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25화 (625/760)

625화

“저는 옷은 인간이 입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헌용은 섬세한 손길로 장하양의 의상 디테일을 점검했다.

“즉, 옷의 가치는 인간이 입는 순간이 아닌 만들어진 순간부터 존재해요. 옷 자체로 예술 작품이에요. 이런 말을 들으면 과장이라고 느끼시겠지만, 하이패션 시장이 존재하는 나라는 옷을 예술 작품으로 쳐줘요.”

그는 구겨진 장하양의 재킷을 손끝으로 붙잡고 보푸라기를 천천히 떼어냈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이 나라들의 공통점은 명품 브랜드가 존재한단 거예요. 옷을 예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는 거죠. 상품이 아닌 작품.”

보푸라기 제거기가 장하양의 어깨를 타고 팔로 흘러내리듯 움직였다.

“그런 의미에서 뭐랄까, 저한테 기획사 스타일리스트 일은 안 어울리는지도 몰라요. 가로 엔터를 제 직장으로 택한 건, 아이돌에게 옷을 입히는 게 가벼운 일이라서예요. 가벼운 일이니까 적당히 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배헌용은 장하양의 복장을 세심하게 살폈다.

“기획사에게 있어서 옷은 작품이 아니라 인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니까요. 제 신념과 완전히 배치(背馳)되는 장소를 제 일터로 택했어요. 대강 공장형으로 찍어낸 옷을 인형 옷 입히기처럼 대강대강 스타일링하는 곳. 그래서 뭐, 의욕이랄 것도 딱히 없었는데.”

이윽고 배헌용이 만족을 담아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여기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 * *

1층 벽면엔 ‘올해의 우수직원’ 사진이 걸려 있다. 바로 콘텐츠팀의 양상헌이다.

양상헌은 홍보팀 강지혜와 그 사진을 보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상헌 씨, 이 사진 볼 때마다 뭔가 기분 나빠요.”

“당사자인 저도 그래요. 너무 인위적으로 웃지 않아요?”

“그것도 그런데, 상헌 씨의 이중적인 면모를 잘 표현한 사진 같기도 해요.”

“맞아요.”

“……?”

“혹시 소련이들 콘텐츠 기획 괜찮은 거 없어요?”

“어제 4시간 동안 팀원들 붙잡고 회의하지 않으셨어요?”

“회의는 회의고요. 솔직히 지혜 씨한테 물어봐도 제가 다 한 번 생각해봤던 거 나오겠지만, 혹시나 물어봤어요.”

“소련이들 휴가 콘텐츠 찍어요. 글램핑이라든가.”

“아, 식상해 죽겠네.”

그때 둘은 뒤에서 인기척을 감지했다.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안녕하세요.”

장하양이 평소와 다름없는 미소와 인사를 전하며 유유히 지나갔다.

양상헌과 강지혜는 사라지는 장하양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충격이 한풀 꺾이자, 강지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양이 너무 이기적으로 세상 사는 거 아니에요? 매번 느끼지만 혼자 다 가졌네…….”

“그러게요. 누구는 식상한 아이디어 내는 능력밖에 없아악!”

한구인과 경리 권아인은 2층 계단 앞에서 소소한 담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사실, 담화라기엔 뭐했다.

한구인 혼자 목회자처럼 이야기할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권아인이 가끔씩 맞장구쳤다.

“레코드판에는 나름의 낭만이 있습니다. 또한 일부에 한해선 디지털보다 음질이 좋기도 합니다. 레코드 시대에 녹음된 작품은 당연히 레코드로 감상하는 게 최상의 상태겠죠.”

“저도 한번 사볼까요?”

“원하신다면 제가 저렴한 가격에 레코드 시스템을 구축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아, 그럼 사장님이 안 계시는 날에 오실래요?”

권아인은 홍규헌의 호의 덕분에 시외 출근 지옥에서 벗어났다.

