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화
KS 엔터 수석 프로듀서 강동현.
곧 다가올 케이어스의 컴백을 앞두고,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왤케 죽상이야.”
1팀장이 다가와 그의 테이블에 커피를 올려 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업실을 둘러보았다.
강동현의 작업실은 정호환과 정반대였다.
개판이란 뜻이다.
그 개판에서 강동현은 머리를 싸잡으며 세상 모든 고민을 짊어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팀 반응이 안 좋아서 그래?”
이번에 케이어스는 싱글 앨범으로 컴백한다.
오직 곡 하나로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데 프로듀싱 파트 직원들 반응이 안 좋았다.
무려 이번 컴백곡의 주제가 사랑이었으니.
그냥 사랑이었다면 반응이 이 정도로 안 좋진 않았을 것이다.
‘케이어스한테 이런 틴팝(Teen pop)은 안 어울려요!’
‘너무 갑작스러운 컨셉 변경 아닐까요?’
‘이건 내가 알던 케이어스가 아니야!’
‘케이어스는 이렇게 말랑말랑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쌓아왔던 컨셉은요?’
컴백곡의 주제는 그냥 사랑이 아니라 말랑말랑하고 새콤달콤한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연심의 표현…….
이제껏 강한 분위기만 보여주었던 케이어스가 보여주기엔 너무 달달한 테마다.
“야,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1팀장이 강동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적어도 정호환 이사님이랑 윤희연 이사님이랑 팀원 절반이랑 케이어스 애들은 좋아하잖아.”
무려 이 사랑이란 주제는 케이어스 멤버들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지해주는 사람도 꽤 있고. 그러니까…….”
“아냐, 그거 때문이 아냐.”
“그러면?”
“작사…….”
컴백곡 크레디트 작사란에는 진소유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강동현은 그게 매우 신경 쓰였다.
“사, 사기 치는 기분이라서…….”
“사실 사기가 맞지.”
“그치?!”
‘I Want you’라는 흔하디흔한 제목의 곡.
그 곡의 가사는 이런 형식으로 탄생했다.
일단 진소유와 작사가, 강동현이 나란히 앉는다. 진소유가 가사를 적는다.
[취향이 꼼꼼한 내 맘에 직격★
넌 너무 예뻐서 내 눈을 뺏어가지(찡긋)
널 내 손 안에 넣어두고 싶어엇♥♥♥]
하트랑 별은 왜 넣는지 모르겠지만.
진소유가 가사를 쓰면 작사가와 강동현이 그녀에게 은근히 눈치를 준다.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 이런 단어가 좋지 않을까? 이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그리고 소유야, 상대가 남자인데 ‘넌 너무 예뻐서’라고 표현하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을까?”
“남자라고 어떻게 단정하세요?”
“어?”
“그리고 성차별 발언하시는 거예요? 남자는 예쁠 수 없단 뜻인가요?”
“아니 아니! 일반적인 감상으로 그렇단 거야! 그으, ‘예쁜’ 대신에 ‘멋진’은 어떨까?”
이런 식으로 지적이 들어오면, 진소유가 ‘음’ 마음에 안 든단 신음을 흘리면서 받아적는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넌 많이 스타일리쉬해서 내 맘을 끌지
내 눈을 리드해 어디로든 끌고 가]
이렇듯 종국엔 원본이 거의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가사를 완성하곤 짠 것처럼 박수를 쳐준다.
소유 대단해! 가사를 썼구나! 좋아, 크레디트에 이름을 넣자!
“이건 그냥 사기잖아아아아아!”
“어쩔 수 없잖아…….”
에리카 믹스테입 사태 이후 1팀장과 강동현은 한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바로 케이어스의 아티스트십 살리기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케이어스에게 아티스트로서의 성장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IWY(I Want You)’의 주제도 케이어스 멤버들이 요구한 사랑으로 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 진소유가 작사에 참여하게 됐다.
아니, 참여한 것처럼 보이려고 만들었다.
“심장에 송곳이 박힌 거 같아…….”
강동현이 초조한 투로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 이런 건 내가 바란 게 아니었는데…….”
