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523화 (523/760)

523화

얼마 안 있어 데뷔조가 선정될 거란 소문이 파다했다. 회사 차원에서 유출된 정보는 아니었다.

선배 걸그룹의 데뷔 기간을 어림짐작하여 연습생들이 낸 결론일 뿐이다.

븨이에스가 올해 말에 데뷔 4년 차에 돌입하니, 새로운 걸그룹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등장할 게 틀림없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연습생, 메이가 들어왔다. 딱히 이상할 건 없다. 이번에 데뷔조가 못 된다면, 다음 그룹을 노려도 될 테니까.

‘그런데 쟨 나이가 애매하네.’

진소유는 메이를 보며 생각했다.

메이가 이번 데뷔조 선발에서 떨어지고 다음 그룹 데뷔조를 노릴 때면, 그녀의 나이는 현재의 진소유와 비슷할 것이다.

무슨 말이냐.

‘쟨 멍청이인가?’

데뷔조로 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단 뜻이다.

메이는 1년 안에 아니, 그보다 더 짧은 기간 동안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다음이 없다.

‘이 시기에 KS 엔터에 오고. 단순 계산을 못 하는 건가?’

22살인 진소유가 할 생각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현재 세상 모든 것에 부정적이었다.

다른 연습생들은 메이에게 관심이 많았다.

새로운 경쟁자가 생겼으니 당연했다.

“쟤 어디서 연습생 하다 왔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 시기에 KS 엔터로 들어오진 않겠지. 저 나이에…….”

다들 중국에서 온 소녀를 경계했다.

하지만 그 경계는 1시간 후 바로 깨졌다.

“쟤 기초 하네?”

현시점에서 기초 댄스 트레이닝을 하는 연습생은 없다. 다들 심화 과정까지 도달했고, 도달하지 못한 연습생들은 가차 없이 내쳐졌다.

그런 와중 기초 트레이닝을 받는 메이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자, 메이.”

트레이너, 신태웅은 중국어를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춤은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가르칠 수 있는 기술이다.

그는 여러 외국인을 가르친 경험이 많았다.

“라이즈(Rise).”

신태웅이 상체를 앞으로 굽혔다가 하늘을 향해 가슴을 폈다.

메이는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의 말과 행동을 따라 했다.

“라, 라이즈.”

“그렇지. 이거, 스핀(Spin).”

신태웅이 유려하게 한 바퀴 돌았다.

메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발에 바퀴가 달린 건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였다.

스핀을 마친 신태웅은 범상치 않은 자세로 섰다. 그저 멈추는 게 아니라, 춤으로서 미적인 가치를 지닌 자세였다.

“스탠드(Stand).”

신태웅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크롤, 슬라이드, 폴, 아이솔레션…….

춤이란 언어를 쓰기 위한 기초 단어들을 메이의 머리에 억지로 때려 박았다.

“오늘은 이 10개를 외워.”

신태웅은 손가락을 모두 펴서 ‘10’을 표현했다. 메이도 ‘동작 10개’란 뜻을 이해했다.

“쓰워예(숙제).”

원래 한 동작마다 여러 예시를 들어주며 진행해야 했으나, 메이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이렇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메이는 데뷔조는커녕 다음 달에 쫓겨날 것이다.

어떻게든 사람으로 만들어 놓아야 했다.

“오늘, 1시간은, 나랑, 같이…….”

보디랭귀지로 설명하던 신태웅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메이가 우물쭈물 입을 뻐끔거리던 것이다.

“왜?”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나?

그때 메이가 입을 열었다.

중국어로.

그제야 신태웅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음?”

메이가 쓰는 언어가 보통 중국 연습생들과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몇 초 후, 신태웅은 자신이 어디서 메이의 언어를 들어보았는지 깨달았다.

신태웅은 왕가위 감독의 팬이라 그의 영화를 모두 보았다. 그런데 메이의 언어가 왕가위 감독 영화에 나온 언어와 비슷했다.

즉, 메이가 쓰는 건 북경 관화가 아니라…….

“광동어?!”

중국은 넓은 나라다.

