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화
진소유가 ‘그럼 시간은 언제가 괜찮으세요?’라고 물으려던 순간.
“그런 거면.”
장하양이 끼어들었다.
“오늘 같이 다니면서 이야기해요.”
장하양의 표정은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진소유는 그녀의 표정이 일순 일그러졌던 것을 보았었다. 그랬기에 그녀의 태도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다가왔다.
“하양아, 괜찮아?”
진소유가 물으려던 것을 성필이 먼저 물었다.
성필이 알기로 장하양은 진소유를 싫어한다. 그런데 놀러 가는 자리에 진소유를 합석시킨다고 하니, 성필로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내가…….”
“아뇨, 오늘로 해요. 소유 언니도 그쪽이 좋으시죠? 창작에 관련된 거라면 소유 언니의 아티스트십과 관련된 거니, 최대한 빨리 답을 얻으면 좋잖아요. 그렇죠?”
장하양이 싱긋 웃으면서 물어왔다.
그 순간, 진소유는 도저히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뭐야 이게, 하양아.’
장하양.
결코 함락되지 않는 성벽.
함락될 수 없는 성벽.
그건 비잔틴의 수도에 있던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과 같았다. 수많은 제왕들이 도전했지만 단 한 번도 무너뜨리지 못했던 불락성(不落城).
콘스탄티노플은 대포가 실용화되고 나서야 기어코 천 년 넘는 명성이 꺾이게 되었더랬다.
진소유는 대포를 손에 넣은 메흐메드 2세가 된 기분이었다.
“괜찮겠어?”
불락의 성을 뚫어낼 방법이 보였다.
그 희열이 심장으로부터 진소유의 입가로 옮겨가 활활 타는 불꽃처럼 그녀의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렸다.
지금껏 장하양에게 얼마나 많은 문자를 보냈던가. 전화는? 톡은? DM은?
직접 찾아가려 해도 허용해주지 않았고, 용무가 있다 하여 찾아오라 해도 겨우겨우 한 번 왔을 뿐이다.
그런 그녀, 장하양이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진소유는 성필을 바라보았다.
‘박성필 이사님이 있단 이유만으로.’
장하양은 지금껏 쳐두었던 모든 벽을 거두고 옆에 서길 허락해준 것이다.
“정말, 괜찮은 거야?”
“괜찮아요. 오히려 언니가 함께해 주시면 좋겠어요.”
* * *
성필은 장하양과 진소유를 데리고 조후시(市)로 향했다. 축제가 열리는 건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인 7시 30분부터이다.
성필이 출발한 건 이른 저녁 즈음이라 차가 막히지 않을 줄 알았건만, 의외로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성필은 옆을 흘끔 보았다.
진소유가 한치의 미동도 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만큼 조수의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고 있었다.
‘하양이가 무슨 일이지.’
당연히 장하양이 조수석에 앉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진소유에게 조수석에 앉길 권했었다.
성필과 이야기하기 위해 왔는데 뒷자리에 앉아서야 되겠냐고 말이다. 그렇게 조수석에 앉은 것 치곤, 진소유는 말문을 영 열지 않았다.
“언니.”
상황을 지켜보던 장하양이 진소유를 불렀다. 진소유는 여전히 앞만 보는 채로 답했다.
“응.”
“지금 이야기하셔도 괜찮지 않을까요?”
“박성필 이사님 운전 중이시잖아. 운전 중엔 괜히 정신 사납게 만들면 안 돼.”
“저는 괜찮아요.”
성필의 운전 경력만 해도 전생의 기억을 합쳐서 20년이 넘는다. 초보 운전자도 아니고, 운전하면서 이야기하는 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도로가 막히기도 하고 말이다.
“말씀하셔도 돼요.”
“…….”
진소유는 입을 열지 않았다.
고작 십수 초, 하지만 대화의 공백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진소유의 답이 없자 장하양은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빠른 어투로 되물었다.
“창작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박 이사님께 상담을 요구하실 정도면, 에리카 씨처럼 깊은 고민이 있는 거 아니신가요? 기회가 왔으니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빨리 말하는 게 마음이 편하실 거예요.”
