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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43화 (543/760)

543화

성필이 젊었던 시절에는, 물론 본인은 지금도 사회인으로서 젊은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여하튼 그가 젊었던 시절엔 이런 은어가 자주 쓰였다.

라면 먹고 갈래?

남녀가 서로를 본인의 집으로 초대할 때 벌어질 수 있는 이벤트를 암시하는 말이다.

요즘엔 이렇게 바뀌었다고 한다.

“N플릭스 볼래요?”

글로벌적인 성공을 구가하는 OTT 플랫폼인 N플릭스.

그곳엔 온갖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교양 프로그램, 인터렉티브 무비 등이 게시되어 있다.

만약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의미 없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 것보다야 풍부한 시각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

성필은 우습게도 장하양의 제안을 듣고 나서, 그러한 은어를 떠올렸다.

“야 이, 너.”

그래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 노리고 한 말이지? 진짜 유머 센스는 옛날보다 하나도 나아지질 않네.”

“뭘 노려요?”

“어?”

“노린다뇨?”

장하양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성필을 응시했다.

그에 성필은 말문이 막혔다. 도저히 무엇을 노렸는지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게 되면…….

‘내가 하양이를 그런 쪽으로 신경 쓰는 것 같잖아.’

아니, 그걸 넘어 장하양이 부담감이나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장하양이 ‘이사님 저를 그렇게 보고 계셨어요?’라고 말하는 상상만 해도 울고 싶어진다. 그녀에게 오해받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없는데…….

“아니, 아니야. 그냥 나 혼자 웃긴 얘기였어.”

성필은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자신의 오해엔 방의 불이 꺼진 탓도 있는 듯했다. 괜히 은은한 분위기라 머리가 멋대로 이상한 방향으로 튄 모양이다.

“왜 일어나세요?”

“불 켜려고.”

“영화 보려면 끄는 편이 낫지 않아요?”

“눈 나빠지잖아. 켜자.”

“제가 할게요.”

장하양은 다친 성필을 대신하여 불을 켰다. 그리고 다시 소파로 돌아와 성필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까 노렸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부드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장하양이 끈질기게 물어왔다.

성필은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말한다. 하지 않는다. 어떻게 말할까. 어떻게 이야기를 돌릴까. 어떤 식으로…….

“네?”

장하양이 은근한 미소를 드러냈다.

그것을 보자, 성필은 그녀가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제가 뭘 노렸단 걸까요? 제가 어떤 걸 은유했나요? 이사님은 그런 식으로 이해하셨나요?”

“……노린 거 맞잖아아!”

성필은 십년감수한 사람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장하양은 그런 성필을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여기 N플릭스 있어?”

“네. 리카가 처음 왔을 때 텔레비전 이것저것 만지면서 찾아냈어요.”

“숙소를 오자마자 텔레비전을 뒤졌어?”

일본은 특이한 나라다.

아직 텔레비전의 미디어 점유율이 50%에 가깝도록 유지되고 있다.

무려 인터넷의 점유율과 대등하게 경쟁하는 중인, 세계에서도 매우 희귀한 사례다.

‘리카는 자기를 국가적, 인종적 스펙트럼 안에서 해석하지 말라고 하긴 하는데.’

역시 일본인이라서 텔레비전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휴가를 와서 텔레비전을 가장 먼저 켜볼 만큼이나?

“리카가 특이한 채널을 찾으려고 했거든요.”

“특이한 채널?”

“음, 이거였나.”

장하양이 텔레비전을 켠 후 채널 번호를 최대한 끝까지 올렸다. 그러자 유료 결제 서비스가 나타났다.

[내가 스터디를 가는 이유(19)

예고편 재생 중]

[안녕하세요! 토익 스터디 참가하게 된 이지유입…….]

“성인영화잖아?!”

그냥 성인영화가 아니다.

남녀 간의 정을 다루는 영화다.

“네.”

“뭘 ‘네’야?! 빨리 딴 데 틀어!”

장하양은 뉴스 채널로 바꾸곤 살짝 어이없단 투로 말했다.

“가끔 이사님이 저희를 어린애로 보는 거 같아요. 심지어 저랑 언니는 이사님 처음 뵀을 때부터 어른이었는데도요.”