한 나라라도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다.

게다가 같은 관화라도 지방마다 다르다.

표준어는 북경 관화이고, 이외에도 남서 관화, 남부 관화 등 사투리 개념으로 여러 언어가 있다.

사투리라지만, 서로 다른 언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있었다.

광동어는 홍콩의 표준어였고, 홍콩 주변 지역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어, 어어…….”

신태웅은 쩔쩔매다가 결국 번역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없어?!’

신이자 왕인 구글에 광동어 번역기가 없었다.

한국의 구글인 네이버에도 없었다.

‘왜 없지?’

광동어는 한국어보다 사용자가 많은 언어인데!

그때 신태웅은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렸다.

‘중국어는 같은 문자를 쓰잖아!’

옛 조선에서도 명나라, 청나라 사람들과 문자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언어가 다르더라도 문자는 같으니까.

관화와 광동어도 그럴 것이다.

신태웅은 숙제(宿題)란 한자를 찾아 메이에게 보여주었다.

“???”

메이는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메이가 이해하지 못한 듯하자 신태웅도 혼란스러워졌다.

신태웅의 발상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 한국어로 숙제(宿題)는 중국어로 작업(作业) 혹은 연습문제(习题)였다.

둘째, 메이가 아는 한자는 수십 개 정도였다. 사실상 메이는 문맹이다.

“…….”

“…….”

둘 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신태웅은 절로 메이가 안쓰러워졌다.

‘얘 어떡하냐…….’

KS 엔터의 중국인 연습생들은 다 북부 출신이어서 북경 관화를 사용했다.

그나마 타지에서 위로가 되는 게 고향 사람과의 관계인데, 메이는 그들과도 친분을 다질 수 없게 됐다.

린 메이, 연습생 1일 차.

* * *

“■■■!”

메이는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만 꾸벅꾸벅 숙였다.

그녀의 앞으로 세 명의 연습생이 무어라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메이는 단 한 글자도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화를 내니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구나 생각할 뿐.

“미아내. 미안. 미아내. 미아내. 자모태써.”

메이가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습득한 한국어는 ‘안녕하세요’와 ‘미안해’였다.

메이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제야 연습생들은 툴툴대면서 메이에게서 떠나갔다. 메이는 입술을 앙다물고 주변을 보았다.

커다란 연습실 안에 수십 명이 있었으나, 누구도 메이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몇몇은 대놓고 비웃기까지 했다.

“…….”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게 이런 기분일까.

아니, 지옥이 이런 곳일까.

한국은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메이는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본 게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졌다.

할 말이 있어도 전할 수 없고, 말을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메이는 자신이 짐승이 된 것만 같았다. 타인의 의도를 오직 눈빛과 제스처만으로 읽어야 했다.

‘괜찮아.’

메이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가 겨우 만들어준 기회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참아야만 했다.

점심시간 전, 신태웅과의 개인 트레이닝 시간. 그는 본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메이를 칭찬했다.

“■■■! ■■!”

메이는 말은 못 알아들어도 그가 칭찬하고 있단 사실만은 알았다.

신태웅과의 댄스 트레이닝은 그녀가 그나마 숨 쉴 수 없는 순간이었다. 몸의 언어인 춤은 직관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나 잘하고 있는 거겠지?’

신태웅이 거의 공중제비를 돌 기세인 것을 보니 그런 듯했다.

메이는 트레이닝을 마치곤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오늘은 맛있는 게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들어오니 무언가 이상했다.

일단 여자 연습생들이 없다.

남자 연습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만이 보였다. 자리 잡고 식사하던 KS 엔터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메이를 바라보았다.

“■ ■!”

갑자기 어떤 직원이 다가와 메이에게 호통을 내질렀다. 메이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직원은 메이에게 무어라 말했지만, 메이가 알아듣지 못하자 답답하단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선 거친 손길로 메이를 식당에서 내보냈다. 메이는 황망하게 식당 앞에 서 있었다.

몇몇이 그녀를 건조한 태도로 지나쳐갔다.

“…….”