성필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장하양이 다그치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만 같았다.
‘너 실은 핑계에 불과하고 할 말은 없지?’라고 하는 듯하여, 진소유를 몰아붙이는 모양새가 됐다.
“언니?”
쐐기를 꽂듯 장하양이 진소유를 부른 순간.
“세계관이요.”
진소유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이돌의 세계관, 그 필요성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어요.”
“세계관요? 앨범 컨셉이 아니라, 아이돌의 세계관 그 자체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앨범 컨셉은 케이어스도 있으니까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앨범의 전체적인 윤곽을 이루는 스토리라인이나 곡의 앰비언스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세계관은 잘 몰라서요.”
“케이어스도 앨범으로 이어지는 서사가 있지 않나요?”
카오스 - 가이아 - 타임(크로노스) ― 넥타르로 이어지는 서사가 있을 것이다.
성필이 그리 묻자 진소유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만 맞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세계관에 대해 잘 몰라요. 필요성을 알고 싶은데,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필요성이라면, 꼭 필요하냐? 이익이 있냐? 그런 걸 말씀하시는 거죠?”
“네.”
성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즉답했다.
“있으면 좋아요. 딱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있으면 좋다.”
“어느 측면에서요?”
“해석의 재미…… 란 건 너무 추상적이죠? 해외 팬에게 떡밥을 줄 수 있단 점에서 의미가 있네요.”
한국의 팬들이 간과하는 것이, 해외 팬들은 한국 팬들만큼 아이돌에게 친근감을 느끼기 힘들단 것이다.
한국인이야 음악 방송에 나오고 예능에도 나오고 하니, 그러한 방송들만 봐도 아이돌의 떡밥을 채우기 좋다.
라이브 방송을 보는 것도 아이돌을 파는 한 방법이고 말이다.
그러나 외국 팬들은 그러한 통로가 극히 제한된다. 언어적 장벽 때문이다.
“보통 아이돌의 세계관이 표현되는 건 영상, 뮤직비디오에서예요. 그러니 언어적 장벽을 무시하고 해외 팬들에게 즐길 거리를 줄 수 있는 거예요.”
현세대는 글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보다 영상에서 상징과 의미를 찾아내어 조합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
어릴 때부터 영상 매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영상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상징물이나 색으로 표현되는 의미 등을 찾아내는 게 쉽고, 이는 영상을 해석하는 재미를 더해준다.
“시각 효과는 언어에 구애를 받지 않으니까요.”
“확실히 그런 면이 있네요.”
진소유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단 듯, 평소의 차가운 인상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홍보 면에서도 세계관이 있는 편이 훨씬 좋죠.”
“그런가요?”
진소유는 바로 이해가 안 된단 기색이었다.
“제가 예를 들어볼게요. 지금부터 소유 씨는 소녀연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그 상태에서, 제가 소유 씨한테 소녀연맹을 영업해볼게요.”
“네, 해보세요. 절대 안 넘어가요.”
“이거 그런 게임 아닌데.”
진소유가 픽 웃었다.
잘 안 웃는 사람이 웃으니 더 보기 좋았다. 빛나는 것만 같다.
성필은 괜히 들떠서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일단 소녀연맹의 세계관이 없단 전제하에 해볼게요. 자아, 시작.”
성필이 3초 정도 침묵하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소유 씨, 소녀연맹 아세요?”
“아뇨.”
“소녀연맹이라고 걸그룹이 있는데, 퍼포먼스가 진짜 뛰어나요. 엄청 굉장해요.”
“음.”
“리카란 애는 카와이 베이스란 걸 작곡하고, 아라는 춤을 되게 잘 추고, 하양이는 착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태도에 랩을 잘하고, 아름이는 보는 건 뭐든 따라 할 수 있고, 설하는 아무튼 대단해요. 노래도 좋아요.”
“으음.”
다시 성필은 침묵했다.
그러고선 씩 웃었다.
“이 이상으로 다른 사람한테 영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글쎄요.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준다거나.”
