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54화 (454/760)

453화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성필은 검은 폰 화면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성필이 회귀함으로써 미래가 뒤틀렸다. 어쩌면 성필이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내가 뿌린 씨, 내가 거둬야 해. 최소한 정 이사님이 에리카 씨의 곡에 만족할 수준까지는 도와드리자.’

성필은 폰을 주머니에 넣곤 합숙소로 향했다.

방금 큰일을 마쳤지만, 아직도 큰일이 남았다.

‘하슬이한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지.’

성필은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자신이 매몰차게 김하슬을 떠나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지 않길 바랐다.

‘내가 생각해도 욕먹을 장면이니까…….’

* * *

에리카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폈다. 그리고 볼펜을 들고 몇 글자 끄적였다.

‘일단 필요한 곳은 장소.’

에리카와 성필은 각자 만남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만남 장소에 관해 제각각 다른 조건을 걸었다.

일단 에리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은 안 된단 조건을 제시했었다.

‘주변 눈치를 보고 싶진 않으니까.’

유명 아이돌의 삶은 평범한 일상을 포기함으로써 얻어진다.

케이어스 멤버들이 아이돌이란 위치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 KS 엔터는 그녀들의 외출에 반드시 직원을 대동하도록 했었다.

그녀들이 일반인일 때와 아이돌일 때의 괴리를 체감하지 못하고 실수를 할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알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딱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 기가 다 빨리는 기분이다.

스케줄과 관련 있지도 않은데 수백, 수천 명의 시선을 감내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그러니까…….’

가장 흔한 만남 장소인 카페는 제외다.

‘역시 프라이빗한 곳이 좋지.’

아예 방을 하나 빌릴 수 있어 프라이버시가 완전히 보장되는 종류의 곳.

에리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곳은 룸 카페였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완전히 독립된 방을 빌릴 수 있단 모양이다.

‘그런데 이 안은 바로 각하됐었지.’

성필이 룸 카페란 이야기를 듣자마자 기겁하면서 거절했더랬다.

이는 성필이 내건 조건과 관련이 있었다.

‘완전히 둘만 있는 공간은 피할 것.’

밀폐된 방 안에 성필과 에리카만 있으면 안 된단 뜻이다. 참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박 이사님이 카페라고 하셨을 때 거절한 내가 토 달 문제는 아니지만.’

에리카는 픽 웃었다.

성필은 이상한 데서 걱정이 많다.

설마 둘만 있으면 분위기가 야릇하게 흘러가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일은 절대 없다.

‘나는 절대…….’

그리 생각하던 에리카는 갑자기 발상의 대변환을 일으켰다.

자신이 아니라면…….

‘박 이사님 쪽에서?’

그래, 그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케이어스가 데뷔했을 시점에도, 에리카의 착각과는 달리 성필과 리카는 사귀지 않고 있었다.

그게 더 심각하지 않은가?

‘서로 애정이 없는 사이인데도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한단 거 자체가, 박 이사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증거야.’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의 애청자인 에리카는 성필의 각종 유혹 기술을 잘 알고 있었다.

볼 때마다 ‘미친 거 아니야?!’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맞네, 맞아. 박 이사님이 리카랑 사귀는 건 아닐지라도, 프랑스에서 설하 언니 방에서 나온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어.’

에리카는 결론을 내렸다.

룸 카페, 위험!

‘그럼 방법이 없겠는데.’

카페든 룸 카페든, 폐쇄성의 차이만 있지 초단기 공간 임대 사업이란 점에선 동일하다.

비용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 공간을 빌리는 것이다. 그럼 같은 부류는 또 뭐가 있을까?

‘돈으로 공간을 빌릴 수 있는 곳이…….’

스터디룸.

회의실 형식의 룸을 빌리면 어떨까?

‘아냐. 스터디룸은 창이 나 있잖아. 여러 사람들이 오간단 점에서 박 이사님이 내건 조건엔 부합하지만, 안 돼. 그럼 남은 건…….’

호텔 아니면 모텔 정도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에리카는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방법이 없네.’

그러고 보니, 븨이에스의 박수련 선배님은 데이트 장소로 차 안을 애용했다고 한다.

‘확실히 차 안은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 안전한 편이지. 선팅만 잘 되어 있으면.’

그런데 그 좁은 장소에서 원활한 피드백이 일어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차 안은 성필이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에서 매력 어필할 때 가장 자주 쓰는 장소다.

성필은 운전대만 잡으면 머릿속에 온갖 로맨틱한 단어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룸 카페와 비슷한 의미로 위험하다.

“에리카.”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김민주가 들어왔다.

에리카는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순간, 믿지 못할 반사 신경으로 노트 페이지를 하나 넘겼다.

그리고 굉장히 열중하고 있단 듯 어느 문장을 썼다.

