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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39화 (639/760)

639화

어반 댄스를 배우기로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성필의 춤 실력은 점점 늘어갔다. 하지만 늘어가는 춤 실력보다 더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

‘느껴져.’

성필은 춤을 추지 않을 때도 손가락의 모양과 자세, 발의 위치, 심지어 눈이 향하는 방향과 모양마저 신경 쓰게 됐다.

여태까지 당연하게만 해오던 것들. 걷기, 팔 흔들기, 서기, 보기 등등이 전부 자아의 통제 아래에 놓이게 됐다.

이런 변화를 댄스 강사인 안수정에게 전했다. 그녀도 깊이 공감했다.

“맞아요. 춤은 간략화해서 표현하면, 몸을 쓰는 방법이잖아요?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전혀 신경 쓰지 않을 동작들도 신경 쓰게 되죠. 댄서보다 거울을 자주 보는 직업은 모델 정도 아닐까요?”

그 말은 즉, 자신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는 동작과 표정을 평상시에도 신경 쓴단 뜻이다.

“몸을 쓰는 직업은 무대 아래에서도 아우라가 있어요. 저야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거리에 다니면서도 딱딱 보여요.”

“아우라…….”

“매력적으로 보인단 뜻이에요.”

성필은 제6감을 얻은 것 같았다. 할 일 없이 놀던 뇌의 메모리가 제 역할을 찾은 기분이다.

‘리카가 나한테 했던 말이 이거구나.’

예전에 리카가 성필에게 춤을 배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당황해선 그녀에게 티 나냐고 물었었지.

그런데 이제 와선 티가 안 나는 게 더 힘들 듯하다.

‘아이돌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건 당연하구나.’

다들 춤을 배우니까.

성필이 막 깨달은 것처럼, 아이돌들은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행동이 아름다운 쪽으로 변화해갈 것이다.

걷는 법부터 물건을 드는 동작까지.

괜히 아우라란 단어가 아이돌에게 붙는 것이 아니다.

성필은 자신의 변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헬스 6개월 차 때 같아.’

권강철 트레이너가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관절로 걷는다.

운동이나 스포츠가 취미인 사람들은 다리로 걷는다.

그리고 근육이 발달한 사람들은 엉덩이로 걷는다. 가만히 서 있어도 둔근이 신체를 지탱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 감각을 처음 느꼈을 때처럼, 성필은 커다란 깨달음을 받았다.

“하음아.”

웨이퍼센트를 맡아 가로 엔터의 매니지먼트 2팀장이 된 유하음.

성필은 식후 커피를 마시며 은근한 투로 물었다.

“나 요즘 분위기 변한 거 같지 않냐?”

유하음은 관심 없단 듯 커피를 빨며 폰만 보았다.

“모르겠는데.”

“약간 매력적으로 보인다든가?”

“이 새끼가 돌았.”

유하음은 뒤늦게 성필이 가로 엔터의 이사란 것을 떠올렸다. 퇴근하고 나서면 몰라도, 근무 중에 격의 없이 대할 순 없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니, 너 웨이퍼센트 애들 보곤 곧잘 ‘더 멋지다 더 잘생겨졌다’ 이러니까…….”

“걔들은 아이돌이니까 보이지. 네가 아이돌이야?”

“…….”

맞는 말이었다.

‘그래, 이 변화야 나만 느끼는 거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

고작 한 달 만에 타인이 알 정도로 매력이 상승할 리 없다.

댄서의 아우라와 매력이 한 달 만에 몸에 붙는다면, 세상 사람 다 춤을 배우려고 하겠.

‘아니. 하음이는 남자라서 모르는 걸 수도 있어.’

성필에겐 요즘 고민이 하나 있었다.

물론 가로 엔터와 소녀연맹에 대한 고민은 항시 가지고 있으니, 그걸 제외하고 고민이 있단 뜻이다.

그 고민이란, 눈가의 주름이 미세하게 진해진단 것이었다. 전생에서 조아라에게 배운 피부관리법을 5년간 실천하고 있으나, 시간은 이길 수 없었다.

‘아라한테 배웠던 관리법 덕에 전생보다 확실히 노화가 느리긴 하지만…….’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성필은 매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이 새끼 돌았나’라고 말한 유하음 대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했다.

‘혜빈 누나한테 물어볼까.’

음, 놀림만 받을 거 같다.

‘사장님?’

음, 부끄러워서 싫다.

‘유이 씨…….’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대등한 이성 친구가 없는 거 같아.’

따지자면 유 노 댄스 아카데미의 백민정이 있긴 하다.

그런데 다짜고짜 찾아가서 ‘나 요즘 매력 있어지지 않았어?’라고 물으면 신종 데이트 신청법인 줄 알 것이다.

“형.”

