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화
성필이 없는 기간, 한구인은 옐로 서브마린 엔터 직원 면담과 회계 자료 파악을 병행했다.
홍규헌은 외부 감사를 쓰려고 했었지만, 한구인이 거부했다.
‘어차피 작은 회사이니, 제가 며칠만 고생하면 금방 끝날 겁니다.’
홍규헌은 한구인이 성필처럼 불현듯 떠나버리지 않길 바라면서 허락해주었다.
그렇게 한구인의 야근으로 점철된 일주일이 시작되었다.
한구인이 가장 먼저 놀란 건 옐로 서브마린 엔터의 정산 방식이었다.
‘월급제와 비율제를 섞어뒀잖아?’
일본 기획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정산 방식이다.
일본의 대형 기획사는 트레이닝, 프로듀싱, 매니지먼트까지 올인원으로 진행한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같지만, 정산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의 종신 고용과 직원을 가족으로 여기는 문화의 영향을 받아 연예인도 월급을 받는 경우가 있다.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저생계비를 보장하여 연예인은 큰 생활고는 겪지 않는다. 다만, 회사도 리스크를 감수하는 만큼 한국보다 정산 비율이 낮다.
스타들은 톱의 자리에 올라서도 초기 분배 비율을 지키려 노력한다. 따라서 한국처럼 성공에 비례하여 극적인 부자로 거듭나는 경우는 적다.
일본의 스타들은 그걸 일종의 의리로 생각한다. 바닥부터 편의를 봐주었으니, 성공했다고 입 닦지 않겠단 것이다.
‘직원들이 좋은 회사라고 입을 모아 말한 이유가 있었군.’
면담할 때마다 ‘애들한텐 잘해줘요’란 말이 꼭 따라왔었다.
최근 대형 기획사들은 아이돌들에게 트레이닝비를 청구하지 않는 게 추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이 부족한 중소 기획사의 대표들은 그렇게 인자할 순 없다.
수십억 단위의 투자금과 대출이 잘 때도 생각나 벌떡벌떡 일어날 텐데, 어떻게 자애로워지겠는가.
그런데 옐로 서브마린 엔터는 웨이퍼센트 멤버들에게 최저생계비까지 챙겨준다. 물론 정산 비율이 평균보다 짜긴 하지만, 감안할 만하다.
‘좋은 회사라고 할 만해.’
이게 한구인의 첫 번째 느낌표였다.
두 번째는.
‘경리 업무를 외주로 주고 있어?’
옐로 서브마린 엔터는 ‘경영지원실’이란 이름으로 재무를 담당하는 팀이 있다. 그런데 따로 경리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업체가 있었다.
외주 업무는 멤버들의 정산이었다.
정산 분기마다 자료들이 해당 아웃소싱 업체로 넘어간 것을 확인했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이게 한구인의 두 번째 느낌표였다.
그리고 세 번째.
‘회계가 안 맞는 곳이 너무 많은데…….’
한구인은 일부러 보기 힘들게 정리해둔 건가 싶은 회계 엑셀 파일을 쭉 훑었다.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모든 게 너무 작고 세세하고 항목은 중복된 것마저 있었으며, 무엇보다.
‘계산이 안 맞아.’
한구인은 볼수록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회계 업무를 하다 보면 결괏값이 계산되어 나와야 하는 값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처음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코딩이 꼬였을 때 차근차근 점검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땐 꼼수가 있다.
결과가 맞지 않는 부분의 계산식을 그 결과가 나오도록 뜯어고치는 것이다.
즉, 계산식을 결과에 맞춰 바꾼다.
‘그래, 이해할 수 있어…….’
한구인도 계산이 꼬인 걸 발견할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곤 한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부정확한 값을 입력한 부분, 식이 잘못된 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바다처럼 펼쳐진 엑셀 시트를 보고 있자면 사장실로 달려가 담배 향을 음미하고 싶어진다.
어차피 회계 자료를 받는 사람은 결과만 본다.
막말로 홍규헌이 자료의 계산식을 전부 검산하진 않을 것 아닌가? 당연히 모든 영수증을 모아 스스로 계산하지도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심지어 공문서에서도 이런 구멍이 발견되곤 한다. 담당 직원이나 공무원들도 ‘에이 X발 모르겠다’라며 식을 뜯어고치거나 값을 임의로 바꾸는 것이다.
물론 한구인은 그런 적이 없다.
권아인 경리를 보고 비 맞은 고양이 같은 눈빛을 보내며 ‘퇴근……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동료애를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이해할 수 있어…….’
이게 세 번째 느낌표였다.
그리고 결정적인 네 번째 느낌표.
[12조 (수익의 분배 등)
…….