“아니, 남사스럽잖아.”

“방금 이사님 반응 꼭 그거 같았어요.”

“그거?”

“명절에 어른들이랑 아이들 다 모이잖아요. 그런데 티비 틀다가 성인영화 나오면 빨리 다른 데로 돌리는 어른이요.”

“…….”

성필은 장하양의 지적을 듣곤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맞다, 너희 성인이지?”

한국의 기획사는 학교와 같다는 말이 있다.

오디션, 트레이닝, 프로듀싱, 매니지먼트가 하나의 회사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짜여 있다.

사람을 어릴 적부터 뽑아 오랫동안 교육하고, 훗날의 사회활동까지 지원하는 건 사실상 학교보다 더 끈끈한 관계를 의미한다.

팬들에게 아이돌이란 존재는 범접할 수 없는 우상일 것이다.

하지만 기획사 사람들 눈에는 어릴 적부터 봐 온 아이가 아이돌이란 탈만 쓴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주니 아이처럼 보일 만도 하지.’

프로듀서로 있는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성필은 아직도 멤버들을 성인처럼 느끼기 어려워했다.

멤버들이 스케줄이 없을 때 밖을 다니더라도 매니저가 없으면 불안하다. 마치 아이를 심부름 보내는 부모처럼 말이다.

“네, 저 성인이에요.”

장하양이 성필에게 확실히 주입시키려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방금 성필이 성인영화를 보고 기겁했듯, 그가 멤버들에게 느끼는 도덕적 장벽은 그녀들의 성장을 처음부터 지켜보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장하양은 성인이다. 하지만 성필에겐 유독 다른 멤버보다 아이처럼 느껴진다.

“와, 하양아. 네가 ‘저 성인이에요’라고 말하니까 뭔가 되게 이질감 느껴져.”

“네?”

아마, 그녀가 지닌 특별한 사정 때문이겠지.

그녀와 처음 만난 후, 성필은 거의 그녀의 보호자처럼 살아왔으니까.

장하양의 말대로라면, 장하양은 성필로부터 꿈을 받았고, 그로부터 노력할 힘을 얻었고, 그 때문에 노력해왔다.

역으로 말하면 성필은 그녀에게 꿈을 주었고, 그녀가 노력하도록 동기를 주었고, 그녀가 노력하도록 물심양면 도왔다.

그건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 즉 부녀관계와 닮아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할 것이다. 다들 많든 적든, 아이돌이란 꿈을 성필로부터 얻었으니까.

“이질감이요? 그건…….”

장하양이 차갑게 표정을 굳혔다.

“큰일이네요.”

“응?”

“제가 성인으로 안 보인단 뜻이잖아요. 그건 프로듀서로서 약점 아닐까요? 제가 지닌 한 방면의 매력을 볼 수 없단 뜻이잖아요.”

“사적인 모습이랑 공적인 모습은 구별해.”

“그럼 사적으로도 성인으로 봐주세요.”

장하양은 화보라도 찍으려는 듯 소파 머리 받침에 팔을 올렸다. 그리고 나른한 눈빛을 한 채 고개를 기울였다.

“‘아이 같다’는 말이 듣기 좋진 않잖아요. 아이한테도요. 특히, 성인한테는요.”

“……그러네, 미안.”

성필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멤버들을 대하는 게 그녀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거란 생각은 못 했기 때문이다.

“하긴, 맞네. 나도 누나가 나 어린애 취급하면 화내고 그런데, 너희라고 안 그럴 리 없지. 근데 자꾸 픽처 포즈는 안 잡아도 돼. 성인처럼 보인다는 게 성인 잡지 같은 포즈를 의미하는 건 아니잖아.”

“빅토리아 시크릿(여성 속옷 브랜드) 패션쇼에 초대될 수 있을까요? 이건? 이런 거는요?”

“그거 폐지됐어. 그러니까 그만해.”

장하양은 실망한 티를 냈다.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가 폐지된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저렇게나 실망한 것을 보니 어지간히 나가고 싶던 모양이다.

어쩌면 스파이스 걸스가 빅토리아 시크릿 쇼에서 선보였던 레전드 퍼포먼스를 소녀연맹의 이름으로 선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성필은 그녀에게 심심한 위로를 주었다.

