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605화 (605/760)

605화

“그니까, 형은 애들을 볼 때마다…….”

윤상열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어릴 때 만화 좀 봤냐?”

“아니.”

“배틀 만화에 가끔 나오는 캐릭터가 있는데, 전투로 흥분하고 그러거든.”

성필도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었다. 리카가 추천해준 ‘웨스턴 불렛’의 적 중 한 명이다.

그 적은 주인공인 시세리를 거의 스토킹하다시피 하는데, 시세리가 강해지는 걸 볼 때마다 사타구니 쪽으로 강렬한 강조선이 생긴다.

참고로 여자 캐릭터다.

“이해가 되나?”

“더 미친놈 같은데.”

“보통 인간들은 그런 캐릭터의 모습을 개그적인 요소로 받아들이지. 하지만 인간이 지니는 에로스를 잘 구현해낸 거다.”

‘에로스’는 대중문화에서 ‘에로’란 단어로 남용되어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충 야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에로스는 삶의 본능을 뜻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자 창조적 열망의 근원.

20세기의 시작을 알린 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규명한 개념이다.

“스포츠 선수가 골을 넣거나 학자가 염원하던 발견을 해냈을 때도 성적 충동이 흔히 발생한다. 못 배워먹은 인간들은 들어본 적도 없겠지만.”

저 ‘못 배워먹은 인간’이란 성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전생에서도 그렇고, 윤상열은 성필이 고졸이란 이유로 무시했었다.

성필이 학벌에 열등감을 지니게 된 이유였다.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은 쉽게 열등감으로 변질되곤 하니까.

그런데.

‘별로 화가 안 나네.’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성필이 프로듀서로서 윤상열보다 높은 업적을 쌓았기 때문이다.

즉, 서로의 주요 분야에서 성필이 이겼으니 학벌 같은 걸로 열등감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한 성취를 해 본 적 없는 인간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충동이 헐벗은 여자를 볼 때나 생긴다고 생각할 뿐이지.”

“글쎄, 난 성취를 이뤄내도 성적 충동이 생기진 않던데.”

윤상열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방금 성필의 말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성필의 프로듀싱이 윤상열을 넘어서는 업적을 이뤄서도, 그가 말한 충동 따윈 없단 뜻이니까.

성필이 은유적으로 ‘네가 나보다 밑이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

윤상열은 한숨처럼 옅게 웃었다.

“그럼 심각한데?”

“뭐가?”

“넌 창조적 욕구의 성취가 아니고서 아이돌에게 리비도를 느꼈단 거니까?”

이번엔 성필의 얼굴이 굳었다.

“이런 질문을 한 거 보니, 그런 일이 있던 거지? 그런데 내가 말한 에로스적인 승화 욕구는 아니었던 거고. 말 그대로 꼴렸다, 는 거 아니야? 천박한 새끼.”

성필은 할 말이 없었다. 구구절절하게 ‘약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건 너무 구차하지 않은가.

윤상열이 믿어줄지도 의문이고.

“드디어 사람답게 느껴지네.”

문득 윤상열이 그리 말했다.

“뭐?”

“넌 옛날부터 그게 마음에 안 들었어. 아이돌을 무슨 신처럼 생각하는 거. 오라클에 오른 무녀를 바라보듯 선망하는 거. 아이돌이 신성한 뭐라도 된단 듯이…….”

성필은 아이돌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윤상열의 비유는 그런 뜻이었다.

“아이돌은…….”

성필이 반박했다.

“그래, 신성(神聖)하다고까진 생각 안 하지만. 그래도 스타잖아. 대중문화의 총아야. 거리감을 두고 생각하는 게 뭐 어때서? 그럼 형은 아이돌을 뭘로 보는데?”

“신성하게 보여야 할 무언가. 아이콘, 우상이지.”

“……나랑 똑같은 거 아니야?”

“만드는 사람은 달라야 한단 뜻이다. 아이돌의 무대 뒤를 볼 수 있는 인간이, 아이돌을 우상화하는 건 끔찍한 일이야. 난 말야, 너를 볼 때마다 역겹다고 생각했어.”

성필은 갑자기 튀어나온 욕설에 당황했다.

‘못 배워먹은 사람’은 돌려서 까는 거기라도 했지, ‘역겹다’는 그냥 성필에게 퍼부은 욕설 아닌가.

꺼지란 뜻인가?

