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KS 엔터 회장의 강림이다.
감히 강림(降臨)이란 단어를 써도 신성 모독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가로 엔터, 엔터테인먼트 회사니까.
KS 엔터 회장 문규완은 전설적이며 신화적인 인물이다.
홍규헌은 이미 KS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와 총괄 프로듀서를 상대하느라 지친 채였으나, 회장까지 보게 되니…….
‘이젠 별생각도 안 드네.’
그냥 KS 엔터 회장이 왔네, 싶은 정도다.
혹시 KS 엔터는 동네 구멍가게 같은 곳이라서, 거리만 돌아다녀도 회장이니 총괄 프로듀서니 아무렇게나 만날 수 있는 거 아닐까?
“반갑습니다, 문규완입니다.”
“네, 사장 홍규헌입니다.”
홍규헌이 담담하게 그와 악수했다.
그리고 약 3회나 손님을 맞이하러 1층에 오다 보니, 한 가지 결심이 섰다.
‘안내 데스크 만들자.’
손님이 오면 1층까지 내려갔을 직원들의 수고를 알겠다. 특히 그 임무를 자주 맡았던 권아인 경리에겐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런데…….
‘회장까지 왔다고?’
아마 정호환에게 들은 대로, KS 엔터 총괄 프로듀서 추천 건 때문일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사내 정치의 한복판에 성필의 이름이 거론되었다던가.
별거 아닌 헤프닝일 줄 알았건만, 회장까지 행차할 정도면 큰일로 번진 듯하다.
‘진짜 박 이사를 데려가겠단 건 아니겠지……?’
그리고 성필이 받아들이진 않겠지?
홍규헌은 괜히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성필과 쌓아왔던 유대와 인연의 힘을 믿지만, 동시에 성필의 케이어스 사랑이 떠올라 영 께름칙했다.
에리카를 찾으러 부산 바닷가까지 내려간 사람 아닌가.
어쩌면, 홍규헌은 눈물을 머금고 박성필―정호환 강제 트레이드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호환 이사가 가로 엔터로 올 리는 없지만 어쨌거나…….
‘근데 이것들이 진짜…… 아무리 내 회사가 작아도 무슨 동네 가게 방문하듯이 아무렇게나 들어오네.’
홍규헌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눈앞에 선 남자는 엔터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문규완 회장이다.
그런데 그런 타이틀 다 떼고 그냥 ‘사업 규모는 큰오빠야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다지 대단한 느낌은 안 든다.
“뭐어, 박 이사 보러 오셨을 거 같은데 지금 정호환 이사님과 담소를 나누는 중이라서요.”
“기다리겠습니다.”
그냥 찔러봤는데 진짜 성필을 보러 왔구나.
홍규헌은 그를 빈 응접실로 안내할 직원을 찾으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모퉁이 뒤로 급히 몸을 숨기는 강동현 수석 프로듀서가 보였다.
그는 홍규헌과 눈이 마주치자 ‘제발 제가 있는 걸 알리지 말아주세요’란 눈빛을 보냈다. 절박함마저 느껴졌다.
그때 계단을 급히 타고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어안이 벙벙한 얼굴의 성필이 홍규헌의 곁에 섰다. 그리고 그는 정말 문규완 회장이 와 있는 것을 보자 몸이 굳었다.
만약 홍규헌이 없었으면 당장 허리를 굽혀 인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홍규헌 앞에서 성필이 90도로 허리를 숙이면 그녀는 뭐가 되는가. 홍규헌은 그런 성필의 태도가 고마웠다.
“이쪽이 박성필 이사입니다. 박 이사, 이분은 KS 엔터 문규완 회장님.”
“뵈,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회장님.”
“반갑습니다 박성필 이사.”
문규완과 성필이 악수했다.
성필은 그와 손을 맞잡자마자 놀랐다. 단순한 악수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그의 완력이 강했다.
실제로 그는 힘을 주고 있었다.
그 상태로, 문규완이 성필을 살짝 당겼다.
“저는 괜한 기대를 주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매정하고 이상하게 보이더라도 딱 잘라서 말하겠습니다.”
그는 상대에게 애매한 기대를 갖게 만들지 않는다. 그것을 죄악이라고까지 여기는 인간이다.
연습생을 심사할 때도 ‘이러면 더 좋아지겠다’ 같은 말 따윈 안 한다. 그게 희망을 주니까.
아티스트에게 앨범 발매 계획을 말할 때도 ‘네 실력이 나아지면 기간을 앞당길 수 있겠지’ 같이 두루뭉술한 말은 안 한다. 그게 희망을 주니까.
이는 그가 젊었을 시절부터 애매한 거절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가 선심 쓰듯 주는 희망은 사업가에겐 고문과도 같다.
