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44화 (644/760)

644화

“의외로.”

라희의 손이 체스판 위의 나이트를 집었다. 그녀의 나이트가 양소민의 나이트를 잡아냈다.

“체스가 어려운 게 아니구나.”

“…….”

양소민은 불안한 눈으로 체스판 위를 훑었다.

이건 완벽하게…….

“이러면 엔드 게임인 거지?”

“아, 어? 응…….”

체스의 엔드 게임은 전투의 막바지를 뜻한다.

얼마 남지 않은 기물로 상대의 숨통을 조이고 승리를 얻어내야 한다.

평소엔 희생에 써먹던 폰 하나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역전의 용사로 변한다.

“엔드 게임, 맞아…….”

그러나 모든 체스가 엔드 게임으로 접어드는 게 아니다. 미들 게임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엔드 게임도 쪽수가 맞아야 성립한다. 즉, 서로의 실력이 비슷해야 된단 것이다.

그런데 체스를 배운지 고작 한 달인 라희가, ‘체스 닷컴’ 레이팅 1,800점인 양소민과 엔드 게임에 들어섰다.

물론 현재 기물의 포지션은 양소민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양소민은 벌써 라희의 킹을 잡을 수가 떠올랐다.

그래도 충격이다.

‘내가 직접 가르쳐주긴 했지만, 고작 한 달 배웠으면서…….’

‘체스 닷컴’ 레이팅 1,800점(자랑스러움)인 자신과 엔드 게임에 들어섰다고?

운이겠지?

“아, 졌네.”

라희가 아무런 감동도 굴욕감도 없이 깔끔하게 패배를 선언했다.

양소민은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은데, 라희 때문에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노력이 부정당한 기분이다.

그때 숙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둘 다 그쪽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발소리가 이어지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현재 숙소에 없는 멤버는 이지유다. 그러니 들어온 건 이지유일 것이다.

라희와 양소민이 동시에 일어났다.

“소민아.”

라희가 양소민의 어깨를 부드럽게 짚고 다시 앉혔다.

“내가 가 볼게.”

“……응.”

라희는 비장한 마음으로 복도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지유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지유야, 나야.”

“들어와.”

들어가니 이지유가 옷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침대 위에 놓아둔 잠옷을 걸쳤다.

“잠시 시간 내줄 수 있을까?”

“어.”

라희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지유야.”

라희는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꿇었.

“무릎 꿇지 마.”

“…….”

라희는 반쯤 굽혔던 무릎을 그대로 굽.

“무릎 꿇으면 발로 찰 거야.”

“…….”

애걸복걸하러 오긴 했지만 발로 차이긴 싫은 라희.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폈다.

“파트 있잖아, 내가 피디님한테 말씀드려볼게. 우리 멤버들도 다 동의했어. 내가 대표로 말씀드리고, 꼭 좋은 결과 가져올게. 그러니까…….”

라희가 그녀답지 않게 망설임을 보였다.

“그러니까, 한 번만 참아주면 안 될까?”

“…….”

“기분 나쁜 부탁이란 거 알아. 하지만, 피디님이 어떻게 나오실지 몰라. 지금은 피디님이 아무 말씀도 없으시지만, 최악의 경우 대표님이 알게 되시면 상황이 많이 안 좋을 거 같아. 아, 혀, 협박하는 거 아니야. 진짜야…….”

이지유는 대답 없이 창문을 열었다.

창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옷장에서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만약 앨범 프로듀서가 교체되면 우리 컴백이 예정보다 훨씬 밀려. 음악 방송 스케줄이 이미 컨펌됐을 텐데, 갑자기 미루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어. 방송국에게 예의도 아니고. 프로듀서가 교체되고 컴백을 강행하면, 결과물이 좋진 않을 거야. 컴백을 미루면 신뢰를 잃고. 대표님도 이 일을 알게 되실 거고, 우리가…….”

글로브는 회사 내에서 골칫덩이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지유야, 정말 앞으로 네가 원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한 전부 할게.”

“전부?”

“어? 으, 응. 개가 되라면 될게. 짖으라면 짖을게. 이왕이면 사람 없는 곳에서만…….”

“필사적이구나.”

“필사적…… 이야.”

모든 멤버들의 미래를 등에 업고 있으니까.

라희는 글로브의 리더다.

부당하게 신아름을 밀어내고 글로브가 되어, 리더의 자리에까지 올라버린 사람이다.

라희의 책임감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저주라고 보아도 좋았다.

신아름에 대한 죄책감과, 부족함에도 리더 자리를 맡아버려 멤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뒤섞여서.

