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화
“매트!”
백설하가 명령하자 동생 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녀들은 관리인에게 매트를 받아와 풀 근처의 바닥에 하나씩 깔기 시작했다.
홍규헌이 의문을 드러냈다.
“왜 매트가 상비되어 있지?”
“여러 방식으로 놀고 싶은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
손혜빈의 해석은 홍규헌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반면 성필과 한구인은 대강 이해한 듯해서, 홍규헌은 괜히 소외감을 느꼈다.
“소녀연맹 제1회 댄스 배틀, 시자아아아아악 합니다아아아악!”
리카는 사회자가 된 듯 큰소리로 배틀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폰을 꺼내 장하양과 백설하를 앵글 안에 담았다.
즉시 성필이 만류했다.
“리카, 애들 찍지 마!”
“이렇게 귀중한 걸 안 찍으면 손해 아닌가요!”
“너 또 내 바디프로필처럼 밖으로 유출할 거잖아!”
“……이거, 제 생각으론 대박 콘텐츠예요! 인민이들에게 커다란 떡밥이 될 거라구요!”
리카는 성필의 태클을 그대로 무시했다.
성필은 그녀를 말리면서도, 그녀의 의견이 옳다고 여겼다. 그룹 멤버들끼리, 심지어 소녀연맹의 언니 라인이 진심으로 댄스 배틀을 하려고 한다.
어떤 인민이가 이 상황에 흥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문제가 있다.
‘수영복 차림이면 그냥 흥분하는 걸로는 안 끝나.’
배틀을 넘어선 무언가가 되어버린다.
성필이 복장을 지적하려던 순간, 조아라가 언니들에게 말했다.
“쌤, 언니, 옷 갈아입고 해요. 진지하게 춤으로 붙을 거면 몸매 과하게 드러내는 건 안 좋아요.”
“그런 거야?”
“하양 언니는 알죠?”
“응. 누구도 런웨이 위에서 흔들리는…….”
장하양이 자신의 가슴 위 허공을 위아래로 훑었다. 누군가의 무엇을 묘사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런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아. 옷이 아니라 다른 곳에 눈길이 가니까.”
“들었죠 쌤? 춤도 마찬가지예요.”
“왜, 왜 내가 잘못했단 투로 말해애……?”
백설하는 억울했다.
결국 백설하와 장하양은 숙소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야만 했다.
둘 다 심플한 면 티셔츠에 휴양지 스타일 반바지를 입었다.
조아라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한 배틀에 걸맞은 복장이네요.”
신아름이 드물게도 조아라에게 동의했다.
“아까 건 좀 숭하긴 했지.”
“자, 그럼 진짜로…….”
리카가 이번에야말로 폰 카메라를 언니 라인에게로 향했다.
“배틀을 시작합니다! 심사위원은 가로 엔터의 사장님과 임원분들이 맡아주셨습니다!”
리카가 폰을 임원들 쪽으로 향했다.
홍규헌을 포함한 임원들은 기겁하면서 몸을 가리거나, 선배드 뒤로 몸을 던지고, 얼굴을 홱 돌리는 등 신상을 가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치워!”
“공정한 심사 부탁드립니다! 아, 근데 DJ는 누가 해?”
“내가 할게.”
조아라가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를 언니들 앞에 두었다.
“음, 근데 아예 랜덤 곡이면 힘들 텐데. 쌤이랑 언니는 배틀 초짜잖아. 원하는 노래 있으면 말해요.”
“음, 나는…….”
백설하는 ‘빌리 아일리시’의 ‘배드 가이’를 골랐다. 장하양은 ‘스크릴렉스’의 ‘킬 에브리바디’를 골랐다.
둘 다 성격이 확연히 다른 곡이었다.
“선공은 이걸로 정할게요.”
조아라가 물병을 바닥에 놓고 돌렸다. 몇 바퀴 부드럽게 돌아간 물병이 백설하를 가리켰다.
즉시 조아라가 ‘배드 가이’를 재생했다.
강한 베이스와 ASMR과 같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특징인 곡. 팝의 유행을 바꿔버린 히트곡이다.
그 순간 백설하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녀는 음악을 몸에 새기려는 듯 베이스에 맞춰 골반을 한쪽으로 까딱였다.
조아라가 흥분하여 중얼거렸다.
