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53화 (453/760)

452화

성필과의 식사 한 번으로 에리카는 어느 한 가지를 얻었다.

고작 하나이지만, 에리카가 가장 바라 마지않던 하나였다.

용기.

‘보여드리자.’

성필과의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노트북을 만지던 에리카는, 문득 그렇게 결심했다.

내일?

아니, 오늘 바로.

결심하자마자 에리카는 KS 엔터로 갈 채비를 시작했다.

대강 아무 옷이나 걸쳤다. 그에 비해 그녀의 역작이 들어있는 노트북은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가방 안에 넣었다.

에리카는 가방 안에 노트북이 잘 들어갔나, 가져가는 동안 혹여라도 파손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 몇 번이고 가방 안에 든 노트북의 위치를 손보았다.

여태까진 그런 적 따위 한 번도 없었음에도 말이다.

“어디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자니 샤워 가운을 두른 진소유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는 방금 샤워실에서 나와 머리카락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그냥 머리나 말리러 가지.

“회사.”

“지금?”

“응. 일 있어서.”

진소유는 ‘우리한테 일이랄 게 있나’하는 눈빛으로 에리카를 응시했다. 하지만 에리카가 대답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관심 없단 듯 등을 보였다.

에리카는 작곡을 한다.

하지만 회사는 물론 멤버들도 그녀의 작곡이 본격적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정 이사님한테 내 작업물을 보여줬단 건 애들한테 비밀이어야 해.’

그래야 나중에 결과가 안 좋을 때도 면피할 수 있지 않은가.

에리카는 회사로 가는 길, 몇 번이나 멤버들에게 이 사실을 들키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다.

성필이 해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네요.’

그 한마디가 에리카의 북극성이 됐다.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지침이 됐다.

‘아, 이제야 진저가 이해돼.’

미국에서 성필에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어서, 성필과 친해지게 됐다고.

에리카는 고작 말 몇 마디로 무슨?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알겠다.

‘고작 말 몇 마디가 인간을 바꿀 수 있는 거야.’

성필의 ‘좋다’는 평가 하나가 에리카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았다.

용기란 이름의 불은 세상 모든 것을 태워 없애버린다.

자신을 핍박하던 세계도.

또, 세계를 향해 움츠러들었던 자신도 모두 평범하게 쓸어버리는 것이다.

‘도착했다.’

에리카는 백팩을 고쳐 매고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친절하게 인사하며, 엘리베이터에 타고, 정호환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정호환의 작업실로 향하는 에리카의 걸음이 비틀거렸다.

한 발 한 발 정면이 아닌 좌우로 살짝씩 비틀려 있다. 옆에서 기대와 불안이라는 두 자매가 번갈아 에리카를 밀치고 있다.

‘곧 정 이사님을 만나 뵙고, 내 노래를 들려줘.’

작곡 수업마다 셀 수 없이 많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 평가는 특별하다.

이번에 에리카가 만든 곡은 자신이 만들고 싶어서, 노래하고 싶어서, 표현하고 싶어서 창조해낸 것이니까.

설렌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작품을 마음껏 드러내고 자랑할 생각에, 설레고 떨려 심장이 한 조각도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다.

“에리카.”

노크하고 들어간 작업실, 가장 안쪽에 앉은 정호환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인자한 미소와 함께 그녀를 맞아주었다.

에리카는 그에게 용건을 말했다.

아마 목소리가 조금은 떨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곡 말이지.”

정호환은 그녀에게서 헤드폰을 받았다.

그가 곡을 다 듣고 나자, 에리카는 자신이 이 곡을 믹스테입으로 발표할 것이며 그 계획까지 어느 정도 짜 두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정호환의 입에서 칭찬이 나올 때까지.

에리카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입꼬리는 성급하게도 올라가 있었단 것만은 알았다.

“믹스테입.”

이윽고 정호환이 말했다.

에리카가 힘차게 답했다.

“네.”

“안 된단다.”

그리고, 정호환이 단호하게 답했다.

그 순간 에리카의 북극성이 땅으로 떨어졌다. 언제까지나 하늘 높이 빛나며 에리카를 이끌어줄 것만 같던 북극성은, 너무나도 쉽게 혜성으로 변하여 대기권에 닿아 녹아 내려갔다.