“다른 쇼도 많잖아. 그리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하락세인 브랜드고, 예전처럼 브랜드 파워가 크지도 않아.”

장하양은 성필의 위로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리모컨만 만졌다.

익숙한 N플릭스 로고가 지나가고, 장하양은 볼 만한 영화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거 어떠세요?”

영화를 살핀 지 십수 초도 되지 않았건만, 장하양이 볼 것을 골라냈다.

“‘사랑은 비가 갠 뒤처럼’?”

일본 영화였다.

“저 여배우 본 적 있어요. 보그 재팬 표지 모델이었던 사람이에요.”

“아, 진짜?”

장하양이 관심을 가질 만도 하다.

보그 재팬 표지 모델이 되었던 배우라면, 일본에서 엄청난 유명세를 떨치는 모양이다.

“어디 보자…….”

성필은 줄거리를 읽었다.

부상으로 육상을 그만두게 된 여고생. 그저 성실하게 살아가는 중년 남자.

패밀리 레스토랑의 아르바이트생과 점장으로 만난 두 사람이 뜻밖의 교감을 나눈다.

“…….”

“어떠세요?”

“글쎄…….”

만든 곳이 일본인 것도 그렇고, 왠지 모르게 내용이 상상된다.

여고생과 중년 남자, 라…….

‘중년 남자의 판타지를 그린 내용인가?’

장하양이 좋아할 만한 내용은 아닌 듯하다.

“괜찮겠어?”

“재밌어 보여요.”

“이거 아무리 봐도 남성향 영화 같은데. 네가 재미없어할 거 같아.”

“주인공은 여자 같은데요? 보세요, 표지가 여자예요.”

“그럼…… 여성향인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저런 수요를 가지고 있는 거지? 일단 여고생은 아닌 것 같다.

“알겠어, 보자.”

장하양이 영화를 재생했다.

참 독특한 영화였다.

일단 남자인 점장이 매력적이지 않다. 정말 아저씨일 뿐이다. 그런 아저씨를 보그 재팬 표지 모델(현실의 이야기)인 여고생이 좋아한다.

그 여고생이 점장의 옷가지 냄새를 맡는 장면이 나왔을 때, 성필은 부끄러움에 낮은 신음까지 내버렸다.

‘뭐야 이게.’

진짜 남자의 판타지만 그린 내용인가.

성필은 장하양의 눈치를 살피려 시선을 돌렸다. 그때 장하양과 눈이 맞았다.

둘은 잠시 눈이 맞아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시시 웃었다.

“재밌죠?”

“재미없지?”

“네?”

“어?”

“재미없으세요?”

“재미있어?”

둘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네, 재미있는…… 데요……?”

“아, 그으래…….”

둘은 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죄송해요. 끌까요?”

“아니야. 네가 재미없을까 봐. 내용이 남자가 재밌어할 법한 거라고 생각해서. 나도 괜찮아. 응, 재밌어.”

“…….”

한동안 침묵 속에서 영화 시청이 이어졌다.

내용은 성필이 생각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곧이어 여고생과 로맨스를 펼치리라고 생각했던 점장은, 굉장히 상식적으로 철벽을 쳤다.

그리고 영화가 비추는 주제는 나이 차를 극복한 로맨스가 아니라 서로의 꿈으로 바뀌었다.

‘음, 사랑은 꿈이란 주제를 부각하려는 장치였구나.’

도중엔 성필도 몰입하게 됐다.

“이사님.”

영화의 중반쯤, 장하양이 성필을 불렀다.

“어.”

“저는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어요.”

“그래? 의외네. 그런 건 설하가 많이 읽을 줄 알았는데.”

“언니는 요즘…… 아니, 옛날부터 소설보다는 실제적인 이야기나 기술에 관심이 많으셨구요. 저는 소설을 좋아해요. 이사님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빌려주셨을 때부터요.”

“그거 언제 돌려줄 거야?”

“다 읽고요.”

“그냥 너 가져라.”

장하양은 기쁜 듯 나긋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로맨스 소설이란 건 여자가 많이 써요. 그리고 신기한 게, 나이 많은 남자와 사랑하는 주제가 굉장히 많아요.”

