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94화 (594/760)

594화

김민주가 가져온 안무는, 신아름이 생각하기에 그다지 어려운 축은 아니었다.

둘의 실력이라면 며칠 맞춰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숙달할 수 있다.

“더 어려운 동작이 있으면 좋겠어.”

안무를 완벽히 마스터한 어느 날.

연습을 시작한 지 고작 며칠쯤 됐던 날.

신아름은 김민주에게 그리 말했다.

“너무 쉽잖아.”

“쉬우면, 안 좋은 거야?”

“더 화려할 수도 있잖아.”

신아름은 아이튜브로 댄스스포츠 영상을 꽤 많이 보았다. 흔히 ‘블랙풀’이라고 불리는, 댄스스포츠계에서 명망 높은 대회 영상을 찾아보았다.

블랙풀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안무에 비하면, 김민주와 신아름의 안무는 심심하다 못해 지루할 지경이었다.

“예를 들어, 여기서…….”

“그냥 이대로 하자.”

김민주는 단호했다.

“회사에서 섭외한 안무가분이 우리 수준에 제일 적합하다고 판단한 안무야.”

“그럼 과소평가네. 우리 둘 다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할 수준 아니잖아.”

슬로우, 슬로우, 퀵, 퀵.

아주 간단한 라틴 스텝이다.

보통 사람은 그 간단한 스텝마저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한다. 처음 춤을 배울 때 겨우 세네 발자국의 움직임을 한 시간에 걸쳐서 익혀야 한다.

근육이 생각이 아니라 본능의 영역에서 움직일 때까지, 그 세네 발자국이 춤의 모든 것이다.

하지만 신아름은 그 정도는 보자마자 바로 할 수 있게 됐다. 보통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가 월등히, 아니, 압도적으로 빠르다.

그런 신아름에게는, 물론 김민주에게도…….

“지루해.”

이 안무는 지루하다.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아육금 참가자들과 비교하면 그럭저럭 괜찮겠으나, 신아름의 눈에는 차지 않았다.

“추는 나도, 보는 사람들도 지루할 거야.”

“난 아닌데?”

신아름은 김민주가 시비 거는 건가 의심했다.

하지만 은은한 따스함이 걸린 그녀의 얼굴을 보곤, 곧 그녀가 진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재밌어.”

“이게?”

“응. 넌 안 그래?”

“…….”

신아름은 ‘그래, 그러든가 말든가’라며 적당히 맞춰주기로 했다.

어차피 안무를 준비해온 건 김민주 쪽이기에, 신아름이 어떻게 손을 댈 방법이 없었다.

중간중간 임팩트가 약한 부분을 바꾼다면, 그건 안무의 통일성을 해치는 일이 될 것이다.

신아름은 그렇게 옅은 불만을 품고 김민주와의 연습을 이어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99%가 99.01%가 되고, 99.02%가 되는 일을 반복하던 중, 신아름은 다른 세계를 보게 되었다.

몸에 익다 못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춤이다. 거의 뇌를 빼고 움직이니, 머리는 춤 이상의 것을 생각했다.

‘얘가 오늘은…….’

오늘의 김민주는 걸음이 소극적이다.

아주 자그마한 변화일 뿐이지만, 신아름은 그걸 귀신처럼 알아챘다.

종아리 쪽에 근육통이라도 있는 걸까?

신아름은 그걸 알아채자마자, 그녀보다 더 멀리 발을 뻗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와 잡은 손을 더욱 꼭 쥐고, 팔로워임에도 이끌 듯이 강하게 힘을 주어 끌었다.

김민주의 눈이 놀라움을 담아 반짝였다. 그녀는 기꺼이 신아름에게 몸을 맡기고, 소극적이었던 태도를 벗어던졌다.

그녀를 믿고 거리낌 없이 발을 뻗었다.

연습을 마친 후, 신아름이 물었다.

“오늘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어제 카프레이즈 했어.”

“카프…… 레이즈?”

“종아리 운동.”

