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한는 프로듀서-530화 (530/760)

530화

성필은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직 대화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성필은 대화를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조아라가 대화를 그만두지 않았다.

대화란 단어를 쓸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언어의 폭풍이 성필을 수십 분이나 덮쳤다.

“아저씨 전 여친이 얼마나 대단한 댄서인지는 하나도 모르겠고! 하나도 안 알고 싶지만요!”

성필은 거의 넋이 나갔다.

아까부터 조아라가 하는 말의 2/3가 성필의 전 여친 깎아내리기였다.

그리고 그 전 여친이(전생 기준) 조아라 본인이니, 듣는 성필 입장에선 넋이 나갈 정도로 충격이었다.

“그 사람이랑 비교해서 내가 얼마나 딸리기에 춤을 가져다 버리란 소리를 해요! 네?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안무면 차라리 나한테 주질 말지!”

가져다 버리란 소리는 한 적 없다.

성필은 지친 티를 숨기지 못하고 조아라를 향해 손바닥을 내보였다. 축구 경기에서 심판이 과열된 선수를 말리듯이.

“알겠어.”

“아저씨가 뭘 알아요!”

조아라가 성필의 손을 홱 치워버렸다.

“알긴 뭘 아냐고요! 난 씨! 나 혼자 아저씨가 만든 안무라고 바보처럼 웃으면서 신나게 연습했네! 사람 바보 만드니까 기분 어때요?”

“미안, 헌정 안무라고 해도 내가 만들었다고 해선 안 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대체! 대체 왜! 몇십 분을 얘기했는데도 이해를 못 해요!”

“…….”

성필은 슬며시 눈을 감고 공감력 가득한 기운을 풍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미안해. 미안…….”

“딱따구리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하지 마요!”

딱따구리가 아니라 앵무새일 텐데.

“안무를 아저씨 거라고 말한 건 그럴 수 있어요! 헌정 안무라고 하니까! 근데 내가 진짜 실망인 건 아저씨가 이 안무의 출처를 숨긴 거랑, 우리한테 거짓말하고 여자 만난 거예요! 언젠 프로듀싱에 인생 판 사람처럼 굴더니 우리 몰래 만날 사람 다 만나고 즐길 거 다 즐겼단 거 아녜요! 세이코한테 했던 말은 다 뭔데요!”

“세이코 씨한테 드렸던 약속은 그 이후…….”

“아무튼 우리한테 거짓말했잖아요!”

했지, 했어.

설마 ‘전 여친이 만든 안무다’란 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리라곤 예상조차 못 했다. 세상에, 곡 발표 날짜를 따지고 들어오다니.

하지만 무엇보다 당황스러운 건, 조아라가 화내는 지점이었다. 그녀는 성필이 소녀연맹을 속이고 연애했단 사실에 거의 분개했다.

“아저씨, 난 뭐, 우리가, 아니. 나를 거의 수도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속세의 쾌락 다 벗어던지고 아이돌 하나에만 몰두하면서 살았다고요.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먹고,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하고 싶은 거 못하고, 그 흔한 연애 하나 못하고! 그걸, 그걸 전부 희생하면서 아이돌 하나만 보면서 왔어요. 힘들어요, 진짜 힘들었는데!”

조아라는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나마 버틸 만했던 게, 아저씨 때문이었어요. 같은 꿈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우리랑 같은 고생을 하니까. 운동회 때 학생들 땡볕에 서 있으면, 선생님들 그늘 천막에 안 있고 학생들이랑 같이 땡볕 맞는 선생님 같았다고요! 근데, 근데…….”

죽일 듯이 성필을 몰아붙이던 조아라. 그녀는 갑자기 입매를 일그러뜨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성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아라가 우는 듯했다.

“아, 아라야…….”

“나는.”

조아라는 다시 성필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울음기가 전부 사라져 있었다.

“이 안무 계속할 거예요. 이 안무로 해서, 아저씨 전 여친이란 인간 뛰어넘을 거예요. 그렇잖아요, 아이돌이란 인간이 안무 하나 제대로 소화 못 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내 걸로 만들 거예요. 꼭. 알겠어요?”

조아라가 거칠게 차 문을 열어젖히며 사라졌다.

성필은 차창 밖으로 멍하니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을 꾹 물고 핸들에 천천히 이마를 가져갔다.

