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리카는 작별 인사를 하려 멤버들 방향으로 섰다.
“아타시(나), 꼭 일본의 별이.”
리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펴졌다.
“일본의 별이!”
그러곤 또 울상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별, 흐끅…….”
리카가 우는 체하며 조아라를 흘끔거렸다.
조아라는 그것을 무시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하양이 그녀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조아라가 한숨을 쉬면서 리카를 박력 있게 안았다.
리카는 무릎을 많이 쪼그려 조아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고도 높이가 살짝 맞지 않아, 조아라는 까치발을 들어야만 했다.
“아니 뭐 너 일본에 완전히 사냐? 가끔 오잖아.”
“그치마안…… 아타시(나)는 아라쨩이랑 다르게 인기가 무지무지 많아서 바쁜걸…….”
“어, 그냥 영원히 일본에 살아. 일본의 별이 아니라 성좌가 돼라.”
“아라쨩 히도이(너무해)!”
“너 내 옆 아니면 못 잔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지? 실은 혼자서도 잘 자지?”
“지가우(틀려)! 아라쨩이 인쇄된 다키마쿠라(끌어안고 자는 베개)까지 주문했다구!”
“어디에 주문했는데?”
“에헤헤, 아라쨩도 내 베개 커버 주문하려구? 쪼금 부끄럽달까…….”
“신고 넣어서 장사 접게 만들려고.”
“그런 거 만들어주는 업체가 있어?”
장하양이 물었지만, 목소리가 작아서 누구도 듣지 못했다.
조아라가 포옹을 풀었다.
리카는 그녀에게서 떨어져 어색하게 웃었다. 울음을 참느라 눈가가 붉었다.
“뭐, 머리카락이라도 한 가닥 뽑아서 줄까?”
“에엑 진짜?! 줘 줘!”
“먹으려고? 위장에서 안 녹으니까?”
“영원히 함께야!”
조아라가 머리카락을 한 가닥 뽑아 리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리카가 기겁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옛날에 농담으로 조아라의 머리카락을 먹겠다니 뭐니 했었지만, 당연히 진심은 아니었다.
조아라가 정말 머리칼을 뽑아 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 무리 무리!”
조아라가 머리카락을 쥔 손바닥으로 리카의 입을 막았다.
“무히하 아히허하(무리가 아니었다)?!”
조아라는 씁쓸하게 미소 지으면서 다른 멤버에게 차례를 넘겨주었다. 그때 꿀꺽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리카가 웩 혀를 내밀었다.
“맛없어…….”
“너 진짜 미쳤냐?! 뱉어!”
복부를 맞은 리카가 ‘끼에에에엑!’ 소리를 냈다.
리카는 다음으로 백설하의 앞에 섰다.
“쌤! 제 정산금이 훨씬 더 많다고 질투하시면 안 돼요!”
“괜찮아.”
“역시 쌤은 마음이 넓네요!”
“곧 주식으로 다 잃을 텐데 뭘, 헤헤.”
“아무렇지도 않게 험담?! 나스닥은 무적이에요!”
다음으론 장하양이었다.
장하양은 리카의 어깨를 붙잡고 양 뺨에 입을 맞춰주었다. 상상도 못 하던 스킨십을 당하자 리카가 얼굴을 붉혔다.
“야바이(큰일이다), 반할 거 같아.”
“리카의 뺨은 파운데이션 맛이네.”
“다른 분 뺨 맛도 아시나요!”
“아, 그러네. 내 첫 뺨 맛이…….”
“한동안 언니의 재미없는 농담도 못 듣겠네요. 쓸쓸해져요.”
“……아하하.”
장하양이 시무룩한 가운데 리카는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신아름이었다.
신아름은 포옹을 준비하는 듯 팔이 움찔움찔 떨렸다. 리카를 바로 안지 못하는 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리카는 그런 신아름을 멀거니 보면서 가만히 있었다.
어색함을 참지 못한 신아름이 톡 쏘듯이 말했다.
“왜. 뭐. 어쩌라고.”
“왠지 어색해서…….”
“그래, 매일 같은 방 써도 조아라랑만 자니까 당연히 내가 어색하지. 팀장님 저 숙소에서 왕따 당해요.”