“야, 뭐 완전히 소유가 썼다고 표기하기라도 했냐? 작사 크레디트 제일 뒤쪽에 이름 넣은 거잖아. 메인 작사가님1, 작사가님2, 그리고 소유. 또 소유가 아예 기여도가 없어?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다 소유 머리에서 나왔어.”
“그, 그렇지만 우리가 도와준 거고……. 시험지를 대리로 쓴 거랑 다를 바가 없지 않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걸음마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해. 케이어스가 더 높이 날아오르기 위한 연습이야.”
에리카가 도망친 사건은 ‘유스’에게 알려졌었다. 그럼으로써 에리카가 지닌 예술혼과 아티스트십을 팬과 대중에게 알릴 기회를 얻었다.
당시 1팀장은 이를 계기로 삼아 케이어스에게 성장 서사를 부여하자고 주장했었다. 그 때문에 강동현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게 첫걸음이고.”
“……응.”
1팀장의 위로에도 강동현은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정신적 지주인 정호환을 만나러 갔다.
집무실로 들어가니 프로듀싱 파트의 팀장급 인사가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좋은 이야기가 오고 간 건 아닌 듯했다.
그 팀장은 강동현이 들어오자 정호환에게 고개를 숙이곤 집무실을 나섰다.
강동현이 문에서 비켜나자 팀장이 그를 흘기면서 지나갔다.
‘또인가…….’
컴백이 지척인데도 반대 의견을 내는 이들이 있다. 어찌 보면 충신들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니까.
강동현은 괜히 기가 죽어 쭈뼛쭈뼛 정호환 앞에 섰다.
“하아.”
정호환은 보기 좋게 세팅한 헤어스타일을 스스로 헝클어뜨렸다. 그러곤 강동현을 보며 푸근히 웃었다.
“자네도 이의가 있어서 왔나?”
“아, 아닙니다. 그게…….”
강동현은 끝끝내 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정호환은 여전한 미소와 함께 그에게 음료를 권했다.
“‘IWY’는 무리수인가?”
“예?”
“평이 안 좋잖나.”
‘IWY’는 케이어스가 쌓아온 이미지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젊음과 사랑을 노래하는 흔하디흔한 틴팝.
물론 윤희연 이사의 기지로 흔하디흔하게 변하는 것만은 막았다. 곡과는 달리 비주얼적으로 차별점을 주었으니.
그렇더라도 기본 테마가 바뀌는 건 아니다.
달콤씁쓸 러브스토리 시작시작, 이런 느낌.
“자네는 알겠지만, 원래 이 곡은 케이어스의 타이틀곡이 됐어야 했어. 내가 폐기했지. 진저 정도가 연습곡으로 간간이 부르는 정도의 곡으로 전락했어. 들은 적 있나? 박성필 이사가 진저가 이 곡을 부르는 걸 듣고 울었다더군.”
“박성필 이사라면…… 에리카를 납치했던 사람 말씀이십니까?”
“왜 기억이 그렇게 바뀌었지?”
정호환이 호쾌하게 웃자 강동현은 안심했다. 회심의 농담이 먹힌 것이다.
“감동적이었다네. 이 곡의 가치를 보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보았던 가치를, 그리고 내가 스스로 없앤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말야. 그런데, 원래 ‘IWY’의 컨셉은 사랑이 아니었어. 굳이 표현하자면 반항이었지.”
“반항이요?”
“어른들을 향한…… 알잖는가? 내가 제일 잘났어. 너는 날 몰라. 나는 나야. 요즘에야 흔한 가사고 컨셉이지만, 그땐 나름 신선했던 것. 그래…….”
소녀연맹이 주요 강점으로 내세웠던 것들이다.
“귀엽고 예쁜 게 아니라, 강인하고 동경하게 되는……. 그게 돌고 돌아 어쩌다 사랑이 됐는지.”
“그게 창작의 재밌는 점 아닐까요.”
“사랑, 젊음, 경쾌하며, 리드미컬하고, 단순하고 중독성 있는 대선율. 무엇 하나 새로울 게 없는 흔한 컨셉. 그래, 난 대중성을 택했네.”