2)음반 및 콘텐츠 판매, 연예 활동 관련 수익은 각종 수수료, 저작권료, 실연료, 직접 소요 비용 및 기타 갑이 을에 대한 필요로 지출한 비용을 공제한 후 갑과 을이 분배하여 가지는데, 그 분배 방식이나 구체적인 분배 비율은 별도 합의로 정한다.]
별도 합의.
멤버별로 별개의 계약서가 존재한단 뜻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기에, 한구인은 옐로 서브마린 엔터에 멤버별 계약서를 요구했다.
[아…… 꼭 필요하십니까?]
이게 돌아온 대답이었다.
한구인은 이때부터 제대로 쎄한 느낌을 받았다.
상대는 16조 비밀 유지 뭐라뭐라 했으나, 본인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파일을 보내겠다고 했다.
합병할 회사에게 자료를 제공하는 건 비밀 유지 조항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
계약서를 읽은 한구인은 점점 의구심이 강해졌다. 웨이퍼센트는 옐로 서브마린 엔터가 아닌 다른 회사로부터 정산을 받고 있었다.
바로 옐로 서브마린 엔터가 경리 업무를 아웃소싱하는 업체인 ‘미다스 세무회계’란 곳이었다.
한구인은 곧바로 그 업체를 기업검색 사이트에 쳐보았다. 아주 간단한 정보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대표자 이름이…….’
옐로 서브마린 엔터의 대표인 ‘신대영’과 성씨가 같다. 게다가 중간 글자도 ‘대’여서, 돌림자인 듯했다.
가족일 가능성이 크다.
거기까지 파악한 한구인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주 후 소녀연맹의 정산이라 죽은 눈이 되어 열심히 일하던 권아인 경리, 그녀가 말했다.
“저는 자바칩 쿠키…….”
“카페 가는 거 아닙니다. 잠시 외근 다녀오겠습니다.”
“네? 저, 저만 두고요……?”
권아인이 비 맞은 강아지 눈빛을 보냈지만, 차가운 남자 한구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권아인은 사라지는 한구인의 뒷모습을 보며 절규했다.
“가지 마아아아아―!”
한구인은 시계를 확인했다.
‘제기랄, 괜히 계약서를 보내달라고 했군.’
저쪽에서도 경계했을 것이다.
이건 시간 싸움이다.
한구인은 계약서에서 파악한 웨이퍼센트의 숙소로 향했다. 그들의 숙소는 3층짜리 오피스텔 건물 중 한 층을 개조한 것이었다.
한구인은 빌딩 앞에 대충 차를 세운 후 2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쿵쿵쿵 두드리고 초인종을 미친 듯이 눌렀다.
답이 없었다.
‘뭐지? 전달받은 스케줄대로면 사람이 있을 텐데?’
섣불리 웨이퍼센트에게 연락했다가 옐로 서브마린 엔터로 소식이 갈까 봐 일부러 직접 온 것이었다.
한구인이 초조하게 발을 구르고 있자 문이 아주 살짝 열렸다. 안쪽에서 경계심 가득한 눈동자 하나가 빛났다.
“누구세요?”
막내인 유빈이었다.
“가로 엔터 한구인 이사입니다.”
“가로 엔터……?”
유빈은 뒤늦게 한구인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옐로 서브마린 엔터로 직원 면담을 올 때 몇 번 마주했기 때문이다.
유빈이 벌컥 문을 열고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이사…….”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뭐, 네에.”
유빈은 한구인을 집 안으로 들였다.
숙소는 사무실로 쓰일 공간을 개조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온 생활 공간은 방 두 개, 거실―주방 일체형 방 하나가 전부였다.
방 하나에 2층 침대를 세 개 집어넣어 여섯 명이 자고, 나머지 방 하나는 침대 하나에 창고처럼 여러 물건을 밀어 넣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거실은 빨래 건조장 겸 식당이었다.
안쪽에 널어둔 빨랫감 때문에 겨울임에도 숙소 공기는 꿉꿉했다.
“혹시 정산 자료가 있으십니까?”
“정산 자료요?”
“예, 받으셨을 겁니다.”
[제12조(수익의 분배 등)
8)갑은 정산금 지급과 동시에 정산 자료(총수입과 비용공제내용 등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을에게 제공한다. 을은……(생략).]
“있으셔야 합니다.”
“아…….”
유빈은 잠시 방으로 들어갔다. 곧 안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형! 정산 자료 있어?!”
“으, 뭐어……?”
“정산! 우리 정산받은 거 서류!”
“아 뭐래애 몰라아…….”
‘형’이라고 불린 멤버는 자고 있던 모양이다.
곧이어 유빈이 자신감 없는 태도로 다시금 현관으로 나왔다.
“없는 거…… 같은데요……?”
“정산받을 때마다 서류나 디지털 자료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몰라요. 음, 음, 저희 처음 정산 시작될 때였나. 그때는 몇 달 받고 확인하다가, 나중엔 귀찮아서 아무도 안 받게 됐…….”