“아냐 아냐 그런 말이 아니야! 그으, 뭐랄까, 이거…… 아! 그날 같아!”
“그날?”
“아타시(내)가 프로젝트 포유 촬영하러 갈 때! 그때도…….”
리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멤버들과 성필이 보였다.
그때와 다른 점은 홍규헌과 한구인 대신 히무라와 슈이치가 있단 것이었다.
“그때도 이랬었는데…….”
“와, 리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너무하다. 소녀연맹 내부에서도 성골 진골 따지는 거야? 그래, 나 진골이다. 어쩌게, 무시하게?”
리카가 신아름을 아주 강하게 안았다.
“야, 숨 막히…….”
“아라쨩 옆자리 마음껏 써! 아름이라서 양보해주는 거야!”
“필요없…….”
“나 없다고 약해지면 안 돼! 아름이는 아타시(내)가 인정한 시세리니까! 특별히 이걸 줄게!”
리카는 포옹을 푼 후 바지춤에서 리볼버를 꺼내어 신아름에게 넘겼다.
신아름은 리볼버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다가 리카를 향해 쏘았다. 비비탄을 맞은 리카는 헤헤 웃었다.
“나라고 생각하고 아껴줘야 해!”
“…….”
이번엔 신아름이 리카를 안았다.
둘은 오래도록 서로를 포옹하다가 떨어졌다.
마지막은 성필이었다.
“아저씨한텐 아까 인사했…….”
리카는 성필의 앞에 서자마자 경례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신사옥을 기대하세요!”
“이번에는 안 울어?”
“저는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제가 이사님 가슴에 눈물을 흘릴 줄 알고 검은 티를 입으신 거 같은데, 아쉽게 됐네요!”
“그냥 손에 잡히는 거 입은 건데.”
“……이사님도, 이번엔 안 우시네요.”
프로젝트 포유 때는 둘 다 울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둘 다 울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짧은 이별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성필과 멤버들은 히무라, 슈이치가 준비해둔 밴에 탔다.
리카도 함께.
“자, 공항으로 가요!”
“이럴 거면 공항 앞에서 작별 인사 하면 안 됐나?”
“공항은 붐비잖아요! 공항 배웅은 청사 앞까지만 할 거예요!”
공항으로 가는 길, 멤버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시답잖은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리카는 아예 일본에 남는 게 아니다.
가끔이지만 한국으로 올 것이다. 게다가 나쁜 이유로 일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좋은 일이다.
다들 리카를 자주 못 본단 사실에 씁쓸할 뿐, 슬프지는 않았다.
“박 이사님.”
공항 앞에 내리고, 성필은 히무라와 악수했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뭘 했나요. 다 실장님 덕이죠.”
“어째 저희 작별 인사는 다 비슷한 거 같지 않습니까?”
“그게 비즈니스맨이죠. 입에 익은말이 따로 있는 거죠 뭐.”
둘은 하하 웃었다.
“실장님, 리카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으로 성필은 슈이치와 인사했다.
“케이팝의 정수를 깨우친 슈이치 씨, 일본에서 잘 지내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이네요.”
“박 이사님 덕분 아니겠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예를 들어서요?”
“프로듀서와 멤버는 굉장히 가까워야 한다는 것. 과거의 저였다면 괜한 직업 의식으로 거리만 벌렸겠죠. 하지만 지금의 저는 다릅니다. 멤버분들과 따로 놀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
“다 박 이사님을 보고 배운 덕분입니다.”
“따로 논다뇨? 무슨 말입니까 슈이치 씨?”
“예?”
히무라는 슈이치를 붙잡고 구석으로 끌고갔다. 그 둘을 뒤로하고, 리카는 성필과 멤버들을 마저 배웅했다.
공항 청사로 가는 리카의 걸음은 느렸다.
그녀는 성필의 곁을 걸으며 흐흐흥 콧노래를 부르거나 괜히 시선을 이리저리 던졌다.
성필이 그런 리카를 보곤 말했다.
“리카, 울 거 같으면 지금 울어. 나 가고 나서 꼴사납게 울지 말고.”
“안 울어요! 이사님이나 울지 마세요!”
“난 어른이야.”
“저도 어른이에요!”
