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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67화 (467/760)

467화

이번 주, 소녀연맹의 ‘인트로: 러브’ 앨범 활동이 끝난다.

소녀연맹의 차후 행보를 이야기하며 활기찬 분위기가 됐어야 할 가로 엔터 조간 회의.

회의실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한 이사.”

홍규헌이 부르자 한구인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회의실을 충격에 빠뜨린 소식을 전달한 게 한구인인지라, 그가 사건의 대변자 역을 맡아야만 했다. 그에 더해, 이 자리에 없는 성필을 대신해 모든 시선을 감내해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아니, 쫄지 마. 왜 그렇게 움츠러들어 있어.”

“아, 아닙니다.”

“내가 이해한 대로 말해볼게. 일단…….”

케이어스의 에리카가 자취를 감추었다.

성필이 그 소식을 들은 건 어젯밤.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의 촬영이 예정되어 있던 순간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성필은 김하슬과 이가 썩을 만큼 달콤한 데이트를 즐긴 후, 무사히 촬영을 마무리하여 김하슬과의 관계를 정상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성필은 김하슬에게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으나, 에리카를 찾기 위해 김하슬을 바람맞히고 합숙소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현재.

“내가 이해한 게 맞아?”

“맞습니다.”

“그렇구만.”

“예.”

“…….”

홍규헌은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일단 이것부터 물어보기로 했다.

“박 이사는 괜찮아?”

연차를 썼으니 그의 개인 시간은 존중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 이유란 게 에리카를 찾는 거라니, 심지어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니, 걱정될 수밖에 없다.

“연락이 안 되면 무슨 큰일 생긴 거 아니야? 산을 수색하다가 실족했다던가.”

손혜빈은 끔찍한 상상이라도 했는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홍규헌의 농담에 뭐라도 토를 달고 싶었으나, 왠지 그럴듯하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 보니, 저도 걱정되어 계속 연락을 드렸었습니다. 마지막 연락으론, 배터리가 부족하여 나중에 돌아와서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몸으로 뛰는구나. 충전할 틈도 없고.”

“그, 예정되어 있지 않게 연차를 사용하게 되어 죄송하…….”

“그건 됐어.”

이대로 질문만 하자면, 홍규헌은 점심이 될 때까지 질문만 할 수도 있었다.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그 궁금증은 성필이 돌아오면 자연스레 해결될 터였다.

“아무튼 뭐, 그래.”

성필에 대한 화제는 이것으로 끝이다.

논의를 이어가거나 걱정을 더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말이다.

홍규헌은 회의 안건이 모인 서류철을 들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단 듯 회의를 시작했다.

“민 팀장. 애들 일본 콘서트 스케줄, 이번에도 너무 타이트한 거 아니야? 저번에 애들 힘들어했던 거 생각하면 텀을 더 두는 편이…… 하아.”

홍규헌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그녀는 준비되어 있던 생수 뚜껑을 단번에 따버리곤 입 안에 들이부었다.

“박 이사는 케이어스를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거의 뭐 찐사랑 아니야?”

“찐사랑이죠.”

손혜빈이 너무나도 쉽게 인정했다.

“친구가 사라져도 밤새 발로 뛰진 않겠다.”

“찐사랑이니까요.”

“아무튼 뭐어…….”

홍규헌은 정신을 다잡으려는 듯 시야를 서류철로 모았다.

“박 이사 돌아오면, 케이어스 가지고는 너무 뭐라고 하진 말자.”

이건 이미 뭐라고 해야 할 경지를 넘었다.

성필이 가진 건 단순한 애정이 아니라 집착이나 광기와 닮아 있었다.

그 광기에 대고 ‘다른 회사 그룹 멤버를 왜 그렇게 신경 쓰냐’고 소리쳐봐야, 아무런 소득도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자고로 세상사, 어떤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해선 안 되는 법이다.

“그건 뭐어…… 박 이사 돌아오면 내가 따로 얘기해볼게. 그러니까 너희들은 평소처럼 케이어스 얘기로 박 이사 놀리지 말고. 알겠지?”