“곡이 안 좋나요?”

“곡 자체는, 그래. 잘 만들었구나.”

정호환은 ‘좋다’고 하지 않았다.

‘잘 만들었다’라고 했다.

마치 학생의 과제물을 평가하듯이.

그 말이 에리카의 가슴을 찢었다. 가슴 안쪽에서 찢어진 조각들이 배로 내려가 뭉쳐 돌이 되고, 그녀의 뱃속에 무거운 돌덩이를 만들었다.

위장 대신 절망이 들어찬 것 같다.

“믹스테입으로 내는 건 괜찮잖아요. 케이어스랑은 관계없는 거고, 제 일이니까요.”

“아니.”

정호환이 고개를 저었다.

“에리카, 비정하게 들리겠지만 ‘에리카’란 이름은 온전히 너의 것이 아니란다.”

“…….”

“‘케이어스의 에리카’는 KS 엔터의 것이야. 아쉽지만, 너는 ‘에리카’란 이름을 쓸 수 없단다. 만약 네 작업물을 드러내고픈 게 목적이라면, 다른 예명을 만들어서 사운드 포그에라도 올리는 게 어떠니.”

사운드 포그는 뮤지션, 프로듀서 지망생들이 곡을 올리는 음악 플랫폼이다.

인디 음악 취향의 사람들이나, 업계의 프로들이 신인을 발굴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곤 했다.

등용문, 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걸로도 충분하잖니.”

“…….”

아니, 안 된다.

왜냐하면 에리카가 하고픈 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사람들에게 평가받는 것이니까.

가면을 쓰고서 무대에 나가고픈 생각은 없었다.

에리카는 정호환을 설득하려다가, 그저 입술을 꾹 닫았다.

‘만약.’

만약, 자신이 만든 곡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았더라면 정호환이 이렇게 말할 린 없었을 것이다.

모두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 그래도…….

‘정식으로 발매해달란 것도 아니고, 믹스테입으로, 내 돈으로 하겠단 건데…….’

그것마저 불가능하다니.

에리카는 그제야 자신을 둘러싼 KS 엔터, 케이어스란 환경이 얼마나 강력한 족쇄인지 알게 됐다.

그 족쇄는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다.

에리카의 머리 위에 빛나며 온갖 사람들을 매혹한다. 동시에, 에리카는 그 왕관을 벗고서 온전한 자신을 내보일 수 없다.

왕관은 벗을 수 없단 점에서 족쇄와 같았다.

‘나는…….’

어쩌면 케이어스가 해체할 때까지 ‘에리카’란 이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에리카는 작업실을 나왔다.

그리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아…….”

가슴을 부여잡고,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갈증에 절망했다.

영원토록 해소할 수 없는 절망이었다.

‘시간, 내 시간이…….’

시간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 의미를 새겨넣는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시간은 평등하게 주어지지만, 그 시간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건 모든 인간이 근원적으로 지닌 절망의 씨앗이다.

다른 사람은 똑같은 시간 속에서 인생을 빛내지만, 자신은 벽돌을 쌓았다가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며 인생을 허비한다면 그보다 더한 절망이 어디 있을까.

‘나는 앞으로 몇 년이나 이 갈증을 풀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거야?’

에리카는 인생이 게임이다.

공략집을 가진 게임.

만사에 무료한 그녀이지만, 가슴 설레는 일 정도는 있다.

첫 번째, 당연한 듯 거머쥐는 승리.

두 번째, 사랑.

‘에리카란 이름을 박탈당한 채로, 에리카로 살아가야 하는 거야?’

세 번째, 창작.

에리카에게 창조는 봄바람과 같은 설렘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 결과물에 자신의 이름 석 자 박아 넣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그말리온.

꿈꾸던 이상형을 만들어낸 조각가.

조각과 사랑에 빠지지만, 이 이야기에 신의 축복은 없을 것이다. 신은 그 조각을 인간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에리카는 자신이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피그말리온 같다고 느꼈다.

신, 정호환은 영원히 에리카의 작품에 생명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까.

* * *

“정호환 이사님이 거절하셨다고요?”

[네.]

