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17화 (617/760)

617화

성필은 소녀연맹 숙소 현관 앞에 섰다.

습관적으로 초인종을 누르려던 그는 멈칫하곤 그냥 바로 문을 열었다.

비정상적으로 깨끗한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문이 열려있고, 사람이 살았단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애들이 청소를 잘하고 갔네.’

현관 바닥엔 이미 신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선객이 있는 모양이다.

거실로 들어가니 식탁에 앉은 손혜빈이 보였다.

“누나, 일찍 왔네.”

“너도.”

둘은 서로를 향해 웃어 보였다.

성필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침은 먹었어?”

“먹고 나왔지.”

“점심은 같이 먹겠네.”

오늘, 데뷔조로 발탁된 이들이 이 숙소로 온다.

가로 엔터의 임원진은 그보다 빨리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기로 했다. 축하를 겸한 입주식(入住式)이다.

그런데, 임원들이 빨리 와야 한다곤 하지만 두 사람은 너무 빨리 왔다. 저녁쯤에 와야 하건만 아침과 점심 사이의 오전에 모였으니 말이다.

“너 어제 잠은 잤냐?”

“……못 잤어.”

데뷔조로 뽑히지 않은 이들의 얼굴…….

‘아니.’

데뷔조로 뽑지 않은 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설쳤다.

그들은 어제 불합격 문자를 받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슬픔 혹은 분노를 다스렸을 것이다.

미안함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이 쏟아왔던 노력을 지켜봐 왔기에 더욱 그랬다.

“누나는?”

손혜빈은 베란다의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햇볕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은은하게 빛났다.

그녀가 태양빛을 받는 모습은 과거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참…… 많이 지났네. 우리 처음 만났을 때랑 지금이랑 너무 많이 달라졌어.”

“뭐, 지금 내 얼굴 주름 보고 말한 거야? 내 늙은 상판을 보니까 막 옛날이랑 비교되고 그래?”

“왜 이렇게 날카로워…….”

그때였다.

손혜빈의 눈가가 반짝였다. 순간이었다. 그녀는 하품하며 눈가를 자연스럽게 문지른 후, 성필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애들 환영식은 어떻게 할까? 생각해둔 거 있…….”

똑똑똑.

노크 소리였다.

둘은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또 우리처럼 못 참은 사람이 있나 보네.”

“한 이사님이실까?”

한구인은 언제나 약속 시간보다 빨리 오니 말이다. 물론 이 경우는 너무 빠르긴 하지만, 그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말이 안 되진 않았다.

성필이 현관 쪽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냥 열고 들어오시면 돼요!”

대답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성필과 손혜빈이 일어나 현관으로 갔다. 문밖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이사님?”

성필이 문을 열자, 그곳엔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아, 아, 안녀하세요!”

유우토였다.

그는 허겁지겁 양손에 든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리곤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그의 뒤에 놓인, 매우 커다란 천으로 감싼 직사각형의 평면 물체였다.

“유우토, 빨리 왔네?”

성필은 약간 얼떨떨했다.

설마 데뷔조 멤버 중 한 명이 이렇게나 빨리 도착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론 떨려서 시각에 딱 맞추려고 할 텐데 말이다.

“아, 그게, 오래 거릴 쥴 알고 빠리 나와써요.”

“그래…….”

손혜빈도 성필처럼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유우토의 꼴이 말이 아니었으니까.

일단, 겨울인데도 반팔이다.

그가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코트는 가방 중 하나에 쑤셔 넣어져 있었다. 그런데 가방의 부피가 모자라 절반쯤 밖으로 튀어나왔다.

게다가 온몸이 땀범벅이다.

그의 체온과 땀, 한겨울의 공기가 만나 그의 주위로 수증기가 펄펄 끓어올랐다.

설마.

“너 저거, 뒤에 있는 거 들고 여기까지 온 거야?”

자취방에서?

“네에.”

유우토가 뒷목을 마사지하듯 주무르며 헤헤 웃었다. 그의 손이 뒷목으로 옮겨지는 동작으로 팔이 굽혀지자, 한껏 펌핑된 이두가 부풀어 올랐다.

과거 백설하에게서 의도치 않은 영감을 받은 그는 운동에 매우 열심이였고, 그 성과가 눈앞에 있었다.