“그런데 보통 그럴 때 보여주는 사진이랑 영상은 팬의 눈에만 예뻐 보이지,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선 이게 뭔가 싶거든요. 예를 들어, 친구한테 영화나 드라마를 추천해준다고 해도 잘 안 보잖아요?”
“그렇죠.”
“자, 이제 세계관이 있다는 전제하에 말해볼게요.”
3초.
그리고 다시 이야기.
“소유 씨, 소녀연맹이란 그룹 아세요?”
“아뇨.”
“걔네 세계관이란 게 있는데 어떤 내용이냐면. 막 과거에 일어나야 했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서 현재가 디스토피아처럼 변해요. 음악, 자유, 그런 게 다 없어진 세계예요.”
“음.”
“그런데 소녀연맹 멤버들이 과거로 돌아가서 원래 일어나야 했던 사건, 혁명들을 다시 일으켜요.”
“아이돌이요?”
“네, 아이돌이요. 어떤 사건인지 알아요? 명예혁명,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4·19혁명, 68혁명이에요. 아이돌이 과거로 돌아가서 그 혁명들을 일으킨다니까요?”
“뭐예요 그게, 혁명돌이에요?”
“그쵸. 웃기죠? 그리고 더 웃긴 게, 이 그룹 줄임말이 소련이래요.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그거요. 그래서 뮤비에서 막 싸우고 그래요. 문화를 지키자, 뭐 그런 슬로건을 내걸고 그러던데.”
진소유가 입꼬리를 올렸다. 성필이 말한 ‘홍보에 좋다’는 의미를 바로 깨달은 것이다.
“어때요, 전자랑 후자 중 어느 쪽이 소녀연맹 노래를 들어볼 확률이 높을까요?”
“물을 필요도 없네요. 어처구니없어서라도 혁명을 일으키는 소녀연맹 노래를 더 들어보겠어요.”
“맞아요. 멤버들이 초능력자란 컨셉을 지니고 데뷔한 아이돌이 있는데, 사람들이 다 비웃었어요. 비웃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그룹 이름을 전부 외우게 된 거죠. 엄청난 홍보 효과 아니에요?”
비웃기 위해서라도 노래를 한 번 듣거나 뮤비 한 번씩을 더 보게 될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긴 하다.
정말 비웃음만 당하는 경우다.
소녀연맹은 예로부터 소련이란 줄임말과 인민이란 팬덤 이름 때문에 여러모로 홍역을 겪었었다. 세계관과 특이한 콘셉트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춘 홍보법인 것이다.
“어중간하게 쓰면 정말 비웃음거리만 되고 끝난단 단점이 있지만, 소녀연맹은 성공했으니까요.”
게다가 소녀연맹이 전하려는 궁극적인 메시지는 팬들에게 아주 잘 전달되었다.
아니 - 롱 포 - 아라베스크로 이어지는 3부작 서사의 완결점인 콘서트.
그곳에서 소녀연맹은 ‘투쟁하고 저항하는 모두가 소녀연맹’이란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그 서사를 훌륭하게 완결시켰었다.
“그런데 세계관이 왜 궁금하세요?”
“제가 생각하는 게 있어서요.”
“생각하는 거요?”
그때 성필은 백미러에 눈이 갔다.
장하양이 보였다.
그녀는 어쩐지 침울한 기색이었다.
‘아, 내가 너무 소유 씨랑만 말했네.’
성필은 급히 장하양에게 말을 걸었다.
걸려 했다.
“이쯤에서 세워야겠어요.”
진소유가 말했다.
차는 축제가 펼쳐지는 다마강(多摩川) 변 근처까지 왔다. 강변으로 향하는 사람 중에는 일본 전통 옷을 입은 이들이 많이 보였다.
안쪽으로 차를 끌고 들어가봤자 주차 공간은 없을 것이다. 진소유의 말마따나 이 근처에서 주차할 만한 장소를 찾아야겠다.
성필은 운전에 집중했다.
장하양은 시선을 흘끔 올렸다. 차창에 비친 진소유와 눈이 맞았다.
진소유가 눈웃음을 지었다.
장하양이 입술을 물었다.