“예.”

다시 회의가 시작되려던 차, 노크 소리와 함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권아인 경리가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 광경을 보며, 홍규헌은 정말 가로 엔터에도 안내 데스크 직원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했다.

대강 타이밍이 맞는 직원이 언제까지나 외부인의 방문을 보고할 수는 없으니.

“언…… 아니, 사장님. 손님 오셨습니다.”

“누구?”

“KS 엔터요…….”

홍규헌이 움찔했다.

KS 엔터가 왔다고? 왜? 어째서?

설마 소녀연맹과 케이어스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앨범 발매를 위해선 아닐 테고…….

“직접 찾아온 거 보니 보통 일은 아니겠는데.”

“아.”

손혜빈이 뭔가 깨달은 듯한 티를 냈다. 당연히 다른 임원들의 이목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손혜빈은 권아인에게 들리지 않도록 입가를 손으로 가린 후 작게 말했다.

“호, 혹시, 성필이가 에리카랑 사랑의 도피를 한 거 아닐까요……? 그, 그래서 책임을 추궁하려고 저희 회사에…….”

그게 무슨 개소리냐, 라고 말하고 싶었다.

홍규헌은 진심으로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만약 갑자기 신이 나타나서 ‘방금 손혜빈의 말이 사실일까 아닐까?’라며 내기를 하자고 하면, 홍규헌은 당연하단 듯 ‘말도 안 되죠’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1분 정도는 고민할 게 분명하다.

“모셔.”

“옙.”

“회의는 조금 미룰게. 내가 먼저 만나 보지.”

임원들이 나가고 잠시 후, 권아인이 한 명의 남자를 대회의실로 불러왔다.

척 보기에도 유약한 기운이 흘렀다. 눈동자는 안절부절못하며 이리저리 오갔으며, 손은 한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그런 그가 홍규헌에게 공손한 투로 말했다.

“KS 엔터 수석 프로듀서 강동현이라고 합니다……. 귀,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강동현은 자꾸만 말을 더듬었다. 마치 그도 ‘내가 뭘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홍규헌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다가 짧게 되물었다.

“박성필 이사는 왜 만나려 하시죠?”

“어, 음, 어…….”

강동현은 아까보다 더 말을 더듬었다.

그도 할 수만 있다면 성필과 따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구유한 이사님보다 먼저 박성필과 접촉해야 해.’

상식적으로 보자면, 구유한이 정말 성필을 총괄 프로듀서로 영입하려 할 리 없다.

KS 엔터 총괄 프로듀서가 어떤 자리인가? 수십 명의 아티스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자리다.

그래, 상식적으로 보자.

구유한은 그저 프로듀싱팀의 반발을 역으로 받아친 것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난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런 식의 기 싸움이다.

그런데…….

‘만약 아니면?’

정말 구유한이 성필과 접촉해서, 그를 정식으로 영입하고자 하는 거라면?

만약 정말 그런 식으로 사건이 흘러간다면, 강동현은 정호환에게 미안해서 혀라도 깨물어야 할 것이다.

회장에게 대놓고 반항하지 못해 돌려 거절한다는 게, KS 엔터와 관련 없는 인물이 총괄 프로듀서가 되는 것으로 끝난다니.

나비효과도 이런 나비효과가 없다.

‘그,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박성필이랑 만나야 하는데에…….’

연락을 안 받는다.

그래서 강동현은 조바심을 참지 못하고 가로 엔터까지 왔다. 여기 오면 있겠지 싶었다.

최대한 빨리 성필과 만나 이 웃긴 상황을 설명하고 그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저한테 말씀할 수 없는 이유인가요? 설마…….”

홍규헌은 딱 보아도 적의가 넘치는 눈빛을 띠었다.

“남의 사업장 한복판까지 떡하니 걸어와서, 임원을 빼가겠단 말씀을 하시려는 건 아닐 테고요.”

“네, 네?”

