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518화 (518/760)

518화

지유의 난이 펼쳐진 후, 윤상열은 일단 화를 냈다.

“하.”

어처구니없단 듯 가볍게 헛웃음을 흘리더니 멤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어차피 돌아올 거다. 너희들은 딴생각하지 말고 연습에나 집중해.”

그야말로 자신만만한, 평소의 윤상열이었다.

그가 나가고 정진이 라희에게 속삭였다. 마치 바로 앞에 윤상열이 있단 듯 조심스럽기만 했다.

이게 윤상열이 글로브에 가진 권위였다.

설령 윤상열이 눈앞에 없더라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만드는 힘 말이다.

“야, 저 새끼 울었었지?”

그런데 그 권위도 오늘부터 조금 달라질 듯싶었다. 라희는 그의 인권을 위해 고개를 저어주었다.

정진이 의아하단 듯 고개를 갸웃했다.

“너 손수건으로 계속 눈가 닦아줬잖아. 그 새끼 목소리도…….”

“눈가에 과자 부스러기가 많이 붙으셨었어. PD님이 우리 앞에서 우실 리 없잖아.”

“그렇긴 한데…….”

“지유는 어떡해?”

양소민이 물었다.

그러자 다들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윤상열이 당한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말 중요한 사건을 잊고 있었다.

글로브의 멤버인 지유가 탈퇴할 기세로 연습실을 뛰쳐나갔다.

“정말 안 오면…….”

양소민은 그룹을 먼저 걱정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멤버 한 명이 빠져나간단 건 일체감이 중요한 그룹에게 엄청난 위기이다.

아이돌 그룹은 팬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 혹여나 사이가 안 좋더라도, 카메라와 시선이 있는 곳에선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운명의 짝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케미가 아이돌의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하니까.

“안 오면…….”

양소민은 불안하여 계속 그리 중얼거렸다.

라희는 그녀의 고민을 단숨에 파악했다.

지유가 그냥 나가는 것을 넘어, 이 사태를 외부에 알리면 어떻게 되냐는 것이겠지.

글로브는 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짧게 몇 개월, 길면 1년이 넘는 공백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혹은 방치당할 수도 있다.

윤상열의 성질머리라면 글로브에 없는 애정마저 다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소민아.”

라희가 양소민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지유는 돌아올 거야.”

양소민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약속에 위로받았다.

윤상열이 프로듀서로서 글로브에 권위를 쌓아왔다면, 라희는 리더로서 권위를 얻어냈다.

라희의 권위는 공포가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다. 멤버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걱정하는 선량한 마음씨에서.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연습하자.”

그렇게, 글로브는 아무 일 없단 듯 연습을 시작했다. 다들 윤상열의 명령과 라희의 위로 덕에 큰 걱정은 없었다.

하루 뒤.

회사의 분위기는 명백히 좋지 않았다.

매니저들은 지유의 집과 접촉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윤상열은 매니지먼트팀의 보고를 듣곤 비웃음을 날렸다.

“안 하겠다고? 이제?”

“네, 네…….”

“어린애 투정 들어줄 시간 없어. 계약 들먹이면서 협박해.”

“해, 했습니다.”

“……했다고?”

“네……. 그, 사, 사실…….”

매니저들은 지유의 집을 찾아갔었다. 윤상열의 말마따나 계약을 근거로 그녀를 다시 불러들일 속셈이었다.

그들이 맞이한 건 지유가 아니라 가정부였다.

대화를 요구하니 가정부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전화를 받은 건 변호사였다.

앞으로 석세스 엔터와의 모든 대화는 변호사를 통해서 할 거라고 한다.

“…….”

윤상열은 그 말을 듣고 거의 넋을 잃었다.

지유의 집이 부자라는 소리를 듣긴 했다. 그렇더라도, 변호사라고? 그 일을 겪자마자 바로 변호사를 선임한 건가?

“뭐 이런…….”

아무리 지유의 집안이 부자라도 회사를 상대로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잖은가.