아주 가끔, 홍규헌이 개인적으로 사람을 초대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그녀의 집에 있을 수 있다.

“예? 굳이 사장님이 없는 날이어야 합니까?”

“아, 음, 시끄럽거나…… 사장님이 불편하시거나, 제 손님이라 탐탁지 않아 하실 수도 있으시니까요.”

한구인은 걱정하지 말란 뜻으로 웃어 보였다.

“저는 사장님의 집에 자주 방문해보았습니다. 사장님이 불편해하시진 않을 겁니다.”

“……아, 네.”

“보낸 시간은 물론 직접 거주하시는 아인 씨보다야 못하겠지만, 방문 횟수는 뒤지지 않을 겁니다.”

“……그런, 가요.”

“레코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다니 정말 기쁘군요. 일단 제가 추천하는 건 라흐마니노프의 음반입니다.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이 가볍게 듣기 좋습니다. 아무래도 원작자의 아우라란 게 있으니,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한 앨범을 먼저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건 베를린 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지휘는 페렌츠 프리처이, 피아노를 마르그리트 베버가 맡은 것입니다. 아버지가 소장하고 계셔서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

한구인의 눈동자가 권아인의 뒤에 꽂혔다. 그의 눈동자는 아주 천천히 좌에서 우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따라서 움직였다.

권아인은 뭔가 싶어서 뒤를 보았다.

“……!”

“안녕하세요.”

장하양이 미소와 함께 둘의 곁을 지나갔다. 그 뒤를 배헌용이 고개를 꾸벅 숙이곤 뒤따랐다.

“…….”

“…….”

권아인은 한구인을 흘끔 보았다.

한구인은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조아라가 처음 단발로 잘랐을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라, 라흐니니 얘기 더 해주세요! 라흐니니 제목에 의한 협주곡? 그거요! 작곡가가 파가마니노프?”

“…….”

“제 얘기도 안 들리세요?!”

권아인이 한구인의 어깨를 붙잡고 격렬하게 흔들었다.

3층 계단 근처, 임한결과 콜베르게르가 땀을 식히려 벽에 등을 대고 있었다. 연습실보다 복도가 훨씬 시원했다.

“한결아, 그거 아냐? 내가 다른 그룹들 뷔라이브 보면서 얻어낸 지식이다.”

“어떤 거요?”

“의외로 아이돌 선배님들은 후배들이 딱딱하게 대하는 걸 섭섭해한다더라.”

“정말요? 막, 친근하게 대하면 화장실로 끌려가서 맞거나 안 해요? 뺨 맞은 다음에 침 뱉어진다거나. 선후배 관계가 철저하다고 들었는데…….”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방송에서 아이돌 선배님이 ‘비발디 선배님’, ‘쇼팽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걸 보곤 감탄했었지. 어머니가 항상 말씀하시던 동방예의지국이란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어. 하지만 그건 과장된 거라 하더군.”

“그렇구나…….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요?”

“소비에트 선배님들도 우리의 딱딱한 태도에 내심 섭섭하셨을 거다. 더는 선배님들과 마주하자마자 개처럼 기어서 도망가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친근해도 되지 않을까.”

“예를 들면요?”

“음, ‘선배님 안녕하세요오’처럼 비굴하게 아양을 떠는 정도가 괜찮겠어.”

“아양…… 사회생활은 어렵네요.”

그때 계단 아래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둘은 올라오는 사람에게서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느꼈다. 일단 비율로 보건대 절대 직원이 아니다(손혜빈 제외).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하나, 선배님이다.

“한결, 준비됐지?”

“물론이죠, 즈비그니예프 콜베르게르 형.”

둘은 만면에 미소를 짓고 친근하게 아양을 떨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의지는 장하양이 계단을 올라오며, 점점 둘에게로 가까워지며 꺾여갔다.

도저히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믿기지 않는 아우라가, 태양과 같은 존재감이 다가왔다.

이윽고 그녀가 3층을 디딘 순간.

