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5화
“다녀오셨슴미까.”
진저는 숙소로 들어오는 에리카를 마중했다.
에리카는 진저의 인사에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곤, 가볍게 그녀를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갔다.
진저는 충격받았다.
‘끄덕임 한 번?’
보통 사태가 아니다.
에리카가 누구인가.
친절함과 자애의 상징과 다름없는 인물이다. 왠진 모르겠지만 가끔 차가워질 때가 있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곤 너무나 사랑스러운 언니다.
그런데 그런 언니가 자신을 차갑게 지나친 것이었다.
‘비상이야!’
진저는 당장 타개책을 얻기 위해 김민주의 방으로 갔.
‘아냐. 민주 언니는 이런 일을 감당하기엔 너무 여려.’
김민주는 여리다.
여기엔 진저 나름의 타당한 근거가 있었다.
케이어스의 데뷔조가 결정된 직후, 정호환은 리더로 에리카를 뽑았더랬다.
당연히 진저를 제외한 인물들에게서 반발이 나왔다. 진소유는 약하게, 김민주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어떻게 외국인이 리더가 돼요?!’
리카가 보았다면 ‘인종차별이야!’를 외칠 만한 발언이었으나, 김민주의 주장은 타당했다.
케이팝 그룹이다.
당연히 한국인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예외의 경우도 손에 꼽을 정도론 있었지만, 그게 에리카가 리더가 될 이유는 될 수 없었다.
‘저는 인정 못 해요!’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정호환이 김민주에게 요즘 에리카와는 어떠냐고 질문했을 때.
‘……그럭저럭요.’
김민주는 완전히 꼬리를 만 상태가 되었었다.
정호환은 에리카의 친화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되었구나 했었지만, 격전의 중앙에 있던 진저는 전혀 다른 감상을 품었다.
드디어 에리카가 김민주를 함락시켰구나.
‘엄청난 암투였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에리카와 김민주 사이의 관계는 하루가 지날수록 달라졌었다.
김민주는 사면초가에 처한 항우 같았었다.
결국엔 손도 발도 쓰지 못할 상황이 되어, 마침내 패배해버린 항우…….
‘그러니 민주 언니는 이런 상담에 어울리지 않아. 상담해봤자 에리카 언니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할 거야.’
진저는 진소유의 방으로 향했다.
진소유는 전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돌핀 팬츠를 입은 채 똑바로 서서, 발끝으로 몸을 띄웠다 붙였다를 반복했다. 그녀의 시선은 거울 속 자신의 다리에 붙박여 있었다.
“뭐 하심미까?”
“나르시스랑 싸우고 있어.”
“나르시스?”
“나르시시즘할 때 그 나르시스.”
“자기성애 말씀하시는 검미까?”
진소유는 괴상한 짓거리를 그만두고 진저와 마주하여 섰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안으로 뛰어들었다고 해. 아니면 자기 얼굴만 보다가 굶어 죽었다고.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결국 얼굴이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슴미다.”
모르겠다기보다, 알고 싶지 않다.
“것보다…….”
“다리만으로 반할 순 없을까? 혹은 신체의 일부만으로 자기 자신한테 반할 순 없을까? 그런 생각해본 적 있지?”
“없슴미다.”
진저는 같은 과로 엮지 말라는 듯 단호히 답했다. 진소유가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그렇겠지.”
“사실 있슴미다. 매일 반합니다.”
“메이, 승부욕 불태울 필요 없어. 나르시시즘은 천부재능을 지닌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신의 사랑이니까.”
“나르시스는 축복받은 게 아니라 저주받은 검미다.”
“중국에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유명하니? 의외로 잘 아는구나.”
그래서 무슨 일이야.
진소유가 진저를 자신의 침대에 앉혔다.
“에리카 언니가 이상함미다.”
이야기를 다 들은 진소유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 애가 그럴 정도면 심각하긴 하네.”
“박 이사님이랑 만나러 가서 무슨 일이 있던 검미다. 언니가 알 수 없슴미까?”
“내가 어떻게?”
“소유 언니는 남의 마음을 잘 읽지 않슴미까. 에리카 언니 마음도 읽어주시면 안 됨미까.”
“……하아.”
진소유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은 안 했지만, 앞으로도 말하지 않겠지만, 진저는 진소유의 저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홀로 연극 무대에 선 듯한 과장된 제스처 말이다.
본인이 무대의 주인공이라도 됐다고 생각할 사람이 할 법한, 자아의식이 가득한 인간의 표상 같다.