“하아.”

조아라는 성필에게 오만 정이 다 떨어진 듯했다. 그걸 본 성필은 복잡한 감정 속에서도 안도했다.

조아라가 성필에게 보여주었던 친애의 표현들은 성필을 여러 번 헷갈리게 했다.

동료로서 가지는 우정인가.

아니면, 전생처럼 성필이란 인간에게 끌려 사랑하게 된 건가.

오늘 조아라가 화내며 했던 말만 봐도 그렇다.

‘동료로서 나한테 실망한 건지, 아니면 내가 여친을 사귀었단 거에 실망한 건지…….’

성필은 픽 웃었다.

남한테는 이런 이야기 못 한다.

‘진짜 도끼병 말기라고 의심받아도 할 말이 없네. 12살 차이 여자애가 나 같은 아저씨를 좋아하는 거 같다니…….’

성필은 왠지 후련한 마음이었다.

‘만약 아라가 나한테 마음이 있었고, 지금 그 마음이 떠나갔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성필에게 좋은 게 아니라.

‘아라한테…… 잘된 일이지.’

그는 차 밖으로 나섰다.

슬슬 여름이 지나간다.

날씨도 선선하다.

회사로 향하며, 성필은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아라가 안무를 안 바꾸겠다면, 그 마음을 존중하자.’

그가 원했던 방향은 아니지만, 조아라는 스스로 방향을 결정했다.

그는 ‘배드’로 세상과 맞설 것이다. 아니, 이젠 적이 좀 다르다.

‘아라가 싸워야 할 건.’

미래의 조아라 자신이다.

세계에 이름을 알린 퍼포먼스 디렉터.

춤에 한정해서 진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이름이, 조아라의 상대다.

* * *

갑자기 밤에 조아라가 불러냈다.

신아름은 세상에 있는 짜증을 전부 내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모자 쓰고, 마스크 쓰고, 잠시 거울 앞에 서서 괜찮나 보고.

‘됐네.’

신아름은 숙소 현관을 나서 건물 아래로 내려갔다. 일단 나오라고 하기에 나왔지만, 어디로 가는 걸까.

그녀는 폰을 꺼내 조아라에게 연락을…….

“야 신아름.”

“아 씨 깜짝야!”

바로 옆에서 조아라가 어슬렁거리면서 나왔다.

하필 국밥집과 반대 방향 골목에 서 있어서, 조아라는 아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신아름은 놀란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 불러냈으면 곱게 나타날 거지 뭔 짓거리야! 놀라서 폰 떨어뜨렸다가 하수구로 들어가면 책임질래?!”

“미안.”

조아라는 평소와 달리 순순했다. 그에 신아름은 아까보다 더 놀라면서 자기도 모르게 기세를 가라앉혔다.

“왜 불렀어. 나와서 뭐 하자고?”

“술 먹자.”

“밖에서? 어디 예약한 데 있어?”

소녀연맹쯤 되는 아이돌이면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서 술을 마실 수 없다.

룸이 준비된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마시고 먹어야 주변의 눈치를 안 볼 수 있다.

둘이 보통 술집에 가면 가게에도 민폐일 것이다.

“아니.”

조아라는 비닐봉지를 들어 올렸다.

신아름의 표정이 바로 썩어들어갔다.

“노상에서 먹자고? 아직 덥잖아. 나 벌써 등 젖었어.”

“올라가자.”

“……?”

조아라는 숙소 건물 계단을 올라갔다. 2층의 숙소를 지나쳐 더 올라가니 옥상이 나왔다.

건조대에는 장하양이 얼마 전에 빨래한 이불이 걸려 있었다.

조아라는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전망 좋은 자리에 가져다 놓곤 앉았다. 그리고 어서 앉으란 듯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럴 거면 숙소에서 먹지 뭐 하러 나오라고 했어?”

“걍, 고민 있는데 숙소에선 다 들으니까…….”

신아름은 오늘 벌써 몇 번째 놀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조아라가 고민이 있다고?

‘그럼 리카나 쌤 불러내지 왜 나를?’

조아라는 누구와 가장 친한가.

명실상부 침대를 함께 쓰는 리카일 것이다.

그다음 고민을 이야기할 만한 상대라면 백설하가 있다. 조아라보다 오래 산 데에다 리더란 위치에 있으니, 고민상담엔 최적이다.