“그것도 의외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와 정반대의 이야기다. 중년 여자와 청년 남자의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

성필은 다른 여작가들이 쓴 로맨스도 그와 비슷하리라 생각했다. 나이 많은 남자보다 청년 쪽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그리 미루어 짐작했었다.

“왜 그럴까요?”

“퀴즈야? 음, 아마, 남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돈이라든가 권력이 많아서? 그게 더 매력적인 요소로 다가오는 거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아녜요. 적어도 제가 발견한 공통점은 아니에요.”

“모르겠어.”

“그런 로맨스 소설들이 그리는 나이 많은 남자의 매력은, 불완전함이에요.”

성필은 장하양을 보았다. 이젠 영화보다 장하양의 이야기가 훨씬 궁금했다.

지금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완전함이 매력이라니?

“어딘가 빠진 부분을 여주인공이 채워주는 거요. 그게 로망으로 작용하는 거 같아요.”

“그건 동감이 안 가네.”

“어떤 부분이요?”

어느새 영화는 뒷전이었다.

둘은 진지하게 로맨스 소설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불완전함이 매력이라면 나이 든 남자보다는 어린 남자 쪽이 더 끌려야 하는 거 아니야?”

성필은 너무나 당연하게 남자 아이돌을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꿈을 향해 뛰어드는 쾌활하고 찬란한 청년들을.

“불완전함이란 건 감정적인 요소인 거지? 미래나 현재의 위치에 대한 불안, 부족함, 갈망은 젊은 사람이 갖고 있을 때 더 빛나잖아.”

“왜요?”

“……왜냐니. 어, 그러니까, 순수함?”

지금은 조롱받고 있는 말이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도 유행하지 않았던가.

나이 먹은 어른들은 청춘이 지닌 특유의 유약함과 불완전성을 그 나이의 특권처럼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지나간 시절을 그리며 그러한 불완전성을 미화하곤 한다.

그 불완전함은 순수과 열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젊은 사람은 외적으로 더 매력적이고. 감정적인 요소가 매력이라면 당연히 젊은 사람이 갖고 있는 게 더 낫지 않나?”

“달라요.”

장하양이 단칼에 부정했다.

“나이 많은 사람의 불완전성이 매력으로 작용하는 이유는요, ‘나이 많은’에서 오는 완전성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성인 남자라는 단어부터가 어딘가 완성되었단 느낌이 있지 않나요?”

“뭐, 장정(壯丁)이란 단어도 있으니.”

“그런 사람이 불완전한 게 매력적인 거예요. 어린애가 불완전한 건 당연한 거잖아요. 이사님이 저희를 어르고 보듬듯이, 어린 사람이 불완전한 건 매력이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이사님이…….”

장하양은 성필의 어깨 너머를 흘끗 보았다. 성필도 그쪽을 보았다.

입구가 천천히 열리면서 신아름이 얼굴을 드러냈다.

“팀장님, 괜찮아요?”

“어, 괜찮아.”

“뭐야, 둘이 영화 보고 있네. 언니, 팀장님이랑 놀아드리기 잘하고 있어요? 안 지겨워요?”

“응. 밖에선 뭐 하고 있어?”

“다들 물에서 치고받고 하다가 지쳐서 쉬고 있어요. 언니는 안 나올래요? 모래사장 가보려고 하는데요.”

“조금 이따가 갈게.”

신아름은 바쁜 눈길로 둘 사이를 살피더니, 천천히 문을 닫았다.

성필이 슬슬 나가야 할까 생각하던 때.

“이사님이 아름이의 어리광을 들어주는 거나.”

장하양이 아까 하던 말을 이었다.

“아라의 투정을 받아주는 거, 리카의 억지를 수용하는 건, 어른으로서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 아이들의 매력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요. 왜냐하면…….”

어린아이의 불완전함은 매력이 아니라, 당연한 거니까.

“그렇지 않나요?”

성필은 장하양이 멤버들을 예시로 들자 답하기 꺼려졌다. 애초에 멤버들의 예시가 이 상황에 들어맞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나이 많은 남자의 불완전함은 당연한 게 아니라 매력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사회인으로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공허를 품고 있단 건 특별한 요소가 아닐까요. 그게 나만 알 수 있는 거라면 더 그렇고요.”

