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화
해병대 훈련소 수료식.
성필은 현수막에 걸린 글자를 읽었다.
[인간 개조의 용광로, 해병대.]
그는 누런 흙으로 덮인 연병장에 서서 그 글자를 몇 번이고 읽었다.
성필은 탁한 녹색의 해병 정복을 입은 채 서서, 글자만을 읽었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기혁이 장하다, 장해.”
“오빠 그럼 휴가는 언제 나오는 거야?”
“배고프지? 빨리 가자 아들.”
훈련소 동기들은 저마다 가족의 손을 잡고 몇 시간의 외출을 즐기러 사라진다.
성필은 고개를 숙였다.
괜히 정복에 묻은 흙을 털었다. 장갑에 흙이 묻어져 나왔다. 손을 비벼 털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로 왔다. 육군이 아니라 해병대였다. 해병대는 육군과 달리 거의 매달 모집하니까, 가장 빠르게 입대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
혼자만의 침묵 속에서 성필의 곁은 비어갔다.
성필은 주변의 사람들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아무런 기대 없이 연단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이열, 성필이.”
“어?”
성필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선생님?”
허은설이었다.
“왜 이렇게 놀라? 편지로 온다고 했잖아.”
“아, 아니, 안, 오시길래…….”
“놀래켜주려고 뒤로 몰래 왔어. 언제 돌아보나 계속 기다렸다. 왜, 선생님이 안 올 줄 알았어?”
“아, 아…….”
“야 임마 좋은 날에 왜 울어!”
“안 웁니다……. 저는 해병입니다…….”
허은설이 왁자하게 웃으면서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녀는 성필을 횟집으로 데려가 과할 만큼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술은?”
“마시면 안 됩니다.”
“저긴 마시는데?”
옆 테이블에도 방금 수료식을 마친 이가 가족들과 앉아 있었다. 그는 부모님의 앞임에도 거리낌 없이 소주를 퍼마셨다.
“아빠, 그, 미안한데, 이거, 연초 좀…….”
게다가 아버지에게 담배까지 달라고 했다.
예의 없는 행동이지만, 아버지는 이해했다. 아예 갑째로 주면서 폐가 다 타버릴 때까지 피우고 오라고 했다.
그 해병은 남은 소주를 위에 들이붓고는 담배를 가지고 날 듯이 사라졌다.
“저는 안 됩니다.”
“성필이 진짜 군인 같다.”
“군인 맞습니다.”
“말투도 이상해졌어.”
성필은 과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전부 먹어 치웠다. 선생님이 사준 것이다. 감히 남길 순 없었다.
식사를 마치곤 거리를 산책했다.
“바로 군대 간다기에 놀랐어.”
“어차피 할 것도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모르겠습니다. 군대가 체질에 맞으면 말뚝 박아볼까 합니다.”
“군인, 멋지다.”
“공무원이라서 좋은 것 같습니다.”
허은설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녀는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바닷바람을 맞은 그녀의 머리칼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나부꼈다.
“사진 찍어줄게.”
“사진 말입니까?”
“응, 저기 바다 쪽으로 서 봐.”
성필은 그녀의 말대로 했다.
“자아, 김치.”
성필이 경례했다.
허은설이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좀 정상적으로.”
“군인에겐 경례가 정상적이지 않습니까.”
“에이.”
허은설은 성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곤 셀카 모드로 바꾸었다.
성필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와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더 와. 앵글에 안 담기잖아.”
성필은 아랫입술을 물면서 정모(正帽)를 더 깊이 눌러썼다.
“자, 김치!”
바다를 배경으로 한 둘의 사진이 폴더폰 안에 담겼다.
두 시간이나 되었지만, 성필에겐 짧게만 느껴지는 산책이 끝났다.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우리 성필이, 이렇게 잘 큰 거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성필이 애처로운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이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허은설이 성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성필이는 처음부터 사람이었잖아.”
“빈말은 괜찮습니다. 저도 옛날의 제가 썩 좋게 보이진 않습니다.”
“으음.”
허은설이 고개를 저었다.
“성필아, 사람이 추울 때 움츠리는 건 당연해. 옛날엔 성필이를 둘러싼 세상은 추웠던 거지. 지금은…….”