장하양은 왠지 꺼림칙하다(신아름의 주관적인 생각).

“아하, 알겠다. 고민 상담이 아니라 그냥 감정 쓰레기통 필요한 거지? 망했네. 걸려도 너한테 걸리냐.”

“…….”

조아라가 우중충한 낯빛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신아름은 허겁지겁 그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술 뭐 샀냐? 미친, 소주네. 내 술 사 올 거면 서머스비나 크루저 사 오라고 했잖아.”

신아름은 쾌활한 분위기로 말하면서도 내심 조아라를 걱정하여 마음이 불편했다. 맥주만 마시던 녀석이 웬일로 소주를 다 사 왔단 말인가.

신아름은 ‘괜찮아?’라며 다정하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조아라에게 다정하게 말할 바에는 혀 깨물고 옥상에서 떨어질 것이다.

“일단 마셔.”

둘은 종이 잔에 소주를 담아 마셨다.

신아름은 과자를 씹으며 물었다.

“근데 왜 나야? 리카나 쌤도 있잖아.”

“왜, 너면 안 되냐?”

“갑작스러우니까 그러지. 고민은 친한 사람한테 말하는 거 아니야?”

“나랑 안 친해……?”

“……내 말은.”

신아름은 부끄러워서 머리칼을 손으로 배배 꼬았다.

“리카보다는 안 친하단 거지…….”

“뭔 소리야.”

“아니, 그렇잖아. 너 리카랑만 자잖아.”

“나랑 자고 싶어?”

“죽어도 싫은데 매일 같이 자니까 더 친할 거잖아! 사람이 얘기하면 집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 좀 해!”

“그냥, 이런 얘기는 너한테밖에 못 할 거 같아서.”

신아름은 괜스레 그 말에 감동받았다.

일상적으로 서로를 향해 욕설과 분노를 주고받는 사이라지만, 그 안엔 두터운 친밀감이 있었다.

단지 둘 사이엔 그 친밀감을 표현할 기회나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신아름은 부끄러움을 숨기려 일부러 날카롭게 되물었다.

“왜?”

30분 후.

조아라가 울었다.

“아저씨가 여친이 있었다고오…….”

신아름은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그리고 그걸 듣자마자 폰을 꺼내 성필에게 연락하려고 했다.

“뭐 해?!”

조아라는 울먹이면서도 정교한 동작으로 신아름의 손목을 잡아 꺾었다. 폰이 바닥에 우당탕탕 떨어졌다.

“끼아아아악!”

“너 아저씨한테 하려는 거지? 해서 어쩌려고!”

“물어보려고 그러지 이거 놔 고릴라 같은 년아아아아아악!”

놓았다.

신아름은 손목을 매만지며 조아라를 노려보았다.

“개소리하지 마! 팀장님한테 여친이 어딨어!”

“아저씨가 직접 말했다고!”

“거짓말이거든? 내가 다 확인했어!”

“네가 확인하긴 뭘 확인해! 어떻게? 언제?!”

“너희들이 모르는 방법 다 있거든?”

조아라는 여전히 성필에게 여친이 있었단 이야기를 믿었다. 그러면서도 긴가민가했다.

비공식적으로 성필의 딸이나 다름없는 신아름이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잖은가.

물론 성필이 소녀연맹 전원을 속인 유려한 연기력으로 신아름마저 속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그럼 아저씨가 왜 나한테 전 여친이 춤 만들었다고 한 건데?”

“네가 안무 안 바꿀 거니까 충격적인 거짓말을 지어낸 거겠지.”

“왜 그렇게까지……?”

“네가 어지간히 팀장님 맘에 안 든 거 아니야?”

“으허어어어허어엉…….”

조아라가 곧바로 옆구리 터진 찐빵처럼 눈물을 뚝뚝 쏟아내며 오열했다. 신아름은 조아라가 저렇게 우는 것을 취했을 때밖에 못 봤기에 당황했.

‘맞다, 얘 취했지.’

“내가아…… 그렇게나아…….”

조아라는 눈물을 닦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댐을 열어도 조아라의 뺨만큼 강이 축축해지진 않으리라.

신아름은 짜증스레 옷소매로 조아라의 뺨을 톡톡 닦아주었다.