“안녕하세요.”

장하양의 미소와 동시에, 콜베르게르와 임한결이 모세의 기적으로 갈라지는 바다처럼 양옆으로 물러나 90도로 허리를 꺾어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하양 선배님! ‘카오틱 에너지’의 넷째 즈비그니예프 콜베르게르입니다! 본관은 바르샤바입니다!”

“아, 안녕하십세요 선배님! 막내 임한결입니다! 보, 본관은 대전입니다! 아니, 사실 본관은 모르고 고향은 대전입니다!”

“열심히 해요.”

장하양이 지나가자 콜베르게르가 임한결의 멱살을 잡았다. ‘안녕하십세요’는 무슨 욕이냐고, 그리고 왜 그렇게 딱딱하게 대했냐고. 선배님이 실망했으면 어쩔 거냐고.

“형도 똑같았잖아아아아아아―!”

후배들의 비명을 뒤로하고 장하양은 앞으로 나아갔다. 나아가고 나아가서, 도달했다.

이유이의 작업실.

배헌용이 장하양의 곁에 섰다. 그리고 노크했다.

“선배님, 배헌용입니다. 용무 있어서 왔습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잠시 후, ‘응’이란 힘없는 답이 들려왔다.

둘은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유이는 문에서 등을 보인 채 테이블을 짚고 서 있었다. 테이블엔 온갖 종류의 의상 스케치가 가득했다.

작업실은 눈이 편한 황색등만이 있었다.

평범한 형광등이 켜진 곳에서 작업실로 들어온 장하양은 이곳이 매우 어두워 보였다.

“헌용이, 왜.”

이유이는 배헌용과 마주할 힘도 없단 듯, 그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배헌용은 장하양을 보았다.

장하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이쪽 한번 봐주세요.”

이유이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녀는 흐느적거리는 몸짓으로 뒤로 돌았다.

그리고 그녀의 느긋했던 몸짓과 정반대로, 그녀의 눈꺼풀이 번개처럼 위로 치솟았다.

이유이의 눈은 장하양에게 고정됐다.

“너, 헌용이 너, 만들었어……?”

이유이가 이를 악물었다.

“스타일리스트팀들이랑…… 접촉해보라고 했잖아……. 이건 이미 끝난 얘기라고, 반려당했다고, 내가 말했었잖아?”

“제가 하자고 했어요.”

장하양이 배헌용을 지키려는 듯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일본에서 연을 맺은 디자이너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디자인은 기획 단계에선 상상일 뿐이고, 일러스트레이션일 때는 그림일 뿐이니, 실제로 그게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고요. 옷의 가치는 실재한 순간부터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실재(實在)시켰어요.”

이유이는 시간을 두고 장하양의 옷을 천천히 탐닉하듯 눈으로 핥았다.

이유이가 모를 리 없다. 장하양이 걸친 캣슈트와 재킷은 입생로랑의 것이다.

그 가격 또한 알았다.

1,000만 원이란 돈을 오로지 설득을 위해 소모했다. 그 돈의 양이 곧 장하양의 의지였다.

“아.”

이유이는 그림으로만 존재했던 상상의 의상이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장하양의 머리부터 발목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장하양의 발에 있는 건 슈트와 어울리는 힐 따위가 아니었다.

새하얀 스니커즈.

자유의 상징.

포스트모던 댄스의 선구자인 이본 레이너가 스니커즈를 신고 춤을 춘 순간부터, 스니커즈는 모든 격식과 규율을 깨부수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됐다.

장하양은 이유이의 이상(理想)이 현현한 모습 그 자체였다. 동시에 그 이상은 한낱 인간이 품은 얄팍함이었다.

이유이는 정신을 다잡았다.

“하양아, 네 모습을 박 이사님께 보여드리는 건 안 말릴게. 그런데, 나는 동의해줄 수 없어.”

“제 차림이 마음에 안 드세요?”

“마음에 들어. 너무 마음에 들어. 내가 꿈꾸던 그대로야.”

