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화
지유는 귀가 멀쩡하다.
양소민이 한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전부 들었다.
‘뒈지려면 너 혼자 뒈져. 나는 올라갈 거야. 올라가고 올라가서 최고가 될 거야. 도와줄 생각 없으면 그냥 구석에 짜져 있기라도 해. 분위기 조지지 말고.’
라고 말했다.
반문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그만큼 양소민의 어조는 명확했고, 말 안에 실린 의지는 확고했다.
어떻게 오해할 소지조차 없다.
“뭐, 므, 뭐…….”
오해할 수 없었기에, 지유는 생애 다시 없을 정도로 충격받았다.
윤상열이 갑자기 다정해져서 ‘지유야, 내가 너에게 모질게 굴었던 건 사실 너를 좋아해서야’라고 말해도 이만큼 충격받진 않았으리라.
그래, 윤상열이 그랬으면 충격은 덜하더라도 전신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소름이 척추를 질주하겠지.
“뭐, 뭐라고?”
양소민이 던진 말을 충분하고 남을 정도로 이해했음에도, 지유는 굳이 되물었다.
되묻는 것 외에 취할 태도를 몰랐다.
“야, 이지유.”
더욱 가관이었다.
양소민이 이지유를 풀네임으로 불렀다.
“너는 집이 X나 잘 살아서 아이돌 따위 되든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겠지만, 나는 아니야. 절박해. 할 수만 있다면 수명을 몇 년쯤 버려서라도 성공하고 싶어.”
이지유의 이마에 혈관이 돋아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자란 이유로 여러 차별을 받아왔다.
자신의 집을 보고 살갑게 대하거나 질투 때문에 무시하거나. 차별은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했으나, 이지유는 이 둘 전부를 혐오했다.
인간 이지유가 아니라 배경을 보는 것이니까.
“집에 돈 많은 인간은 어떤 일을 해도 대충인 줄 아냐?”
이지유는 편견과 선입견을 혐오한다. 편견과 선입견을 입에 담는 인간도 혐오한다.
그건 이미 이지유의 신념이 아닌 습관이자 성격이었다.
“나도 성공하고 싶어! 아니면 왜 아이돌이 됐는데! 시간 때우려고? 시간 때우려고 그 미친 생고생을 감내했겠어?!”
이지유의 일갈에.
“근데 왜 지랄 개판을 쳐놓는데!”
양소민이 분노로 대답했다.
“프로듀서한테 지랄 염병 떠는 게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 취할 태도야?”
“내가 그냥 내 기분이 나빠서 그랬어?”
“사람은 기분이 나쁜 일이 있어도 참아.”
“너 같은 인간이 있어서 세상이 이 꼴이지. 자기만 아니면 된다는 소시민 근성! 세상에 다 너 같은 애만 있었으면 프랑스 혁명도, 4·19혁명도, 세상의 모든 투쟁 같은 건 없었겠지 이 세상에 필요 하나 없는 찌꺼기야!”
문 옆에 있던 가정부가 기겁했다.
이지유가 이토록 강도 높은 인신공격을 입에 담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게임 할 때 상대편에게 보내는 욕설보다 더하다. 이지유의 욕설엔 양소민을 향한 직접적인 혐오가 짙게 배어 있었으니까.
“하하…….”
양소민이 어이가 없단 듯 실실 웃었다.
“내가 아까 왜 네 집 얘기 꺼냈는지 알아? 네가 이런 생각할 줄 알아서야. 넌 바닥이 있잖아. 근데, 난 없어. 이게 막다른 길이야. 막다른 길이니까,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일에 머리 처박고 죽긴 싫다고! 심지어 내가 한 것도 아닌데에에에에에!”
양소민이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감정이 격해졌는지 얼굴이 붉었다. 머리의 체온을 낮추려 눈물과 땀이 흘렀다. 술기운 때문이기도 했다.
“어디서 소리를 지르……!”
“망상 아니야!”