“인간의 에로스가 억눌리면 뭐가 생기는지 알아? 집착, 콤플렉스, 신경증, 인간을 갉아먹는 온갖 정신병이 창궐하지. 그런 상태에서 인간은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그 억압을 해소하려고 해.”

“올바른 방법은 뭔데?”

“내가 말해야 아나?”

짐작은 간다.

에로스를 해소할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간단하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상대와 몸 하나만 남긴 채 마주보는 행위를 하면 된다.

“그리고 에로스를 해소하는 올바르지 않은 방법의 가장 대표적인 통로가 뭐냐면.”

윤상열은 성필에게 가장 소중한 단어를 꺼냈다.

“꿈이다.”

“…….”

“내가 어떻게 널 안 역겨워할 수 있겠냐? 아이돌을 숭배하는 네 뱃속엔 얼마나 끔찍한 욕구들이 휘몰아치고 있을까? 대체 그걸 억누르는 게 뭘까? 뭐, 그것까지 내가 알 필요는 없다만.”

윤상열이 검지로 성필을 가리켰다.

“네가 물었지. 아이돌을 보고 리비도를 느낀 적 있냐고. 내가 당연하다고 했을 때 넌 ‘뭐 이런 미친 새끼가 있지’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엔 네가 더 미친놈이야. 원초적인 욕망을 억누르고 비틀어 꾸역꾸역 꿈이라는 숭고한 단어로 만들면서까지, 대체 뭘 쥐려고 하는 거냐? 그딴 정신으로 어떻게 사람 흉내를 내지? 넌 위선적인 놈들이 ‘나 고귀한 놈이요’ 떠벌리고 다니는 거랑 달라. 진짜 ‘고귀한’.”

윤상열이 검지와 중지를 까딱였다. 큰따옴표를 뜻하는 강조의 제스처다. 이 경우엔 단순한 강조가 아니라 비꼬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유학한 그는 이런 제스처를 곧잘 쓰곤 했다.

“정신상태를 가졌으니까. 정신병 수준의 믿음이지. 그런 네가 아이돌을 보고 충동을 느꼈다면.”

윤상열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변한 거지. 그렇지. 그 대상이 된 아이돌은 불쌍하기 그지없다만.”

“…….”

성필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았다.

“형, 이미 알겠지만, 형이 자랑스럽게 떠드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당대에 제자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비판받았어. 현대에 와선 임상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있단 게 밝혀졌고.”

“그래서? 너란 인간을 해석하는 덴 가장 잘 어울리는 이론 아닌가?”

“아이돌을 우상화하는 내가 정신병자면, 형은 뭔데? 형은 뭘 바라기에 애들을 그렇게 학대하는데? 애들이 도망갈 정도로 몰아붙이는 건데?”

성필은 양소민을 떠올리며 물었다.

솔직히, 성필은 석세스 엔터를 나설 때 윤상열이 이런 인간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전생의 윤상열은 연습생이나 아이돌을 막 대하지 않았었다.

아이돌을 혼내고 몰아붙이는 역할은 오히려 성필의 것이었다. 윤상열은 작업 때의 편집증적인 반응만 제외하면, 아이돌들에게 평판이 좋았다.

“내 바람은.”

윤상열은 쉽게 답했다.

“KS 엔터로 돌아가는 거다.”

“…….”

성필은 그의 답을 확실하게 들었다. 그러나 도저히 믿기가 힘들어서 다시 물었다.

“KS 엔터로……?”

“그래. 하지만 그건 궁극적인 지향점일 뿐, 구체적인 목표는 아니지. 지향점을 향한 목표는, 일단 글로브가 최고가 되어야겠지.”

“형의 꿈을 위해서…… 애들을 학대한다고?”

“아니, 내 꿈만이 아니지. 그 애들이 아이돌이 됐을 때, 걔들은 그럭저럭 인지도 있는 아이돌을 바랐을까? 아니지, 절대 아니지. 하나같이 최고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란 무뎌지기 마련이거든.”

‘되고 싶다’가 ‘되면 좋겠다’로, ‘될 수 있을까’에서 ‘못 된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넌 인간의 진심이 언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독립운동가가 태극기를 향해 ‘대한독립을 위하여 제 한 목숨 다 바친다’라고 했을 때인가. 아니면 일제 순경에게 고문받으면서 ‘안 해! 그만할게! 일제 만세!’라고 할 때인가. 어느 쪽이 그 인간의 진심이지?”