허은설이 그의 어깨를 꼭 쥐었다.
“조금은 따뜻해졌지?”
“…….”
성필은 모자챙을 붙잡고 깊이 눌러썼다.
“예.”
“성필이, 아직 해병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 눈물이 싸서 어떡해?”
“선생님.”
“응.”
“감사합니다, 정말로.”
“뭘. 선생님이잖아. 멋진 군인이 된 성필이도 기대할게. 다른 꿈을 가져도 응원할 거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
성필은 자대 배치를 받았다.
맞선임이 가장 먼저 가르쳐준 건 기수, 군가, 그리고 분대 왕고의 명령 체계였다.
“‘뮤비’라고 하면 21번을 틀어. 그게 뮤직비디오 나오는 채널이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아쎄이 새끼 목소리 봐라.”
“알겠습니다악!”
그날 저녁.
성필은 분대 내무반에 기합이 단단히 든 채 앉아 있었다. 그러던 도중 저녁을 먹고 내무반으로 들어온 왕고가 외쳤다.
“뮤비!”
성필이 호다닥 텔레비전으로 달려가 리모콘을 잡았다. 그리고 21번으로 채널을 바꾸었다.
왕고는 이쑤시개로 이빨을 쑤시면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때마침 나오던 뮤비가 끝나고 새로운 뮤비가 시작될 시점이었다.
“……에이 씨발 또 이거네. 야, 예능.”
“…….”
“예능.”
“…….”
왕고가 인상을 찌푸렸다.
내무반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성필의 맞선임은 벌써부터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성필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선 손혜빈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중이었다.
“이 씨발 아쎄이가 개빠졌네. 저 새끼 맞선임 누구야?”
“끄흐으윽…….”
맞선임이 왕고에게 불려가는 중에도, 성필은 뮤직비디오에 혼이 빼앗긴 듯 넋이 나가 굳어있을 뿐이었다.
* * *
오랜만에 만난 은사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옛이야기보다 최근의 일이 주요 화제로 올랐다. 교사인 허은설이야 매양 비슷한 삶을 사니, 주로 입을 여는 건 성필이었다.
둘 사이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성필의 재담이 큰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요, 엔터계의 일이란 게 비관련자에겐 흥미롭기 그지없었으니.
“그런데.”
허은설은 빈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흔들면서 말했다.
“성필이는 해가 갈수록 더 멋져지네. 만나는 사람은 아직도 없니?”
“일이 너무 즐거워서요.”
“내가 봤을 때 성필이 눈이 너무 높아서 그렇지 싶어. 연예인만 보고 사니까.”
“다들 그런 오해를 많이 하는데, 회사엔 연예인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90%는 보통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살면서 한두 번 볼 미남 미녀들을 모래알처럼 보고 다니잖아?”
“사실.”
성필이 악동처럼 웃었다.
“맞아요. 눈 높아지죠.”
“이야, 너 어떡하려고 그러냐? 이것저것 가리다가 혼자 쓸쓸하게 죽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세요…….”
“농이야 농. 근데 성필이 정도면 연예인한테도 먹힐 법한데. 연예계 큰손이잖아?”
“큰손은 무슨. 그리고 그걸 매력으로 삼아서 사귀어봤자 행복하겠어요?”
“이열, 35살한테 아직도 낭만이 있네. 이것저것 안 따지고 인간 대 인간으로만 보기엔, 나이가 많이 차지 않았어?”
성필은 마땅한 답 없이 컵만 매만졌다. 그걸 본 허은설이 급히 말을 주워 담았다.
“미안. 성필이가 알아서 할 텐데 괜히 주접이다.”
“…….”
“선생님이 미안해애. 화 풀어. 응?”
“아뇨, 생각이 깊어져서요.”
“결혼?”
“네.”
성필은 컵에 입을 가져갔다. 그러다가 빈 걸 알곤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두었다.
“저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요. 평생을 함께할 사이인 거잖아요.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야!”
허은설이 크게 소리쳤다.
“결혼을 준비하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 다 어영부영 결혼하는 거야!”
“……그래요?”