청사 입구에 다다랐다.
멤버들과 성필은 뒤로 돌아 리카에게 손을 흔들었다. 리카도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봬요!”
“응, 잘 지내. 정승처럼 돈 벌어야 해.”
그렇게, 리카는 공항 바깥에 남고.
성필과 멤버들은 공항 안쪽으로 향했다.
조아라는 기지개를 켰다.
“으아, 올해 일본 활동도 진짜 끝이네. 근데 끝났단 느낌이 안 들어요. 아저씨, 우리 돌아가면 바로 작업해야 하죠?”
“그래야지. 근데 넌 그거보다 민시화 쌤 시험 신경 써야 하지 않아?”
“뭐, 그건 내가 알아서 하고요. 가면 뭐부터 해요?”
“글쎄. 곡이 최우선 과제겠지. 네 바람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안무가를 불러 모으는 것보다 곡을 찾는 게 먼저여야 하잖아.”
“그냥 지음 오빠 보물상자에서 적당하게 고를까요?”
“적당히 하면 적당히 망해. 이게 네 마지막 프로듀싱이란 생각으로 전력을 다하도록.”
“아저씨, 막 내가 담당한 곡이 차트 TOP10도 못 오르고 그러면 나 욕할 거예요?”
“안 하지. TOP10에 너무 집착하지 마. 티어급 아이돌도 TOP10 못 뚫고 그런 적 많아.”
“보이그룹 얘기 아니에요?”
“보이그룹은 요즘 TOP10에 오르면 기적이랄 수준이긴 하지.”
“아저씨, 나 목표 있는데 들어볼래요?”
“뭔데.”
“쌤이 우파루파로 일본 공략은 성공했잖아요? 케이팝 2위 소비국. 저는 그럼 1위 소비국 노리려고요. 미국요.”
“음…….”
“‘빌보드200’ 차트 한…… 100위? 그 정도 노려볼까요?”
“…….”
“아, 근데 100위 하려면 몇 장 팔려야 해요? 미국에서만 5만 장? 10만 장? 15만 장? 좀 빡세긴 하네.”
“…….”
“아니, 아무리 현실성 없대도 대답을 안 하는 건 너무하…….”
성필이 걸음을 뚝 멈추었다.
그의 옆에서 걷던 조아라도 멈췄다. 이어서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멈춰서 성필을 보았다.
“아저씨?”
그 순간 성필이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조아라가 깜짝 놀라 불러도 그는 달리기만 했다.
성필은 인파를 헤치면서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그는 마침내 공항 청사를 나섰다.
햇볕이 그의 눈을 때렸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는 손으로 햇볕을 가렸다.
동공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서야 초점이 잡혔다. 저 멀리 리카의 뒷모습이 보였다. 터덜터덜, 느리게 히무라의 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성필은 달렸다.
커다란 뜀박질 소리에 리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이사님?”
성필은 그녀의 앞에 서서 말했다.
“리카, 가지 마. 일본에 있지 마. 한국으로 가자. 네가…….”
성필은 입술을 벌벌 떨다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리고 더없이 진심에 가까운 말을 꺼내었다.
“난 네가 필요해. 네가 없으면 안 돼. 부탁이야, 떨어지지 말아 줘.”
“……하이(네)?”
리카는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직접 말하는 성필도 그러하니 리카는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리카, 리카…….”
성필은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그녀의 이름만 하염없이 불렀다.
리카가 슬퍼하는 건 보고 싶지 않다.
미래를 보고 나서, 그녀의 눈물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미래를 본 분기점 이후에 손을 쓰겠다고?
매니저로서의 경험이, 프로듀서로서의 경험이 있으니 충분히 리카를 케어할 수 있다고?
“제발…….”
그럴 수도 있겠지.
미래를 본 시점에서 다른 행동을 취해야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성필의 강박일 수도 있겠지.
의외로 천천히 손을 써도 늦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성필은 모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리카가 슬퍼할 미래에 도달하고 싶지 않다.
“리카, 제발…….”
후회할 미래, 리카가 무너지는 미래로 가선 안 된다.
하지만 성필은 겁쟁이다.