“쌤이 강수를 뒀어요. 솔직히 엄청 의외예요.”
“강수?”
“격의 차이를 알려주겠단 마음이 느껴져요.”
성필은 설명을 더 요구했다.
“춤이란 건 느린 곡에 맞춰 추는 게 더 어려워요. 배틀 프리스타일로 하려면 더 그렇고요. 빠른 박자라면 몸이 어떻게든 따라가지만, 곡이 느리면 곡을 해석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해져요.”
뮤지컬리티, 라고 불리는 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음악을 감상하여 이해하는 능력 말이다.
백설하는 ‘배드 가이’를 고른 순간부터, 장하양을 향한 선전포고를 펼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넌 내 아래다, 그런 마음이…….”
조아라는 전율을 느낀 듯 어깨를 떨었다.
성필은 그 모습을 괴상하단 듯 쳐다보았다. 아니, 조아라는 진짜 괴상하게 보였다. 언니들이 댄스 배틀을 벌이는 게 그렇게나 흥분되고 기쁜 건가?
“하양아.”
백설하는 골반으로 리듬을 타면서 장하양을 불렀다. 장하양은 싱긋 미소 지으면서 답했다.
“네, 언니.”
“그거 알아? 난 아라보다 춤을 배운 기간이 더 길어. 당연히 너보다도 훨씬 길고.”
“저보다 1년을 더 사셨고 아라보다 3년을 더 사셨으니 당연하지 않을까요?”
“죽는다 너?!”
그때였다.
“우워!”
사방에서 환호성이 날아들었다.
마침내 백설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팝(POP)!”
팝핀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 몸의 특정 부위를 폭발시키듯 크게 흔드는 것이다.
백설하는 팝핀을 기본으로 크롤, 글라이딩, 웨이브와 같은 기초 테크닉을 유려하게 엮어냈다.
그리고 가장 압권은 몸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 팝 테크닉이었다.
팝은 근육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어깨, 배, 다리, 엉덩이, 그리고 가슴.
백설하의 몸이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여기저기서 폭발시킨다.
“와, 미친……!”
홍규헌이 절로 욕설을 내뱉었다.
백설하는 같은 여자인 홍규헌이 보아도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표출하는 신체의 에너지와 매력 과시는 한시도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춤이 아름답다.
문외한이 보아도 잘 춘다는 것을 알겠다.
“저거 그냥 곡 안무로 붙여도 되는 수준 아냐?!”
홍규헌은 감탄한 나머지 평소의 근엄함마저 다 버리고 큰소리로 주접을 떨었다.
그러자 조아라는 설명이 자신의 지상과업이라도 된 듯, 쓰지도 않은 안경을 올리는 흉내를 내며 열띤 어조로 말했다.
“팝핀은 아이돌 안무에 붙이기엔 부적절해요.”
팝은 이젠 모든 댄스의 기본 기술로 여겨진다. 기본이지만, 절대 쉽지 않다.
이완, 수축, 이완.
근육을 이용하여 이 세 개의 과정을 연달아해야 한다. 고작 박자 한 번 울릴 짧은 순간에 말이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근육이 이완되고, 수축되고, 이완되는 비정상적인 행위다.
그리고 그런 비정상적인 과정이 동원되어야.
“진짜 폭발하는 거 같아…….”
비로소 팝(POP)!
몸을 폭발시키듯 강렬하게 뒤흔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 춤을 이어가면서 노래를 부를 순 없으니, 아이돌 안무에 쉽사리 넣을 수 없는 테크닉이다.
즉, 이건 아이돌인 백설하에게선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모두가 백설하의 폭발, 흔들림에 감탄하던 중 갑자기 그녀가 동작을 부드럽게 멈췄다.
그리고 장하양을 검지로 척 가리켰다.
백설하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노래에 맞춰 관능적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Might seduce your dad type
(난 네 아빠도 꼬실 수 있어).”
문란한 가사에 신아름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노래 불렀어요!!”
반면 조아라가 잔뜩 흥분해서 성필의 어깨를 찰싹찰싹 때렸다.
“I’m the bad guy, duh(난 나쁜 년이니까).”
그러곤 백설하는 플로어로 들어갔다(댄스 용어, 바닥을 사용하는 안무에 접어든 상태).