“아, 음, 대충 이해했어.”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사람이 의외의 허당끼를 가지고 있는…… 그런 드라마의 흔한 스테레오타입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다.

아마 장하양이 말하는 건 그와 다른 맥락이겠지만, 성필은 대강 그런 식으로 이해했다.

“그럼 나도 약간 부족한 모습이 있으면 더 매력적으로 보이나?”

“이사님은 이미 매력적이세요.”

“고맙다. 한 이사님도 오늘 같은 말씀해주셨어.”

“제 소설론(論)으로 해석해서요.”

성필은 어처구니없단 것처럼 헛웃음을 뱉었다.

“내가 불완전하게 보여?”

“음, 기분 나빠하실 거 같아서 안 말할게요. ‘아이 같다’는 말이 칭찬이 아닌 것처럼 ‘불완전하다’는 것도 칭찬이 아니잖아요.”

그렇게 말하니까 꼭 듣고 싶다.

“내가 뭐가 부족한데? 혹시…… 이 나이 먹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거? 그건 좀 너무한데. 내 직업인데 당연히 좋아하지.”

“이사님은 외로움이 많으세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이다.

성필은 어정쩡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 보고 장하양은 천천히 그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래서 제가 계속 같이 있어 드려야 해요.”

성필이 재빨리 소파를 짚어 옆자리로 이동했다.

장하양은 성필을 향해 점점 몸을 기울이다가, 성필이 도망간 자리에 그대로 폭 쓰러졌다. 그리고 실실 웃었다.

“가족이잖아요?”

“……외로움은.”

성필은 변명하는 투였다.

“다들 있잖아?”

“맞아요. 아, 이사님이 앉아계셨던 곳, 물기가 많네요.”

“빨리 일어나!”

둘은 다시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얘기하느라 많이 놓쳤네. 쟤는 누구야?”

“라이벌이요.”

“그 얘길 하면서도 다 보고 있었구나.”

“이번 성묘 때 부모님께 말씀드린 거 있잖아요.”

리조트에 오기 전 평일은 추석이었다.

성필과 장하양은 올해도 함께 성묘를 갔다.

“여자친구 없어서 죄송하다고 했던 거요. 그거 앞으로 3년 동안 계속 말씀하셔야 하는 거 알죠?”

“나도 말하면서 아차 싶었어.”

“근심이 많으시겠어요.”

“나?”

“아뇨, 이사님 부모님이요.”

성필은 성묘를 갈 때마다 부모님이 살아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장하양은 그 영향을 받은 탓인지, 성필의 말투를 닮아 그의 부모님을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한다.

성필은 그녀의 그런 습관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덜 외롭게 느껴진다.

“괜찮아.”

“괜찮나요?”

“난 불완전함의 매력이 있으니까.”

“아하하!”

“진심으로 웃으니까 많이 속상하네…….”

“아뇨,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서요. 아, 그거 아세요? 저희 이제 두 달도 안 남았어요.”

“알지.”

소녀연맹 연애 금지 조항이 끝난다.

“벌써 3년이구나. 시간 참 빠르다. 역시 기대 많이 되지? 벌써부터 그것만 생각하고 있잖아.”

“1순위는 컴백이고, 2순위는 3주년 팬미팅 콘서트고, 3순위는…….”

“연애 금지?”

“생각 안 했어요.”

“에이, 거짓말. 실은 연락처 받아둔 남자 아이돌이 산더미처럼 있는 거 아니야?”

“음.”

장하양이 불쾌한 신음을 흘렸다.

“이사님, 저랑 약속한 거 벌써 잊으셨어요? 저 정말 섭섭해져요.”

“뭐가?”

“이사님 연애 금지 끝날 때까지 저도 연애 안 하기로 한 거요.”

“아, 어, 음, 그게, 일본에서 세이코 씨…….”

“그때 맞아요.”

장하양은 세이코란 이름이 나오자마자 귀신같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거 진심이었어?”

“제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사님 손까지 잡고 약조(約條)했잖아요. 어떡하면 그걸 두고 ‘진심이었어?’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세요?”

“미안…….”

“최고의 아이돌이 되면…….”

장하양의 목소리가 손상된 음원 파일처럼 뚝뚝 끊겼다.