그녀의 미움을 받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
석세스 엔터의 박성필 부대표처럼, 성필은 기꺼이 담당 아티스트에게 미움받는 걸 감수할 수 없다. 리카에게, 리카에게는 미움받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강제도, 강요도, 혹여나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 설득도 할 수 없다.
“내, 내…….”
자그마한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리카가 슬퍼할 미래는 막고 싶다.
막고 싶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을 싫어하는 걸 견딜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비겁한 말밖에 할 수 없어.
리카.
최고의 아이돌에 가장 가까운.
내 마음속에선 이미 최고의 아이돌인.
아니.
내 친구.
나의 가족.
리카.
“내 옆에.”
성필은 강제도, 강요도, 설득도 하지 않았다.
애원했다.
“내 옆에 있어줘…….”
소녀연맹 멤버들은 뒤늦게 성필을 따라잡았다.
히무라와 슈이치는 깊은 대화를 마치고 리카에게 돌아왔다. 그들 또한 소녀연맹 멤버들처럼 무슨 일인가 싶어서 성필과 리카를 보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성필을 흘기거나 멈춰서서 그를 응시한다. 공항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바쁘지만,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사님.”
그는 울고 있었다.
“안 운다고 하신 지.”
리카가 성필의 눈가를 검지로 가볍게 닦아주었다.
“1분도 안 지났다구요…….”
* * *
을의 연애라고 한다.
상대가 자신에게 모질게 굴어도 그를 떠날 수 없다. 상대보다 자신이 더 간절해서 그에게 홀대당해도 비굴해지기만 한다.
갑을 대하는 을이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자신은 그와 헤어지더라도 그 이상의 사람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자신이 모자란 게 사실이니, 그에게 더 맞춰주고 헌신적이야 한다.
건전한 관계가 아니다.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다.
벗어나야 한다.
리카는 자신이 그러하다고 느껴왔다.
‘나는…….’
소녀연맹을 벗어날 수 없다.
소녀연맹을 벗어나도 빛날 수 없다.
적어도 다른 멤버들만큼은 빛날 수 없어.
‘나는 쌤처럼 노래를 잘 부르지도, 아라쨩처럼 춤을 잘 추지도, 하양 언니처럼 엣지있지도, 아름이 같은 재능도 없으니까.’
소녀연맹의 리드 보컬, 리드 댄서, 리드 래퍼, 그리고 농담 삼아 말하지만 리드 비주얼…….
자신이 빛날 수 있는 건 이시카와 리카라서가 아니라, 소녀연맹의 리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빛날 수 있던 건 성필이 찾아주었기 때문이다.
혼자인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배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KS 엔터에서 연습생으로 지냈지만 탈락했고,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았을, 그런 인간일 뿐이다.
그러니 리카는 소녀연맹에게, 회사에게, 성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나도 빛나고 싶어.’
무대에서의 백설하처럼, 조아라처럼 주역으로 서고 싶다.
장하양처럼 특기 분야에서 자신을 뽐내고 싶다.
신아름처럼 인기가 많아서 여러 예능에 다니고, 특별 스테이지도 잔뜩 서고 싶다.
기회만 있다면 그러고 싶어.
나도 빛날 수 있어.
‘이사님, 저한테도 일을 맡겨주세요. 해낼 수 있어요. 해볼게요.’
그렇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는다.
작곡을 배운다.
정체를 숨기고 작곡가로 활동해보았다.
눈에 띌 만한 성과는 없다.
다른 멤버들이 받는 관심이 부럽다. 하지만, 연습생 때처럼 성필에게 소리치고 울 수는 없다.
편애하지 말라고, 더 신경을 써달라고, 그렇게 떼쓸 수 없다.
이젠 어린애가 아니니까.
가진 재능과 능력에 따라 사랑과 관심의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다.
일본에서 유명해져, 어마어마한 돈을 벌고, 소녀연맹 내에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할 기회가.
‘유명해질 거야. 회사에 돈을 마구마구 벌어갈 거야. 다들 나를 다시 볼 거야.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줄 거야.’
소녀연맹의 멤버 중 한 명인 리카에서.
가로 엔터의 복덩이인 리카로 봐줄 거야.
사장님, 옛날에 점심마다 자장면만 시켜먹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이제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드셔도 괜찮아요.