[진정한 문명은 가스나 증기기관이나 회전 테이블에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문명은, 원죄의 자국이 줄어가는 데에 있다.]

“뭐 해?”

역시나 호기심 많은 김민주는 에리카의 곁까지 다가와 그녀의 노트를 흘끔 보았다.

에리카는 김민주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열중하는 연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공부.”

“이거 어디서 봤는데.”

“정호환 이사님이 하셨던 말씀이잖아.”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나 세탁기 돌릴 건데 넌?”

“어떤 거?”

“흰색.”

에리카는 빨래망에 빨아야 하는 흰옷들을 담아 김민주에게 넘겼다.

“속옷은 빼.”

뺐다.

김민주는 빨래를 넘겨받곤 유유히 방을 나섰다. 아니, 나서려 했다.

“아.”

에리카가 뭔가 깨달았단 듯 입을 열었다.

“민주야.”

“어?”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부탁? 네가? 웬일로?”

에리카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찾았다.’

성필과 만날 장소.

* * *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에 찾아온 첫 번째 위기?!

성필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밤 문자를 보낸 김하슬.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데이트 이벤트.

주말, 두 사람이 데이트하러 나가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는 성필. 그는 합숙소에 남겨져 씁쓸함을 곱씹는다.

회차가 더해갈수록 혼란만 거세지는 합숙소, 그곳에서 펼쳐지는 애정 전선의 행방은?

“김하슬 저년 저거 저럴 줄 알았어.”

신아름의 말투는 특이했다.

‘김하슬’을 발음할 때마다, 마치 뼈에 붙은 고기를 뜯어 먹듯 발음을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팀장님한테 간만 보고 바로 빠지잖아. 뭔 인간이 저렇게 지조가 없어.”

“에에, 데모(그치만) 다들 최소 두 명씩이랑은 데이트하잖아. 오히려 하슬 언니가 늦은…….”

“팀장님은 김하슬 저년이랑밖에 데이트 안 했잖아아아! 왜 팀장님만 순애보를 지켜야 하는데에에에!”

신아름의 고함에 리카가 입을 꾹 다물었다.

신아름은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이 진행될 때마다 김하슬을 향한 분노 수치가 높아져만 갔다.

김하슬과 성필 사이에 꿀이 떨어질 때도, 그리고 오늘처럼 김하슬이 성필을 차갑게 대할 때도.

이 정도면 그냥 김하슬을 싫어하는 건가 싶다.

“팀장님 어떡해……. 마음 여려서 상처 많이 받으실 텐데……. 저 지조 없는 년 때문에 왜 팀장님이 괴로워해야 하는 건데에…….”

리카는 점점 성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김하슬과 성필의 사이가 방송 때문에 연결된 게 아니라면, 신아름은 말로만 김하슬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분노를 표출했을 것만 같았다.

김하슬이 손에 닿는 곳에 있기만 했다면, 그녀는 신아름의 손아귀에 걸려 곤혹을 면치 못했겠지.

‘뭐, 아름이도 방송이라서 더 몰입하는 거겠지.’

원래 이런 종류의 예능은 가벼운 갈등도 심각한 사태인 것처럼 포장하지 않는가.

전부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성필과 김하슬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만났다 하더라도, 설마 신아름이 둘 사이에 개입했겠는가.

“내가 옆에 있었으면 저런 꼴은 안 당했을 거 아냐…….”

진짜 개입했을 것 같다.

리카는 슬쩍슬쩍 신아름에게서 떨어졌다.

리카는 미래 성필의 애인에게 동정을 전했다. 부디 신아름이 쳐놓은 철의 장막을 뚫고 원활한 사랑을 구가하길.

‘음?’

그때 리카의 눈에 이상한 점이 잡혔다.

성필의 합숙소 귀가 시간이었다.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은 회차마다 며칠 동안 출연자들에게 벌어졌던 일을 보여준다.

그랬기에 리카가 알아챌 수 있던 차이였다.

‘왜 박 이사님이 9시에 들어오시지?’

가로 엔터의 공식적인 퇴근 시각은 7시다.

소녀연맹과 스케줄을 함께하는 매니지먼트팀은 예외이지만, 다른 사무직들은 별다른 일이 없다면 퇴근 시각을 꼭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성필은 예외였다.

그는 야근의 왕이라 불릴 만큼이나 회사에 오래 남아 있다.

옛날, 리카는 그런 그가 안타까워서 퇴근할 때까지 놀아주려다가 괴담 공격을 받아 대경실색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니었구.’

성필은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촬영 때문에, 근래엔 야근을 하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퇴근하면 합숙소에 가는 게 규칙이니까.

평소처럼 야근하다가 합숙소로 가면, 이가 썩을 만큼 달콤한 썸이 생기긴커녕 일 중독자로 취급될 뿐이다.

