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49화 (549/760)

549화

KS 엔터는 축제 분위기였다.

딱히 케이어스가 음방 십몇 관왕(冠王)을 달성하여 동시기에 적수가 없는 최고의 그룹이었다던가.

앨범 초동 판매량 88만 장을 넘어, 역대 걸그룹 1위를 달성하였다던가.

월간 차트 2달 연속 달성에 이어, 내년엔 연간 차트 10위권 내에 안착할 듯 보인다던가.

그런 이유로 축제 분위기인 건 아니었다.

그건 이미 축하한 지 오래였다.

“봤냐 YJS 엔터어어어어!”

수십 개의 테이블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테이블마다 KS 엔터의 직원들이 앉은 가운데, 매니지먼트 1팀장이 악에 받쳐 외쳐댔다.

그가 잔을 들어 올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여기저기서 흥미롭단 시선이 박혀왔다.

“보고 있나 SMS 엔터어어어!”

그제야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었다.

1팀장은 KS 엔터와 경쟁하던 3대 기획사들의 이름을 차례로 외치면서 보란 듯이 허공에 삿대질했다.

“우리가 이 정도다아아아!”

KS 엔터 창사 이래 최대, 최고의 역대급 실적.

임원을 포함한 팀장급 이상은 스톡그랜트(자사 주식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인센티브 방식)를 받았다.

그 액수는 개개인의 손에 1억이 넘는 돈이 쥐어지는 수준이다. 거기에 팀장급 미만 직원들도 두둑하게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다.

구유한 이사가 ‘직원급들한테 굳이 이렇게 큰돈을……’이라면서 반대했긴 했다.

하지만 대표의 강권에 직원들도 KS 엔터가 이룩한 과실을 받아먹을 수 있게 됐다.

“우리도 한다면 한단 말야아아아아!”

1팀장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목소리엔 울분이 담겨 있었다.

2세대를 좌지우지했던 KS 엔터는 3세대에 진입한 이후 네임 밸류에 걸맞은 결과를 내지 못했었다.

보이그룹으론 중소기획사 소속이었던, 이젠 존재만으로도 3대 기획사를 넘어서는 WTP한테 밀렸다.

걸그룹으론 SMS 엔터에게 밀렸고, YJS 엔터에겐 밀린 것을 넘어 아예 비교불가능한 수준으로 얻어맞았다. KS 엔터의 ‘븨이에스’는 탑티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KS 엔터는 이제까지의 울분을 갚아버리듯 당당하게 업계의 선두로 올라섰다.

케이어스가 그 주역임은 말할 나위 없었다.

“후우.”

1팀장은 모두의 박수를 받으면서 다시 앉았다. 고래고래 함성을 내질렀던 때와 달리, 자리에 앉은 그의 얼굴은 붉다 못해 벌겋게 달아 있었다.

“됐습니까?”

1팀장은 맞은편에 앉은 KS 엔터의 이사 윤희연을 힐난했다. 윤희연은 끅끅 웃음을 참으면서 테이블을 쾅쾅 두드려댔다.

이윽고 윤희연이 눈물을 닦으며 그에게 10만 원을 내밀었다.

“이걸 진짜 하네? 돈 정말 좋아하는구나.”

“이사님이 하라면서요!”

“내가 무조건 하랬어?”

“‘하면 10만 원 줄 테니까 빨리 해봐아’가 하란 거 아니면 뭡니까?”

“쓰읍, 말투가 왜 그래?”

1팀장은 분노를 삭였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KS 엔터의 이사다. 그것도 KS 엔터에 단 네 명 존재하는 사내이사(社內理事)이자 등기이사(登記理事) 말이다.

대표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만큼 그녀의 힘은 절대적이다.

“죄송합니다…….”

1팀장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왜 부하를 괴롭히고 그러나.”

정호환이 윤희연을 타박했다.

“이게 괴롭히는 거예요? 예뻐하는 거죠. 저한테 괴롭힘 받아도 저랑 연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치 의권아?”

“예, 저는 이사님의 노리개입니다.”