“도와줄게, 일단 들어가자.”

손혜빈은 유우토가 들고 온 가방 두 개를 짊어 멨다. 그리고 성필은 유우토와 함께 수상한 직사각형 물체를 들어 안쪽으로 옮겼다.

높이가 거의 조아라 키 정도라 옮기는 게 매우 힘들었다. 무겁기도 하고 말이다.

이걸 들고 자취방에서 숙소까지 가지고 왔다니, 얼마나 고생했을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런데 유우토, 이게 뭐야?”

손혜빈이 묻자 유우토는 ‘아’ 하며 직사각형 물체에 씐 천을 풀기 시작했다.

그 정체를 확인한 성필은 숨을 헛쉬었다.

그림이었다.

“옛날에 누나가 저한테 마꼈어요. 그래서 가져와씁니다.”

“와, 뭐야. 이거 진짜 유화잖아? 프린팅한 게 아니야! 야, 성필아 이거 봐. 의외로 리카가 그림 수집 같은 게 취미인가?”

“…….”

성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저 그림은, 성필의 전 여자친구인 이수림이 개인 전시전에 전시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리카가 옵션을 걸어 사겠다고 했던, 1,000만 원짜리 그림이다.

‘진짜 샀어……?’

그리고 그걸 8평짜리 동생 집에 처박아 놔?

‘아니, 나한테 유우토가 붙었는지 아닌지 물어볼 시간에 같이 그림 옮겨줄 생각을 해야지 리카야…….’

문득 옛날에 들었던 유우토의 과거사가 떠올랐다.

리카는 유우토의 침대 밑에 성인 잡지를 모아두었는데, 어느 날 부모님께 들켰다.

유우토는 억울해서 미쳐 팔짝 뛸 지경까지 됐고 기어코 울고불고 난리 쳤단 모양이다. 정말 자신은 아니라고 말이다.

소중한 동생이 미쳐 팔짝 뛰고 울고불고 난리 쳐서야, 리카는 자신이 모아두었노라고 시인했다고 한다.

유우토, 너는 홀로 어떤 싸움을 하고 있던 거니?

“숙소에 두면 느낌 살고 좋겠네.”

“저 처음 봐쓸 땐 쪼금 기분 나빴는데, 같이 살다 보니까 조아져써요. 이젠 없으면 쓸쓰랄 거 가타요.”

저 초상화의 주인공인 성필은 만감이 교차했다.

* * *

핸드폰 대리점 직원은 미치고 팔짝 뛰기 직전이었다. 약 3시간 전부터, 한 손님이 모든 핸드폰별 가격대 견적을 모아두고 고민하는 중이다.

처음 그 손님을 봤을 때는 직원도 좋았다.

손님은 매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잘생겼고, 잘생긴 사람과는 대화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그리고 약 세 마디를 나눈 시점에서, 직원은 자신이 사랑에 빠진 걸 깨달았다. 그런데 그가 3시간 동안 핸드폰 견적 수십 개를 붙잡고 있자, 사랑이 조금 식어버렸다.

“그러니까 이건…….”

“네.”

직원은 이미 열 번도 넘게 한 설명을 반복했다.

“5G 고정 요금제로 6개월을 쓰신 후에 요금제를 교체할 수 있으세요. 이 가격으로 할인받으시려면 부가 서비스 세 개를 따로 가입하셔야 하는데, 이건 3개월 이후 전화 상담으로 해제할 수 있으세요. 다시 말씀드리면, 6개월까진 약 월 130,000원이지만 서비스랑 요금제를 교체하시면 최소 월 80,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으세요.”

“약정은…….”

“24개월 되십니다.”

그 손님은 견적서를 또 물끄러미 보았다.

직원도 손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손님이 다른 폰의 견적서를 들었다.

“그럼 이건…….”

아, 그냥 설명은 안 하고 이 손님 얼굴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걸 몇 번이나 설명하는지.

그렇게 한 시간을 더 고민하던 손님, 김사무엘은 결국 처음에 봤던 폰을 골랐다.

애플폰 프로 최신 모델이었다.

“전화번호부랑 어플 옮겨드릴까요?”

직원은 테이블 위에 올라온 손님의 폰을 보았다. 폴더폰이었다.