이지유의 입이 뚝 멈췄다.
양소민이 분을 못 이기고 숨이 거칠어졌다. 그녀가 헐떡이는 숨과 함께 말했다.
“최고가 되겠단 건 망상이 아니야! 되고 싶어! 되려고 노력해! 노력하고 있어! 되고 싶다고!”
이지유는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아직도 양소민은 그녀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잡은 손이 떨렸고, 손아귀 힘도 강하지 않았다.
이지유가 약간만 힘을 주어 털어내도 양소민은 비틀거리며 물러날 것이다.
그런데, 그럴 마음이 안 생겼다.
양소민이 오열하며 이지유의 멱살을 흔들었다. 힘이 약해 앞뒤로 까딱거리는 게 전부였다.
“혁명 같은 게 아니어도…… 바꿀 수 있잖아……. 조금씩…… 다들 노력하고, 참고 있는 거야, 마음에 안 들어도…….”
글로브가 바보라서 참고 있는 게 아니다.
한 번 수틀리면 끝이다.
수틀려서 윤상열이 글로브를 버리겠단 마음을 먹는다면, 적어도 이번 앨범은 망한다. 대놓고 망치지 않더라도, 윤상열이 구상한 프로듀싱보다 엉성하게 진행하면 된다.
엉성한 계획은 엉성한 결과를 낳고, 글로브는 계단에서 한 번 미끄러질 것이다.
그 한 번이 치명적이다.
최고로 가는 길에선 한 번의 미끄러짐도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가 윤상열을 선택했어. 바꿀 수 있잖아. 답답하겠지만, 천천히, 조금씩이라도, 바꿀 수 있잖아…….”
이지유의 머리가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양소민이 그녀의 멱살을 잡은 채, 멱살을 놓을 정신도 없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부탁한다.
“지유야 한 번만…… 어떻게 안 될까……. 파트가 마음에 안 드는 거 알아……. 내가 뭐든 해볼게, 무릎 꿇고 부탁이라도 해볼게……. 널 돕기 위해 뭐든지 할게, 그러니까 한 번만…….”
한 번만, 도와줘.
이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양소민은 그 웃음을 들었을 텐데도, 계속 고개를 조아리며 울기만 했다.
“아까는 분위기 조지지 말고 짜지라고 했으면서, 이젠 날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미안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화도 나고, 힘들고, 우울해서…….”
양소민은 정신의학과에 다닌다. 멤버들이 용도를 알 수 없는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주기적으로 정신 상담을 받는다.
직설적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그리고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그녀에겐 술 냄새가 진동했다. 면전까지 다가와 입을 열 때부터 짙은 포도주 향이 났다.
“부탁할게 지유야, 제발…….”
“아줌마.”
이지유가 가정부를 불렀다.
넋 놓던 가정부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기사님한테 얘 좀 저희 숙소에 데려다 달라고 해줘요.”
“지유…….”
“너랑 더는 할 말 없어. 내 아빠 집에서 나가.”
“끄흐으윽…….”
양소민이 무너져 바닥에 풀썩 앉았다. 가정부는 곤란한 낯빛으로 양소민을 부축해주었다.
“소민 양, 가야 해요…….”
양소민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이지유의 방을 나섰다. 이지유는 문을 닫곤 침대에 걸터앉았다.
걸터앉아, 눈을 감고 심란한 마음을 다스렸다.
‘나는 불의에 맞서 싸웠어.’
윤상열에게 첫 번째로 반기를 든 게 시작이었다. 멤버 전원이 숨죽이고 윤상열의 눈치만 보던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었다.
용기.
그게 자신의 무기라고 생각해왔다.
삶이란 전장에서 도망가지 않고 싸웠노라며, 이지유는 스스로를 치하해왔다.
역으로, 그녀는 내심 다른 멤버들을 비웃었다.
‘싸우지 않으니까.’