그래서 성필은 방송에 대한 예의로써 눈물을 머금고 7시 퇴근을 준수 중이었다.

‘차가 밀린대도 8시 전까지는 도착하셔야 하는데…….’

방송에 보인 그저께도 그렇고, 현재 방송의 성필도 9시 가까워서야 합숙소로 들어왔다.

신아름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채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리카도 우연히 본 것에 불과했으니까.

‘거실에 걸린 시계.’

카메라가 멀리 있기에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흐릿하게만 보인다.

그래서 보통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리카는 수많은 우연을 뚫고 신경 쓰게 됐다.

성필의 스케줄엔 공백이 존재한다.

그건, 방송 내용이 다음 날로 넘어가자 확신으로 변했다. 성필은 그날도 9시가 가까워서야 합숙소로 돌아왔다.

“저 씨XX이 팀장님이 화해해보자고 하는데도 억지로 무시하는 거 봐 저 개……!”

리카는 신아름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면서 추리에 논리를 더해갔다. 그리고 어느 가정에 도달한 리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아니, 아직 심증이다.

심증이니.

‘물증을 잡자.’

* * *

가로 엔터 신인개발팀 신준성.

연습생들을 가로 엔터의 방향성에 맡도록 지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연습생의 스케줄과 트레이닝 단계, 개별 특기 계발 등은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나온다.

“준성 님, 저희 퇴근해보겠습니다.”

“넵, 고생하셨어요.”

신준성은 사무실을 나가는 신인개발팀 팀원들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신인개발팀은 가로 엔터의 다른 부서들과 성격이 다르기에 사무실도 따로 받았다. 어느 점에서 다르냐면, 소녀연맹과 관련이 없단 것이었다.

따로 떨어진 외딴섬 같은 부서.

신준성은 그곳의 팀장과 같았다. 아직 정식으로 팀장이란 직함을 받지 못했으니, ‘팀장 같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가로 엔터의 중역들은 경력 있는 신인개발 쪽 사람을 영입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기획사들은 웬만해선 연습생 트레이닝으로 경력을 쌓은 이들을 놔주지 않으니까. 원천 기술을 팔아먹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래서 가로 엔터에 모인 이쪽 인력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쯧, 이건…….”

아직 그럴듯한 커리어도 없는 이들이 모였기에, 섣불리 팀 자체를 이끄는 리더를 선정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신인개발팀은 내외적으로 합의제 혹은 다수결을 지향하고 있지만, 신준성은 팀원들에게 인정받아 임시 리더 역할을 했다.

조별과제 조장이라 불러도 좋았다.

그런 그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상황이 안 좋네.”

그의 책상 위엔 연습생 둘의 신상명세서가 올라와 있었다.

이시카와 유우토와 백수현의 것이었다.

신준성은 연습생을 유심히 본다. 그들의 실력 향상적인 측면만이 아닌, 그들 사이의 관계도 주시 대상이다.

그리고 오늘 연습생 정기 면담으로 밝혀진 사실이 있었다.

‘이 둘이 연습생들 사이에 잘 섞이지 못한다고…… 그런 느낌이었지.’

유우토와 백수현은 B반 소속이었다.

곧 A반으로 올라갈, 그리고 B반의 리더 역을 맡은 김사무엘은 자신의 마지막 짐을 내려놓듯 ‘두 사람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습니다’라고 했었다.

당연히 신준성은 이렇게 물었다.

‘이유는?’

김사무엘은 고개를 저었었다.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김사무엘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친구들, 동료들을 팔아먹는 것과 비슷했으니.

김사무엘은 타인의 장점은 쉽게도 말하지만, 단점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하지 않으려는 아이였다.

‘유우토와 수현이가 잘 섞이지 못해……. 아니, 못하는 게 아니지.’

그들은 배척받고 있는 것이다.

짐작 가는 이유는 있었다.

애초에 신준성이 우려했던 점이기도 했고.

‘둘이 소녀연맹 멤버들의 동생이라서…….’

현세대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히는 게 공정이라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유우토와 백수현은 확실히 주변 동료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만했다.

신준성은 둘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끙끙 고민했다. 연습생들 사이에 왕따가 생기거나 파벌이 갈리면 부작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순히 친한 이들끼리 갈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아예 다수에게 공인되다시피 한 왕따가 생기면, 연습생이란 조직 자체가 불건전한 분위기로 흐르잖아.’

그렇지만 해결법이 마땅치 않다.

신준성이 연습생들을 모아두고 화해하라고 할 순 없잖은가.

원인도 제거할 수 없다. 백수현과 유우토에게 혈연을 끊으라고도 할 수 없으니.

신준성이 하나의 반을 맡은 담임 교사의 고민을 체험하던 중.

