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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08화 (608/760)

608화

뷔라이브 영상 속 조아라는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였다. 살짝 졸린 눈으로 채팅창을 읽으면서 소통했다.

[올해 대학 졸업하고 입사했는데 인간관계가 너무 힘들어요. 언니도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요?]

그걸 읽은 조아라가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언니? 나?]

이번엔 검지로 시청자들을 가리켰다.

[우리 인민이, 올해 대학 졸업, 올해 입사, 그럼 24살. 나, 23살. 내가 언니?]

조아라가 푸흐흐 웃더니 검지로 눈썹을 긁적였다.

[아이돌이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뭐, 딱 끝나고 그런 일이 아니거든요. 네, 직장 스트레스 있죠 그럼요. 이게 어떤 거냐면 예를 들어…… 아니다. 특정 안 되게. 내가 말하는 거 그냥 비유예요. 대충…….]

조아라는 엎드렸던 자세를 바꾸어 똑바로 누웠다. 그리고 폰을 머리맡 쪽 거치대에 끼우느라 화면이 십수 초간 흔들렸다.

재조정된 화면 속, 조아라는 이마에 팔을 얹은 채 나른히 누워 있었다.

[일하러 가잖아요. 그럼 당연히 할 것만 하고 가는 게 맞잖아요. 시간이든, 업무량이든, 뭐가 됐든 간에요. 근데 그쪽에선 더 일해라, 더해라, 뭐 이러는 거예요. 야근? 흐흫, 네, 야근시키는 거랑 비슷하죠.]

조아라의 눈동자가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고민하듯 굴러다니던 눈이 화면 중앙에 멈췄다.

[뭐, 시킬 수 있잖아요? 근데 그런 거 있잖아요, 눈치를 주거든요. 인민이들이랑은 약간 다를 수 있어요. 이런 느낌이거든요.]

너는 아이돌이다.

너는 공인이다.

나는 너를 안다.

이곳의 사람들도 너를 안다.

모두가 너를 보고 있다.

처신 잘해라.

[이게 꼭 직장에만 한정된 얘기도 아니에요. 뭐, 우리 멤버끼리 어디 밥을 먹으러 가잖아요. 모자나 선글라스 써도 알아보는 분이 계신단 말이에요. 알아봐 주시는 거 굉장히 감사하죠. 인민이들이랑 아이돌 팬분들은 우리 스케줄이랑 사생활 구별해주시고, 또 지켜주려고 노력해주시지만요. 아닐 때도 있어요.]

조아라는 빨리 말하느라 목이 건조해졌는지 침을 삼켰다.

[며칠 전에 있던 일인데, 우리끼리 식사하고 있는데 뒤에서 카메라 연속 촬영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뭐, 도촬이라고까진 안 말해요. 연예인 보면 신기해서 사진 찍고 싶고 그렇잖아요. 깜짝 놀라서 돌아봤는데, 그분은 저랑 눈 마주치고서도 계속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저를 보는 거예요. 이런 눈으로.]

난 사진 찍을 거다.

네가 뭐 어쩔 건데.

와서 막기라도 하게?

[그러고 계속 찍어서, 애들이랑 밥 다 안 먹고 식당 나왔어요. 그냥, 그냥…….]

조아라가 피곤한 듯 눈을 비볐다.

[이런 일이 많아요. 제가 아이돌이란 위치에 있으니까 갑질? 하는 사람들이요. ‘넌 나한테 뭐라고 못하지?’라는 게 보여요. 자기네들이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양.]

음, 그러니까.

[쫌 연차가 되고 나선 매니저님들 없이 많이 다녔거든요. 그전까진 어디 가든 매니저님들이 붙어 있어야 했는데, 연차가 되니까 매니저님들도 저희 사생활을 어느 정도 존중해주는? 막, 자유다! 이러면서 쌩쌩 다녔었는데, 요즘엔 걍 매니저님들이 붙어주는 게 더 편하고 좋아요. 괜히 우리 꼬꼬마였을 때 전부 케어해주셨던 게 아니었죠. 이런 걸로 스트레스받을 거란 걸 아셨던 거니까. 아무튼, 뭐.]

어쩌다가 이 얘기가 나왔죠?

[맞다, 직장 스트레스. 있어요, 아이돌도. 우리들도 다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비슷비슷한 이유로 불행해요.]

조아라의 눈이 반쯤 감겼다.

안이상 매니저는 그쯤에서 영상 재생을 멈추었다. 그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게 어제 아라 뷔라이브 영상인데요. 그,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겠는데…….”

“이상아.”

민경섭은 영상을 볼 때처럼 진중한 투로 안이상을 불렀다.

