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화
원래 손혜빈은 강성욱과 둘만 만나려 했다.
둘은 과거 소속사 가수와 대표의 관계에서 회사 직원과 대표의 관계로, 그리고 이젠 친구 관계로 남아 있었다.
손혜빈에게 강성욱이란 인물은 은인이다. 강성욱의 프로듀싱에 힘입어 손혜빈은 톱스타에 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분기에 한 번씩 통화로 안부를 묻고, 연에 한두 번씩 만나 쌓인 이야기들을 풀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자리가 될 예정이었지만.
“혹시 나도 가도 돼?”
성필이 손혜빈에게 부탁했다.
대형 기획사의 대표와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어디에서 또 얻겠는가.
“곤란하면 됐고.”
하지만 강성욱을 만나는 게 절박한 수준은 아니었다. 되면 좋고, 그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부탁한 것일 뿐이었다.
“그럴래? 안 그래도 대표님이 네 얘기 몇 번 했었거든.”
“진짜? 뭐라고 하셨는데?”
“그냥 입에 발린 칭찬들 있잖아.”
“입 발린 칭찬…….”
입 발린 칭찬이면 어떤가.
케이팝의 역사 중 한 명인 강성욱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아니, 그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주목받는 프로듀서가 몇 명이나 될까?
입에서 이름이 나온다는 게 스펙이 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있다.
강성욱이 바로 그중 한 명이다.
“오히려 꼭 와줬으면 좋겠다시는데?”
손혜빈이 강성욱과 연락한 후 준 답이었다.
자존심이 과충전된 성필의 어깨가 아까보다 더욱 올라갔다.
성필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3대 엔터사의 대표 프로듀서를 모두 만나보는 것이었다.
KS 엔터의 정호환, SMS 엔터의 강성욱, 그리고 YSL 엔터의 이준호.
이젠 YSL의 대표 프로듀서만 만나면 성필의 버킷리스트가 완성된다.
‘회귀하고 가장 만나 뵙고 싶었던 건 정호환 이사님이지만, 가장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던 건…….’
YSL의 대표 프로듀서인 이준호였다.
그는 나머지 두 프로듀서에 비해 확연히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그는 최초로 프로듀서의 프로듀싱 능력을 외부 그룹에 투사하는 방법을 전문적, 지속적으로 확립한 사람이다.
벌써 이준호 프로듀서의 세례를 몇 개의 그룹이나 받아왔다.
사람들은 그가 ‘자기 회사에서 걸그룹 만들기 무서우니 다른 회사만 건든다’라고 한다.
허나 그렇다기엔 그의 프로듀싱 성공률이 굉장히 높고 완성도가 뛰어나다.
이에 무슨 가능성을 보았는지 YSL 엔터의 이름으로 여러 레이블을 만들어 관리하기 시작했다. 거대 유통사가 기획사들을 거느리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소녀연맹이 두각을 나타내면 이준호 프로듀서가 접촉해올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다.
유명하지 않았을 시절의 소녀연맹이 가장 빨리 인지도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이준호의 이목을 끄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성필은 이준호가 가로 엔터로 찾아오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근데.”
성필이 버킷리스트의 2/3 달성을 내심 축하하던 순간, 손혜빈이 조건을 걸었다.
“아름이도 데려올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
“아름이를?”
“거기 ‘아카이브’ 리더가 유경민이잖아.”
“……아, 프로젝트 포유.”
유경민은 프로젝트 포유에서 상위권에 들어 그룹 ‘포유’로 활동했었다.
과거 민경섭의 최애가 유경민이었는데, 그건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아카이브의 팬덤인 ‘프루트’를 자처한다.
“경민이가 아름이 만나고 싶대.”
성필은 잠시 과거의 포유를 떠올렸다.
포유의 리더였던 우효민은 신아름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었었다.
포유의 낮은 성과에 팀이 흔들리자, 신아름에 대한 증오를 접착제로 사용해 팀을 지켰던 것이다.