김민주는 의자에 앉아 발꿈치를 들었다 낮추기를 반복했다.

신아름이 질색했다.

“종아리가 대나무처럼 얇아져도 모자랄 판에 종아리 운동을 따로 해?”

“아예 근육이 없으면 안 되니까. 이건 이삼 주에 한 번씩만 해. 그래서 근육통이 무조건 생겨. 꽤 아프지.”

김민주가 부끄럽단 듯 웃었다. 신아름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다음 날, 신아름은 성필이 쓰는 마사지건을 연습실로 가져왔다. 그리고 강제로 김민주의 다리를 붙잡아 종아리에 마사지건을 갈겼다.

“하으아아으아아아앙!”

김민주는 고통에 겨워 높은 신음을 연달아 내뱉었다. 신아름은 그걸 보며 행복에 겨워 마지않았다.

“어때? 근육통 좀 풀려? 좋지?”

“나 죽어! 죽을 거, 같, 아, 으그읏, 죽어엇!”

“팀장님도 이거 해드리면 좋아 죽으시더라!”

둘은 매일 조금씩 연습했다. 그건 연습이라기보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함께 같은 춤을 추면 출수록, 서로는 서로의 변화에 더욱 민감해졌다.

평소와 다른 움직임, 다른 체온, 다른 호흡, 다른 감정, 다른 힘.

그 깨달음은 춤으로도 이어졌다.

누군가를 쓰러뜨리기 위한 춤이 아니라, 서로가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춤이었다.

아육금 녹화 며칠 전.

“뭐 해?”

“가사 써.”

신아름은 벽에 기대어 수첩을 쥐곤 가사 때문에 골몰하는 중이었다. 김민주가 그녀의 옆에 조용히 자리했다.

한동안 김민주가 스포츠음료를 마시거나, 신아름이 수첩에 필기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름아, 안무 바꾸자고 안 해?”

문득 김민주가 물었다.

신아름은 벽에 느슨히 기댄 채로 적당히 답했다.

“딱히.”

“이게 낫지?”

신아름은 가만히 웃을 뿐이었다. 그녀가 쥔 펜은 그녀가 거머쥔 마음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 * *

‘케이어스를 이기는 게 최고의 아이돌의 기준은 아니지.’

소녀연맹의 첫 번째 콘서트가 시작되기 전.

신아름은 어머니에게 표를 주기가 무서웠다.

어머니에게 자신의 무대를 보여주는 건 최고가 되고 나서로 미루고팠다.

그때 성필이 해주었던 말이다.

케이어스를 이기는 게 최고의 아이돌의 기준이 아니다.

‘갑자기 케이어스가 다 죽으면?’

성필은 그런 폭력적인 질문으로 신아름의 목표를 환기해주었다.

신아름의 꿈은 케이어스를 이기는 게 아니다.

최고의 아이돌이다. 그건 케이어스를 이기는 것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케이어스란 그룹의 무게가 변하는 건 아니었다.

케이어스는 현세대의 정점이다.

소녀연맹이 꾸는 꿈이, 케이어스에겐 현실이다.

‘이겨야 해.’

최고의 아이돌이 되는 길 중간엔 케이어스란 적이 존재한다.

그렇게 여겨왔다.

그러니 신아름이 임하는 모든 연습은 케이어스를 쓰러뜨리기 위함이다. 아주 사소한 차이라도, 아주 사소한 분야에서라도 케이어스를 이기기 위한 연습들.

그렇다면.

‘지금 난 뭘 하고 있는 거지?’

신아름은 김민주와 춤을 추고 있다.

수백 명의 아이돌이 바라보는 가운데서.

수천 명의 아이돌 팬들이 바라보는 가운데서.

김민주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난 뭘 위해 연습해왔던 거지?’

신아름이 연습하고 경험을 쌓는 건 모두 최고의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최고의 아이돌로 가는 길, 케이어스를 쓰러뜨리기 위함이었다.

승리를 위한 여정이었다.

그렇다면 케이어스와 함께하는 연습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없어.’