뭐지? 마음이라도 읽나? 어떻게 KS 엔터 수석 프로듀서가 직접 왔는데 사고방식이 그쪽으로 돌아가는 거지?

아니다, 아니.

그거랑 비슷한 내용이긴 한데, 그게 아닌데…….

강동현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최대한 성필을 빨리 보기 위해 가로 엔터로 온 것뿐인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게까지 자신 있으신 겁니까?”

강동현은 홍규헌이 뿜어내는 적의 때문에 입이 굳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과민반응이기까지 한 홍규헌. 하지만 그녀가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과거, 정호환은 정지음을 영입하려 직접 가로 엔터까지 온 적이 있었다.

게다가 지난 겨울, 케이어스의 진저와 KS 엔터의 직원이 무슨 일인진 몰라도 가로 엔터 주차장까지 와서 성필에게 매달렸던 적이 있었다.

그걸 떠올리니, 홍규헌도 마냥 곱게 나갈 수 없었다.

“그냥 높으신 분들 와서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겠다고 생각할 만큼, 저희를 얕보는 겁니까?”

“으아, 아, 아니이, 아뇨오…….”

동상이몽.

* * *

“우와…….”

성필의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폰의 전원을 켠 에리카는 사색이 됐다.

“부재중 전화랑 문자가 말도 안 되게 많아요……. 백 개 단위로 쌓인 건 처음 봐요…….”

“소나노(그래)? 아타시(나)는 꽤 자주 봐!”

“에, 언제? 리카도 자주 도망가고 그래?”

“소유 언니가 하양 언니한테 연락을 자주 해!”

“아…….”

에리카는 새삼 케이어스의 리더로서 장하양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언제 선물을 들고 찾아가야겠다.

저희 부족한 언니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 면목이 없습니다…….

“박 이사님은 괜찮으신가요!”

“나? 나야 뭐 회사에 말도 해뒀으니.”

성필은 폰은 현재 충전 중이다. 폰을 켜서 봤는데, 홍규헌에게 ‘빨리 돌아와’란 문자 외엔 특별할 게 없었다.

다른 이들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외로워하는 여자친구의 문자를 받은 것만 같아서 살짝 기분이 좋았다.

‘나도 점점 미쳐가는군. 아무리 영원을 함께하기로 한 사장님이라지만 이런 감상을 갖다니. 연애 금지 선언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외에는, 다시 한번 김하슬과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제작진에게 사과 문자를 보내두었다.

KS 엔터 쪽에 에리카의 행방을 전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에리카가 직접 연락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여 가만히 두고 있다.

“으우, 돌아가면 바로 샵에 들러야 해요. 피곤한데에…….”

“그나마 오늘은 늦은 저녁 음방이라 다행이지. 리카 너도 참 대책 없다. 내일 스케줄 있는데도 에리카 씨 찾으러 가야 한다면서 따라오고…….”

“박 이사님한테 ‘에리쨩을 찾으러 가요!’란 말만 하는 게 훨씬 대책 없지 않나요! 저는 솔선수범한다구요!”

“드라이 리허설은 건너뛰고 카메라 리허설부터 들어가야겠는데.”

“그럼 큰일이잖아요!”

“리카, 우리가 워낙 개근상을 휩쓸어서 그렇지. 아슬아슬하게 시간 딱 맞춰서 최소한의 리허설만 나오는 그룹들도 있어.”

“왜요?”

“짬이 차서.”

“그런 아이돌은 되고 싶지 않네요…….”

“저기…….”

에리카가 한껏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떤 분한테 먼저 연락을 드려야 할까요?”

“관리자급 매니지먼트 담당자가 어느 분이세요?”

“1팀장님이라고 계신데…….”

팀장급인가.

KS 엔터는 팀장 - 실장 - 로드의 위계를 쓰고 있다. 회사에 따라선 실장 직급이 팀장보다 높기도 하지만 말이다.

KS 엔터의 팀장급 매니저라면, 케이어스 말고도 여러 아티스트를 담당하는 상당히 높은 직급이다.