[지구에서 비춰오는 빛

60억 개 중 하나의 빛

궁금해 다가가 볼까

망원경의 렌즈로 비춰오는

네 눈빛에 난 설레]

분위기가 적적하여 켜둔 조아라의 플레이리스트에선 다키스트의 ‘유어 스타’가 나오고 있었다.

2세대에 흔히 나왔던 청량한 분위기의 곡이다.

그 청량함이 상황과 맞물리니 짜증 났다.

[더 빛나 볼까

망원경이 없어도

네가 날 볼 수 있게

더 다가가 볼까

달에게 지지 않게]

“아 선배님 진짜 시끄럽네!”

신아름은 조아라의 폰을 켜서 재생 중지를 눌렀다. 서유선의 고음 보컬이 갑자기 뚝 끊겼다.

“야, 방금 말은 농담이고…….”

“노래애…….”

“어?”

“노래, 켜줘어…….”

조아라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좋아하는 노래야아…….”

“…….”

[이 설레는 밤하늘에

네 눈을 맡겨줄래?

난 너의 별이야

날 빛나게 하는 한 사람

나를 태우는 단 한 사람]

서유선이 다시 노래했다.

짜증 날 정도로 잘 부른다.

성필이 다키스트를 거의 신봉할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인지, 신아름은 다키스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서울대 합격!’이란 종이를 눈앞에 팔랑팔랑 흔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조아라가 오열하는 사이 ‘유어 스타’도 끝났다. 드디어 다음 노래로 넘어가는가 싶었더니.

“반복재생으로 해줘어…….”

“…….”

그렇게 둘은 30분 동안 ‘유어 스타’만 들으면서 술잔을 나누었다.

시간이 지나니 조아라도 조금 진정했다. 울지만 않을 뿐, 술이 더 들어갔기 때문에 감정은 아까보다 훨씬 격렬했지만 말이다.

“다들 ‘배드’ 안무 좋다고 하잖아. 너도, 서유선 선배님도, 혜빈 언니도, 한의사님도, 사장님도, 다들 좋다고 하는데……. 아저씨랑 쌤쌤만 안 그래…….”

“소수 의견 아니야? 무시해.”

신아름은 성필이 ‘안 좋다’고 하면 곧바로 뒤엎겠지만.

“근데, 아저씨는 그거잖아. 프로듀서잖아. 누구보다 우리를 오래 보고, 우리를 아끼는 사람이잖아. 쌤쌤은 내가 동경하는, 엄청 대단한 댄서고.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다 안 좋다고 하니까…….”

“심지어 그 춤은 팀장님 전 여친이 만든 거고?”

조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가아…… 날 볼 때마다 그 사람을 겹쳐 보고…… 또 그 사람보다 낮게 본다고 생각하면…… 너무, 너무…….”

“답답해?”

“응! 그거! 답답해!”

이건 뭐 어린애 기분 맞춰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취한 사람은 대부분 어린애처럼 변한다.

그건 성필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성필이 신아름 앞에서 거나하게 취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신아름은 가끔 성필의 취한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다. 아니, 가끔이 아니라 자주. 성필은 취하면 평소보다 훨씬 더 살가워지니까.

“아름아아…….”

조아라가 신아름을 꼬옥 껴안았다.

조아라는 살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너만 만족하면 되잖아. 팀장님이 매일 강조하는 것도 그거잖아. 아티스트십. 너한테 신념이 있으면, 정말 그게 좋다고 생각하면 계속 밀어붙이면 그만 아니야?”

“그러니까, 그 뒤에, 쌤쌤이랑 아저씨한테 그런 말을 듣고 나니까…….”

조아라에게도 보여버렸다.

‘배드’를 추는 자신의 결점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기분으로 연습하고 싶은 기분이 들 리가 없다.

그래서 오늘 신아름과 술을 마시기로 한 것이다.

“내가 그 사람보다 못한 게 뭘까……. 그 사람, 키가 엄청 큰 걸까……? 막 진저 같은 사람일까? 그래서 나한테 춤이 안 맞는 걸까……?”

“팀장님은 여친 안 사귀었다니까.”

“어떻게 확신해!”

“나도 몰라.”

사실 이유가 있지만, 조아라에게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에게 말하면, 그녀가 설령 술에 취해있더라도 ‘뭔 그런 짓을……?’이라며 경악할 테니까.

