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6화
마이클 잭슨은 유명하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성필조차 이름을 알고 있으니 당연히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위인인가?
성필이 떠올리는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는 이러했다.
‘아오옷!’
이런 날카로운 신음을 내뱉으면서 춤을 추는 사람. 그리고 사타구니를 손으로 붙잡고 골반을 흔드는 춤을 추는 사람. 문워크라고 불리는 뒤로 걷는 춤을 추는 사람.
가끔 교실 뒤에서 장난스럽게 마이클 잭슨을 흉내 내는 이들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을 좋아해서 흉내 내는 게 아니었다. 그가 웃기다고 생각해서 따라 하는 것뿐이었다.
“성필이는 마이클 잭슨으로 하는 거다?”
성필은 교사 허은설이 자신을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비협조적으로 나오니 그냥 네 멋대로 해봐라,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성필은 낮게 혀를 찼다.
“네.”
그는 금세 흥미를 잃곤 다시 멍때리기를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팀을 짜서 서로가 조사할 인물에 관해 토의했으나, 성필은 홀로 앉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성필아.”
그때 허은설이 그의 앞자리에 앉았다.
성필은 귀찮단 듯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이러면 선생들은 보통 이렇게 말했다.
‘똑바로 안 앉아?’
‘선생 앞에서 한숨을 쉬어?’
‘넌 안 되겠다.’
성필은 선생님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았다.
학생 인권 조례 따위는 없는 시대였다.
몽둥이로 패고, 머리를 때리고, 교편으로 파리 잡듯이 쳤다.
‘부모 없는 게 벼슬이냐? 부모 없다고 다 너 같이 사는 줄 알아?’
‘못 배웠으면 배울 생각을 해야지 새끼야.’
‘커서 뭐가 될지 뻔히 보인다. 등신 같은 놈.’
폭행은 물론 폭언마저 당연한 시대다. 폭력이 사랑과 관심이란 이름으로 허용되었던 시대.
그럼에도 성필은 행실을 고치지 않았다.
선생들이 자신을 쓰레기처럼 볼 때 행실을 고치면, 자신이 정말 쓰레기처럼 느껴져서였다. 쓰레기이기에 행동을 고쳐야 한다, 그렇게 되어버린다.
“왜요.”
성필은 선생이라 불리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허은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성필의 불손한 행실을 탓하려는 거겠지. 고작 이삼 분 대화하다가 뜻대로 안 풀리면 욕을 입에 담거나 손을 들어 올릴 것이다.
“마이클 잭슨 노래는 들어봤어?”
그래서 그 질문은 성필에게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성필은 어버버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티비에서 잠깐…….”
“마이클 잭슨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아?”
“가수잖아요.”
성필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마이클 잭슨은 해마다 한국을 찾았었다.
첫 내한 때는 뉴스든 거리든 난리였다. 그가 악마숭배자에다 소아성애자이기에 입국을 거부해야 한다면서 여기저기서 시위가 벌어졌었다.
다음 해에는 리조트 투자 관련 건으로 내한, 또 다음 해에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었다.
그리고 또 그다음 해에는 한국에서 벌인 자선 공연이 텔레비전에서 생중계되었었다.
왜 유명한 미국 가수가 자꾸 한국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텔레비전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텔레비전에 얼굴을 비추면 전 국민이 알던 시기였다.
“음, 그렇구나.”
허은설은 성필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다.
다른 선생들이 성필을 제압하려고 노려보는 것과 달랐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다정함과 관심이 서려 있었다.
성필은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게 반항심을 자극했다.
“마이클 잭슨이 위인이에요?”
“성필이가 위인이라고 생각하면 그렇지.”
“난 마이클 잭슨 누군지 잘 몰라요. 장난으로 말한 거예요.”
허은설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성필은 괜히 찔려서, 선생과 마주한 상태에서 처음으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걍, 이순신으로 할게요. 됐어요?”
“응? 왜?”
“그거 때문에 왔잖아요. 내가 장난쳐서.”
“아닌데? 마이클 잭슨 좋잖아. 선생님도 마이클 잭슨 좋아해.”
