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34화 (534/760)

534화

가로 엔터 연습생 선발 회의.

참석자 홍규헌, 성필, 한구인, 손혜빈.

신인개발팀 신태웅, 매니지먼트 팀장 민경섭.

“와, 귀엽네.”

손혜빈은 모니터에 비친 연습생을 보곤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화면 안의 연습생은 자기소개 후 귀엽기 그지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주로 나이 탓에 귀엽게 보였다.

15살이었으니.

“음…….”

성필은 애매함을 느끼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몇몇은 퍼포먼스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평가하려 펜을 움직였고, 또 몇몇은 끝까지 화면을 보았다.

‘회의까지 올라온 연습생은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는 거지.’

이 회의에서 과반수를 획득하면 연습생으로 들어온다.

성필은 펜으로 그 연습생의 이름 옆에 X를 치려고 했다. 그러나 펜은 종이를 두드리기만 할 뿐, 끝내 X를 그리지 않았다.

‘모르겠네.’

15살이면 너무 어린데.

내년에 데뷔할 차기 그룹으로 데뷔하면, 그때 이 연습생은 16살이다.

‘귀여움 외엔 눈에 띄는 것도 없고.’

소녀연맹의 동생 그룹이 될 내년의 보이그룹.

그다음은 걸그룹이 나오고, 또 그다음은 보이그룹이 나올 것이다.

만약 이 연습생이 가로 엔터의 차차차기 그룹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20대 초반이 될 것이다.

‘15살이면…… 너무 애매해.’

성필은 결국 X를 그려 넣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회의가 끝난 후, 다른 이들의 결정을 봐야 알 것이다.

“이분입니까?”

화면 안에 또 다른 연습생이 떠올랐다.

딱 보아도 혼혈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구인은 흥미롭단 듯 그를 보았다.

“예.”

신태웅이 그 연습생의 자료를 들고 드문드문 이름을 읽었다.

“즈, 즈비그니예프 콜베르게르…… 학생……?”

“기대됩니다.”

한구인은 이 연습생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사실 그만이 아니라, 가로 엔터의 모두가 그에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었으니 말이다.

[시작하겠습니다.]

콜베르게르는 무려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왔다. 유려한 손길로 베이스를 연주하던 그는 퍼포먼스를 마치고 평가를 기다렸다.

[베이스를 10년이나 배우셨네요. 프로 주자(奏者)를 지망하셨고요. 콩쿠르 경력도 화려하신데, 왜 갑자기 아이돌이?]

그 순간, 콜베르게르가 베이스를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쿵 소리와 함께 넘어진 베이스는 육중한 무게가 주는 충격 때문에 현이 끊어졌다.

마치 이게 자신의 결심이자 의지라고 만방에 선언하는 것 같았다.

[폴란드에선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배운다고 하면 주변에서 칭찬하기 바쁩니다. 미래의 쇼팽이네 뭐네, 칭찬이란 칭찬은 전부 들어요. 클래식을 어떤 것보다 큰 스펙으로 쳐줘요. 클래식이 대중문화죠.]

한구인이 고개를 주억였다.

폴란드는 쇼팽과 온갖 뛰어난 클래식 음악가의 나라다.

[그에 비해 팝 보컬이나 댄스를 배운다고 하면 이상하게 봅니다. 그게 마음에 안 듭니다.]

[네……?]

[제 아버지의 조국에, 제가 컨템포러리 컬쳐의 빛을 가져갈 겁니다.]

[콜베르게르 씨도 폴란드인 아니세요? 아버지의 조국이란 건 무슨…….]

[제 뿌리는 두 개입니다. 두 개의 조국이죠. 폴란드인이란 정체성에 갇히길 바라지 않습니다. 한국인이자 폴란드인이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고, 저도 그리 살길 원합니다.]

[그럼 군대도 가시게요?]

[무슨 군대요?]

[한국인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해요. 징병제거든요.]

[징병이요? 누구요? 저요? 제가? 어……?]

콜베르게르는 지금 당장이라도 한쪽 정체성을 포기할 듯, 표정에 형용할 수 없는 고뇌의 빛이 깃들었다.

[다음 퍼포먼스 보여주실래요?]

[저, 저, 하, 한국에서 몇 개월 체류하면 군대로 끌려가고…… 그럽니까?]

참 특이한 연습생이다.