“…….”
“케이어스가 쌓아온 고유한 색을 버리고, 동서고금 인간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을 택했어. 누군가 표현하길, 천박하기까지 하다더군. 그러나 난 그 천박하기까지 한 곡으로 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야.”
대중성을 택한다.
그건 곧 시대를 거스른단 뜻과 같다.
케이어스의 거대한 성공이 증명하고 있다. 이제 대중성의 시대는 가버렸다. KS 엔터의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대중성이란 말 자체가 허상이 되어버렸지. 고작 1년, 2년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게 바뀌었어.”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레거시 미디어가 지배하고 있던 문화적 영향력.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산산이 조각났다. 조각나서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젠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문화적 영향력은 인간 개개인의 손안에, 스마트폰 안에 있다. 이 파편화된 문화 안에 어떻게 대중성이란 게 존재한단 말인가?
“케이팝은 대중성을 획득하여 성장한 게 아니네. 시장이 너무나 거대해졌을 뿐이야. 그래서 그 시장 안에서만 반응을 얻어도 지금까지완 비교할 수 없는 성공을 거머쥘 수 있게 된 거지. 예전처럼, 전 국민이 아는 아이돌은 거의 존재할 수 없어.”
그러니 대중을 타깃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 되어버렸다. 대중을 타깃으로 한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인지조차 설명할 수 없다.
대중을 타깃으로 한 곡을 만들었다. 그럼, 어떻게 대중이 듣게 할까?
텔레비전에 많이 내보내면 되나?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안 보는데?
유명 음원 차트에 광고를 걸면 되나? 음원 어플, 사이트만 해도 10개가 넘어가는데?
인기 있는 아이튜브 채널에 출연해볼까? 그런 채널이 수백 수천 개는 있는데?
“시대가 바뀌었어. 그 시대의 증명을 케이어스가 해낸 거야. 모두 알 필욘 없어. 아는 사람만 알아도 성공할 수 있어. 성공의 정의가 바뀌었다.”
기술 발전은 인간을 자기만의 방에 갇히도록 만들었다.
알고리즘은 그 사람의 관심사만을 추천하기에, 사람들은 타인의 관심사를 알 기회가 현저하게 줄었다.
텔레비전과 같은 통합된 문화 창구가 소멸했다.
그러니 굳이 불특정한 대중의 마음에 들 필요가 없다. 확실한 팬들만을 위한 곡을 만들면 그만이다.
애초에 관심 없는 사람은 영원히 자신만의 알고리즘에 갇힌 채, 아이돌 따윈 보지도 않을 테니까.
강동현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이왕 대중성에 방점을 찍었으니, 홍보에 힘을 쏟는 건 어떨까요? 여기저기 도배하는 겁니다!”
“고작 노래 한 번 듣고 말 사람들을 위해서 말인가? 관두게.”
“…….”
“미국의 최대 레이블사(社) 중 하나는 라디오에 소속 뮤지션의 노래를 방송되게 하는 것에, 그러니까 홍보에 엄청난 돈을 쓴다고 하네. 5,000억 원 정도라더군.”
“5,000억…… 뭔…… 홍보비만…… 회수할 수 있나요?”
“미국은 거대한 시장이야. 5,000억 원 정도는 회수할 수 있단 거겠지. 그 회사는 대중성을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네. 막대한 돈으로 말야. 미국에서 유명해진단 건 곧 세계에서 유명해진단 거니, 돈을 쓰는 의미가 있지. 하지만 우린 그럴 수 없어. 그만한 돈도 없고.”
“그렇지만…….”
강동현은 이상함을 눈치챘다.
혹시 정호환이 계속 말하고 있는 건…….
“어떤가.”
정호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내가 매일 듣는 말들인데.”
“…….”
“솔직하게 말해주게. 내가 바보처럼 보이는가?”
강동현이 표정을 다잡았다.
정호환이, 그의 우상이 진솔하게 답해달라고 했다. 그렇기에 진솔하게 답한다.
“아닙니다. 정호환 이사님이 택하신 길이 곧 케이팝이 나아갈 길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정호환은 미소만 지었다.