“…….”

“인간이 가장 이성적인 상태일 때지, 물론. 환경에 억압받으면서 내리는 결정이 진정으로 그 인간의 꿈일 가능성은 없어. 나는.”

윤상열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찬바람에 움츠린 꽃봉오리를 피우는 정원사다. 겨울에 속살을 드러낸 꽃은 정원사를 원망하겠지. 얼마든지 하라고 그래라. 그 순간 피워낸 아름다움이 남은 인생을 지탱할 유일한 힘이란 걸 깨달을 때가 언젠간 올 테니까.”

윤상열은 성필의 꿈을 정신병이라고 했다. 스스로 그 꿈을 진심을 다해 섬기고 믿으니 질이 더 나쁘다고.

성필도 윤상열을 그렇게 보았다.

그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더 높은 이상을 내걸고 그 죄를 합리화한다.

답을 안다고 믿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한다. 그 답으로 향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죄든 짊어질 수 있으니까.

‘내가 답을 안다’라고 믿었던 역사의 독재자들이 벌였던 짓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답을 알기에,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안다고 생각했기에,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을 거리낌 없이 죽였었다.

“나는…….”

윤상열은 허공을 바라보았다. 성필로부터 약간 비켜난 시선은 그의 꿈을 보고 있었다.

“꽃을 피우고 싶어.”

에로스.

삶의 본능.

이상적인 아이돌에게 느낄 에로스적 충동은, 그야말로 침대 위에 올라온 애인을 보는 듯할 것이다. 필요한 건 오로지 서로의 몸뿐인 순간 말이다.

인류 문명이 세운 장엄한 마천루와 세심한 시스템, 복잡한 규칙이 모두 무너지는 순간.

자본주의가 붙인 가치 기준과 가격표가 사라지고, 오직 인간이 지닌 고유한 아우라만 남는 순간.

시스템이 만들어낸 가치를 추월하고, 그들이 지닌 젊음의 힘과 몸만이 무대 위의 유일한 명예가 되는 찰나의 빛.

인간이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사랑받는 모습.

윤상열은 그런 아이돌을 바라고 있다.

다키스트처럼, 만인을 매혹하는 빛을.

“그런데…….”

흐려졌던 윤상열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았다.

“그것도 이제 끝났지. 지유 그년이 다 망쳤어.”

글로브는 끝났다.

“아이돌은 수명이 있어. 그 수명 이내에 어느 경지에 닿아야 해. 끊임없는 노력으로만 닿을 수 있는 어느 곳에.”

“망친 게 아니야.”

“……뭐라고?”

“원래 그랬어야 하는 거지. 휴식도 보장해주지 않고 연습만 시키는 게, 진짜 글로브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어?”

“넌 못 봤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겠지.”

“누굴?”

“다키스트.”

윤상열은 KS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였었다. 그는 다키스트의 탄생과 성장, 발전, 완성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다.

그가 아는 한, 최고의 아이돌을 탄생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끝없이 몰아붙이는 것뿐이었다.

게을러질 틈도 주지 않고 오로지 정상을 향해 달리게 만든다.

“꿈이 고작 서울대인 인간들도 하루 십수 시간을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는데. 최고의 아이돌이 꿈인 이들이 그보다 적게 노력해서야 되겠냐?”

“춤이랑 노래는 공부보다 에너지 소모가 훨씬 커.”

“이야기가 빙빙 도는군. 말꼬리나 잡고 있고.”

윤상열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드링크를 하나 더 꺼내어 마셨다.

“이런 얘기를 누구랑 나누는 건 오랜만이긴 하네.”

“내가 나가니까 아는 척할 사람이 없지? 다 고개 숙이기 바쁘니까.”

“내 생각에 토를 다는 모지리가 더는 이 회사엔 없단 거지.”

윤상열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아닌가, 이젠…….”

대화가 끊겼다.

성필이 이어갔다.

“형. 그 얘긴 들었어?”

“뭘?”

“김 대표님한테 한 얘긴데.”

윤상열은 또 비웃었다. 성필이 김태훈을 ‘김 대표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가로 엔터가 석세스 엔터를 삼킬 거야.”

하지만 이 말을 듣고도 윤상열이 비웃을 순 없었다.

“……아. 그래서? 그래서 이음 엔터랑 옐로 서브마린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거군. 소녀연맹 원툴로는 매출 상승에 한계가 있으니까.”