“아니 그건 진짜 큰일 날 말이잖아!”

1팀장은 회식 자리에서 무려 두 명의 이사를 상대하고 있다. 같은 테이블에 자신과 비슷한 급은 수석 프로듀서 강동현뿐이다.

강동현은 워낙 각목같이 딱딱한 사람이라 패는 재미가 없다. 그래서 윤희연은 자꾸 1팀장만 걸고넘어졌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분위기 좋은 거지.’

윤희연이 살갑게 장난을 쳐주니 1팀장도 숨통이 트였다. 정호환이나 남홍범만 있었다면 분위기가 이렇게 화기애애하진 않았을 것이다.

‘윤 이사님 없으시고 정 이사님이랑 독대한다고 생각하면, 어휴.’

KS 엔터의 네 이사(理事)는 두 종류로 나뉜다. 회사의 시작부터 함께한 공신인 프로듀싱 총괄 정호환, 매니지먼트 총괄 남홍범.

그리고 들어온 지 10년 남짓이지만 압도적인 능력으로 이사의 자리를 쟁취해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윤희연, 사업 총괄 구유한.

뒤의 둘은 앞의 둘보다 분위기가 자유분방한 편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정호환의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여기 꽃등심 3인분이요!”

그때 뒷 테이블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1팀장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는 다시 정호환의 얼굴을 확인했다. 여전히 어두웠다.

‘아, 지갑이 걱정이시구나!’

이 회식은 정호환이 부담하기로 했다.

오늘 회식은 회사 차원에서 모든 직원들을 격려하는 게 아니라, 케이어스와 관련된 이들과 단결을 다지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정호환은 본인이 직접 사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렇게나 많은 이들을 먹이는 데 지갑 걱정이 안 될 수 없겠지.

“저, 이사님.”

1팀장이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만 시키라고 할까요?”

어두웠던 표정의 정호환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음?”

“아니, 다른 애들이 먹지도 못할 거 너무 과하게 주문하는 느낌이라서요.”

1팀장은 정호환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사겠다고 했는데 ‘돈 그만 쓰시게 애들 주문 커트할까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순 없으니.

“그럼 어때서?”

“네?”

“아, 얘 딱 알겠다.”

윤희연이 쯧쯧 혀를 찼다.

“의권이 지금 이사님 지갑 걱정해주는 거잖아요.”

“아, 그런 거였나?”

정호환이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걱정할 거 없네.”

“네? 그럼 이사님 왜…….”

“내가 뭘?”

“왜긴요.”

윤희연이 정호환의 잔에 비싼 소주를 넘치도록 부었다.

“아까부터 이사님 얼굴이 굉장히 배드하니까 그러죠.”

“……그랬나? 거참, 쓸데없는 걱정을 시켰어. 돈 때문이 아니니까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아.”

1팀장은 지레짐작한 게 틀려서 부끄러웠다.

‘맞네.’

KS 엔터의 단 네 명뿐인 사내이사이자 등기이사. 대표의 수족.

그들은 분기마다 10억 원 이상씩 봉급을 챙긴다. 거기에다 주식, 현금 등 인센티브를 따박따박 받으니 고작 꽃등심 수백 인분이 문제겠는가?

인센티브 제외하고, 월급으로 따지면 월에 5억 정도를 버는 건데…….

‘난 이번에 1억 받았다고 만세 불렀는데, 이사님한텐 그게 인센티브도 아니고 월급보다 한참 적은 돈…….’

1팀장은 옆에 앉은 수석 프로듀서 강동현을 보았다. 그는 말없이 고기를 굽는 중이었다.

‘얘도 나중에 총괄 프로듀서가 되면 그만큼 돈을 받겠지……?’

1팀장 자신은 총괄 매니저가 될 수 있을까.

모르겠다.

KS 엔터 매니지먼트 총괄은 바뀐 적이 없으니까. 과연 승계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는지 누구도 목격한 적이 없다.

‘그, 그래. 내가 1팀장이라고 곧바로 매니지먼트 총괄 관리자급으로 올라갈 거란 건 너무 안일한 생각이야.’