“위인이 아니잖아요.”
“성필아.”
허은설은 아까보다 더 다정한 투로 말했다.
“역사 교과서 있잖아. 거기 나오는 모든 게,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중요하다’라고 판단해서 넣은 거야. 객관적으로 중요한 사실 같은 건 없어.”
“…….”
“네가 바라보는 세상에선,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중요한 거야.”
성필은 그녀의 말에서 위안을 받았다.
왜인지 명확하게 언어로 설명할 순 없었다.
그가 어째서 위안을 받았는가. 그걸 알아차린 건 먼 훗날의 일이었다.
이 세상은 성필에게 ‘틀렸다’, ‘잘못됐다’라고만 말해왔다. 그런데 허은설만은 성필에게 ‘네 세상에선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한 거다’라고 말해주었다.
성필을 인정해준 것이었다.
“…….”
아직 어린아이는 뭐라 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였다.
“동아리 시간 끝나고 교무실로 올래? 선물 줄게.”
성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성필은 허은설을 따라 교무실로 갔다. 그가 오자마자 다른 교사들이 ‘또?’란 시선을 보내왔다.
사회과 학생주임이 지나가면서 교편으로 그의 머리를 탁 쳤다.
“아이고 박성필 너 임마 왜 또 왔어? 은설 쌤, 얘가 또 무슨 사고 쳤어요?”
“성필이가 활동에 열심히 참여해서 선물 주려구요.”
“……네?”
허은설은 성필의 손목을 잡고 학생주임을 지나쳤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로 온 허은설은 핸드백을 뒤져 어떤 물건을 하나 꺼냈다.
“자, 성필아.”
MP3 플레이어였다.
성필의 중지만 한 길이의 직사각형 무광 재질. 그 작고 네모난 상자엔 유선 이어폰이 돌돌 감겨 있었다.
비싼 모델이었다.
최저시급이 3,000원 이하인 시대. 이 MP3 플레이어의 가격은 6만 원 이상이었다.
성필은 그 가격까진 몰랐으나, MP3를 가지고 있느냐는 학생들 사이에서 ‘좀 사는 애’의 기준이었다.
성필에게 MP3란 건 꿈에서도 손에 쥐지 못할 비싼 물건이었다.
“선물.”
“……선물, 요?”
“안에 마이클 잭슨 노래 몇 개 있어. 헤헤, 다른 노래들도 있는데 마음에 들걸? 아, 어떻게 쓰는지 알려줄게.”
허은설은 플레이어를 성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손을 감싸 쥐곤, 그의 손으로 플레이어의 버튼을 한 번씩 시험 삼아 누르게 했다.
“이게 전원. 이게 위, 아래, 재생, 정지.”
허은설의 손은 차가웠다.
그래서 성필은 불안했다. 그녀의 손이 차갑게 느껴지는 건, 자신의 손이 너무나 뜨거웠기 때문이니까.
플레이어를 쥔 손이 땀범벅이었다.
“알겠지?”
“……제가 받아도 돼요?”
“어차피 바꿀 생각이었거든. 마이클 잭슨을 조사하는데 노래도 안 듣고 할 순 없잖아?”
허은설은 성필의 집안 사정을 아는 듯했다.
컴퓨터도 뭣도 없을 테니, 인터넷에서 음악을 찾아 듣거나 자료 조사할 엄두를 내지 못 하리라.
그걸 감안해도 MP3를 선물해주는 건 과하긴 하지만, 허은설의 목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술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청소년기, 예술에 흠뻑 빠진 경험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음악 없는 성필의 삶은 얼마나 무미건조할 것인가.
이 MP3가 그 시작이 되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머니에 넣어. 학교에서 MP3 꺼내면 안 되잖아. 빨리.”
성필은 머뭇거렸다.
손안에 들어온 고가의 전자기기를 주머니에 넣기 꺼려지는 것이다. 그러자 허은설이 성필의 손을 감싸 쥐곤 품 안에 밀어 넣어주었다.
“이제 네 거야.”