메이는 터덜터덜 연습실로 돌아왔다.

‘가던 시간을 맞췄는데, 왜…… 뭐지……?’

연습실엔 사람이 몇 없었다.

메이는 그녀들에게 식사 시간이 바뀌었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한국어를 못 하니까.

영어도 못 하니까.

북경 관화도 모르니까.

“…….”

메이는 구석에 앉아 다른 연습생들의 눈치만 보았다.

수십 분이 지나고 연습생들이 우르르 몰려오자, 메이는 자신이 식사 시간을 놓쳤단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오늘만 특별하게 시간이 변경되었던 거겠지. 누구도 그녀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메이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괜찮아.’

다이어트했다고 치자.

오히려 이득이지.

응…….

* * *

“벙어리 오늘 팀장님한테 혼났대.”

“아, 걔? 왜?”

“아니 오늘 남자들이랑 시간 바뀌었잖아. 걔들 특별 평가 때문에. 근데 벙어리가 걍 원래 가던 시간에 간 거야.”

“병신이야?”

두 연습생이 깔깔 웃었다.

진소유는 그녀들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들이 대화를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연습생들은 메이를 벙어리라고 불렀다.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할 줄 아는 말이 ‘미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말은 할 줄 아니 멸칭(蔑稱)이더라도 ‘벙어리’는 옳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메이를 깎아내리는 게 목적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았다.

‘병신은 너희들이지.’

진소유는 스트레칭하면서 욕하는 연습생들을 역으로 욕했다.

메이는 왕따였다.

단순히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한국어를 못하는 연습생이야 지금까지도 많았다.

문제는 메이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들어온 지 몇 개월밖에 안 된 애한테 열등감이나 느끼고, 너희들 인생도 알 만하다.’

메이에게는 천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처음엔 그녀에게 살가웠던 신태웅은 점점 메이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메이가 데뷔조에 들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메이를 더 거칠게 다루는 것이었다.

주변의 질시와 괴롭힘, 트레이너들의 희망 섞인 가르침 혹은 학대.

그게 섞여서, 메이는 한계였다.

진소유가 보기엔 그러했다.

‘뭐…….’

진소유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메이의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있지만, 데뷔조에 들 가능성은 희박했으니.

메이의 실력이 결국 KS 엔터가 요구한 수준에 닿을 수 없을 거라서?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돌이란 오직 실력으로만 데뷔조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연습생이 회사의 기획 의도와 맞아들어가면 실력이 부족해도 데뷔할 수 있다.

‘문제는 중국인이란 점 그 자체지.’

한한령으로 KS 엔터의 야심 찬 중국 제패 계획은 무산되었다.

게다가 KS 엔터를 포함한 여러 기획사에서, 중국인 멤버들이 중국으로 도망가 전속계약 무효를 선언하는 희대의 도주극까지 벌였다.

한중 관계가 냉각되고 일촉즉발에 이르자 본국에서 압박이 들어왔으리라. 결국 많은 중국인 아이돌들이 본국의 압박에 회사를 배신했다.

한국의 반중감정이 심화되고 아이돌계에서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졌으니, KS 엔터도 중국인을 멤버로 들이는 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연습생들이 괜히 메이를 타깃으로 잡고 괴롭히는 게 아니었다. 괴롭혀도 뒤탈이 없으니까 괴롭히는 것이었다.

대화란 게 불가능한 메이는 다른 연습생들과 달린 직원들과 친분을 쌓을 수도 없기에, 정치 행위 자체를 할 수 없으니 보복 생각은 안 해도 좋았다.

“소유야, 안 자?”

숙소.

타지에서 온 연습생이나 외국인들을 위해 KS 엔터가 제공하는 곳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는 진소유에게 에리카가 물었다.

진소유는 대답하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았다. 십수 초가 지나도 대답이 없자 에리카는 그냥 쌩하니 방으로 들어갔다.

시각은 1시를 넘었다.

지금 자지 않으면 내일이 피곤하겠지만, 진소유는 꿋꿋하게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래도 내일은 나아지겠죠 뭐…….]