이참에 노력해보자!

“아, 그런데 정 이사님 정말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케이어스 초동판매량 88만 장이라니요? 이게 진짜 우리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까?”

“그러게요.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해요.”

1팀장의 혼이 실린 아부를 강동현이 다큐로 받아들였다. 그는 본인의 전문 분야가 주제로 오르자, 드디어 굽던 고기 대신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장이 미쳐 돌아가는 느낌이에요.”

“미, 미쳐 돌아가?”

1팀장은 그의 과격한 어휘 사용에 놀랐다. 하지만 두 명의 이사는 강동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경청했다.

“그렇지 않나요? 1년, 2년 전만 해도 걸그룹이 앨범을 10만 장 이상 팔면 이랬어요.”

걸그룹의 기적.

성공 신화.

톱 클래스.

“당장 3세대 애들 박 터지게 경쟁했을 때만 해도, 10만 장 넘게 판 그룹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고요. 저희 븨이에스 애들만 봐도 얼마 전에 낸 앨범으로 겨우 10만 장 한계 뚫었잖아요.”

“왜 사람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그러나.”

정호환이 쓰게 웃자 강동현이 황급히 변명했다.

“물론 븨이에스는 대단한 그룹입니다! 음악성으로 씬을 바꿨어요! 븨, 븨이에스는 그 업적만으로도 역사에 남을 겁니다! 글로벌 스탠다드 뮤직을 한국인들 머리에 박아 넣었잖아요!”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케이팝은 현재에 이르러선 완벽히 서구화됐다고들 한다.

한국적인 감성, 즉 뽕멜로디와 그 구조를 강점으로 사용했던 아이돌 2세대 작곡가들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2세대 아이돌 노래를 ‘이게 진짜 음악이지’라며 그리워하는 20대 30대들도, 정작 그런 스타일의 곡이 현재에 나타나면 ‘이건 좀……’이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 그리고 븨이에스의 기록은 아직도 안 깨졌어요. ‘포트레이트 인 유’는 아직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케이팝 음악 중 하나고, 또…….”

“됐네, 자네 마음은 알겠으니 하던 이야기나 계속해보게.”

“……고작 2년인데.”

고작 2년 만에, 케이팝 시장은 KS 엔터조차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사실 한국 엔터계 자체가 거대화된 지 고작 3년 정도밖에 안 됐다.

대형기획사라고 불린 이들은 그냥 엔터계에서 크니까 대형이라고 불리지, 규모만 보면 대기업이라고 불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젠 시장 크기가 진짜배기 대기업이 등장할 수 있을지 모를 수준으로 팽창했다. 팽창할 것이다.

“이러다가 정말 100만 장 판매 걸그룹도 나오겠어요.”

“그러면 좋은 거 아니야?”

1팀장은 살짝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 100만 장 판매 걸그룹이란 물론 케이어스가 될 것이다. 그럼 좋은 일일 텐데, 아까부터 강동현은 불안해하는 듯 보였다.

“그 수혜가 온전히 우리 게 아닐 테니까.”

윤희연이 강동현의 이야기를 받았다.

“소녀연맹만 봐도 그래. 사실, 시장 팽창의 가장 직접적인 지표는 소녀연맹이라고 봐야겠지. 그렇죠 정 이사님?”

정호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 프로듀서가 걱정하는 건 이거지. 우리가 시장주도적인 위치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거.”

KS 엔터는 언제나 문화의 선도자였다.

그런데 이제 와선 그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겠다 싶었다. 케이팝 시장은 고작 회사 하나가 트렌드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크기를 벗어났다.

“군웅할거(群雄割據)야. 이 바람을 따라 많은 걸그룹이 생겨날 게 분명해. 개중엔 소녀연맹처럼 성장하여, 종국엔 3대 기획사의 지위를 넘보는 회사마저 나오게 될 테지. WTP가 그랬던 것처럼.”

WTP의 기획사는 곧 엔터 공룡으로 거듭난다.

수많은 기획사를 집어삼켜 3대 기획사를 합친 것보다 커지게 되리라.