바닥에 손을 짚고 장하양의 발밑으로 이동한 백설하는, 리듬에 맞춰 장하양을 놀리듯이 관능적인 춤사위를 보였다.
관중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이미 승자가 정해진 듯 플로어를 누비는 백설하를 찬양하기 바빴다.
그리고 성필은…….
‘말도 안 돼.’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설마 백설하가 이 정도로 춤을 출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연습생 시절 창작 안무 시험도 보았으니, 그녀에게도 창작 능력이 있을 거란 건 알았다. 하지만 프리스타일 댄스까지 할 수 있다니?
심지어 성필의 눈으로 보아도 월등히 매력적인 춤이기까지 했다.
‘춤을 오래 배워서……?’
아이돌이란 건 연차가 쌓이면 이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이런 수준에 이를 때까지, 노력한 거야?’
성필은 자신도 모르던 백설하의 재능을 발견했다. 그게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성필은 목구멍으로부터 올라오는 감동에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감동을 한구인과 공유했다.
“하, 한 이사님, 저, 저어, 이거…….”
“예.”
한구인이 넋 나간 투로 말했다.
“그 감동은 박 이사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아닐 겁니다…….”
곡이 끝나자 백설하는 위풍당당하게 일어났다. 발끝을 세워 장하양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마치 여왕과 같았다.
여름의 여왕.
그녀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물러날래?”
장하양이 언니를 향해 소박한 박수를 보냈다.
“세월과 관록이 느껴지는 춤이었어요.”
신아름이 날뛰는 백설하를 붙잡아 겨우 뒤로 빼내었다.
장하양은 이미 말로 백설하를 쓰러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스크릴렉스’의 ‘킬 에브리바디’가 재생됐다.
그 즉시 장하양이 양쪽 팔뚝을 이빨 부딪치듯이 위아래로 콱콱 부딪혀댔다.
손혜빈이 경악했다.
“틀딱(틀니 딱딱, 나이 든 사람을 비하하는 비속어)이란 뜻이야?!”
“저건 진짜 너무하잖아…….”
웬만해선 장하양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홍규헌마저도 감히 커버해주지 못했다.
백설하도 그걸 보곤 넋이 나갔다. 이 정도면 시비가 아니라 정말 싸우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에요!”
조아라가 급히 중재했다.
“저거 배틀 때 비보이들이 쓰는 제스처예요! ‘그 춤 베낀 거 아냐?’라고 비꼬는 거라고요! 틀딱이란 뜻 아니에요!”
“아.”
경악이 휘몰아치던 관중석이 잠잠해졌다.
막 잠에서 깨어난 상태가 되기 직전이던 백설하도 평정을 되찾았다.
“베낀 거란 건, 설하가 방송 안무 루틴을 써서 그런 거야?”
“아마요.”
아이돌의 춤에는 자주 쓰이는 동작들이 있다.
춤의 이음새를 강화하며, 또한 기본이 되는 춤.
백설하는 스트릿 댄스에 기반을 두었으나 중간중간 아이돌 댄스적인 부분을 추가했다.
그건 어찌 보면 베낀 것이다. 댄서가 아니라 아이돌로서의 경험에 의존하여 선보인 춤이나 다름없다.
자신만의 개성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머릿속에 입력된 루틴을 따라 했다는 뜻이겠지.
“근데 하양이가 쓴 게 비보이 제스처라고 했지? 그럼 하양이가…….”
성필이 기대감을 담아 말하자 조아라가 긍정했다.
“이 곡을 선택한 것부터 감이 왔어요.”
비보잉.
장하양이 거친 기세로 스텝을 밟았다.
“1단계, 탑락.”
비보잉엔 기본적인 순서가 있다.
그 첫 번째가 탑락이다. 플로어를 사용하지 않고 서서 추는 동작을 선보인다.
그녀는 능숙한 스텝으로 매트 위를 누볐다. 마치 길거리에서 만난 상대에게 시비를 걸듯 조심스럽고, 또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이윽고 장하양의 팔이 움직였다.
장하양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위협적으로 백설하를 향한다. 아이돌 춤에선 볼 수 없는 공격적인 동작이다.
“하양 언니는 나한테 춤 많이 배웠어요.”
그건 성필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장하양은 어떤 장르의 춤을 배우면 성필에게 자랑하러 오곤 했었으니까.