폴더블 폰이 아니라, 폴더폰이다.

수험생이나 노인 고객을 위해 개발된, 스마트폰 기능이 추가된 폴더폰 말이다. 가격이 매우 싸지만 기능은 스마트폰에 비할 바가 안 된다.

“괜찮습니다.”

손님은 견적을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대리점을 나섰다.

직원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용기 내서 번호라도 물어볼걸…….

손님, 김사무엘은 대리점을 나오자 폰이 든 쇼핑백을 크로스백 안에 고이 넣었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가방 안의 폰이 사라졌을까 걱정하면서 자꾸만 매만졌다. 살면서 이렇게 비싼 물건을, 비록 할부이지만, 사본 적은 처음이다.

‘내 몸에 걸친 물건 전부를 합쳐도 이 핸드폰보다 안 비싸.’

금덩어리를 들고 걸어 다니는 기분이다.

김사무엘은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또 보육원을 향해 걸었다.

걷고 걸어, 보육원 앞에 도착했다.

“오빠!”

김마리아는 보육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김사무엘의 앞에 와 섰다.

겨울의 초목처럼 굳어 있던 김사무엘의 표정이 부드럽게 풀렸다.

“추운데 왜 밖에서 기다려.”

“오빠도 오느라 추우니까…….”

김사무엘이 웃었다.

“내가 추우니까, 너도 추우려고? 그런다고 내가 안 춥진 않잖아.”

“미안해요…….”

김사무엘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그래도 다음엔 안에서 기다려.”

“……응.”

둘은 다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김사무엘이 자연스럽게 김마리아의 손을 잡았다. 어디 갈 땐 항상 손을 잡고 갔다.

그런데 김마리아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오빠의 손을 꼭 잡는 대신 느슨히 쥐었고,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

김사무엘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 벌써 이런 나이구나.’

김마리아는 올해 고등학생이 된다.

비록 체구가 작아 누가 보면 중학생인 줄 알겠으나, 그녀는 고등학생이다.

옛날과 다를 바 없이 작기만 한 동생이 어느새 숙녀로 커가고 있다. 쓸쓸함을 느끼면서, 김사무엘은 천천히 그녀의 손을 놓았다.

김마리아는 다시 오빠의 손을 잡지 않았다.

둘이 번화가로 나와 가장 먼저 한 건 식사였다. 김마리아가 좋아하는 분식집으로 와서 커플 세트 메뉴를 시켰다.

“오빠 이런 거 먹어도 돼?”

김마리아는 오빠의 생일이니 오빠가 좋아하는 걸 먹자고 했다. 그런데 김사무엘은 동생이 좋아하는 메뉴를 골랐다.

아이돌로선 반드시 피해야 할 맵고 짜고 칼로리가 엄청난 음식을 말이다.

김사무엘은 동생을 안심시키려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

음식이 나왔다.

김사무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벽걸이에서 앞치마를 가져와 김마리아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직접 앞치마 끈을 둘러 매주었다.

“아, 오빠, 아냐, 내가 할게…….”

김사무엘이 멈칫했다. 그는 동생에게 보일 리 없지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식사가 시작됐다.

김사무엘은 분식 같은 음식이 익숙하지 않았다. 갑자기 칼로리 폭탄 같은 것을 먹으려니 위장이 잘 받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동생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친구들이랑은 같은 학교에 배정됐어?”

“으응, 그냥…….”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배정이 잘 안 풀렸거나, 신경 쓸 정도의 친구가 없거나.

김사무엘은 동생의 학교생활을 항상 걱정해왔다.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받는 건 아닐까.

동생이 말해주지 않으니 걱정만 늘어간다.

그 뒤로도 시답잖은 잡담만 오갔다.

김사무엘은 동생과 나누는 잡담만으로도 행복했지만, 동생은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그녀는 시종일관 어딘가 불안한 것 같았다.

김사무엘은 동생의 식사가 끝나자 말했다.

“갈까?”

“응.”

밖으로 나오자마자, 김사무엘은 습관처럼 동생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곧 아까의 일을 떠올리며 그만두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오빠가 가고 싶은 데 갈래.”

“난 마리아가 가고 싶은 곳이 좋아.”

“오, 오늘은 오빠 생일이잖아…….”

