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화
성필과 신아름은 출국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일본에 도착한 것이다.
신아름은 여름철에 어울리지 않는 빵모자를 눌러쓰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갈 뿐 신아름에겐 관심도 없었다.
신아름은 성필의 옆에 꼭 붙어선,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들킬까 걱정하며 소곤소곤 말했다.
“팀장님, 우리 출국할 때 있잖아요. 막 사람들이 모일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데 왜 그래요? 우리 스케줄표 보고 모인다기엔, 스케줄표에 없는 날에 모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아, 그거 몰랐구나.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는, 회사에서 사람들한테 알려줄 때야.”
“알려줘요? 우리가 출국하고 입국하는 걸요?”
“연예부 기자들한테 알려주지. 와서 너희들 사진 찍으라고. 예를 들어 일본 활동 위해서 출국할 때라거나. 그런 걸로 기사 나가면 너희들이 일본에서 활동한단 사실을 알릴 수 있잖아.”
“으음, 그렇구나. 그럼 막 카메라 들고 오는 팬들은 어떻게 알아요? 그것도 회사에서 알려줘요?”
“아니, 그냥 정보가 퍼져나가는 거지.”
“뭐야 그게. 기자들이 입이 싸네요.”
말하진 않았지만, 연예인들의 출국 사실을 아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 정보를 입수한 이들이 불법으로 출국 날짜 정보를 판매하기도 하고, 그냥 무작정 기다리는 이들도 있고, 연예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항공편을 검색하기도 한다.
마지막 이유 같은 것 때문에, 연예인들은 전화번호가 유출되자마자 바꾼다.
“봐, 오늘은 아무도 없지?”
“그러게요. 괜히 내릴 때 쫄았어요.”
“으음, 근데.”
성필은 신아름이 멘 루이뷔통 백팩을 툭툭 두드렸다.
“기자들한테 좀 알려줄 걸 그랬다. 아름이 아주 명품 홍보대사네. 브랜드들한테 돈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진짜 앰배서더 시켜주면 기가 막히게 홍보해줄 수 있어요. 아직 연락 온 거 없어요?”
“지금은 없어. 어디 바라는 데라도 있어?”
“구찌, 샤넬, 루이뷔통, 에르메스.”
“메이저만 나열하네.”
성필은 신아름이 입은 옷들을 쭉 훑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보았다.
‘내가 가진 것들 중 제일 비싼 게 핸드폰인데, 아름이는 옷들이 전부 핸드폰이랑 비슷한 가격이네.’
저러다가 옷 사는 데 너무 맛 들이는 게 아닐까 걱정되어, 성필은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아름아, 돈 잘 관리하고 있지?”
“당연하죠. 올웨더 포트폴리오로 구성했어요.”
“……응?”
“한 이사님이 가르쳐준 거요.”
올웨더란 자산분배전략 중 하나다.
현금, 주식, 채권, 금, 원자재 등을 일정 비율로 나누어 투자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변동성이 적어 이익과 리스크 둘 다 낮은 게 특징이며, 심심하지만 확실한 수익률을 보장한단 모양이다.
“한 이사님이 10년 동안 없는 돈 치래요.”
“이야, 그게 진짜 어려운 건데.”
“그거 하고 남은 돈으로 취미 생활 즐기는 거예요. 직장인들도 월급 20% 정도는 술 마시고 놀러 다니고 하는 데 쓰잖아요. 저도 그런 거죠.”
누가 키웠는지 정말 잘 자랐다.
가로 엔터에 자본을 죄다 투자한 성필보다 훨씬 이성적이다.
하지만 성필은 굳게 믿는다. 5년 후 자신의 투자금이 10배 100배로 돌아오리라고. 사실 믿는 것 외엔 할 일이 없긴 하다.
둘은 공항을 빠져나왔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도쿄는 서울보단 덜 더웠다. 햇볕이 이글거리는 건 똑같지만 말이다.
둘은 택시를 잡아타고 웨벡스로 향했다.
“팀장님.”
“응?”
“저희 일본에서 유명하잖아요.”
“응, 작년보다 훨씬 유명하지.”
“일본 명품 기업 앰배서더 제안은 안 와요?”
“글쎄, 이미지에 따라 다르겠지.”
애니메이션 오프닝을 부르고, ‘우파루파’ 춤을 추니 절대 앰배서더 제안이 안 올 것 같긴 한데.
“일본엔 브랜드 뭐 있어요? 제가 아는 건 꼼데가르송이랑 후쿠요 히다카밖에 없는데.”
“나도 이세이 미야케, 요지 야마모토 정도밖에 몰라.”
그마저도 비주얼팀 이유이에게 귀동냥한 수준이다.