그들은 현재 정호환과 강동현의 걱정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했다. 아예 대적자가 없을 만큼 커지는 것이다.

그로써 시장을, 트렌드를 좌지우지할 힘을 손에 넣는다.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걸그룹 중에서도, 우리의 아성을 넘어설 존재가 나타날 수도 있어.”

“……그래도, 이 세대는 케이어스가 이끌고 있지 않나요?”

“케이어스 덕분에 확신한 거야.”

“케이어스 덕분에요?”

1팀장은 점점 대화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테이블엔 그를 제외하곤 모두 프로듀서였다. 그러니 보는 시각이 다른 것일까.

“내가 이번에 추구한 건 대중성이었어.”

“그렇죠. 덕분에 엄청 성공했잖아요. 저는 요즘 들어 아이돌이 이렇게 선풍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 처음 봐요.”

“그런데 그 대중성이란 게, 사실 한국적인 대중성이었지.”

“네?”

“당연한 이야기야.”

그냥 ‘대중성만 노린다’ 같은 말은 없다.

케이팝이 국내보다 세계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더 많아진 이후로, 프로듀서들은 기획 초기에 국내보다 해외를 더 신경 쓰게 됐다.

그리고 대중성이란 더 애매모호한 뜻을 지니게 됐다.

“한국의 대중성과 일본의 대중성, 미국의 대중성, 이렇게 굵직한 것들을 제치고서. 유럽이나 남미에서의 대중성, 의미가 전부 다르지 않은가.”

“아…….”

각국의 대중음악 트렌드는 모두 다르다. 그걸 무시하는 게 미국의 팝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국 음악의 위상을 이기긴 힘들다.

물론 미국의 팝을 자국 음악처럼 소비하는 국가들도 꽤 있다.

대부분 독재나 공산화 때문에 문화발전이 탄압당했거나, 문화를 기를 만한 경제력을 성취하지 못한 국가들이다.

그들은 현대문화 발명에 실패하여, 음악적으로 문화식민지와 같은 처지에 있다.

“내가 추구한 건 한국적인 거였네. 한국 사람들이 들을 만한 음악. 연령층을 폭넓게 잡으려고 노력했지. 그래서 프로듀싱팀이 반발했던 거고. 해외에선 반응을 얻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그게…….”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성공해버렸다는 겁니까?”

“그렇지. 이런 상황이네.”

정호환이 어깨를 으쓱했다.

“뭘 해도 성공할 수 있어.”

“……!”

“굳이 신식 프로듀싱 시스템이나 서구화된 음악적 성과를 요구하지 않네. 사람들을 매혹할 개성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어. 그만한 시장으로 성장했네. 뭐가 터질지 몰라. 우리는…….”

정호환이 술로 입술을 적셨다.

“처음엔 일본을, 그리고 이때까진 미국을 바라봤네. 팝적인 게 곧 좋은 거였지. 그런데 음악적으로 팝과 동등한 위치에 오르니…… ‘이젠 뭘 하지?’란 단계가 와 버렸어.”

여태까진 대중문화의 정점이라는 미국을 닮기 위해 노력해왔다. 필사적으로 그들의 기술과 트렌드를 베꼈다.

그리고 정작 그 기술을 모두 습득하니, 주변엔 공허만이 남았다.

이젠 누굴 좇아야 하지?

“항상 우리가 앞서 있다고 느꼈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어. 앞이란 개념 자체가 사라졌으니.”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다들 그쪽을 보았다.

누가 엔터사 직원들 아니랄까 봐, 텔레비전도 음악 방송을 켜두었다.

MC들이 다음 차례를 소개한다.

[다음은 여기 ‘뮤직 스테이션’에서 최초 컴백 무대를 가지는 소녀연맹입니다!]

정호환도 다른 이들과 같이 그 화면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선택해야 할 때야.”

* * *

‘작곡을 배우고 싶어요.’

양소민이 대뜸 윤상열의 작업실로 찾아와 한 말이었다.

윤상열은 약 15초간 어처구니없단 눈빛으로 양소민을 응시했다. 양소민은 그의 응시가 길어질수록 고개가 점점 떨어져 갔다.