에리카는 겸허한 사람답게, 자신의 부족함에 중점을 두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쉽게도 성필은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는 대체 미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전생에서도 에리카 씨가 정호환 이사님한테 까였을까?’

그래서 에리카가 더욱 노력하게 되어 더욱 성장하는 걸까?

아니면 이미 미래가 뒤바뀌어, 정호환이 에리카의 곡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어야 함에도 이번 생에선 그렇게 되지 않았던 것일까.

성필은 신이 아니라, 모든 인과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의문은 한 가지로 흘렀다.

‘내가 계속 에리카 씨의 일에 끼어드는 게 맞나?’

성필은 전화기에서 귀를 살짝 떼었다.

어쩌면 에리카와 대화하면 할수록, 정해진 미래에서 점점 더 엇나갈지도 몰랐다.

‘아니야. 내가 에리카 씨한테 신경을 안 써줘서, 정해진 미래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성필은 머리가 불탈 것만 같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도 판단이 안 된다.

[죄송해요.]

갑자기 에리카가 사과했다.

그에 성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침묵을 지키던 시간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밤인데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죠?]

에리카의 목소리는 어느새 활기를 되찾았다. 성필과의 대화로 기력을 회복한 건 아닌 듯했다.

성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황이 아니라 판단하고, 그의 걱정을 사지 않기 위해 일부러 활기찬 모습을 연출하는 것일 터다.

‘그래, 밤이지.’

에리카는 성필이 프로그램 촬영 중이란 사실도 알 것이다.

‘그럼에도 전화했다.’

성필은 그녀가 스스로 견디기 힘든 슬픔을 겪었으리라 예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례임을 앎에도 이 시간에 전화할 리가 없으니까.

성필도 그런 적이 꽤 있어서,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저히 내일이 될 때까지, 상대의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마음.’

성필의 예로 들자면, 케이어스의 앨범 컴백일을 기다리기 힘들다거나.

아니면 옛 애인과 사귈 때, 내일 그녀와 만나는 걸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거나.

백설하를 영입할 때, 그녀와의 만남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지고 싶었다거나.

그런 일들이 있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어.’

성필은 에리카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게 한숨을 쉬었다.

‘미래를 바꾸니 뭐니 하면서 튕길 때가 아니야. 일단은 에리카 씨의 이야기를 듣자.’

“아니에요, 저 시간 많아요. 오히려 심심해서 누구한테 연락 안 오나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도 눈치는 있어요.]

“정말요. 그리고 또, 저는 에리카 씨의 토모(친구)잖아요.”

성필은 ‘토모’라는 단어를 스스로 뱉고도 부끄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에리카가 성필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유를 알게 된 이후라서 더 그랬다.

[……토모(친구).]

에리카가 큭큭 웃었다.

[박 이사님, 와타쿠시(저) 분해요.]

어째선지, 에리카는 꼭 리카처럼 말했다.

[제가 부족해서…… 그래서 정 이사님이 받아들지 않으신 거라고 생각해요. 아마 박 이사님보다 좋음의 커트라인이 높으신가 봐요.]

“아…… 제가 기준을 낮게 잡은 건 아니었는데요.”

[알아요. 저는 박 이사님의 말씀을 믿지만, 결국은 정 이사님을 설득해야 해요. 그러니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야겠죠.]

“에리카 씨는 할 수 있으세요. 아이돌로서도 대성하셨잖아요.”

[……할 수 있어요?]

에리카는 살짝 놀란 기색이었다.

“왜 그러세요?”

[아뇨……. 예전부터 박 이사님은 뭔가 저한테 기대하는 게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이돌로서든 인간으로서든요.]

“그게 뭐예요. 제가 에리카 씨를 무시한 거 같잖아요.”

[정말요. 저는 그랬어요.]

“하하, 제가 왜 그러…….”

갑자기 성필은 오래전에 끊은 담배 냄새를 느꼈다. 보나 마나 환각이었다.

“제, 제가 왜 그러…….”

이제 보니, 에리카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에리카의 흡연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를 보는 성필의 눈빛이 달라지긴 했을 테니까.

성필은 자신도 방금 깨달은 그 미묘한 차이를, 에리카가 눈치챘단 게 놀라웠다.