라희는 매 순간이 필사적이었다.

“나가자.”

“어, 어?”

“뭐든 한다면서.”

이지유가 먼저 방을 나섰다. 라희는 옅은 불안과 함께 이지유의 뒤를 따랐다.

둘은 숙소 밖으로 나왔다.

라희가 할 수 있는 건 이지유의 뒤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분위기 때문에 감히 물어볼 수도 없었다. 입이 쉬니 머리가 돌아갔다.

‘밖으로 왜……?’

설마, 밖에서 무릎 꿇리고 개처럼 짖게 하려고?

“…….”

라희는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을 꾹 물었다.

치욕스럽지만, 글로브를 위해서야.

이 위기를 넘길 수만 있다면 개처럼 짖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그리고 상황을 보아서 더한 것도, 그래, 얼마든지 할게…….

“앉아.”

시작됐나?!

“어?”

이지유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맥주 두 캔을 사서 나왔다.

“앉으라니까.”

이지유가 편의점 앞 테이블을 가리켰다. 라희는 그곳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그리고 편의점 안의 점원을 신경 쓰며 앉은 방향을 반대로 바꾸었다.

이지유는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라희도 분위기를 맞추려고 맥주를 홀짝였다.

‘맛없어…….’

휴가 때 고향으로 돌아가서 맛보았던 것보다 훨씬 맛없다.

이건 맥주가 아니라 보리향 음료 같다. 그것도 맛없는 보리향 음료.

“라희야.”

“으, 응.”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 엄청 오만한 거야.”

“……응?”

“누구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는 거.”

이지유가 맥주를 또 한 모금 마셨다.

“오만한 거라고.”

“……윤 피디님 말하는 거야?”

“어.”

“구원이라니…….”

“네가 어떻게 바꿔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

이번엔 라희가 맥주를 홀짝였다.

“도와주고, 맞춰주고, 어울리고, 그렇게, 밑바닥에 가라앉은 인간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겠다. 사실, 판타지로 꿈꾸곤 하잖아. 누구든.”

일에 미친 냉혈한 재벌 3세 사장. 인간을 믿지 않기에 차가운 성격이지만, 밤에는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그런데 당차고 긍정적인 성격의 여사원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점점 따스하게 변해간다.

가족에게 방치당하다시피 하여 자라난, 애정을 모르는 여배우 지망생. 재능과 환경의 벽에 막혀 좌절만을 곱씹는 삶.

그런데 백마 탄 왕자처럼 나타난 어느 매니저의 눈에 띄어, 자기도 모르는 재능을 개화하여 세상에 대한 사랑을 되찾는다.

“그런 이야기가 판타지인 이유는, 보통 인간이 할 수 없어서야. 보통 인간은 사람을 바꿀 정도로 감정과 시간을 쓸 수 없어. 처음엔 동정심 때문에, 아니면 어떤 욕망 때문이든, 그래, 시도해볼 수 있겠지. 그런데 어느 순간 지치게 돼. 그렇잖아, 가족도 아닌데.”

아니, 가족이라도 힘들다.

인간을 사회화시키고 변화시키는 게 직업인 교사마저도 힘겨워하는 일이다. 그리고 번번이 실패하는 일이다.

“성필이 오빠가 있잖아.”

“……응.”

“체스 배워서 소민이랑 놀아주는 거. 그거 보고 생각했어.”

나중에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러지?

“넌 상상이 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매일 몇십 분씩 억지로 해야 하는 거. 나중엔 귀찮아질 때가 분명히 와. 그래서 안 하겠다고 하면, 소민이는 상처받겠지. 단 한 번, 많이 쳐줘서 몇 번의 거절만으로도. 아니야, 거절이 뭐야. 살짝만 귀찮은 티를 내도, 소민이는 눈치가 빠른 애라서 상처받을 거야. 넌 몇 년이나 웃는 얼굴로 지기만 하는 체스를 둘 수 있어?”

“…….”

“그리고 또, 아름이. 오빠가 아름이랑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지? 오빠가 나가고 아름이가 어땠는지도. 오빠랑 아름이의 관계를 듣고 또 생각했었어.”

미친 사람인가?

“자기 시간과 돈과 마음을 써가면서 하는 거야. 그래, 몇 번은 그럴 수 있다 이거야. 끈기가 있으면 몇 개월, 어쩌면 일 년도 넘을 수 있을 거야. 근데 그게 계속 이어져.”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본 적 있어? 성필 오빠 수첩엔 모든 연습생의 생일과 가정사가 적혀져 있었어.”

인간의 마음은 우물이다.