성필이 휴게실에서 ‘생각하는 사람’ 자세로 숙고하고 있자 정지음과 리카가 찾아왔다.

“이거 들어줘요. 리카 파트 멜로디인데, 저랑 리카가 미는 게 달라요.”

“박 이사님은 공명정대한 결론을 내려주실 거라고 믿어요!”

“지금? 이런 문제면 회의 때 하면 되잖아.”

“아니, 리카가 계속 천재 뮤직 프로듀서 정지음 님한테 기어오르잖아요.”

“뮤직 프로듀서 정지음 독재 체제는 끝났어요! 아타시(제)가 가로 엔터 크리에이티브 파트 이사로서 신화를 쓸 거예요!”

“이, 이사? 너 지분 받았어?”

“미래의 이야기예요!”

아무튼, 정지음은 리카 파트 A와 B를 차례로 들려주었다. 둘 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은 듯 멜로디의 결은 비슷했다.

“어느 쪽이 네가 한 거고 리카가 한 거야?”

“그걸 말해주면 안 되죠.”

“A.”

“봤냐아아아아!”

정지음이 껄껄 웃으면서 춤을 추었다.

“어딜 나이도 어리고 쪼그만 게 기어올라 기어오르긴! 가로 엔터의 정점은 언제나 정지음이다! 영원히 변함없이!”

“칙쇼오오(제기라아알)!”

“응 크리에이티브 파트 이사는 정지음 거죠? 넌 아티스트 관리나 맡으라고.”

“이걸로 끝이 아니에요! A&R팀 회의가 남았어요!”

“회의 주제로 안 올릴 건데?”

“폭거얏!”

정지음은 승리 승리 노래를 부르면서 휴게실을 나섰다.

리카가 얼마나 정지음을 들들 볶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니었다면 정지음이 저렇게나 승리를 과시할 리 없을 테니.

“너 지음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도전장을 내밀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사님 고민 있으신가요!”

“보여?”

“생각하는 사람 포즈로 앉아 계시잖아요!”

“음, 있는 거 같아.”

“저한테 마음껏 털어놓으세요!”

“나는 대등한 이성 친구가 없는 거 같아서.”

“에.”

“그렇잖아. 내 인간관계라고 해봤자 전부 업계 사람이야. 근데 나는 가로 엔터의 위대한 이사이자 언젠가 최고의 총괄 프로듀서가 될 남자야. 어떤 식으로든 상하관계 같은 게 정립될 수밖에 없어.”

“……대등한 관계가 없단 게 문제인데, 왜 이성 친구 한정으로 고민하시나요?”

“…….”

아.

“아니야, 아무것도.”

리카의 질문에 답해주려면, 성필이 품었던 아이 같은 의문도 털어놓아야 한다.

최근 춤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혹시 더 매력적으로 변하지 않았냐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사님은 이미 대등한 친구가 있지 않나요!”

“누구?”

“진심으로 묻는 건가요?!”

“나랑 맞먹으려고 하지 마.”

“절교당했다?!”

“네가 이사 자리까지 올라오면 인정해주마.”

“두고 봐요! 저를 ‘이시카와 이사’라고 부를 날이 올 거예요!”

…….

“이에(아니), ‘리카 이사’라고 부를 날이 올 거예요!”

“이시카와 이사가 맞지 않아? 박 이사, 한 이사, 손 이사, 민 이사, 이시카와 이사.”

“리카 이사예요!”

“그게 부르기 쉽긴 하네. 리 이사, 이 씨 같다.”

“리카 이사예요! 그래서 무슨 고민인가요!”

“음…… 뭐, 너라면 말해줘도 되겠지.”

“왠지 기분이 나쁘네요.”

이야기를 다 들은 리카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사님 그런 건가요? 밴드부에 막 가입한 중학생이 ‘나 인기 있어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

“이래서 안 말하려고 했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솔직히 말하자면?”

“아키레타(질렸다, 노답).”

“나랑 맞먹으려고 하지 마.”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친구 아닌가요!”

“극존칭 안 써? 난 이사야.”

“꼰대가 돼버렸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렸다.

텀블러를 든 장하양은 둘이 있는 걸 보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앗, 언니 잘 오셨어요!”

“야야, 말하지 마.”

“박 이사님의 자의식 과잉 질문을 듣고 솔직한 감상을 말씀해주세요!”

“말하지 마아아아아아!”

말했다.

장하양이 쓰읍 숨을 삼키며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이사님 보셨나요! 보통 이런 반응이에요! 대등한 이성 친구가 있었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거라구요!”

“박 이사님은 매일 더 매력적이셔서, 모르겠어.”

“…….”

“…….”

성필과 리카는 폰을 꺼내어 방금 장하양이 한 말을 필기했다.