한 이사님, 없는 시간을 쪼개서 제 공부를 봐주셨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이젠 원하는 만큼 강사를 고용해서 배울 수 있어요. 한 이사님의 시간을 뺏지 않아도 돼요.
박 이사님, 이젠 이사님의 지갑을 탐내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박 이사님이 바라는 걸 다 사드릴 수 있어요. 뭐든 말씀하세요.
여러분의 꿈을 제가 이뤄드릴게요.
‘아타시(나)는.’
그러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감내하겠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고 피로하고 지쳐도, 모두를 위해서 일본의 별이 되겠다.
그리고 스스로 당당해질 거야.
주눅 들지 않아.
나도 당당한 소녀연맹의 일원이야.
가로 엔터의 기둥이야.
사랑을 갈구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당연하단 듯 사랑받을 거야.
내가 모두를 필요로 하는 만큼, 모두 내가 필요하게 될 거야.
반드시…….
“내 옆에 있어 줘…….”
성필이 말했다.
리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울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리카를 못 믿어서?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리카는 생각 대신 행동을 택했다.
“이사님.”
리카가 그의 눈가로 검지를 가져갔다.
“안 우신다고 하신 지.”
그의 눈물을 닦아냈다.
“1분도 안 지났다구요…….”
“아냐, 안 울어…….”
리카는 울음 때문인지 헐떡이듯 숨결을 내뱉었다. 왜 자신이 울먹이는지 그녀도 몰랐다.
“제가 소중하세요?”
“소중해…….”
“고작 몇 주도 못 떨어질 정도로요?”
“어…….”
“그렇게 저와 함께 있고 싶으신 거예요?”
“응…….”
“여기서 이러시면 이사님의 입장은 뭐가 되나요……. 이미 계약도 끝난 마당인데…….”
“완전히 계약을 파투 내자는 게 아니야. 너한테는, 못 할 말이지만, 스케줄을 최소화해서, 버는 돈을 줄이더라도, 앨범 작업과 트레이닝에 집중하자. 약속할게, 네 노력과 기대 이상의 결과를…….”
리카는 성필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팍, 약하게 쳤다. 더는 말하지 말란 뜻이었다.
리카가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작게, 아주 작게 말했다.
“옛날에 아름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외국에 있어도 전화 한 번에 달려와 줄 수 있는 남자를 바란다고요. 아라쨩이 달려오면 뭘 할 거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이야기할 거래요.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자기 말을 들어주는 거 자체가 중요한 거라고요. 그럼 자기는 그 사람을 그만큼 더 사랑해줄 거라고…….”
리카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뭐예요 그게. 여성향 로맨스 소설 주인공 같잖아요. 어린애들이나 가질 판타지예요. 잘생긴 황제나 재벌 사장님이, 여주인공 말 한마디에 지위랑 명예를 전부 내던지고 매달리는 거. 뭐든 들어주는 거. 그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는 사람한테 강요할 게 아니잖아요.”
그래.
그렇다.
“이사님, 지금 엄청 이상하게 보여요. 이 일을 사장님이랑 히무라 실장님한테 이야기하면, 이사님이 어떻게 보일지 아시지 않나요. 저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가지 말라구요? 뭔가요 그게……. 아무리 들어도 변명이잖아요…….”
“…….”
“그런데 있잖아요.”
성필의 가슴에 손을 얹은 리카의 손이 떨렸다.
“이제 아름이가 했던 말이 이해돼요.”
리카가 성필의 가슴에서 손을 떼어냈다.
“덕분에 소녀의 판타지를 하나 이뤄봤네요. 이런 게 기쁜 걸 보니, 이 나이 먹고도 제 마음속엔 아직 소녀가 살고 있나 봐요.”
고작 성필의 말 한마디에, 속에 품고 있던 모든 독기와 의지와 결심이 녹아내렸다.
“이사님이 뭘 보고 계시는지 몰라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도 몰라요. 이유를 들어도, 지금의 저는 반감만 생길 거예요. 그러니까 간결하게 답해주셔야 해요.”
리카가 고개를 들어 성필을 올려다보았다.
“프로젝트 포유 때 기억하시나요.”
“……어.”