“왜?”

길면서 짧은 침묵 후 윤상열이 꺼낸 물음이었다.

양소민은 모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믹스테입 때문에…….’

란 말은 꺼낼 수 없다.

노아가 야심 차게 꺼냈던 ‘사무라이 걸즈’ 계획은 시작도 전에 개처럼 멸망했다.

당연한 게, 에리카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노아의 이야기엔 비전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단 이유였다.

그 어투가 너무 강경하여 계획의 발의자였던 라희마저 물러났더랬다. 하지만 라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요 한 달 동안 라희는 계획을 갈고닦았다.

멤버들에게 자주성과 의지를 길러주고, 멤버들의 상승 욕구를 되살리겠다. 그런 결심 하에 계획을 진행하던 라희는…….

‘그만뒀지.’

이유는 글로브의 1집 앨범 ‘그래피티’가 성공한 데 있었다.

타이틀곡 ‘후 어’는 아직 차트 70위권에 머무르며 그럭저럭 선전하고 있다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처참한 실패였다.

하지만 글로브는 종국엔 성공했다.

글로브는 의외로 해외에서 반응이 좋았다.

음원 스트리밍 앱인 ‘스포티파이’와 ‘애플 뮤직’의 글로벌 차트에서 강세를 보인다.

멤버들은 이번 분기에 통장에 꽂힐 금액을 확인하곤 불만이 절로 누그러졌다.

지금까지와 비교해서 명백히 많은 금액이었으니, 석연찮아도 윤상열의 전략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의 상태가 이전보다는 나아지자 라희도 야심 찬 믹스테입 계획을 폐기했다.

그런데 양소민은 포기 안 했다.

‘언젠가 꼭…….’

원래 양소민의 것이었어야 할 에리카의 아방튀르를, 반드시 재현해낼 것이다. 쉽게 말해 성필과 아티스트적인 교류를 하고 싶단 뜻이었다.

그러기 위해 양소민은 자신에게 프로듀싱 능력, 최소한 작곡 능력이 필요하리라 여겼다.

‘박 이사님이 그런 걸 좋아하시니까…….’

“그냥, 요…….”

양소민은 그리 답했다.

오늘 그녀가 윤상열의 작업실에 있는 건, 그녀가 저지른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이곳에 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소모된 정신력으로 거짓말까지 짜낼 여력은 없었다.

“아.”

그런데 윤상열은 뭔가 눈치채기라도 했단 듯, 사람을 깔보는 듯한 기운을 풀풀 풍겼다.

“너도 그런 거냐? 이 업계에 얼마 지내다 보니까 막 눈에 뭐가 보여? 네가 아티스트라도 된 거 같나?”

윤상열이 가장 싫어하는 게 눈앞의 양소민 같은 부류였다.

본인이 인기 있고 잘나가니, 정말 굉장한 아티스트라도 된 것처럼 생각하는 인간 말이다.

“솔로 데뷔라도 시켜줘? 네가 작곡이라도 할 셈인가?”

“아, 아…….”

큰일이다.

도저히 들어줄 분위기가 아니다.

변명할 게 없나?

양소민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이상함을 눈치챘다.

‘변명?’

옛날이었으면 윤상열이 무서워서 눈물을 질질 짜며 작업실을 뛰쳐나갔을 텐데.

‘내가 변명할 걸 생각하고 있어?’

이게 대체 무슨…….

양소민은 시선을 위로 힐끗 올렸다.

윤상열이 보였다. 여전히 무섭지만, 변명이나 거짓말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만한 용기는 있다.

그때 양소민이 깨달았다.

‘맞아.’

난 잘못한 게 없어.

이제까지 윤상열에게 혼난 이유는 이렇든 저렇든 잘못이 있어서다.

게으르거나, 윤상열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거나, 그가 원하는 실력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그런데 지금은…….

‘그냥 물어보기만 하는 거잖아.’

양소민은 윤상열을 두려워했었다. 그런데 그건 두려워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이런 상황에선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거절당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자신을 자책할 이유 따위 하등 없다.