별 볼 일 없는 동네 변호사가 아니고서야 나가는 돈이 만만친 않을 텐데. 게다가 변호사는 업무 시간으로 수임료를 계산하니, 갈등이 확연히 불거지기 전까지 돈이 아까워서라도 고용할 리가 없는데.

이렇게 빨리?

“아.”

윤상열은 상황을 파악했다.

“지레짐작 겁먹고 아무 변호사한테나 간 모양이네. 참나, 자기가 잘못한 건 알았나 보지?”

“…….”

매니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왜 또?”

“그, 변호사가…….”

매니저는 품에서 명함을 하나 꺼냈다.

석세스 엔터와 협업 관계인 법무법인이 지유 쪽과 접촉하여 얻어낸 명함이었다.

윤상열은 명함을 받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유&김 법률사무소

변호사 홍서헌]

대한민국 굴지의 법무법인이다.

사장 자녀의 결혼식에 법무부 고위 공직자들마저 참여한다던가. 시간당 수임료가 눈이 뒤집힐 정도로 비쌀 텐데…….

“얘, 얘…….”

윤상열이 어버버 말을 더듬었다.

“얼마나 부자야?”

매니저는 답할 수 없었다.

또 하루 뒤.

윤상열은 출근하고 얼마 후 매니저 여럿, 그리고 변호사 둘과 함께 회사를 나섰다. 그가 회사 밖으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기에 모두가 호기심을 갖고 쳐다보았다.

“참나.”

차에 오른 윤상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이가 없군.”

이 모든 상황이 그러했다.

설마 책임감 없이 정말 그룹을 그만두려 할 줄이야. 아니, 이건 정말 그만두겠단 의사를 표현하는 게 아닐 터다.

‘그래, 내가 가서 고개 한 번 숙여주마.’

정말 사과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제까지의 불만 사항을 듣고, 그에 대한 처우 개선을 약속하며, 적절한 선에서 그녀와 합의를 맺은 후 회사로 데려온다.

그게 다였다.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지만, 윤상열은 비굴해질 생각은 없었다.

‘내가 왜?’

정 안 되면 글로브를 6인으로 굴려도 된다.

그것도 아니면 새 그룹에 집중해도 된다.

그래, 그러면 된다.

이렇게까지 수고를 감수하는 건, 프로듀서로서의 책무 때문이다. 사장인 김태훈에게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하니 말이다.

‘건방진 년.’

주어진 일 하나 감당하지 못해 분노를 터뜨리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아이.

그딴 식으로 살아서 대체 어쩌려는지.

윤상열은 가는 내내 혀를 찼다.

다음 날.

“……피, 피디님?”

아침, 윤상열의 작업실을 찾은 매니저가 당황하면서 그를 불렀다.

윤상열은 작업실 구석에 비참하게 쪼그려 앉아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작업실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흐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어제 윤상열을 따라갔던 매니저들에게 일이 잘 안 풀렸단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기에?

* * *

“얘 우리 DM이랑 톡 걍 다 씹는데?”

정진이 불만스러운 투로, 동시에 낭패한 기색이 가득하게 말했다.

글로브 멤버들은 연습실 중앙에 둘러앉아 초조한 얼굴로 라희를 바라보았다.

라희는 검지로 입술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다들 그녀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글로브의 리더. 그녀는 언제나 멤버들의 고민에 적절한 해결책과 공감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답이 확실히 떠오르지 않는 듯 침묵만 지켰다.

“우리 어떡하지……?”

양소민은 울기 직전이었다. 최고의 아이돌이 되길 바라는데, 그 전에 그룹이 산산조각 날 위기에 처했으니.

양소민은 라희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의 애원하는 투로 물었다.

라희는 길게 한숨을 뿜으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에 멤버들이 낮게 탄식을 뱉었다.

그래, 이런 상황에 라희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의지했지만, 그녀도 많이 심란할 것이다.

아니, 분명 이 중 누구보다도 힘들…….

‘고마워.’

라희는 날아갈 것 같았다.

‘고마워, 지유야.’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다.

‘피디님을 속박할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을 나의 목표를, 어쩌면 이번에 이룰 수 있을지도 몰라.’

윤상열의 강압책은 오래 갈 수 없다.

라희는 그걸 알았다.