문규완은 고문을 할 만큼 취향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박성필 이사는 KS 엔터의 총괄 프로듀서가 되실 수 없습니다.”
문규완이 칼처럼 딱 잘라 말했다.
“어떤 말씀을 들으셨더라도, 그건 전부 이뤄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겠습니다. KS 엔터의 총괄 프로듀서가 되실 수 없으십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홍규헌은, 당연히 알던 사실을 들었음에도 안심했다.
회장의 입에서 나온 확언이다.
“죄송합니다.”
문규완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면서 악수를 풀었다.
이제 다 끝난 거겠지.
홍규헌은 오늘 하루가 참 길었다 생각하면서 성필을 보았다.
“아, 하하, 네, 알고 있습니다, 네…….”
“…….”
박성필 이거, 은근히 실망하고 있다.
홍규헌이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제야 성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저기, 오해하고 계신 듯해서 말씀드리는데요. 실은 강동현 수석 프로듀서님이랑…….”
모퉁이 뒤에 숨어 있던 강동현이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정호환 이사님이 오셔서 상황을 설명해주셨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 친구들도 조금 약은 부분이 있었군요.”
“네?”
약은 부분?
성필이 무슨 소리인지 해석하기도 전.
“문규완!”
2층 난간에서 우렁찬 고함이 들렸다.
다들 그쪽을 보았다.
응접실에서 잠시 마음을 가다듬겠다던 정호환이 보였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긴커녕 얼굴 전체에 분노를 펴 바르고 있었다.
정호환이 계단을 빠르게 뛰어 내려왔다.
“너 이 개 같은 자식아! 내가 네 밑에서 헌신한 게 시발 30년이다! 근데 날 빨리 내치고 싶어서 가로 엔터까지 와?! 내가 너랑 있던 세월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져서 숨구멍이 턱 막힌다 이 야비한 새……!”
순간이었다.
계단을 타고 내려온 정호환을, 문규완이 포옹했다.
“뭐, 이 뭔……!”
“호환아 미안하다.”
“……어?”
“내가 잠시 미쳤던 거 같다. 너 외에 누가 우리 회사의 총괄직을 맡을 수 있겠냐. 자세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네가 걱정됐다. 잠시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뭐?”
“친구로서 그래선 안 됐단 건 안다. 동업자로서도 이런 유치한 방법을 써선 안 됐어. 내가 노망이 났던 거다. 용서해다오.”
“…….”
정호환이 울음을 참으려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 그리고 문규완을 마주 포옹했다.
“규완아……!”
“호환아……!”
50대 후반과 60대의 남자가 서로를 얼싸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그걸 바라보는 홍규헌과 성필.
“……?”
“……?”
뭔데 이거.
분위기 뭔데.
뭐가 어떻게 되는 건데.
둘 다 혼란스러웠다.
그러고 나서, 성필은 홍규헌을 힐끔 보았다. 홍규헌도 그 시선을 눈치채곤 톡 쏘듯이 말했다.
“뭐.”
“아뇨. 이 두 분 저희랑 비슷한 포지션…….”
“해임해달란 거야?”
“…….”
문규완과 정호환의 관계는 확실히 성필과 홍규헌의 관계를 닮았다.
함께 지내 온 세월이 약 30년.
남들이 보기엔 이상하더라도, 포옹 한 번으로 마음이 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걸 보고 지음(知音)이라 하는 것이겠지.
“사장님은 저한테 마음 안 드는 부분 있으면 그냥 시원하게 말씀해주세요.”
“뭐어, 그럴게.”
일단 KS 엔터와 수상할 정도로 친분이 있는 게 거슬리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회장과 총괄 프로듀서의 감동적인 재회가 끝나고, 정호환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가보겠습니다, 박 이사님. 그리고 홍 사장님. 정말 많은 폐를 끼쳤습니다.”
“아니에요. 종종 오세요.”
그렇게 정호환과 문규완은 떠나갔다.
에리카와 강동현을 남기고.
사태가 일단락되자 두 사람도 1층 홀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필이 말했다.
“에리카 씨는 강 PD님 차 타고 가실 거예요?”
“그래야죠. 박 이사님 오늘 감사했어요. 그리고 미녀 사장님.”
미녀라고 불린 홍규헌이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에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녀 사장님.”
“아이돌한테 미녀란 말 들어도 애매한 기분이에요.”
“박 이사님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박 이사가 연차 썼어요. 그래도 앞으로 빌릴 땐 미리 언질이라도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침에 연락받고 놀랐거든요.”
“넵, 관대한 처사에 감사드려요.”
“저…….”
강동현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죄, 죄송한데, 제가 차를 안 가져와서어…….”
“네? 그럼 어떻게 오신 거예요?”
“버스…….”
강동현.
KS 엔터 수석 프로듀서.