“도, 동경해서요.”

춤과 노래로 절여진 양소민의 뇌세포가 오랜만에 잔꾀를 만들어냈다.

“뭐?”

“피디님을…….”

하지만 역시.

“피디님의 으, 음악을 동경해서, 멋져 보여서…….”

거짓말이란 건 사람이 할 만한 게 아니었다. 아무리 상대가 윤상열이더라도 가슴이 따끔거린다.

“…….”

윤상열은 조금 더 양소민의 방향으로 의자를 돌렸다.

“작곡이란 건.”

게다가 그의 목소리는 살짝 부드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냥 배우겠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소민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동시에 옛날에 노아가 소개해준 게임이 떠오르기도 했다.

스마트폰 게임이었는데, 남자 캐릭터들을 공략하는 종류였다. 그 캐릭터들이 듣기 좋아할 만한 선택지를 고르면 호감도가 높아져 진도를 뺄 수 있었는데…….

“목표가 필요해.”

양소민은 어처구니없게도, 윤상열을 보면서 그 게임을 떠올렸다. 어쩌면 이 사람 굉장히 다루기 쉬운 종류의 인간이 아닐까?

“어, 언젠간 제가 만든 곡을 발표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래서 인기도 얻고…… 피디님이 만드시는 음악처럼요!”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네?”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단 거냐?”

“…….”

윤상열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짜증 내는 것이다.

‘아, 안 돼!’

양소민은 이벤트 진행도가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진행도가 0으로 가면 이 이벤트가 끝나버린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게임이 아니라서 재도전의 기회 따위는 없다.

양소민이 황급히 변명하려던 차.

“넌 케이팝을 만들고 싶은 건가?”

“……네!”

윤상열이 먼저 답할 거리를 던져줬다.

“케이팝 중에서, 누구에게 호응을 받는?”

“…….”

“네가 좋아하는 장르는?”

“…….”

윤상열이 짧은 비웃음을 보였다.

“정말 작곡을 배우고 싶은 게 맞나? ‘이런 걸 만들고 싶다’란 생각조차 없는데. 내 시간을 낭비시키려는 거면 나가라.”

윤상열은 의자를 다시 앞으로 돌려 양소민에게 등을 보였다. 그는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양소민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윤상열이 짜증스럽게 뒤로 돌았다. 그리고 ‘꺼져라’라고 말하려던 순간.

“이기고 싶어요.”

양소민이 말했다.

“저, 저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고 싶은 게 있어요. 이기고 싶어요. 소녀연맹을 이기고…… 케이어스도 이기고…….”

이제야 양소민은 자신이 가슴 깊숙이 숨겨두고 있던 어느 욕망을 깨달았다.

“최고가 될 수 있는 음악을…….”

양소민은 성필이 후회하는 걸 보고 싶다. 그가 자신을 버리고 간 게 실수였단 걸 깨닫게 하고 싶다.

물론 성필의 선택은 이해한다. 그가 왜 석세스 엔터를 나갔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를 후회하게 만들고픈 마음과 그를 이해하는 마음은 별개다.

“너…….”

드물게도 윤상열은 당황했다. 그가 제대로 혼내지도 않았고, 체스판도 안 뺏었는데, 양소민이 울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는 눈을 부릅뜬 채였다.

“피디님은 제가 아는 최고의 작곡가세요. 그러니까, 배우고 싶어요.”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과 동시에, 양소민은 또 하나 깨달았다.

그녀는 윤상열을 증오한다. 윤상열만 없었으면 성필이 떠나갈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니까 아주 윤상열을 찍어 누르고 싶다. 춤? 노래? 그런 걸로 윤상열에게 인정받아봤자 기쁠 리 만무하다. 그의 인정 따위 달콤하지 않다.

양소민은 윤상열을 이기고 싶다. 그의 모든 것, 골수까지 전부 빼먹어 마침내 그를 쓰러뜨리길 바란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싶다.

‘아.’

찾았다.

지금까지 하고 싶었으나 도저히 할 수 없던 것.