사람들에겐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가 있다. 그건 용기와 같은 추상적인 감정에서부터, 돈과 같이 간접적인 힘도 있다.
혹은 진짜 완력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도 있다.
멤버들에게도 무기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숨죽이고만 사는 모습을, 이지유는 비웃어왔다.
‘아니야.’
모든 인간에겐 무기가 있다.
역사 시간에도 배우지 않던가.
일제강점기.
건장한 사람은 총을 든다.
달변인 사람은 설득한다.
달필인 사람은 글을 쓴다.
재력가는 후원한다.
인간은 저마다의 재주를 지니고 저마다의 전장에서 저마다의 싸움을 해간다.
요컨대, 양소민의 무기는 춤과 노래였다.
‘윤상열에게.’
춤과 노래로, 그걸 위한 연습으로 싸워왔다.
더는 무시당하거나 괄시받지 않기 위해서.
양소민의 무기는 끈기였다.
‘그래서 이번엔 나에게 이런 거야.’
자신의 무기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어찌할 줄 몰라서, 이지유에게 찾아와 분노와 슬픔을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지유 자신의 무기는.
‘용기?’
이지유가 비웃었다. 이번엔 자신을 향하여.
이제 보니, 자신의 무기는 용기가 아니었다. 용기를 뒷받침해주는 집안이었다.
양소민의 말마따나, 존나 잘살아서.
인생이 막다른 길이 아니니까 용기를 낼 수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집안은 그냥 잘사는 수준이 아니라 존나 잘살기에, 용기가 아니라 만용을 부렸다.
“아이돌은 고고한 줄로만 알았어.”
이지유가 혼잣말했다.
“시키는 것만 잘하면 만사형통인 줄 알았지.”
그런데, 세상에 시키는 것만 잘하면 만사형통인 직업이나 일 따위는 없다.
“성필 오빠 말이 맞네.”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삶이다.
스모르찬도, 촛불이 꺼져가듯이, 서서히 죽어갈 때마저 배움이 부족하다며 한탄하겠지.
이미 알 건 다 알고, 깨달을 건 다 깨달았다고 생각했던 세상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친구의 마음조차 몰랐다.
‘고작 20살 약간 더 먹었는데, 다 안듯이 젠체했으니…….’
다들 얼마나 고깝게 보았을까.
* * *
15년 정도 전.
티베트 수도원 명상 공동체에 단기 출가했다.
푸르스름하게 삭발한 머리도 익숙해질 6개월 즈음, 윤상열은 친하게 지내던 수도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고작 스무 살 조금 더 사셨으면서 세상에 통달한 듯 말씀하시니, 교우관계가 원만하진 않으시겠습니다.”
수도사는 미소 짓고 있었지만, 짜증 내는 게 분명했다.
“제 교우관계가 수사님과 무슨 상관인데요?”
“하하, 제가 신통력은 없지만 형제님의 미래는 훤히 알겠습니다.”
“저 이제 곧 나간다고 막말하시는 거예요?”
“형제님,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지 않겠습니까? 방금 형제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죠?”
윤상열은 삭발한 머리를 슥슥 쓸었다.
“6개월 동안 그 개지랄을 떨었던 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법’ 따위를 배우려고 그랬던 거냐고 물었죠.”
“예, 아주 정확하십니다. 이제 문제점을 아시겠습니까?”
“진짜 돈 아까워 죽겠어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법을 왜 배워요? 아니, 배워야 하는 거예요?”
“이건 아주 대단한 기술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형제님께선 호흡에 집중하거나, 구름을 상상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증오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피부의 감촉에 집중하거나, 마음의 무게를 신체로 옮기는 법 등을 배우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것 없이도 머리를 완전히 비우고 명경지수의 상태에 들어설 수 있는 겁니다. 이 방법은 기원전 1,000년경 발명되어…….”
“그럼 저는 아무것도 생각 안 하는 법을 배우려고 수만 달러를 여기 바친 겁니까?”