모두가 라희의 아버지처럼 강인한 정신과 육체, 재능을 가진 건 아니다. 학대에 가까운 트레이닝을 견뎌내고 별이 될 수 있는 극히 소수.

‘나는 우리 멤버들이 그만한 의지를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아.’

채찍이 있다면 당근도 있어야 하는데, 윤상열은 당근 따위 없었다. 라희가 없더라면 지유 같은 사태가 훨씬 빨리 벌어졌을 것이다.

‘내가 할 건 멤버들을 위로하는 게 전부가 아니야.’

윤상열의 목에 목줄을 걸어야 한다.

라희는 고개를 숙인 채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고 말할 수 있어.’

지유야 고마워.

라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멤버들이 어미를 바라보는 아기새처럼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지유를 만나러 갈게.”

“지금?”

“응.”

정진이 걱정하며 물었다.

“윤상열 그 새끼 심기도 안 좋은데, 가서 연습 빼고 뭘 하겠다고 하면 괜히…….”

“괜찮아. 리더가 해야 할 일이잖아.”

라희는 모두를 안심시키곤 윤상열의 작업실로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너무나 산뜻하고 가벼웠다. 도중에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정도로.

라희는 작업실 문을 노크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들어갔다.

윤상열은 의자에 느슨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엔 양주병이 여럿 보였다.

들어가자마자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라희는 얼굴을 찌푸릴 만도 하건만,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건 공손한 미소였다.

“뭐냐.”

윤상열은 저만한 술을 마셨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나른한 무력감이 담겨 있었다.

“피디님, 제가 지유를 만나봐도 될까요?”

“네가 가서 뭘 어쩌게.”

“피디님.”

라희는 윤상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에 서린 불신이 보였다.

윤상열은 지금껏 글로브를 병정으로만 여겼다. 마음 없이 명령에 따르는 인형 말이다.

그런데 이젠 다르게 보인다.

그는 멤버들을 인간으로 보게 됐다. 좋은 뜻이 아니다. 인간이란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며 오만하다.

윤상열은 언제든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불충한 신하를 보듯 라희를 보았다.

“피디님은 틀리지 않으셨어요.”

윤상열이 움찔했다.

라희의 미소가 더 진해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윤상열의 당황하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즐거웠다.

라희는 다시 말했다. 윤상열이 틀리지 않았노라고.

“그 방향성은요. 저는 피디님이 옳다고 생각해요. 가끔 저희에게 엄하시지만(가끔 아님), 그건 저희를 위해서잖아요. 피디님 덕에 저희가 이만큼 컸어요.”

“네가 뭘 안다고…….”

“네, 저는 몰라요.”

라희가 빠르게 인정하자 윤상열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제가 아는 건.”

라희는 윤상열에게 또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 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다.

의자에 앉은 윤상열과 서 있는 라희는 서로의 눈동자에 비친 서로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피디님이 뛰어난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란 것뿐이에요. 그것만으로도 어디까지나, 언제까지고 따를 수 있어요.”

윤상열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무슨 감정을 느끼기에 표정을 일그러뜨린 걸까.

적어도 분노는 아닐 것 같았다.

“저는요.”

라희가 못 박듯 말했다.

“저는 따를 수 있지만, 다른 애들은 아니에요. 방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가끔 피디님이 보여주시는 애정이 너무 과해서…….”

만약 정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X발 애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지랄을 보여주는 거겠지’라고 했을 것이다.

라희는 윤상열의 방식을 애정이란 말로 둘러 표현했다. 그리고 윤상열은 그걸 거슬려 하지 않았다.

그에 라희는 다시금 놀랐다.

‘피디님…….’

그녀의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정말로 저희를 사랑하시는 거네요?’

윤상열이 보여주는 건 애정이 맞았다.

개개인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그룹에 대한 애정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라희는 기뻤다.

물론 라희는 윤상열이 글로브를 아낀단 건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윤상열은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글로브를 아낀다. 그럴 게 틀림없다.

하지만 직접 이렇게 확인하는 건 처음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약속 하나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라희는 고양이를 향해 목줄을 내미는 심정이었다. 목줄을 들고 다가가는 자신을, 고양이가 빤히 바라보고 있다.