‘경민이는 아름이한테 별로 감정이 없었나?’
따로 만나고 싶다는 걸 보니, 의외로 신아름에게 애틋함을 품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과거에 미워한 티를 냈던 걸 사과하려는 속셈일 가능성도 있고.
대표에게 따로 이야기한 것부터, 유경민이 신아름에게 품은 감정이 절대 가볍지 않음을 의미했다.
“물어보고 올게.”
성필이 신아름을 찾으러 자리에서 일어나자 손혜빈이 살짝 아연해져서 물었다.
“전화하면 되잖아.”
“직접 얼굴 보면 좋잖아.”
성필의 답에 손혜빈은 할 말이 없어졌다.
전화는 편하다. 하지만 얼굴을 보면 좋다.
과거 손혜빈은 성필의 이러한 행동들을 별거 아닌 듯 넘겼었다. 하지만 ‘카오틱 에너지(가명)’의 메인 프로듀서가 된 순간부터 점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저 정도로 하니까 애들이랑 친밀도가 그렇게 높구나.’
성필이 사무실을 나가고, 손혜빈은 잠시 허공을 보며 고민했다.
‘그래.’
딱히 용무는 없지만 애들을 보러 가봐야겠다.
이렇게 짧고 작은 만남들이 쌓여 프로듀서와 아이돌의 유대가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
그녀가 사소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 성필은 신아름이 있는 연습실을 찾았다.
그곳엔 신아름과 더불어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조아라, 그리고 웨이퍼센트의 퍼포먼스 디렉터로 한국에 온 서유선이었다.
그 세 사람의 모습은 특이했다.
조아라는 과거 시험을 보는 선비처럼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펜과 수첩을 들고 있었다. 신아름은 그녀의 곁에 딱 붙어 어깨에 턱을 올리곤 함께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서유선은 과거 시험 감독관처럼 뒷짐을 지곤 둘 앞에 서 있었다.
“인민이들이 아라 씨에게 바라는 모습을 가사로 드러내는 것보다, 아라 씨가 인민이들에게 전하고픈 진심을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유선이 말했다.
“이 가사는 아라 씨답고, 가사로 채택되어도 꽤 괜찮겠지만, 팬송이라는 주제에 부합하기엔 살짝 미진한 감이 있어요. 아, 제 생각일 뿐이지만요.”
“아예 새로 쓰면…….”
“야, 열심히 썼는데 안 아까워?”
“아니, 선배님 조언 듣고 보니까 진짜 좀 밋밋해.”
“하양 언니는 좋다고 했잖아.”
“그렇긴 한데…….”
“이건 어때?”
신아름이 조아라의 손에 들린 팬을 낚아채어 수첩의 한 부분에 지익 선을 그었다.
조아라가 기겁했다.
“야 뭐해!”
“여기 아래는 다 날려버려. 딱 절반.”
“……그리고?”
“위에 가사에선 너 개쎈 척하잖아. 아래에선 ‘사실 아님 크크 나 소련 최약체임 사실 마음도 여리고 멘탈은 유리임’ 이런 걸로 해봐.”
“자기 가사 아니라고 막말하지 마라.”
“좋은데?”
성필이 그리 말하며 다가가자 세 사람은 놀라면서 자세를 다잡았다.
“유선 씨, 애들 가사 봐주고 계셨어요?”
성필은 그가 멤버들과 부드럽게 대화하는 것을 보곤 옅게 감동했다. 드디어 대인기피증과 사회성 부족을 어느 정도 극복했구나 싶어서.
“네.”
그가 답하자마자 옅은 포도주 향이 풍기며 옅은 감동이 자취를 감추었다.
음.
성필은 당혹을 숨기면서 조아라를 보았다.
“방금 아름이가 낸 아이디어 좋을 거 같은데? 팬들은 아이돌에게 이상적인 모습을 바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모습도 바라거든. 인간은 원래 모순되는 존재이긴 하지만, 아이돌이 드러내는 모순은 계획적이어야 하지.”