이 춤엔 승리, 승부와 관련된 그 무엇도 없다.

남은 건 김민주와 자신의 관계뿐이다.

신아름은 김민주와 맞잡은 손으로부터 그녀의 호흡과 체온, 마음을 읽는다.

동시에 김민주도 자신의 호흡과 체온, 마음을 읽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춤이 되어 세상에 현현한다.

그뿐인 일이다.

그뿐인 일이, 행복하기 그지없다.

신아름은 인생 최초로 경쟁과 관련 없는 춤을 추고 있다.

노래와 춤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원초적인 쾌락의 도구다.

신아름은 그 의미를 절절히 느끼고 있다.

케이어스란 벽을 향해서가 아니라, 케이어스와 함께.

김민주와 함께.

그녀와 함께 추는 춤은.

‘이렇게나.’

이렇게나 아름답고도 행복하다.

그녀와 걸음이 맞을 때마다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다. 지금이라면 잠도 거르고 춤을 추었던 조아라가 이해된다.

팔이 공기를 가르고 손이 끝을 가리킬 때마다 사방에서 폭죽이 펑펑 터진다.

발이 땅을 밟을 때마다, 땅이 접히는 것처럼 시야가 빠르게 바뀐다. 몸이 바람이 된 것만 같다.

어둠이 내려앉은 강가에 앉아 하늘을 물들이는 불꽃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그녀의 마음에 행복이란 파문이 퍼질 때마다 하늘의 불꽃은 수를 더해간다.

무엇보다 이 순간이 즐거운 건.

‘너도.’

김민주도 신아름의 마음과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

자신과 마주 보고 춤을 추고 있는 사람이 정말로 김민주인가. 케이어스의 김민주가 맞는가.

승리로 향하는 길의 중앙에 앉아, 절대 넘을 수 없을 벽처럼 보였던 김민주인가.

나의 경쟁자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경쟁자와 마주한 순간이 이렇게나 즐거울까.

‘친구니까…….’

이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야.

승부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고.

아이돌이란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야.

신아름은 앞을 보고 달려왔다.

앞엔 김민주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녀가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김민주는 어느 순간 길에서 비켜나 있었다.

함께 걸어가자는 것처럼 손을 뻗은 채였다.

그녀가 비켜선 자리로 미래의 자신이 보인다.

현재의 자신만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게 아니었다. 미래의 자신도 현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 지점을 향해.

“아름아.”

무대가 끝나고 박수와 환호가 몰아치는 와중에, 김민주가 신아름을 불렀다. 그녀의 말은 거친 호흡에 담겨 부정확했다.

그럼에도 신아름은 그녀가 입에 담은 발음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느꼈다.

“어때?”

‘어떨 거 같아’가 아니었다.

‘어땠던 거 같아’도 아니었다.

‘어때’였다.

“아.”

신아름은 개운하게 답했다.

“기분 좋아.”

인생의 길을 뛰고 있노라면 앞서가는 이와, 자신을 잡으려는 이들을 만나곤 한다.

신아름은 도전적으로 앞서가는 이들을 추월한다. 바람을 뚫고 머리칼을 휘날리면서, 익숙하기 그지없는 추월을 영원토록 이어간다.

뜀박질은 예리하고 눈빛은 칼날 같다.

영원히 이어질 혼자만의 승부는, 어느 순간 끝이 났다.

신아름은 속도를 줄인다.

그리고 앞 대신 옆을 본다.

아침의 강변에선 해가 떠오르고 있다. 그 아름다운 광경을 눈에 담고, 속도를 점점 더 줄인다.

어쩌면 그 광경은, 신아름이 모든 주자를 추월하고 나서야 겨우 인식할 수 있었을 아름다움이었다.

“너무, 좋아.”

신아름의 뜀박질은 단거리 주자의 것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가 100m 앞에 있을지, 400m 앞에 있을지, 혹은 3km나 42.195km 앞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돌이 된 지 3년.

소녀연맹 4년 차.

