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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58화 (658/760)

658화

프랑스 케이콘 하루 전.

소녀연맹은 파르크 데 프랭스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밖에서부터 그러했지만, 안으로 들어오니 훨씬 더 위축되었다.

“우리가 이런 무대에…….”

백설하는 들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스타디움. 모든 뮤지션의 목표.

비록 합동 무대라지만 스타디움에 서게 됐다. 이곳에 오면 마냥 좋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직접 보니 무대에 섰을 때 실금하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겁난다.

“저, 저기 관객석이 전부 들어차는 거지……?”

“그것보다 많죠.”

장하양은 백설하가 떨어뜨린 가방을 주워 그녀의 손에 들려주었다. 자식이 떨어뜨린 장난감을 주워 손에 꼭 쥐여주는 어머니 같았다.

“관객석 1/3은 저희 무대 때문에 못 쓴다지만, 나머지 관객석은 다 멀쩡하잖아요. 그리고 거기에 이 필드…….”

축구선수들이 뛰어다니는 이 필드 대부분이 관객으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니 관객은 5만 명 이상이다.

백설하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어…….”

“쌤 오줌은 안 지렸어요?”

조아라가 킥킥 웃자.

“아직은…….”

심각한 대답이 돌아왔다.

리카가 황급히 백설하를 일으켜 세웠다.

“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요! 여기저기서 저희를 주시하고 있다구요!”

소녀연맹이 파르크 데 프랭스에 미리 와 본 건 리허설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점심·저녁을 거쳐 출연하는 모든 아이돌이 리허설한다.

소녀연맹은 점심에 배정됐다.

그리고 그 때문에, 드넓은 필드엔 소녀연맹과 다른 그룹들이 산재해 있었다.

“약하게 보이면 가장 먼저 공격당할 거라구요!”

“무슨 헌터 시험이냐.”

“에, 헌터 시험……?”

리카가 묘한 웃음을 보이자 신아름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름이 혹시, ‘그 만화’ 본 거야? 드디어 봤구나! 아타시(내)가 몇 년이나 추천해줬는데 드디어……!”

“초반만 봤거든!”

“아무튼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요! 저기 보세요! 초동 150만 장의 라이츠 선배님들이에요!”

“정말이네. 공백기가 1년 넘었다면서. 이런 데는 오나 보네.”

“선배니이이이임!”

리카가 도란도란 모인 라이츠를 향해 손을 흔들자 소녀연맹 멤버들이 대경실색했다.

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데 리카의 인사를 받은 라이츠 멤버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소녀연맹 멤버들도 동시에 부동자세를 취한 후 허리를 팍 숙였다.

라이츠 멤버 중 한 명은 리카처럼 폴짝이며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신아름이 아연히 물었다.

“너 어떻게 선배님들이랑…….”

“료타 선배님이랑 같은 예능에 나갔었어!”

저기서 폴짝폴짝 뛰는 멤버다.

“나간 김에 유우쨩을 영업했지! 덕분에 유우쨩이랑 료타 선배님은 친구가 됐어!”

“어떻게?”

“아타시(내)가 유우쨩 보고 먼저 연락해보라고 했는데?”

“해, 했어?”

“모찌론(당연)!”

신아름은 유우토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누나 잘못 둔 죄로 졸지에 대선배의 연락처를 받고 연락까지 해야 했으니까.

만약 신아름이 데뷔했을 때 성필이 ‘소녀시절’ 멤버의 연락처를 얻어와 전화해보라고 했다면, 신아름은 실신했을 것이다.

“이걸로 유우쨩은 든든한 빽을 얻은 거야!”

리카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을 비볐다. 그녀의 사악함과 귀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조아라는 리카와 저 멀리 있는 료타를 번갈아 보았다.

“일본인들은 원래 다 텐션이 높아? 선배님 아직도 뛰고 있는데?”

“인종차별이얏!”

스테이지 준비가 끝나고, 라이츠의 리허설이 시작됐다.

소녀연맹 멤버들은 그들의 리허설을 유심히 보았다. 리허설이 진행될수록 그녀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떡하냐.”

조아라가 곤란하단 듯 웃었다.