어쩌면 가로 엔터로 찾아왔던 모든 연습생 중 가장 특이할지도 몰랐다.

특이한 건 특이한 거고, 성필은 X를 넣었다. 노래는 성악을 배웠는지 잘 부르는데, 춤을 거의 못 췄다.

‘폴란드에 한국처럼 연습생 양성을 위한 시스템이 정착해 있을 린 없지.’

콜베르게르는 고국에서 나름대로 연습생이 되기 위해 노력했을 테지만, 그 수준은 독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에 비해 한구인은 들떠선 O를 그렸다. 독일과 폴란드는 이웃이니 친근감을 느끼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닐 텐데…….

“아으, 드디어 끝났다.”

손혜빈이 기지개를 켰다. 그녀는 사방으로 눈웃음을 보내며 ‘수고했어요’라고 말했다.

모두 이번 회의를 끝나자마자 나른한 탈력감을 느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게 올해 마지막 연습생 선발 회의이다.

가로 엔터는 스카우트나 특별 오디션이 아니고서야, 더 이상 남자 연습생을 받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보자…….’

성필의 다음 일정은 퍼포먼스 디렉팅팀의 ‘오토마타’ 안무 컨셉 설명과 시연이다. 서유선이 디렉터로서 홍규헌과 임원들 앞에서 발표한다.

‘유선 씨가 잘하실 수 있을까.’

현재 서유선이 밀어붙이는 ‘오토마타’ 안무 줄기는 A&R팀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표결로는 결판이 나지 않는 문제다. 홍규헌의 최종 결정이 필요했다. 그녀가 수정을 요구하든 폐기를 강요하든, 오늘 결판이 난다.

‘다행히 사장님 기분이 좋아 보이셔.’

서유선이 조금 떨거나 말을 더듬어도, 홍규헌이 잘 봐줄 것 같다.

“저기.”

그때 홍규헌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엔 오래 묵은 불만 같은 게 배어 있었다.

자연스레 느슨했던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이거 옛날부터 나만 느끼는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 연습생들 뽑는 게…….”

홍규헌은 딱히 임원들을 질책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랬기에 말투는 온화했으나, 그녀가 현재 상황에 어떠한 불만이 있단 건 알 수 있었다.

“왠지 다 WTP랑 비슷한 느낌 아니야?”

좌중이 침묵에 잠겼다.

모두의 머릿속에 WTP 멤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면 PTR―17이거나.”

KS 엔터의 최신 세대 보이그룹이다.

“특히 걔, WTP에 메인 비주얼 두 명 있잖아. 어째 비주얼이라고 뽑은 애들을 보면 죄다 얼굴이 걔네 닮은 거 같아.”

“…….”

“내 착각이야?”

착각이…… 아니다.

WTP.

성필이 최초로 소녀연맹을 구상했을 때 모티프로 삼았던 두 개의 그룹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미래의 케이어스였다.

현재 WTP는 연신 성공가도를 이어가고 있다. 성필이 처음 가로 엔터로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이다.

그들의 행보 한번 한번이 사실상 케이팝이 도달하는 최정상이다. 돌아올 때마다 또 다른 정상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돌판 커뮤 같은 데서도 말 자꾸 나오더라. 물론 거기 상주하는 인간들이야 욕하고 불만 가지는 게 거의 생업이라지만, 그래도 의견은 의견이고 타당성이 있어.”

요즘 데뷔하는 애들 비주얼이 그냥 다 WTP 모티프로 삼은 거 같더라. 비슷하게 생긴 애들만 연습생으로 뽑는 거 아니냐.

비슷하게 생겼어도 죄다 억울하게 닮았다…….

그런 장작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커뮤니티로 들이부어진다.

“물론 이해해. 사람들이 좋아할 얼굴이란 게 사실 다양하기가 힘들지. 특히 그만큼 커다란 팬덤을 만들어낸 상(相)이니까, 영향을 아예 안 받을 수도 없어. 근데 계속 지켜보기만 하기 뭐해서, 이 자리를 빌려 말하는 거야.”

홍규헌이 성필과 손혜빈을 번갈아 보았다.

“다음 그룹을 위한 명확하고 고유한 이미지가 있는 거지? 우리 프로듀서들.”

* * *

성필과 손혜빈은 2층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복도 천장을 바라보았다.

“성필아, 나 세뇌당했나 봐.”