“제가 지유를 설득해서 데려올게요. 지유도 피디님의 방식이 옳단 건 알고 있을 거예요. 단지 너무 힘들 뿐.”

“힘들어? 힘들다고?”

윤상열이 급발진했다.

그딴 정신으로 대체 뭘 하겠냐부터 시작해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했던 건 너희들이잖느냐, 그리고 이딴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전부 다 그만둬라까지…….

라희는 그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귀로 흘리고, 그에게 미소를 주었다.

“네.”

피디님 말이 모두 옳아요.

당연해요.

피디님의 말씀 중 오류는 단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모두가 피디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 왜, 있잖아요, 천재는 대중에게 쉽게 이해받지 못해요.”

“…….”

“천재들은 사후(死後)에 인정받곤 하잖아요. 안타깝죠. 하지만 생전에 인정받는 경우도 있어요. 좋은 통역가가 있을 때요. 제가, 외람되지만, 피디님의 통역가가 되도 괜찮을까요?”

멤버들을 통솔할 권한을 달라.

당신은 목표만 제시하고 직접적인 관리, 감독은 하지 말아달라.

직설적으로 이러한 요구였다.

아니, 물론 글로브의 관리와 감독은 프로듀서인 윤상열의 몫이다. 단지 라희를 그 소통 창구로 써달라는 말이었다.

‘농장주와 마름의 관계처럼.’

윤상열은 농장주이며, 라희는 그 농장을 관리하는 마름이고, 멤버들은 소작농이다.

농장주와 소작농은 서로 만나는 일 없이 마름을 통하여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이걸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건…….’

지유를 데려오는 것이다.

석세스 엔터와 윤상열은 지유를 설득하는 데, 혹은 협박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데 라희가 지유를 데려온다면 윤상열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보다 라희가 애들을 관리하는 게 효과적이다.’

멤버들이 윤상열에게 적대감이 있으며, 그의 말에 반감을 가지고, 그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라희의 말엔 자발적으로 따른다.

라희는 윤상열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부탁드릴게요.”

라희가 직설적으로 말했다면 ‘이 새끼들이 드디어!’ 같은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어’ 다르고 ‘아’ 다르다.

윤상열이 듣기에 라희의 제안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적어도 술에 절인 머리로 생각하기에, ‘넌 우리 애들 통제할 수 없어’로 들리진 않았다.

“그래…….”

그는 아까 울분을 토하느라 목에 맺힌 물기와 함께 말했다. 그는 흐느끼듯 한숨을 뱉더니,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제 대가리가 굵어졌다 이거지…….”

라희는 자신을 말하는가 싶어서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말로 데려올 수…… 있나?”

윤상열이 애처롭게 라희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질문은 사실상 부탁이었다.

윤상열이 부탁을 했다.

그것을 보며, 라희는 황홀경을 느꼈다.

마침내 그에게 목줄을 채웠다.

“아…….”

혈관 구석구석을 내달리는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명하고 어진 여자.

용감하고 성질 급한 남자.

이 둘이 엮이는 건 옛날이야기와 신화에 질리도록 나오는 주제이다.

강하지만 다혈질인 남자는 현명하고 어진 여자와 만나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한다.

테오도라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평강 공주와 온달 같은 이야기처럼.

지금은 구시대적인 주제가 되어버렸지만, 원래 고전은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먹히는 법.

설령 인간관계더라도 그러하다.

‘내가 지배할 수만 있다면.’

아니, 지배는 너무 폭력적이다.

자신이 하는 건…… 그래.

‘피디님이 본인의 부족함을 알게 만드는 것.’

혹은 본인의 능력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것.

그럼으로써 윤상열이 라희에게 의지하도록, 종국엔 의존하도록 한다.

‘내가 아니고선 우리 멤버들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이게 라희가 윤상열에게 채울 목줄이다.

일단 첫 단계는 성공했지만, 라희는 방심하지 않았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건, 단순히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란 소리가 아니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본인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들과 사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쁜 남자가 아니라,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나쁜 남자가 끌리는 거다.