보깅, 하우스, 락킹, 팝핀 등.
장하양은 연습생 시절부터 유독 춤을 배우는 데 열성적이었다. 아마 본인이 다른 멤버들보다 뒤처진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굳이 나한테 보여주려고 했던 것도 그래.’
압박감, 혹은 열등감 때문에 배운 춤.
그렇지만 그 춤은 현재 장하양의 몸 안에 깃들어 특유의 개성을 만들어냈다.
개성적이다.
개성적이지만…….
“단조롭지 않아?”
장하양의 춤은 단조로웠다.
적어도 백설하가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에너지의 흔들림보다는 임팩트가 적었다.
성필은 조아라의 기색을 살폈다. 그녀는 무언가 기다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기다리던 게 왔다.
장하양이 마침내 손으로 땅을 짚었다.
“2단계…….”
플로어.
땅을 짚은 손을 중심으로 장하양이 옆으로 회전했다. 풍차처럼 돌아간 그녀의 다리가 어느 순간 뒤를 가리키더니, 뒤돌기를 한 것처럼 착지했다.
조아라가 흥분하여 기술명을 외쳤다.
“마카코!”
파워 무브, 혹은 곡예 안무.
아크로바틱한 고난도 기술을 일컫는다.
비보잉의 2단계는 파워 무브에 집중한다.
이어지는 장하양의 춤은 하나하나가 매우 거대한 곡선을 그렸다. 그 움직임의 범위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했다.
음악을 무시하는 듯한 곡예의 연속이었다.
백설하에 비하면 뮤지컬리티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장하양이 선보인 놀라운 곡예가 그 부족함을 상쇄시키고 있다.
동작 하나를 할 때마다 절로 감탄이 나온다.
“다른 장르 댄서들은 비보잉을 안 좋게 볼 때가 많아요.”
조아라가 설명했다.
“음악은 내팽개치고 기교만 펼치려고 한다고요. 그런데 난 솔직히…….”
장하양이 바닥에 등을 대고 다리를 풍차처럼 회전시켰다.
윈드밀.
“기교적인 춤이 좋아요.”
바닥을 휩쓸던 장하양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녀는 어깨와 양손으로 바닥을 받치고, 마치 나무가 된 것처럼 몸을 일자로 세웠다.
그녀의 다리가 하늘로 향한 채 멈췄다.
완벽한 직선, 프리즈(Freeze).
정지한 그녀의 몸으로 볕이 비쳐 들었다. 빛은 그녀의 몸에 새겨진 뚜렷한 양각과 음각을 예술적으로 드러냈다.
오랜 단련으로 만들어냈을 게 분명한, 선명히 갈라진 근육들이다.
발끝부터 다리, 복근과 등, 팔까지.
어느 하나 경이롭지 않은 게 없었다.
“와아아앜!”
조아라는 함성과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이윽고 다른 이들도 장하양의 열성적인 춤에 찬사를 바쳤다.
장하양은 크게 숨을 헐떡이면서도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
그걸 보며, 성필은 심장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대체…….’
프로듀서로서, 얼마나 재능 넘치는 이들을 손에 쥐고 있는 건가?
마치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다.
보는 내내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었다.
거기에 더해 성필은 눈물마저 나올 듯했다.
“하양아아…….”
옛날에 춤추다가 픽픽 쓰러지던 장하양이 맞나? 4년 새에 이렇게나 아름답고 강렬한 춤을 출 수 있게 되다니, 눈물을 흘리지 않곤 못 배길 정도였다.
인간승리.
그야말로 노력의 증명이었다.
“아저씨.”
성필은 눈가에 손을 대고 고개를 계속 숙인 채였다. 그동안 다른 임원들과 멤버들은 심사평까지 끝냈다.
남은 건 성필뿐이었다.
“이제 아저씨만 남았어요.”
성필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곤 눈가를 손가락으로 거칠게 닦아냈다. 약간 흐릿한 시야로 앞에 선 장하양이 보였다.
장하양은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었다. 마치 성필에게 묻는 듯했다.
‘저 이렇게나 컸어요. 어떤가요?’
성필은 그녀의 눈웃음에 환한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래서 아저씨 선택은?”
“아, 나는…….”