“세뇌?”

“WTP를 너무 자주 보다 보니까, 미남의 기준이 걔들로 바뀐 거 같아. 왜, 인기 있는 사람은 괜스레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잖아.”

남들이 좋아하니까, 자신의 타입이 아니더라도 더욱 끌리게 된다.

그건 인간의 본능과 맞닿아 있다.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자주성을 가져라, 진정한 네가 돼라’라고 하지만, 인간은 원래 잘 휩쓸리는 동물이다.

그게 훨씬 생존에 유리하니까.

다수가 선택한 결론은 웬만해선 합리적이다.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다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인류 역사 30만 년 동안 살아남아 왔고, 자기만의 길을 택한 이들은 대부분 사자 밥이 됐다.

그래서 나답게 살기가 힘든 것이다. 본능을 거슬러야 하니까.

“이해해.”

성필이 씁쓸히 답했다.

솔직히, 안일했다.

막연히 ‘잔뜩 모은 다음에 데뷔조를 고르면 된다’라고만 생각했다. 어쨌거나 연습생이 많으면 필연적으로 개성적인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으니.

어느새 연습생 선발이 하나의 경향성을 지니게 됐을 줄은 몰랐다.

“연습생을 뽑는 기준이 있단 게 나쁜 건 아니지만…….”

흔히 대형기획사마다 선호하는 얼굴상이 있다.

연습생들을 보면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선발 과정부터 하나의 기준으로 걸러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린 좀 그랬네.”

가로 엔터의 문제는, 그 경향성이 모방이란 데 있다. 성공한 아이돌의 얼굴들을 기준으로 잡고, 단지 그것을 따라가려고만 했다.

“사장님이 참다 참다 한마디 하신 걸 거야. 비록 선발 과정에서 편견을 없애진 못했지만, 데뷔조 선발에선 더 눈을 뜨라고.”

성필의 말에 손혜빈이 옅은 미소를 띠었다.

“그럴까?”

“근데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잖아. WTP가 웬만큼 대단해야지.”

낙수효과란 게 있다.

경제학에선 사장(死藏)된 이론이지만, 정치인들의 선전에 자주 쓰여 대중에게도 익숙한 단어다.

비록 경제학에선 무용하다고 결론이 났다지만, 문화계에선 전혀 다르다.

현재 케이팝씬은 WTP가 발생시키는 막대한 낙수효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그들이 흘려보내는 낙수(落水)를 허겁지겁 받아마시는 것만 해도 바빴다.

“트렌드는 따르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휩쓸리는 거잖아.”

“응…….”

“그렇지만 휩쓸리는 가운데에서 우리만의 길을 찾으려고 노력해보자.”

가로 엔터의 최종적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계를 좌지우지하는 트렌드 선도력을 가질 것이다. KS 엔터처럼, 언젠가 반드시.

“가만 보면 우리 소련이들은 되게 개성적이지. 외모든 성격이든 겹치는 게 하나도 없잖아. 거의 회전문이야.”

“우리 애들 대단한 건 말해서 입만 아프지.”

“그래 너 대단하다.”

손혜빈이 장난스럽게 성필을 어깨로 밀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그렇지만 성필은 그녀의 마음 안에 쌓인 근심을 보았다.

‘그룹을 준비한단 건 보통 정신으로 못 하는 거니까.’

회사의 돈을 쓸뿐더러 시간과 인간의 인생마저 건다. 그 결과를 제대로 확인하기까지 짧게는 1년, 길면 3년을 두고 보아야 한다.

프로듀서로서 그 기로에 선 손혜빈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팁 좀 줘봐.”

“누나 나랑 같이 프로듀싱해 온 거 아니었어?”

“그거랑 이건 별개지. 총괄 프로듀서님 혜안 듣고 싶어서 그래.”

“팁이랄 게 있나. 나도 임기응변으로 헤쳐온 건데.”

“어?”

손혜빈의 의외의 답에 눈을 크게 떴다.

성필은 어떤 일이든 확고한 생각과 신념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머릿속에 뚜렷한 목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임기응변이라니?

“프로듀싱이란 건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일이잖아. 나도 맨땅에서 들이박으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었어. 솔직히, 난 아직도 얼떨떨해.”

소녀연맹이 어떻게 이렇게 성장했는가.