“그때 이사님이 저한테 부탁하시면서 하셨던 말씀 있잖아요. 기억하고 계신다면, 다시 해주세요. 그게 제가 이사님의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이에요. 설마 잊어버리신 건 아니겠죠?”
당연히 잊지 않았다.
성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 한 번만…… 믿어줘…….”
부탁할게.
그에 리카가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게요!”
친구의, 성필의 애원이니까.
* * *
[……알겠어.]
화면 안의 홍규헌이 납득했단 듯 한숨을 훅 뱉었다.
[프로듀서와 아티스트의 의견이 일치한다면, 나도 거기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어. 하지만 본인에게는 한 번 더 물어볼게. 리카, 이건 너와도 관련된 일이야. 억이란 돈은, 당연하지만, 쉽게 벌 수 있는 돈이 아니야. 1억, 2억, 몇억, 말이 쉽지 그걸 포기한단 게 상식적인 판단은 아니잖아.]
더 고생하더라도 잡아야 하는 기회다.
[난 너보다 겨우 몇 년 더 살아봤지만, 더 힘들어서라도 스케줄은 전부 소화하고 돈을 더 버는 쪽이 맞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사장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으로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고작 3개월로 네 삶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어.]
누구나 꿈에서도 바라마지않던 기회야.
[굳이 돈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 3개월이 일본에서의 네 모든 위상을 뒤바꿀 거야.]
마지막으로 물을게.
[리카, 진심이야?]
* * *
히무라가 씁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런 사람을 많이 보셨을 겁니다. 한때의 인기로 여러 예능에 등장하고, 많은 광고를 찍지만, 어느 순간 텔레비전에서 자취를 감춘 이들. 반짝 스타 말입니다.”
그들은 한순간의 인기를 구가한다.
하지만 인기를 유지할 동력이 없기에, 또는 그 인기가 영원할 줄 알고 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기에 금방 자취를 감춘다.
연예계란 운칠기삼이라지만, 엄연히 사업 전략이 존재하는 분야다.
“돈 되는 일만 한다. 좋은 생각입니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죠. 하지만 그건 장기적인 성장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돈 되는 광고만 찍고, 돈 되는 행사만 다닌다.
이건 극단적으로 인지도를 소비하는 행위다.
이 인지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게 연예계에서 살아남는 전략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금전적 대가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상징적 자본을 획득하는 일도 돈만큼 중요합니다. 인기를 유지할 방송, 행사를 도는 것도 업무의 일환…….”
히무라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러곤 단호하게 말했다.
“일본의 별이 될 겁니다. 웨벡스의 매니지먼트를 따르신다면 정말 별이 될 겁니다. 그럴 동력이 있으시고, 웨벡스엔 그 동력을 가장 적절하게 사용할 노하우와 힘이 있습니다. 열도가 열광할 겁니다. 1억 2,000만 명이 들썩일 겁니다. 올해의 정점으로 기록될 겁니다. 연장한 3개월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매니지먼트 권한만 허가해주신다면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인기를 보장하겠습니다.”
히무라가 이야기의 당사자를 불렀다.
“리카 씨. 리카 씨는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파도 위에 오르신 겁니다. 그 파도를 구름 한 번 손에 쥐는 정도로 쓰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바보 같기까지 합니다. 본업이 중요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고생하시더라도 둘을 적절히 병행하면서…….”
리카가 고개를 저었다.
그에 히무라도 입을 다물었다.
“저는 케이팝 아이돌이에요! 제 인기의 근원은 한국에 있어요! 게다가 이번 앨범은 사랑하는 아라쨩이 프로듀싱하는 앨범이라구요! 옆에서 제가 잔뜩 기운을 북돋워줘야 아라쨩도 힘낼 수 있어요!”
“……소녀연맹에 집중하시겠단 뜻이군요.”
“넵!”
리카가 축 늘어진 히무라를 향해 자신만만이 가슴을 두드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년에 돌아올 소녀연맹은, 저 이시카와 리카는 훨씬 더 대단할 테니까요! 다음 재계약은 계약금 5억 엔은 불러야 할지도 몰라요! 앨범 100만 장을 돌파할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소녀연맹은 항상 더 높이 올라가니까요!”