아마 최고의 자리는 단거리에 있진 않은 듯했다. 상대를 추월하기보다,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야 할 때였다.

승리와 추월에 길들여진 정신을 비우고, 주변의 행복을 보아야 할 시점이다.

“민주, 너는?”

[김민주―신아름 팀의 점수는…….]

“나도.”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김민주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답했다.

“좋아.”

* * *

김민주는 프랜차이즈 카페 앞에 섰다.

점심 시각을 지나 카페 안은 한적했다.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차림을 확인한 김민주는,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따스한 공기가 얼어버린 코끝을 녹였다.

김민주는 시선을 옮겨 약속 상대를 찾았다. 고개를 꾸벅 숙여 서로를 확인한 후, 김민주는 음료를 받아 자리로 향했다.

상대의 맞은편에 앉은 후 코트를 벗었다.

“오랜만이네.”

상대가 말했다.

“응, 그러게.”

김민주는 쓴웃음으로 답했다.

그 아이.

김민주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그 아이’라고 불렀다.

중학생 때 몸담았던 육상 멀리뛰기에서, 유일하게 김민주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아이다.

그리고 다음 대회에서 바로 부상을 당하여 은퇴했던 아이.

김민주가 친구라고 여겼으나, 깨닫는 게 늦었고, 깨달았을 땐 이미 사라졌던, 친구 아닌 친구.

그렇기에 ‘그 아이’다.

“먼저 연락 줘서 놀랐어.”

아이는 중학생 때보다 확연히 성숙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둘은 16살이었고, 지금은 23살이니까.

화장기와 향수 냄새를 머금은 아이는, 옛날처럼 말끔하고 순박한 모습이 아니었다.

“찾느라 고생 좀 했지. SNS 엄청 뒤지고 다녔으니까.”

“그랬을 거 같더라.”

“중학생 때 육상 하던 애들 다 팔로우하고 다니니까, 그제야 네가 추천에 뜨더라.”

“건너 건너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으음, 어, 으음…….”

그렇게 연락이 닿으면, 무조건 만나봐야 할 것 같았으니까.

김민주는 그 말을 삼켰다. 이 아이를 만나기 두려웠단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고마워. 유명하신 아이돌이 옛 인연을 기억해서 찾아주다니, 감격스럽네.”

“아는구나.”

“알지 그럼. 케이어스잖아.”

당연히 안다, 케이어스니까.

케이어스란 이름은 그 정도의 무게를 지닌다.

20년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깨지지 않던 기록을 깨부순 그룹이 바로 케이어스다.

걸그룹 앨범 판매량 70만 장 이상.

앨범의 황금시대가 저물고, 영원토록 달성될 수 없으리라 여겨졌던 기록을 케이어스가 달성했다.

케이어스의 인지도는 현세대에서도, 그리고 향후 미래에도 전설적일 것이다.

김민주는 그 칭찬에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넌 요즘 어떻게 지내? 대학생이야?”

“응. 전공은 체육학.”

“체육…… 계속했구나…….”

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옛 부상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단 것처럼.

“트레이너 되려고?”

“교직이수 했어.”

“아, 선생님. 인기 많겠다.”

“그런데 그만두려고.”

“응?”

“깨달았어. 내가 근육 이름 외우거나, 지방을 가장 잘 연소하는 심박수 같은 거에 관심 없단 거.”

아이는 재밌지 않냐는 듯 실실 웃었다.

“너무 늦게 깨달았지? 벌써 4학년이잖아. 깨달으려면 1학년 1학기에 진즉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뭐 하려고?”

“몰라. 고작 23년 살았는데, 인생이란 게 정해진 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 주변 일이든, 내 마음이든, 생각한 대로 굴러가는 게 하나도 없어.”

김민주는 그녀가 어른처럼 느껴졌다.

연예계라는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는 김민주에게, 모든 사회인은 어른으로 보였다.

그게 비록 대학생이더라도 그러했다.

“근데.”

아이는 주제를 바꾸려는 듯 그리 말했다.

“다행이다.”

“다행?”