되짚어보면 ‘아, 이러이러해서 성공했구나’라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경기가 끝난 다음의 훈수나 마찬가지다. 이미 결과가 나와 있는데 해석하는 것쯤이야 누구든 못하겠는가.

진짜 중요한 능력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헤쳐 나가는 것이다.

“모두의 도움이 없었으면, 뭣보다 운이 없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운이라니, 너…….”

손혜빈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물론 연예계의 모든 게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나 시원하게 성공 원인이 ‘운’이라고 할 줄은 몰랐다.

“운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철저한 기획력이지. 대형기획사들이나 가질 법한 것들. 누나, 난 맨땅에서 시작했지만 이젠 아니잖아.”

가로 엔터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홍규헌, 성필, 한구인, 손혜빈, 민경섭, 정지음. 이렇게 여섯이서 힘을 모아 쌓아 올린 소녀연맹이란 이름이, 가로 엔터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지음이가 있고, 유이 씨가 있고, 재호 씨도 있고, 나도 있어. 엄청난 발판이 있는 거야. 나처럼 끙끙대면서 땅에 머리 박지 말고, 모두와 머리를 모아서 최선을 만들어내자.”

“……너 나한테 부담 엄청 준다. ‘나랑 비교 안 되게 좋은 환경이니까 당연히 성공해야지’를 엄청 돌려 말하고 있잖아.”

“그런 뜻 아니야! 내 말은, 내가 줄 팁이 없단 거야. 있다면…….”

“있다면?”

“가로 엔터의 모두와 함께 쌓아온 인연이랄까?”

“리카랑 같이 지내더니 씹덕 다 됐네. ‘랄까?’ 이 지랄.”

손혜빈은 후련하게 숨을 뱉었다.

“알겠어. 열심히 할게. 근데 너 안 가봐도 돼? 퍼포먼스팀한테…….”

“아 맞다.”

성필은 시간을 보곤 다급하게 떠나갔다.

손혜빈은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홍규헌이 했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다음 그룹을 위한 명확하고 고유한 이미지가 있는 거지?’

명확하고 고유한 이미지는 아직 없다.

하지만 목표는 있다.

손혜빈은 백설하가 ‘우리들의 프로듀싱’을 시작할 때 말했던 것을 아직 기억한다.

‘진짜 대중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게 손혜빈의 목표였다.

물론 그녀도 안다. 현시대에 보이그룹의 대중성이란 천박한 농담이 되어버렸단 사실을.

보이그룹이 대중적일 수 없는 게 아니다.

대중적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가 힘을 잃고, 미디어의 영향력은 파편화되어 여기저기 흩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의 거대한 창구로 문화를 소비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에 갇혀 자신만의 관심사를 소비할 뿐.

누군가에겐 당연히 알아야 할 유명 아이튜버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아는 게 당연한 연예인이, 다른 누군가에겐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허깨비일 수 있다.

이런 시대에…….

‘진짜 대중음악을 하는 보이그룹이라니…….’

파편화된 관심 안에서도 눈에 휘둥그레질 수익을 창출시킬 수 있는 게 보이그룹이다.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만 잘 보여도 건물 몇 채는 우습게 세운다.

케이팝 시장은 너무나 거대해졌으니까.

그래, 보이그룹은 대중적일 수 없는 게 아니다.

대중적일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난 바라.’

2세대, 아이돌의 부흥기였던 그 찬란했던 시절의 조각.

손혜빈은 그 시대를 아직 잊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을 향수인가, 아니면 숭고한 꿈인가.

미래에서 오지 않고서야 누구든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 * *

“이사님 안녕하세요!”

연습실로 들어서자마자 서유선이 밝게 인사해왔다. 요즘 그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성필은 그게 기뻤다.

드디어 서유선이 회사에 적응해준 것 같…….

“흐헤헼.”

술 마셨네.

성필은 쓰디쓴 미소를 입에 걸었다.

업무 시간에 취해 있는단 전대미문의 사태를, 의외로 회사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서유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이, 그가 취해서 일으키는 불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무가들도 이젠 익숙해져선 그의 뒤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갈까요?”

“넵!”

성필과 서유선이 나란히 서서 사장실로 향했다. 그 뒤로 여섯 명의 안무가들이 따라왔다.

성필은 사무실 앞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언제나 홍규헌을 마주할 때면 마음이 들뜨곤 해서, 이렇게 속을 다스리는 루틴이 필요하다.