그런 사람한테 직접 연락이 올 정도이니, 회사에서 에리카가 사라진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겠다.

“바로 연락하기 무서우시면 로드 통해서 간단한 연락만 하세요. 어차피 위까지 바로 올라갈 거니까요. 그분이랑 사이는 어떠세요?”

“친해요.”

의외의 답이다.

바로 ‘친하다’고 답할 정도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런 거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네…….”

에리카는 1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을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받았다.

“티, 팀자…….”

[에리카 너 어디야?!]

“서우, 울, 서울로, 가는 중이요…….”

[몸은 괜찮아?]

“네? 네에…….”

[다행이다아…….]

1팀장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에리카는 당황했다. 분명 바로 욕을 먹을 줄 알았는데, 1팀장은 진심을 담아 다행이라고 했다.

단순히 자기 보신 때문이 아니란 건, 그의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아…….]

“죄, 죄송해요. 말없이 가서어…….”

에리카의 눈에도 물기가 맺혔다.

그건 안도의 눈물이었다.

영락없이 혼날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꾸중 대신 부모의 포옹과 마주했을 때 흘리는 눈물.

[아니야, 아니야, 무사해서 다행이지 뭐. 굳이 말하자면 너희들 오프인 날이잖아. 그냥 쉰 거지 뭐. 그래, 다행이다, 괜찮단 거지…….]

갑자기 1팀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성을 되찾기라도 한 것일까.

[서울로 온단 거면, 어디 지방이야?]

“부산에서 서울로 가고 있어요. 바다…… 봤어요.”

[사진 찍히진 않았고?]

“네. 변장 완벽했어요. 바다도 밤…… 새벽…… 아침…… 사람 없을 때 봤고요.”

[오래도 있었구나. 그럼 KTX 안?]

“가로 엔터에 박성필 이사님이라고 계신데…….”

[남자랑 있다고?! 너, 너, 아이고 머리, 내 머리, 나 죽어어어……!]

“박성필 이사님 차 안에 리카랑 같이 있어요.”

[아니 이 씨…… 또 가로 엔터야?! 너희들은 뭐 가로 엔터랑 연관 안 되면 죽는 병이라고 걸렸어? 이번엔 또 뭔데! 그 박성필 이사란 사람이……!]

“바로 옆에 계세요.”

[아이고, 저희 에리카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필은 매니저 출신으로서 그에게 깊은 동정을 표했다. 그는 밤새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연락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휴 아닙니다 아니에요. 우리 에리카를 돌봐주신 거죠?]

“아타시(제)가 모셔 왔어요!”

[엉? 어, 아, 진짜 리카 씨가 계시구나…….]

“진짜 리카 같나요! 사실 저 에리카의 성대모사랍니다!”

[와, 리카 씨 팬이에요. 뷔라이브 잘 보고 있어요.]

“엑, 성대모, 에, 감사합니다!”

그 후로도 1팀장은 성필과 리카에게 감사를 전했다. 물 흐르듯 혀를 움직이고 있지만 머릿속은 혼란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KS 엔터보다 성필이 먼저 에리카를 찾은 것에 내심 속이 쓰릴지도 모른다.

[에리카.]

“네…….”

[일단 사소한 건 다 제쳐두고, 회사로 돌아오면 정호환 이사님 먼저 만나 뵙자.]

“…….”

에리카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서울로 돌아가자마자 그 정호환을 다시 보아야 하는 건가.

하긴, 이만한 사태이다.

바로 최종 보스가 떠도 이상하진 않다.

“네.”

[그 외엔 걱정하지 마.]

“그 외엔 걱정할 필요도 없을 만큼 큰일이잖아요…….”

[서울에 오면…… 바로 올 필요는 없어. 오늘 안에만, 마음의 준비가 되면 회사로 와.]

“네.”

[……에리카.]

“네?”

[이사님께 너무 마음을 닫지는 마.]

그걸로 통화가 끝났다.

에리카는 한동안 폰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정호환의 얼굴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더니 외쳤다.

“서울 가기 싫어어!”