“그런데요?”

“하양아, 알잖아.”

이유이가 서글픈 기색을 띠었다.

“박 이사님은 신이야.”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진 않으나, 그 비슷한 권능이 성필에게 있다.

그는 무엇이 성공할지 알기에(知), 성공을 행할(能) 수 있다.

“곁에서 같이 지켜봐 왔잖아? 박 이사님이 안 된다고 하는 건 안 돼. 된다고 하는 건 돼.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야.”

소녀연맹 4년 차.

소녀연맹이 최고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여기서 더욱 도약하지 못하면 최고의 자리는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내 아집으로 프로듀싱을 망칠 순 없어.”

의상은 잘해야 본전이란 말이 있다.

못하면 욕먹고, 잘하면 칭찬받는다.

그게 전부인 요소라고들 한다.

하지만 의상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곡, 춤과 시너지를 일으켜 막대한 성공을 가져다준 예시가 있다.

그렇기에 기획사들은 의상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땀을 쏟아 넣는다.

“선배님 진짜 꼴불견이에요! 평소엔 혼자 잘났단 것처럼 떠들더니 막상 중요한 때가 오니까 꼬리 말고 도망갑니까!”

“……뭐? 헌용이 네가 뭘 안다고 그딴 말을 해! 네가 이사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곁에서 잠시라도 지켜본 적 있어? 막 들어왔으면서 뭔……!”

이유이의 이마에 힘줄이 잡히자 장하양은 배헌용을 보호하려 또 한 걸음 나아갔다.

“언니.”

“하양 씨, 선배의 이중적인 태도에 일침 좀 꽂아줘요!”

배헌용은 이 기회에 쌓인 울분을 풀려는 것 같았다. 말리는 시누이가 아니라 싸움을 돋우는 시누이가 되어 합법적으로 이유이를 비난했다.

“자기 업적 줄줄이 늘어놓을 땐 언제고! 그놈의 입생로랑 타령…….”

“맞아요, 박 이사님은 신이에요.”

“……?!”

“언니, 저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이름을 말씀해주실래요?”

“……‘우리들의 프로듀싱’.”

“신(神)인 박 이사님이 저희를 믿어서, 저희에게 프로듀싱 권한을 주셨어요.”

장하양은 또 이유이에게로 나아갔다.

마치 위험한 물건을 든 아이를 달래며 다가가는 모양새였다.

“저는 저를 믿어요. 이 의상을 선택한 저의 안목을요.”

“너를 믿기 이전에…… 총괄 프로듀서이신 박 이사님이 거절하신 사안이야……. 믿음을, 내려놔야 하잖아, 반려됐으면…….”

“아뇨.”

장하양이 단호하게 부정했다.

“저를 믿지 않는 건 박 이사님을 배신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만약 저에게 아티스트십이 있다면…… 아니, 그게 아니에요. 저에게는 분명히 존재해요. 모든 사람에게 있어요. 빛나는 창조성과 표현력이. 박 이사님이 저를 믿어주신단 건, 그 힘을 믿는단 뜻이에요. 그런 제가 말해요.”

이 의상을 무대 위에서 입고 싶다.

“이 세상에서 제 얼굴과 제 몸을 가장 많이 본 건 저예요. 그러니 제가 입기로 선택한 옷이 가장 잘 어울릴 게 틀림없어요. 익숙해서 입는 옷이 아니라, 가장 아름답기에 입는 옷. 저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제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옷.”

패션은 옷이 아니라 인간.

“이건 입혀진 옷이 아니라, 제가 입은 저의 옷이에요. 만약 제 모습을 제가 결정할 수 있다면.”

장하양이 이유이의 바로 앞에 섰다.

“저는 박 이사님이 저를 믿는 모습으로 있고 싶어요.”

아티스트인 장하양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아티스트 장하양의 선택이다.

성필이 항상 말해왔던.