“사장…….”

성필이 노크하려던 때.

“다키스트가 왔―!”

서유선이 사장실로 뛰어들려 했다. 그 순간 안무가들이 그의 사지를 붙잡아 구속했다.

“뭐, 뭐예요!”

서유선은 당황하여 바둥거렸다.

성필은 노크하려던 것도 잊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서유선을 바라보았다.

“유선 씨 설마 방금…….”

사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려던 건가?

성필이 눈빛으로 묻자, 눈빛으로 답이 돌아왔다. 서유선이 아니라 다른 안무가들에게서 말이다.

성필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다.

서유선이 술을 마시는 게 그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도움을 주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역시 술은 술이다.

‘어떻게 사장님한테…….’

만약 서유선이 성필의 사무실로 박차고 들어왔다면, 성필은 기꺼이 그 장난을 받아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규헌에게, 사장님에게, 감히…….

“유선 씨가 깨고 할게요. 여러분, 죄송합니다. 사장님께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안무가들이 당연하단 듯 수긍했다.

서유선만 빼고.

“왜요?!”

* * *

숙취해소제, 배즙, 초코우유와 시간의 힘을 빌려 서유선이 술에서 깨어났다. 그는 성필과 마주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적당히 취하셨던 게 아니네요.”

“저, 적당히 취하면 못 하죠 그렇겐…….”

성필은 그가 깨어나면 그의 무례를 지적하며 화내려 했다. 그런데 쪼그라든 그를 보니 화낼 마음이 아예 사라졌다.

‘술을 마셔가면서까지 디렉팅을 맡고, 우리 업무를 진행해주고 계신 거야.’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을 텐데도 끝까지 남아 본인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일단 성필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기억은 나세요?”

“네, 네……. 제가 사장실 문을 차고 들어가려고 한 거 기억납니다, 네…….”

서유선은 이렇게 설명했다.

항상 연습실에 등장할 때마다 ‘다키스트가 왔다!’라고 외치면 다들 즐겁게 웃었단 것이다.

홍규헌도 그러지 않을까?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좋은 아이스 브레이킹이 되지 않을까? 그런 사고방식이었다고 한다.

“…….”

성필은 할 말을 잃었다. 서유선은 그야말로 잘못된 사회화의 표본이었다.

하긴, 술 마시고 얻어낸 사회성이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마는.

사람들도 술 마실 때는 형제자매나 다름없이 굴다가, 다음 날 다시 만나면 데면데면한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냥 제가 할까요? 유선 씨 계속 사장님 앞에서 설명하는 거 부담스러워하셨잖아요.”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서유선은 그냥 홍규헌을 무서워했다. 아무래도 사장이란 이름이 주는 위압감 탓인 듯했다.

홍규헌의 인상 자체가 처음 보는 이가 다가가기 힘들게 차갑기도 하고 말이다.

“아뇨!”

서유선이 곧바로 부정했다. 성필이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였다.

그는 스스로도 소리친 게 당황스러운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 알아요. 오늘 일도 그렇고, 이사님께서 저를 못 미더워하시는 거 충분히 이해해요. 하, 하지만 그래도요, 제가 할게요. 저는 퍼포먼스 디렉터고, 또…….”

서유선은 성필을 흘끔거리며 답했다.

“아이돌이니까요…….”

서유선이 아이돌이라고 한 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의 의지는 전해졌다.

그는 어떻게든 홍규헌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할 속셈이다.

‘오토마타의 브릿지 댄스 브레이크는 의견이 갈려.’

주로 안무가들보다 회사 직원들이 더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렇다, A&R팀의 이재호를 위시한 회사 직원들이 반대하지만…….

‘브릿지 댄스 브레이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안무 전체가 문제라는 입장이지.’

‘오토마타’의 안무 구성은 결함이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중독성 있게 박힐 포인티한 요소가 부족하다. 양상헌은 그 안무를 일컬어 기교의 나열이라고까지 표현했었다.

‘그건 나도 인정해.’

성필은 서유선이 이끄는 퍼포먼스팀과, 이에 반대하는 다른 팀원들의 의견 모두에 동감한다.

조아라는 의견이 갈리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에 성필에게 조언을 구했었는데, 성필의 답은 이러했다.

‘논쟁 끝에 답이 나올 거야.’