텔레비전에선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중국의 농민공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개집만도 못한 집에 살며, 하루하루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리고 번 일당을 조금씩 모아 농촌의 가족들에게 보냈다.

[아빠가 보고 싶어요.]

농민공의 아이들도 도시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별다른 것 없는 환경에서 살았다.

농민공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기보다 일을 시켰다. 허름한 흙벽 안에서 말린 물고기를 꿰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쟤네들보다는 내가 낫네.’

진소유는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게 진소유의 멘탈 관리 방법이었다.

세상에 전쟁과 기아, 가난과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단 걸 생각하면, 그나마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방법이 잘 통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오늘이 그날이었다. 정해진 주기보다 빨랐다.

“시발 개 같은…….”

데뷔조 선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다. 진소유는 본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2층 침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연습생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서랍을 열었더니 여성용품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진소유는 누군가를 깨워 용품을 빌리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움을 받는 걸 극도로 꺼렸다.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불쾌감을 참으며 숙소를 나섰다. 편의점에 들러 용품을 사고 숙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공원이 하나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진소유는 길거리에 서서 공원을 보았다. 공원에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렸다.

춤추는 소리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환한 가로등 아래에서 춤추는 사람이 한 명 보였다.

‘짱깨년?’

메이였다.

메이는 음악 없이 춤을 추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과 땀에 젖은 티셔츠는, 그녀가 얼마나 오래 춤을 추었는지 알려주었다.

진소유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았다.

‘미친년인가.’

음악도 없이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춤을 추다니. 평소였으면 피상적으로 그리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진소유는 살짝 감성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나마 저게 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거구나.’

편들어주는 사람 한 명 없는 외로운 공간.

메이는 고통이 들어올 수 없게, 머리와 심장을 오로지 춤으로만 채웠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진소유는 그걸 빤히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고서 마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꿈이요? 백화점에 가보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1시간쯤 지나자 현관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땀에 전 메이가 거실로 들어왔다.

메이는 진소유를 보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살금살금 진소유를 지나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다시 발소리가 들리고, 멈췄다.

진소유는 뒤를 보았다.

메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진소유가 돌아보자 화들짝 놀라면서 방으로 향하려 했다.

……왜일까.

“야.”

진소유가 메이를 불렀다.

메이는 움찔 진소유를 보았다.

진소유가 손을 까딱였다.

“보려면 봐.”

“…….”

메이는 진소유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홀린 듯 멍하니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얘도 이런 거 좋아하나?’

진소유는 감성적이었다.

평소였다면 메이를 부르지도, 옆에 앉게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진소유는 메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았다.

둘 다 늦게 잠들었다.

다음 날.

“뭐야, 걔 왜 안 와?”

아침 일찍 KS 엔터에서 연습생들을 데리러 왔다. 차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메이는 나오지 않았다.

“소유야, 네가 가 봐.”

진소유는 직원의 말에 토 달지 않고 숙소로 들어갔다. 메이의 방으로 들어가니, 그녀는 자고 있었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듯했다.

진소유는 퉁명스럽게 메이를 흔들어 깨웠다. 메이가 눈을 번쩍 떴다.

“일어나.”

메이는 진소유를 보지 않고 천장만 보았다.

그러고선.

“흐윽…….”

메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 갑작스러웠다.

곧 메이는 훌쩍임을 넘어 오열했다.

진소유는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다가 일어나서 갑자기 우는 정도야, 연습생들은 전부 다 겪은 일이었으니까.

연습생들은 하루가 시작된다는 게 두려웠다.

너무 무서워서 일어나자마자 울 때도 있다.

진소유는 옷걸이에 걸린 모자를 우는 메이의 머리 위에 씌우고 억지로 일으켰다. 메이는 아이처럼 진소유의 손을 잡고, 울면서 숙소를 나섰다.

* * *

“너 때문에 늦었잖아!”

아침 트레이닝이 끝났다.

개인 트레이닝이 있는 이들은 단체 연습실에서 나가고, 몇몇 연습생들만이 남았다.