“뭐, 소녀연맹 하나만 해도 곧 석세스 엔터 정도는 삼킬 수 있겠지만. 그래도 빠르면 좋잖아.”

“처음 듣는군.”

김태훈은 윤상열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듯했다. 무시했다기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괜히 떠벌리지 않은 듯했다.

“말해주지 않은 이유도 알겠고. 석세스 엔터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도 모르나 보지?”

“커졌지.”

전생에 성필이 있었을 때보다야 못하지만.

“근데, 곧이야.”

“넌 정호환이 아니야. 대형, 중견 기획사 프로듀서들도 연이은 성공을 만드는 건 힘들어. 가로 엔터는 늪에 빠질 거다.”

“몇 년 뒤에 여기서 쫓겨날 때도 같은 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래.”

윤상열은 다시 성필의 앞에 와 앉았다.

그는 아까보다 훨씬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러든가 말든가…….”

성필의 말이 실현될 가능성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게 뻔히 보였다. 아니면, 이제 석세스 엔터가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든가.

‘윤상열이 그랬지. 글로브는 끝이라고.’

꽃봉오리를 억지로 피우려던 정원사는, 이제 자신만의 화원에서 쫓겨났다. 더는 미련을 갖지 않을 만도 하다.

윤상열은 맥없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소녀연맹 하나 성공시켰다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네. 구질구질하게 수명 유지하면서 버틸 때가 올 거다. 넌 그저 그런 인간들처럼 그 지점에서 떨어져 나가겠지.”

엔테계에서 흔히 하는 소리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라고.

구차하게 연명하며 하루하루 비참하게 보내는 것 같더라도, 버티고 버티는 게 결국 이기는 길이라고.

대부분은 구차한 자신을 인식한 순간 이 업계에서 도망가버린다.

윤상열은 성필도 그리되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프로듀서로서 단물만 먹다가 실패 한 번 하면, 멘탈이 갈가리 찢겨 도망가리라고 말이다.

“형이 지금 그 지점에 있어서 그런지 말 하나하나가 뼈에 사무치게 설득력 있네.”

“…….”

“아까 지유 때문에 글로브가 망했다고 했지. 그럼 이젠 손 뗄 거야? 완전히?”

“네가 위약금 다 물어주고 가로 엔터로 데려가기라도 하려는 거냐? 제정신이 아니군.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고.”

윤상열은 남은 드링크를 한입에 다 비웠다.

“망했지. 근데 내가 어쩌고 할 것도 없다. 내가 손을 떼는 게 아니야. 손이 떼진 거지. 어차피 글로브는…….”

그때였다.

작업실 문이 벌컥 열렸다.

“윤 피디!”

노아가 나타났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임시 동맹이다!”

* * *

“바, 박 팀장 조금만 더 있다 가라요…….”

노아는 윤상열의 눈치를 보면서 성필을 잡았다.

“형한테 할 말 있어서 온 거 아니야? 내가 있으면 방해잖아.”

“여기서 박 팀장이 가버리면 난 개처럼 처맞을 거요!”

“윤상열 너 애들을 때려?!”

윤상열은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성필은 노아를 보았다.

“말이 그렇단 거예요. 그런데 박 팀장 여기 왜 온…… 아!”

노아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해맑게 웃었다.

“팀장님 도시탄데스카(어쩐 일이세요)?”

그녀가 일본어를 쓰기 시작했다. 성필은 살짝 당황했지만 금방 그녀에게 맞춰주었다.

둘은 일본어로 대화했다.

“아까 했던 말대로야. 얼굴 보러 왔어.”

“윤 피디님 얼굴만? 저희는요?”

“면목이 없지.”

“물밑의 이야기라던가? 없나요?”

“없어. 정말 그게 다야.”

옛날에 그녀가 일본어 쓰는 걸 처음 들었을 때도 그렇지만, 참으로 부드러운 말투와 어조다.

한국어를 쓸 때와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나중엔 더 좋은 상황에서 볼 수도 있겠지. 이 인간이 괴롭히는 건 어때? 나아졌어?”

“덕분에요.”

“연습하면서 배달 음식은?”

노아가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에겐 당시의 사건이 아직도 트라우마인 듯하다.

성필은 격려의 의미로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곤 문으로 향했다.

“갈게.”

“잘 가라십쇼 박 팀장.”