파르크 데 프랭스.

축구 경기가 벌어질 정도로 드넓은 곳이다. 심지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파리의 구장 중 하나이니, 크기는 유럽을 기준으로 봐도 톱급이다.

“우리가 서 온 무대들이랑 격이 다르잖아.”

무대와 관객석과의 거리.

천장의 높이.

그리고 관객석을 모두 채울 사람들의 목소리.

이 모든 게 소녀연맹이 경험했던 스케일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감을 못 잡겠어.”

라이츠 멤버들조차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노랫소리가 멤버들의 귀와 관객들의 귀에 도달하는 시차가 있다.

심지어 관객들의 위치에 따라 시간 차이도 다르다. 게다가 건물의 특징과 장식물 위치에 따른 음향 반사까지 있다.

여기에 본방송에 들어가면 관객의 함성까지 섞여 대혼란이 벌어질 게 자명하다.

“인이어 빼는 건 포기해야겠네요. 5만 명이 소리 지르면 얼마나 대단한지 듣고 싶었는데.”

조아라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곳에서 인이어를 벗으면 가수는 순식간에 무력화될 것이다.

1,000명 이상 무대에서조차, 인이어를 벗으면 스피커 노래와 관객의 함성 때문에 자기 노랫소리가 제대로 안 들린다.

가수에게 들리는 건 그저 소음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무려 50,000명 이상 규모다.

안 그래도 인이어를 끼면 외부 음향이 거의 차단되지만, 이번엔 훨씬 확실해야 할 것이다.

음악과 자기 노랫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도록, 아예 귀를 막는 수준으로 대비해야 한다.

“감 잡았나 봐요.”

몇 번씩 실수하던 라이츠는 리허설이 거듭되자 감을 잡았다.

본인들의 실력을 여실히 발휘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음향 엔지니어와의 의견 조율이었다.

아마 소녀연맹 멤버들이 말한 것처럼, 인이어의 소리를 극도로 키웠을 것이다.

“집중력을 조금이라도 잃으면 실수가 도미노처럼 터져 나오겠네요.”

스타디움.

가수로선 최종 목표이자,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웬만해선 설 기회는 몇 번이 전부다. 그렇기에 언제나 새로울 수밖에 없는 지옥이자 꿈의 무대다.

라이츠의 리허설이 끝났다.

조아라가 씩 미소 지었다.

“연습 무대로 딱 괜찮네요. 2~3년 뒤의 예행 연습장으로 부족함이 없어요.”

언젠가 소녀연맹은 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테니까.

소녀연맹은 두려움보다 기대에서 비롯된 두근거림을 품었다. 그리고 경쾌한 걸음으로 무대로 나아갔다.

“얘들아 나 다리에 힘 풀렸어…….”

멤버들은 백설하를 부축하여 무대로 끌고 갔다.

* * *

파리의 야경을 비추는 호텔의 차창. 그렇지만 한국처럼 고도와 층이 높진 않다.

파리는 고풍스럽고 고전적인 도시다. 서울과 같은 마천루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아카이브가 묵은 숙소의 가치를 훼손하진 않았다. 이 호텔은 파리에서도 유명했고, 그 전통을 오래도록 유지해오고 있었다.

강성욱이 아카이브에게 주는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 뭐 해애!”

“야아아악!”

유경민이 야경을 보는 동안,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멤버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고 있다.

수학여행 온 기분은 아닐는지.

유경민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공기가 홱 바뀌었다. 어지러이 돌아다니던 멤버들은 뚝 멈추었다.

“시끄러웠죠……?”

막내가 불안한 어조로 사과했다.

유경민은 괜찮다고 답한 후 방을 나섰다. 이후 경호원과 현지 매니저를 불러 호텔을 빠져나갔다.

“음식점 추천해줘요.”

“이 시간에요?”

프랑스인 매니저는 한국말을 구사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가며 매니저는 프랑스의 식당 종류에 대해 말해주었다.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곳은 대부분 ‘브라세리’입니다. 사시사철 메뉴가 같죠. 보잘것없는 식당이란 뜻입니다. 그에 비해 ‘비스트로’는 조금 더 본격적이죠. 레스토랑처럼 미식에 본격적이진 않지만, 음식다운 음식이 나옵니다.”

