홍보팀 강지혜는 성필을 향해 프레젠테이션했다. 물론 그 프레젠테이션에 고도의 분석과 통계 같은 건 포함되지 않았다.

애초에 물건이 얼마 팔릴까 예측하는 건 마케팅의 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이 팔리면 더 찍어낸다. 그게 기본적인 태도인 것이다.

“인민이들 사이에선 ‘2배수론’이 유행하고 있지만, 그걸 배수로 파악하는 건 무리가 있어요. 숫자로 보면 판매량이 ‘롱 포’부터 10만 장, 10만 장, 20만 장씩 상승한 거거든요.”

애초에 정확히 2배수씩 늘어난 게 아니다.

“여기서 규칙성을 찾으면 다음에도 20만 장 정도 팔리지 않을까요?”

그럼 소녀연맹의 다음 앨범 초동은 66만 장이 된다.

성필의 표정이 팍 굳었다.

강지혜가 어색하게 웃으며 다음 이론을 꺼냈다.

“앨범 판매량이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 모두 말하곤 하죠. 과거엔 미래가 있다구요. 그래서 저도 과거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같이 중소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WTP에서요. 자, 여기를 보시면.”

[WTP 정규 5집 초동 33만 장.]

“저희 애들이랑 비슷한 연차에 WTP가 달성했던 초동 기록입니다. 즉, 이다음 판매량을 보면 저희 애들의 판매량을 예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성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자, 이게 그 결과예요!”

[WTP 정규 6집 초동 137만 장.]

“우리 소련이들은 137만 장을 팔 거예요!”

“지혜 씨는 감봉입니다.”

“어째서어어어어어어어!”

강지혜가 절규했다.

“이사님 그런 거죠! 타로점에 운세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좋은 말만 들으러 가는 사람! 그래서 저는 좋은 카드만 뽑아서 드린 거라구요! 근데 왜 감봉인데요! 저 얼마 전에 차도 샀는데!”

“정규 5집이랑 6집 사이에 미니 앨범이 또 있어요. 그 초동 판매량은 52만 장이었어요.”

“그럼 소련이들도 60만·70만 장 정도 팔겠죠 뭐!”

“감봉 6개월입니다.”

“끼아아아아아악!”

“왜 우리 지혜 씨 괴롭혀!”

손혜빈이 달려와 강지혜를 구출해냈다.

손혜빈이 강지혜를 감싸며 위로하자, 강지혜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

“이, 이사님이 괴롭혔어요오…….”

“으이구, 저 못난이가 할 일이 없어서 부하 직원을 괴롭히네. 지혜 씨, 울지 마세요.”

“안 울었어요(진짜 안 울었음)…….”

“쟤가 심술궂게 굴어도 이해해요. 판매량 잘 안 나오면 목 잘리거든요.”

“사, 사장님한테요? 박 이사님이……?”

“우리 애들한테 목이 잘리겠죠.”

“소련이들한테요?!”

성공은 스태프의 책임.

실패는 프로듀서의 책임.

그러니까 실패한 프로듀서 성필의 목이 잘린다.

“근데 성공과 실패의 경계가 어딘가요?”

“음…… 사실 성패의 경계 같은 건 없어요. 저번 앨범만큼만 팔려도 대성공인걸요.”

일반적인 기획사였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로 엔터의 목표는 일반적인 기획사와 같지 않다.

가로 엔터의 목표는 최고의 아이돌을 만드는 것이니까.

“성필이가 바라는 건 지혜 씨가 말한 60만 장과 137만 장 사이에요.”

“그럼…….”

“성필이는 ‘2배수론’을 믿거든요.”

믿는다.

말 그대로 믿음의 영역이다.

4년 차 아이돌이면 슬슬 팬덤 증가가 멈출 시기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그래서 올해가 분기점이며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소녀연맹에게 아직 성장성이 남아 있는가.

그 판가름이 이번 앨범에서 날 것이다.

“최악의 결과는 글로브와 비슷한 시점에 도달해서 성장이 멈추는 거고, 최고의 결과는 2배수론이 들어맞는 거예요.”