“당연하지! 모든 게 갖춰진 상태에서 결혼하는 사람은 없어! 삶이란 게 평생 배우는 거거든. 다 배우고 나서, 인간이 돼서, 상대에게 모자람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한다. 이게 진짜 꿈이지.”
“그럼 불행하지 않을까요?”
“서로 힘내야지. 성필이만 힘내는 게 아니라, 상대도 똑같이 노력하는 거야. 맞춰간다고 하지. 성필이 혼자만 책임을 질 필욘 없어. 아니, 연애 해봤잖아? 혼자 노력하는 게 아니라고.”
“선생님은 어떠셨어요?”
“매일 깨닫는 삶이지.”
허은설이 질색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 웬수랑 산 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매일이 새로워. 매일매일 화낼 게 있단 게 놀랍다니까!”
“불행…… 한 거예요?”
“음, 안 좋을 때도 있지. 그런데 성필아, 결혼이란 건 말야. 좋을 때는 저어어어어엉말 좋아.”
“안 좋을 때도 있지만, 좋을 때는 저어어어엉말 좋은…….”
“응. 그게 결혼이야. 매일매일 화낼 게 있단 게 놀랍고, 매일매일 더 좋아질 게 있단 것도 놀랍지. 물론, 상대가 맞았을 때만.”
“행복하시나 보네요.”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하겠지.”
“다행이에요.”
“성필아.”
“네?”
“행복해?”
성필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네.”
“다행이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내가 뭘? 네가 행복한 건 네가 잘해서지.”
성필은 주머니에서 작은 물건을 하나 꺼내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MP3 플레이어였다.
“이게 제 삶을 바꿨어요. 선생님이 주신 이 선물이요. 이 작은 상자가, 그때까지 제가 학교에서 배웠던 모든 것보다 더 큰 가르침을 줬어요.”
성필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음악이 인간을 바꿀 수 있단 것을,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단 것을 배웠다.
그 자신이 음악으로부터 구원받았다.
“선생님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아니.”
“……네?”
“그건 좀 부담스럽네. 그럼 언젠가 성필이가 프로듀서 일 때문에 고통스러우면, 그게 나 때문이 되잖아.”
“저는, 아니, 절대 선생님을…….”
“그리고 성필이가 성필이 일로 얻는 행복도 나 덕분이 될 거고.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성필아.”
허은설은 테이블에 올라온 MP3 플레이어를 잡아 그를 향하여 밀었다.
“이건 계기일 뿐이야. 선택은 네 몫이었고. 이 MP3를 받은 거, 이 안에 든 음악을 들은 거, 음악의 가사를 알아본 거, 영어를 공부한 거, 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 모두 성필이의 선택이었잖아. 다 그래. 성필이가 거머쥔 현재는, 모두 성필이의 선택으로 이뤄낸 거야. 그 성취와 행복을 누군가의 덕으로 돌리진 않았으면 해.”
“…….”
“그리고, 고통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거야. 이것이 인생인가? 그렇다면 한 번 더!”
허은설은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선생님은, 성필이가 그렇게 강한 인간이 됐으면 좋겠어. 성필이가 훌륭한 어른이 된 거 같아서, 학생 때보다 더 어려운 과제를 내주는 거야.”
자신에게 닥쳐오는 고통조차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 있는 태도.
허은설은 제자에게 새 숙제를 내주었다.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도전해볼 만한 어려운 과제였다.
그녀는 성필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짐작하고 있던 것이다.
결혼 같은 경사스러운 일 덕분에 불린 거라면 좋았겠으나,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았었다. 얼굴 한번 보러 연락했다기엔 시기가 미묘했고, 성필이 꺼내는 말도 시답잖은 것들뿐이었기에.
“할 수 있겠어?”
허은설은 어른인 성필에게 위로보다 용기를 주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들이밀었다. 세상 모든 게 너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는, 희망적이면서 절망적인 현실을.
성필은 그녀가 내미는 MP3를 받았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삶. 죽는 순간까지 배움이 부족하다고 한탄하겠지.”
성필은 그녀가 추천했던 책의 구절을 인용했다.