“그거라도 괜찮습니다!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뭐어…….”
유빈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뒤적이는 소리가 들리고, 몇 분 후 유빈이 흰 서류 봉투를 들고나왔다. 그는 팔로 코를 막고 여러 번 재채기를 했다.
서류는 먼지투성이였다.
“언제 거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거예요.”
“감사합니다.”
한구인은 받은 즉시 봉투를 개봉하여 자료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확신할 수 있게 됐다.
[공제 목록
A07280007 - 687,300원
E11120303 - 43,770원
……(생략).]
‘회계 부정이다.’
대표적으로 계약자를 속이는 방법이다.
비용 청구 항목을 코드로 변환하여, 계약자가 대체 무엇에서 비용을 공제하는지 알 수 없도록 만드는 것.
아마 따로 항목 별첨이 있을 텐데, 멤버들은 항목이 너무 많고 세세하여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진즉 포기했을 것이다.
‘원래 계산을 이렇게 하는가 보다’라며 납득했겠지. 그도 그럴 게,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만 해온 이들 아닌가.
연예계에 10년, 20년 투신한 대스타들도 뒤늦게 회사의 정산 부정을 발견하곤 한다. 매년 꼭 그런 이슈가 있다.
연예계 대선배들마저 뒤통수를 맞곤 하는데, 어린 아이돌들이야 이런 범죄에 더 취약하다.
‘처음엔 옐로 서브마린 엔터도 조심했겠지.’
웨이퍼센트 멤버들도 불안할 테니, 정산서를 꼼꼼히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나자 포기했을 게 분명하다.
한구인이 보아도 눈 돌아가는 자료를, 이 아이들이 무슨 수로 파악하고 문제점을 짚어내겠는가.
그때부터 옐로 서브마린 엔터는 과감해졌을 것이다. 과감하게 웨이퍼센트의 정당한 몫을 조금씩 가져갔겠지.
‘정산 업무를 외부 회사에…….’
아니.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 어쩌면 유령회사일 수도 있겠지. 거기에 외주를 준 이유가 있어.’
이 사기극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진행하려 했던 것이다.
옐로 서브마린 엔터 내부에서 부정을 알아차리는 이가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아마 회사 내부에도 공모자가 있을 것이다. ‘미다스 세무회계’의 예시를 보면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
“감사합니다, 유빈 씨.”
“이거면 돼요?”
“충분합니다. 그리고 또 당부드릴 건…….”
* * *
이야기를 다 들은 성필은 침묵을 유지했다.
맞은편의 한구인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 어떻, 어떻게 이런 간악한 짓을…….”
“회사를 급히 팔려는 건.”
성필이 입을 열었다.
“수익이 안 나서이기도 하지만, 빨리 손을 떼고 범죄 사실을 지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겠네요. 이딴 짓으로 웨이퍼센트를 모기처럼 착취하는 것보다, 저희한테 큰돈 받고 한 번에 손 터는 게 낫다는 계산…….”
“이런 경우는 어떡합니까?”
“웨이퍼센트의 계약은 2년도 안 남았어요. 법정에서 몇 개월이나 시간을 끌 순 없어요. 증거가 명백하니 결국 웨이퍼센트가 풀려나긴 하겠지만요.”
한구인은 유빈에게 정산서를 받고 가장 먼저 살펴본 항목이 있었다.
바로 유류비였다.
멤버들을 차에 태워 데리고 다니는 비용.
그게 한 달에 600만 원으로 책정된 분기도 있었다. 기름을 뽑아 멤버들과 캠프파이어라도 한 모양이다.
이렇듯 도저히 커버가 불가능한 항목이 도처에 널려 있다. 판사님도 ‘이건 좀……’이라며 금방 유죄를 선고하겠지.
“그렇다면…….”
한구인의 눈이 결연히 빛났다.
성필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협박하면 되…….”
“협상을 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겠…….”
“네?”
“예?”
“협상을 유리하게요?”
“협박 말입니까?”
둘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구인이 떨떠름한 어투로 말했다.
“예, 협박을 한다손 치면…… 그래서 웨이퍼센트분들을 데려올 수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 하더라도 저희의 문제는 끝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웨이퍼센트의 리더, 강현의 재계약 거부가 남아 있다.
강현은 외적으로 재계약을 하겠단 의사를 밝혔으나, 그건 거짓이었다. 성필이 친구 유하음을 통해 얻은 정보였다.
공교롭게도, 이전의 멤버 면담은 딱 강현의 차례에서 끝났었다.
성필의 휴가 기간 중 강현 쪽에서 가로 엔터로 연락이 왔었는데, 면담이 언제냐는 것이었다. 시간이 안 맞으면 직접 오겠단 의사까지 전해왔다.