조아라가 입가에 가져다 댄 블루투스 마이크를 통해, 성필은 흐느낌이 깃든 목소리로 담담히 읊조렸다.
“설하.”
솔직히, 백설하가 더 잘 췄다.
* * *
점심은 해산물 파티였다.
성필과 가로 엔터의 사람들이 손 쓸 필요도 없이 리조트 직원들이 진수성찬을 차려 대령해주었다.
밥을 먹고 나니 전신이 나른했다.
성필은 선배드에 나른하게 누워 여유를 만끽했다.
‘진짜 이렇게 맘 편하게 쉬어본 게 얼마 만이지.’
휴식이 필요하긴 했었나 보다.
항상 ‘월요일 좋아’를 외치던 성필이지만, 그도 슈퍼맨은 아니었다.
아무리 즐거운 것이라지만 쉬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지치는 게 당연하다.
그런 와중 주어진 휴가는 성필의 정신을 노곤하게 만들어놓았다. 성필은 기분 좋게 햇살을 느꼈다.
“이사님!”
햇살보다 더 밝은 리카가 성필의 머리맡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왜.”
“눈치가 너무 없으신 거 아닌가요!”
“응?”
성필이 상체를 들어 리카 쪽으로 돌아보았다. 리카는 어디서 났는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밀짚모자 아래로 화난 듯 부릅뜬 눈이 보였다.
“아, 밀짚모자 잘 어울리네.”
“그게 아니에요! 저쪽을 보세요!”
리카가 성필의 고개를 친절하게 앞으로 돌려주었다. 점심을 먹고도 나른함 따위는 느끼지 않는지, 풀 안에서 ‘꺄악 꺄악’ 배구공을 주고받는 멤버들이 보였다.
홍규헌과 손혜빈, 한구인도 그게 썩 재밌어 보이는지 근처에서 구경하는 중이었다.
예외라고 한다면, 풀에 다리만 담근 채 수면을 손으로 어루만지는 장하양이었다.
“수구라도 하게? 인원이 안 맞나? 아, 그러네. 너 들어가면 짝수가 아니…….”
“그게 아니라 하양 언니를 보라구요!”
그녀의 말대로 성필은 장하양을 관찰했다.
왠지 모르게 장하양이 우중충해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의미 없이 물만 찰박이는 모습이 처량하기까지 했다.
“박 이사님이 댄스 배틀에서 하양 언니 편을 안 들어주셨잖아요!”
“어? 심사평 때 장점 말했잖아.”
“쌤 편을 더 들어줬다구요! 쌤한테 입이 마르도록 찬사를 바치셨으면서, 하양 언니한텐 너무 무미건조했어요!”
“그랬나……?”
비슷했던 거 같은데.
“빨리 가서 위로해주세요!”
“위로?”
“모르시겠나요? 하양 언니는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눈치채주길 바라고 있는 거예요!”
“뭐? 하양이가?”
장하양이 그런 삐친 여자친구 같은 행동을 한다고? ‘나 기분 나빠 빨리 눈치채고 달래’ 같은 건, 장하양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행동이다.
“무슨 소리인가요! 여자는 눈치채주길 바라는 생물이라구요!”
“너 평소에 하던 말이랑 너무 다르잖아. 사람을 스테레오타입에 가두지 말라느니 했으면서…….”
“그게 중요한가요! 하양 언니는 상심했다구요! 항상 박 이사님께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삶의 낙으로 삼았던 언니예요! 그런데 쌤에 비해 박정하기까지 한 평가를 받았어요! 당연히 속이 상해요! 아니, 화났어요!”
리카의 말을 들으니 장하양이 다르게 보였다.
계속해서 우울한 티를 내는 건, 확실히 ‘눈치채 달라’라고 말하는 듯했다.
성필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내가 설하를 편애한 것처럼 보였던 건가…….’
당시엔 감정이 너무 격정적이어서 기억이 안 나지만, 리카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성필은 쭈뼛쭈뼛 선배드에서 일어나 장하양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장하양의 등 뒤에서 상체를 기울였다.
“하양아.”
장하양이 성필을 돌아보았다.
평소와 비슷한 무표정이지만, 그 안엔 묘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성필은 ‘어……’라며 말을 끌었다. 그리고 일단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까 춤 있잖아.”
“왔다!”
