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화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를 진행하며 가로 엔터는 일반인, 그리고 인민이들과의 대면 인터뷰 자료를 수집했다.
인터뷰 2시간에 무려 6만 원이란 거금을 지급하면서 이런저런 자료를 따냈다.
“어디 볼까.”
“또 어떤 게 생겼을지 기대되네요!”
리카가 작사 과정에서 영감이 필요하다기에, 성필은 그녀를 데리고 인터뷰 자료를 보았다.
성필이 양손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자 리카가 그의 팔 사이로 쏙 들어왔다.
“나가.”
“데자뷔!”
리카가 팔 사이에서 쏙 빠져나갔다. 그리고 성필의 왼쪽에 자리 잡았다.
이미 가사 작성을 끝낸 조아라는 한껏 여유로운 태도로 성필의 오른쪽에 앉았다.
리카가 장난스럽게 조아라를 밀어냈다.
“아라쨩은 가사 다 썼잖아! 보면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리카, 어떤 걸로 볼래? 일반인? 인민이?”
“으음, 오늘은 약간 색다르게 대중분들 걸로 볼래요!”
“이게 여러 인터뷰를 합친 거라서 중간에 사람이 휙 바뀔 수도 있어. 그리고 기니까 건너뛰면서 볼게.”
“하이(네)!”
성필이 인터뷰 총집편을 재생했다.
첫 인터뷰이는 단발의 대학생이었다.
[아이돌이요……. 저 개인적으로는 ‘4탈 운동’을 지지해요.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운동인데, 탈코르셋, 탈오타쿠, 탈종교, 탈아이돌이 있어요.
전부 다 문제인데, 케이팝 문화의 병폐는 이렇습니다. 팬덤이란 광신적 집단에 있는 건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자아 의탁으로 인한 병적인 정신 상태, 같은 물건을 수십 개나 사는 과소비,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아이돌을 우상화하고 대상화합니다. 소비자뿐 아니라 아이돌 본인에게도 과도한 감정 노동, 신체 노동, 학대에 가까운 스케줄 등 문제가 많아요.
남녀의 고정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고, 아이돌을 성애적으로 소비하며, 과몰입으로 자아가 약해지는 문제가 심각…….]
“이런 분만 있으면 케이팝 산업이 멸망하겠어요…….”
“패션이랑 애니랑 교회도.”
조아라는 인터뷰이의 말이 아이돌인 자신과 팬덤인 인민이들을 욕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영상을 향해 중지를 들었다.
“쓰읍, 아라야 하지 마.”
“아 왜요.”
“언젠가 네 팬이 되실 수도 있잖아.”
“이 사람이요? 왜요, 대통령이 날 덕질할 수도 있다고 하지.”
성필은 여러 논쟁이 오가기 전에 다음 인터뷰이로 영상을 넘겼다.
다음 인터뷰이는 머리가 매우 짧았다.
스타일로 보건대 군인이었다.
[아이돌 말입니까? 아, 아이돌이란 건 저에게…… 음……. 사실 입대하기 전까지 아이돌엔 관심을 두지 않았었습니다. 노래는 들었지만 말입니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남녀 공학이라, 아이돌 노래와 친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점심시간마다 아이돌 노래가 나왔고, 축제 땐 필수처럼 아이돌 곡으로 무대를 하는 애가 있었고, 또 오며 가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아, 그런데 저한테 아이돌……. 음, 군대에 오고 나서 음악방송을 굉장히 많이 보았습니다. 핸드폰을 많이 하긴 하지만, 음악방송은 배경음처럼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를 자주 보게 되는데…….
으음, 저에게 아이돌은…… 아. 군생활의 활력이 되어주는 존재 같습니다.]
“와.”
“아저씨 왜요?”
“아니, 좀 충격이다. 나 군시절엔 아이돌은 신이었거든. 텔레비전 켜서 끌 때까지 거의 음악방송만 틀어놨어. 근데 요즘은 폰을…….”
“꼬우신가요!”
“말 예쁘게 안 해?”
“못마땅하신가요!”
“조금 그렇네. 에휴, 군대 참 편해졌다.”
“그럼 다시 가시는 건 어떤가요! 아타시(제)가 위문공연이랑 면회 가드릴게요!”
“시네에(죽어엇)!”
“끼에에에에에엑!”
다음 인터뷰이도 대학생이었다.
대학생이 돈이 궁해서 그런지, 이런 인터뷰에 많이 참여하는 듯했다.
[아이돌이요? 저는 아이돌을 좋아했던 게……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건너갈 때?