윤상열에게 가장 철저하게 복수할 수 있는 법.

‘난 프로듀서가 될 거야.’

일단 아이돌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고.

프로듀서가 되어.

윤상열을 회사에서 몰아낼 것이다.

김태훈이 윤상열 대신 양소민 자신을 택할 때까지 올라가고 또 올라간다.

“널 가르칠 시간 따위 없다.”

양소민의 야망이 순식간에 꺼졌다.

“…….”

분명 엄청 비장한 순간이었는데.

예를 들어, 스승을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려 원수에게 무공을 배우는…….

그런 종류의 엄청나게 비장한 순간이었는데?

이대로 끝이라고?

양소민이 물기가 빠진 양파처럼 쭈그러들었다.

“앨런 워커.”

그때 윤상열은 전설이 된 어느 DJ의 이름을 꺼냈다.

“앨런 워커는 독학으로 작곡을 배웠다. 작곡 프로그램으로 곡을 카피했지. 수백, 수천 개를.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더군.”

나도 작곡할 수 있겠는데?

“널 가르칠 시간은 없지. 네가 쌩초짜라면 말야. 곡을 카피해와라. 한…….”

50개 정도면 많은 거겠지.

작곡 프로그램 하나 들고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50개를 카피한다면, 그 근성은 인정해줘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고, 어차피 중간에 본인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만두겠지만…….

“100개 할게요.”

윤상열이 깜짝 놀랐다.

“100개도 1,000개도 할게요. 그러면, 가르쳐주시는 건가요?”

“……그래.”

“뭘 카피하면 될까요.”

“너 하기에 달렸지. 어떤 곡을 만들고 싶으냐, 예를 들어…….”

윤상열은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케이어스와 글로브로 비교하지. 케이어스는 국내와 해외 두 곳 모두에서 반응이 왔다. 한국에선 한국적이라서, 해외에선 다르니까 멋진 것으로 받아들여졌지. 글로브도 이와 상황이 비슷하다. 국내에선 다르니까 신기한 것으로, 해외에선 익숙하기에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지. 이게 케이팝의 기본적인 갈등 구조다.”

지역성과 글로벌 보편성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다.

해외를 기준으로 케이어스는 ‘다름’에 중점을 둬서 성공했다. 글로브는 ‘같음’에 중점을 둬서 성공했다.

“곡을 카피할 때마다 꼭 이거에 주의를 기울…….”

그때 윤상열의 컴퓨터로부터 띠링 알림음이 떴다. 양소민은 그의 모니터를 보았다.

[아이튜브]

[Girl’s_League 채널]

[(Girl’s_League 소녀연맹 ‘Automata’ MV) 1분 후 최초 공개]

“…….”

“…….”

“…….”

“…….”

“소녀연맹을.”

윤상열은 아까와 다름없는 어투를 꾸며냈다.

“이기고 싶다고 했지. 이기고 말고 할 것도 없지만 말야. 운 좋게 시대를 쫓아간…….”

윤상열은 한동안 뭐라 뭐라 말했다.

“때마침 좋은 교보재다. 이걸로 설명해볼까.”

그렇게 윤상열과 양소민은 함께 ‘오토마타’ 뮤직비디오를 보게 됐다.

시청을 끝낸 후, 양소민은 여운을 느꼈다. 보자마자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물었다.

“소녀연맹은…… 어떤 거예요?”

해외를 기준으로 한다면.

케이어스처럼 ‘다르기에 멋진 것’인가?

글로브처럼 ‘같기에 좋은 것’인가?

지역적이면서도 글로벌적인, 케이팝의 기본적인 갈등 구조. 그 안에서 소녀연맹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었는가.

“저는 잘 모르겠어서…….”

윤상열은 답이 없었다.

그렇지만 머릿속으로는 답을 내놓았다.

‘다르면서도 같은 것…….’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이 작품, ‘오토마타’는 윤상열에게 한 가지 감정만을 일으켰다.

‘좋다’나 ‘나쁘다’ 같은 원색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신기하다.’

그해 처음 발을 담근 바닷물처럼 새로운 감촉,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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