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5화
“아쉬워서, 계속 몸을 움직이고 싶어요. 생각이 아예 없어지게요.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3’ 프로듀서 결정 회의. 그곳엔 두 명의 지원자가 나왔었다.
리카와 장하양이다.
둘 다 물러서지 않기에 최후의 수단인 가위바위보를 했었다. 결과는 장하양의 승리였다.
“이사님이 시상식에서 ‘올해의 프로듀서’로 꼽히지 않은 건 아마 ‘우리들의 프로듀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번엔…….”
리카는 춤을 추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주먹을 꼭 쥐었다.
“이번에야말로, 이사님이, 이사님께 영예를…….”
“리카…….”
“끼에에에엑!”
“……?!”
리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성필에게로 달려왔다. 성필도 기겁하면서 그녀를 한쪽 팔로 안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왜 그래? 뭐야? 누구 있어?! 누구야!”
“귀신이에요!”
리카가 거울을 가리켰다.
열린 문틈으로 희미한 형체가 서 있었다.
성필은 그걸 보자 숨이 턱 막혀왔다.
진짜 귀신이다!
“저예요.”
장하양이었다.
그녀가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왔다.
리카는 힘이 탁 풀려서 무릎을 꿇었다.
“하, 하양아?”
“언니였나요! 왜 안 들어오고 거기 계속 서 계신 건가요! 저 놀라 죽을 뻔했다구요!”
“아하하, 분위기가 너무 좋은 거 같아서.”
“에? 어, 어디서부터 들으셨나요!”
“음.”
장하양이 리카의 흉내를 냈다.
그녀는 뽐내듯 머리카락을 쓸어내린 후 소심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성필을 올려다보았다.
“……자랑스럽나요?”
유혹하는 것만 같다.
망설임이 느껴지는 눈빛, 한데 꼭 모은 손, 불안한 듯 떨리는 어깨와 자신감 없이 꼼지락대는 발.
절로 보호본능을 느끼게 된다.
성필은 자신이 장하양을 몰아붙이고 있단 착각에까지 빠졌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위로하고픈 마음이 샘솟았다.
“여기부터 봤어.”
“과장하지 마세요! 아타시(제)가 그랬다구요?!”
“그랬어.”
“리카가 이랬다고? 이 정도로 여우 같진 않았어.”
“여우?! 조금은 그렇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아하하, 그럼 저는 완전히 여우 같나요?”
금세 태도를 바꾸는 것을 보니, 장하양이 연기를 허투루 배운 건 아닌 듯하다.
방금 장하양의 연기가 어땠느냐.
상대역을 맡은 남자 배우가 현실과 극을 혼동하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음, 약 3.5년 정도 전의 하양이 같았어.”
“대강 알겠어요! 그때의 하양 언니는 온몸으로 ‘저를 봐주세요’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렇지. 그땐 살짝만 건드려도 사라질 것만 같았는데…….”
지금은…….
“어딜 보시는 거예요.”
“삼각근. 그런데 물은?”
장하양이 들고 있는 물병은 비어 있었다. 물 받으러 갔다 온댔는데 말이다.
“편의점에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같이 가주실래요?”
“아냐, 내가 사올게. 너희들은 기다리고 있어.”
“아니에요, 바람 쐬고 싶어요. 리카는 더 연습하고 싶지?”
“귀신이 나오면 어떡하나요! 하지만 연습을 하고 싶긴 해요! 하지만 귀신은 무서워요!”
“어쩌란 거야.”
결국 셋 다 함께 편의점에 가기로 했다.
* * *
웨벡스 소속 견습 가수 토모에.
그녀는 여기저기 불이 꺼진 웨벡스 사옥 복도를 터덜터덜 걸었다. 늦게까지 작곡에 매달리다가 이제 돌아가는 길이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제 100곡째.’
토모에는 가수관리본부 본부장인 미사토로부터 시험을 하나 받았다. 데뷔하기 전까지 100곡을 작사, 작곡하는 것이다.
작년에 받았던 과제는 올해 말에 이르러서야 끝날 기미를 보였다.