“그으, 그러엄 내 춤이 X나 XX 같아서 아저씨가 바꾸자고 한 게 되잖아아……!”

“아 네 말이 맞아! 팀장님 여친 사귄 거 맞네! 진짜 나쁘다 그치? 어떻게 우릴 속이고!”

“내 말이!”

30분 후, 조아라는 곯아떨어졌다. 시체처럼 의자에 축 늘어진 채 코만 골았다. 신아름은 한숨과 함께 그녀를 바라보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얘도 생각하는 게 나랑 똑같네.’

신아름은 케이어스를 향해 라이벌 의식을 불태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꽤 많이 희석됐다.

오히려 신아름이 껄끄럽게 여기는 건 다키스트다. 이미 은퇴해버려서 따라잡지도, 참고로 삼지도 못하는 아이돌계의 전설들.

그 전설 중 한 명이 현재 가로 엔터에 있다.

‘차라리 난 보이기라도 하지.’

신아름은 조아라의 뺨에 붙은 머리칼 몇 가닥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얜 보이지도 않는, 아니. 아예 없는 인간이랑 싸우려고 하네.’

신아름은 주변을 대강 정리하고 조아라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때 조아라가 웅얼거렸다.

“사랑한단 말야…….”

신아름은 멈칫했다.

손끝의 혈관에 얼음이 들어찬 것처럼 시리고 저릿하다.

그래서 물었다.

“춤을?”

“웅…….”

신아름은 굳었던 손을 움직여 그녀를 들어 올리려 했다. 그런데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이년 개무거워!”

어쩔 수 없이 신아름은 장하양을 불렀다.

장하양은 자다 일어났지만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고 옥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신아름이 조금도 일으킬 수 없었던 조아라를 번쩍 들어 계단을 내려갔다.

“어, 언니 조심해요. 넘어지지 말고요.”

“아하하, 괜찮아.”

숙소로 들어와 조아라를 침대에 눕히자 백설하와 리카가 모여들었다.

네 사람은 침대에 누운 조아라를 내려다보았다.

백설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라가 부담감이 많이 심한가 봐.”

“당연해요! 상대가 케이어스의 진저랑 글로브의 누구누구 씨잖아요!”

“지유 씨.”

리카는 이상하게 글로브 멤버들의 이름을 잘 못 외운다.

신아름은 어쩌면 리카가 일부러 글로브를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지유 씨잖아요! 아라쨩 불쌍해…….”

리카는 조아라가 취한 틈을 타 그녀의 뺨에 입술을 가져가려고 했다. 백설하가 곧바로 그녀의 목을 잡아채어 막았다.

“우리가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쌔, 쌤 장난이었어요! 놔주세요! 이타이(아파)!”

“우리가 뭘 어째요.”

신아름은 팔짱을 끼며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조아라를 응시했다.

“얘가 알아서 할 일이죠.”

“근데.”

장하양이 조아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말했다.

“언니 말씀대로 아라 부담감이 정말 심하긴 한가 봐. 엄청 많이 울었어. 뺨 발간 거 봐.”

“…….”

그건 뭐, 대부분 성필에게 여친이 있었단 이야기 때문에 운 거지만.

“그렇, 죠. 얘가 많이 힘들죠.”

신아름은 말을 아꼈다.

* * *

민시화가 출전하는 대회는 주말에 열렸다. 대회 출전자를 배려하고 집객률을 높이기 위해서인 듯했다.

성필은 조아라와 함께 차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스포츠 경기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조아라는 조수석 창밖만을 뚱하게 응시했다. 성필이 데리러 왔을 때도 무미건조하게 고개만 꾸벅 숙였었다.

“아라야.”

성필이 불렀는데도 조아라는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성필은 그녀가 듣고 있단 걸 알았다.

전생에 오래 보고 지낸 만큼 그녀가 화난 것도 많이 보았으니까.

‘아니야.’

전생의 조아라는 그만 생각하자.

‘내가 마주하고 있는 건 지금의 아라잖아.’

유일무이한 조아라다.

댄서가 아니라 아이돌의 길을 택한, 성필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유한 인간이다.

“미안해.”

조아라는 반응이 없는 듯했으나, 성필이 ‘미안해’라고 한 순간 살짝 어깨를 흠칫했다.