패션 디자인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유명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여러 번 언급했었는데, 디자이너의 이름이 곧 브랜드 이름이라 외우게 됐었다.
“무슨 개념적 디자인…… 그런 걸 만든 분들이라던데.”
“다 사람 이름이네요. 멋이 안 나요.”
“샤넬, 구찌, 루이뷔통, 에르메스 다 사람 이름이야.”
“서양 이름은 멋져요.”
“그거 인종차별이야.”
신아름은 성필의 옷을 힐끔 살피더니 활기차게 말했다.
“언제 저랑 백화점 가요. 제가 사줄게요.”
“아름이가?”
성필의 만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뭔가 비싼 것을 받는단 생각에 웃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해주는 것 자체가 행복해서 웃었다.
성필은 문득 리카가 떠올랐다.
생로랑 매장에 들어가서 리카와 한바탕 난리를 일으켰었지. 티셔츠 한 장이 얼마였더라…….
“……아냐, 괜찮아. 나 말고 어머님이랑 가.”
“엄마한텐 많이 사줬어요. 잘 안 쓰지만요…….”
신아름의 어머니는 채소 팔러 가는데 비싼 옷이며 가방을 어떻게 걸치냐고 손사래를 치셨다.
그래서 신아름이 큰마음 먹고 산 명품들은 신아름의 본가 옷장에서 신줏단지처럼 모셔지는 중이다.
“근데, 시간 참 빠르다.”
신아름의 어머니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서른 중반이었다. 그런데 이젠 마흔 초반이다.
딸이 혹여나 인생의 쓴맛을 보고 넘어지진 않을까 안절부절하던 여인은, 이제 딸에게서 비싼 옷이며 가방을 넘치도록 받고 있다.
성필은 둘을 보고 있자면 왠지 기분이 묘하다.
자신과 신아름의 나이 차보다, 어머니와 자신의 나이 차가 적단 사실이 왠지 모르게 기이하게 느껴진다.
“어머니 슬슬 쉬셔도 괜찮은 거 아니야?”
“쉬긴 뭘 쉬어요. 100세 시대잖아요.”
성필은 살짝 당황했다.
옛날엔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놀고먹게 해줄 거예요’라고 했었는데?
“엄마 모은 돈이랑 내가 모은 돈이랑 합쳐서 채소 가게 열 거예요.”
“아, 가게?”
더 엄청난 비전이 생겼다.
“거기서 더 성공하면 아예 유통업으로 바꿀 거고요. 법인 이름도 벌써 정했어요. ‘아름청과’예요.”
“음, 이름만 들어도 신선할 거 같네. 그런데 어머니 남자친구는 생기셨어?”
“아 엄마한테 무슨 남친이에요 그 나이에!”
“왜, 아직 고우시잖아.”
“안 그래도 시장 아저씨들이 엄마한테 막 커피주면서 찝쩍거리는 거 꼴 보기 싫은데, 팀장님까지 그러지 마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엄마한테 들이대려면 부장이나 임원급은 돼야 해요.”
“어, 그럼 혹시?”
“왜요? 입후보하게요? 꿈 깨요.”
성필이 시무룩해져서 창밖을 보자, 신아름이 당혹스러워하며 그의 팔을 흔들었다.
“진짜요? 진심이에요?”
신아름이 절박한 듯 묻자 성필은 새침하게 고개를 들었다.
“아니이, 아름이한텐 내가 그렇게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는구나아, 싶어서.”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팀장님이 부족하긴 왜 부족해요. 그냥, 아니…….”
“알아. 놀린 거야. 미안.”
“…….”
신아름은 혼란스러워했다.
성필은 그녀를 과하게 놀렸나 싶어 웨벡스에 도착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그녀를 달래주었다.
그러는 동안 택시는 웨벡스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고 입구로 들어가려던 때, 신아름이 성필의 팔을 잡아 멈춰 세웠다.
“팀장님, 그, 연애 금지 약속한 거 있잖아요. 그거 그냥 없는 거 쳐 드릴까요?”
“뭐?”
“김하슬이랑 좀…… 잘되고 있는 거 같고. 우리 홍보한다고 나갔다지만, 팀장님 좋으면 좋은 거잖아요.”
“갑자기?”
“방송 보니까 팀장님 진심인 거 같던데, 아니에요?”
성필은 왜 신아름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한테 입후보’ 같은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성필이 사랑에 굶주렸다고 생각하는 걸까?
‘내가 하슬이한테 마음이 있지만, 애들이랑 약속한 거 때문에 마음을 접는다고 생각하고?’
신아름은 성필의 행복을 바란다.