호언장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의기양양한 선언.
“일본의 별로 만족하지 않아요! 케이팝의 빅 웨이브를 타고 글로벌 스타가 될 거예요!”
“……하하.”
히무라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리카의 활기찬 모습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방금까지 돌덩이가 얹어진 듯한 위장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 순간, 히무라는 리카를 설득하길 포기했다. 소녀연맹과 재계약하려면 아티스트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
본인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완고하다면 어쩔 수 없다.
“리카 씨.”
그렇지만 히무라는 바로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물었다.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저조차도 속이 쓰릴 지경인데 말입니다.”
“별이 될 방법은 하나가 아니니까요! 저의 황도(黃道, 12개의 별자리를 가로지르는 태양의 궤적)는 한 갈래보다 많아요!”
히무라가 후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내년을 기대하겠습니다. 내년엔 우파루파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신드롬을 만들어주십시오.”
“홍백가합전까지 제패해볼게요! 그렇죠?”
리카가 옆을 보고 미소 지었다.
“이사님!”
* * *
“이사님.”
옆에 앉은 히무라가 성필을 불렀다.
리카의 광고 촬영만 바라보던 성필이 뒤늦게 답했다.
“네.”
“온 거 같습니다.”
“뭐가요?”
“리카 씨의 리즈가요. 지금 여기서 갱신됐습니다.”
뷰티 회사 시세이도의 계절 라인 ‘사쿠라바나’ 광고 촬영장. 그녀는 벚꽃으로 꾸며진 세트에서 본인의 매력을 더 없을 정도로 발산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순백의 드레스는 옷이 아니라 그녀의 피부처럼 자연스러웠다.
“그러게요.”
“어째 반응이 짜신 거 같습니다.”
성필이야 전생에서 이 광고를 이미 봤으니, 히무라보다 감흥이 덜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휴식을 받은 리카가 성필과 히무라에게로 도도도 달려왔다. 그녀는 입술에 사쿠라바나 립스틱을 바르고 있어 평소보다 더 생기 있어 보였다.
“이사님 보셨나요! 아타시(저)의 저세상 아름다움을!”
“와, 진짜 미쳤다. 매드무비 보는 거 같았어. 어떻게 실제 인간이 매드무비를 찍지?”
히무라는 아까와 전혀 다른 반응의 성필을 보곤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저토록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쉽게 바꾸지? 연기라도 배웠나?
“에헤헤.”
리카는 기쁘단 듯 웃더니 옷가슴께를 쥐어뜯는 제스처를 취했다.
“내 몸에서 나가 셰이커!”
“셰이커가 뭡니까?”
“프로게이머 모르시나요!”
“아, 게임이었습니까.”
히무라는 게임과 연이 멀었다.
당연히 프로게이머를 알 리가 없었다.
리카는 본인의 입술을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이거 저한테 잘 어울리지 않나요! 광고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색이 엄청 예뻐요! 특히 저한테요!”
“응, 잘 어울려.”
“에헤헤. 이번 광고는 빨리 끝날 거 같아요! 담당자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셨잖아요!”
광고는 고작 십수 초에 불과하지만, 촬영 시간은 몇 시간을 훌쩍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보통 광고주는 유명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막대한 돈을 쓴다. 최대한 많이 찍고, 최대한 좋은 장면을 얻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래서 됐다 싶어도 찍고 찍고 또 찍는다.
하지만 리카는 본인이 완벽했다고 자부했다.
“남은 시간은 히라주쿠 관광을 해도 되겠……!”
“촬영 재개하겠습니다!”
“손나(그런)!”
리카는 자랑했던 게 무색하게, 바로 세트장으로 끌려갔다.
성필은 잘하고 오란 뜻으로 양팔을 활기차게 흔들어주었다. 리카는 눈에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연신 윙크하면서 성필에게 손 키스를 날렸다.
촬영이 재개됐다.
성필은 촬영 현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났단 듯 말했다.
“히무라 씨, 리카가 언제 저렇게 컸죠?”
“예?”
리카는 걷는다.
분홍색의 배경, 흩날리는 벚꽃, 흰색 드레스를 입은 천사가 낙원을 거닌다.
“언제 컸냐니…… 원래 저러지 않으셨습니까?”
