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57화 (657/760)

657화

케이콘 사흘 전.

아카이브가 소녀연맹의 ‘오토마타’ 퍼포먼스를 익히는 데 실패했단 소식이 전해졌다.

강성욱은 지그시 눈을 감곤 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꺼풀이 올라가고 드러난 눈동자엔 메마른 감정만이 비쳤다.

“실패작인가…….”

아카이브 메인 프로듀서가 강성욱을 향해 중지를 세웠다.

“아, 농담인데 반응 한 번 살벌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쇼.”

“네.”

강성욱 대표는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검지로 베베 꼬았다.

“몇 달이나 연습했는데 아직도? 컴백 연습만큼 집중적으로 하진 않았다지만, 이건 정말 실망스러운 결과 아닌가요?”

“경민이가 다른 멤버들의 파트를 받아 가서 커버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합니다.”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건가요…….”

강성욱은 문제를 경험으로 꼽았다.

하지만 메인 프로듀서가 생각하기로, 문제는 경험이 아니다.

그냥 ‘오토마타’ 퍼포먼스가 어느 경계선에 있다. 재능과 노력의 경계선에 걸린 ‘오토마타’는 범재의 손에 들어가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작품 ‘오토마타’가 아카이브를 밀어내는 느낌이다.

“저희 애들에겐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거 아닐까요. 아카이브는 무대와 음원의 균형을 잡기 위해 설계된 그룹 아닙니까.”

메인 보컬 둘.

메인 댄서 둘.

리드 포지션 하나, 유경민.

이렇게 구성된 그룹이다.

“경민이 혼자라면 되겠지만, ‘오토마타’는 모든 멤버들의 기량이 상당해야 소화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아카이브와 상성이 안 좋았던 겁니다.”

“남은 사흘을 전부 오토마타에만 쏟아부어도 불가능한가요?”

“그렇게 보입니다. 노력으로 어떻게 될 게 아니라…….”

“저는 되던데.”

그야 당신은 30년 동안 춤추고 노래해 왔으니까 되겠지.

아카이브는 유경민을 제외하곤 전부 10대 후반이다.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만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게 불합리한 거다.

안 그래도 메인 보컬 포지션인 두 멤버는 악질들의 주요 타깃이 된다. 그들의 1인 직캠을 집요하고 물고 늘어져 ‘뚝딱이’란 멸칭을 붙인다.

메인 댄서 포지션 둘도 비슷하다. 노래 더럽게 못하면서 잘도 아이돌이 됐다느니, 그런 말을 들어 먹는다.

그럼에도 아카이브의 기량은 웬만한 그룹을 상회한다. 그런 아카이브마저도 ‘오토마타’에는 닿지 못한다.

“이상하네요.”

“그럼 대표님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주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럴 순 없어요. 제가 영상을 보고 익힌 게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춤은 3차원 공간 예술이다. 그런데 그 춤이 담기는 매체인 영상은 2차원이다.

2차원으로 춤을 익혀 3차원으로 펼치면 어긋남이 발생한다.

“제가 추는 오토마타는 저만의 거예요. 그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의미가 없죠. 오토마타의 완성은 그 아이들의 감에 맡기려고 했지만, 이젠 그것도 요원하네요. 케이콘 몇 주 전부터 제 눈으로 수정을 거듭하면 어떻게든 닿을까 했는데…….”

안 됐다.

강성욱은 풀이 죽었다. 자신만만하게 성필에게 대결하자고 했건만, 정작 케이콘 당일 근처까지 와서도 퍼포먼스가 불완전하니 말이다.

메인 프로듀서는 속이 쓰렸다.

‘대표님은 대결을 좋아하셔.’

아이돌간의 성과를 비교하여 통계를 작성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토록 직접적인 대결에서 지게 생겼으니, 상심할 만도 하다.

메인 프로듀서는 강성욱을 위로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잖습니까.”

“어떤?”

“소녀연맹이 ‘칠링’ 퍼포먼스를 완성하지 못했을 경우입니다. 둘 다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만 남기고 끝나겠죠.”