그게 일종의 로망이기도 하다.

길들일 수 없는 사냥개를 시골 똥개처럼 자기만 보면 꼬리를 흔들도록 만드는 것.

그리고 그 로망 속에서 상처 입은 여자들이 많다. 나쁜 새끼는 그냥 나쁜 새끼라는 진리를 깨달은 채로.

‘급하면 안 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 일을 진행해야 한다.

“맡겨 두세요.”

라희는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곤, 그의 손을 잡아 두 손으로 포개었다.

윤상열의 손은 술 때문에 혈류가 빨라져 매우 뜨거웠다. 그 뜨거움 속으로 라희는 신뢰를 전했다.

“꼭 데려올게요.”

“그래…….”

불신이 가득했던 윤상열의 눈동자에 다른 감정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희망이었다. 말로는 멤버 한 명 따위 별거 아니며 글로브엔 아무련 미련이 없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윤상열은 완전한 글로브를 원한다.

그렇기에 라희에게 희망을 걸었다.

라희는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엄마.’

라희는 독일에 있을 엄마에게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엄마 말이 맞네.’

남자는 이렇게 다루는 거네.

* * *

“그러니까, 하이라이트가 이런 거예요.”

조아라는 성필, 홍규헌, 손혜빈 앞에서 타이틀곡 ‘오토마타’를 설명했다.

아직 완성본은 아니지만, 곡의 방향성을 대강이나마 설명하여 임원진의 동의를 얻어내야 했다.

조아라가 리카에게 고갯짓했다.

리카가 ‘이쿠요(간다)!’라고 하며 곡을 재생했다.

‘오토마타’의 하이라이트가 재생됐다. 그 순간 조아라가 노래했다.

“워우! 워! 워! 워! 워! 워! 워워! 워! 워! 워!”

정확하게는, 노래가 아니라 기합을 내뱉었다.

강렬한 베이스와 온갖 전자음이 폭풍처럼 뒤얽히면서 조아라의 기합을 뒷받침했다.

조아라가 기합을 내지르고 있는 터라 설명은 정지음이 했다.

“이 파트 퍼포먼스가 힘들 걸로 예상돼요. 그래서 아예 보컬을 없앴어요.”

보컬도 없고 멜로디도 없다.

퍼지는 건 오로지 기합, 혹은 함성뿐.

“이게 1페이즈.”

리카가 곡을 껐다.

그러자 홍규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약간 그런 거네. 그…….”

“그레고리안 성가(聖歌)요?”

“아니, 야구장 응원 소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아, 뭐, 근본적으로는 같으니까요.”

“사장이라고 아부 안 해도 돼.”

“아부 아니에요!”

그레고리안 성가나 야구장 응원이나 비슷한 맥락이다. 오히려 홍규헌이 잘 짚은 거라고 할 수 있었다.

“다음은 2페이즈요.”

리카가 다시 곡을 재생했다.

이번엔 기합이 없는 대신 신스 멜로디가 들어왔다. 찢어지는 듯한 전자음이 곡을 이끌어갔다.

“이땐 아까보다 더 강력한 퍼포먼스가 들어올 예정이에요.”

“그래, 노래를 안 하는 만큼 춤으로 이목을 끌어야겠지. 근데 설마 3페이즈도 있어?”

“없어요. 1절이랑 2절에는요.”

“마지막 하이라이트엔 있단 거야?”

“네, 아직 만들진 않았어요.”

하이라이트 1페이즈엔 기합을.

2페이즈엔 전자음으로 멜로디를.

그렇다면 3페이즈는 어떻게 구성해야 할까?

이는 정지음과 리카 콤비에게도 난제였다.

강렬함과 스펙터클함이 특징인 케이팝의 하이라이트다. 이미 1페이즈와 2페이즈에서 에너지를 다 꺼내 썼는데, 3페이즈를 에너제틱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근데 말야.”

홍규헌이 펜을 똑딱이며 말했다.

“뭐랄까. 이게 대중적으로 먹혀들지 모르겠는데. 뭔가 스타일이 옛날 거 같다고 해야 하나. 2010년대 초반 느낌도 나고, 15년 이후 댄스음악 느낌도 나고.”