“어……?”

“너 울어?!”

장하양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성필이 허겁지겁 주변을 살폈다. 티슈가 없었다. 그래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티슈를 가지러 갔다 와야 했다.

“미, 미안, 진짜 미안해! 아니 너무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으니까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면 안 됐는데! 우리 하양이가 하는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진심일 수밖에 없는데 내가 감히 의심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

“이게, 뭐예요…….”

장하양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성필이 거의 신경도 쓰고 있지 않던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쉽게 요약해서, 영화 속 둘의 사이는 분홍빛 로맨스만 가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눈물을 흘릴 정도의 배드 엔딩이냐? 성필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이게 왜…….”

성필은 우물쭈물 다시 그녀의 옆에 앉았다.

“이거 쓰레기 영화잖아요…….”

“그렇게까지?”

“전혀, 기승전결이, 이해가, 전혀, 안 돼요…….”

“해피 엔딩 아니야? 둘 다 꿈을 찾았잖아. 아니, 찾을 거잖아.”

장하양이 천천히 성필을 보았다.

그녀의 뺨에 맺힌 눈물엔 텔레비전의 청색광이 담겨 있었다. 눈처럼 하얗고 얼음처럼 파랗다.

“사랑이 실패했는데, 그게 어떻게 해피 엔딩일 수가 있죠……?”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급 쓰레기예요…….”

매일 예시로 들기에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싫어하는구나.

성필은 그녀에게 그 소설을 추천해준 게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그 소설을 안 돌려주는 건, 결말을 읽고 불태워버려서가 아닐까.

장하양은 한동안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성필은 어색하게 그녀의 곁에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하양 언니 얼마나 더 붙잡고 있으려고요!”

신아름이 문을 쾅 열고 나타났다. 그녀의 등 뒤로 백설하와 리카가 쭈뼛쭈뼛 고개를 내밀었다.

“언니는 이제 놀러 가요. 어쩔 수 없이 내가 팀장님 수발들… 언니 왜 울어요?!”

“아앗, 이사님이 언니를 울렸어!”

“하양아……!”

백설하가 황급히 달려와 장하양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온갖 감정이 깃든 눈으로 성필을 보았다.

“……!”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 듯, 백설하는 입술만 뻐끔거렸다.

“팀장님 뭐 했어요! 뭐 했어요오!”

신아름이 자식을 탓하는 어머니처럼 성필의 등을 팡팡 쳤다.

“저기이…….”

장하양이 흐느끼면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영화의 OST와 함께 영화가 막을 내리는 중이었다.

그제야 신아름의 기세가 잦아들었다.

“아, 영화가 감동적이었어요?”

“쓰레기, 개, 쓰레기…….”

감동적인 영화는 인간의 눈물을 뽑아낸다. 그리고 너무 쓰레기 같은 영화도 인간의 눈물을 뽑아낸다.

장하양이 그 증인이었다.

“근데 왜 왔어? 나랑 놀아주느라 지겨운 하양이 데려가려고?”

“그것도 있고요. 조아라가 해변에서 퍼포먼스 비디오 찍자고 해서요.”

“퍼포먼스 비디오?”

“오토마타요. 원 테이크로 찍으면 그림 나올 거 같다면서 하자는데요?”

“너희 아직 덜 숙달했지 않아?”

“뭐 어때요. 놀이로 하는 건데. 하양 언니도 빨리 나와요.”

“으응, 좀, 화장 좀 하고 나갈게…….”

“내가 도와줄까?”

“아녜요 언니, 먼저 나가 계세요…….”

“팀장님은…….”

신아름은 성필의 발목을 보았다.

“나도 나갈게. 걸을 수 있으니까.”

“나온다고 하시면 한 이사님 불러올게요.”

“알겠어.”

그렇게 멤버들은 영화에 충격받은 장하양을 뒤로하고 먼저 숙소를 나섰다.

장하양은 티슈로 눈물을 닦고 손거울로 얼굴을 확인해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감정도 수그러들었는지 더는 흐느끼지 않았다.

“오늘 화장 워터프루프로 했지? 흘러내리진 않은 거 같은데.”

“네. 다행이에요.”

장하양은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한동안 거울을 바라보았다.