* * *
“우와.”
강변 둔덕에 올라 바라본 광경은 장관이었다.
초록의 잔디로 덮인 강변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저마다 돗자리를 가져왔는지 일행과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런 광경이 강변을 따라 끝없이 펼쳐졌다.
평균 1만 명 이상이 참석한다는 모양인데, 확실히 규모가 큰 축제였다.
“아, 죄송합니다.”
성필은 자신의 등을 친 누군가에게 사과했다. 인파는 계속해서 안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가만히 있어선 안 됐다.
“하양아, 소유 씨, 일단 강변으로 쭉 걸어요.”
성필은 계속 나아가면서 뒤따라오는 둘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3초마다 한 번씩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옆에서 샤넬 넘버 5의 향이 난다 싶었는데, 진소유가 성필의 바로 옆에 섰다.
이만한 인파 사이에서 걷고 있다. 옆에 선다면 어깨가 붙을 수밖에 없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진소유는 성필과 어깨를 맞댄 채 걸었다.
그녀는 힐을 신었다.
성필은 구두를 신었다.
진소유의 키가 더 컸다. 자그마한 차이지만, 성필은 그녀를 높이 올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저는…….”
성필은 진소유에게 집중하는 대신 다급하게 뒤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얼굴의 장하양이 보였다.
그녀가 인파에 밀려 사라질 것만 같았다.
성필은 ‘아’ 소리를 내면서 팔을 뒤로 뻗으려 했다. 그보다 빨리 장하양이 성필에게 성큼 다가왔다. 성필의 뒤에 붙어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성필이 그걸로 괜찮겠냐며 표정으로 물었다. 장하양이 미소로 답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걸어가게 됐다.
진소유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약 제가 곡을 낼 수 있게 된다면, 페르소나를 생각하고 있어요. 캐릭터요.”
페르소나.
일상적인 언어는 아니었다.
인간이 본래의 인격 대신 가면처럼 내거는 또 다른 자신을 일컫는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이라면 누구든 정도의 차이만 있지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페르소나란 말이 뮤지션의 입에서 나온다면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
“데이비드 보위처럼요.”
진소유가 데이비드 보위를 언급하자 성필이 반가운 기색으로 답했다.
“데이비드 보위를 아세요?”
“Under pressure―.”
진소유가 짤막하게 퀸의 메인보컬 프레디 머큐리와 데이비드 보위의 합작인 언더 프레셔 하이라이트를 불렀다.
한국에선 광고 음악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알죠.”
“와, 소유 씨 또래에 알기 쉽지 않은 가수잖아요. 솔직히 신기해요.”
“저도 나름 뮤지션이라구요. 음악은 여러 종류로 들어요.”
데이비드 보위는 글램록을 전 세계에 알린 스타라 할 수 있다. 또한 한 장르에만 머물지 않고 수많은 장르에 투신했다.
거기에다 페르소나의 가치를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고 이용한 천재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무려 아폴로 달착륙 당시에 사용되어 전 세계인이 그의 노래를 듣게 되기도 했었다.
그는 생전 여러 페르소나를 팬들에게 선보였었다. 화성에서 온 록스타인 ‘지기 스타더스트’가 대표적인 그의 페르소나 중 하나이다.
“그런데 뭐랄까, 사람들이 웃기게만 볼까 봐 걱정이에요. 아이돌 세계관만 봐도 사람들은 ‘저런 걸 대체 왜 하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진지하게 페르소나를 들고 나와봐요.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지 않을까요.”
“그게 소유 씨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저는 응원할게요.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좀 그렇지만. 페르소나의 의미는 정확히 아시죠?”
단순히 앨범 컨셉이나 곡 컨셉을 넘어서서, 그 캐릭터 자체를 연기하겠단 뜻이다.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전략이 아니다.
성필은 진소유가 페르소나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게 아닌지 걱정됐다.
“알고 있어요.”
“그럼 표현하고픈 페르소나가 있으세요?”
“뻐킹 랩스타 팝스타 록스타.”
“……네?”
진소유가 웃었다.
여름이다.