“애인이 예뻐졌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면 되나?”

“으음, B+급 대답이에요! 보통은 그냥 ‘예뻐졌어?’라곤 안 하니까요!”

“그럼 뭐가 A급이야?”

“으음, 보통은 헤어스타일이나 화장으로 질문하니까……. ‘오늘은 이게 더 예쁘다’ 아닐까요?”

“B―.”

“냉정하네요…….”

“근데 확실히 그런 게 있어요.”

장하양은 연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연기하시는 분들은 거울을 보면서 제스처와 표정 연습을 많이 하거든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한 연습이기도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캐릭터성을 끌어내는 거예요. 자기 자신이 가장 매력적이어야 다른 인물을 연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연기자들은 뭔가…… 자연스러우면서도 매력이 있어요. 활기? 아우라라고 하는 편이 나을까요, 아하하.”

“연기는 확실히 그럴 거 같네요! 춤은 모르겠지만요!”

“계속 나를 그렇게 멕여야겠니?”

“재밌어요!”

아무튼, 성필은 제대로 된 답을 얻지 못했다.

‘아니지, 고작 춤 몇 달 배운 걸론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단 걸 깨달았으니.’

매력적이 되겠단 목적으로 춤을 배운 것도 아니다. 성필은 재밌어서 배우고 있는 거니까.

만약 변화가 찾아온다면 그건 춤의 부수적인 효과겠지.

리카가 한 말이 옳다. 이건 자의식 과잉이다. 밴드부에 가입한 남자 중학생이 ‘나 인기 있어지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나중에 수련 씨한테 피부과 추천이나 받아야겠다.’

언제 만날 일이 있으면 말이다.

아마 없겠지만.

“그래서 이게 멜로디가…….”

정지음의 작업실.

정지음은 성필과 소녀연맹 멤버 전원을 모아 가이드 버전을 점검했다.

이 곡에 가사를 붙이는 건 콜라주(collage)와 비슷했다. 타일, 조각, 비닐, 나뭇잎, 잡지 지면 등을 자유롭게 붙일 수 있다. 자유롭게 붙여 꾸민다지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패턴이 있을 것이다.

“아라 파트는 버전2를 택하긴 했었는데, 아, 역시 길어서 그런가 계속 고민이 되네. 춤도 고려해야 하니까, 호흡에 주안점을 두면 어떤 식이 좋을까.”

업무에 집중하는 정지음은 평소와 다른 사람 같다. 도저히 아까 리카에게 인성질을 했던 사람과 같아 보이지 않는다.

성필은 멤버들의 가사를 유심히 보며 커피를 홀짝였다.

“아라야?”

정지음이 물었다.

조아라가 바로 대답하지 않아서였다.

그제야 조아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뭐 걸리는 점 있어?”

“아뇨, 어……. 이거랑 관계없는 얘긴데요, 아저씨 좀 달라지지 않았어요?”

리카와 장하양이 깜짝 놀랐다.

그에 비해 정지음이나 다른 멤버들은 무슨 뜻인지 몰라 물음표만 띄웠다.

“최근 계속 느꼈는데, 움직이는 게 느려졌다고 해야 하나. 막…… 물 흐르는 것처럼? 방금도 커피컵 들 때.”

컵을 쥔 성필의 손이 움찔했다.

“막 슬로우모션처럼…… 뭐라고 하지? 모르겠다. 아니, 아! 우아하다? 그런 느낌인데.”

“얜 뭐라는 거야.”

신아름이 어처구니없어했다.

“팀장님이 연기라도 한단 거야?”

“아니, 진짜 그렇다니까. 걷는 것도 좀 변했어. 지금도 봐, 앉아 있는 거.”

“앉아 있는 게 뭐?”

“정중선상이 딱 맞춰져 있잖아.”

“정중…… 뭐?”

“그냥, 그렇다고. 아저씨 요즘 뭐 배워요? 요가?”

리카와 장하양이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성필을 보았다.

성필은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슬그머니 허리를 보통 사람처럼 편히 굽혔다. 그리고 정중선상이 흐트러지도록 다리를 꼬았다.

“아니, 딱히.”

“진짜요?”

“야, 조아라. 내가 모르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회의 지겹다고 아무 말이나 막 지어내네.”

“지어낸 거 아냐. 야, 옆에 쌤 쓰러지겠다.”

“쌤!”

“으어?”

“회의하는데 자요? 성공했다고 이젠 절박하지도 않지 진짜. 내가 우리들의 프로듀싱 제일 먼저 했어야 했는데.”

“미, 미안. 요즘 날이 풀려서 그런가. 헤헤, 춘곤증인가 봐…….”

성필은 오른손에 쥔 커피컵을 물끄러미 보았다. 우아한지는 모르겠지만, 손을 움직여 투박하게 쥐는 모양새로 바꾸었다.