김사무엘은 잠시 주변을 살폈다.

그때 코인 노래방 간판이 보였다.

이전에 김채현의 수능 축하 파티가 떠올랐다. 그때 김마리아는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워했다.

아마 노래를 좋아하는 듯하다.

“노래방 갈까?”

김마리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답이었던 듯하다.

둘은 코인 노래방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마리아가 들떠선 말했다.

“오빠 노래 듣는 거 처음이야. 듣고 싶었어.”

“내가 마리아한테 노래 불러준 적이 없었어?”

“응.”

김마리아가 마이크를 내밀었다.

김사무엘은 마이크를 받곤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다가, 리모컨을 들어 곡을 입력했다.

[We are WaTerProofer: The Endless - WTP]

서정적인 멜로디가 흘렀다.

김사무엘은 미려한 가성으로 노래했다.

[꿈이 손에 쥔 전부였네

낮에도 꿈을 꿀 뿐이야.]

그 한 소절만으로 김마리아는 영혼을 빼앗긴 듯했다.

오빠는 옛날 김채현과의 파티 자리에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었다. 목을 아껴야 한다는 이유였다.

김사무엘은 연습생이었으니 노래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빠라서 콩깍지가 씐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잘 부른다.

[목이 터져라 노래해

악보로 덮인 계단을 올라

부서질 때까지 춤을 춰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를]

게다가 그 가사는 마치 김사무엘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김마리아는 넋을 놓고 오빠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조차 우습다 여겼던, 모두가 비웃었던

이제는 사랑하게 된 이름 WaTerProof……]

거기서 김사무엘은 노래를 멈추었다.

그는 한동안 모니터에 뜨는 가사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곡을 중단했다.

“내가 부를 노래가 아니네.”

“어?”

김마리아도 황홀함에서 벗어났다.

“조, 좋았는데…….”

“다른 거 부를게. 마리아.”

김사무엘은 그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김마리아는 오빠의 눈치를 보았다. 김사무엘이 괜찮단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그녀는 소심하게 소녀연맹의 ‘아니’를 골랐다.

소녀연맹의 초창기 곡인 ‘아니’는 다른 곡보다 난이도가 낮았다. 만약 다른 곡을 제대로 부른다면, 김마리아는 바로 목이 쉬어버릴 것이다.

둘은 각자 다섯 곡씩 부른 후 노래방을 나왔다.

“오빠 노래 잘 불러.”

“고마워. 마리아도 잘 불러.”

“나, 난 못 불러…….”

김사무엘은 큭큭 웃었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김사무엘의 눈에 유명 디저트 가게의 간판이 들어왔다.

여자는 디저트를 좋아한다고 백수현에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김마리아도 보육원에 간식이 나올 때면 들떴던 것 같다.

“디…….”

김사무엘은 말을 멈추었다.

김마리아는 왠지 모르게 불편한 기색이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녀와 거의 평생을 함께 보내온 김사무엘은 알 수 있었다.

아까부터 쭉 이러했었다.

‘……그렇구나.’

이젠 오빠랑 같이 놀 나이는 졸업한 거겠지.

“이제 갈까?”

“어?”

김마리아는 놀라선 오빠를 보았다. 그녀는 우물쭈물 아무말도 못하다가, 눈을 들어 오빠를 힐끔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데이트를 끝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김마리아가 말했다.

“나 혼자 갈게.”

“아냐, 바래다줄게.”

“오빠 안 바빠?”

“마리아랑 있는데 바쁜 일이 뭐가 있어. 그리고 혼자 가면 위험하잖아.”

“나 어린애 아닌데…….”

김사무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둘은 버스를 타고 가 보육원 근처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여전히 말없이 걸었다.

보육원 앞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마리아.”

김사무엘은 동생을 부르곤 가방에서 흰 쇼핑백을 꺼냈다. 그것을 동생에게 내밀었다.

“선물이야.”

“선물? 오빠 생일이잖아.”

“졸업 선물.”

“졸업 땐 외식 했는데…….”

“졸업 선물은 또 다른 거야.”

동생은 우물쭈물 쇼핑백을 받았다. 바로 내용물을 확인하진 않았다.

“핸드폰이야. 고등학교 올라가잖아. 애들 앞에서 기 죽지 마. 난 잘 모르겠는데, 지금 나온 거 중에는 제일 좋은 거래.”