“그런가…….”
어느 아이돌이 전국을 들썩였다, 그런 흔한 상용구마저 사라지고.
사람들의 입에서 아이돌 멤버 이름 외우는 게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린.
대중성이 천박한 농담이 된 시대에.
한 남자가 사라진 꿈을 좇고 있다.
케이어스 컴백까지 사흘.
* * *
‘어떻게 스케줄이 이렇게 짜이지?’
오늘 성필은 매우 바빴다.
백설하의 ‘오토마타’ 가이드 보컬 버전 확인.
‘오토마타’ 안무 시안 확인.
‘오토마타’ 의상 컨셉 확인.
‘하나하나 따로 빼서 진행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한 일들인데, 이게 하루에 겹치네.’
정말…….
‘피가 끓어서 참을 수가 없군.’
성필은 날 듯이 출근하여 사무실에 안착했다. 아침 회의가 끝나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박 이사, 몸 안 좋아?”
홍규헌이 걱정스럽게 묻자 성필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바짝 들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럼 뭐어, 주간 회의는 이 정도로…….”
“사장님.”
한구인이 종회(終會) 선언을 막았다.
점심 종이 울리기 직전의 학생 같았던 성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정좌했다.
“올해 야유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본 활동 이후 가기로 했었는데 너무 미뤄졌지 않습니까.”
“그거 몇 주 전에 홍보팀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스케줄이 너무 바쁘니 이번엔 상여금 지급으로 퉁치자고.”
“아…….”
한구인이 간략화된 이전 회의록을 살폈다. 과연, 그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 이사님 의외네요. 야유회 기대하고 계셨어요? 하기야, 이전 야유회 때 레전드 경신하셨으니까요.”
“소, 손 이사님 그건 잊어주십시오…….”
보물찾기 1등이 되겠답시고 강에 다이빙한 한구인. 리카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일은 아직까지 회사 내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제가 가고 싶은 게 아닙니다. 리카 씨가 계속 저한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런 자리에 가져올 의제가 아닌 건 압니다만, 너무 보채셔서…….”
“음, 곤란하네.”
홍규헌이 볼펜을 똑딱였다.
소녀연맹의 컴백 작업에만 몰두해도 시간이 모자라다. 1박 2일이란 귀중한 시간을 써가면서 야유회를 할 여유는 없다.
가로 엔터 사칙엔 만약 야유회를 가지 않으면, 그 비용을 직원들에게 상여금으로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직원들도 그걸 더 좋아할 듯싶은데…….
“민 팀장, 애들 시간 빌 때 여행이라도 보내주는 건 어때? 최대한 빠른 시일 이내에.”
“그럴까요? 리카가 프라이빗 리조트 가고 싶댔는데, 그쪽으로 알아볼까요?”
“참, 걔들은 골라도 비싼 곳을 고르네. 뭐어, 괜찮겠지.”
홍규헌은 최근 멤버들에게 줄 선물을 고심하고 있었다.
가로 엔터를 반석 위에 올려 준 복덩이들 아닌가. 딱히 이유가 없더라도 그녀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
“전부 다 최고급으로 맞춰주자.”
“역시 사장님, 통이 크시네요.”
“그런 편이지. 음, 우리 열심히 일하는 임원들한테도 선물을 줄까. 혹시 또 가고 싶은 사람 있어?”
“평일이에요?”
“팍 씨!”
홍규헌이 불충한 민경섭을 향해 손을 올렸다. 민경섭이 짐짓 겁먹은 체하며 몸을 뺐다.
“당연히 휴일이지. 그 호사를 누리면서 일까지 안 하려고 해?”
“그럼 저는 돈으로 받을게요, 헤헤.”
민경섭, 속이 너무 보인다!
한구인이 살짝 실망한 티를 냈다.
“손 이사랑 한 이사는 어때?”
“저는 괜찮습니다.”
한구인이 초췌해진 몰골로 답했다.
가로 엔터가 커지면서, 슬슬 그의 초인적인 능력으로도 업무를 감당하지 못할 지점까지 왔다.
슬슬 재무팀을 확장할 때가 온 듯했다.