성필은 넋이 나간 듯 가만히 있다가, 마지못해 한단 것처럼 까딱 고개를 숙였다.
그게 그가 무의식적으로 할 수 있던, 무의식적으로 할 수밖에 없던 최대한의 감사 표현이었다.
허은설은 그 무미건조한 감사에도 밝게 웃었다.
성필은 교무실을 나왔다.
여느 때처럼 자율 학습 따윈 하지 않고 학교를 나섰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MP3를 켰다.
첫 곡을 재생했다.
[Childhood ― Michael Jackson]
[Have you seen my childhood
그대는 내 어린 시절을 본 적 있나요
I’m searching for the world that I come from
난 내가 왔던 세상을 찾고 있어요
cause i’ve been looking around in the lost and found of my heart
내 마음속 분실물 보관소 속을 계속 헤매고 있거든요
No one understands me
아무도 날 이해해주지 않아요
They view it as such strange eccentricities
사람들은 저를 이상하게만 봐요]
성필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노래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마음을 씻는 아름다움이다.
* * *
“뭐?”
성필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영어 교사는 성필의 질문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자신을 놀리는가 의심해야만 했다.
“그러니까요.”
성필은 창피함에 붉어진 얼굴로 이야기했다.
“영어는 어떻게 읽어요? 그, 애들은 처음 보는 단어도 읽잖아요.”
“너, 넌, 알파벳도 모르냐……?”
“알파벳 알아요. 에이, 비, 씨…….”
“아니, 너…….”
교사는 머리를 박박 긁었다. 꼴통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영어를 읽을 줄도 모른다고?
“잠시만 기다려라.”
교사는 컴퓨터에서 자료를 뽑아 성필에게 주었다.
“파닉스. 알파벳마다 발음이 있어. A는 ‘아’, P는 ‘프’, L은 ‘르’, E는 ‘에’ 이런 식으로. 그럼 APPLE도 읽을 수 있겠지? 아프르, 이렇게. 애플.”
“E는요? 애플이 아니라 아프프르에잖아요.”
“……모음, 이란 게, 있단다. 모음은 자음이랑 결합…… 모음이 뭔지는 알지?”
“아야어여오요.”
“그래…….”
성필은 파닉스 프린트를 몇 번 보더니, 갑자기 세상의 진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처럼 ‘아!’ 외쳤다.
“바나나! BANANA! 아, 이렇게 읽는구나!”
“…….”
교사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날부터 성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수업에서 멍때리는 대신 영어를 독학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선생들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다.
허은설의 도움을 빌려 정규 교과 시간이 끝나면 컴퓨터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느린 인터넷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마이클 잭슨에 대해 조사했다.
대부분은 조사라기보다 노래 가사를 읽는 것이었다.
마이클 잭슨 외에도 MP3 안에 든 노래의 가사를 모두 찾아보았다.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백스트리트 보이즈, 스파이스 걸스.
허은설의 MP3는 팝의 보고(寶庫)였다.
그렇게 달라진 성필의 모습을 1학년 모두가 알게 됐다. 소문으로 들어서 아는 이들도 있었고, 직접 보아서 아는 이들도 있었다.
“윽…….”
같은 반이자 ‘역사 인물 탐구부’에서 팀원이었던 희경. 그녀는 도서실에 들어서자마자 성필과 마주쳤다.
희경은 다른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그를 보자마자 움츠러들었다. 성필은 그런 그녀를 흘끗 보더니, 신경도 안 쓰고 다시 책장만 훑었다.
희경은 빌린 책을 반납하고 새 책을 대출했다. 그리고 학원에 가기 전까지 시간을 보내려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았다.
몇 분 후, 성필이 그녀와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희경은 책에 집중하고 싶었으나, 자꾸만 성필의 등으로 눈길이 갔다.
‘뭘 읽는 거지?’
도서실에 만화책이 있긴 하다.
그걸 읽는 걸까?
“끄응…….”
그때 성필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가 홱 돌아보았다. 희경은 대경실색하여 고개를 팍 숙였다.
“야.”
“뭐 므므므 뭐 뭐?!”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성필의 목소리에 희경은 혼비백산 몸을 떨었다.