“안무를 바꾸자고 한 건 무례한 요구였어.”

성필이 안무를 바꾸자고 한 건, 조아라가 받아들이기에 타인과 비교하여 본인이 모자라기 때문이었다.

조아라는 상처받은 건 물론이고 자존심까지 뭉개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안무를 너한테 준 건, 정말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야. 지금도 그래. 이 지구상에 너를 제외하고 그 안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거야.”

창문에 조아라의 얼굴이 비쳤다.

조아라가 무슨 감정 때문인지 눈가를 찌푸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 네 의사를 존중해. 만약 나나 다른 사람이 네 춤을 모자란다고 한다면, 그건 네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그렇게 말하는 네가, 솔직히 말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해.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벽이 나타나면 그 벽을 돌아서 갈 다른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저 오르거나 부수고 나아갈 뿐.

누군가는 고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성필은 그걸 의지라고 부르고 싶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으면 괜히 아이튜브에 ‘공부하는 법’이나 ‘공부 동기 영상’ 같은 걸 찾아보는 대신, 미숙하더라도 공부에 매진한다.

성필은 조아라의 의지를 그런 종류의 성실함으로 파악했다.

“다시 한번 사과할게. 미안해. 그리고 응원할게.”

성필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조아라가 천천히 성필을 바라보았다.

“‘배드’ 안무 진짜 아저씨 여친이 만들었어요?”

“‘전 여친’.”

“신아름이 아저씨 여친 없댔는데.”

“…….”

“됐어요. 딸내미도 모르는 게 있나 보지. 뭐, 이번만 아무 일 없던 걸로 칠게요. 아저씨가 말 예쁘게 해서 봐주는 거예요.”

“……고맙다.”

“아저씨가 나 너무 낮게 보는데, 이 기회에 평가 고쳐요. 알겠어요? ‘배드’ 안무가가 얼마나 대단해도, 나 아이돌이에요.”

성필은 직업 특성상 댄서나 안무가와 안면을 적잖이 익힌다. 그들도 직업상 겪는 고충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돌과 비교당하는 것이었다.

‘댄서면 춤 한 번 보면 바로 막 따라 하고 외우고 그래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당연히 ‘안 된다’이다.

사람들은 보통 아이돌이 빠르게 춤을 외우는 것을 보고 댄서, 안무가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아이돌은 직업 자체가 누군가가 만든 춤을 외우는 것이다. 연습생 때부터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안무를 카피하며 만들어진 능력이다.

그 능력은 아이돌이 됐을 때 비로소 쓸모 있어진다. 그룹으로 들어온 안무를 빠르게 따내고, 컴백까지 몇 개월 동안 그 안무만 연습하여 완성도를 올린다.

“며칠 안에 아저씨가 놀랄 정도로 숙련할 거라고요. 똑똑히 봐요. 그 인간이랑 비교해서 어떤지 나중에 나한테 얘기해주고. 알겠어요?”

“응, 알겠어.”

“그리고 아까 아저씨 틀린 말 하나 했어요.”

“어?”

성필은 긴장했다. 조아라가 꼬투리 하나 잡고 공격할까 봐.

그러나 조아라는 성필을 물어뜯는 대신 헤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구상에 나보다 그 안무에 어울리는 사람 없겠단 거.”

“그게…… 왜?”

“아저씨가 더 잘 어울려요.”

성필은 세상에 없던 플러팅을 당하곤 머리가 멍해졌다.

“그런데, 이번 촬영 땐 내가 더 잘 출 거예요. 아저씨가 가르쳐준 춤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완벽하게 숙달해서, 그 전 여친이란 인간 생각도 안 나게 해줄게요.”

* * *

“쌤쌤!”

조아라는 민시화를 발견하자마자 쪼르르 달려갔다. 성필은 그녀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훑었다.

무대는 주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그 전에 대회에 참여하는 댄서들은 수백 명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커다란 홀에 모인다.

수많은 댄서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앉아 옷을 갈아입거나 화장을 수정하고, 파트너나 지인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민시화도 그러했다.

“아, 서 쌤 안녕하세요.”

“아라야 오랜만이다.”

‘아라베스크’ 안무를 맡았던 민시화의 남편, 서학준도 있었다. 당연히 그는 민시화의 파트너로 이번 대회에 참여한다.