조아라가 성필에게 삿대질하면서 박장대소했다. 그 순간, 장하양이 씩 웃으면서 성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
그리고 그대로 성필을 잡아당겨 풀 안에 박아버렸다. 성필의 시야가 순식간에 파랗게 물들었다.
성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숨을 참았다.
‘날 속여?!’
전부 다 연기였다.
리카도, 장하양도, 화사하게 웃으면서 배구공을 주고받던 다른 멤버들도, 그리고 홍규헌과 다른 임원들도!
성필은 허우적거리면서 수면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푸헉!”
“잡아!”
얼굴을 내민 즉시 성필은 전신이 속박당했다.
양팔, 양다리가 멤버들에게 하나씩 잡혔다. 멤버들은 성필을 들어 올려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야, 야, 야야야, 너희들 나 집어 던지면 가만 안 두……!”
그걸 끝으로, 성필은 아주 짧게 수면 위를 날았다. 그리고 다시 풀에 처박혔다.
대비하고 있던 터라 코로 물을 먹진 않았다.
성필은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물 때문에 흔들리는 시야로 멤버들의 상체가 들어왔다.
‘몸이 뒤집혔어!’
성필은 다리와 팔을 마구잡이로 휘저어서 겨우 평형을 되찾았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수면 위로 내밀었다.
“푸학!”
성필이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그리고 사건의 주동자들을 찾았다.
“아니 니들 진짜…….”
멤버들이 하나같이 성필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특히 풀 바깥에 선 리카는 위풍당당한 표정마저 지은 채였다.
“그러게 저희가 물에서 놀자고 했을 때 진작 들어왔으면 좋았잖아요!”
“……크흨.”
멤버들이 웃는 것을 보니 성필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렇게 한 번 당하고 다들 웃으면 좋은 거지.
“이거 누가 사주했어?”
“리카요.”
“에엑?!”
장하양의 고발에 리카가 잔뜩 당황했다.
성필이 그녀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리카, 이리 와. 헹가래 쳐줄게.”
“괘, 괜찮…….”
“뭐가 괜찮아!”
손혜빈이 웃으면서 리카를 풀로 밀어버렸다. 리카는 사지를 휘저으며 풍덩 입수했다.
“제, 제 몸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응 안 들려어.”
리카도 성필과 같은 형벌에 처해졌다.
물에 처박힌 후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민 그녀는 성필처럼 크게 웃었다.
“에휴.”
성필은 물에 젖은 생쥐가 된 리카를 보곤 한숨을 푹 뱉었다. 그리고 풀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다.
“에, 벌써 가시나요! 물에 담글 사람이 많아요! 사장님이라던가요!”
“밀어줄까?”
“손 이사, 내 몸 건들이지 마.”
“나 몸에 태닝크림 발랐어. 오래 있으면 안 돼.”
성필이 풀 바깥 타일에 발을 디뎠다.
그 즉시 성필의 발이 뒤로 쭉 미끄러졌다. 그는 머리가 앞으로 고꾸라지려던 것을, 팔뚝으로 타일을 짚는 것으로 겨우 막았다.
다른 사람들은 성필 혼자 미끄러져서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아 웃었다.
성필도 자기가 어떻게 보였을지 알았기에 실실 웃었다. 그리고 이번엔 조심스럽게 바깥 타일을 집고 위로 올라왔다.
“너희들 물 마시지 마. 내 몸에 있던 크림들 다 녹아있을 거야.”
“수영장 물을 마시는 사람이 어딨어요.”
성필은 다시 선배드로 돌아가기 위해 걸었다. 그 순간 그가 다리를 절뚝였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박 이사님?”
한구인이 성필에게 다가왔다.
“발을 삐신 겁니까?”
“어…….”
성필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발목이 시큰했다.
걸을 수는 있지만, 아프다.
“아, 가볍게 살짝 삐었나 봐요.”
“여기 앉아 계십시오. 안에서 약을 가져오겠습니다.”
“아녜요, 심각한 게 아니라 정말 살짝만 그런 거예요. 저 혼자 갈게요.”
성필은 다른 사람들을 너무 걱정시키게 하지 않으려, 일부러 큰 보폭으로 걸어 중앙 홀로 향했다.
직원에게 바르는 약을 얻은 그는 일단 발목의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발목을 슬슬 움직여보았다.