‘예전에 한 이사님이 그러셨지. 한 명 졸도하기 전까지 함부로 맨파워, 즉 직원을 늘리지 않는 편이 좋다고…….’
그 올가미에 스스로 걸려버린 한구인.
정말 불쌍하기 그지없다.
“수영을 못 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리조트를 수영 때문에 가는 사람이 어딨어요? 여기요 여기, 저는 갈래요!”
손혜빈은 기꺼이 홍규헌의 선물을 받기로 했다. 그러곤 떼쓰는 딸처럼 성필의 팔을 붙잡았다.
“성필이 너도 가자.”
“나? 나는…….”
케이어스 활동기인데…….
휴일이 있으면 커뮤니티랑 트잇터 활동이나 하고 싶다. 얼마나 재밌을까, 벌써부터 설렌다.
리조트에 가도 스마트 패드만 붙잡고 있지 않을까. 게다가 글로브 컴백까지 비슷한 시기로 겹치니, 즐거움이 두 배다.
‘아니, 아닌가…….’
성필은 이제 케이어스에 대한 마음이 식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정말로 식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성필이 에리카를 향해 스토킹이나 다름없는 짓거리를 하면서, 겨우 그녀의 아티스트십을 되살려놓았다.
그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이번 케이어스의 타이틀곡은 무려 성필이 전생에 가장 좋아했던 곡이라고 한다.
성필은 그 사실을 진저가 스포일러해주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케이어스 컴백 티저 영상 중 메인 멜로디가 포함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사랑 컨셉 같은 건 죄다 뒤바뀌겠지만, 곡이 남아 있단 게 어디야.’
어쩌면, 케이어스를 다시 사랑하게 될지도…….
“박 이사님이 가시면 저도 가겠습니다.”
갑자기 한구인이 말했다.
성필은 의아했다.
“왜 제가 가면 가신단 거예요?”
“예? 아, 아니…….”
한구인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작게 말했다.
“남자가 저 혼자면…… 외톨이가 될 거 같아서…… 안 간다고 한 거라…….”
“아, 그거 이해해요.”
민경섭이 고개를 주억였다.
“곤란하죠. 왠지 고기는 저 혼자 구워야 할 거 같고, 짐도 제가 다 들어야 할 거 같고, 놀 때 뭔가 눈치 보이고……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 거 같은…….”
“리조트 가는데 짐을 뭐 들 게 있다고 그런 걸 걱정해.”
그리 말하는 홍규헌은, 실은 ‘여자들만 가면 고기를 누가 굽지’란 걱정을 하고 있었다.
홍규헌 본인은 당연히 고기를 제대로 구워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손혜빈이나 멤버들도 그런 경험이 없을 듯했다.
결국 바비큐 파티가 탄 고기 파티가 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
“그래서, 박 이사님 가시겠습니까?”
“저는…… 어…….”
한구인이 눈을 반짝이며 성필을 보았다. 그에 성필이 답했다.
“안 갈래요.”
“손나(그런)…….”
“사장님이 계시잖아요. 외톨이가 될 걸 왜 걱정하세요.”
“사장님, 저와 같이 놀아주시겠습니까?”
“진짜 죽이고 싶으니까 그딴 말투 쓰지 마.”
“히잉…….”
한구인과 홍규헌은 오랜 친구다.
홍규헌과 한구인은 오랜 친구.
친구.
그러니까, 리조트에 가면 둘이 친하게 잘 놀…….
‘…….’
…….
“어, 음, 저 고민해봐도 될까요?”
“박 이사님, 와주시는 겁니까?”
“생각 좀 해보고요. 저는 주말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상황 보고 결정할게요.”
“뭐야. 우린 일 안 한단 거 같네.”
그렇게 소녀연맹과 임원진에게 줄 선물에 관한 논의가 끝났다.
불참하기로 한 민경섭은 결혼축하금 명목으로 리조트 비용을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민경섭은 환호성을 지르면서 회의실에서 나갔다.
홍규헌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상사랑 노는 것보다 돈을 받는 게 기쁜 거구나…….”
정보: 당연하다.