“어른…… 이 됐네요. 리카도.”
“저랑은 처음 뵀을 때부터 어른이었습니다만.”
카메라는 그녀의 하얀 발, 선명한 윤곽의 옆얼굴, 복숭앗빛의 무릎, 환하게 드러난 등, 그녀의 부분 부분만을 비춘다.
“……그런가요.”
연분홍 립스틱, 벚꽃색을 머금은 리카의 입술이 클로즈업된다.
이윽고 벚꽃 나무 아래의 그녀가 드러난다.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에서 그녀가 카메라를 돌아본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혹은 선녀.
그런 그녀가 짧게 말한다.
성필이 지닌 전생의 기억과는 다른 표정과 어조로.
“사쿠라바나(벚꽃)!”
리카는 무표정 대신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행복으로 가득했다.
* * *
리카는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대신, 한국에서의 컴백 준비에 집중하기로 했다.
덕분에 주에 한 번 정도만 일본으로 가 일 처리를 빠르게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성필이 그녀에게 애원할 때 했던 말이 있는 터라, 그도 리카의 스케줄에 함께 하게 됐다.
성필은 안도했다.
‘아마 이게 올바른 미래.’
리카가 무너지는 미래에 도달하지 않을 조건은 가로 엔터나 웨벡스의 전략 수정 같은 게 아니었다.
성필이 생각하기로, 리카 본인이 마음을 바꾸어 먹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 계기는 성필의 애원이었을 것이다.
‘리카.’
인정욕 가득한 아이.
그녀의 인정욕은 성공으로 채워져야만 했을 것이다.
취업에 연신 낙방한 사람에게 애인과 부모가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인정해준다고 하여도, 그의 인정욕이 채워질 리는 만무하다.
근원적으로 성공과 승리가 뒤따라야 한다.
리카도 그랬어야 했을 텐데.
“이사님, OK사인이 나왔어요!”
“진짜 빨리 끝났네.”
“다 아타시(제)가 잘나서라구요! 자, 빨리 칭찬하세요!”
“리카 대단해.”
리카는 성필의 애원을 듣고 곧바로 결심을 단념했었다. 그게 리카의 마음을 곪게 만들지, 아니면 더 건강하게 만들지 이 시점에선 알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이란 하루아침에 바뀌기도 하지만, 십수 년의 세월 끝에 드러나기도 하니까.
“에에, 성의가 없어요!”
“그럼 뭐 어떡할까.”
“제가 포즈를 잡을게요! 그럼 깜짝 놀라 자빠져주세요!”
하지만 만약, 정말 리카가 성필의 애원만으로 마음을 돌렸다면.
그를 전적으로 믿음으로써 모든 짐을 놓아버렸다면…….
“리카.”
“하이(네)?”
“아이돌이 돼줘서 고마워.”
“에에, 대체 몇 번이나 그 말을 써먹으시는 건가요! 이젠 감동도 없다구요! 그 말은 아타시(제)가 가로 엔터에 들어왔을 때로 충분해요!”
“그럼, 매일이 너와 만난 날이었으면 좋겠어. 매일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게.”
리카는 오글거린단 표정을 짓더니, 기어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터진 찐빵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지경이다.
“이사님은 10대 소녀인가요! 시집을 너무 많이 읽으셨어요!”
“고맙단 말은 몇 번이나 들어도 기쁘지?”
“아뇨! 기쁜 것보다 더 나아요!”
“그럼?”
“행복해요!”
리카는 필살기를 준비하듯 자세를 잡았다. 그러면서도 자꾸 성필이 했던 말이 떠올라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진지하게 표정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자, 그냥 만면에 번진 미소를 가만히 두기로 했다.
“자, 갑니다! 눈 똑똑히 뜨고 보세요!”
“응.”
……만약, 정말 리카가 성필을 믿는 것만으로 모든 짐을 놓아버린 게 맞다면.
타인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것.
믿자고 결심할 수 있는 것.
그러한 결심을 만드는 감정은 두 가지가 있다.
“사쿠라바나(벚꽃)!”
우정(友情)과 애정(愛情)이다.
“왜 안 나자빠지시나요!”
소녀연맹 일본 활동,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