“너 그렇게 말하지 말랬지.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나 ‘다른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만 이러나요?’ 이러는 거.”

“아, 죄송합니다…….”

“다시.”

“그.”

안이상은 목소리에 확신을 담으려 노력했다.

“아라가 멘탈적으로 힘들어 보입니다.”

“나는 못 느꼈는데. 너희들한텐 달라?”

“착각일 수도 있.”

안이상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전이랑 약간 달라졌단 느낌이 듭니다. 요즘 아라가 외부 스케줄 같은 게 없어서 회사에만 있잖습니까. 교류하는 게 정지음 PD님이랑 멤버들 정도인데요. 정 PD님은…….”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다. 연애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100일 이내’의 시기이니까.

정지음의 머릿속은 꽃밭이었다. 그곳에 타인의 고민이 들어올 자리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온전히 이수연 작사가의 것이었다. 감히 다른 사람을 담을 순 없었다.

“정 PD는 예외로 치고요. 멤버들을 떠봤는데, 미묘하더라고요.”

“음…… 알겠어.”

“어쩔까요?”

“내가 얘기해볼게.”

성필이 휴가 중이 아니었다면 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필은 자아 찾기 여행인지 뭔지, 굉장히 센티멘털한 여정을 떠났다.

조아라의 정기 상담 땐 별다른 이상이 없었으니, 일이 있었다면 최근이다.

민경섭은 조아라를 응접실로 불렀다.

“아라야, 요즘 무슨 고민 있어?”

조아라는 처음엔 부정했다.

그 부정이 결정적이었다.

평소의 조아라와 너무 다른 태도였다. 그녀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죄를 지어 주눅 든 사람 특유의 태도가 보인다.

“네 고민을 말하는 건 네 자유야. 너만의 고민이라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해야겠지. 그런데 그게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지금 나한테 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회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조아라가 움찔했다.

민경섭은 차분하게 그녀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곧 조아라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민경섭이 예상조차 못 한 것이라, 그는 마땅한 리액션조차 취해줄 수 없었다.

되묻는 게 최선이었다.

“성필이 형이 자아 찾기 여행을 떠난 게 너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조아라는 민경섭의 반문에 애처롭게 머리를 숙였다.

* * *

연습실.

참석자 리카, 조아라, 장하양, 신아름.

소녀연맹 제2회 인민재판이 열렸다.

첫 번째 인민재판은 소녀연맹 데뷔 직후, 리카와 성필이 사귄단 루머를 검증하려던 자리였다.

“팀장님이 자아 찾기 여행을 떠나신 게.”

신아름은 귀찮아 죽겠단 듯 아예 눕기 직전인 자세였다.

“조아라 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응…….”

“대체 며칠이나 네 자의식과잉인 투정을 들어줘야 할까? 슬슬 짜증 나니까…….”

장하양이 바닥에 댄 신아름의 손 위로 손을 겹쳤다. 그녀의 한기를 느낀 신아름의 어투가 180도 바뀌었다.

“이 자리에서 모두 털어내고 공동의 화합을 추구하지 않을래?”

“…….”

조아라는 멍석을 깔아줬는데도 쉽사리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자 리카가 용기를 주려 평소처럼 조아라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아라쨩, 아타시(나)는 아라쨩이 박 이사님께 어떤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아! 설령 박 이사님이 자는 동안 몰래 입술을 훔쳐서, 박 이사님이 충격받고 도망친 거라고 하더라도!”

리카의 위로에도 조아라는 좀처럼 기운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굳은 것 같기도 했다.

신아름이 리카의 어깨를 찰싹 쳤다.

“넌 그게 재밌냐?”

“헤헤, 그치? 아라쨩이면 겨우 입술로 끝날 리 없으니까!”

“그 말이 아니잖아. 기분 나쁘니까 그딴 말 입 밖으로 꺼내지도 마. 성추행을 농담거리로 쓰냐 어떻게.”

“고멘(미안)…….”

리카와 신아름이 동시에 조아라를 바라보았다.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됐는데도 조아라의 어깨는 더욱 움츠러들었을 뿐이었다.

“아라쨩, 아까 한 말은 전부 장난이었지만 사실인 것도 있어! 아타시(내)가 아라쨩한테 절대 실망하지 않는단 거야! 아라쨩은 영혼을 나눈 동료잖아!”

그 과장된 응원은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범죄자들은 가족에게만은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족이라면 자신을 용서해주고 도와주리라고 생각해서다.

그만큼 가족이란 끈끈한 관계다.

비록 리카는 가족은 아니었지만, 지금껏 함께 지내 온 세월은 그와 비슷한 신뢰를 쌓기에 충분했다.