매니저가 유경민을 데려온 곳은 그러한 비스트로 중 하나였다.

매니저는 안쪽의 비어 있는 자리를 발견하곤 그곳에 앉았다. 그는 먼저 와인이 적힌 메뉴판을 펼쳤다.

“내일이 공연이니 술은 피해야겠죠. 생수로 합시다. 그런데 이곳은 고급 생수라 7에서 8유로 정도로 가격이 있습니다. 내키지 않으신다면 수돗물(석회수)은 공짜이니…….”

“저.”

경호원이 말하자 매니저가 고개를 들었다.

유경민은 그들의 자리에 없었다. 대신 구석에서 식사하고 있던 다른 테이블 앞에 서 있었다.

“음?”

글로브의 라희와 지유였다.

* * *

각자의 매니저와 경호원들끼리 자리를 잡고, 유경민은 글로브 선배님들의 자리에 합석했다.

“부모님께 추천받은 곳이야.”

라희는 와인을 홀짝이며 말했다.

“파리로 간다고 하니 많이 추천해주셨어. 여기가 그중 하나고.”

처음 안 사실인데, 라희는 독일과 한국의 혼혈이라고 한다. 본명은 라우라 그라비나라고 한다.

유경민은 스테이크 타르타르(육회)를 먹는 지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라희가 싱긋 미소 지었다.

“메뉴는?”

“저 프랑스어 못 읽어요. 선배님이 드시는 거랑 같은 걸로 해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지.”

라희는 생수와 플라(메인 요리), 디저트를 차례로 주문했다. 앙트레(에피타이저)는 생략했다.

“라희 선배님.”

“우리 그냥 말 놓을까? 동갑 아니야?”

“그래.”

유경민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놓았다. 지유가 픽 웃음을 터뜨렸다.

“경민이 너 포유로 활동할 때 우리 대기실에 인사 왔었잖아. 그때 이미 말 놓기로 했는데, 다 잊었나 보네.”

뭐, 라희도 잊었으니 피장파장이겠지만.

유경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유 때 일은 기억 안 해.”

기억하기 싫다.

“그나저나 곡 바꾸기 무대라니.”

라희가 손깍지를 끼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싫네.”

“뭐가?”

“귀찮잖아.”

“하고 싶어서 한 거야.”

“오토마타가 탐나는 곡이긴 해. 다들 그런 적 있지 않아? 저 아이돌의 곡이 우리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왜 그럴까. 가수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소설가들은? 화가는?”

“몰라.”

“난 아이돌이 그런 마음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해. 우린 실연자(實演子)에 가까워. 클래식 주자(奏者)처럼. 그래서일까, ‘저 곡이 나에게 왔다면’이란 생각을 자주 하지. 클래식 주자랑 다른 점은, 남이 연주한 곡을 우리가 다시 할 순 없단 거야. 앨범으로 낼 수도 없고.”

“이런 생각을 많이 했나 봐?”

“역(逆)을 생각했지, 꽤 자주.”

“역으로?”

“우리 곡을 다른 그룹이 했다면 더 성공했을까…… 같은 거.”

메인 메뉴가 나왔다.

유경민은 햄버그 모양의 육회를 바라보았다. 위엔 계란 노른자가 먹음직스러운 모양새로 올라와 있었다.

한 입 먹었다.

유경민이 물었다.

“작곡가한테 미안하다고 생각해?”

“미안하긴. 비교하자면 우리는 미텐바흐야.”

“미텐바흐?”

“바이올린. 충분히 비싸고 충분히 좋은 소리를 내고 충분히 쓸만하지만, 압도적으로 좋은 바이올린도 물론 있어. 스트라디바리우스.”

세계 최고의 명장이 만들어낸, 이젠 신화의 영역에 들어선 명기(名器)다.

“좋은 주자는 좋은 악기가 있으면 훨씬 좋은 소리를 내지만,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잖아. 그래도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면, 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지.”

“넌 너 스스로에 쉽게 값을 매기네. 자존심 안 상해?”