“예를 들어요?”
“음, 다키스트 ‘더 킹’과 ‘딩동댕 묵찌빠’ 정도의 차이?”
성필이 서유선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서유선의 표정은 도리어 안 좋아졌다.
정말 싫어했구나, 딩동댕 묵찌빠…….
“아라야, 가사 보여줄래?”
의외로 조아라는 수첩을 자신의 허리 뒤로 숨겼다.
“나중에 다 쓰면 보여줄게요.”
“너 최근에 계속 나한테 가사 보여주려고 했었잖아.”
“아니, 계속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나와서…….”
“……그래?”
조아라의 가사는 멤버 전원과 이수연 작사가, 그리고 그녀에게 조언을 준 직원 몇 명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프로듀서인 성필만 못 보고 있다.
“뭐, 알겠어. 시간은 많으니까.”
“팀장님 여기 왜 왔어요?”
신아름은 성필의 등장이 못마땅하단 듯 말했다.
“서유선 선배님 보러 온 건 아니죠?”
“너 보러 왔어.”
신아름이 봤냐는 듯 서유선을 흘겼다.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
신아름이 또 봤냐는 듯 서유선을 흘겼다.
“오늘 쌤이 보컬 봐주기로 했는데 취소하면 돼요.”
백설하 오열.
“팀장님이 괜찮은 변명 하나 지어줘요. 걍 둘이 놀러 간다고 하면 쌤이 질투해요. 질투해서 저 막 괴롭힐지도 몰라요.”
“설하가 널 괴롭혀?”
“쌤이요? 아 진짜 장난 아니에요.”
얼마 전 독방을 빼앗기고 애처롭게 눈물을 뚝뚝 흘리던 백설하, 신아름의 중상모략에 2차 오열.
“딱히 변명 지어낼 필욘 없어. 놀러 가는 거 아니니까.”
“그럼 어디 가요?”
“약간 일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표면상으로는 술자리야.”
서유선이 경악했다. 그의 얼굴엔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이 가득했다.
“다, 담당 아이돌을, 수, 술자리에 끌고, 가시는 거예요……?”
“아뇨! 그런 느낌이 아니라요. SMS 엔터 대표님을 혜빈 누나랑 같이 뵈러 가거든요. 근데 SMS 엔터에 그룹 ‘아카이브’라고 아세요? 거기 멤버인 경민 씨가 아름이랑 같이 프로젝트 포유에 나갔었거든요. 그래서 친분이 있나 봐요. 경민 씨가 아름이 보고 싶대서요.”
“아…….”
서유선은 안도했다.
“그래서, 아름이 갈래?”
“네!”
신아름은 흔쾌히 수락했다.
* * *
성필과 신아름은 손혜빈의 차를 얻어타곤 목적지인 호텔로 향했다.
신아름은 뒷좌석에서 아예 앞좌석으로 넘어올 셈인 듯, 성필이 앉은 조수석으로 바짝 붙은 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경민 씨랑은 많이 친했어?”
“그냥 그랬어요.”
“그런 거 치곤 경민 씨 이름 나오니까 많이 기뻐하던데?”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 이 정도? 아, 근데 걔 진짜 성공했네요.”
포유 활동을 마친 후 SMS 엔터로 가더니, 설마 그룹으로 데뷔까지 할 줄이야.
“포유로 활동한 덕을 본 거겠죠?”
“음, 그건 아닐걸.”
“왜요?”
“포유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아. 인지도만 보고 그룹에 넣을 정도로 SMS 엔터는 관심에 목마른 회사가 아니야.”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 멤버를 데려가려고 혈안이 된 건 사소한 관심마저 고픈 기획사들이다.
유경민이 SMS 엔터의 걸그룹으로 데뷔한 건 포유 활동으로 쌓은 인지도 덕만이 아닐 것이다.