“예, 그러니까 닥치고 하십쇼.”
“네?”
“자, 따라 해보시겠습니까?”
“방금 욕했어요?”
“대선사님이 이 자리에서 있으셔도 욕하셨을 겁니다.”
“진짜 욕했다고요?”
의외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어려웠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생각이 난다.
배운 명상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운 명상법은 모두 어딘가에 집중하는 종류였다. 집중하려고 한다면, 진짜 머리를 비운 게 아니다.
이럴 때 배운 것도 있다.
자신의 감정과 신체를 관조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들었구나, 라며 그냥 넘기면 된다. 그런데 넘긴단 것도 생각 아닐까?
“진짜 돈 아까워 죽겠네.”
“어려운 일입니다. 원래는 10년을 수련해야 겨우 자의적으로 할 수 있는 명상법이지요. 그런데 형제님께선 달러의 힘으로 6개월 만에 배우셨으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만 엿 먹여요.”
명상.
더럽게 맛없는 밥 꼭꼭 씹어 먹기. 물론 밥 한 톨씩 몇 초간 씹는다. 그래서 식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기 예사다.
그리고 또 명상.
더럽게 맛없는 밥 꼭꼭 씹어 먹기.
명상.
그러면 밤이 된다.
윤상열은 수첩과 펜을 들고 건물을 나섰다. 적당히 수도원과 떨어져 한 바위 위에 앉았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수첩에 리드 시트(곡의 선율과 가사, 코드만을 적은 간략한 악보)를 작성했다.
윤상열의 야간 일과였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윤상열은 진작 하산했을 것이다. 아니, 하산이 아니라 탈출했을 것이다.
‘이 지랄도 앞으로 며칠이면 끝난단 거지.’
시원한 마음밖에 없다.
카트린에게 차여서 분한 마음에 갑작스럽게 결정한 수도원 단기 출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이 시간에 다른 놈들은 실력을 더 쌓았겠지.’
윤상열은 속이 탔다.
그러나 어지러운 마음과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선율과 노랫소리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좋군요.”
윤상열이 화들짝 놀라 뒤를 보았다.
수도사가 나무를 짚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윤상열이 경계했다.
“미행한 거예요?”
“여기 오신 첫날부터 여기 오셔서 노래를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알고 있었던 거네요.”
“말을 거는 게 처음이지요. 방금 부른 노래는 제목이 뭡니까?”
윤상열은 수첩을 보았다.
코드와 멜로디를 확인하니, 자기도 모르게 다른 히트곡을 따라가고 있었다.
윤상열은 자존심이 상한 채 답했다.
“스케이터 보이(Sk8er Boi)일 걸요 아마. 에이브릴 라빈이 부른.”
“다시 불러주실 수 있으십니까?”
“…….”
불렀다.
“다시 들어도 좋군요.”
“왜 여긴 음악도 못 듣게 하는 거예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좇습니다.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 모두 그렇죠. 미식을 즐기면 혀의 욕망이 더해지는 것처럼, 귀도 그러합니다.”
“음악이 음식이랑 같은 취급인 건 너무한데요.”
“사람이 밥과 물만으로 만족하는 동물이라면, 음악은 없지 않았겠습니까. 귀가 취하는 미식입니다.”
윤상열은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럼, 노래는 아무것도 몰라요?”
“몇 개는 압니다. 그거 아십니까. 형제님들이 이곳에 오고 시간이 지나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노래를 듣고 싶지만 들을 수 없어, 기억 속에서 꺼내는 겁니다. 스스로의 흥얼거림이라도, 음악을 듣고 싶은 거겠지요. 저도 그걸 듣다 보니 멜로디 몇 개는 외우고 있습니다.”
“제일 좋은 건?”
“제목은 모릅니다만.”
수도사가 허밍했다.
윤상열은 그게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백 스트리트 보이즈의 ‘에브리바디’네.”
백 스트리트 보이즈 정도 되면 산속 깊은 곳 수도사의 귀에도 들리는 건가.