“와 서 쌤 뭐야아아하하핰!”

조아라는 서학준의 용모를 보고 깔깔 웃었다.

서학준은 창피한지 어색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그는 중후한 턱시도에 반짝반짝 닦인 구두, 거기에 더해 올빽 머리를 하고 있었다.

“쌤 코 뭔데! 성형으로 높이 2배로 올렸어요? 메이크업이 무슨 아이돌보다 더해요!”

“이, 이렇게 안 하면 심사위원들 눈 못 끌잖아…….”

아이돌보다 메이크업이 과하단 말에 서학준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손거울을 보았다.

그때였다.

민시화가 서학준의 뺨에 부드럽게 손을 얹고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서학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기만 한데 뭘 그러니.”

“아니,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요 쌤쌤…….”

졸지에 남의 배우자를 모욕한 처지가 되어버린 조아라. 그녀가 성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성필이 부드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민 선생님은 원래 강사시니까 잘하시겠고, 서 선생님은 댄스스포츠 잘하세요?”

“옛날에야 잘했죠. 아시잖아요, 저 완전히 안무가로 전향한 거. 아이돌 춤이 더 자신 있어요.”

“연습하느라 힘드셨겠어요.”

“연습은 안 했어.”

그리 말하며 민시화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줄곧 어깨에 둘러 몸을 가리고 있던 망토를 벗었다.

아까부터 꼼지락거리는 것처럼 망토 안에서 자꾸 팔을 움직이더니, 옷을 갈아입고 있던 듯했다.

“와…….”

조아라가 입을 막았다.

민시화는 붉은 드레스 차림이었다. 서학준과 비교되어 훨씬 더 화려하게 보인다.

드레스도 그냥 드레스가 아니었다.

피처럼 붉은 장미가 오른쪽 어깨부터 오른쪽 골반까지 송송이 박혀 있다. 거기에 어깨와 등이 훤히 뚫려 있어, 살구색과 적색의 대비가 그녀를 훨씬 관능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아저씨.”

조아라가 성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러자 감히 남의 배우자를 홀린 듯 보고 있던 성필이 간신히 정신을 찾았다.

“아, 아름다우십니다.”

“학준아 들었어? 이 오빠가 나 아름답대. 어떡할래?”

“아뇨 선생님 왜 그러세요, 헤헤.”

성필이 오해를 풀려는 듯 순박하게 웃자 그의 가슴으로 장갑이 날아왔다. 서학준이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성필에게 던진 것이었다.

“결투를 신청한다.”

“네?!”

“나도 이 나이에 참 죄가 많네.”

“뽑아라.”

“뭘요?!”

넷이서 농담을 주고받고 있자, 문 쪽에서 여덟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선생님!”

“너무 오랜만이에요!”

민시화와 서학준의 제자들이었다.

대비가 참으로 선명했다.

네 명은 움직임이 편하도록 스포티한 복장에 개성이 확확 드러났다. 아마 서학준의 제자이리라.

그리고 다른 네 명은 응원하러 온 자리임에도 격식을 갖추었단 느낌이 났다. 민시화의 제자이겠지.

“죽기 전에 선생님이 춤추는 걸 다시 보네요!”

20대 후반의 여자가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민시화의 옷을 보며 감탄했다. 주로 영혼을 끌어모은 가슴을 보고.

민시화의 제자들은 민시화를 칭송하기 바빴다.

그에 비해 서학준의 제자들은…….

“야 이거 찍어서 스타그래프에 올리자.”

“쌤 웃어요 웃어!”

서학준을 놀리는 데 열심이었다.

서학준은 제자들에게 붙잡혀 억지로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그의 눈가에 물기가 맺혀가는 건 성필의 착각만이 아니리라.

한바탕 포토타임이 지나자 조아라를 알아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소련이다!”

그 외침에 사방에서 시선이 들어왔다.

소련이라고 외친 남자가 창피함에 고개를 숙였다. 창피해해야 할 건 조아라였는데도 말이다.

조아라가 능숙하게 팬서비스를 펼쳤다.

“사진 찍을래요?”

“네!”

또 포토 타임이 이어졌다.

그러고 나선 민시화, 서학준과 제자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성필과 조아라는 슬슬 빠져야 하나 고민했다.

저 친밀감 안에 섞여들 자신이 없었다.