“그 안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면서 능력을 증명한 거겠지. SMS 엔터 출신 그룹으로 데뷔한단 소식만으로도, 포유에서 얻은 팬보다 훨씬 많은 팬이 생길걸?”
“으음…… 그렇게 눈에 띄는 애는 아니었는데.”
“아름아.”
성필이 장난기를 가득 머금었다.
“너 옛날 네 영상들 안 봐? 지금이랑 비교하거나 안 해?”
“우와.”
운전하던 손혜빈이 앓는 소리를 냈다.
“상상만 해도 죽고 싶네.”
신아름도 성필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알곤 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이돌은 과거의 무대 공연 영상을 잘 안 본다고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과거의 자신은 현재와 비교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못하니까.
어느 아이돌은 자신의 과거 영상을 보며 ‘뭘 잘했다고 표정이 저렇게 자신만만해!’라며 몇 분간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를 표출했었다.
보통 사람들이 아이돌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여유가 생겼네’, ‘좀 더 부드럽네’라고 퉁 치는 실력 향상은, 안목 있는 이들의 눈엔 엄청난 격차로 보인다.
춤을 배운 지 고작 몇 주인 성필도 자세와 습관이 달라지는데, 그 세월이 연 단위면 성장세는 훨씬 눈에 띈다.
“경민 씨도 가만히 있진 않았을 거잖아. 노력하셨겠지.”
“……팀장님 왜 경민이 감싸줘요? 팀장님 ‘프루트’예요? 경섭 오빠처럼?”
“에이, 무슨…….”
앨범 정도만 샀다.
가로 엔터의 총괄 프로듀서로서 경쟁사의 제품은 나올 때마다 확인해야 한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간 금세 추월당할 것이다.
호텔 앞에 도착했다.
입구로 천천히 차를 모니 직원이 다가왔다.
손혜빈이 창문을 내리자 직원이 빙긋 웃으며 인사해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14층 레스토랑이요.”
“발레 서비스가 필요하십니까?”
“네.”
손혜빈은 익숙한 듯 문을 열고 차를 나섰다.
신아름은 손혜빈을 따라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쳐다보았다. 직원이 차를 제대로 몰고 가는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레파킹에 대한 관심은 회전문을 통과하자마자 싹 사라졌다.
“와.”
신아름은 장관인 호텔 로비에 넋을 잃었다. 그녀는 풍경을 보느라 느려졌던 걸음을 만회하려 빠르게 성필을 따라잡았다.
“팀장님, 수족관이 세로로 길어요.”
“응, 신기하네.”
“팀장님 이런 데 자주 와봤어요? 별로 안 놀라네.”
“아니. 여기 레스토랑 올 바엔 콘서트 한…….”
“네 알겠어요. 팀장님은 콘서트 많이 가요.”
신아름은 처음 접한 광경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아이처럼 성필의 옷자락을 느슨하게 잡았다.
“나중에 놀러 오고 싶어요.”
“오면 되지.”
“팀장님 콘서트 한 번 안 가고 여기 와요.”
“묵으려면 한 번 안 가는 걸로 안 돼.”
“대화가 좀 이상하다아.”
손혜빈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꼬리를 늘였다.
“꼭 둘이서 호텔을 올 것처럼 말하네?”
“엄마랑요. 팀장님이랑, 명절에.”
문이 닫혔다.
신아름은 엘리베이터마저 신기한지, 버튼 옆에 양각된 점자를 손끝으로 슬슬 쓰다듬었다.
손혜빈은 점점 올라가는 층수를 눈으로 좇았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단 듯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맞다. 대표님 앞에서 절대 꺼내면 안 되는 단어가 있어.”
“뭔데?”
“미국.”
문이 열렸다.
손혜빈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미국이랑 관련된 단어는 절대 꺼내지 마.”