성필이 부재중이라 강현이 방문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그건 제 쪽에서 고민해볼게요. 아까 협상을 유리하게 이끈다고 하셨는데, 정해둔 계획이 있으세요?”
“사장님과 구상해두었습니다. 박 이사님께 이 이야기를 해드린 건, 강현 씨를 설득하는 데 카드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확실히, 옐로 서브마린 엔터의 부정 행각을 알린다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올 것이다.
그런데 득보다는 실이 클 듯하다.
‘안 그래도 아이돌을 그만두려는 사람인데, 이 사실까지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이 추악함을 보곤 학을 떼며 연예계에서 도망가려 할지도 모른다.
“도움이 되겠습니까?”
“지금으로선 마땅히 드릴 답이 없네요. 저는 아직 강현 씨랑 말 한마디 못 나눠봤으니까요. 한 이사님은 오늘 옐로 서브마린 엔터로 가세요?”
“예.”
“그럼 같이 가면 되겠네요.”
그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권아인 경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박 이사님, 손님 오셨어요. 웨이퍼센트 강현 씨요.”
“강현 씨가요? 따로 연락이 있었나요?”
“아침에 박 이사님이 계시냐고 여쭈긴 했었는데, 온다는 말은 없었어요.”
“오려고 물어봤구나…….”
성필은 대강 강현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예상이 갔다. 그가 당한 처사엔 성필이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어떡할까요?”
“바로 뵙겠습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성필은 남고, 한구인이 응접실을 나섰다.
* * *
‘야 이 개새끼들아.’
강현의 뇌리에 대표인 신대영의 목소리가 우레처럼 크게 울렸다.
‘너희들이 쥐새끼처럼 꼰지른 거지? 그게 아니고서야 왜 면담이 강현 앞에서 바로 끝나는데? 이 비겁한 새끼들아! 내가 지금까지 너희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떨고 있는 멤버들.
얻어맞아 얼얼한 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만 보고 있는 직원들. 그중 신대영의 가족과 친척인 직원들에게선 경멸의 빛이 느껴졌다.
‘너희들 두고 봐. 이 일 파토 나면 내 모든 걸 걸고 니들 인생 박살 낼 거야. 알아?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말도 못 맞춰? 버러지 같은 놈들아!’
신대영 대표는 격분했다.
성필이 방문을 멈춘 것이, 웨이퍼센트 멤버들이 강현의 재계약 거부에 대한 암시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망상한 것이다.
웨이퍼센트 멤버들은 억울했다.
억울했지만 뭐라 하지 못했다.
겁먹고 덜덜 떨 뿐이었다. 여태껏 대표를 신처럼 여겨왔는데, 그가 모든 걸 걸고 인생을 망치겠다고 선언했다.
아이돌을 제외하면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게 대표의 선언은 종말의 예언처럼 들렸다.
‘야, 강현.’
대표가 리더인 강현 앞에 섰다.
‘가서 무릎 꿇고 빌어. 뭐든 해서 저쪽이 너희를 사게 하란 말야. 안 되면 시발 그쪽 사장한테 꼬리라도 쳐! 안 그러면, 두고 봐.’
대표가 분노로 벌벌 떨리는 손가락을 강현의 눈동자 바로 앞에 가져갔다.
‘너희들 다 좆되는 거야. 알겠어?’
‘…….’
‘대답해 못 배워 처먹은 새끼야!’
그리고 뺨에서 느껴지는 불꽃.
시야가 격하게 흔들린다.
“들어가시면 돼요.”
권아인의 목소리에 강현은 상상에서 빠져나왔다. 초점이 잡히고 흔들리던 세계가 제자리를 잡았다.
응접실 문이 열렸다. 안쪽에선 성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현은 눈가 아래에 붙인 반창고를 습관처럼 매만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돌 생활로 담금질한 가면을 썼다.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이사님. 갑작스레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곤란하셨죠?”
동생들을 위해, 강현은 무릎이라도 꿇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한구인은 대표 신대영과 마주 보고 앉았다. 신대영은 시종일관 호감을 사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앞에, 한구인은 준비한 자료를 내밀었다.
신대영은 ‘이게 뭡니까?’란 눈빛을 보냈다. 한구인이 고개를 까딱했다. 그의 무례에 신대영은 순간 울컥했지만, 별말 없이 자료를 꺼내어 읽었다.
웨이퍼센트의 정산 자료였다.
신대영은 심장이 철렁했으나, 이곳에 모인 자료만으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걸 깨닫자마자 살짝 금이 갔던 미소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기서 궁금하신 점이라도…….”
“야.”
이번에야말로 신대영의 가면이 깨졌다.
“……예, 예?”
한구인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양손을 포개어 쥐었다.
“장난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