“그렇다면 거기에 걸어볼까요.”

“예, 오토마타는 이제 그만 신경 쓰시고…….”

“오토마타의 퍼포먼스 디렉터가 다키스트의 유선이었죠?”

“어…… 그랬었죠, 아마.”

HPT 뮤직 어워드에서 서유선이 올해의 퍼포먼스 디렉터로 뽑혔었다. 오토마타를 디렉팅한 공로로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메인 프로듀서가 ‘아!’ 감탄을 흘렸다.

“오토마타의 원본을 디렉팅한 사람은 방법을 알 거예요!”

“그렇죠. 아이돌로 활동했던 유선이 라이브를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어요. 본인이 할 수 있으니까 소녀연맹에게 컨펌해준 거겠죠. 그리고, 본인의 역량을 소녀연맹에게 전수해 주었을 거예요.”

소녀연맹의 영상으로는 도저히 짚어낼 수 없던 오토마타의 세세한 방법론까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르침은 시키는 것 이상의 영역이다.

만약 시키는 것만으로 완성에 이를 수 있다면, 교육학이란 학문이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과하다 싶어 안 했지만, 이젠 과해도 상관없어요. 저는 꼭 이기고 싶으니까요.”

케이콘에서 소녀연맹과 맞서기 위해 오토마타의 퍼포먼스 디렉터까지 부른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 일이다. 케이콘 곡 바꾸기 무대가 뭐라고 그런 짓까지 한단 말인가.

하지만 아카이브가 끝끝내 해내지 못하자 강성욱은 오기가 생겼다. 아카이브의 재능과 능력이 문제가 아니다. 단지 스승이 없었을 뿐이다.

그리 믿고 싶었다.

“당장 유선 씨에게 연락하세요!”

“예!”

메인 프로듀서는 희망을 품고 대표 집무실을 떠났다. 몇 시간 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 퍼포먼스 디렉터라면서요. 그쪽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인맥을 다 동원해도 유선과 연락할 수가 없어서……. 가로 엔터에 물어보는 건…….”

“안 돼!”

강성욱은 극렬히 거부했다.

“그건 꼬리 내리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아마 가로 엔터 측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유선을 찾았던 거겠죠. 은둔해있던 유선을, 우리는 모르는 어떤 방법으로 찾아낸 거예요.”

“……KS 엔터일까요.”

“소녀연맹과 케이어스로 대표되듯 두 회사의 수뇌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겠죠.”

메인 프로듀서는 다음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만약 가로 엔터가 KS 엔터를 통해서 서유선을 섭외한 거라면, 그건 최악의 상황이다.

SMS 엔터는 그럴 수 없을 테니까.

그건 가로 엔터에게 서유선의 소재를 물어보는 것 이상으로 치욕적이다. 동시에, SMS 엔터와 KS 엔터의 머리들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옛날부터 싸워온 상대였으니까.

강성욱은 입술을 검지로 톡톡 두드리다가 폰을 꺼냈다. 메인 프로듀서가 깜짝 놀랐다.

“설마, 대표님…….”

“규완이한테 물어봐야겠어요. 자존심이 상하지만, 이 싸움은 가로 엔터와의 싸움이에요. 해묵은 원한은 잊도록 하죠.”

거국적인 결정이다.

과연, 사적인 원한을 접는 한이 있더라도 승리를 추구하겠다는 건가.

속이 넓다.

중소 기획사와 승부를 내려는 걸 보면 속이 좁은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뭐, 이제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긴 하겠다. 메인 프로듀서는 조마조마하게 강성욱을 바라보았다.

“……어, 오랜만이다.”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KS 엔터테인먼트 문규완 회장이, 전화를 받았다.

“으하핳! 뭘, 내가 전화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잖아? 옛날엔 자주 얼굴 보고 얘기도 나눴는데. 요즘엔 둘 다 워낙 잘나지셔서 얼굴 볼 기회가 없네.”

대화의 방향이 순조롭다.

“응? 언제 얘기를 하고 있어. 애가 날이 잔뜩 서 있네.”