하지만 최후의 100곡은 이전과는 전혀 무게감이 다르다. 미사토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곡은 네 데뷔곡으로 쓰인다고 생각하고 써.’
그러니 이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없다.
게다가 이 시험은 단순히 토모에의 기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토모에의 예술적 색을 조금 덜어내고 대중성 있게 곡을 쓸 수 있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그 덕분에, 토모에는 흔히 말하는 ‘대중에게 먹히는 곡’을 쓰는 방법을 익혔다. 자신의 색을 조금 죽이더라도, 음원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번 곡이 내 데뷔곡이 된다고 생각해라, 라고…….’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 마지막 곡은 토모에란 아티스트를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토모에 자신도 그걸 느꼈다.
‘영 좋은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게다가 지금처럼 하면…….’
토모에가 여태껏 작곡한 곡은 99개.
그중 하나도 토모에에게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이게 나다’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단 뜻이다.
‘좋다’는 있었으나 ‘이거밖에 없어’라고 느낀 곡은 존재하지 않는다.
솔직히, 토모에는 한계에 부딪힌 기분이었다. 이걸 뚫으면 성장하리란 건 알지만, 어떻게 뚫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고민을 미사토에게 전하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100명 중 99명이 그 단계에서 무너지는 거야. 적당하게 타협한 곡으로 데뷔하고, 적당하게 사라지는 거지.’
세이코는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무조건 ‘이것만이 나다’란 느낌이 올 때만 앨범에 수록했단 모양이다.
토모에는 헛웃음을 지으며 이미 산발인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녀는 머리를 감을 때 린스를 쓰는 걸 좋아했다. 머리가 매끈매끈해지는 감각이 좋았다.
하지만 요즘엔 작곡 때문에 만사가 다 피로해서 샴푸만 쓴다. 머리도 대충 말린다. 그 때문에 그녀의 머리칼은 항상 산발이었다.
깔끔하게 직선을 이루던 그녀의 머리칼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말도 안 되는 천재야, 세이코 선배는.’
‘이것만이 나다’란 생각이 드는 곡을 그렇게나 많이 만들 수 있다니. 심지어 그게 모두 대중적인 성공을 구가하다니.
천재란 말은 세이코를 위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그에 비해 자신은…….
“…….”
토모에는 교차로에 섰다.
오른쪽으로 가면 엘리베이터가, 왼쪽으로 가면 녹음실이, 그리고 왔던 길을 돌아가면 아티스트 휴게실이 나온다.
그런 교차로다.
“……으음.”
토모에는 등에 멘 기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양손으로 든 후 저 앞의 어둠을 바라보았다.
토모에는 주변을 둘러본 후 무릎을 꿇었다.
‘로버트 존슨.’
블루스 음악의 시초로 불리는 위대한 음악가다. 그의 기타 테크닉은 당대에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며, 그 테크닉은 로큰롤로 계승되어 록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기타의 신이라고 불린 에릭 클랩튼은 그가 로버트 존슨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 불세출의 천재인 로버트 존슨에겐 한 가지 전설이 따라붙었다.
‘형편없던 기타 실력을 자랑했던 로버트.’
그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얼마간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기타 실력이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해졌던 것이다.
사람들은 말했다.
‘로버트는 악마와 계약을 했다.’
당시 흑인들에게 돌던 미신이 있었다.
교차로에서 무릎을 꿇으면 악마가 나타난다. 그 악마는 영혼을 대가로 소원을 들어준다.
로버트 존슨은 악마와 계약했다고 한다. 그가 무릎을 꿇고 기타를 높이 치켜들자, 악마가 기타를 받고 직접 튜닝해주었다.
그리고 로버트 존슨은 세기의 천재가 되었고, 블루스란 장르의 시초로 추앙받았으며, 27살에 죽었다.
토모에는 수많은 천재 뮤지션들의 일화를 속속들이 꿰었다. 자신이 그중 하나가 되길 바라며.
“부탁입니다, 악마여.”
토모에가 양손에 받쳐 든 기타를 높이 치켜올렸다.
“저에게 천재성을…….”