“쓸쓸하겠군요.”
“뭐가요?”
“형제님이 떠나시는 것 말입니다. 밤마다 형제님의 노래를 듣는 건, 수도사로서 부끄럽습니다만, 제에겐 굉장한 사치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음악을 배우신다고 하셨던가요?”
“뭐, 그렇긴 하죠…….”
“저는 음악을 듣는 귀는 없습니다만, 음악가로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그야 당연한 거…….”
“저는 들을 일 없으리란 게 조금은 슬픕니다.”
윤상열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수첩에 어느 곡의 악보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찢어 수도사에게 주었다.
“‘에브리바디’의 간단한 악보예요. 악보는 읽을 줄 알죠? 박자와 음표를 보고 따라부를 수 있어요. 악기가 있으면 코드도 연주할 수 있고요.”
“모릅니다만…….”
“…….”
윤상열은 즉석해서 악보 읽기 강의를 해주었다. 그러고도 수도사가 이해하지 못하자, 아예 따로 음표나 박자에 대해 설명한 글을 적어주었다.
수도사는 대충 이해한 후, 리드 시트를 보며 노래를 불렀다.
“다들 몸을 흔들어(Everybody, Rock your body)…….”
“어, 할 수 있네요!”
수도사가 수줍게 웃었다.
“음악은 마법 같군요.”
“마법이죠.”
“저와는 연이 없는 것이지만, 형제님의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수도사는 악보를 접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음악을 못 들으면 죽는 건 아닙니다. 식욕과 성욕처럼 과잉도 없죠.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밥과 물을 넘어, 인간을 풍요롭게 한단 점에서요. 형제님은 저와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실 겁니다.”
“가게요? 노래 더 할 건데요.”
“아니요, 저의 일탈은 오늘로 끝입니다.”
“네?”
“왜 형제님들이 부정확한 노래를 필사적으로 흥얼거리며 기억하려는지, 점점 더 알 거 같아서요.”
수도사는 그렇게 등을 돌려 떠나갔다.
윤상열은 멀어지는 그의 등을 보다가, 그를 향해 크게 외쳤다.
“소용없어요!”
수도사가 돌아보았다.
“결국엔 내가 만든 노래를 듣게 될 거거든요! 5년 뒤, 아니면 10년 뒤, 사람들이 내가 만든 노래를 스피커처럼 흥얼거리면서 여기로 올 거예요!”
어둠 속에서 수도사의 어렴풋한 미소가 떠올랐다.
“형제님의 이름을 듣는다면 기뻐하겠습니다.”
“아뇨, 제 이름이 아닐 거예요.”
윤상열이 아까보다 크게 외쳤다.
“세계적인(Global)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들려오면, 내가 만든 거라고 생각해요!”
* * *
명상이 끝났다.
윤상열은 눈을 떴다.
작업실의 어둠이 반겨주었다.
동시에 신체의 감각이 더없이 선명하다.
오랜만에 아주 깨끗한 명상이었다.
윤상열은 이 감각을 마음에 새기려 노력했다.
‘아무것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생을 위협할 위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이 어지러울 필요는 없다.
뼈는 단단하고, 피부는 생기있고, 심장은 규칙적으로 뛴다.
그러니 세상 그 어떤 자극을 받더라도 두려워하거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아무도 현재의 감각을 위협하지 못한다.
윤상열은 자리에서 일어나 요가 매트를 돌돌 말았다. 그걸 작업실 구석에 살포시 놓아두곤 의자에 앉았다.
컴퓨터를 뒤져 ‘케미컬 임팩트’의 데모 버전을 찾았다. 글로브 멤버들을 위한 데모 버전이 아니었다.
엄밀하게 따지면, 이건 ‘케미컬 임팩트’의 원곡이었다.
윤상열은 케미컬 임팩트 원곡의 아웃트로 파트를 재생했다. 글로브 멤버들에게 들려준 것과 달리, 아웃트로엔 보컬이 있다.