“있잖아. 나 육상 그만두고도 계속 네가 떠올랐어. 특이한 애라고 생각해서.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난 네가 라이벌이었거든.”

“……나도 그랬어.”

“진짜? 와, 근래 들은 말 중에 제일 기뻐. 고마워. 아무튼, 그랬어. 이 나이 먹고도 너 같은 애는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만큼 사회성 없는 애를 만나는 게 쉽진 않지.”

아이가 크게 웃었다.

“그것도 그런데, 승부욕 말이야. 과탑 되겠다고 도서관에서 밤새는 애들은 너에 비하면 약과야. 뭐랄까, 독기? 그래서, 얘는 육상을 안 하면 뭘 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 네가 육상 그만뒀단 소식을 들은 후로, 계속 궁금했어.”

텔레비전에 김민주가 나오곤 엄청 놀랐었다.

예쁜 애라곤 생각했었지만, 설마 아이돌이 됐을 줄이야.

“다행이다, 란 생각이 들더라.”

“뭐가?”

“즐거워 보여서.”

잔을 잡은 김민주의 손이 굳었다.

“아이돌이란 건 그래도, 육상보다는 덜하지 않아? 그게, 경쟁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라든가. 선배들 똥군기라든가. 코치들 성희롱 그런 거. 여러모로 맨정신이기 힘든 곳이잖아. 아니다, 성희롱은 아이돌인 지금이 더 심한가? 인터넷 같은 데서.”

“그건 내가 안 보면 그만이긴 해. 어차피 눈앞에 있으면 눈도 못 마주칠 인간들이 하는 건데 뭐.”

“어, 지금.”

“응?”

“웃고 있잖아. 자연스럽게.”

김민주는 손끝으로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아이돌도 고충이 많겠지만, 그래도 경쟁은 덜 할 거 아니야. 적어도, 세상이 전부 적은 아니지?”

육상이란 쓸쓸한 종목이다.

트랙 위에 선 자기 자신만이 유일한 아군이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자들이 적이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마저 적이다.

적을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고, 넘고 넘은 끝에 존재하는 건 삭막한 숫자 몇 개뿐이다.

그 삭막한 숫자를 황금 월계관으로 여길 수 있는 이들만이 정상에 설 수 있는, 쓸쓸한 스포츠.

“……그럼.”

김민주는 뒤늦게 아이의 질문에 답했다.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당연하지. 아이돌은 승부가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잖아.”

사람을 꺾는 게 아니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 * *

성필은 핸드폰용 삼각대에 폰을 거치한 후, 모두가 앵글 안에 들어오는 각도를 찾았다.

삼각대를 앞으로 가져갔다가 뒤로 가져가기도 하고, 때로는 손으로 턱을 괸 채 예술가처럼 고뇌하기도 했다.

“아 팀장님 빨리 좀 해요!”

“잠시만 아름아. 이 사진은 역사적인…….”

“거 총각이 왜 그렇게 굼떠! 그러다간 침대에서 준비 마친 애인도 질려서 도망가겠다!”

어느 아저씨가 외치자 왁자지껄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아름청과’ 오픈일.

신아름의 어머니를 축하해주기 위하여, 23년간 동고동락했던 동료 상인들이 모두 모였다.

성필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다. ‘총각’이란 단어가 창피함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안 그래도, 어머니의 동료들은 성필의 나이와 그가 솔로란 걸 듣자 온갖 참견을 해왔다.

심지어 솔로로 산 기간이 거의 7년에 이른단 걸 듣고는, 어떠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진지하게 묻는 사람마저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성필의 대녀인 신아름은 그런 사람들의 짓궂은 질문을 칼처럼 받아냈다.

‘팀장님 몸 보고도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지금은 칼집에 들어가 있을 뿐이에요! 때가 되면 잘 썰 테니까 그만 놀려요!’

성필은 그 말을 듣고 대경실색했다.

어머니의 동료들과 함께인 신아름은, 언어 구사부터 성필과 있을 때와 천지 차이였다.