“거기.”

그 순간 민시화가 조아라의 앞으로 다가왔다.

“잘 봐. 너라면 느끼는 게 있을 거야.”

“아…….”

그러고 보니 민시화가 ‘춤으로 이야기하겠다’고 했었다. 조아라는 성필이 터뜨린 충격 발언 때문에 까맣게 있고 있었지만.

“오늘 보일 안무는 학준이가 짠 거야. 아주 옛날에. 아마…….”

민시화는 조곤조곤 조아라에게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댄서의 자율성과 창조성, 혹은 모방과 같은 심도 깊은 이야기였다.

제자들이 놀라워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대회가 시작된단 긴장감 때문에 곁눈질조차 못 하고 있는데, 민시화는 침착하게 조아라를 가르치고 있었으니까.

“내 라스트 댄스야. 여기서 배우지 못하면 내가 말로 가르칠 자신은 없어. 알겠어?”

“뭐, 네. 대충.”

“대충이면 안 되는데. 얘들아.”

민시화가 제자들에게 부탁했다.

“이 애, 잘 보이는 자리로 데려가 줘.”

* * *

성필과 조아라는 제자들을 따라갔다.

관중 자체가 많지 않아 무대와 가까운 1층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본인 차례를 기다리는 참가자들은 경기장 외곽에 서서 무대가 초조한 듯 눈을 굴렸다.

첫 번째 히트.

정해진 참가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경기장, 아니. 무대 여기저기에 포진했다.

조아라는 민시화를 보고 감탄했다.

“쌤쌤 등 봐요. 근육 결이 보여요.”

민시화가 어떤 운동을 하고 있을지 예상이 갈 만큼 잘 발달한 등이었다.

과연 성필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옆에서 밀치더라도 여유롭게 버틸 수 있을 만한 체간이 있을 것이다.

“아쉽다, 저렇게 정정하신데 이제 그만둔다고 하시잖아요.”

“선생님 나이가 몇인데 정정하다고 해.”

“라스트 댄스란 단어부터가 슬프지 않아요? 계속해도 될 텐데. 봐요, 나이 든 사람도 꽤 많아요. 비공식전이라 그런가.”

성필도 조아라와 같은 마음이었다.

춤을 좋아한다면, 비공식전이나마 간간이 나가서 욕구를 풀면 좋을 텐데. 파트너가 없어서 그런 걸까.

“라스트 댄스, 인가…….”

라스트 댄스는 파티에서 남녀가 최종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춤. 혹은 대중적으로 ‘마지막 기회’란 뜻으로 쓰인다.

의미심장한 단어였다.

“아.”

그때 조아라 옆에 선 민시화의 제자가 당혹스러운 신음을 뱉었다.

“모르고 오셨어요?”

“네?”

“선생님이 앞으로 춤을 못 추는 건 그냥 은퇴하시는 게 아니라요, 부상 때문이에요.”

“……부상이요? 쌤쌤, 그, 선생님이 아파요?”

“네. 아킬레스건 파열이요. 재활하고도 몇 번이나 재발해서, 의사가 더는 풀 컨디션으로 춤추지 말라고 하셨는데…….”

제자가 안쓰럽단 듯 민시화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성격에 그게 되나요. 그러니까, 마지막 순간을 화려하게 남기시려는 거예요. 취미 수준으로 조금씩 하는 것만으론 못 참으시는 거죠.”

천천히 시들바에야, 화려하게 피어나고 죽겠다.

그 말을 들은 조아라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 * *

민시화와 서학준이 마주 보고 섰다.

다른 참가자들은 파트너와 자세를 잡은 지 오래였다. 민시화와 서학준만이 팔을 늘어뜨리고 서로를 보고만 있었다.

“안 잡을 거야?”

서학준이 신사적인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잡기 싫어.”

“왜?”

“이게 마지막이니까.”

“그만둘까?”

“무섭단 게 아니야.”

민시화는 서학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너무 신나고 행복하고 즐겁고 황홀해서, 이 시간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서학준의 민시화의 등을 손으로 받치고, 그녀와 손을 맞잡고, 완벽한 자세를 만들어냈다.

음악이 재생됐다.

첫 번째 종목, 왈츠.

“학준아, 부탁할게.”

“……응.”

라스트 댄스.

세상이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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