“이거, 무슨 뜻이냐?”
성필이 책을 희경 앞에 턱 떨어뜨렸다. 그리고 검지로 한 부분을 짚었다.
[세이렌의 유혹은 한갓된 관조의 대상, 즉 예술로 중화된다. 사슬에 묶인 자는 연주회에 참석하지만, 이후의 콘서트 방문자처럼 미동도 없이 경청하는 사람이 된다. 해방을 향한 감격스러운 요구는 박수갈채처럼 희미하게 사라진다. 그리하여 선사시대와 작별한 후 이런 식으로 예술 향유와 노동은 서로 결별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한갓’이랑 ‘향유’…….”
“…….”
희경은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었다.
성필은 ‘그러냐’라고 말한 후, 살짝 뒤에 들릴 듯 말 듯 ‘고맙다’라 했다.
그가 돌아가려던 때, 희경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뭐 읽어?”
성필은 대답 대신 표지를 보여주었다.
[계몽의 변증법 - 막스 호르크하이머, 테어도어 아도르노]
“……?”
희경은 처음 보는 제목과 처음 보는 작가들의 이름에 물음표를 띄웠다. 딱 봐도 고등학생이 읽을 만한 게 아닌 듯했다.
성필이 변명처럼 덧붙였다.
“‘예술’ 책장에 있길래 고른 거야.”
“예술? 왜?”
“내 조사 주제가 가수잖아.”
희경은 멍해졌다.
성필이 진심으로 ‘마이클 잭슨’을 조사하고 있는 건가? 그냥 수업에서도 멍때리는 애가 하나 마나인 동아리 활동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놀라운 건 성필이 순간적으로 보여주었던 ‘부끄러움’이란 감정이었다.
그는 부끄러워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본다는 데 부끄러워했고, 답을 듣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굉장히 생소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매력적이었다.
희경은 인터넷 소설을 많이 읽는다. 공부로 가득 찬 삶의 오아시스라고 해야 할까.
그런 소설의 전형적인 캐릭터 중 불량아 타입이 있다. 그리고 불량아는 언제나 여주인공에게 길들여진다.
야생마 같던 불량아가 모종의 계기로 온순하게 변화하는 그 과정은 희경에게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주었다.
“도와줄까?”
“뭐?”
희경은 상상 속으로 그려왔던 수많은 ‘반휘혈’들에게 사과했다.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성필은 소설 속 캐릭터와 비슷했다.
비록 희경이 상상했던 캐릭터들처럼 예술가들이 시행착오 끝에 찾아낸 인간으로 빚은 황금률.
부러질 듯 얇은 선의 고운 턱.
장인이 혼신을 기울여 세공해낸 유리 공예품.
한겨울에만 피어나는 얼음꽃.
그런 외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슷하긴 했다.
현실과 타협한 ‘반휘혈’이라고 해야 할까. 이상적이진 않지만 어느 정도 잘생겼고, 어느 정도 몸이 좋고, 성격은 그냥 빼다 박은 불량아다.
‘아니, 이젠 개과천선의 의지가 보이는 불량아지.’
희경은 자신과 영원히 접점이 없을 타입의 인물인 성필과, 한 번 관계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내가 도와줄까?”
“지랄.”
성필은 픽 웃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희경은 생각했다.
그녀가 읽은 인터넷 소설의 여주인공이었다면.
‘쟤 뭐야~ 완전 밥맛이닼 ―_―;;’
그렇게 마음속으로 말한 줄 알았지만, 실은 입 밖으로 낸 거여서 그걸 들은 성필이.
‘뭐? 감히 전국 일진 서열 0위인 내게 뭐라고 한 거지?’
라고 할 테지만, 현실은 소설이 아니었다.
희경은 그냥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야.”
그때였다.
성필이 그녀의 맞은편에 예고도 없이 앉았다.
“이건 뭔 뜻인데.”
사춘기 희경이 남몰래 새어 나오려는 얇은 목소리를 삼켰다.
‘이거지…….’
한 번 튕기는 게 진짜거든…….