그때 텔레비전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은 거 했었어요. 뭔가, 허름한 데서 같이 살면서 으쌰으쌰 하는 모습을 보고 힘을 많이 받았어요. 제집이 좀 그래서 학원을 많이 다녀서 매일이 피폐했는데, 감정이입도 되고…….
어렸을 땐 참 좋아했는데, 이후론 공부가 바빠서 관심이 없었어요. 아이돌은 노래로만 알아요. 최근에 좋았던 건 케이어스 IWY? 그거 많이 들었어요.
음, 저는 아이돌이나 케이팝에 관심은 없지만 케이팝이 계속 유명해졌으면 좋겠어요. 국뽕 그런 거 차치하고서, 국익에 도움이 되잖아요.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케이팝의 매력? 모르겠어요. 왜들 그렇게 난리인지. 저 어릴 때야 멋진 오빠들 좋아했던 건데, 글쎄요. 외국엔 아이돌 같은 게 없나 봐요.]
“이분은 많이 건조하시네요…….”
“눈에서 ‘빨리 돈 줘’란 느낌이 팍팍 드네. 우리가 벌어온 돈을 이런 사람들한테 뿌려요? 심지어 케이어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케이어스 좋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가려 받아.”
다음 인터뷰이는 직장인 여성이었다.
직장인도 이런 단기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곤 하는구나. 성필은 신기했다.
하긴, 2~3시간 인터뷰에 6만 원이면 군침이 돌 만하다. 인터뷰만 끝내고 돈을 받은 후 주변 거리에 놀러 가도 됐을 것이다.
[아이돌요? 관심 있는 몇 그룹은 컴백하면 뮤비나 무대 찾아보는 정도요. 또, 아이튜브 알고리즘이랑 쇼츠 뜨면 눌러보는? 앨범은 노래 좋다 싶거나, 응원하고 싶은 아이돌 보면 한 장씩 사둬요.]
“어? 팬이 아닌데도 앨범을 사는 사람이 있어요?”
“그럼 당연히 있지. 앨범 까짓거 직장인한테 얼마나 된다고.”
“CD로 음악 듣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 사람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팬들도 CD는 버려.”
“손나(그런)!”
“구성품이 있잖아. 그거 까는 것만으로도 재밌지 않아?”
“아저씨는 케이어스 앨범 까면 재밌구나.”
“배신자! 피부 안에 붉은 피가 흐르는 걸 증명해요!”
“사람 피는 원래 붉잖아.”
“우소츠키(거짓말쟁이)! 이사님의 정맥은 파란색이에요! 푸른 피가 흐르는 게 틀림없어요!”
“내 힘줄 만지지 마.”
“아저씨 고혈압이에요? 힘줄이 뭐 이렇게 서 있어요. 아니면 혈류 관련된 영양…… 네에 딱 이쯤 하겠습니다!”
“아라쨩 시네에에에(죽어어어어어)!”
[클락 릴스 멍때리면서 보다 보면 아이돌 관련된 걸 못 볼 수 없긴 하죠. 노래, 춤, 뭐, 그거 외에도 ‘관리 안 한다고 소문 난 아이돌 순위’ 같은 거나 ‘요즘 살찐 걸그룹 멤버’나 ‘기아가 아닌지 의심되는 요즘 걸그룹 ㄷㄷ’ 같이 재밌는 거…….]
조아라는 당장 폰으로 클락 앱을 켜서 해당 제목을 검색해보았다.
바로 보였다.
다행히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보고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 걸그룹 관련된 것만 보는 건…… 아, 그쵸. 일부러 아이돌은 여돌 것만 보려고 좀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남돌 거 보다가 눈 맞으면 큰일이에요. 바로 감정 있는 ATM으로 변하잖아요.
케이팝의 매력? 아, 근데 인기가 있을 만하다는 생각은 들어요. 제가 외국 가수들 라이브 영상들도 가끔 찾아보는데에…… 보는 맛이 살짝 없어요. 노래만 부르니까 뭐 당연할 수도 있는데. 춤이랑 노래를 같이 보는 데 익숙해져서 그런가?
요즘 아는 그룹요? 케이어스, 소녀연맹, 글로브, 또 뭐 있더라. 이 셋이 젤 유명하지 않아요?]
“알겠다, 와타시타치(우리들)의 수준.”
“의외로 다들 아이돌 노래는 듣는다고 하네요.”
“뭐, 그치. 92% 확률로 듣지.”
“뭔데요, 그 이상하게 정확한 수치.”
“음악산업백서 설문조사 결과야.”
“나머지 8%는 뭐 들어요?”