한계가 온다.

‘마음을 쏟는다’는 표현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애정을 주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매우 정확한 표현이라고, 이지유는 생각한다.

애정을 준다는 건 마음을 ‘쏟는’ 일이다.

양동이에 든 마음을 쏟아가고, 언젠가 말라버린 양동이에 허탈해질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특별히 오빠를 그리워하는 건, 오빠가 우리한테 마음을 쏟아줘서야. 오빠는 마음의 한계가 없거든.”

끊임없이 샘솟는 우물이다.

그 우물은 꿈이란 수원(水原)을 가졌다.

“너는 그렇게 할 수 있어? 여러 명이 아니라, 단 한 사람에게라도. 부부도 시간이 지나면 식어가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을 때가 온다는데, 너는? 가벼운 마음 아니야?”

어쭙잖은 생각으로 동정의 손길을 내밀지 마라.

이지유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도, 윤상열 피디님이 불쌍한 인간이라고 생각해.”

자기가 불쌍한 줄도 모르는 인간이라서 불쌍하다. 동시에 그 오만함이 역겨워서 견디기 힘들다.

“근데 그 인간은 영원히 불쌍할 팔자야. 신체의 결함보다 더한 걸 타고 태어났어. 마음의 결함. 그걸 네가 고치고, 피디님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있잖아.”

모르는 사이 둘의 캔이 비어 있었다.

“되게 오만한 거야.”

이지유가 캔을 구기며 일어났다.

“그 인간이 바뀌지 않으면, 질릴걸.”

그녀는 캔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홀로 떠나갔다.

라희는 홀로 남아 캔을 입에 가져갔다. 이미 비어 있었다. 그녀는 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알아, 나도.”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단 것 정도는 알아.

하지만.

* * *

“지유, 아웃트로에 보컬 파트를 추가했다. 할 수 있겠나?”

하지만.

‘바뀌는걸…….’

휴일이 끝난 다음 날.

윤상열에게 불린 글로브 멤버들은, 그의 선언에 깜짝 놀랐다. 설마 그가 지유의 불만을 받아들이고 파트를 추가할 줄은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여섯 명만 놀랐다.

라희는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다.

* * *

성필은 가로 엔터의 이사인 동시에 이음 엔터의 사외(社外) 이사였다.

프로듀싱 자문이란 호칭으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성필은, 한 달에 몇 번씩 이음 엔터를 방문하여 진척 상황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결실을 맺을 때가 왔다.

“박 이사님.”

김명운은 성필, 우효민과 나란히 옥상에 선 채 비장한 투로 말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우리 효민이의 두 번째 싱글입니다.”

“네, ‘우리 효민’이의…… 싱글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무려 미니 앨범이니까요…….”

김명운의 눈동자에 행복이 차올랐다.

목소리엔 자신이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지 모르겠단 것처럼 감개무량함이 담겼다.

미니 앨범.

앨범 하나에 곡이 여섯 개 들어가 있다.

이는 아티스트 우효민의 음악적 색깔을 확고히 할 기반이 될 것이다. 게다가 모든 곡이 흔히 말하는 ‘앨범 채우기용의 땜빵’이 아니다.

모든 곡이 철저한 기승전결과 컨셉을 지니고 제작되었다.

가로 엔터가 투자해준 자본과, 아이돌을 프로듀싱한 경력이 있는 성필의 자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위업이다.

우효민이 히어로처럼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뒤로 망토가 나부끼는 것만 같았다.

“대표님, 준비되셨어요?”

“무슨 준비?”

“돈방석에 앉을 준비요!”

“아아, 모치론(물론)…….”

성필이 최근 안 사실인데, 김명운은 일본 문화에 조예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차후 만들 그룹의 가사에 자꾸만 일본어처럼 들리는 한국어 가사를 넣으려고 하는 건 말이다.

“기나긴 모멸과 핍박의 시간(활동 공백기)…… 지긋지긋한 차였다.”

참고로, 김명운은 인터넷 밈에도 조예가 있다고 한다.

이음 엔터에는 팬 매니지먼트 부서와 같이 팬의 동향만을 파악하는 팀이 없다. 그렇기에 김명운과 직원들이 알음알음 커뮤니티를 탐방한다.

그 경험 때문에 인터넷 밈에 해박할 수밖에 없었다.

“네.”

우효민이 당차게 답했다.

“사랑의 응급 구조 요원, 러브 레스큐 효민이 돌아올 때(컴백)예요!”

‘잘 어울리네.’

성필은 둘의 친근함을 따스하게 바라보았다.