그는 안심하여 표정이 풀어졌다.
‘그냥 정형외과 가서 소염제 며칠 분 얻어먹으면 낫겠네.’
지금도 크게 아프진 않다. 아마 내일은 더 아프겠지만, 오늘은 괜찮다.
성필이 건물에서 나오자 다들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성필은 씩 미소를 지었다.
“어, 괜찮아요. 큰 건 아니에요.”
“팀장님 병원 안 가셔도 돼요?”
“응. 옛날에도 이런 적 많아서 잘 알아. 아, 다들 괜찮아요. 놀아요.”
“진짜요?”
신아름이 성필의 발목을 바라보았다.
외적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성필은 그녀를 안심시켰다.
“진짜 괜찮아. 근데 이젠 물에는 못 들어가겠다.”
“그건 당연히 안 되죠.”
“나 안에 들어가서 약 좀 바를게.”
“같이 가요.”
“아냐, 가서 놀아. 진짜 별거 아니야.”
성필은 자신이 다친 것으로 휴가 분위기가 망가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한구인이 그런 성필의 의중을 읽은 듯 크게 말했다.
“수구(水球) 해보시겠습니까?”
다른 이들도 성필의 의도를 알아챘다.
신아름은 여전히 성필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런 신아름을 향해, 성필은 미소와 함께 손을 저었다.
“나 진짜 괜찮아.”
“…….”
신아름은 쭈뼛쭈뼛 다른 이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성필은 그녀가 잘 섞여들어 가는 것까지 보고, 자신의 숙소 방으로 들어갔다.
성필은 수건으로 몸을 닦고 ‘끙’ 소리를 내면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발목을 반대쪽 무릎 위에 두고 걱정스레 보았다.
‘발목 삔 적이야 몇 번 있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삔 적은 처음이다.
게다가 여긴…….
‘세이코 씨를 구할 때 다쳐서 깁스를 했던 곳.’
비 올 때마다 형태 없는 무언가가 천천히 뭉개듯이 아프던 부분이다.
성필은 괜스레 발목을 더 크게 돌렸다. 그러자 통증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한 번 다친 곳은 더 쉽게 다친다더니.’
성필은 근심과 함께 발목에 약을 발랐다.
‘더 있으면 다들 걱정하겠지.’
그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
일어서니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프다.
걸을 순 있다. 그런데, 크게 절뚝이는 동작으로 걸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꼴로 나타나면 다들 제대로 놀지도 못할 것이다.
성필은 한숨을 쉬면서 자리를 옮겼다. 절뚝이면서 소파로 다가가 몸을 뉘었다.
“음…….”
모두에게 뭐라고 변명하지?
성필은 이런 모습이 되어서도 모두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단 생각뿐이었다.
모두가 자신이 다쳤단 이유로, 가뿐한 마음으로 즐겨야 할 휴가를 무겁게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발목을 슬슬 돌려보았다.
‘오늘 하루 멀쩡한 척 연기할 수 있을 거 같긴 한데.’
아, 모르겠다.
걷다가 무심코 인상 찌푸리거나 할 거 같은데.
성필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마 십수 분 정도라고 생각한다.
바깥에선 노는 소리가 들린다.
자신은 신경 쓰지 않고 모두가 지금처럼 즐거웠으면 한다.
그때였다.
“이사님?”
장하양의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려왔다.
성필은 급히 소파에 바로 앉았다.
“어, 하양아.”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와.”
장하양이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아까 연기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낭패감이 짙었다.
성필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폰을 들었다. 그리고 폰을 흘끔흘끔 보며, 무언가에 굉장히 열중하고 있단 티를 냈다.
“어, 왜?”
“발목은 괜찮으세요?”
“응. 약 바를 필요도 없었던 거 같아.”
“안 나오세요?”
“아, 그게…….”
성필은 웃으면서 폰을 보였다.
케이어스 공식 SNS 계정 화면이 떠 있었다.
“그으, 컴백 몇 시간 전이잖아? 동향을 파악한다고 해야 하나…… 조금 열중하고 있었어서. 미안. 조금 이따가 다시 나갈게.”
장하양은 벌 받는 학생이라도 된 듯 뻣뻣하게 서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 아까, 이사님 풀로 끌어들이자고 한 거요. 리카가 아니라 저예요.”