* * *
레스토랑엔 홀에 비치된 좌석과 안쪽에 따로 마련된 룸이 있었다. 손혜빈은 자연스럽게 강성욱의 이름을 대고 안쪽의 룸으로 안내받았다.
직원이 공손히 문을 열자 안쪽에 미리 자리 잡고 있던 강성욱과 유경민의 모습이 보였다.
강성욱이 벌떡 일어나 팔을 펼치며 다가왔다.
“혜빈아!”
“대표님.”
강성욱이 손혜빈을 와락 안았다. 손혜빈은 부담스럽단 듯 아하하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둘렀다.
포옹을 푼 강성욱은 얼굴 가득 반가움을 띠었다. 그리고 선 채 회포를 전부 풀려는 듯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어쩜 혜빈이 너는 볼 때마다 예뻐지네! 아직도 컴백할 마음은 없어? 계속 활동하자는 게 아니라, 옛 추억도 되살릴 겸 이벤트성으로 1주 정도만 음방에 나가보자는 거야. 기대되지 않니? 과거의 너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완숙의 경지에 이른 퍼포먼스가!”
“네, 기대 안 돼요. 대표님, 이쪽은 가로 엔터 박성필 이사, 소녀연맹의 신아름이에요.”
“으음.”
강성욱은 손혜빈에게서 성필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를 마주한 성필이 가장 처음 가진 감상은.
‘크다.’
키가 매우 크다.
방송 같은 곳에선 아이돌들의 옆에 앉곤 해서 엄청 머리가 크게 보였었다. 그런데 전체적인 비율로 보면 그는 머리가 작은 편이었다.
“박성필 이사님,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예, 대표님. 영광입니다.”
“영광? 아, 이런. 포장된 말은 듣고 싶지 않아요. 영광일 게 있나요? 제가 뭐라고.”
강성욱이 나이답지 않게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스스로를 직접적으로 낮추었다. 그렇기에 그가 더욱 높아 보인다.
“와주셔서 고마워요.”
강성욱은 악수한 성필의 손에 또 다른 손을 겹쳐 포갰다. 힘을 주어 마사지하듯 꼭꼭 잡고는, 다시 한 번의 미소와 함께 손을 놓았다.
성필은 그것에 굉장한 감명을 받았다.
그의 행동보다 그가 가진 능력에.
강성욱은 마주 선 사람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힘이 있었다. 대화하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눈동자가 돌아가거나 집중이 분산되지 않았다.
성필은 강성욱이 자신을 매우 신경 써주었다고, 그래서 성필 자신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도 됐다고 느꼈다.
‘정호환 이사님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이끄는 아우라다.’
이 짧은 만남만으로도, 성필은 그가 어떻게 대형 기획사의 리더로 수십 년간 앉아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강성욱은 신아름의 앞에 섰다. 그는 성필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었다.
나이가 서른 살은 어린아이에게 자세를 낮추곤 대등한 태도로 악수를 청했다.
“소녀연맹 아름 씨?”
신아름은 어색하게 그의 악수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 사람이.
“강성욱 대표님.”
손혜빈의 프로듀서. 여자 솔로 아티스트의 정점을 만들어내었던 사람.
그런데.
‘머리카락이 너무 신경 쓰여.’
찰랑거리는 금발이다. 얼굴에 새겨진 세월과 너무 안 어울린다.
신아름의 눈동자가 머리칼에 머물자 강성욱 대표는 만족한 신음을 냈다.
“으음, 이 머리 꽤 멋지죠?”
“네? 네, 네. 굉장히…….”
강성욱은 물론 모두의 시선이 꽂혔다.
신아름은 갑작스럽게 사회생활 능력치를 시험받게 됐다.
“굉장히?”
강성욱이 되물어왔다.
“괴, 굉장히, 굉장히 Young하고 MZ해요!”
“으하핳!”
식탁 앞에 서 있던 유경민이 웃음을 터뜨렸다.
손혜빈과 성필이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렀다.
“으하하핳!”
그리고 강성욱도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