그녀와 맞닿은 어깨가 눅눅했다. 그녀가 땀 때문에 기분이 나쁘진 않을까 걱정됐다.
“모든 스타예요. 별. 가장 빛나는 누군가. 무슨 소린지 잘 모르시겠죠?”
“어…….”
‘뻐킹’은 왜 붙인 거지?
“자유롭고 싶어요. 진소유란 이름은 너무 무거워서요. 자유롭게 살고 싶은 거예요.”
성필은 대뜸 긴장했다.
갑자기 진소유가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게 뮤지션의 깊이인가?’
감히 범인의 생각으론 따라갈 수가 없었다.
데이비드 보위를 마주했던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을까?
그녀의 ‘뻐킹 랩스타 팝스타 록스타’가 어떤 건지 모르겠고,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어떨 거 같아요?”
진소유는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이전에 성필이 보지 못한 성필의 무언가였다. 왜인가 고민했더니, 그 웃음에 진심이 담긴 듯해서 그리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이돌이란 캐릭터를 넘어선 퍼스널리티가 느껴진다. 성필이 마주하고 있는 그녀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사근사근해야 하는 소유가 아니라, 진소유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녀의 웃음은 빛났다.
“저는…….”
성필이 답하려던 순간, 장하양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성필은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퍼뜩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주변의 인파가 많이 줄어 있었다.
장하양이 어느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솜사탕을 팔고 있었다.
“솜사탕 먹고 싶어?”
장하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필은 주머니에서 동전 지갑을 꺼냈다.
“소유 씨도 드실래요?”
“아뇨. 설탕 덩어리잖아요.”
성필은 솜사탕을 가져와 장하양에게 주었다. 장하양은 한입 물더니, 그것을 그저 손에 쥐기만 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때 장하양이 진소유의 옆으로 붙었다. 그러고선 솜사탕을 진소유에게 내밀었다.
진소유가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드세요. 맛있어요.”
진소유는 아주 오랜만에 사회성을 발휘하여 성필을 보았다. 그래도 어른에게 먼저 권하는 게 맞지 않느냔 뜻이었다.
그에 성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 먹어요. 설탕 덩어리잖아요.”
“박성필 이사님도 체중 관리하세요?”
“그런 거 먹으면 권강철 트레이너님한테 혼나요.”
권강철 트레이너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알겠다.
진소유는 다시금 장하양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솜사탕 앞에 입을 가져갔다. 한 입 베어 물었더니 황홀한 단맛이 입 안을 감쌌다.
눈을 드니, 솜사탕으로 이루어진 언덕 위로 장하양의 눈이 보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하고 있다.
진소유는 급히 솜사탕에서 입을 뗐다.
“맛있네. 고마워 하양아.”
“저기쯤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성필이 강변이 끊어지는 장소를 가리켰다. 그 위로는 지상철 선로가 깔려 있었다.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중심지에서 떨어져서 그런지 인원이 확 줄었다.
세 사람은 그곳으로 향했다. 모두 한여름에 거리를 쭉 걸었더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진소유는 한숨을 쉬면서 성필의 뒤만 따랐다. 그러던 도중, 다시 그녀의 시야로 솜사탕이 나타났다.
“드세요 언니.”
“아냐, 괜찮아.”
“맛있어요.”
장하양이 솜사탕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진소유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다시 입을 가져갔다. 그러자 장하양도 동시에 입을 가져갔다.
둘은 솜사탕을 사이에 두고 함께 먹었다.
한 입.
그리고 멀어졌다.
둘은 입 안에서 단 것을 녹이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맛있죠?”
“……어.”
머리가 이상해질 만큼 달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살걸…….”
“사 올까요?”
작게 혼잣말한 것인데 성필은 귀신처럼 알아들었다.
“아, 아니요.”
진소유가 고개를 홱홱 저었다. 더위 탓인지 귀가 붉었다.
“저는 또 먹고 싶어요.”
장하양이 남은 솜사탕을 먹으면서 말했다. 그에 진소유는 성필을 보며 말했다.
“그럼 다 같이 가는 편이 낫겠네요.”