“됐어요. 들어갈게요.”

자동 촬영을 세팅해둔 성필은 헐레벌떡 뛰어 앵글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자리는 신아름과 어머니의 강력한 요청에 힘입어, 중앙 바로 옆이었다.

어머니가 사죄의 빛을 띤 미소로 고개를 숙였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이분들이 젊은 사람 볼 일이 적어서 괜히 더 짓궂고 그러시네요.”

“아닙니다. 저 놀림 받는 거 좋아해요.”

“팀장님 왤케 떨어져 있어요?”

성필은 어머니의 옆자리였다. 어머니의 반대쪽 옆엔 신아름이 있었다.

신아름은 떨어진 성필을 붙잡아 어머니와 더 가까이 붙였다. 덕분에 성필은 어머니와 어깨를 꼭 붙인 채 중앙으로 더 들어오게 됐다.

“얘 아름아. 팀장님 불편하시게…….”

“너무 멀잖아요. 근데 왜 사진 찍는 소리 안 들려요?”

“30초로 맞춰놨어.”

또 사람들의 야유가 떨어졌다.

왜 그렇게 텀이 기냐고 말이다.

덕분에 촬영을 앞둔 긴장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김민주가 달려왔다.

“어, 늦어서 죄송합…….”

“야 빨리 와!”

신아름이 김민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뭐? 뭔데 이게?”

“저 처자는 누구여?”

“제 친구예요.”

사람들이 김민주에게 빨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김민주는 뭔지도 모르고 일단 신아름에게 다가갔다.

“뭐, 뭔데 이게?”

“개업 기념 촬영.”

“뭐? 내가 나와도 돼?”

“사진도 안 찍을 거면 여긴 왜 왔어?”

“어머니 사업장 개업한다고 SNS에 홍보해달라면서…….”

김민주는 ‘아름청과’란 간판을 멀리서 보곤 크게 당황했었다. 설마 채소가게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게다가 분위기를 보아하니, 신아름의 어머니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동료들이 모인 것 같았다.

거기에 이방인인 자신이 끼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아름이 친구분이세요?”

그때 어머니가 김민주의 손을 공손하게 맞잡았다. 김민주는 당황하여 허리를 뻣뻣하게 굽혔다.

“아름이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뇨, 제가 더 잘 부탁…….”

띵, 띵…….

“어, 찍힌다. 엄마 앞! 김민주 너도 앞! 다들 맞춰요. 하나, 둘.”

셋!

“아름청과 파이팅!”

찰칵.

사진을 찍고 나선 간단한 개업식을 거쳤다.

제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려두고 입에 돈을 물린 후, 용한 무당에게서 받아온 주문(呪文)을 태웠다.

그 뒤론 덕담을 주고받은 후 해산했다.

그렇게 아름청과의 개업식이 끝났다.

“…….”

김민주는 성필에게서 톡으로 받은 개업식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자신은 영문도 모른 채 주먹을 꽉 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눈만 크게 뜬 모습이 바보처럼 보인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

멍하니 사진을 보고 있자 신아름이 다가왔다.

“아냐. 그런데 다른 소녀연맹분들은?”

“멤버들 부르는 건 좀 그렇잖아.”

“뭐가?”

“뭔가, 사적으로 멤버들을…… 이용하는 느낌?”

“야 그럼 나는?”

“넌 다른 그룹이잖아. 암튼 뭐, 와줘서 고맙고, 나중에 나 필요한 일 있으면 불러. 아님 지금 뭐 좀 줄까? 여기 사과 어때?”

“됐어.”

김민주는 폰을 뒷주머니에 넣었다.

“친구끼리잖아.”

“아름아 나 이 사과 하나 먹어도 돼?”

“팀장님 팔 물건 함부로 건들지 마요!”

“미안…….”

“그리고 오늘은 내가 만든 음식으로 배 채워야 하니까, 뭐 함부로 입에 넣지도 말구요. 알겠어요?”

“응!”