조아라는 용기를 냈다.

“아저씨가 요즘 이상했는데…….”

“야! 팀장님은 요즘 우리 다한테 이상했어! 내가 진짜 설마설마했다. 그걸 근거로 들이밀어?”

“아름아!”

리카가 성필이 하듯 ‘쓰읍!’ 신아름을 위협했다. 위협이라 해도 고양이가 하악질하는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한 이사님이 남의 고민을 들어줄 땐 스스로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도 나와 있어!”

“리카 너도 알잖아 팀장님 요즘 이상했던 거.”

“아, 알지만…….”

리카도 조아라의 서두를 듣곤 맥이 빠졌었다.

성필이 이상해진 건 멤버들 전체의 화두였었다. 그가 자아 찾기 여행을 떠나고 나선, 그 나름 고민이 있었겠구나 짐작할 단서일 뿐이었다.

즉, 성필은 조아라에게만 이상했던 게 아니었다.

“나, 나는 니들이랑 달라!”

조아라가 멤버들의 부정을 부정했다.

신아름은 왠지 모르게 지는 느낌이라 반박했다.

“네가 우리랑 달라? 팀장님한테 네가 더 특별한 존재라고? 그런 뜻이야?”

“이 이야기에선 특별한 쪽이 지는 거 아닌…….”

“네가 우리랑 뭐가 다른데?”

신아름은 리카의 태클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아무튼 조아라가 다른 멤버들보다, 특히 자신보다 더 특별할 이유가 하등 없었다.

“아저, 아저씨는…….”

조아라는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꼬옥 쥐었다.

“걍,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말 걸어도 일 있다면서 가고, 그랬단 말야아…….”

“…….”

확실히, 다른 멤버들이랑은 달랐다.

“너 최근에 팀장님이랑 제대로 된 얘기를 나눈 적이…….”

“없어. 없다고. 없으니까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거 아냐!”

조아라가 빽 소리쳤다.

평소 같았으면 신아름도 소리를 질렀겠지만, 이번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조아라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너희들이랑 다르다고! 아저씨가 나랑은 상대도 안 해준다고! 왜 그러겠어! 왜 그러겠냐고!”

“그럼, 너 팀장님한테 뭘 한 건데?”

대체 조아라가 무슨 짓을 했기에 성필이 그렇게까지 한 것인가?

조아라의 이야기를 듣자면, 성필은 그녀를 무시한 것이었다.

무시라니.

성숙한 어른은 물론 성필이 쓸 법한 방법이 절대 아니다. 만약 성필이 조아라를 무시했다면, 조아라가 그럴 만한 죄악을 저질렀을 것이다.

“너 설마…….”

신아름은 최악의 가정을 떠올렸다.

“너 진짜 팀장님을 성추행……!”

“몰라!”

“뭐?”

“모, 모른다고, 아저씨가 왜 그러는지…….”

신아름은 조아라를 멍하니 보다가, 리카의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조아라 쟤 저거 진짜 모른단 거야? 아니면 성범죄자들이 ‘몰랐다’라고 할 때의 ‘몰랐다’야?”

“헷갈려. 아타시(나) 어지러워…….”

“그거밖에 없어. 천사 같은(신아름의 주관) 팀장님이 얘를 무시할 일이면 그거밖에 없다고…….”

신아름은 계시받은 선지자처럼 안광을 번뜩였다. 그녀의 눈에서 편향된 깨달음이 번쩍였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중 하나야!”

“X발 성폭행이면 내가 여기 있겠냐?! 애초에 여자가 남자를 어떻게 성폭행하는데!”

“에…….”

리카는 뭔가 하고픈 말이 있어 보였으나, 분위기상 하지 않았다.

“좀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면 진지하게 들어줘어! 이, 이럴 때도 장난을 쳐야겠냐아……?”

“그래, 이상했어. 팀장님이 갑자기 이상해질 일이 뭐가 있지?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신아름은 방금까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이유가 있었구나. 있었어. 야 조아라 떠올려, 네가 뭐 했는지 떠올려 봐. 팀장님한테 뭐 했어! 왜 팀장님이 나랑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자리를 뜨고 그랬던 건데!”

“모르니까 니들을 부른 거잖아아…….”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분위기가 과열되어갔다.

만약 조아라의 추측이 맞다면, 조아라는 성필에게 잘못을 저질렀다. 한가하게 그녀를 위로할 새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조아라의 죄를 밝혀낸 후 성필을 불러내야 한다.