“아녜요. 아이돌이 여기저기 다니면 괜히 이목이 끌리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끌리겠지만, 그래도 덜하겠죠. 여기 오면서도 사방에서 시선이 와서 좀 그랬거든요.”
성필은 그리 말하며, 진소유가 뭐라 하기도 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진소유는 아랫입술에 남아 있는 설탕을 핥았다. 달았다.
“언니.”
그때였다.
해가 지는 것과 동시에 장하양은 무섭게 떨어진 목소리로 진소유를 불렀다.
“왜 그러시는 거예요?”
그 순간, 진소유는 설탕으로 이루어진 환상에서 깨어났다.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입술에 묻은 설탕을 마저 핥은 후 장하양을 바라보았다.
“뭐가?”
“제가 계속 언니 연락에 무뚝뚝하게 답한 건 죄송해요. 언니가 계속 다가오려는데도 정 없이 밀쳐낸 것도 죄송해요. 죄송한데, 그거 때문에 복수라도 하시려는 거예요?”
“복수? 이상한 말을 하네. 복수란 건 대상이 있어야 하잖아. 애초에 내가 뭘 했기에 그러니?”
“자꾸.”
장하양이 진소유에게로 한 걸음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 앞으로 세 걸음.
“박 이사님한테, 그러시잖아요.”
“그런다니?”
장하양이 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 앞으로 두 걸음.
“나이 든 남자 놀리니까 좋으세요? 설레하고 신경 쓰이는 거 보니까, 장난감 가지고 노는 것처럼 신나고 그러신 거예요?”
“너 사람을 아주 나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내가 박성필 이사님을 놀린다니, 너한테 복수를 한다니,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장하양이 다시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두 사람의 거리 앞으로 한 걸음.
“어떡하면 그만하실래요?”
“……하양아.”
진소유가 미소를 머금었다.
“너,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중, 나와 가장 가까워.”
진소유는 장하양을 내려다보았다.
힐을 신은 그녀의 키는 180cm 중반을 넘었다. 그렇기에 장하양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장하양의 얼굴로 진소유의 그림자가 내려왔다.
“그만둬요.”
“그러니까 뭘.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해야 할지 몰라.”
“내기해요.”
“내기?”
“내가 내기에서 이기면, 그만둬요.”
“내기란 건…….”
“내기란 건, 주고받는 게 있어요. 알아요.”
진소유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했던 게 무색하도록 쾌활히 답했다.
“뭘로 할까.”
“뭘로 하면 해주실래요?”
“이번 보그 촬영, 지면을 더 많이 차지한 쪽이 이기는 걸로 하자.”
장하양이 흠칫 떨었다.
진소유는 ‘후쿠요 히다카’의 앰배서더다.
이번 보그 지면 촬영 기획은 ‘후쿠요 히다카’의 것이다. 당연히 ‘후쿠요 히다카’는 앰배서더를 더 신경 쓸 것이다.
지면이 7쪽이라면, 4쪽을 진소유에게 배당해 줄 것이다. 어지간히 장하양의 사진이 잘 뽑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게다가 그럴 확률은 낮다.
상대는 진소유.
카메라 앞에 서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거 아니면 안 해.”
“……제가 지면 바라는 건 뭔데요?”
진소유가 한 걸음 다가갔다.
둘의 거리는, 없다.
진소유가 장하양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슬며시 가져갔다. 둘이 맞붙은 채로, 진소유가 말했다.
“나를 봐줘.”
불꽃이 하늘을 물들였다.
그러고선 땅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이 딛고 선 땅으로 붉음이 번져갔다.
“나를, 진소유(眞所有)를.”
* * *
성필은 솜사탕을 양손에 들고 빠르게 걸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리기에 깜짝 놀라 옆을 보았다.
강 위로 커다란 불꽃이 솟아올라 폭발했다.
산산이 흩어지는 아름다운 불꽃에 넋을 놓은 것도 잠시, 그는 장하양과 진소유에게로 향했다.
‘늦었네.’
불꽃이 다시금 하늘을 물들였다.
이번엔 하나가 아닌 수백 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