산술급수적인 증가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증가. 그래야만 아이돌계의 샤넬인 KS 엔터를 뛰어넘을 수 있다.

만약 케이어스가 현재와 모든 조건이 동등한 상태에서 딱 하나, KS 엔터 소속이 아닌 걸로 바꾼다면 그녀들은 지금처럼 성공할까?

성필의 답은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저가형 브랜드가 그 어떤 고급 재료를 쓰건, 아무리 제작에 공을 들이건 명품과 같은 값으로 옷을 팔 순 없다.

안 팔리니까.

성필이 이뤄내려는 건 그러한 업적이다.

명품과 같은 재료를 쓰고, 같은 수고를 들여 제작한 옷을 명품과 같은 가격으로 파는 것 말이다.

“저기 봐요, 기도하고 있잖아요.”

성필은 홍규헌에게서 받아온 십자고상을 양손으로 받잡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제발 2배만 오르자 딱 2배만 오르자 2배만 오르자…….”

“주식 하는 사람 같으시네요.”

“그거랑 다르진 않죠.”

앨범 판매의 세계는 카오스다.

인간의 한미한 지혜와 부정확한 통계로는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

먼 훗날 인간의 개인정보를 모두 수집한 후 빅 데이터를 만들면 소비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먼 미래의 이야기다.

“근데 이사님이 옛날보다 훨씬 절박해 보이세요. 진짜 소련이들한테 목이 잘리는 건 아니죠?”

“자기도 욕심부리는 걸 아는 거죠.”

“욕심이요?”

“여기서 2배가 올라 봐요. 그게 무슨 의미예요?”

“의미……?”

“케이어스랑 비교하면 쉬워요.”

‘아라베스크’, ‘타임’의 57%.

‘애플 크러쉬’, ‘넥타르’의 43%

‘오토마타’, ‘IWY’의 52%.

“2배수론이나 10만, 20만씩 증가하는 걸로 비교하면 안 돼요. 저희 애들의 판매량은 정말 케이어스의 딱 50%였어요.”

케이어스의 ‘헬리오스’, 초동 105만 장.

즉, 이 지속적인 통계가 들어맞는다면 소녀연맹의 다음 초동 판매량은.

“52만 장일 거예요.”

무려 2년 이상 이어진 법칙이다. 여기서 갑자기 훅 떨어지거나 올라가리라곤 생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건…….”

“네. ‘아카이브’의 이번 초동 판매량을 살짝 넘는 수준이에요. 그러니 성필이한텐 ‘최소한’ 글로브와 비슷한 판매량이나, 그보다 더 높은 판매량이 필요해요.”

쓰리톱의 위치를 계속 지킬 수 있도록.

최소한 지금의 위상을 지키기라도 하기 위해서.

강지혜는 손가락을 굽혔다 펴며 간단한 계산을 해보았다. 성필이 2배수 증가를 원한다면, 그건…….

“케이어스의 90%…….”

강지혜는 놀랐다.

여태껏 소녀연맹의 앨범 판매량을 상수(常數)로만 파악해왔기에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다.

90만 장? 뭐, 팔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아니다.

케이어스가 100만 장을 찍었다면, 그건 곧 걸그룹이 도달할 수 있는 천장을 뜻할 것이다.

정말 소녀연맹이 2배수에 도달한다면, 그건 이러한 의미다.

‘KS 엔터가 30년간 쌓은 노하우와 축적한 자본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KS 엔터 회장 아래로 전부 피를 토할 결과일 것이다.

한국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사람과 음악 제일 잘하는 인간들을 수십, 수백 명씩 데려와서 내놓은 결과란 게.

중소 회사에서 어중이떠중이 수십 명 모아서 내놓는 결과가 비슷하다고 해보아라.

어떤 인간이 화를 안 낼까.

그게 지금까진 어찌저찌 허용되었다. 어쨌거나 소녀연맹은 케이어스의 50%였으니까.

그것만으로도 기적이라 불리기 충분했다.

그런데 케이어스의 80% 혹은 90% 또는 100% 이상이 되면, 그건 정말 가벼이 생각할 게 아니다.