“제가 생각했기에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 이게 그 결정체예요.”

장하양의 손이 천천히 이유이의 얼굴로 향했다. 이유이는 그 손이 칼이라도 되는 듯 도리질 치며 반론했다.

“박 이사님이 안 된다고 하셨어. 이상하단 거야! 아이돌리시한 옷이 아니란 뜻이라고!”

“이상함 없는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아요.”

칼 라거펠트.

“스타일 자체가 문제야. 못 들었어? 공중파 방송에 못 나갈 수도 있어. 아무리 네가 입었더라도, 스타일이…….”

“옷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걸 입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브 생 로랑.

“감당…… 할 수 있겠어? 이걸 입고 무대에 나가서, 박 이사님이 우려했던 대로 사람들이 수군거리면…….”

“이 옷이, 이게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제 모습이에요.”

미우치아 프라다.

“언니.”

이윽고, 장하양의 손이 부드럽게 이유이의 뺨에 닿았다. 그리고 쓰다듬었다.

“언니는 어째서 ‘후쿠요 히다카’의 디자이너가 되지 않고 가로 엔터에 남으셨어요?”

“최고의 아이돌이 되는 너희들을 보려고…… 그게 내 꿈이니까…….”

“그럼, 언니의 디자인과 스타일링은 단순한 디자인과 스타일링이 아니에요. 언니는 꿈을 디자인한 거예요. 꿈이 한 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할 순 없잖아요.”

이유이는 자신의 뺨을 쓰다듬는 장하양의 손을 쥐었다. 떼어내려는 듯 힘을 주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박 이사님은 최고로 가는 길이 소녀연맹의 창조성에 있다고 보셨어요. 그건,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모순이에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신은 전지(全知)할 수 없어요. 신은, 박 이사님은, 저희를 너무 사랑하시고 믿으시기에 이 권능을 주신 거예요.”

이유이의 얼굴이 신학 변증법을 배우지 못한 신도가 신 존재의 모순점을 지적받았을 때처럼 일그러졌다.

“헌용 님.”

“……네, 네?”

장하양이 이유이에게 얼굴로 최면을 거는 걸 멍하니 보고 있던 배헌용.

그가 살짝 뒤늦게 답했다.

“옛날에 유이 언니가 헌용 님에게 직접 하셨던 말씀, 그대로 돌려주세요.”

“……아.”

배헌용은 목청을 가다듬고 이유이를 흉내 냈다.

“스타일리스트한테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꼭 필요해. 클라이언트는 패션의 전문가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전문가가 아닌 클라이언트, 성필을 설득해야 한다. 성필의 선택은 틀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성필은 색의 경연감, 대소감, 속도감조차 개념적으로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판단은 직관이다.

직관일 뿐이다.

“논리적으로, 때론 감정적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라고 선배님이 말씀하셨었죠.”

“언니, 그때 저희가 하지 않은 걸 하러 가요.”

“……우리가 안 한 거?”

“설득이요.”

성필의 부정에 쭈굴쭈굴 ‘네’만 반복했던 과거를 뒤바꾸러 가자.

“방법은, 있어?”

이유이가 드디어 긍정적인 물음을 던졌다.

장하양은 그녀의 뺨에서 손을 뗐다. 배헌용은 그게 세뇌가 끝났단 표시처럼 느껴졌다.

“이사님은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좋아하세요. 작곡을 시작한 리카를 목말 태우고, 춤을 창작한 아라를 떠받들고, 수치심을 이겨낸 설하 언니를 애정 어린 칭찬으로 간지럽히고, 다른 그룹인 에리카 씨가 작곡을 한다니 버선발로 달려가고.”

“……?”

“그런 이사님에게 있어서, 최선의 설득법은 착한 아이처럼 비굴해지는 게 아니에요. 논리보다 감정이 필요해요.”

“그럼……?”

장하양이 결연함을 담아 눈을 번뜩였다.

“이사님을 제게 반하게 만들 거예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