윤상열은 잘 가라는 인사도, 배웅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성필이 작업실에서 떠나갔다.

노아는 쭈뼛쭈뼛 윤상열에게로 몸을 돌렸다.

“임시 동맹이다!”

윤상열은 피곤한 듯 눈가를 마사지했다.

“프로듀싱 2부 부장님 계획이 마음에 안 드나 보지?”

“그렇다! 몽환 청순은 너무하잖아요!”

몽환이니 청순이니, 3세대에 이르러선 중소 걸그룹들이 틈새를 노려서 사용하던 컨셉들이다.

여성의 전형적, 고전적 이미지인 신성함과 순수함을 부각한 것. 그렇기에 익숙하지만 진부하다.

“나한테 따져 봤자다. 오히려 기뻐해야지. 너희들이 그토록 바라던 상황이 이거니까. 나한테서 벗어나 성인다운 여유를 누리고, 연예인다운 대접을 받는 거. 살판났겠지.”

윤상열이 비꼬자 노아의 기세가 죽었다.

“네가 뭐라고 하든, 이젠 우린 끝난 거야. 글로브는 내 손을 떠났다.”

문자 그대로, 글로브가 떠난 것이다.

글로브 멤버들은 윤상열에게 당한 게 있으니, 절대 엘릭 대신 그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윤상열의 정원 가꾸기는 꿈으로 막을 내렸다.

그의 꿈은 시대착오적이고 강압적이었다.

아이돌의 인권이 한없이 낮았던 과거였다면, 아이돌들이 입을 꾹 다물며 불합리를 감내했던 과거였다면 가능했을 방법이었다.

애초에 글로브는 더는 입 다물고 있을 위치도 아니었다.

연예계의 섭리는 윤상열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명하지 않을 땐 기획자가 갑, 연예인이 을. 유명해졌을 땐 연예인이 갑, 기획자가 을.

오히려 글로브가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참은 게 용하다고 봐야 했다.

“윤 피디는.”

노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우리를 못살게 구는 겁니까?”

“‘굴었던’.”

“굴었던 겁니까?”

“최고로 만들어야 했으니까.”

“케이어스처럼?”

윤상열이 코웃음 쳤다.

“케이어스? 대단하지만 내 눈 한참 아래지. 난 다키스트를 바랐다.”

“다키스트는 초동 10만 장 밖에 못 찍었다. 의상도 구리다.”

“죽고 싶나? 내가 다키스트의 보조 프로듀서였다.”

“앗.”

윤상열은 노아가 다키스트를 욕하는 걸 듣고도 별로 화나지 않았다.

그는 노아의 지능이 낮음을 확신했다. 지능이 낮은 인간이 지능 낮은 말을 하는 게 뭐 그리 잘못일까.

지능 낮은 노아는 연대기 파악력은 물론 역사적 탐구력, 판단력(역사적 사고력의 하위 구성요소)이 부족할 것이다.

과거의 것을 보면 그걸 과거의 시점에서 보지 않고 현대와 비교하여 ‘이게 뭐가 대단함?’이라고 하고 있으니.

시간을 인식하는 능력 자체가 부족하니, 현재만이 기준이다. 아마 노아는 현재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이며 영원불멸할 거라고 믿는, 그런 저능아겠지.

노아 같은 인간이 나중에 늙어서 ‘옛날엔 안 이랬는데 쯧쯧!’ 같은 말이나 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시간의 변화란 걸 인식할 지능이 없으니, 인간도 사회도 모든 게 변한단 걸 모른다.

하루만 지나도 사람이 바뀐다는데, 모든 게 그대로라고만 생각한다. 그렇기에 바뀐 걸 못 받아들이고 ‘이상하다’라고만 하는 것이다.

이런 저지능자도 민주주의에서 한 표를 얻다니, 정말로 끔찍하다.

“아무튼 엘릭은 아니야! 뭔가, 빛이 안 느껴져다!”

“빛?”

“윤 피디의 곡엔 시대를 밝히는 빛 같은 게 느껴졌어. 근데 엘릭은 아니요.”

윤상열은 노아에 대한 평가를 180도 바꾸었다.

인간의 지능은 한 가지 측면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사람들은 IQ가 지능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그건 수리, 언어적 능력만을 판단한다.

지능의 정의는 다양하다.

분류도 다양하다.