만약 조아라가 흔들리지 않는 의지로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면 몰라도, 그녀가 흔들리는 이상 양쪽이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다.

그 결전은 오늘 사장실에서 열린다.

그리고 한쪽의 수장인 서유선은…….

“하, 할 수 있어요. 할게요. 하, 하면, 하면 된다!”

상태가 좋지 못했다.

“유선 씨.”

“할 수 있어요!”

“네, 할 수 있으신 건 알겠어요. 그냥 팁 좀 드리려고요.”

서유선이 화색을 보였다.

그는 한구인과 대화하며 성필의 전설에 대해 들어왔다.

리카를 감복시켜 무릎 꿇렸다던가(스스로 꿇음), 백설하에게 고백하여 연습생으로 들였다던가(사실임), 장하양이 일하는 곳마다 쫓아다녀서 결국 그녀의 꿈을 접게 했다던가(일부 사실임)…….

한구인의 말만 들으면 성필은 설득의 신이었다. 그런 신이 서유선에게 가르침을 준다.

“논리는 타인을 설득하는 중요한 수단이 아니에요.”

“네?”

“인간은 논리적인 생물이 아니에요. 감정적인 동물이에요. 사실 인간성이란 단어는 너무 고평가받는 경향이 있죠.”

“에……?”

서유선은 너무 당황해서 일본어 감탄사마저 나왔다.

“그런 인간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감정이에요. 그리고 감정을 건드리는 건 스토리죠. ‘죄지으면 안 돼’란 너무나 당연한 도덕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죠? ‘필요하면 사람도 죽일 수 있어야지’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한테 논리로 싸워봤자 답이 나오겠어요?”

인간은 모두 자신만의 논리가 있다.

“그런 논리를 깨뜨리는 게 스토리예요. 백날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문학의 힘을 빌리는 게 훨씬 낫죠. ‘죄와 벌’ 같은 거 읽으면 깊은 마음으로부터 감복해서 ‘그래, 어떤 경우든 인간은 죄를 범하곤 살아갈 수 없어……’란 깨달음을 얻을 거예요. 그게 이야기의 힘이죠.”

“죄송한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주장이 아니라, 공감을 유도하란 뜻이에요. 예를 들어, 유선 씨가 그 안무에서 봤던 빛이라던가요. 그때의 감상을 순수하게 사장님께 이야기하는 건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때의 감상…….”

서유선이 보았던 빛…….

* * *

며칠 전.

서유선이 취한 사람 특유의 나른한 어투로 설명했다.

“불렛 타임이란 걸…… 다들 오해하시는 거 같으니까 타임 슬라이스라고 부를게요. 타임 슬라이스가 더 직관적이죠? 이걸 춤에 적용하면 이런 거예요.”

진행하는 시간 속 이미 지나간 시간을 함께 배열하는 것이다.

서유선이 그리 말했지만 다들 이해한 눈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에티엔느, 쥘 마레가…….”

서유선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잔상이 남아요!”

“아, 잔상.”

안무가들이 순식간에 타임 슬라이스란 걸 이해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기법이다. 캐릭터가 주먹을 내지르면, 그 빠르기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개의 잔상을 남기는 것이다.

시간을 진행시키면서 이미 지나간 시간을 같은 장면에 전시하는 것.

“그럼 멤버분들이 느리게 춤을 추면서, 잔상을 남기듯 템포를 각자 조금씩 다르게 가져가는 건가요?”

“이제 느려진단 이미지에서 탈피해요! 그냥 말 그대로 타임 슬라이스만 하는 거예요! 다섯 사람이 정면에서 보면 한 명처럼 보이도록 겹쳐 서고, 다 같이 똑같은 템포로 같은 춤을 춰요. 여기까지 이해하셨죠?”

“네.”

“그리고 가장 뒤에 사람부터 한 명씩 중간 중간 멈추는 거예요. 오케이?”

그러면 잔상이 남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퍼포먼스를 펼치는 게 다섯 명뿐이니,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잔상 효과보다 극적이진 않겠지만 말이다.

“고작 다섯 명으로 그런 안무를 만드는 의미가 있나요?”

“그게요.”

서유선은 이런 아이디어를 본인이 냈단 게 너무나도 기쁜 듯 자꾸만 웃었다.

“멤버분들이 멈출 때마다 각각 다른 장르의 춤을 추는 거예요. 그럼 멋지겠죠?”