* * *

토요일.

성필은 눈을 뜨자마자 폰을 켜서 메시지함을 열었다.

“……아.”

이제 PT는 안 나가지.

PT를 끝낸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건만, 성필의 습관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요즘도 아침이 되면 권강철 트레이너의 메시지가 와 있을 것만 같다.

워터 멜론 차트 TOP100을 재생하고 아침을 먹었다. 고구마와 달걀을 씹으며 수첩으로는 가로 엔터의 스케줄을 확인했다.

‘맞아, 레코딩이 내일이었지.’

A&R팀이 불가피하게 주말에 레코딩 스케줄을 잡았다면서 미안해했던 게 기억난다.

‘봄여름에 컴백할 그룹이 많은가?’

외에도 소녀연맹 뮤직비디오 세트장 확인.

아틀라스의 조진만 사장과 미주(美州) 콘서트 관련 미팅.

그리고 한국 컴백 이후 일본 활동 앨범 구상, 정지음이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에스타스에 관한 컨설팅…….

‘됐어. 이건 나중이고, 다음 주 건만 보자.’

확실히 회사 안에 그룹이 세 개나 되니, 스케줄이 이전과 비교해서 훨씬 빡빡하다.

옛날엔 성필이 할 필요 없는 일도 자진해 맡곤 했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 성필이 해야만 하는 일밖에 없다.

“음?”

스피커에서 록 사운드의 곡이 나온다. 아이돌의 노래가 아니라 진짜 록밴드가 부른 듯하다.

‘록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도 하나?’

록이 차트에 걸리는 건 드문 일이다.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까지 바로 해결했다. 씻은 후 텔레비전에서 요즘 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찾았다.

‘진짜 하고 있네.’

1화만 보려다가 2화까지 봤다.

‘아, 벌써 시간이.’

성필은 옷을 차려입은 후 왁스로 헤어스타일을 정돈했다. 향수를 뿌린 다음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 섰다.

루즈핏 니트에 깔끔한 면바지다.

위에 코트까지 걸치면 끝…….

“아!”

성필은 황급히 옷을 모두 벗어 침대 위로 던졌다. 그리고 옷장에서 정장을 꺼냈다.

오늘 가기로 한 곳은 드레스코드가 있다고 했다. 급히 정장을 차려입은 후 헤어스타일도 약간 더 깔끔한 쪽으로 다듬었다.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청담동의 프랑스 식당이었다. 건물로 들어가 3층의 가게로 향했다. 문을 여니 긴 현관 끝에 선 직원이 공손히 인사해왔다.

“박성필입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성필은 그를 따라 안쪽 방으로 향했다.

자리엔 이미 약속한 이들이 있었다.

“이사님.”

양소민과 정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성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들도 따라 앉았다.

“안녕 소민아, 정진아.”

오늘은 양소민을 만나기로 했다.

그냥 만나는 것도 아니고, 밥을 얻어먹는다.

장성한 제자가 오랜만에 연락을 와 식사를 대접받는 기분이다. 입가엔 자연스러운 미소가 머무른다.

“소민이…….”

성필은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김태훈과 함께한 자리였다.

그때의 기분을 지우려 노력하며, 성필은 자애로운 미소를 띠었다.

“잘 지냈어?”

“네…….”

‘네’란 답에서 잠깐의 망설임이 느껴졌다.

양소민은 인사치레라도 거짓말을 하기 껄끄러워하는 성격이다. 아마 석세스 엔터에서의 생활이 크게 만족스럽지는 않은 듯하다.

‘아이돌이 싫다고 했었지.’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 걸까.

“정진이는?”

성필은 정진에게도 양소민과 같은 농도의 미소를 보였다.

과거 석세스 엔터 시절엔 정진을 대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칭찬할 때도 혼낼 때도 정진의 반응은 무미건조했었다.

아니, 건조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가웠다.

연습생들 사이에선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성필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았던 것이겠지.

“잘 지냈어?”

“네, 어, 네.”

정진은 아까 인사를 했음에도 고개를 숙이며 다시 인사했다. 그 행동이 뻣뻣한 데다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성필은 정진의 색다른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진아 뭐야! 나 오랜만에 만났다고 낯가리는 거야?”

“아…….”

정진은 접시 위의 냅킨을 주물럭거리면서 ‘으음’ 불분명한 답만 던졌다.

“하긴, 너무 오랜만이긴 하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네.”

“네…….”

“긴장하지 마. 내가 그때처럼 너희 막 혼내고 그러진 않을 거 아니야.”

성필이 그렇게 말해주었음에도 정진은 쉽사리 분위기를 풀지 못했다.

양소민은 그런 정진을 보곤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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