윤상열은 잘은 알 수 없었지만, 노아는 인지적 능력이 부족할 뿐 다른 지능은 높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렇듯 인간의 개성과 능력은 다양하기에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윤상열은 노아에게도 1표를 주어도 괜찮다고 여겼다.

참고로 노아가 말하는 시대의 빛이란 아방가르드를 뜻했다. 무슨 뜻이냐면, 난해해서 이해가 안 된단 뜻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이상했는데 듣다 보니 좋았어요. 사람들 반응이 좋아요. 설명이 더 필요한가! 윤 피디는 성격이 안 좋지만 뭔가가 있어! 능력이!”

노아 이 녀석, 설마 엄청난 고지능자가 아닐까?

그때, 잠깐 희망을 품었던 윤상열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그딴 입에 발린 말을 해봤자 아무것도 안 바뀌어.”

“윤 피디는 우리한테 바라는 게 뭔가. 개처럼 연습하는 거?”

“……아이돌은 노래, 춤, 비주얼, 연기, 건강, 소셜미디어, 소통, 모든 분야에 몰두해야 한다. 치열한 삶이 기본이지. 그 모든 걸 완벽하게 하려면 자력으론 부족해. 통제가 필요하다. 독학이 쉽다면 재수학원이 왜 있겠나. 너희의 꼴만 봐도 알 수 있지. 지유 그년이 난리 친 이후 한껏 늘어진 빨랫감처럼 여유롭게 지내고 있으니.”

“윤 피디는 왜 노예제가 사라졌는지 압니까?”

“뭐?”

“노예제가 안 윤리적인 게 첫 번째지만, 돈 주고 쓰는 게 더 효율적이라서다. 강제 노동보다 자발 노동이 더 효율적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윤 피디에겐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노아가 눈을 빛냈다.

“우리한테 협조를 구해요.”

“뭐? 무릎 꿇고 빌라고?”

“박 팀장이랑 같다. 따뜻할 땐 따뜻하면 된다.”

“그게 될…….”

“그래서 포기할 거예요?”

“……포기?”

“윤 피디는 강약약강이다. 우리한텐 여포면서 대표한텐 바로 꼬리 내렸어요. 토사구팽에 익숙하다. KS 엔터에서도 이랬다?”

윤상열은 허파가 뒤집히는 듯했다.

노아는 그의 역린을 건드렸다.

KS 엔터 시절의 일이다.

토사구팽에 익숙해? KS 엔터에서도 이랬냐고?

포기해? 강약약강?

윤상열은 자기도 모르게 손이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 충동을 순식간에 억눌렀다. 그는 눈을 감고 초단기 명상을 시작했다.

‘그때를 떠올려라.’

윤상열은 대학생이던 시절, 휴학하고 티베트 수도원 명상 공동체에 단기 출가한 경험이 있었다.

6개월 동안 머리를 깎고 수도사의 삶을 살았다.

거기에선 밥그릇의 밥알을 하나하나씩 꼭꼭 씹어 먹어야 했다. 식사 시간만 1시간을 훌쩍 넘는다.

‘마음 챙김’이란 이름의 고문이었다.

그런 고문까지 버텨냈던 윤상열은, 간신히 노아에게 욕하려는 충동을 지울 수 있었다.

만약 티베트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쯤 노아의 꼴이 어땠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내가 윤 피디를 도와요! 임시 동맹이다!”

“……확신하나? 글로브가 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존재하나?”

“확신한다. 원래 성격 더러운 사람이 한번 잘해주면 효과 더 좋아요. 나쁜 남자 작전이에요. 그럼?”

노아가 손을 내밀었다.

“동맹?”

윤상열은 손을 잡는 대신 고민했다.

‘왜 너희한테 못살게 굴었냐, 그렇게 물었었지.’

그게 최고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으니까.

정호환이 버렸던 그 방법을, 윤상열은 보존하고자 했다. 그것만이 최고를 만들어낼 유일한 빛이었다.

실제로, 정호환이 이끄는 KS 엔터는 3세대에서 다른 대형 기획사들에게 왕좌를 넘겨주었었다.

정호환은 틀렸다.

윤상열 자신은 맞았다.

‘그런데.’

옳다고 믿었던 방법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윤상열은 여전히 최고를 바란다. 그런데, 최고를 만들고 어쩌고 하기도 전에 담당 그룹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부차는 가시 장작 위에서 자며 복수의 칼날을 갈았었다. 구천은 쓸개즙을 핥으며 복수할 때를 기다렸다.’