“맞다. 너 오늘 댄스 배틀 때 되게 멋졌어. 얼마나 연습한 거야?”

“별거 아녜요. 8시간 정도 연습하면 누구든 할 수 있어요.”

“……8시간이면 댄스 학원 한 달 아닌가?”

1회 1시간 주 2회 4주, 한 달이다.

장하양이 낮게 웃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길어 보이네요. 저는 아라한테 처음 배울 때 이틀…… 정도 배우고 세트 무브(정해진 안무) 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 보면…….”

장하양은 거울을 내리고 성필을 향해 싱긋 미소 지었다.

“저희 정말 열심히 연습했네요. 남들 한 달 배울 걸 하루 만에 하기도 하고요. 학원 시간으로 비유하니까, 저희가 정말 열심히 했단 생각이 들어요.”

“그러게, 노력했어. 우리 하양이 장해. 춤출 때 엄청 즐거워 보이더라. 보는 사람한테도 그게 전해졌어. 부러워. 나도 너처럼 잘 출 수 있었으면 매일 춤 췄을 텐데.”

댄스 배틀에서 장하양은 ‘이게 나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숨 쉬고 있다, 살아 있다, 그리 세계를 향해 말하는 것만 같아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춤추는 건 즐겁지 않아요.”

“……어?”

장하양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그리고 다시 거울로 시선을 가져갔다.

“물론 즐거운 면도 있죠. 그런데 그건 숙제 같은 거예요. ‘이만큼 했다’라는 즐거움이지, 춤을 배우고 추는 건 즐겁지 않아요. 그게, 힘들잖아요. 저는 노력에 비해 남들보다 하등 나을 게 없고.”

“……그럼.”

어째서 그렇게나 여러 장르의 춤을 배우려고 했는가. 즐겁지도 않은 춤을 매일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 붙잡고 있던 건가?

“왜 그렇게나 열심히…….”

했어?

성필이 물었다.

장하양은 손거울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성필과 마주 보았다.

“이사님 때문에요.”

저 표정.

아까 춤을 췄을 때의 표정이었다.

“제가 계속 춤을 췄던 건…….”

장하양이 검지로 성필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사님 때문.”

“…….”

무엇 때문.

즉, 억지로라는 뜻이다.

이해한다.

아이돌이라고 다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돌의 업무 중에서도 본인의 취향에 맞는 게 있을 테니.

하지만 춤은 아이돌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게 즐겁지 않단 건, 장하양에겐 저주일 수 있다.

성필은 괜스레 고개를 숙였다.

예전부터 성필은 한 가지 죄책감이 있었다. 그녀를 아이돌의 길로 억지로 끌고 왔단 것이었다.

‘하양이는 괜찮다고 했었지.’

고맙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역시 아이돌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진 않는 걸까.

“그리고.”

숙인 성필의 시야로 장하양의 검지가 들어왔다.

“제가 계속 춤을 추는 건.”

그녀의 검지가 계속 앞으로 다가와 마침내 성필의 가슴에 톡 닿았다.

“이사님 덕분.”

성필이 고개를 들었다.

장하양은 장난기를 가득 품은 눈으로 성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계속 춤을 출 건.”

장하양이 검지를 내렸다.

그녀는 의자에 걸어뒀던 모자를 집어 들곤 밖으로 나섰다.

“저를 위해서예요. 제가 좋아서.”

문 앞에서 그녀가 성필을 돌아보았다.

“이젠 즐거워요. 잘 추게 됐으니까요.”

그리고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손 빌려드릴까요?”

“…….”

성필은 한쪽 발을 절면서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고마워.”

밖으로 나오자 한구인과 신아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아름은 성필과 장하양이 손잡은 것을 보더니, 포X몬 트레이너처럼 성필을 가리켰다.

“한 이사님.”

“예.”

한구인이 쪼그려 앉아 등을 내밀었다.

“박 이사님, 업어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로 다치진 않았어요.”

“그럼 손을 잡아드리겠습니다.”

성필은 한쪽 손은 장하양에게, 한쪽 손은 한구인에게 내주고 해변으로 향했다.

그 뒤를 신아름이 졸졸 따라왔다.