그중엔 메이를 유난히 괴롭히고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가 있었다. 그녀는 메이 때문에 오늘 아침 늦었다면서 화냈다.

“미아내. 미아내…….”

메이는 여느 때처럼 허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그게 메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메이도 본인의 잘못을 알았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오늘 아침 늦게 일어난 건 명백한 잘못이었으니.

“걍 니네 나라로 꺼져 벙어리년아!”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에리카라도 있었다면 그녀가 이렇게나 날뛰지 않았겠지만, 에리카는 이곳에 없다.

다들 이런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인간은 폐쇄적인 곳에서 통제받으며 지낼수록 인간성을 잃어간다. 대표적으로 군대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들이 이를 증명한다.

통제와 폐쇄는 인간을 미치게 만든다.

연습생들도 그러했다.

한창 빛날 나이에 햇볕 대신 형광등 빛만 받고, 매주 경쟁과 연습의 고통 속에서 살며, 마땅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조차 주어지지 않고, 외부와의 소통 자체가 끊기는.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환경.

타인을 괴롭히는 게 놀이로 둔갑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너 같은 년 때문에 왜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데!”

메이는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쏟아지는 분노의 파도를 받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고, 세상 모두가 적인 것만 같고, 죽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실타래처럼 엉키는.

그런 자기혐오의 구덩이 속에서.

“야.”

진소유가 말했다.

메이를 괴롭히던 연습생은 사납게 진소유를 쳐다보았다.

“뭐?”

진소유가 일어나 다가오자 연습생이 급히 말을 수정했다.

“뭐, 요?”

“그만해.”

“언니가 뭔데요?”

진소유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연습생의 명치를 번개처럼 가격했다. 직선으로 뻗어나간 완벽한 펀치였다.

연습생은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번쩍 뜨더니, 곧 아침에 먹었던 걸 게워냈다.

“끄에, 엑…….”

“너 같은 년을 보면 구역질이 치밀어 오른다고. 알아? 이 씨발년아.”

“미, 미친, 끄어, 으에엑…….”

연습생은 명치를 부여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미치, 미친년아아아…….”

기어코 연습생이 울음을 토해냈다.

생애 처음 겪는 강렬한 고통이었다.

진소유는 인간을 패서 눕히고도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너 이 개년아아…… 다 말할 거야아…….”

“말해. 말해보라고. 그럼 넌 씨발 무사할 거 같니? 너희들도 다!”

진소유가 주변의 연습생들을 향해 일갈했다.

“동료 연습생 괴롭히는 거, 괴롭힘 방조한 거, 회사가 알면 잘도 데뷔조로 뽑아주겠다.”

맞는 말이었다.

설령 그 말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연습생들에겐 맞는 말로만 들렸다.

그녀들은 아이돌에 인생을 걸었다. 사소한 결격 사유라도 회사에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다시 말해봐.”

진소유가 쓰러진 연습생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켰다. 연습생은 경기를 일으키며 벗어나려고 했지만, 진소유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뭐? 말해? 말할 거야?”

“안 말할게요! 안 말할게요!”

“시발 토사물 냄새 나니까 입 열지 마.”

네가 물어봤잖아…….

“꺼져.”

진소유가 놓자 연습생은 명치를 부여잡고 연습실을 나섰다. 그러고서 진소유는 메이를 보았다.

메이는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한 듯 입술만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엔 희망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슈퍼히어로를 보는 듯한…….

“너도 꺼져 짱깨년아.”

“……???”

메이는 다른 건 몰라도 ‘짱깨’란 말은 알아들었다. 좋지 않은 분위기란 걸 알고 메이도 슬금슬금 사라졌다.

진소유는 오늘따라 센티멘탈했다.

* * *

“…….”

진소유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계속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저질렀던 일이 후회돼서 미칠 것 같았다.

‘내 인생 씹…….’

상대가 죽자고 달려들면 진소유는 무조건 연습생 자격 박탈이다.

그딴 중국인 년이 뭐가 예쁘다고 그 지랄을 떨었을까. 아니, 예쁘긴 하지만 진소유 타입은 아니다.