“고마워 오빠…….”

“응.”

김사무엘은 동생을 1초라도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동생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듯하니, 자리를 떠야 하겠지.

“그럼, 가볼게.”

“오, 오빠.”

김마리아가 떠나가려던 오빠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허겁지겁 무언가를 꺼냈다.

포장지에 리본이 매어 있었다.

“선물…….”

김사무엘은 살짝 놀라서 선물을 받았다.

“무슨 돈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돈이었다.

김사무엘이 동생의 폰을 살 수 있던 건 보육원을 나오면서 받았던 자립지원금 덕분이었다.

그런데 동생은 사실상 용돈이랄 게 없었다. 김사무엘이 달마다 보내주었던 몇만 원을 제외하곤 말이다.

“너 혼자 쓰기에도 모자랄 텐데…….”

“모았어, 헤헤.”

“……고마워.”

김사무엘이 선물을 가방 안에 넣으려 하자.

“여, 열어봐! 여기서!”

“그래도 돼?”

“응…….”

김사무엘은 리본을 풀고 포장지를 세심하게 벗겼다. 안에서 나온 건 목제 십자가 목걸이였다.

“이, 이름, 있어. 오빠 이름.”

김사무엘은 십자가를 자세히 살폈다.

뒤쪽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사무엘, 그리고 그 아래쪽엔 세례명인 율리아노.

“인터넷에, 해주는 곳 있어서, 주문했어…….”

김마리아는 무게중심이 앞뒤로 왔다 갔다 했다. 앞으로 나아갈까 가만히 있을까 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윽고 그녀는 결심한 듯 걸어가 오빠를 폭 안아주었다.

“오빠, 생일 축하해.”

한동안 답이 들리지 않았다.

김마리아는 이상하게 여겨 오빠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어 위를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오, 오빠 울어……?”

김사무엘은 동생이 아닌 정면 어느 곳만 보며 한 방울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게 김마리아에겐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아니, 당혹을 넘어 경악스러웠고 공포심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기억으로, 김사무엘은 여태껏 단 한 번만 울었다. 그날은 어머니가 두 남매를 버린 지 6개월이 된 날이었다.

둘은 보육원 앞에 손을 잡고 서서 해가 지도록 어머니를 기다렸다. 어머니가 그날 오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오빠, 엄마 왜 안 와?’

동생이 그리 물었다.

그때마다 김사무엘은 똑같이 답했다.

‘오실 거야.’

태양이 떨어지도록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김마리아는 흙바닥에 앉아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그리고 오빠를 원망했다.

왜냐하면, 눈앞에 없는 어머니보다 오빠를 원망하는 게 쉬웠으므로. 그리고 어린애의 생각으로, 오빠는 엄마가 온다는 거짓말을 했으니까.

울면서 오빠를 원망하는 말을 쏟아내려던 때, 김마리아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김사무엘은 울음 하나 안 내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날은 김사무엘의 생일이었다.

어머니가 선물을 사서, 남매를 데리러 오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마리아.”

김사무엘이 동생을 부드럽게 마주 안았다.

“고마워. 계속 차고 다닐게.”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은 그 날부터, 김사무엘은 세례명을 버리고 신을 믿지 않게 됐다.

자신에게 기독교 이름을 지어준 부모를 원망해왔다.

하지만 동생은 오빠가 계속 하느님을 믿길 바랐다.

비록 부모에게 사랑받진 못했으나, 모두를 차등 없이 사랑해주는 존재를 믿는다면 세상을 더 따스하게 볼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김마리아 본인이 자신을 영원토록 한없이 사랑해주는 하느님이 없고선 맨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오빠도 자신처럼 믿음으로 세상을 증오하지 않으려 노력하길 바랐다.

“고마워, 마리아.”

평생 기독교와 관련된 것만 보아도 경멸을 숨기지 못했던 오빠는 동생의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한없이 고마워했다.

아마, 마리아의 하느님은 사무엘에게 있어선 동생이었던 모양이다.

하느님이 자신을 보고 있기에 엇나갈 수 없듯이, 사무엘은 동생이 있어서 노력해왔다. 멋진 오빠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빠아 왜 울어어어어…….”