“교집합이랑 여집합의 결과는 몰라. 팝송이 75%고 제이팝이 8% 정도 되던데. 나머지 장르는 5% 이하고.”
“아니, 아무리 3D에 관심이 없어도 케이팝을 아예 안 듣는다고요? 일본 노래만 듣고? 이 뭔…….”
“교집합이랑 여집합은 모른다고 했잖아. 숫자가 맞아떨어지긴 하는데, 논리적으로 완벽히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어. 의외로 교집합이 클 수도 있지.”
“아타시(나)처럼! 카와이 퓨처베이스, 제이팝, 케이팝, 팝송, 클래식과 재즈, 록까지 모두 섭렵하는 거야! 이사님, 이제 대중분들의 싸늘한 시선은 충분히 섭취했어요! 인민이들의 사랑을 먹을 시간이에요!”
성필은 일반인 인터뷰 영상을 끄고 팬 인터뷰 영상을 켰다.
“어? 아저씨 방금 저장된 영상 뭐예요. 진저 보였었는데.”
“음, 별거 아니야.”
“뭐냐고요, 뒤로 돌려봐요.”
“아 그냥 트잇터에서 다운받은 거야.”
“우라기리모노(배신자)!”
“너희 영상이 훨씬 많아, 볼래?”
“도촬범!”
“어쩌라고?!”
첫 인터뷰이는 막 30대에 접어든 직장인 남성이었다.
[소녀연맹에 입덕하게 된 계기는 아름이요. 포유 정주행하고 나서 관심이 생겼는데, 데뷔한다고 해서 찾아봤었어요.]
“이열, 신아름도 도움이 되네.”
“아름이가 입덕 요정이긴 했지.”
“아닌데요? 내가 요정인데요? 탈덕 막는 것도 난데요?”
“응, 우리 아라 장해. 어이구 예쁘아악!”
“잠깐! 이사님을 응징하는 건 그만둬! 이분이 부끄러운 말씀을 하실 거 같아!”
그 말대로, 인터뷰이는 머쓱한 듯 옅게 미소 지었다.
[힘을 많이 받죠. 무대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란 게 직접적으로 보이는 거잖아요. 노력이 그대로 보이죠. 그걸 보면, 이렇게 어린애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사는구나. 나도 좀 더 힘내자. 이런 마음이 막 들어요.
아, 생각해보니 그리 어리진 않네요. 설하랑은 4살 차이밖에 안 나기도 하니까요.]
“와, 이렇게 들으니까 쌤 진짜 나이가 많긴 하다. 30살이랑 4살 차이래.”
“으음, 그럼 이사님이랑은 9살 차이네요!”
“왜 내 나이를 떠올리게 하지?”
“걱정 마세요! 이사님은 아직 젊으니까요!”
“고맙다…….”
“사회인으로서요!”
“……응, 고맙다.”
[진짜 대단하다고 많이 느껴요. 특히 우리들의 프로듀싱 들어가면서부터요.
회사의 수입과 직결되는 선택을 계속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니, 20대 초중반인데요! 제가 막 입사해서 사장님한테 직접 기획 올려서 결재받는단 건데, 많이 힘들겠다 싶어요.]
“…….”
[시즌1이랑 시즌2에서 다 그랬잖아요. 힘들다고. 무섭다고. 그래도 그걸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면서, 팀이랑 회사를 위해서 노력하는 걸 보면 참…… 대단해요.]
“……아라야.”
“왜요.”
“두 번째라지만, 그래도 힘들었지?”
“이제 와서 공치사해주게요? 됐네요. 이미 얘기도 다 끝냈잖아요. 힘들었지만 즐거웠다고. 나 말고 하양 언니한테나 잘해줘요.”
[아이돌은 퍼포먼스 작품을 만들어내는 직업…… 그리고 그 작품을 파는 거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근본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결국엔 사람을 소비하는 거잖아요. 아이돌이란 인간을요. 그리고 인간에 결합된 서사가 중요한데, 소녀연맹은 그 서사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우리들의 프로듀싱을 저는 재미로 시청하지만, 응원하는 마음도 있어요. 댓글도 달았는데, 멤버들이 봤으면 하고 바라요.
어떤 댓글? 아, 어떤 댓글이냐면요. 그, 흐린 눈이라고 하죠? 그으, 저는 하양이가 잘할 걸 알지만, 설령 기대에 못 미쳐도 흐린 눈 뜨고 응원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해줬으면…….]
인터뷰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도 상처받기 쉬운 환경이잖아요. 거품으로 이루어진 폭풍 안에서, 폭풍보다 더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관심으로 살아가는 직업이니까. 아마 상처를 입기 훨씬 쉬울 거예요.