“뭐, 가장 뒷 사람은 주킨을 추는 자세로 멈추고. 그다음 사람은 현대무용 테크닉 포즈로 멈추고요?”

“네!”

“잠깐만요.”

하희진이 즉시 서유선을 제지했다.

“그럼,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추는 춤의 장르를 바꿔야 한단 거잖아요.”

“그렇죠. 아, 이 타임 슬라이스엔 다른 의미도 있어요. 보통 사람들이 춤을 그리 자세하게 관찰하진 않잖아요. 적어도 하나하나 뜯어보진 않잖아요? 근데 이렇게 한 명씩 멈추면, ‘아 쟤들이 저런 춤을 추는구나, 저렇게 다양하고 역동적인 포즈로……’ 같은 생각이 들지 않겠어요? 와, 저 천재인가 봐요!”

“굉장히 혁신적이고 기발한 생각이란 건 인정해요. 그런데 다른 장르의 춤을 그 짧은 시간 내에 연속적으로 바꿔서 춘단 건 엄청 힘들 거예요.”

“왜요?”

“‘왜요’라뇨…….”

술 취한 서유선은 다 좋은데 가끔 너무 저돌적이고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춤의 장르가 다르단 건, 그 기본자세부터 다르단 뜻이니까요. 자동차라면 도로를 쭉 달리면서 기어를 계속 바꾸는 거예요. 덜컹거리지 않겠어요?”

일곱 안무가들이 거의 매일같이 모여 토론하며 깨달은 건, 다 같은 춤이라도 장르에 따라 테크닉이 천차만별이란 사실이다.

“발레는 땅을 디딜 때 발의 외곽선에 무게를 싣고 움직인다면, 한국 무용은 발의 안쪽에 중심을 두는 거잖아요. 애초에 그런 식으로 무용이 체계화돼 있는데, 연속적으로 장르 체인지를 하려면 힘든 게 당연하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와, 희진 님 한국 무용도 아세요?”

“네? 여기 한국 무용가분이 계시잖아요.”

한국 전통 무용가인 허수인이 존재감을 발산했다.

“쑤욱― 대머리이―.”

“와, 이건 진짜 들을 때마다 신기하네요. 수인 님 뵙기 전까지 판소리란 게 이렇게 기교적인 건지 몰랐어요.”

“헤헤.”

서유선의 칭찬에 허수인은 부끄럽단 듯 손을 내저었다.

“암튼.”

하희진이 다시 주제를 원래대로 가져왔다.

“그러니까, 그런 형식으로 단기간에 여러 장르를 차례로 배열하는 건 힘들다고요.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이 중에서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걸요?”

서유선이 일어나려고 하자 하희진이 그의 손목을 잡아 다시 앉혔다.

“소녀연맹분들이 힘들어하실 거란 거예요. 잘못하면 우습기만 하지 않겠어요?”

“그럼 시켜볼까요?”

“네?”

다음 날.

“뭐예요, 팀장님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팀장님은 어딨어요?”

신아름이 아침 일찍부터 불려왔다.

서유선은 비굴한 미소를 띠며 안무 시연을 부탁했다.

“팀장님은요?”

“고, 곧 오실 거예요.”

“음.”

신아름이 어쨌든 알겠다고 하자, 서유선이 어제 모두와 머리를 모아 만든 안무를 보여주었다.

신아름은 고개를 까딱이며 리듬을 탔다.

“예상은 했는데, 진짜 말도 안 되는 걸 만들었네요. 뭔 10초 동안 중심이랑 자세가 몇 번을 바뀌는 거예요?”

신아름이 감탄과 경악을 반씩 섞어 말했다.

서유선을 제외한 안무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서유선이니까 할 수 있는 안무였다.

보통 댄서들은 장르에 맞게 근육이 발달한다. 그래서 다른 장르의 춤을 추다 보면, 꼭 근력이 부족한 부위가 있다.

그런데 서유선은 놀랍도록 모든 신체가 밸런스 있게 발달했다.

신아름은 새삼 서유선의 능력에 감탄했다.

‘진짜 말도 안 돼.’

모든 신체가 밸런스 있게 발달한다. 이는 말이 쉽지 실현 불가능한 이상(理想)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베테랑 보디빌더는 전신 근육이 모두 같은 밸런스를 지니도록 발달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근육이 균형적으로 발달되었더라도, 그 근육을 쓰는 건 별개의 문제야.’