“준성 오빠!”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신준성이 지닌 고민의 원인 중 하나가 대뜸 나타났다.

방금 음악 방송을 마친 듯 무대 의상도 갈아입지 않은 리카였다.

신준성은 허겁지겁 테이블에 올라온 서류들을 그러모아 구석으로 밀었다.

“어, 어, 리카?”

“퇴근하시나요!”

“어…… 뭐…….”

신준성은 테이블 구석까지 밀려난 서류를 보다가, 답답함에 낮은 한숨을 뱉곤 답했다.

“이제 가야지.”

더 고민해봤자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저 좀 태워주세요!”

“응?”

“꼭 가야 할 곳이 있어요!”

“매니저님들은?”

“저희 음방 스케줄만 있을 땐 다들 칼퇴하세요!”

“음, 하긴. 근데 갑자기 이러면 나도 곤란…….”

리카가 품에서 신준성의 시급 3배나 되는 지폐를 꺼냈다.

“추가 근무예요!”

“어디로 모실까요?”

* * *

신준성은 차에 탄 직후, 리카의 지시를 듣곤 기겁하면서 외쳤다.

“차를 좇으라고? 그거 미행이잖아!”

“하이(네)!”

“뭘 천진난만하게 대답해!”

“자자, 빨리요! 이러다가 놓치겠어요!”

성필은 막 주차장에서 출발한 참이었다.

리카는 약 이틀에 이르는 주도면밀한 관찰 끝에, 성필이 어느 쪽 대로로 빠지는지 알고 있었다.

잠깐 시야에서 놓쳤다고 못 좇아가진 않지만, 앞으로 수십 초의 공백이 생기면 그를 놓치고 말 것이었다.

“걸리면 어떡하게!”

신준성의 꾸짖는 듯한 물음에 리카는 큰 눈망울을 두세 번 꿈뻑이더니.

“걸려도 아무 일 없지 않나요? 범죄도 아니구.”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잖아! 이왕이면 넓은 범위의 도덕까지 지키고 싶어!”

“어쩔 수 없네요! 돈 돌려주세요! 그걸로 택시 잡아서 좇아갈 거예요!”

신준성.

배곯던 댄서 시절을 거쳐 소형 기획사의 트레이닝팀으로 정착할 예정이었으나, 기획사가 망해버렸다.

또다시 학원가나 전전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점, 가로 엔터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러나 인생이 확 펴진 않았다.

아직도 카드값에 하루하루 쩔쩔매는 가난한 사회인일 뿐……. 그는 몇만 원이 고프다.

“세상에 미행하란 부탁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택시 기사에게 몇만 원을 양보할 바에야, 신준성은 그 돈을 자신이 가지기로 했다.

그는 리카의 지시에 따라 차를 몰았다.

“그런데 누굴 미행하는 건데?”

“오빠는 아타시(저)의 말만 들으면 돼요!”

갑자기 리카가 연기하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대가 누구인지 들으면, 오빠도 더는 양지의 세계에서 살지 못해요. 반드시 위험해질 거예요. 이 짐은, 저 이시카와 리카만 지면 되니까요.”

“…….”

그래, 뭐, 그렇구나.

대로로 나오자 퇴근길에 오른 차들도 길이 엄청나게 막혔다.

시야를 가득 메운 차들 중, 리카가 목표로 하는 차가 있는 건가? 아니면 이미 놓쳤나?

“저거예요! 저 차를 좇아가주세요!”

“어디 보자. 저건…… 박 이사님 차잖아?! 나, 난 못해! 이건 배임행위얏!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나잖아!”

“회사 일이 아니에요! 사적인 일이에요! 그리고 아직 박 이사님 차라고 확정된 건 아니니까요!”

“너 날 바보로 알아?! 거, 걸리면 어쩌게?”

신준성은 공포에 벌벌 떨며 아까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이번에도 역시나 리카는 큰 눈망울을 두세 번 꿈뻑이더니, 말도 안 된단 듯 크게 웃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보신 거 아닌가요! 세상에 어떤 일반인이 미행을 알아차릴 수 있나요! 운전자들은 자기 차 외에 신경도 안 쓴다구요!”

“그으, 그건 그렇긴 한데…….”

“절대 안 걸리니까 걱정 마세요! 박 이사님은 의외로 시야가 넓지도 않으니까요!”

“역시 박 이사님 맞잖아!”

“시맛타(아뿔싸)!”

그래도 리카의 말마따나, 걸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미행을 조심하지 않고서야 미행을 눈치챌 수 있겠는가.

* * *

성필은 백미러를 보았다.

절로 한숨이 나올 만큼 막힌 도로. 몇 개의 차 너머로 아까부터 수상한 차가 한 대 보였다.

계속 신경 쓰였었는데, 이제 확신이 섰다.

‘미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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