진소유는 샐러드를 씹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이대로 아이돌 못 되면 내 인생 바닥으로 직행인데.’

22살, 중졸.

뭐야 이게.

물론 진소유는 데뷔조가 될 자신이 있었다. 아무렴, 정호환이 직접 캐스팅한 인재 아닌가.

진소유를 발견한 정호환은 혼비백산하면서 제발 연습생이 되라고 애원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것도 진소유가 정상적인 인격의 소유자일 때 이야기…… 아니. 정상적인 인격의 소유자처럼 보였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사람 아무렇지 않게 패는 인간이란 게 알려지면 이사님이 날 커버해줄까? 말도 안 되지.’

그때 진소유의 앞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고개를 드니 메이였다.

“오, 온니.”

메이가 살갑게 진소유를 불렀다.

그러곤 본인의 샐러드 안에 든 연어를 몇 점 집어서 진소유의 그릇으로 옮겨주었다.

“고마어. 고마어.”

메이가 비굴하게 웃었다.

아마 그녀 나름 현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찾은 듯했다.

다른 사람이 괴롭힐 수 없게 강한 자 옆에 붙는 것이다. 과연, 메이는 정치 감각이 꽤 있었다. 소중한 연어까지 내어주며 안전을 도모하다니.

“하.”

진소유는 비웃음이 나왔다.

지금 메이 때문에 죽을 거 같은데, 자신의 속도 모르고 앞으로 와서 헤죽헤죽 웃고나 있다니.

“야.”

진소유가 목소리를 내리깔자 메이가 움찔했다.

메이는 자기도 모르게 명치를 팔로 가드했다.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 때쯤.

“고마워‘요’.”

“아?”

“고마워, 요.”

“아, 아아!”

메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고마어여!”

메이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걸 보고 진소유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엄청 귀찮네.’

* * *

에리카는 집을 나서는 진저의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정돈해주었다.

“사과하면 돼. 알겠지? 보통 사람들은 사과하면 기분이 풀리기 마련이야. 오해였다고 말해.”

“알겠슴미다.”

진저는 조아라에게 줄 선물이 든 쇼핑백을 품에 꼭 안았다. 그녀가 집을 나서려던 차, 진소유가 방에서 나왔다.

진저는 멈칫하더니 진소유를 향해 말했다.

“언니, 다녀오겠슴미다.”

진소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금 일어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며 샤워실로 향했다.

진저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소유 언니는 옛날이 더 좋았슴미다.”

“맞아.”

“에리카 언니도 그렇슴미까?”

“아니, 너한텐 그렇겠다고.”

“예?”

“소유는 말이 안 통할 때가 더 좋은 사람이거든.”

언어로 치장된 진소유가 아니라, 진소유의 본질만 볼 수 있다면. 그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다.

* * *

진저가 조아라에게 어떻게 대했든, 일단 성필은 조아라에게 공감해주었다.

“응, 그랬구나. 많이 속상했겠네.”

그렇게 10분쯤 들어주고 나자 조아라도 기분이 좀 풀린 듯했다.

[오늘 밥이랑 술 사준댔죠? 그럼 아저씨가 나 데리러 와야 하는 거 아녜요?]

“빨리 안무가분들 만나야지 무슨 밥이랑 술이야.”

[끝나고요.]

“내가 봤을 때 너 안 끝내. 너무 즐거워서 밤까지 안무가분들 잡아둘걸?”

[조아라학(學) 박사 학위 인정.]

성필은 그녀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한 후, 서유선을 데리고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에 온 이들은 다섯 명 중 두 명이었다.

‘유선 씨가 미리 다른 안무가분들이랑 친목을 다지고 싶으시다니, 다행이다.’

일에 적극적인 건 좋은 일이니까.

성필은 서유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서유선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목각인형처럼 굳어서 앞만 보았다.

“……네, 이번에 참여하신 서유선 씨입니다!”

그래서 성필이 대신 소개했다.

서유선은 뻣뻣하게 다른 안무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선 구석으로 가서 바닥만 보았다.

성필은 살짝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나 사교성이 없다고?’