“스모르찬도, 촛불이 꺼져가듯이, 서서히 죽어갈 때마저 배움을 갈구하노라. 세상은 나의 것이니, 응당 나에게 속해야 하기에…….”
모든 게 나의 것.
나의 선택.
나의 인생.
이 행복도, 고통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
“아직은 힘들까?”
“아니요.”
MP3는 다시 성필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저는 해병이니까요.”
허은설도 마주 웃어주었다.
“언제나처럼, 응원할게.”
* * *
성필은 카페를 나왔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착용했다.
폰을 꺼내어 음악을 골랐다.
[Childhood ― Michael Jackson]
[People say I’m strange that way
사람들은 내가 이상하다고 해요
cause I love such elementary things
내가 어린애 같은 걸 좋아하기 때문에요
It’s been my fate to compensate for the childhood i’ve never known
내가 전혀 모르던 유년기를 보상받는 게 나의 운명이어왔어요
Have you seen my childhood
내 어린 시절을 본 적 있나요
I’m searching for that wonder in my youth
난 내 청춘 속에서 경이를 찾아 헤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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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reams I would dare
(내가 감히 꿈꾸었던 것들 같은 거요).”
성필은 이젠 꽤 유창해진 영어로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거리를 거닐었다.
* * *
“언니.”
장하양은 방문을 빼꼼 열어보았다.
암막 커튼이 쳐진 방 안은 어두웠다.
침대 위엔 백설하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채 자고 있었다. 아니, 자고 있는지 그냥 누워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어제부터 몸이 안 좋다며 계속 저러고 있으니.
“저희 회사 갈게요.”
“…….”
“식탁 위에 죽 올려놨어요. 그릇에 담고 전자레인지에 데우시면 돼요.”
“……알겠어.”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운 목소리였다.
장하양은 그대로 문을 닫고 가려다가, 방 안으로 들어가 백설하의 옆에 섰다.
“언니 마음 이해해요. 만약 제가 언니였더라도 많이 상심했을 거예요. 하지만…….”
“꺼져.”
“네.”
장하양은 꺼졌다.
어두운 방 안에서, 백설하는 잠을 청했다.
자는 건지 깨어 있는 건지, 본인조차도 알 수 없는 몸 상태였다. 그녀는 그렇게 밤과 새벽, 아침을 지새웠다.
장하양과 방금 나누었단 대화마저도 흐릿했다.
백설하는 이불 안에서 몇 번 뒤척였다.
이윽고 멤버들이 현관을 나서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마음 놓고 잠이 들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백설하는 눈을 반쯤 떴다가 다시 감았다.
또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노크도 함께였다.
백설하는 ‘가겠지’ 싶어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맨정신으로 있고 싶지 않았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이 몽롱한 상태를 영원히 이어가고 싶었다.
띵똥 띵동 띵동!
쿵쿵쿵쿵!
띵똥 띵똥 띵똥!
쾅쾅쾅쾅!
“…….”
백설하는 이불을 펑 차면서 벌떡 일어났다. 감겨 있던 눈이 뜨이자 충혈된 안구가 드러났다.
그녀는 천천히, 무겁게, 명백한 적의를 담아 방을 나섰다. 복도를 걸어 현관에 이를 때까지 벨소리와 노크 소리가 이어졌다.
백설하는 체인을 잠그고 문을 열었다.
열린 좁은 문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백설하는 눈을 찌푸리곤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설하야.”
백설하가 눈을 번쩍 떴다.
갑작스럽게 많아진 광량에 눈이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시야가 따갑도록 밝았다.
몇 초가 지나서, 상대의 윤곽이 보였다.
“자고 있었어?”
미묘한 웃음과 다정함이 섞인 목소리.
이윽고 백설하의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아…….”
옛날처럼 따스하게 미소 지어주는 성필이 서 있었다.
“이사, 님…….”
“응, 나 왔어. 들어가도 될까? 아니다, 준비할 시간 필요하지? 조금 있다가 올게.”
“이사아, 니이임…….”
백설하의 말이 흐느낌에 가까워졌다.
성필은 머리를 긁적이곤, 마땅히 할 게 떠오르지 않아 미소를 더 짙게 할 뿐이었다.
“응, 설하야. 다녀왔어.”
자아 찾기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