성필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신아름은 성필이 사랑하길 바라는 것이다. 성필은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아름아, 하슬이랑 나는 그…….”
신아름이 성필의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성필도 신아름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녀가 걱정 없이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녀의 걱정을 없애주려고 하려던 때, 신아름이 급히 이야기를 이었다.
“대신 나한테 소홀해지면 안 돼요.”
나에게 소홀해지지 말라.
신아름은 그 약속을 받는 대가로 성필이 연애해도 괜찮다고 했다.
본인이 바라는 것에 대가로 줄 게, 성필이 자발적으로 한 약속밖에 없다.
그 말을 들은 성필은 정신이 멍했다. 신아름이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기에.
신아름은 오해하고 있다.
“아름아, 옛날에도 말했다시피 네가 날 버리지 않은 이상 나도 너한테서 안 떠나가.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난 네가 필요해.”
“필요해요? 내가?”
“그럼. 날 항상 의지해줘서 고마워. 명절 때마다 본가로 불러줘서 고마워. 가족이라고 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20대의 난 더 행복했어.”
가족이 없는 삶에서, 가족과 비슷한 인연으로 자신을 의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가족의 모양을 본뜬 유사품이었더라도, 성필에겐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오히려 성필은 신아름이 자신을 버릴까 봐 걱정이었다. 어차피 성필은 피도 이어지지 않은, 신아름과 어머니 사이에 낀 불청객이니까.
“지금은요?”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
“내가 필요해요?”
“응. 근데, 필요하단 말은 너무 폭력적이다. 네가 소중해.”
“저도요. 제가 안 버리면 팀장님도 저 안 떠난다고 했죠?”
신아름이 재차 확인을 요청했다.
성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신아름은 마음을 놓은 듯 굳었던 표정이 풀어졌다.
“제가 팀장님을 왜 버려요.”
“나 석세스 엔터 나갈 때.”
“그건 버린 게 아니라 팀장님이 나간 거잖아요!”
“잡아주길 바랐는데…….”
신아름은 시원하게 ‘가도 좋다’고 했다.
지금에서야 그녀의 본심을 알지만, 그땐 ‘구질구질했는데 잘 떠난다 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었다.
“저도요.”
신아름이 성필의 손을 잡았다.
“팀장님이 두세 번만 더 권했어도 같이 갔을 거예요. 앞으로는 무조건 잡을게요. 놔달라고 해도 잡을 거예요.”
“그래, 고마워. 너 결혼하면 내가 신부 입장 때 손잡아도 돼?”
“신부 입장은 누누이 말하지만요…….”
“그래, 어머님이 하셔야지. 알아…….”
“흐음, 그럼…….”
신아름은 잠시 고민하다가 해맑게 말했다.
“엄마랑 팀장님이 제 양쪽에서 잡아줘요.”
* * *
에스타스.
웨벡스 소속 5인조 걸그룹.
그녀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연습실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보울에 담긴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다.
마치 극기 훈련을 끝낸 야구팀과 같은 분위기가 풀풀 흘렀다.
“스읍.”
리더인 유미가 숨을 들이쉬자 멤버들이 포크를 멈추었다.
“힘든 시간이었어.”
몇 달이나 이어진 텔레비전 예능 ‘에스타스 비긴 어게인’.
그건 한 번 몰락했던 에스타스의 재기, 아니, 화려한 도약을 향한 신호탄이었다.
에스타스는 케이팝 아이돌과 같은 퍼포먼스형 걸그룹이 되기 위해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노래도, 춤도, 연기도, 많은 걸 배웠지.”
원래 에스타스는 모든 트레이닝을 마치고 완성형 그룹으로서 데뷔하려 했었다.
하지만 에스타스 기획을 믿지 못한 윗선이 그 이상의 투자를 거부하고 데뷔를 강행했었다. 잘될 리가 없었다.
실패, 그리고 나락.
다시 기회가 주어질 거란 생각은 내심 접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다.
“힘들었어. 힘들었지만.”
그녀들이 몇 개월간 소화한 힘겨운 트레이닝은, 원래 에스타스 멤버들이 데뷔 전에 소화했어야 할 트레이닝이다.
물론 ‘에스타스 비긴 어게인’은 다큐멘터리이자 예능이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코믹한 장면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퍼포먼스형 그룹과는 하등 상관없는 번지점프(담력 향상)나 폐가 탐험(담력 향상), 혹은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버스킹으로 10달러 벌기(담력 향상) 같은 걸 해야 했었다.
힘들었다, 정말.
그래도.
“결국 여기까지 왔어.”
갑자기 유미의 표정이 확 굳었다. 그에 따라 멤버들도 비장미를 불꽃처럼 드러냈다.