그 유명한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윤상열은 노아의 손을 잡았다.

“임시 동맹이다.”

내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딴 연기 따위는 얼마든지 해주마.

* * *

엘릭의 앨범 계획 프레젠테이션 이후엔 윤상열의 차례였다.

오전은 엘릭이고, 오후인 현재는 윤상열.

그리고 방금 윤상열의 프레젠테이션도 끝났다. 윤상열이 회의실을 나가자마자 양소민이 입을 틀어막았다.

“우욱!”

토할 것 같아서.

지유는 한술 더 떴다.

“역겨워서 죽을 뻔했네.”

윤상열은 들어오자마자 멤버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고, 프레젠테이션 내내 따스한 말투를 썼었다.

정진은 참았던 웃음을 세차게 터뜨렸다.

“윤상열 이 새끼 X나 웃기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노아만이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윤 피디, 미안하다. 윤 피디의 쓰레기 같은 이미지를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다…….’

임시 동맹, 성립 직후 파탄 위기.

* * *

성필이 휴가를 떠난 후, 백설하는 매일 그에게 짧은 톡을 보내왔다.

[이사님 좋은 하루 시작하셨나요? 저희는 방금 회사 도착해서 개인 트레이닝 받으려고 해요.]

이러면 성필도 비슷한 정성을 들인 답을 보내주었다.

[난 방금 일어났어. 혼자 쉬어서 미안하네. 모두에게 중요한 시기인데. 설하는 오늘 기분 어때?]

[좋아요. 이사님은요?]

[나도 괜찮아. 건강은 괜찮지?]

[네.]

그렇게 어색한 대화를 조금 나누다가, 서로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며 톡을 끝내곤 했다.

옛날과 비교하면 딱딱하기까지 한 분위기였지만, 백설하는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그래도 성필이 아예 무시하진 않는구나 싶어서.

“하양 언니 어딨어요?”

하지만 오늘 아침은 일이 있어서 성필에게 빨리 연락하지 못했다.

무려 장하양이 외박한 것이었다.

백설하는 혼비백산하여 장하양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다. 전화를 해도, 문자를 보내도 답이 오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곳은 의외로 에리카에게서였다.

[하양 언니 저희 숙소에서 주무셨어요.]

“아, 그래? 하양이는 괜찮아?”

다분히 진소유를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소녀연맹 멤버들은 진소유가 장하양에게 향하는 지극정성을 오래도 보아왔다.

걱정됐다.

[괜찮냐구요?]

에리카가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는 무슨 질문이 그래요? 저희가 하양 언니를 어떻게 했을까 봐요? ‘와, 경쟁자가 찾아왔네. 이 기회에 골탕 먹이자’라고 할 린 없잖아요.]

“그으, 그렇지이…….”

[진저가 의외로 하양 언니랑 죽이 잘 맞더라구요. 둘이 술 마시다가 의자매 맺고 같이 뻗어 있어요.]

“하양이가? 진저 씨랑?”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대체 둘에게 무슨 공통점이 있었기에 의자매까지 맺었다고 하는 걸까?

[하양 언니 깨워서 전화 바꿔드릴까요?]

“아니야. 일어나면 나한테 전화해달라고 말 좀 해줄래?”

[네.]

“……저, 혹시 소유 씨는?”

[소유요? 아련하게 진저네 방을 훔쳐보고 있다고만 말씀드릴게요.]

대충 알겠다.

전화를 마친 백설하는 안심했다. 소중한 동생에게 큰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원래라면 리더인 백설하가 장하양을 신경 썼어야 했지만, 어젠 그럴 정신이 없었으니 말이다.

백설하는 뒤늦게 매일의 일과가 된 성필에게 톡 보내기를 수행했다.

평소처럼 평범한 인사와 함께 그의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갔다.

“쌤 어디 아프신가요!”

연습실에 앉아 다리를 떨고 있자니 리카가 다가와 걱정해주었다.

걱정할 만했다.

백설하는 아픈 사람처럼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소화불량에라도 걸린 것처럼 복부가 아팠다.

“아, 아니야. 괜찮아.”

백설하가 핼쑥해져선 억지로 웃어 보였다.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상비약 가져올게요!”

“괜찮…….”

리카는 백설하가 괜찮다고 해도 연습실을 뛰쳐나갔다. 백설하는 리카를 말리려 뻗은 손을 천천히 떨어뜨렸다.