하지만, 언제나 뒤에서 응원하는 인민이들이 있으니까, 용기를 내서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대충 이런 말이었던 거 같아요.
우리 소련이들을 좋아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으니까요. Look at the silver lining, 좋은 면을 봤으면 하고 바라요.]
“흐끅…….”
감수성이 예민한 리카가 훌쩍였다.
“이런데 어떻게 인민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랑은 충전했어?”
“100%예요! 이 에너지로 가사 한 문장 정도는 쉽게 적을 수 있겠어요!”
“애걔, 겨우 한 문장? 이렇게 감동적인…….”
“이사님.”
앞에서 들려오는 장하양의 목소리.
세 사람은 동시에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셋 다 동시에 숨을 헛삼켰다.
장하양이 한쪽으로 뺀 골반에 손을 얹은 모습으로, 즉 모델 포즈로 서 있었다.
“2차 메인 의상 컨펌 회의, 지금 시간 내주실 수 있으세요?”
“어……?”
“언니 그 옷 뭐예요? 우리 메인 의상? 와 씨, 미쳤다.”
“엣찌(음란)!”
리카가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그리고 손 틈 사이로 장하양을 노골적으로 훑었다.
장하양은 한쪽 다리를 앞으로 슬쩍 빼며 웃었다.
“아라는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 긴 한데.”
조아라는 시원하게 빠진 장하양의 다리를 보았다. 커다란 구멍이 패턴처럼 뚫려 있다. 그냥 다리를 드러낸 것보다…… 엣찌(음란 or Edge)해 보인다.
“살짝…….”
“엣찌하지만 아라쨩 무용복보단 덜 하네요!”
리카는 조아라에게 헤드락이 걸려 신음했다.
“그래서 이사님,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유이 언니가 기다리고 계세요.”
“……음.”
대충 장하양의 의도를 파악한 성필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그래, 가볼까?”
* * *
회의실.
이유이는 벽을 짚은 채 주문과 같은 말을 웅얼거렸다. 옆에 선 배헌용은 그런 이유이의 상태를 보곤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배님, 제대로 프레젠테이션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
“들리지도 않나.”
똑똑.
노크 소리.
이유이가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었다.
배헌용이 물었다.
“누구세요? 비주얼팀이 사용 중입니다.”
“이사님을 모셔 왔어요.”
“아.”
문이 열렸다.
발소리는 두 개다.
이유이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유이 씨.”
프로듀싱의 신이 강림했다.
이유이는 이를 덜덜 떨었다.
‘나는.’
이유이는.
‘박 이사님처럼, 되고 싶었어.’
담당한 아이돌 멤버들에게 구박받을 때 성필이 변호하러 뛰어와 준 순간부터.
가로 엔터와의 협업 요청을 받아들여 사장 홍규헌을 만나게 해준 순간부터.
가로 엔터 전속 스타일리스트이자 디자이너 자리를 제안해준 순간부터.
그의 프로듀싱을 가장 가까운 곁에서 지켜본 순간부터.
순간부터. 순간부터. 순간부터.
그러니까, 즉, 모든 시간을.
‘박 이사님처럼 되기 위해 살았는데.’
이젠 그와 대적하게 됐다.
“바로 시작해도 될까요?”
이유이에게 성필은 신이었다.
신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던 문제를, 다시금 그에게 내밀어야 한다.
신으로 숭배하던 자에게로의 반역.
신의 닮은꼴이 되길 바랐던 이유이는, 처음으로 그가 만든 세상에 의문을 품는다.
그가 만든 세상을 향해 불꽃을 피워 올린다.
루시퍼처럼.
그리고 루시퍼는.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
천상으로부터 추방당한다. 7일 낮 7일 밤을 추락하여 심연의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신과 가장 닮았던 피조물은, 신이 되려던 꿈을 완벽히 상실한다.
이유이의 이 반역 끝에 무엇이 남을까.
“언니.”
성필의 뒤에 서 있던 장하양이 다가온다.
그리고 이유이의 곁에 선다.
숨길 수 없는 아우라가 가까워지자 흐릿하게 풀렸던 초점이 강제로 맞춰진다.
“준비되셨어요?”
아, 그래.
남는 게 있다.
‘나의 꿈에게 당당했노라고.’
이유이는 리모콘을 들었다.
버튼을 누른다.
불꽃 같은 붉은 빛이 점멸한다.
‘미래의 나에게 말할 수 있겠지.’
그러니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그게 이유이가 가질 유일한 것.
동시에 모든 것.
“그럼.”
제2차 메인 의상 컨셉 컨펌 회의.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