……대화가 서로를 살짝씩 긁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무슨 소리냐 그게! 날조하고 앉았네.”

강성욱의 얼굴이 서서히 붉어졌다. 입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은 건조했다.

“KS 엔터는 하는 게 뭐냐? 우리 레이어드 애들 차트 1위 10번 이상 차지하는 동안 븨이에스는 ‘포트레이트 인 유’도르 원툴이잖아? 불쌍하다 불쌍해. 그 재능을 가지고 KS 엔터를 가냐? 뭐? 야 이 새끼야 ‘IWY’로 한 번 대박 냈으면 끝이야?! 우린 그런 건 성공으로도 안 쳐요! 파하! 이놈 이거 아주 어이가 없는 놈이네? PTR―17이 우리 돌판 다 망치는 거야! 그래 너 앨범 많이 많이 팔아서 잘 먹고 잘살아라. 뭐? 야 너 어디야 이 새끼야!”

싸우기 시작했다.

강성욱은 씩씩 화를 식히며 전화를 끊었다. 메인 프로듀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유선이는…….”

“……아!”

강성욱이 푸후 한숨을 뱉으며 얼굴을 감쌌다.

오랜만에 떠올랐다. 문규완과 더는 연락하지 않게 된 이유가.

영혼의 라이벌로 20년 동안 싸우며 서로 할 말 못 할 말 많이도 주고받았다.

소녀연맹이 케이어스를 꺾고 음방 1위를 거머쥐었을 때, 신아름이 김민주에게 코알라처럼 달라붙었던 건 애교 수준이다.

문규완과 강성욱은 서로에게 훨씬 더 극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었다.

하나를 예시로 들자면, 레이어드가 븨이에스를 꺾었을 때 KS 엔터 후문으로 거대 화환 10개를 배달했는데 거기엔 이런 문구가……(생략).

“저희 애들은 이제 어떡하죠…….”

“괜찮아요. 아직 방법이 하나 더 있으니까요.”

강성욱이 또 다른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참나, 이 자식이.”

강성욱이 흐뭇하게 웃었다.

“번호 바꾸면 보통 바꾼 번호를 알려주지 않나요?”

“그렇, 죠. 보통은. 어느 분에게 연락하셨길래요?”

“정호환 이사요.”

왜 안 알려줬는지 알 것 같다.

강성욱은 또 검지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애들 ‘오토마타’ 녹음은 했나요?”

“라이브로 할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셨으니 안 했습니다. 가로 엔터에서 받은 MR만 있는 상태입니다.”

“이대로면 어쩔 수 없네요. 라이브 AR로 녹음하세요.”

라이브 AR.

실제 라이브로 부르는 것같이 녹음한 AR이다. 립싱크를 해도, 녹음 자체에 현장감이 있어 사람들이 눈치채기 어렵다.

“지금이 라스트 미닛이에요. 애들도 몇 달 동안 오토마타를 반복 연습하느라 실력이 쌓였을 테니, 따로 디렉팅은 필요 없겠죠. 최대한 빨리 AR을 준비하고, 그걸로 연습시키도록 하세요.”

“……경민이가 속상하겠네요.”

‘오토마타’를 연습하는 유경민은 눈에 독기가 서려 있다. 자신이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필요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오토마타를 버거워하는 멤버들의 파트를 조금씩 대신 맡아주기도 했으니,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유경민이 독기를 머금은 건 다른 멤버들 때문이다. 연습을 해도, 도저히 소녀연맹 수준에 닿지 못하기에 화가 쌓여간 것이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멤버들을 몰아붙이고 있긴 하다만, 결판은 안 날 것이다.

“속상하겠죠.”

강성욱이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어쩌겠어요, 그게 한계인걸.”

“대표님은 괜찮으십니까?”

“AR을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관객들의 마음에 닿을 무대에요. 비록 속임수가 있더라도, 그게 최고의 경험으로 이어진다면 부끄러움 따윈 없어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행복한 법이다.