스포츠 선수들은 보디빌더의 근육을 보고 풍근, 즉 바람이 든 근육이라고 부른다. 근육의 발달에 비해 스포츠 퍼포먼스가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근육이 많다고 운동을 잘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유연성 좋고 근력이 있다고 춤을 잘 추는 게 아니란 거다.

각 신체의 협응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협응력에 중심을 두고 운동하면, 밸런스 있는 근육을 만드는 게 힘들다.

보디빌딩 기술이 없고서야, 사람이 모든 근육을 같은 강도로 쓰면서 운동할 순 없으니까.

‘사실상 쳇바퀴 도는 문제…….’

그런데 서유선은 그걸 해냈다.

근육이 균형 잡히게 발달함과 동시에, 전신의 협응력 또한 발달했다. 대체 어떻게 저런 몸을 만들었는지 상상이 안 간다.

‘어쩌면 노력이 아니라 재능…….’

서유선은 태어날 때부터 이상적인 신체 구조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신아름과는 다른 의미로 천재인 것이다.

장하양이 얼굴 천재고 백설하가 귀여움 천재라면, 서유선은 몸 천재였다.

그때 신아름은 어느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서유선 이 사람 체형이랑 체격이…….’

김민주랑 비슷한 느낌이다.

서유선이 키가 작아서 그런가?

남자랑 여자라서 1대1 비교는 힘들겠으나, 둘의 신체는 어느 방면에서 닮아 있었다. 그리 생각하니 서유선을 대하기가 더 껄끄러워졌다.

“아름 씨는 이 춤 하실 수 있어요!”

서유선이 확신에 차 말했다.

신아름은 그의 믿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그가 성필의 사랑을 받는 다키스트라 괜히 뿔이 났다.

신아름이 튕기듯 물었다.

“뭘 보고요?”

“‘뉴아사’요.”

납득.

신아름이 춤출 준비를 마쳤다.

그 순간 하희진이 물었다.

“얼마나 걸리세요? 1시간 정도면…….”

“지금 바로 할게요.”

안무가들은 ‘방금 우리가 뭘 들었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방금 신아름이 ‘지금 바로 한다’고 했나?

그게 무슨…….

“끼아아아아악 저게 뭐야아아악!”

“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저게 뭐야? 뭔데 이게? 이게 뭐고?”

“어케 했냐……?”

신아름은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안무가들의 반응을 즐겼다. 그녀가 어깨를 여유롭게 털며 말했다.

“Easy.”

* * *

회상에서 빠져나온 서유선.

“……사장님, 설득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요? 그럼 시험 삼아 이야기 들려주실래요?”

“아뇨!”

“네?”

“아름 씨를 데려가죠!”

* * *

사장실 안엔 여러 인물이 가득했다.

임원진들은 물론이요, 가로 엔터 핵심 부서의 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거기에 퍼포먼스 디렉팅팀마저 죄다 집결하여 초조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중이었다.

신아름은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온 서유선을 보았다.

서유선은 오랜만에 취하지 않은 맨정신이었다. 맨정신인 그는 비굴한 표정으로 신아름을 향해 애원하듯 손을 모았다.

“…….”

십수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아름이 아연한 기색으로 읊조렸다.

“뭐여 이게…….”

신아름, 갑자기 사장실에 불려 오다.

“자, 잠깐만요! 내 퍼포먼스로 안무를 채용할지 말지 결정하는 거예요? 구, 군무잖아요! 나를 주요 참고자료로 쓰면 안 되죠!”

신아름은 부담돼서 위장이 뒤틀리는 듯했다.

만약 자신이 기깔나게 잘 춰서 안무가 채택됐다가, 망하면? 나중에 조아라에게 ‘너 왜 그때 잘 춰서 이 꼴 나게 했냐?’란 말을 들으라고?

신아름은 프로듀싱에 관해 자그마한 책임도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어느 정도의 책임이면 몰라도 안무 채용에 관련된 거라니. 그게 자신의 퍼포먼스에 달려 있다니!

“나를……!”

“아름아.”

성필이 신아름을 향해 의미심장한 윙크를 날렸다.

“부탁할게.”

“쇼가나이나(어쩔 수 없네).”

신아름이 어깨를 풀며 여유롭게 자세를 잡았다.

“10초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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