아니, 먼저 온 두 사람이 버젓이 중앙에 모여 있는데 왜 굳이 구석으로…….

그때 성필이 뭔가를 발견했다.

서유선은 바닥을 보는 척하면서 두 안무가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설마 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리는 거야?’

마치 새 학기를 맞이한 소심한 학생 같다.

먼저 친구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어서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만 기다리는…….

성필의 가슴이 다 아파 오는 광경이었다.

‘그냥 가서 말 걸어요! 아무도 꺼지라고 안 한다고요! 대화를 나누란 말이에요! 애초에 이건 비즈니스 자리잖아요!’

이윽고 남은 안무가들이 도착하고 나서야 서유선은 중앙으로 왔다.

일단 그렇게 서유선까지 포함한 안무가 여섯 명이 모두 모였다.

성필은 아까의 당황을 지우고, 작업에 앞서 안무가들에게 이번 프로젝트를 설명했다.

“컨셉은 ‘오토마타’, 즉 자동인형입니다. 곡은 미리 들어보셨을 거고…….”

성필이 대략적인 스케치 설명을 끝내고 안무가들끼리 자기소개 차례가 되었다.

먼저 나선 건 팔이 타투로 뒤덮이다시피 한 30대 초반의 댄서였다. 그는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로 경쾌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다들, 모두들! 신지욱이라고 합니다! 주력은 주킨, 멤피스주킨이에요! 어어, 뉴욕에서 댄서 크루에 가입해서 활동도 하고, 극장에서 공연도 해보고, 뭐 이래저래 하다가 한국으로 왔습니다.”

신지욱은 일어나서 주킨을 선보였다.

성필이 보기엔 발레와 비슷했다. 중력을 거부하는 듯한 움직임이 특히 그러했다.

다들 익숙한 듯 환호를 보냈다.

짧은 동작임에도 그의 내공이 여실히 느껴졌다.

특히 놀란 건 모던 발레, 리리컬 댄스를 익힌 하희진이었다.

본인과 전혀 관련 없다고 느낀 신지욱의 기교가 발레, 리리컬과 맞닿은 것을 보곤 적잖이 놀란 듯했다.

“저는 하, 희, 진이라고 합니다.”

하희진은 한눈에 보아도 기품 있는 동작으로 인사했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익혔고 모던 쪽으로 나아갔다가, 후에 재즈댄스 쪽으로 영역을 옮겼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시연 안 해주세요?”

신지욱이 환호와 함께 말했다. 하희진은 미소만 지을 뿐 춤을 추진 않았다. 신지욱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은 무뚝뚝한 얼굴의 남자 강한별이었다.

“현대무용 전공, 무브먼트 아티스트 강한별입니다.”

“무브먼트 아티스트요?”

“댄서요.”

“아…….”

“개인적으로 무브먼트 아티스트라고 부릅니다.”

안무가들은 저마다 익힌 춤만큼이나 각양각색이었다. 신기한 점은, 그들의 움직임에서 그들이 익힌 춤이 드러난단 사실이었다.

‘민시화 선생님 말씀이 맞네.’

몸 스키마(Schema corporel).

세상과 맺는 몸의 의식.

그건 아우라와 같아서 춤을 익힌 이들에게서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고 한다.

여러 댄서들을 모아두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성필은 흥미롭게 그들의 소개를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차례가 왔다.

서유선이었다.

“아, 저는…….”

이곳의 모두는 서유선을 알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슈퍼스타이니 당연히 안다. 이 안무가들도 젊었을 땐 다키스트의 음악을 들었으니.

모두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서유선을 보았다.

“저는…….”

서유선이 씩 웃었다.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네?”

서유선이 연습실을 바람처럼 뛰쳐나갔다.

다들 멍하니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 * *

“웨에에엑!”

서유선은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그는 눈물 콧물 질질 짜며 계속 꺽꺽거렸다.

속이 좀 나아지자 그는 한 이름을 중얼거렸다.

“미사토오…….”

나 벌써 힘들어…….

서유선, 프로젝트 참가 1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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