“저희는 꿈을 파는 거니까요. 소녀연맹을 꺾을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 저희가 팬에게 전해주는 꿈을 꺾진 않아요.”

실패의 위험은 결코 감수하지 않겠다.

추하고 더러울지라도, 어쨌거나 강성욱은 꿈을 만드는 프로듀서다. 꿈엔 언제나 속임수의 장막이 있으니 죄책감은 없다.

오히려 거짓이 세상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면, 거짓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경민이가 속상한 건 문제가 안 돼요.”

* * *

올해 케이콘은 총 세 나라에서 진행된다.

프랑스, 일본, 미국.

그 첫 번째 타자인 ‘KCON in Paris’는 동아시아에선 일본 표준시로 8시에 방영된다. 현재 한국은 저녁이지만 프랑스는 대낮일 것이다.

가로 엔터 1층 휴게 공간엔 사장 홍규헌과 성필, 한구인, 손혜빈이 소파에 도란도란 앉아 방영을 기다렸다.

“이 과자 맛있네. 누가 사 왔어?”

홍규헌은 쿠키를 오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저요.”

한 템포 늦게 성필이 답했다. 그는 빨려 들어갈 것처럼 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어디서 샀어?”

“…….”

몇 초 후, 성필이 또 한발 늦게 답했다.

“애들 공항에 배웅할 때 근처 백화점에서요.”

“우리 애들 보내느라 눈물바다였을 텐데, 용케 다 같이 먹을 걸 살 생각을 했네.”

또 성필은 바로 대답이 없었다.

한구인과 손혜빈이 홍규헌의 눈치를 보았다. 사장이 물어보는데 성필은 폰만 볼 뿐이었으니까.

굳이 사장이 상대가 아니더라도 무례한 행동이었다.

“……네?”

심지어 질문도 못 알아듣고 반문을 해버렸다.

홍규헌이 쿠키 케이스에서 쿠키를 한아름 집어 성필의 입 안에 쑤셔 박았다.

“우욱! 웁!”

“사람이 말할 땐 집중하란 거 안 배웠어 박 이사?”

성필이 눈물까지 흘리며 힘겹게 과자를 씹었다. 그런 성필의 등을 한구인이 애처롭게 두드려주었다.

성필은 간신히 과자를 씹어 삼켰다.

“사장님이 먹여주시니까 더 맛있네요. 아아―.”

“얘 진짜 돌아버린 걸까요?”

“‘엿 같네’를 반어법으로 표현한 거 아닐까?”

홍규헌은 끝까지 과자를 먹여주지 않았다. 성필은 괜스레 쓸쓸한 티를 내며 홀로 과자를 집어 먹었다.

“근데 성필이 너 뭐 보고 있었어?”

“트잇터. 이거 봐.”

성필이 폰 화면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케이콘이 트잇터 글로벌 트렌드 1위야.”

과연, 성필이 홀린 듯이 트잇터만 할 법한 사건이다. 케이콘이 해외에서 가장 파급력 있는 케이팝 공연이라더니, 역시 허명(虛名)이 아니었다.

트잇터 글로벌 트렌드 1위는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케이팝과 트잇터의 공생관계는 유명하다. 트잇터가 직접 그 관계를 언급하며, 케이팝으로부터 수혜를 받았다고 표현할 만큼이나 말이다.

“뭐어, 올해 케이콘은 역대급이니까.”

매년 역대급을 갱신하는 중이다.

옛날엔 나가는 그룹만 나가는 그들만의 리그. 케이팝 홍보용 콘서트라는 인식이 강했다.

인지도 높은 그룹은 굳이 나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만, 이젠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다.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있을 정도로 커져서, 대형 기획사마저 눈독 들이게 됐다. 그래서 올해는 라인업이 어마어마하다.

“현재 걸그룹 쓰리톱이라는 소녀연맹, 케이어스, 글로브가 다 나오잖아. 비록 한 자리에서 모이진 않지만, 역대급이긴 해. 오죽하면 공중파에서 송출해줄까.”

“사장님은 소녀연맹, 케이어스, 글로브 순으로 언급하시는군요.”