가후 세이코마저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그리 말하자, 어둠이 침묵만을 돌려주었다.
토모에는 헛웃음 섞인 한숨을 뱉었다.
“가능할 리가……. 난 흑인도 아니으엑?!”
토모에는 실수로 기타를 떨어뜨렸다.
기타가 바닥을 우당탕탕 구르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기타의 공명판이 방금 얻은 충격을 증폭하여 사방으로 퍼뜨렸다.
“내 기타가아아아아아아아―!”
토모에의 영혼이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눈물을 흩뿌리며 기타를 향해 엉금엉금 기었다.
“괜찮으세요?”
그때였다.
한치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둠으로부터 손이 뻗어 나와 기타를 주웠다.
“에?”
남자가 기타를 품에 들고 살폈다.
“현이 풀어졌네요.”
남자는 기타 줄을 튜닝했다. 풀렸던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아, 죄송해요. 제가 쓰는 것도 아닌데 맘대로 튜닝하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여기요.”
남자가 기타를 토모에에게 내밀었다.
토모에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기타를 받았다.
이윽고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토모에는 그 얼굴을 알고 있다.
악마.
“……대흉근! 역삼각!”
대흉근과 역삼각형 등의 악마다!
올해 복도를 지나다가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히무라가 그를 찾아다녔는데, 토모에는 자기도 모르게 그가 간 방향과 반대 방향을 알려주었었다.
그를 떠올리며 곡도 하나 썼었다.
“……네?”
갑자기 대흉근과 역삼각이란 말을 듣자 그 악마, 아니 남자, 성필은 당황했다.
그리고.
“어?”
성필의 얼굴이 더 짙은 당황으로 물들었다.
“토모에……?”
“에.”
토모에가 성필보다 더 당황했다.
아직 그녀는 견습 아티스트다. 그러니 바깥으로 이름이 알려졌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성필이 자신의 이름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이 기분 나쁨은 아니었다.
토모에는 이 순간이 계시처럼 느껴졌다.
악마라면, 당연히 자신의 이름쯤은 알 테니까…….
* * *
성필은 토모에를 안다.
알 수밖에 없다.
성필이 회귀했을 때부터 리카를 알았던 것처럼, 성필은 토모에를 안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헝클어진 머리칼. 그걸 보자마자 성필은 그녀를 기억해냈다.
‘옛날에 설하가 그랬다지.’
동양인이 록스타가 되려면 일본에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고.
록스타가 성필의 눈앞에 있다.
한 시대의 상징.
“토모에…….”
성필은 아직까지 그녀에게 붙었던 호칭을 기억한다. 리카가 아름다움으로 일본 아이돌계의 전설이 되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불렸다.
‘일본 Z세대의 아이콘.’
가후의 뒤를 이을 불세출의 뮤지션.
수만 명을 향해 한 손으로 기타를 치켜든 그녀의 사진이, 성필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 * *
성필의 뒤에 선 장하양은 토모에를 물끄러미 보았다. 미약한 빛에 비친 토모에의 눈빛은 선망하듯 성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낯선 여자에게서 세이코의 냄새가 난다.
절대 성필 곁에 두어선 안 된다.
장하양은 ‘빨리 가자’란 의미로 성필의 옷소매를 잡고 당기려 했다. 그보다 빨리 성필이 토모에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그래서 잡지 못했다.
“손 빌려드릴게요.”
성필이 토모에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토모에는 꿈속에 나타난 천사를 응접하듯이 떨리는 손길로 성필의 손을 잡았다.
그녀와 손을 잡으며, 성필은 모든 계산을 끝냈다.
일본 Z세대의 아이콘 토모에.
그녀와 친해진다.
소녀연명도 그녀와 친해지게 한다.
훗날 그녀가 유명해졌을 때 소녀연맹과 콜라보한다.
소녀연맹, 일본 시장 정복!
‘지금 친해져야 해!’
“괜찮으세요? 어두운데 조심하셔야죠. 위험해요.”
성필의 다정한 말투에 장하양이 이마를 찌푸렸다.
복도가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토모에도 세이코처럼 ‘히에에에엑!’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