오빠가 울자 김마리아도 울었다.

김사무엘은 동생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본인도 울면서 동생의 울음을 달래주었다.

“기뻐서 그래, 기뻐서.”

* * *

“자, 그럼.”

성필은 숙소 거실 식탁에 앉아 있었다. 임원들은 모두 성필처럼 식탁 쪽에 있었다.

그리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데뷔조 네 사람은 전부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시카와 유우토.

백수현.

즈비그니예프 콜베르게르.

임한결.

“케이크 꺼낼까요?”

홍규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필은 냉장고에 두었던 케이크를 꺼내어 소파 앞 탁자 위에 두었다. 성필이 소파 쪽으로 다가가자 데뷔조가 더욱 뻣뻣해졌다.

“야 이, 긴장 좀 풀어라. 누가 보면 잡아먹으려는 줄 알겠네. 여기 축하하는 자리라니까?”

그렇게 말해도…….

유우토는 이곳에 모인 면면을 다시 확인했다.

홍규헌, 성필, 한구인, 손혜빈, 민경섭 등 가로 엔터의 권력자들이 거의 다 모였다. 앞으로 직접적으로 데뷔조 멤버들과 연관될 이들이다.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다.

“에휴, 안 되겠다. 애들이 숫기가 없어.”

성필이 한숨을 쉬었다.

“데뷔조 교체하자.”

데뷔조 멤버들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수백 개 떴다.

“이렇게 낯을 가려서 무슨 아이도아악!”

성필이 손혜빈에게 등을 얻어맞곤 바닥에 고꾸라졌다.

“야 뭔 농담을 그따위로 해! 참 재밌다 어?”

“어라, 어째서? 나, 분명, 총괄 프로듀서, 일 텐데……?”

“소련이들 데뷔하기 전에 내가 하양이한테 ‘넌 탈락이야’란 장난치면 재밌어했을 거야?”

“아니, 긴장 풀려고, 미안…….”

상상해보니, 데뷔조를 교체한단 건 몹쓸 장난이 맞았다.

연습생 시절 장하양에게 ‘넌 탈락이야’라고 했으면 그녀는 좌절하여 펑펑 울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쓰라리다.

“크흨.”

그때 막내인 임한결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러자 남은 세 사람이 죽일 듯 그를 쏘아보았다.

임한결은 당황하더니 다시 각진 자세를 잡았다.

성필이 픽 웃었다.

“그래도 한 명은 웃네.”

“어쩜 한결이 웃는 모습도 너무 멋지다…….”

“누나 나랑 온도 차가 너무 크잖아.”

“응 네가 설하한테 길거리에서 고백했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정보: 사실이다.

“음.”

홍규헌은 시계를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일어나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장난스러웠던 성필과 손혜빈도 바른 자세를 잡았다.

“이제…….”

그때였다.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인 발걸음 후 거실 문이 열렸다.

“아, 왔네.”

김사무엘.

그는 거실에 모인 면면을 보곤 당황하여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시계를 본 후 변명하듯 말을 더듬었다.

“시간…….”

“안 늦었어. 집합 10분 전이잖아. 빨리 들어와.”

홍규헌의 다정한 말투에 안심한 그는 눈치껏 소파 옆에 섰다. 백수현이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면서 말했다.

“왤케 늦었냐?”

“즈응흐라(조용해라).”

홍규헌은 데뷔조의 앞에 섰다. 그녀는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시카와 유우토.”

20세, 일본인.

메인 보컬.

“백수현.”

20세, 한국인.

메인 댄서.

“즈비그니예프 콜베르게르.”

18세, 폴란드인.

리드 보컬.

“임한결.”

16세, 한국인.

메인 래퍼.

그리고.

“김사무엘.”

20세, 한국인.

리드 댄서, 서브 보컬, 서브 래퍼.

리더.

“환영한다.”

데뷔조 다섯은 고개를 곧게 들곤 사장인 홍규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뒤론 가로 엔터의 임원진이 쭉 늘어서 있었다.

“소년연방.”

“…….”

…….

“……예?”

김사무엘이 참지 못하고 반문했다.

홍규헌이 픽 웃었다.

“농담이야. 너무 긴장한 거 같길래.”

“아…….”

“너흰 ‘카오틱 에너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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