“파쿠 센피루, 그리고 이시카와 리카…….”
‘에스타스 비긴 어게인’의 시작부에서 유미와 멤버들의 눈물을 쏙 빼놓은 두 인간.
차마 말로 하기도 힘든 모욕과 조언이라고 하기도 힘든 비난을 던졌던 그들.
에스타스가 힘겨운 트레이닝과 담력 향상을 견뎌냈던 건 성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필과 리카에게 복수하기 위함이었다.
‘에스타스 비긴 어게인’의 마지막 화, 에스타스의 컴백 무대! 그곳에서 성필과 리카에게 최후의 심사를 받는다.
아니, 심사가 아니다.
“우리들의 화려한 복수가 시작되는 거야!”
유미가 손을 앞으로 뻗었다.
멤버들이 즉각 그녀의 손 위로 손을 겹쳤다.
“소녀연맹을 이긴다. 아니, 소녀연맹을 타도한다!”
전장은 여름.
걸그룹의 시간.
그곳에서 에스타스는 화려하게 컴백하여, 우파루파인지 뭔지 괴상한 구호를 퍼뜨리는 소녀연맹을 확실하게 이길 것이다.
“얘들아, 가자!”
유미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타도 소녀연맹!”
타도 소녀연맹!
그리고.
“타도 파쿠……!”
“얘들아 안…….”
연습실로 성필과 신아름이 들어왔다.
성필과 신아름은 ‘우파루파’ 머리띠를 쓰고 양손엔 케이크와 풍선을 든 채였다. 풍선에는 ‘에스타스 꽃길만 걷자’라고 적혀 있었다.
“센피루, 어?”
“녕 나 왔, 어?”
당황.
그 외에 이 분위기를 설명할 단어는 없었다.
케이크와 풍선을 든 성필과 신아름.
무리를 습격하러 오는 사자를 발견한 미어캣 무리 에스타스.
기분 나쁜 정적 속.
“뭐?”
신아름이 반문했다.
“타도, 파쿠, 뭐?”
“…….”
순간, 유미는 다른 아이돌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친구는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한 선거형 아이돌로 활동 중이었는데, 이번 총선에서 좋은 결과를 받은 탓인지 살짝 오만해진 투였다.
‘이쁨받는 법 같은 거, 별거 없더라구. 눈물이 키워드야. 기뻐도 눈물, 슬퍼도 눈물, 잘못해도 눈물. 그러면 있잖아, 사람들은 막 나를 귀여워한다니까. 웃겨. 지켜줘야 하니 뭐니, 헛웃음도 안 나와. 우리가 눈물 흘리면서 애원하면 우리를 발아래 둔 줄 안다니까? 돈이나 가져다 바치는 주제에. 그러니까 유미쨩도 괜히 노력하지 말고, 쭈뼛거리면서 울어. 최대한 귀엽게. 귀여우면 승리야. 그럼 인기 아이돌까지 초고속 승진이라구.’
‘난 별로 그러긴 싫어.’
‘싫다니?’
‘흘리고 싶지도 않은 눈물로 동정이나 사랑, 용서를 사고 싶진 않아. 난 내 노력으로 보답받고 싶어.’
“너 뭐랬어. 다시 말해봐.”
신아름이 눈길을 세웠다. 그녀의 눈매는 마치 칼날 같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목에 명검이 들이밀어진 기분이다.
눈동자에서 반사된 빛만으로도 전신이 베이는 것만 같다.
소녀연맹 신아름.
엄청난 인기.
웨벡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신아름.
그런 그녀가 유미에게로 손을 뻗는다.
“타도 누구라고? 다시 말해보…….”
그 순간 유미의 눈가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흐끄윽…….”
신아름이 멈칫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앙―!”
“너 무슨, 갑자기 뭔…….”
“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앙―!”
유미, 하염없이 울다!
그때 연습실 문이 쾅 열리며 세이코가 등장했다. 성필과 신아름이 깜짝 놀라 그쪽을 바라봄과 동시에, 유미의 물기 어린 시야에도 세이코가 잡혔다.
후나비키 세이코……?
‘뭐어? 너희들이 있는데 한국 아이돌을 매니지먼트한다고? 히무라 그 녀석 머리 이상해진 거 아니야?’
‘걱정 마! 우리 식구를 버리게 두지 않아! 나만 믿으라구!’
‘난 가후 세이코야!’
‘너희를 버리게 두지 않겠어.’
“나중에 올게요!”
세이코가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으에아아아아아아앙!”
유미가 대성통곡하자 나가려던 세이코마저 멈칫했다. 그렇게, 눈물바다 속 모든 원한과 분노도 잊혀갔다.
울어라, 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