* * *
’오토마타‘ 안무 시안 완성.
성필이 연습실로 들어오자 안무가들이 깍듯하게 인사해왔다. 본인들이 만든 작품을 심사할 사람이 들어왔으니 겸손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
일단 안무가 개인이 시안을 만들고 나중에 합친다. 서유선이 주장한 이 방법은 속도가 빠르단 장점이 있다.
약 10일 정도를 제한 시간으로 잡았지만, 정작 안무 제작은 거의 3주를 잡아먹었다.
‘원래 쉽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정된 컴백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시간이 상당히 빠듯하다.
‘만약 이 완성본이 그럴듯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반려해야 해.’
웬만해선 그런 사태가 오지 않길 바란다.
데뷔 당시 소녀연맹이 안무 연습에 쏟는 기한은 약 3달이었다.
그 후로 점점 줄어들다가, ‘애플 크러쉬’에 이르러선 한두 달 정도만으로 숙달이 가능하게 됐다.
‘다들 성장했단 증거지.’
그렇지만 ‘오토마타’는 다른 곡들과 궤를 달리한다. 춤에 중점을 둔 곡답게, 지금까지 소녀연맹이 소화해왔던 안무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을 것이다.
‘두 달이 채 남지 않았어. 그 안에 우리 애들이 숙달할 수 있을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보컬 난이도가 높지 않단 점이다.
성필은 복잡한 심경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안무가들을 쭉 둘러보…….
“아라야?”
중간에 조아라가 있었다.
그녀는 통일성을 주기 위해 안무가들처럼 검은색의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였다.
매일 개량 한복만 입는 한국 전통 무용가 허수인마저 트레이닝복을 입어, 그들의 통일성이 더욱 돋보였다.
“넌 왜 그 안에 있어? 안무가 코스프레하는 거야? 얼마나 안무가가 되고 싶으면…….”
“나도 시안 같이 추거든요?!”
“그래?”
“나 폼으로 여기 계속 들락거린 거 아녜요. 안무 완성될 때마다 이분들이랑 같이 췄어요. 당연히 시안도 같이 출 수 있어요.”
“아, 그렇구나.”
성필은 한시름 놓았다.
조아라가 미리 시안을 숙달했다면 컴백 준비가 훨씬 편해지니까.
“그럼 볼까요?”
조아라와 안무가들이 자리를 잡았다.
일곱 명이 춤을 준비했다.
원래 ‘오토마타’는 13인용 안무로 제작됐다. 하지만 7은 13과 같은 홀수라, 군무의 크기를 포기하면 흉내는 낼 수 있다.
조아라는 심호흡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토마타’의 데모 버전 선율이 흘러나오자마자 눈을 번쩍 떴다.
“잘 봐요.”
이게.
“올해의 퍼포먼스상을 죄다 휩쓸 춤이에요.”
조아라는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었다.
체력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본능을 배제하여, 머리로 신체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했다.
정해진 안무에 맞춰 움직이는 몸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몸의 무게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춤에 완전히 적응한 신체는 이윽고 춤에 굴복하여 부자유 속에서 활개친다.
춤과 몸이 하나가 되는 감각.
‘아저씨, 보여요?’
조아라는 성필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기력조차 없이 춤에 온 힘을 쏟고 있었으니까.
‘나 엄청 괴롭게 춤추고 있잖아요.’
오직 성필의 이상에 닿기 위해.
그녀는 즐거움을 내던지고 괴로움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그 고통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일체감에 황홀해하며, 그녀는 그 답을 기다린다.
이 괴로움의 유일한 보상.
“하아, 하아, 아저씨…….”
춤을 마친 조아라는 땀도 닦지 않고 묻는다.
“어때요. 100점?”
조아라의 어린아이 같은 말투에 안무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안무가들은 성필의 답을 기대했다.
100점이냐고?
100점일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만들었으니까!
“좀 부족한데?”
정적.
기분 나쁜 침묵.
깨고 싶은, 동시에 깨고 싶지 않은 고요함.
조아라가 입술을 떨며 겨우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네?”
100점이…… 아니다?
소녀연맹, 컴백까지 약 두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