“한 이사님은 키가 너무 커서 불편하지 않아요? 내가 팀장님 손 대신 잡아주는 게 안 나아요?”

“너랑 나 차이나 한 이사님이랑 나 차이나 비슷하잖아. 아, 근데…….”

성필이 실실 웃었다.

“나 양손에 누구 손 잡은 거,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인 거 같아. 되게 뭔가 기분 좋다.”

공교롭게도 성필 곁에 있는 세 사람은 모두 그의 가정사정을 알았다.

성필이 양손 모두 누군가의 손을 잡은 건, 아마 어릴 적 부모님을 제외하곤 없었을 것이다.

주변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성필이 당황하여 농담이라도 던지려던 때.

“추억 하나 더 쌓을래요?”

신아름이 성필의 등에 양손을 얹었다. 마치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하는 아이 같았다.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건 처음이죠?”

“으음…… 애가 세 명 있으면 이럴까?”

“제가 박 이사님의 아들입니까?”

“아, 그럼 전 딸이네요.”

“그럼 저는 아내네요.”

“…….”

“…….”

“…….”

“아하하, 농담!”

해변엔 이미 다른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하양과 신아름은 퍼포먼스 비디오를 찍을 쪽으로 달려갔다.

성필은 한구인에게 부축받아 홍규헌 곁에 섰다. 그러자 손혜빈이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물었다.

“야, 다리 삔 거 가지고 아주 극진하게 대접받네? 응?”

“손 이사, 말이 좀 심하지 않아?”

“아녜요 사장님. 제 업보예요.”

“박 이사 업보라고?”

“네. 옛날에 음방 무대 직전에 누나가 발 삔 적 있거든요. 그때 제가 누나 붙잡고 뭐…… ‘무대 올라야 해’라고 강하게 말했던 적 있어요.”

“맞아요 사장님. 얘 진짜 냉혈한이라니까요. 그리고 ‘무대 올라야 해’가 끝이야? 더 있잖아.”

손혜빈은 목청을 가다듬고 조롱하듯 말했다.

“‘시간은 지금이야. 장소는 여기야. 다른 시간 다른 장소는 없어. 바로 이 순간 여기에 서야 해. 여기가 누나의 무대야’라고 했잖아.”

“박 이사님 정말 냉혈한이 맞으시군요…….”

“그니까요!”

“박 이사 실망할 거 같아. 담당 아티스트한테…….”

“누나가 말은 안 했는데 오르고 싶어 하는 눈이었었어요. 중요한 무대였어요. 진짜예요…….”

손혜빈은 크게 웃으면서 성필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두드리는 김에 등을 만지작거렸다. 성필이 마음의 눈물을 삼켰다.

“시작할게요!”

한구인이 폰을 들어 소녀연맹 멤버들을 화면 안에 담았다.

그녀들 근처에 선 블루투스 스피커로부터 ‘오토마타’의 가이드 버전이 울려 퍼졌다. 그녀들은 불완전하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해변에서 펼쳐지는 아이돌의 퍼포먼스.

배경은 따로 필요 없었다.

그녀들을 비추는 석양과 바다가 세트였다.

그녀들이 발을 움직일 때마다 모랫발과 투명한 물방울이 휘날린다.

“그림 미쳤네요 사장님.”

“그러게. 근데 채널엔 못 올리겠다.”

“네, 뭐, 수영복 차림이기도 하고. 설하도 있고.”

“응, 뭐어, 그러게.”

홍규헌이 픽 웃음을 뱉었다.

“어쩌다가…… 저렇게 대단한 애들이 우리 회사로 왔을까. 배경이 저래서 그런가,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워.”

다들 대답은 없었지만 홍규헌의 말에 동감했다.

“애들 중간 평가 때마다 있잖아, ‘이게 될까’ 싶은 순간들이 있어. 너희들도 알지? 근데…… 음……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는데…….”

퍼포먼스가 끝났다.

멤버들은 상쾌하게 땀을 닦으면서 임원들을 바라보았다. 어땠냐고 묻는 듯했다.

모두 멤버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성필은 장하양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얼굴엔 진한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이젠 춤을 사랑하게 된 사람의 얼굴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건 성공할 거 같아.”

홍규헌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토마타(자동인형)들이 이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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