“진짜 신한테 비는 수밖에 없겠는데요?”

“그죠?”

강지혜의 말에 손혜빈이 웃으며 동의했다.

강지혜는 믿지 않는 신에게 기도하는 성필의 모습이 다르게 보였다.

지금까진 괜히 심술부리는 줄 알았는데, 성필은 성필 나름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케이어스의 100만 장 돌파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던 거겠지. 지금 따라잡지 못하면 기회가 없다, 그리 생각할지도 몰랐다.

이렇게나 절박하다.

이렇게나 절박한데도.

‘팬사인회랑 영상 통화 팬미팅 횟수 증가는 한사코 거부하셨던 건가…….’

앨범을 사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팬미팅이다.

팬미팅 횟수를 늘리면 앨범 판매량이 증가하는 게 일반적인 공식이다.

물론 너무 많이 늘리면 욕먹는다.

보이그룹 중엔 팬사인회 10차, 20차를 거듭하여 앨범을 판다면서 욕먹는 이들도 있으니. 그렇게 앨범을 파는 게 무슨 의미냐며 사람들이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게다가 팬사인회를 무한정 올린다고 판매량이 무한정 증가하는 게 아니다.

판매량 증가에도 천장이 있으며, 의외로 높지 않다. 팬미팅에 가려고 앨범을 수십 장씩 살 고래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이번이 그렇게 중요한 타이밍이라면 고려해볼 만한 거 아닌가?’

성필은 홍보팀에서 그 제안이 나오자 일언지하에 거부했더랬다.

성필이 말했었다.

‘사람들은 소녀연맹의 음악을 들으려 앨범을 사지 않는다. 하지만 앨범을 산 사람은 소녀연맹의 음악을 듣는다.’

그렇기에 앨범은 사랑의 표시다.

뮤지션을 응원한다는 증표이며, 자신이 한때 이 뮤지션을 사랑했음을 기록하는 증거이다.

시대가 변하여 앨범은 굿즈 모음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성필은 그러한 앨범을 팬들이 즐겨주었으면 한다고 한다.

성필은 앨범이 사랑의 증거로 남길 바라지, 팬미팅 티켓으로 생각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소녀연맹은 해외 팬덤이 더 강세니까.’

당연한 이치로 해외에선 앨범이 더 비싸다. 그리고 한국에서 하는 팬미팅에 참여하기도 훨씬 힘들다.

해외 팬덤이 더 많은 소녀연맹이 팬미팅 횟수를 늘려봤자, 해외 팬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뿐이겠지.

애초에 진심으로 팬미팅에 가겠다며 앨범을 사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그렇게 생각하니…….

“앨범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강지혜가 문득 그리 말했다.

“많이 팔린 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정말 다른 아이돌들이랑 비교하고, 그걸로 끝일까요?”

케이어스를 이겼다.

승리, 끝!

이렇게 자축하려고 앨범 판매량을 따지는 건가?

“지혜 씨, 소녀연맹 세 번째 앨범인 ‘걸스 유니온’이 몇 장 팔렸죠?”

“12만 장이요.”

타이틀곡 ‘아라베스크’가 들어있던 앨범이다.

“그 앨범이 나온 후에 콘서트에 들어갔죠?”

“네.”

“한국에서 몇 명이 모였나요?”

“10,000명 정도……. 아.”

강지혜가 무언가를 깨달았다.

“46만 장 판 지금은 몇 명이 올까요? 단순 계산으로는 40,000명 정도가 오지 않을까요. 저번에 3일 차까지 금방 매진됐으니, 50,000명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스타디움을 채울 수 있다.

“앨범 판매량은 소녀연맹을 위해 수십만 원 쓰는 게 아깝지 않은 사람들, 콘서트에 올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 그걸 아는 척도예요. 저희의 소련이들을 그만큼이나 진지하게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수만 명이나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사랑하시지만, 주머니 사정과 상황이 여의치 않은 분들은 수십만 명이 있는 거죠. 이러면, 저희 소련이들을 뮤지션으로 사랑해주시는 분들은 얼마나 계실까요?”