아직 운전면허 없음.
참고로, 그 때문에 전 여자친구와 헤어짐.
“그럼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성필은 에리카와 강동현을 KS 엔터까지 데려다주곤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사장실로 올라가 홍규헌과 마주했다.
곧 있으면 소녀연맹이 출연하는 음방이 방영될 시각이다. 두 사람 다 그것을 깨닫곤 허탈하게 웃었다.
“오늘 시간이 참 빠르네.”
“그러게요. 갑자기 연차 써서 죄송합니다.”
“박 이사는 12월에 급하게 연차 소진하잖아. 미리미리 하루씩 쓰면 좋지. 뭐어, 그래서…….”
홍규헌이 앉으라는 듯 의자를 가리켰다.
성필은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았다.
“돌아오면 자세하게 설명해준다고 했지? 어디 들어보자.”
“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어젯밤부터 이야기하자면…….”
* * *
“너희들에게 고백할 게 있다.”
KS 엔터의 수많은 연습실 중 하나.
그중 케이어스의 전용 연습실처럼 사용되는 곳.
정호환은 그곳에 케이어스 멤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멤버들은 일렬로 서서 정호환을 보았지만, 그는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정호환은 벽 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간신히 에어컨으로 식혀져 있던 연습실에 한여름의 열대야가 비집고 들어왔다.
“고백 말임미까? 저희들한테? 이 뭔…….”
“메이. 고백엔 그런 뜻만 있는 게 아니야.”
“아님미까?”
“숨겨져 있던 걸 밝힌단 뜻도 있어.”
진소유 덕에 진저는 안심하고 정호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
정호환은 열린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다.
케이어스 데뷔조를 처음 불러 모았을 때도 이런 구도였었지, 아마.
정호환은 그때를 똑똑히 기억했다.
일렬로 서 있던 멤버들과, 왠지 모르게 들려왔던 리카의 ‘에에에에엣! 키미(당신)!’라는 환청까지.
정호환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난 소녀연맹을 질투했다.”
멤버들의 표정이 굳었다.
질투는 고백과 달리 다른 의미로 해석될 기미가 없었다.
“그래, 열등감이다. 소녀연맹의 ‘아니’를 보았을 때, 우습게도 난 질투했던 거다. 두렵기까지 했어.”
정호환은 자신이 케이팝의 키를 쥐고 있단 확신이 있었다.
그럴듯한 케이팝의 혁신은 모두 자신의 손에서, 최소한 대형 기획사 프로듀서들에게서 나왔다.
빌보드 선정 21세기 최고의 프로듀서 100인 같은 곳에 이름을 올린 이들 말이다. SMS 엔터나 YSL 엔터의 대표 프로듀서들…….
그렇지만, 그들조차 KS 엔터의 혁신성을 따라잡는 건 요원했다.
정호환만큼 체계적으로 미래와 변혁을 향해 나아가는 프로듀서는 없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업계의 열쇠를 쥔 건 나였어. 당연히 내가 가져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불현듯 보니, 그 키가 다른 사람 손에도 있던 거다. 소녀연맹…… 보자마자 알았다. 그대로만 간다면 저 그룹은 판도를 바꿀 거라고.”
프로듀서의 입으로 직접 듣는 열등감.
케이어스 멤버들은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껴야만 했다. 너무 생소해서 이름조차 붙이기 힘든, 그런 감정이었다.
“사람들은 말하지. 케이어스부터 아이돌의 세대가 또 갈렸다고. 너희들이 기준이라고. 그랬지, 시작엔 그랬지. 그런데 이제 보면, 아니야. 1세대, 2세대, 3세대를 모두 직접 만들어냈던 내가 판단한다. 케이어스는 선두에서 탈락했다.”
“저희가 부족하단 거예요?”
김민주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정호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이럴 줄 알고 그녀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선 것이었다. 하지만 멤버들은 창문으로 그의 표정이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족한 건 나다.”
“……!”
“너희는 하나하나가 완벽하다. 나 스스로도 감탄할 정도로 완벽해. 어떻게 이런 보석들이 내 손에 들어왔을까…….”
수만 명 가운데서 골라낸 최고 중의 최고.
KS 엔터의 트레이닝 시스템이 만들어낸 걸작 중의 걸작.
그녀들은 퍼포먼스, 프로 의식, 외적 조건, 무엇 하나 뒤떨어지지 않는다.
“더 솔직해져야겠구나. 난 소녀연맹을 따라 하려 했다. ‘아니’부터였어. 이어진 ‘롱 포’부터였기도 하고. ‘아라베스크’ 때문이기도 했다. 매 순간 난 소녀연맹을 따라가려 했다.”
정확히는, 소녀연맹에게서 보이는 프로듀서의 자아.
눈이 멀 것만 같은 영감의 빛줄기를 따라갔다.