“와, 되게 잘 짚으셨어요.”

“잘 짚었어? 그럼 일부러 구시대적으로 만들었단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장르 자체가 좀…… 옛날에 흥한 느낌이 있죠.”

“일렉트로닉 장르도 레트로 바람이 분 거야?”

“사장님.”

그때 조아라가 입을 열었다.

“아직 완성본이 아니다, 라고 변명은 안 해요. 스타일이 구식이 맞아요.”

리카, 조아라, 정지음이 참고한 사운드가 옛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2015년, 컴플렉스트로의 흥기가 시작된 이후의 명곡들을 레퍼런스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명곡들은 지금 들어도 좋지만, 저희가 그걸 따라한다고 명곡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뭐…… 나름 만져봤는데도 이렇더라고요.”

알다시피 일렉트로닉 장르는 곡의 노후화가 다른 장르보다 훨씬 빠르다.

고작 1년 2년 옛것이라도 낡았단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그걸 극복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게 제 목표긴 한데요, 사실 음악 쪽은 잘 모르기도 하고요. 지음 오빠랑 리카한테 맡길 수밖에 없어요.”

홍규헌은 정지음과 리카를 보았다. 조아라가 둘에게 설명을 넘기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아라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다.

“그 단점은 비주얼로 극복할 거예요.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로요.”

“미안한데, 느낌이 잘 안 와.”

“옛날 보이그룹 곡에 요즘 시대 안무가가 만든 퍼포먼스를 붙이면 느낌이 확 달라지겠죠?”

“아, 그런 느낌이구나.”

곡은 옛것이라도 안무가 현대적으로 바뀌면 분위기가 확 좋아질 것이다. 뮤직비디오마저 그러하다면 효과가 더 좋을 것이고.

조아라가 ‘비주얼로 극복한다’고 말한 건 그런 부분이었다.

“케이팝은 노래만 좋으면 안 되고, 춤만 좋아서도 안 되고, 뮤직비디오만 좋다고도 또 안 되잖아요. 세 개가 다 합쳐져서 시너지를 내는 거니까, 나는 춤에 사활을 걸어볼래요.”

“방향성은 알았어.”

“걱정 마세요. 나도 지금 버전은 마음에 안 들어요.”

“손나(그런)!”

“우리가 열심히 만들었잖아! 우리가 같이 만든 거잖아! 리듬은 아라 네가 찍었잖아!”

“죽도록 고칠 거예요.”

홍규헌은 픽 웃었다.

“그래, 믿고 있어.”

그 순간 홍규헌이 손뼉을 짝 쳤다.

촬영 끝.

사장실에 있던 이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장실 벽면을 따라 있던 촬영팀이 저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하며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우리들의 프로듀싱 시즌2’ 촬영이었다. 무려 사장 앞에서의 프레젠테이션이 주제였다.

홍규헌은 조아라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고생했어.”

“아, 진짜요. 나 지금 등 땀으로 흥건해요. 만져봐요.”

“와.”

“그쵸?”

“만진 거 후회되네. 손이 찝찝해.”

“아타시(저)한테 닦아주세요!”

리카가 다가왔지만 홍규헌은 책상 위에 손을 슥슥 닦아냈다. 리카가 아쉽단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조아라는 손발이 저릿한지 제자리에서 낮게 뛰었다.

“아저씨는 맨날 사장님한테 이렇게 보고하고 그래요? 사장님 노려보는데 진짜 무서웠어요.”

“무서울 때가 가끔 있지.”

“박 이사가? 언제 무서운데?”

“프로덕션 기획안 가져갈 때요. 비용 보여드릴 때마다 무서워요.”

“나도 박 이사가 기획안 가져올 때마다 무서워. 반려될 거 알고 처음부터 크게 적어넣는 거지?”

“하하, 그런 감이 있죠.”

“사장을 시험해?”

“죄송합니다…….”

촬영을 마치고, 성필과 다른 이들은 사장실을 빠져나왔다. 손혜빈은 모두와 다르게 3층으로 향했다.

그것을 보자 리카가 말했다.