“쉽게 매길 수 있지. 아이돌이 악기와 다른 점은, 악기와 달리 성장한단 거니까. 내가 매긴 값이 점점 올라갈 테니 얼마든지 매길 수 있지.”

“……오래 하겠네.”

“뭘?”

“아이돌.”

유경민은 이번엔 지유를 보았다.

지유는 식사를 마치곤 지루한 표정으로 둘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일이 공연이니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을지도 몰랐다.

“너희는…….”

유경민이 힘들게 물었다.

“내일 라이브 AR 써?”

바보 같은 질문이다. 안 쓰는 그룹이 없다시피 하니까. 가수도 부분 라이브 AR을 쓰는데, 춤까지 추는 아이돌이 무슨 깡으로 라이브 AR을 안 쓰겠는가.

“부분으로만.”

지유가 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

“보컬 애드리브 들어가는 파트만 써.”

유경민이 깜짝 놀랐다.

보컬 애드리브에만 AR을 쓴다면, 사실상 모든 파트를 라이브로 하는 것과 같다.

보컬 애드리브란 곡에는 포함되지 않은 가수의 기교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이라이트 보컬과 하모니를 이루도록 ’워어어‘ 같이 고음을 올리는 것 말이다.

애드리브만 하면 원래 있던 가사를 씹어야 하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AR을 삽입한다. 노래에 애드리브가 섞이도록 말이다.

유경민은 입술을 달싹였다.

“괜찮겠어?”

이렇게 큰 무대에서 라이브라는 위험한 수를 둬도 괜찮겠느냐. 그런 뜻이 아니었다.

얼마 전 글로브는 음악방송 생방송에서 삑사리를 냈었다. 지유의 하이라이트 이후 아웃트로 파트에서였다.

아주 잠깐이었고 곧바로 음정도 잡았으나, 현대는 기록의 시대다.

이때다 싶어 온갖 악질들이 지유가 삑사리 내는 파트만 잘라내어 유포했다. 모든 곳에서 성공했어도, 한 곳에서 실패하면 곧장 쓰레기 취급이다.

멘탈이 가루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음원이 최상의 상태가 아니야.”

지유가 깔끔히 답했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잘라내서, 합친 누더기가 우리의 최고가 아니야.”

“어……?”

“무대 위가 아니면 익힐 수 없는 감각이 있어. 군인이 훈련을 아무리 힘들게 받아봐야, 전쟁터가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게 있잖아.”

한 번 실패했다고 실망하여 안전한 길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그거야.”

아우라.

복제 불가능한 원본의 존재감.

유경민은 포크를 놓았다. 그녀가 슬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렇구나.”

“너희는 라이브 AR 써?”

“응.”

유경민이 시선을 떨군 건 지유 때문이었다. 지유가 발하는 빛이 너무나 눈부셔서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써야지.”

강성욱에게 이렇게 배웠다.

뮤지션이 보여주는 건 꿈이라고. 그 꿈은 거짓말의 장막을 쳐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애초에 대중이 보는 건 진짜가 아니다.

한없이 아름답게 꾸며진 수족관일 뿐이다.

너희에게 오는 비난은 거짓을 향한 것이니 상처받지 말고.

너희에게 오는 칭찬은 잘 꾸며진 꿈을 향한 것이니 부수지 말라.

“쓸 수밖에 없지…….”

오토마타는 오늘까지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니, 유경민은 꿈을 부수지 않는다.

부술 수 없다.

팬들에겐 언제나 아름다운 단면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게 나의.

‘아이돌리즘이니까.’

팬들이 품을 행복에 비하면, 유경민 개인의 아쉬움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때 디저트가 나왔다.

가게의 주인은 직접 디저트를 서빙하며 프랑스어로 무어라 물었다. 라희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Artiste.”

주인은 오오 감탄하면서 꾸벅 인사하곤 물러났다.

유경민이 물었다.

“뭐라고 하셨어?”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우리 매니저님들이랑 경호원분들 보고 궁금하셨나 봐.”

“방금 네가 한 말은…….”

“영어랑 비슷하지?”

아티스트.

프랑스어로 아르티스트다.

“예술가라고 말했어.”

유경민은 침묵만을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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