성필은 가게 안쪽으로 떠나갔다. 그리고 개업식 때문에 지친 어머니의 곁에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었다.

“둘이…… 아니, 박 이사님한테 오늘 요리해줘?”

“응. 그러려구. 왜? 너도 먹고 싶어?”

“아냐.”

연인끼리의 행복한 시간에 눈치 없이 끼어들 순 없으니. 보아하니 양측 부모까지도 아는 사이 같은데.

“아육금 결과는 좀 아쉬웠다, 그치?”

김민주가 묻자 신아름은 픽 웃었다.

“아쉽긴 뭐가. 딱 그 정도 점수였구만. 그니까 내가 좀 어려운 거 하자고 했잖아.”

“그러게, 그럴걸. 진저가 숙소에서 얼마나 뻗대는지 넌 모를 거야.”

“알아. 우리 집 조아라가 딱 그렇거든.”

둘은 서로를 보면서 풋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즐거웠어.”

“그러게.”

“좋은 날이니까.”

김민주가 신아름을 향해 공손히 손을 내밀었다.

“쉘 위 댄스?”

“음…….”

신아름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도도하게 그녀의 손 위에 손을 올렸다.

“우이(네).”

신아름과 김민주는 가볍게 손을 맞잡고 느리게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만으로도 옅은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는 그 광경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성필은 카메라 안에 둘의 춤을 담으면서, 인민이자 유스로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 * *

[다들 말해 내 날개가 커졌다고

맞아 난 날고 있어 알고 있어

이 날개는 네 거라고 내 게 아니라고

You brought me to sky so fast

I fly so fast that I can’t see you

So 다시 내려갈게

너와 같은 높이로 너와 눈 맞추러

하늘이 아니라 너에게로]

신아름은 장하양에게 가사 완성본을 주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가사를 읽는 장하양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언니가 라이브로 팬들한테 스포했던 거 있잖아요. 그거 보면서 그으, 저도 깨닫는 게 많았거든요. 내가 뭐가 된 줄 알았고, 내가 노력해서 이만큼 올라왔다, 그거요. 저도 딱 그랬어요.”

신아름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아니, 그녀가 거둔 성과는 나아갔단 말로도 부족했다. 신아름은 하늘을 날았다.

3년간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근데, 저 나름 노력도 많이 했지만요.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었을 거 같아요. 제가 날 수 있게 해준 날개는…….”

“아름이 혼자 만든 게 아니니까?”

신아름이 긍정했다.

“제 날개는, 언니랑 멤버들이었고, 회사의 모두였고, 사장님이랑 이사님들, 팀장님이고, 친구……, 그리고 무엇보다 팬들이니까요.”

신아름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등에 돋아난 날개가 스스로 만든 것이고, 스스로 펄럭여야 했던 거라면, 진작 힘을 다해 떨어졌을 거라고.

신아름 홀로인 비행은 태양을 향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이카로스처럼 날개가 녹아 사라졌을 것이다.

태양은 매혹적으로 빛나지만, 이카로스가 가야 할 곳은 하늘이 아니었다.

자신이 처음 날아올랐던 장소, 발붙이고 살아가야 할 장소, 대지를 봤어야만 했다.

“노래를 잘 부르기만 해선, 춤을 잘 추기만 해선 아무것도 아니에요. 누가 점수를 붙여주고 트로피를 주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돌이란 건…… 팬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존재한다고…….”

말끝을 흐린 신아름은, 곧 확신을 담아 말했다.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이 가사는 그런 의미에요.”

날개를 단 이카로스가 향해야 할 곳은 태양이 아니었다.

아이돌도 그러하다.

대지로부터 멀어지기만 해선, 곧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 그냥 제 생각을 쓴 거예요. 이렇다 저렇다, 누굴 가르치려는 것도 아니구. 그으, 그래서, 어때요……?”

장하양은 가사지(紙)를 곱게 접어 수첩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싱긋 미소 지었다.

“멋져.”

“아.”

신아름의 얼굴에서도 걱정과 불안이 사라지고 미소가 드러났다.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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