즉, 지유의 아웃트로 파트에는 보컬이 있다.
‘이건 아직 글로브가 할 수 없는 거야.’
윤상열은 곡을 쓸 때 항상 다키스트를 떠올린다. 그들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지, 라며 곡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 마이너 카피를 글로브에게 넘긴다. 이유는, 글로브가 원곡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지유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느낄 만하다. 원래 존재했던 것을 잘라내었으니까.
옛날이었다면 이지유를 혹사시키더라도 넣었겠으나,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그년이 개지랄을 떨 게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파트가 부족한 게 불만이라면, 더 주도록 하지.’
그러나 이 상태로는 안 된다.
이지유는 원곡을 소화할 수 없다. 억지로 해내더라도 원곡의 느낌을 내긴커녕 손상시키기만 하겠지.
이 아웃트로 댄스를 추며 이 보컬을 해내는 건, 그래.
‘하민이나 유선이 정도.’
그러니 이지유가 이 파트를 해내려면…….
‘벨팅 테크닉을 배워야 해.’
창법을 바꿔야 한다.
벨팅 보이스는 파워풀하고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는 창법이다.
뮤지컬에서 주로 쓰인다.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는 벨팅 보이스가 적합하다.
요즘 교수들은 벨팅 보이스를 설명할 때 영화 겨울왕국의 OST인 ‘렛 잇 고(Let It Go)’를 자주 예시로 든다는 모양이다.
인간의 일반적인 말, 즉 흘리듯 소리 내는 보통 보컬과 달리 명확한 자음과 모음 발화를 특징으로 하며.
강한 성문 접촉, 높은 성문 하압과 폐쇄, 높은 성문 속도율.
자율적인 비브라토를 통한 긴 고음 음가 지속.
숙달하면 여성의 극고음인 ‘4옥타브 도’까지 파워풀한 음색을 쓸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리스크가 있다.’
과도한 호흡량은 성대 건강에 해롭다.
근육의 적극적 관여를 기반으로 하여, 잘못된 근육 수축으로 음성기관 손상의 위험이 있다.
근력과 유연성이 부족하면 목이 다친다.
그러나 이 리스크는 어디까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독학으로 아이튜브나 책을 보며 배운 지망생이, 무리하게 다른 사람의 노래를 흉내 내려다가 성대가 망가지곤 하니.
윤상열은 지인인 뮤지컬 전공 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벨팅 보이스, 개인 교습으로. 시간은……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네 스케줄에 따르도록 하지.”
확답을 들은 후, 윤상열은 폰을 꺼냈다.
회사 사람들은 물론 글로브 멤버들에게 온 문자…….
‘멤버들이 아니군.’
라희에게 온 문자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윤상열은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그의 결심을 실행하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명상을 끝냈을 때의 감각을 회복하려 했다.
‘내가 해야 할 건.’
지유와 대화하는 것이다.
윤상열은 오랜 자아 찾기 여행(명상) 끝에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글로브 멤버들에게, 특히 이지유에게 자발적인 동기를 이끌어낼 것인가.
명확하다.
교사들이 입에 닳도록 말하곤 하지 않던가.
자기 주도적 학습, 이라고.
‘자발적이면 돼.’
자발적으로 선택한 길이라면, 글로브도 프로듀싱에 따를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을 택하는 건 윤상열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린다. 감히 악기인 아이돌 그룹에게 자발성을 요구하다니.
윤상열은 눈을 떴다.
폰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 손목에 매어둔 머리 끈을 검지로 쥐었다. 그리고 단발을 끈으로 한데 묶어 모아 올렸다.
‘박성필.’
너를.
‘프로듀서로 인정하마.’
네가 만든 소녀연맹이.
‘글로브보다 나았음을 인정하마.’
네가.
‘프로듀서로서 나보다 더 능숙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니 배우겠다.
정호환에게 배웠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