에리카가 절규했다. 그녀는 성필을 쳐다보더니 거의 울먹이면서 말했다.

“저 어떡해요? 정호환 이사님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하냐구요! 저, 저 진짜 기절해요! 이사님 앞에 서면 기절할 거예요!”

“파이팅!”

“아, 머리야…….”

에리카가 이마를 짚곤 시트에 몸을 푹 묻었다. 그때 리카가 에리카의 어깨를 톡톡 건들였다.

“아타시(나)한테 방법이 있어!”

“뭐, 뭔데?”

에리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리카의 말을 기다렸다.

“꾀병이야!”

“꾀병?”

“맹장염!”

“헤에, 우케루(웃기네). 박 이사님 어떡하죠?”

“점점 에리쨩의 바닥이 보이는 거 같아서 심란해져…….”

“뭐,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성필은 장인어른의 집을 찾는 남자친구의 마음가짐으로 말했다.

무슨 뜻이냐, 장난 아니게 긴장했단 뜻이다.

제발 ‘응’이라고 말하지 말아줘.

“그래 주실래요?”

참, 세상사 마음대로 안 된다.

* * *

가로 엔터 주차장에 성필의 차가 도착했다. 그곳에서 리카가 포X몬처럼 뛰쳐나갔다.

“아타시(저), 아이돌이 됩니다!”

리카는 진짜 아이돌 본업을 수행하러 떠났다.

바로 옆, 열린 밴의 문 안으로 쏙 들어간 리카는 성필의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박 이사님, 생방송 사수!”

“문자 투표도 할게.”

“빨리 머리 넣어!”

안이상 매니저의 외침에 리카는 시무룩하며 밴 안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그렇게 그녀는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위해 샵으로 향했다.

성필의 차 안엔 성필과 에리카만이 남았다.

“아직도 용기 안 나세요?”

“네에…….”

정호환에게 같이 가달라고 한 건 농담이었다. 에리카는 성필까지 데려갈 만큼 염치가 없지 않았다.

1팀장이 오늘 안에만 회사로 와서 정호환을 보라고 했으나, 결심이 쉽사리 서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회사에 말은 해뒀는데, 안에 잠시 있다가 가실래요?”

“에, 그래도 되나요?”

반색하던 에리카는 갑자기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꼭 들러야겠어요.”

“네?”

“가로 엔터분들께도 사과해야 하니까요. 제멋대로 박 이사님을 붙잡고 있었어요.”

“그건 제가…….”

“아니요. 제 잘못이 존재해요.”

“그렇게 해서라도 시간을 끌고 싶으신 거군요.”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사장님께 사과하면 될까요.”

“글쎄요. 에리카 씨의 잘못이 있진…….”

“있어요. 박 이사님을 홀려버린 죄.”

“중죄네요.”

성필과 에리카는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터덜터덜 가로 엔터를 향해 걸었다.

‘그래도, 잘 마무리돼서 다행이야.’

에리카의 아티스트십은 지켜진 것 같다. 적어도 성필이 보았던 미래처럼 아예 창작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다.

‘미래의 나도 한탄했었지. 6개월로는 부족하다고.’

그러니, 현재의 성필이 더 노력해야 한다.

더는 미래가 엇나가지 않도록 케이어스를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성필은 입구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이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 역시 갑자기 연차쓴 건 너무했지. 한 소리 듣겠다. 아니, 그 원인이 케이어스니까 그냥 한 소리로는 끝나지 않을…….’

문을 열자마자 정호환이 보였다.

“아.”

“에.”

정호환과 에리카가 마주 보곤 돌처럼 굳었다.

정호환의 뒤엔 KS 엔터 수석 프로듀서 강동현이 있었다. 그리고 ‘올 것이 왔다’는 얼굴의 홍규헌도.

하지만 이 중 누구도 에리카보다 표정이 안 좋진 않았다.

“아, 아아…….”

에리카가 성필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카르마란 게 정말 있나 봐요오…….”

돌고 돌 필요도 없이, 곧장 최종 보스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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