* * *
“마이클 잭슨은.”
발표하려 교실 앞에 선 성필은 떨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몸까지.
누가 보아도 웃긴 모습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절대 웃지 않았다. 이빨이라도 보인다면 뭔 짓을 당할지 몰랐다.
물론 성필은 시비 거는 놈들과만 주먹다짐을 했었지만, 사람을 팬단 것 자체가 보통 학생들에겐 두려운 것이었다.
“그, ‘스릴러’ 앨범을 준비합, 합니다.”
성필은 발표하면서 허은설의 눈치를 보았다.
교탁 옆에 앉은 그녀는 성필과 눈이 맞자 힘내란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성필은 눈을 질끈 감고 발표를 이어갔다.
“마이클 잭슨이, 주변 사람들한테 마, 말하고 다녔던 게,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을 만들, 만들 거라고. 다들 비웃, 비웃었지만.”
성필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적어도 그 사고를 당한 이후로는 말이다.
불편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무엇보다 창피하다.
하지만 성필은 알았다.
진짜 창피란, 이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는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모두, 비웃었지만, 마이클 잭슨은, 해냅니다. ‘스릴러’는…….”
성필은 힘겹게 눈을 떴다.
“판매량 6,000만 장 이상으로, 현재 세상에서 가장 많이, 많이 팔린 앨범이 됐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팝의 황제…….”
대중문화계에 만연해 있던 흑백 인종 장벽을 무너뜨린 역사상 전무후무한 아티스트.
MTV의 개국과 함께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연 선구자.
댄스가수를 하나의 예술 양식으로 확립시킨 엔터테이너.
예술가.
“위인, 입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발표가 끝났다.
성필은 힘이 탁 풀려서 깊은숨을 뱉었다.
그가 허은설을 보았다. 허은설은 아까보다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자, 다들 박수!”
끝을 알리는 박수가 휘몰아쳤다.
성필은 침을 꼴깍 삼켰다.
처음이다.
이 학교에서 박수를 받은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성필에겐 대사건이었지만 학교 내에선 특별할 것도 없는 일과가 끝을 맺었다.
‘역사 인물 탐구부’는 이전처럼 세 번째 활동으로 들어가야 했다. 학생들은 또 발표 주제를 정하고, 조사하고, 대충 행해지는 발표로 시간을 때울 것이었다.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음 우리 팀이 조사할 인물은 그럼 ‘람세스 2세’네. 우혁이는 문화.”
“어.”
“상연이는 전쟁.”
“응.”
“그리고.”
팀장인 희경은 성필을 바라보았다.
“성필이는 람세스 2세의 개인사, 이렇게 맞지?”
성필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창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알겠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건 성필이 동아리 팀 활동에 참여하게 됐단 것이었다.
비록 팀 활동 시간에도 창문을 보고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래도 옛날처럼 아예 방기하지는 않았다.
성필은 창문을 보았다.
창문에 비친 허은설을 보았다.
직접 보기엔 너무 눈부신 사람이어서.
“…….”
성필은 주머니 안에 든 MP3를 꼭 쥐었다.
‘졸업하면…….’
졸업하면,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허은설이 받아들여 줄까?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인간이다. 학생임에도 공부도 못하고, 졸업한 후에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이런 자신에 비하면, 허은설이란 인간은 얼마나 눈부신지.
‘……만약, 내가 대학에 간다면.’
미래가 보장되는 대학에 간다면, 허은설의 마음이 조금은 움직일까?
그런 대학은 어디일까.
성필이 떠올린 곳은 사범대였다. 교사를 양성하는 곳이다.
사범대. 이름만 들어도 위엄이 느껴진다.
‘그래, 그러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사범대에 가자.
교사가 되자.
사범대에 합격하면 이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6개월 후 허은설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허은설이 담임을 맡은 2학년 반이 결혼식에 가서 축하해주었다는 모양이다.
성필은 1학년에다 그녀의 반도 아니라 따로 가서 축하해주진 못했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성필의 마음은 ‘전하지 못한 진심’으로 남았다.
공부는,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