김명운의 배우자가 보면 질투를 느낄 법한 팀워크였다.

“박 이사님, 가로 엔터의 투자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투자의 가치를 이번 컴백으로 반드시 증명하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때 김명운의 폰이 울렸다. 그는 경쾌하게 전화를 받았다.

“어, 현석 씨 왜요? 어? 네?”

김명운이 낭패한 기색으로 성필과 우효민을 보았다.

우효민은 주인이 불안해하면 똑같이 불안해하는 반려견처럼 불안해졌다.

“대표님 왜요? 홍규헌 사장님이 투자금 다 뱉어내래요?”

“사장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

“잠깐만…….”

김명운은 통화를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현석 씨, 그, 제가 들은 게 맞죠? 그러니까…….”

[예! 우리 사랑의 응급 구조 요원 러브 레스큐 효민이의 컴백 날짜랑 겹쳐요!]

“누가요?!”

우효민은 주인이 소리치면 같이 짖는 반려견처럼 급박하게 물었다.

[어? 우리 사랑의 응급 구조 요원 러브 레스큐 효민이도 같이 있어요?]

“맞아요 저도 같이 있어요! 누가 컴백하는데요!”

[그, 그게…… 케이어스의 소유가 솔로로…….]

우효민은 넋이 나갔다.

케이어스의 소유가 같은 시기에 컴백한다고? 그럼, 그러면…….

“음방 박수 셔틀이 될 거야아아아아아악!”

우효민이 패닉에 빠졌다.

그때 김명운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우효민은 곧바로 진정했다.

“효민아, 걱정하지 마. 나를, 이음 엔터를, 가로 엔터의 박성필 이사님을 믿어. 너를 믿는 우리를 믿어. 우리의 프로듀싱과 매니지먼트는 완벽할 거야.”

“……맞아요! 대표님만 있었으면 불안했을 텐데 박 이사님까지 있으니까 안심이 돼요!”

김명운과 우효민이 신뢰와 기대감을 잔뜩 담아 성필을 보았다.

성필이 시선을 피했다.

[그, 그리고 또…….]

“에이, 누구든 컴백하라 그래요! 다키스트가 재결합을 하든, 븨이에스가 컴백하든 맘대로 해요!”

[소유의 솔로곡 뮤직비디오에 소녀연맹의 하양이가 출연한대요. 그걸로 홍보 자료가 쫙 나간 거 같아요. 둘이 합동 라이브 방송도 한다고 하고 그런다던데……. 이거 화제성이랑 홍보 면에서 밀릴 거 같습니다. 혹시 들으신 거 없으세요? 소유 솔로면 몰라도, 홍보에 소녀연맹까지 가세하면 이건 방법이…….]

김명운과 우효민이 화들짝 성필을 보았다.

성필은 입술을 앙다물고 시선을 더 강하게 피하려고 노력했다.

[김 대표님, 저희는 뭐 없을까요? 명색이 가로 엔터 산하 해적단인데, 케이어스의 소유와 소녀연맹 하양에게 대적할 만한 거라든가요. 설마 이렇게 뒤통수만 때릴 리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준비한 수가 없으면, 이건 너무하잖아요……. 소유랑 하양이를 어떻게 쓰러뜨리(음방에서 이긴다는 뜻임)냐고요…….]

김명운과 우효민이 살기를 담아 성필을 노려보았다. 성필은 바닥을 보며 신발 굽으로 땅을 툭툭 쳤다.

[우리 효민이 두 번째 컴백인데,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묻힐 순 없어요…….]

“아까부터 말이 너무 심하시네.”

성필이 참다못해 말했다.

“진다는 말씀만 하시는데, 벌써 잊으셨어요?”

[누구세요?]

“우리 사랑의 응급 구조 요원 러브 레스큐 효민이는 음방에서 글로브와 케이어스를 동시에 꺾은 음원 강자예요! 소유 씨가 오든 어? 음, 어? 소유 씨가 오든 뭐 어떻든 어? 그렇겠냐고요!”

[하양이를 말씀하시려던 건가요?]

“아무튼 소유 씨가 뭐 그리 대수란 거예요! 진다는 말만 하면 진짜 져요!”

[아, 예. 그런데 누구십니까? 대표님? 효민아?]

김명운은 통화를 종료했다.

“이사님.”

김명운이 옅은 기대감과 진한 공포를 동시에 담아 말했다.

“이거, 그거죠?”

“……그거요?”

“스스로 위기를 연출하고 깔끔하게 반격해서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 * *

“제가 효민이 뮤비에 출연하라구요?”

신아름이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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