소녀연맹의 음악을 즐겨듣는 사람은?

“수백만 명…….”

“앨범은 그 척도예요. 그러니까…… 소련이들에게 과몰입하는 사람의 숫자? 팬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요. 보세요, 성필이.”

박성필.

프로듀서.

그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에겐 자신의 그림을 한순간이나마 멈춰서 보아주는 이들이 감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 멈춰서 감상하는 사람이. 그리고 그보다는 그림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더욱 감사할 것이다.

성필에게 판매량은 그런 의미다.

그림 앞에 멈춰서 감탄하고, 감상하다가, 그림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사람의 숫자 말이다.

“지혜 씨 입장에서 이 일은 사업 업무예요. 사업적으로 보자면, 지금만 해도 소련이들은 충분히 잘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성필이에겐 충분치 않은 거예요.”

이 상황도 만족스럽지만.

만족을 넘어 황홀해지길 바란다.

세상 모두가 소녀연맹을 보아주길 바란다.

“그런 마음이죠. 성필이의 절박함은 그냥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뭔가 창조해보지 않은 인간에게, 성필의 마음은 멀고도 멀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강지혜는 성필이 다시 보였다. 저 절박함 안에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다니.

‘그렇구나. 박 이사님에게 앨범은 예술품이야. 가로 엔터의 브랜드 미학이 들어가는 거잖아. 팬미팅 티켓 같은 게 아니라.’

강지혜가 여태껏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발상이었다.

뭔가 고뇌하는 예술가 같아서 멋져 보이기도 한…….

“이대론 사장님과 영원히 함께할 수 없어…….”

흑심이 있는 모양이다.

“뭐야, 형 아직도 이러고 있어요?”

민경섭은 밖에 다녀왔는지 옷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와 눈이 맞자,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던 강지혜는 괜히 찔렸다.

성필이 고개를 들었다.

“경섭아, 같이 기도할래?”

“기도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요.”

갑자기 명언이 나왔다.

“계속 기도만 할 거면 저랑 담배나 피우러 가요.”

“그럴까?”

성필은 홍규헌에게 받은 십자고상을 품 안에 소중히 넣은 후 민경섭을 따라갔다.

강지혜는 성필의 마수에서 벗어났단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그녀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박 이사님 담배 끊으셨지 않아요?”

* * *

민경섭은 이야기와 함께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성필은 곁에 서서 가만히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1주 차에 안 나가기로 한 음방 방송사는…….”

“예능 출연 거부요.”

그건 이해할 만하다.

‘첫째 주에 이 옷이 아니면 출연 안 합니다’라고 강짜를 부렸으니, 보복하고 싶을 만도 하다.

방송국의 힘은 단합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가 첫 주에 나가는 걸 허락해준 음방 방송국도…….”

“완전한 픽스는 아니긴 했지만, 예능같이 홍보 방송에 나오기로 이야기가 됐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말이 바뀌었어요. 생각해본다고 했는데, 그건 아마…….”

“안 내보내 준단 거겠지.”

“그렇겠죠.”

이렇게 되면 소녀연맹은 텔레비전 프로모션 없이 이번 컴백을 치르게 될 것이다.

싸워야 하는데 왼손이 잘린 모양새라고 해야 할까.

우효민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어쩌면, 그 음방 하나도 못 나갈 수도 있어요. 하하.”

그렇게 되면 오른손도 잘린다.

민경섭이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우리 애들 급 돼서 공중파는 하나도 못 나가고 케이블만 돌게 생겼네요.”

민경섭의 목소리엔 원망이 서려 있었다.

성필을 향한 게 아니었다.

성필처럼, 민경섭도 내막을 파악했다.

성필은 난간에 팔을 걸치고 하늘을 보았다. 눈동자가 의미 없이 구르기만 한 게 몇 초.

그가 마침내 상황을 인정했다.

“드디어 진심이 됐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이들이야 뻔하다.

한국 최고(最古)이며 최고(最高)의 기획사들이 선언했다.

너희들, 가로 엔터의 손발을 자르겠노라고.

소녀연맹 컴백 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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