[그런데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니까요. 혹시 그냥 하는 말이었나요? ‘얘 언제 전화 끊어’ 같은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격려하셨다거나?]

“아니에요.”

[아무튼, 다시 도전해볼 거예요. 계속해서요. 아마 설하 언니도 이런 과정을 거치셨겠죠? 거절당하고, 다시 도전하는 거요.]

“그럼요.”

처음 낸 아이디어가 바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로 엔터도 소녀연맹의 컴백을 준비할 때마다 수많은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곡 선택부터 곡의 구조, 하이라이트 멜로디 라인, 트랙에 들어가는 악기.

의상과 메이크업, 안무 등등 수많은 파트에서 갈등이 벌어진다. 그러니, 고작 거절 한 번으로 언제까지나 슬퍼할 수는 없다.

“에리카 씨의 목표가 아티스트시라면, 고작 한 번의 실패로 좌절하시면 안 되죠.”

[네.]

에리카가 활기차게 답했다.

아까의 꾸며낸 활기와는 다른, 그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온 긍정적인 에너지였다.

[그런 기대는 익숙해요.]

실제로 그러했다.

에리카는 몸을 담았던 모든 일에 재능이 있었다. 한두 번의 후퇴도 있었지만, 결국은 바라는 수준까지 성취해냈었다.

그녀도 자신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단 걸 알았고, 주변 사람들도 당연하단 듯 그녀에게 기대를 보냈었다.

[그 기대를 이루는 데도 익숙하고요.]

“처음 위로해달라며 통화한 사람 어디 갔어요? 전혀 다른 사람이 있는데요.”

[다시 용기가 났으니까요.]

에리카는 살포시 웃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박 이사님, 혹시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요?”

[도와주세요. 거창하지만, 제 프로듀싱을요.]

에리카는 너무나 간단하게 도와달란 말을 입에 담았다.

그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탁을 거절당한 경험이 손에 꼽을 만큼 적으리라.

그러니 경쟁사의 프로듀서에게 도와달란 말이 나올 수 있는 거겠지.

“제가요? 에리카 씨를요?”

성필은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케이어스 덕질까진 애들이 이해하지만, 케이어스 멤버를 직접적으로 돕는 건…….’

성필이 고민하는 듯 입을 다물고 있자, 에리카가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제가 거창하게 표현은 했지만, ‘우리들의 프로듀싱’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가끔 만나서 곡을 들어주시고, 의견만 주시면 돼요.]

“의견요…….”

그 정도라면 어찌어찌 가능할 법하다.

시간도 많이 뺏기지 않을 테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내 간섭이 최소한으로 그칠 거야. 에리카 씨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도 제약이 적겠지.’

성필이 승낙하려던 순간.

[보수도 있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무급으로 다른 회사 PD를 부려 먹을 생각은 없어요. 저도 그만큼 염치가 없진 않다구요.]

“보수라면……?”

[뭘 기대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거예요. 돈이요.]

“돈?”

한 삼사 만 원 정도라도 줄 생각인가.

[한 시간에 30만 원이요.]

“예?!”

묘하게 구체적인 수치에 성필이 깜짝 놀랐다.

한 시간 만나는데 30만 원을 주겠다고?

이 무슨 엄청난 고수익 아르바이트인가.

아니, 그것보다.

“그런 돈은 못 받죠!”

[제가 아직 애라서요? 아뇨. 와타쿠시(저)는 엄연한 어른이에요. 어른답게 노동엔 대가를 지불하는 거예요.]

“아니…….”

[섭섭한 액수는 아니죠?]

“너무 적은데요…….”

[네?! 그게 적으려면 월급이 6,000만 원은 되셔야 해요!]

에리카가 보기 드물게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자신의 예상이 훨씬 거하게 빗나가자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이었다.

성필은 큭큭 웃곤 답했다.

“네, 나중에 정산받으시면 그때 받을게요. 그런데 저 정말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요.”

[도움이 돼요.]

“확신하시네요.”

[저와 함께 고민해주고, 들어주시는 분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계속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

성필은 감동받은 목소리를 숨기려, 살짝 물기가 배인 목청을 크흠 가다듬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겠어요. 오늘 감사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에리카가 특유의 봄바람처럼 가벼운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프로듀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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