백설하는 다시 폰을 열었다.

성필과의 톡방에서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안 읽씹인가? 아니면 아직 안 일어나신 건가?’

그렇지, 안 일어나신 거겠지.

휴가잖아.

늦잠 정도야 얼마든지…….

그때였다.

백설하는 어제 보았던 박수련과 성필의 예능 영상을 떠올렸다.

어쩌면, 설마, 혹시…….

‘KS 엔터에 예능 촬영을 간 김에, 이직을 고민하고 계신 거…….’

…….

‘에이, 설마.’

백설하는 성필을 믿었다.

그가 가로 엔터에 들인 마음을 믿었다.

비록 요즘 사이가 껄끄러워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성필이 회사를 옮기겠는가?

옛날에도 비슷한 오해를 해서 창피를 당했었다. 자신은 성장하는 아이(26세)이기에,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는다.

그래, 백설하는 성필을 믿는다.

믿어.

믿고 있어…….

‘그럼 왜…….’

낮이 되도록 연락이 없을까.

늦잠을 잘 이유가…….

‘…….’

박수련과 성필이 영상에서 보였던 케미가 떠오른다.

백설하의 눈썹이 자기도 모르게 음울한 곡선을 그리면서 떨어졌다.

‘설마아…….’

* * *

영혼의 지도, 세 번째 목적지.

이번에도 사람이었다.

성필이 아침 일찍 찾은 곳은 한적한 카페였다. 막 오픈하여 사장이 바닥을 대걸레로 닦는 중이었다.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메뉴를 시킨 후, 성필은 구석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30분 후, 약속한 상대가 도착했다.

성필은 상대가 보이자마자 벌떡 일어나 마중하러 뛰어갔다.

“선생님!”

“이야, 성필아!”

상대는 50대의 여성, 허은설이었다. 그녀가 웃자 인자함이 새겨진 듯한 주름이 곱게 잡혔다.

성필은 반가움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옛날과 비교해서 많이 마른 게 느껴졌다.

“오랜만이다 야!”

그녀는 늙었으나, 목소리만은 성필이 학생일 때와 똑같았다.

학생들이 ‘기차 엔진을 삶아 먹은 것 같다’라고 표현했었던 우렁찬 목소리다.

“잘 지냈고?”

“네, 덕분에요. 뭐 드실래요?”

“성필이가 사주는 거야?”

“네, 얼마든지요.”

성필은 고교 시절의 은사를 성심성의껏 에스코트했다.

* * *

새 학기, ‘역사 인물 탐구부’ 동아리의 두 번째 만남.

각자 조사해오기로 한 위인을 말했다.

각 반에서 모인 학생들이 적당히 ‘이순신’이나 ‘세종대왕’ 혹은 ‘김유신’ 등을 말했다. 해외의 인물로는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 등이 많았다.

모두 유명하고 역사 시간에 배우기도 한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어디 보자, 박성필. 성필이?”

동아리 담당 교사가 성필을 불렀다. 그와 같은 반인 우혁, 상연, 희경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첫 번째 동아리 활동 때, 희경은 용기를 내어 성필을 활동에 참여시키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당연하게도 실패했다.

성필은 팀원임에도 활동하지 않았고, 동아리 활동을 와서도 대충 멍이나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담당 교사는 아예 성필에게만 따로 과제를 주기로 했다. 팀으로 묶어봤자 활동을 안 할 테니까.

“조사하고 싶은 인물은 생각해왔어?”

가장 뒷자리에 불량스럽게 앉아 있던 성필은 허공을 바라보다가, 픽 웃으면서 답했다.

“마이클 잭슨이요.”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옛 팀원이었던 세 사람은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다른 반의 학생들도 ‘애미 애비 없는 새끼’인 성필의 소문을 들었기에, 괜히 그와 엮이기 싫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이클 잭슨?”

교사가 되물었다.

“네.”

성필은 교사를 향해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교사도 같이 웃었다.

“좋은데? 그럼 성필이는 마이클 잭슨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의자에 불량스럽게 기대어 있던 성필. 그는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책상을 짚었다. 그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네?”

그가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러자 교사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마이클 잭슨, 맞지?”

‘역사 인물 탐구부’ 담당 교사, 허은설.

성필의 첫사랑.

아니, 성필의 첫 짝사랑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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