다들 무슨 뜻이냐는 듯 한구인을 보았다.

한구인은 이목이 모이자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돌판에선 ‘케소글’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아마 규모로 순서를 정한 거 같은데, 케이어스, 소녀연맹, 글로브 순서…….”

성필, 홍규헌, 손혜빈이 한구인을 구타했다.

한구인이 억울한 비명을 내질렀다.

“어째서어……!”

“내 회사에선 ‘소케글’이다.”

“따라 하세요 한 이사님, 소케글.”

“끄흐윽…….”

“소, 케, 글.”

“소오, 소케그을…….”

“뭐예요, 하면 잘하시잖아요?”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온갖 뭇매를 맞아버렸다. 한구인은 ‘소케글’을 다섯 번 외치고서야 사면받았다.

“그런데, 소케글인가. 3세대 보이그룹은 ‘부떱스’라고 불렀었지. 우리도 그만한 위상이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네.”

부떱스는 부테스, WTP, SON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줄임말이다.

당연히 각자의 팬덤은 각자가 파는 그룹 앞 글자를 가장 앞에 두곤 했다. 시시한 기 싸움이지만, 팬에게는 절대 시시하지 않다. 방금 세 사람이 한구인을 구타한 것처럼 말이다.

그때 텔레비전이 지겨운 광고를 끝내고 한낮의 태양을 비추었다. 시야는 하늘로부터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하늘처럼 높게 솟은 어느 건축을 화면 안에 담았다.

다들 그 위용을 보곤 감탄했다.

“저게…….”

파르크 데 프랭스(Parc des Princes).

파리 생제르맹 축구 클럽의 홈구장.

총 객석 47,929석.

하지만 오늘의 관객은 5만 명을 넘는다.

화면은 파르크 데 프랭스의 내부로 들어갔다. 본디 축구장으로 활용되었을 필드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필드에 더해 관객석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몇 명이야 대체…….”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다들 스타디움급의 콘서트장을 보곤 감탄을 넘어 경외심을 가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그런데 저 위에 서서 공연하는 이들은 대체 얼마나 떨릴까. HPT 뮤직 어워드 무대 따윈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감일 것이다.

성필은 마치 무대에 선 것만 같은 긴장감을 느꼈다. 그 긴장감은 5만 이상의 관객이 내지르는 함성을 듣자 흥분으로 바뀌었다.

흥분을 넘어 황홀함이 찾아왔다.

손발이 덜덜 떨린다.

‘스타디움.’

언젠가 소녀연맹은 스타디움급 무대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팬이 모일까. 그만큼 유명해질 수 있을까.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저 무대를 본 순간, 성필은 이미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스타디움에 단독으로 세운다.’

세우고 싶다.

프로듀서로서의 호승심이 들끓어 올랐다.

그는 진정하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곤 화면 안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건 훗날을 위한 전초전이야.’

먼 훗날 소녀연맹이 스타디움급 무대에 섰을 때의 연습이자, 동시에…….

‘과연 소녀연맹의 이름값이 얼마인가.’

해외팬들에게 소녀연맹은 어느 정도로 유명한가. 그걸 확인할 순간이 바로 지금이며 오늘이다.

저곳에 모인 전원이 케이팝 팬이다.

저들 중 몇 명이나…….

‘소녀연맹에게 환호성을 보내주고, 소녀연맹의 노래를 따라부를까.’

5만 명이나 모였다.

떼창을 한다면 아이돌별로 크기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수백, 수천 단위의 소수 관객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차이가 더 클 것이다.

‘우리가 쌓아 올린 소녀연맹의 이름값이 진짜라면.’

파르크 데 프랭스의 철골이 징징 울릴 정도의 함성이 몰아칠 것이다.

100년 역사의 건축물이 울부짖을 정도의 함성을, 성필은 바라고 있다.

‘얘들아, 보여줘.’

소녀연맹이 새 시대를 열었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지.

이 순간을 지켜보는 세계 각국의 팬들에게 확실히 보여주는 거다.

케이콘,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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