“맞아, 그래, 팀장님이 븨이에스 박수련 예능에 출연한 것도 말이 안 됐어. 섭외를 받아? 그게 가능해?! 팀장님이 스스로 KS 엔터에 안 가고서야 무슨 접점이 있어서 섭외를 받는데! 무슨 접점으로 KS 엔터 매니저한테! 휴가에! 섭외를! 받겠냐고! 팀장님이 KS 엔터로 가신 거야!”

“아, 아름아 진정해…….”

“진정?!”

신아름이 소름 끼치게 번쩍이는 눈으로 리카를 쏘아보았다. 신아름의 눈가는 밤새 ‘어쩌다 만났슴다’ 댓글창에서 싸우느라 늘어진 다크서클로 가득했다.

리카는 신아름에게서 광기를 느꼈다.

만약 성필과 평생을 함께하고픈 사람이 있다면, 신아름의 저 광기부터 뚫어야 하리라.

“진정 못 해애! 너희들 알아? 팀장님은 석세스 엔터를 사랑했어! 그런데 나가셨어! 자기가 도저히 어쩌지 못할 상황이란 게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이 가로 엔터에도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이 있어?”

신아름의 광기는 그녀의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성필이 석세스 엔터를 떠났을 때의 일이다.

신아름은 성필과 자신의 관계가 건전하지 않단 것을 알았다. 피가 섞이지 않은 타인에게 가족과 같은 사랑을 기대한단 건 망상이었다.

그랬기에 놔주었다.

놔주었었지만, 신아름은 그제야 깨달았다. 성필을 절대 놓을 수 없단 것을. 성필이 그녀를 원하는 것보다, 그녀가 성필을 더 원한다.

다신 놓지 않는다.

떠나게 두지 않는다.

만약 그 원인이 존재한다면 제거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아라.”

당장이라도 불꽃이 되어 하늘 높이 튀어 오를 듯하던 신아름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

그녀는 다 타고 남은 재처럼 차분하고 쓸쓸한 눈이었다.

“아라야.”

그 눈으로 조아라를 응시했다.

“네 말이 옳아. 팀장님은 너한테만 특히 이상하셨던 거 같아. 아마, 너에게 원인이 있겠지. 떠올려 보자. 다 함께 원인을 알아보자. 그러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노력해줄래, 우리 아라…….”

신아름이 조아라의 손을 잡고 깍지를 끼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휘어잡았다. 조아라는 떨리는 입술을 꾹 물곤 고개를 끄덕였다.

신아름의 손이 용서를 위해 구름 아래로 내려온 여신의 것 같았다.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고팠다.

리카는 조아라가 이해됐다.

옛날에 성필이 미국으로 떠나 돌아왔을 적, 그가 장난으로 리카를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1분도 안 됐던 시간이었지만, 그 장난은 리카의 가슴속 깊은 곳에 공포를 새겼었다.

성필에게 무시당한단 일의 공포를.

그래서 조아라가 이해됐지만.

“다들 그만해!”

리카는 이 집단광기를 막아야 했다.

원래 집단이란 집단 내 구성원 중 극단적인 의견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극단 편향(Extremity bias)이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평범한 다수가 입을 닫으면 집단은 과격하게 움직이는 법이다.

“이런 생산성 없는 대화는 모오 야메로(이제 그만둬)!”

조아라는 자신이 죄인일지도 모른단 죄책감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고, 신아름은 그냥 제정신이 아니었다(사실임).

빨리 그녀들의 극단적인 사고를 멈춰야만 했다.

“하양 언니도 뭐라고 해주세…….”

리카가 재차 확인하려는 듯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언니?”

장하양은 다소곳이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을 비스듬히 내려 시선을 피했다.

누가 보아도 잘못한 사람, 아니.

“언니, 뭔가 알고 있나요?”

“…….”

눈물을 흘리던 조아라도, 성모처럼 자애롭던 신아름도 동시에 장하양을 바라보았다.

“알고 계신 거죠?”

“…….”

“그렇다면 말씀해주세요!”

“…….”

장하양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꺼풀이 바들바들 떨렸다.

곧 그녀가 한숨을 뱉으며 눈을 떴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조아라와 묘한 열기를 품은 신아름을 번갈아 보았다.

마지막 시선은 리카에게로 향했다. 진실을 향해 곧게 뻗은 그녀의 눈으로.

숨겨서 될 일이 아니었다.

장하양이 오랜 침묵과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얘들아, 알고만 있어. 알고만 있는 거야. 알겠지?”

장하양은 백설하가 성필에게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딱 그것만 말했다. 성필의 가정사는 입에 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전후 사정을 파악하기에 충분한 인물이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죽여버릴 거야!”

연습실 문이 쾅 열리면서 광기에 빠진 신아름이 총알처럼 튀어나왔다.

“백설하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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