“손 이사님 유우쨩은 잘하고 있나요!”

“어? 영향력 행사? 압박? 청탁?”

“아, 아니에요!”

손혜빈이 놀리자 리카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서 부정했다. 손혜빈은 깔깔 웃으면서 3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리카의 질문에 대답 자체를 하지 않았다.

얼마 전 백수현이 회사를 나가려 했었다. 누나가 백설하란 이유로 주변에서 받는 차별과 질투, 무시를 참지 못해서였다.

본인이 잘못해서도 아니고, 극복이나 바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혈연으로 차별받으니 본인으로서는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중엔 백수현에게 친절한 이들도 있긴 했다.

‘누나가 설하인 게 뭐 어때서? 그런 식으로라도 데뷔하면 된 거 아니야? 데뷔하기가 만만한 게 아니잖아. 기회가 있으면 써야지.’

그런데 그게 백수현을 더 미치게 했다고 한다. 낙하산 취업이나 인맥 특혜가 알려지면 언론과 대중이 죽을 때까지 물어뜯고 욕하는 나라 아닌가.

대중에게 노출되는 빈도가 정치인 다음가는 직업인 아이돌은 그런 논란에 훨씬 민감할 것이다. 그리고 백수현 본인도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기점으로 손혜빈과 성필은 연습생을 대할 때 훨씬 조심하게 됐다. 특히 백수현과 유우토는 더욱더.

“야.”

조아라가 리카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런 거 아저씨나 언니한테 물어보지 마.”

“그치만 궁금한걸…….”

가족의 마음이야 다 똑같다.

서로 못 제거해서 안달인 형제자매라도 서로가 잘 되길 바라지 않는가.

유우토의 상황이 궁금한 게 당연했다.

“근데 아저씨.”

조아라는 리카에게 주의를 주고 난 후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사장님 원래 키가 저렇게 작았어요?”

“네가 큰 거야. 나랑 처음 만났을 때보다 컸으니까 사장님이 더 작게 느껴지는 거지.”

“아저씨 리카 세 명 가슴으로 들다가 다쳤잖아요.”

“성희롱이얏!”

“리카 세 명 흉근으로 들다가 다쳤잖아요. 그럼 사장님으로는 아예 저글링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사장님이랑 리카가 몸무게가 얼마나 차이 난다고 그래.”

“아저씨가 사장님 몸무게를 어떻게 알아요?”

“음, 저글링이라…….”

“뭔데, 진짜 어떻게 알아요?”

조아라가 심각한 투로 물었다. 성필은 괜히 그녀가 오해하지 않도록 바로 풀어버렸다.

“사장님이랑 같은 짐에 다니잖아. 인바디 잴 때마다 보니까 알지.”

“아, 글쿠나.”

“근데 저글링은 못 하지. 사람으로 저글링을 하려면 어깨랑 이두 힘을 써야 하는데, 근육이 작아서 흉근만큼 힘을 못 내.”

“뭘 진지하게 대답해요.”

“품에 안고 살짝 던졌다가 받는 건 몇 번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주세요!”

리카가 팔을 활짝 펼치면서 다가왔지만 성필은 유연하게 피해냈다.

리카는 ‘히도이(너무해)!’라면서 성필의 등을 마구마구 마사지했지만, 성필은 아무 일 없단 듯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때 옆에서 따라오던 정지음의 폰에서 톡 알림음이 들렸다. 그는 폰을 확인하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성필이 물었다.

“이수연 작사가님?”

“네. 근처에 오셨다는데요.”

“가!”

“네? 제가 왜요?”

“점심 먹자고 해. 근처에 오셨다잖아.”

“아니, 그냥 근처에 오신…… 어, 점심 먹재요.”

“봐봐.”

정지음은 갑자기 로봇처럼 어색하게 행동했다.

“그, 형. 지, 진짜 저한테 관심 있으신 거, 걸까요?”

“누가 관심 없는 사람한테 그렇게 연락해.”

“아저씨요.”

“박 이사님이요!”

“형이요.”

“난 비즈니스맨이잖아. 암튼, 이수연 작사가님이랑 잘해봐.”