“그랬어? 하여튼 장난기가 은근히 많네. 그래도 재밌었으니까 됐지. 아쉽다. 하양이도 빠뜨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저 아니었으면 안 다치셨을 거예요.”
“무슨 소리야. 이건 다친 것도 아니…….”
성필은 장하양의 눈망울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거품이 떠오른 수면처럼 불규칙적으로 일렁였다.
그런 눈을 마주하니 거짓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성필은 힘없이 폰을 손에서 놓았다.
“아니야. 난 괜찮으니까 나가서 애들이랑 놀아.”
“이사님은요?”
“나야 뭐, 여기서 케이어스 컴백 기다릴게.”
“…….”
“하양아.”
성필이 다가오란 뜻으로 그녀에게 손을 까딱였다. 장하양이 한 걸음 한 걸음 무겁게 다가왔다.
“내 진심인데, 너랑 너희들이 나 신경 안 쓰고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어. 나한텐 그게 제일 기쁠 거야. 해줄 수 있어?”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없어. 그게 더 부담이야. 휴가잖아. 네가 즐겁게 보내야 나도 행복해.”
“이사님을 두고요?”
“응, 나는 두고.”
“저는.”
장하양이 결연하게 말했다.
“이사님 혼자 계신 건 싫어요. 이사님을 혼자 떨어뜨려 두고 웃으면서 놀 순 없어요…….”
“그럼 어떡하게.”
성필은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정말 난 괜찮으니까…….”
“저는 그게, 수영도 못 하고. 물놀이도 크게 관심 없어요.”
“응?”
“휴가잖아요. 다 같이 온 휴가. 그러니까, 같이 있어야죠.”
장하양이 성필의 곁에 앉았다.
미리 물기를 닦고 왔는지, 수영복 차림인데도 몸이 젖어 있지 않았다.
“아니, 밖에 애들은?”
“사과하고 오겠다고 말했어요. 이게 제 사과예요. 이사님을 외롭게 두지 않을게요.”
“외롭다니…… 난 케이어스가 있다니까?”
“자꾸 케이어스 이야기 안 하셔도 돼요. 내보내려고 하지 마세요. 저는 정말 이사님과 함께 있고 싶어요.”
성필은 ‘있어 드리고’가 더 옳은 표현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근심 어린 눈길로 장하양을 바라보았다.
성필이 생각하기에, 장하양은 죄책감 때문에 그와 함께 있어 주려고 하는 듯했다.
“하양아…….”
“이사님은 저희랑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즐겁다고 하셨잖아요. 거짓말이셨어요?”
“거짓말 아니, 아닌, 하…….”
“저는 이사님이 행복할 때 행복해요. 제가 행복하길 바라면, 행복하게 해주실래요?”
“…….”
졌다.
성필은 이마에 팔을 걸쳤다.
“알겠어. 미안하다고? 그럼 좀 부려 먹을게. 마실 거 좀 가져와 줘.”
이왕 이렇게 된 거, 성필은 장하양의 죄책감을 바닥까지 없애주기로 했다.
장하양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에 말 좀 해줘. 나 잠깐 쉰다고. 그리고 너 말동무로 같이 있는다고.”
“넵.”
장하양은 10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사장님이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응, 그래.”
장하양은 성필에게 음료를 주었다.
칵테일이었다. 잔 주위에 소금이 쌓여 있다.
성필이 이게 뭐냐고 눈빛으로 묻자, 장하양은 바텐더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읊었다.
“한 모금 마시고, 잔에 쌓은 소금을 혀로 살짝 핥으면 맛있대요. 그런 칵테일이라고 했어요.”
“이름은?”
“못 외웠어요, 아하하…….”
“그냥 음료면 됐는데.”
“바꿔올까요?”
“아냐. 이왕 가져왔으니까.”
장하양도 성필과 같은 칵테일을 가져왔다. 그녀는 칵테일을 홀짝이더니 기분 좋은 신음을 흘렸다.
“맛있어요.”
“그러게. 그럼 음, 같이 케이어스 컴백 카운트…….”
“N플릭스…… 볼래요?”
성필이 손에 든 폰을, 장하양이 부드러운 손길로 다시 소파 위로 내려놓았다.
“영화라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