“사랑이여.”
“사랑?”
“아니야. 그럼 내가 에리카랑 얘기하고 올게.”
“부탁드림미다! 에리카 언니, 소녀연맹한테 1위를 뺏긴 후로 상태가 말이 아님미다. 오늘은 더 말이 아니게 됐슴미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슴미다.”
진소유가 진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곤 방을 나섰다.
10분 후, 진소유가 돌아왔다.
“알아냈슴미까?”
“사랑이야.”
“예?”
“에리카는 사랑을 생각하고 있어.”
진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우려하던 사태가 터져버렸다.
* * *
에리카는 침대에 누워 들뜬 한숨을 뱉었다.
‘리카아…….’
오늘 응접실에서 보았던 리카를 떠올리니 전신이 배배 꼬일 만큼이나 흥분된다. 근래 안 좋았던 기분이 전부 날아갈 만큼이나.
‘어쩜 그렇게 귀엽니…….’
리카는 에리카에게 ‘성필을 좋아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연상시키듯 단호한 선언과, 설명에 내재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논리로 이루어진 발언들이었다.
마치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 예상하고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조금의 틈도 없는 설명.
‘그렇지. 회사 직원과 아이돌은 금단의 관계니까.’
아마 성필과 리카는 비밀연애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성필에게 날 파리가 꼬인다면 리카가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느 커플들처럼 ‘내 남자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리카는 그토록 논리정연한 설명을 준비해왔단 것이리라.
리카가 품어온 마음을 확인하니, 에리카는 설레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인생이란 이리도 달콤한 자극으로 가득했던 것이구나.’
담배를 끊은 후, 가끔 자기도 모르는 이유로 몸이 나른해질 때가 있었다.
뇌에서 당장 말초적인 자극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내는 순간이 계속해서 있어 왔다.
그때마다 에리카는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그럼에도 자극을 바라왔다.
그 욕망이 오늘 전부 해소되었다.
‘리카야 행복하니? 행복하겠지? 아, 그런데 설하 언니랑 박 이사님이랑은 아직도 그런 관계일까? 아아…….’
에리카가 꺄악 소리를 내면서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이러다가 머리가 새하얗게 타서 정상적인 생각을 못 하게 될 듯했다.
‘그만 생각하자, 그만.’
내일을 위해 아껴두자.
품 안에 넣어둔 담뱃갑의 담배처럼, 인생의 무료할 때 리카와 성필을 가지고 망상하는 것이다.
에리카는 결단을 내린 직후 바로 생산적인 일로 뛰어들었다.
구석에 세워진 기타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을 펼쳐 작곡 프로그램을 켰다.
“사랑…….”
이 마음을 표현해보자.
거의 대부분, 명곡들은 사랑을 노래한다. 인류가 가장 강렬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사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리카는 그에 동감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사랑이 가장 손에 넣기 쉽고도 강렬하기에…….’
에리카는 기타를 치며 허밍했다.
그러던 도중, ‘정말 좋다’고 생각할 만한 멜로디 라인이 절로 뽑혀 나왔다.
에리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곤 방금의 멜로디를 작곡 프로그램에 새겨 넣었다. 그리고 재생하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어디였지? 아니, 언제였지?’
고운 이마를 찌푸리며 상념을 거듭하고 있자, 대강 감이 잡혔다.
‘어릴 때네. 어릴 때, 할머니한테서 들었던 기억이 있어. 자장가인가? 지역 민요?’
뭔진 몰라도, 좋다.
에리카는 곡을 더 풍성하게 만들다가, 책상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던 수첩을 꺼냈다.
[믹스테입계획]
믹스테입(Mixtape).
여러 의미가 있지만, 에리카가 사용하는 의미는 ‘아티스트의 비상업적 앨범’이었다.
그녀는 수첩에 방금 받은 영감을 끄적였다.
글을 쓰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내 이름을 건 정식 앨범을 내가 프로듀싱할 순 없을 거야.’
적어도 케이어스로 활동하는 동안은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믹스테입이면 가능할지도 몰라. 문제는…….’
완성도.
이걸 검사받을 사람이 필요한데, 정호환은 안 된다. 부끄러우니까.
그래도 괜찮다.
에리카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둔 사람이 있었다.
‘박 이사님한테, 준비가 되면 보여드려야지.’
회사 외부 사람인데다 케이어스를 좋아하며 실력도 있다. 여러모로 따져봐도 성필이 적임이다.
애초에 그녀가 아는 프로듀서가 두 사람뿐이라, 소거법으로 성필이 된 것이지만.