정호환이 담백하게 말했다.
“미안하다.”
변명을 더 붙이고 싶었다.
소녀연맹은 마치 미래에서 온 것만 같았다고. 정답 속에 만들어지는 그룹인 것만 같았다고.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하든 소녀연맹의 열화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노라고.
그래서, 아예 소녀연맹을 복사하여 개선해보도록 하자. 그리 생각하기까지 했다.
“‘카오스’를 제외한 모든 곡이 그러했다. ‘가이아’, ‘타임’, ‘넥타르’, 모두 다. 실은, 너희를 위한 곡임과 동시에 너희를 위한 곡이 아니었어…….”
부인과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선 다른 여자를 떠올리는 것처럼, 정호환은 정신적 외도를 저질렀다.
이제야 깨달았으며, 인정한다.
“그런 꼴이었으니 제대로 될 리 만무했어. 난 틀렸다. 너희에게 맞지도 않는 걸 억지로 가져다 댔어. 그런데도 너희는, 너희는…….”
잘 소화해주었다.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서서 만인의 찬사를 불러일으켰다.
프로듀서의 죄를 멋지게 포장했다.
정호환은 울음을 삼키고 심호흡했다. 그리고 겨우 몸을 돌려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내 말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을 거다. 사실, 이해가 안 될 거야. 이건 그냥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고백이라…….”
“하야하라!”
“……?!”
정호환 하야를 주장한 에리카가 장난스레 웃었다.
“안 하실 거면, 앞으론 그러지 마세요. 더 열심히 해주시구요. 아시겠죠?”
더 이상 정호환이 자책하는 꼴은 못 본다. 에리카의 장난은 그런 선언과도 같았다.
정호환이 어버버하는 사이, 다른 멤버들도 에리카의 의도를 파악하곤 장난에 끼어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슴미다. 이사님이 잘못하신 검미까?”
“어, 이사님이 잘못했어.”
“그럼 대가를 요구함미다! 연애 금지 6개월 빨리 풀어주시길 바람미다! 그리고 빚 다 없애고 정산도 즉시 해주길 요구함미다!”
“바로 정산해달란 건 좋네. 이사님이 진짜 미안한 거면 괜찮죠? 아, 또 회사에 운동 기구 더 놔줘요.”
“하양이 케이어스로 영입해주세요.”
다들 진소유의 마지막 말은 무시한 채 아무 말 대잔치를 이어갔다.
정호환은 자신을 위로하려는 새파랗게 어린 소녀들을 보며 헛웃음을 띄었다.
“고맙다 얘들아…….”
그는 고목 같은 굳은살이 박인 검지로 눈가를 쓸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된 것처럼 눈을 번쩍 떴다.
“이젠 소녀연맹 ‘따위’ 신경 안 쓰겠……!”
“당장 그 말 취소해!”
“……진저, 나한테 반말 쓴 거냐?”
“뭠미까. 위로 시간 끝난 검미까?”
“그래.”
“죄송함미다.”
“이젠 소녀연맹은 신경 안 쓰겠다. 나만의 길을 걷겠다.”
나만의 길이 곧 케이팝의 길이었다.
정호환은 미혹을 떨쳐냈다.
그는 자신을 믿는다. 30년의 세월 동안, 오직 그만이 정답이었다. 더는 타인을 베끼거나 열등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약속하마. 너희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곡을 선물하기로.”
일단 가장 아쉬웠던 걸 되돌리자. 원래 ‘카오스’ 다음의 컴백곡이 됐어야 할 곡을.
‘원래 너희가 입었어야 마땅할…….’
현재는 진저가 고향 전통 노랫말을 붙여 괴상한 모양새로 쓰이고 있다던가.
왠진 모르겠지만 KS 엔터의 중국 연습생들 사이에서 히트 연습곡으로 통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진저가 ‘저는 편곡의 재능이 있는 거 같슴미다’라며 콧대를 세운다던데.
아무튼 그 곡을.
‘너희의 것이어야 했을 가장 아름다운 옷을, 너희에게 선물하마.’
그때 에리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사님, 질문이요.”
“그래, 뭐든 하렴.”
“저희 목덜미에 잔털이요, 밀어도 괜찮나요?”
에리카와 진소유를 제외한 멤버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들의 목덜미를 손으로 만졌다.
“밀다니, 왜?”
“비주얼 쪽 분들이 신경을 안 쓰시는 거 같아서요.”
“왜 민다는 거냐?”
에리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일부러…… 남겨두시는 건가요? 왜요?”
“왜냐니. 그야…….”
정호환이 더없이 진중한 투로 말했다.
“그편이 더 섹슈얼리티가 있으니까.”
“그냥 하야하십쇼.”
KS 엔터의 총괄 프로듀서,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