“저를 가지고 놀려는 거면요? 여러 남자한테 간 보면서 어장 관리하는 거면 어떡해요? 그럼 저만 바보되는 거잖아요. 아니면 제 돈을 노리고 접근한 거라던가…….”

“넌 제발 커뮤니티 개념글 같은 거 좀 그만 봐.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 인터넷이 아니라 사람을 믿는 법을 배워.”

“저 뼈 부러져서 순살 치킨 되겠어요…….”

정지음은 굳은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가볼게요, 형.”

“잘하고 와.”

“뭐, 뭘요?!”

“아니, 그냥 잘하고 오라고…….”

“아, 네, 네…….”

셋은 사라지는 정지음을 위해 기도했다.

결국 셋만 작업실로 왔다. 오자마자 조아라가 점심을 배달시킬 샐러드 가게를 검색했다.

“아저씨, 이번에 나 ‘아오아’ 사전 미팅 가는 거 있잖아요. 아저씨도 와요?”

“내가 가도 돼?”

“‘내가 왜’가 아니라 ‘가도 돼’라고요? 진저가 그렇게 보고 싶어요?”

“네가 물었잖아!”

성필은 화를 냈지만 내심 뜨끔했다.

보기 좋게 걸려버렸다.

실은 진저가 미리 성필에게 연락 와서 ‘이번 미팅 때 오심미까?’라고 물었었다. 하지만 성필은 조아라를 걱정하여 말을 꺼내지 않았고, 갈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 조아라가 먼저 물었을 때 절로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와도 돼요.”

“응? 진짜?”

“…….”

“또 함정 수사야?! 사람 좀 그만 놀려!”

“아니, 진짜 와도 돼요. 아저씨가 사랑하는 진저 보고 싶다는데 와야죠. 와서 아주 1대1 팬미팅 열어요.”

역시 놀리는 거였구나 싶었는데, 조아라는 갑자기 씩 웃었다.

“대신 그날 약속 지켜요.”

“약속?”

“나 밥 사주기로 한 거요. 술도.”

“술이라니. 다음 날 괜찮겠어?”

“아라쨩 숙소에서도 맥주 자주 마셔요!”

“참…… 컴백 얼마 안 남았는데, 걱정이 태산이네.”

“그래서, 올래요?”

“아라가 부탁하면 가야지.”

“진저 앞에서 꼭 그렇게 말해요. 알겠어요? ‘진저 씨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열병이 들었습니다. 치료제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진저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내 병을 돌보아줄 유일한 의사시여’ 같은 말 하면 안 돼요.”

“진짜 죽고 싶다.”

“우리가 사장님 대신 아저씨 단속하는 거예요. 아저씨 워낙 걸그룹을 좋아해서 여기저기 다 만나고 다니잖아요.”

“아라쨩, 목줄도 채울까?”

“쓰읍, 얘들아. 그만 놀려. 나 어른이야. 그리고 내가 무슨 걸그룹을 다 만나고 다니…….”

성필의 전화가 울렸다.

확인하니 등록되지 않은 번호였다.

성필은 둘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팀장님.]

성필은 당황했다.

자신을 팀장님이라고 부를 사람이라면 신아름이거나 석세스 엔터 사람밖에 없다.

여자 목소리다.

아이돌이다.

그런데 퍼뜩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누구……?”

[라희예요. 글로브 라희요. 갑자기 연락드려서 죄송해요. 지금 통화 가능하실까요?]

“아, 라희구나.”

라희…… 가 왜?

아니, 번호는 어떻게 알고?

아, 소민이한테 물어봤나?

그때 성필은 시선을 느꼈다.

리카와 조아라였다.

“저거 봐 저거. 바로 사적으로 연락 오네.”

“글로브는 예상 못 했어…….”

“…….”

성필은 작업실을 나왔다.

“응, 할 수 있어. 무슨 일이야?”

[저어, 잠시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한두 시간, 아니, 두세 시간 정도…….]

“지금?”

[지금은 아니고, 지금이라도 괜찮지만, 아, 그게…….]

“무슨 일인데 그래?”

라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읊조리듯 작게 말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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