‘준비가 되면…….’
에리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것.
첫 번째, 당연한 듯 거머쥐는 성공.
두 번째, 사랑.
세 번째.
‘나의 음악을…….’
창작.
에리카는 창작한다.
* * *
그날 이후 에리카가 변했다.
이제 진저와 진소유뿐 아니라 김민주도 에리카의 변화를 알게 됐다.
“에리카 쟤 왜 저래?”
그렇게 물어도, 진소유와 진저는 ‘모르겠다’는 답만 반복했다.
애초에 밝힐 수가 없는 이유였다. 세상에, 사랑이라니.
김민주는 대기실 구석 벽에 머리를 기대어 앉은 에리카를 불만스럽단 듯 바라보았다.
“하아.”
또 에리카가 들뜬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뭘 상상하고 있기에?
“가만히 두는 게 상책 같슴미다.”
“너 상책(上策)이란 말도 알아?”
“민주 언니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님미까. 한국에서만 벌써 몇 년을 살았는데.”
“근데 말투는 왜 아직도 그래.”
“저도 모름미다. 중국어를 배운 한국인들의 성조(聲調)가 시간이 지나도 이상한 거랑 비슷한 거 아니겠슴미까.”
“‘몰라’ 다음에 바로 답이 나오는 거 보니까 한국인 다 됐네.”
아무튼, 에리카는 멍하기만 할 뿐 누구에게도 피해는 끼치지 않고 있다. 진저의 말마따나 가만히 두는 게 나을 듯했다.
마침내 케이어스의 6주 앨범 활동이 모두 종료되고, 소녀연맹에게 2주 내리 지는 수모가 끝났을 시점.
1팀장이 케이어스에게 휴가를 주었다.
“고생했어 얘들아. 사흘 휴식이야.”
“감사함미다! 4일이나 주시다니!”
“진저, 사흘은 3일이야.”
“그렇슴미까.”
“아는데 일부러 4일이라고 한 거지?”
“션머(네)?”
“됐다. 쉬어.”
“4일 휴가임미다!”
“3일이라고!”
그로부터 또 며칠 후.
“꺄아아아아악!”
평화로웠던 케이어스 숙소.
거실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에 멤버들이 차례차례 방에서 뛰쳐나와 거실로 향했다.
“무슨 일임미까!”
“뭔데 뭐 부서졌어?!”
뒤늦게 샤워실에 있던 진소유가 나타났다.
샤워가운을 두른 그녀는 사방으로 물을 후두둑 떨어뜨리고 있었다.
김민주가 질색하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저, 저거…….”
에리카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다들 텔레비전 앞으로 와 화면을 보았다.
“끼아에으아에엑!”
진저가 텔레비전을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김민주가 바들바들 떠는 진저와 에리카를 어처구니없단 듯 바라보았다.
“저게 왜?”
텔레비전엔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그곳에 나오고 있는 건…….
“아니, 신기하긴 한데…….”
그곳에 나오고 있는 건, 성필이었다.
“‘저, 저게 왜?’라고?”
에리카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마구마구 쓸었다. 거칠게 세수하는 모양새였는데, 그녀가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제스처였다.
‘불륜…….’
불륜이다!
아니, 불륜이 아니라.
‘헤어졌어?!’
* * *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프로그램 규칙.
프로그램 촬영 동안 합숙소에서 지낸다.
출연자들은 퇴근하면 합숙소로 온다.
제작진의 판단이나 게임 우승에 따라 관심 있는 상대에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제공된다.
대략 이런 류의 프로그램이다.
[아.]
합숙소에 먼저 들어와 있던 여자 1번 출연자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현관 복도를 따라 발소리가 울리고, 그곳에 성필이 나타났다.
[아.]
[아.]
두 사람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성필은 그녀의 근처로 가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집은 둘러보셨어요?]
[아, 아니요, 아직.]
[으음. 언제부터 와 계셨어요?]
[저 얼마 안 됐어요.]
“거 더럽게 재네.”
텔레비전을 보던 신아름이 곧바로 욕을 뱉었다. 두 사람이 겨우 두 마디씩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에, 저 여자분이 재고 계신 거야?”
“팀장님은 죄다 질문형인데 저 여자만 단답하잖아.”
“질문받았으니까 답하는 게 당연…….”
“어색한 사이에선 질문받으면 똑같이 질문형으로 돌려주는 게 예의잖아!”
신아름이 역정을 내자 리카는 움츠러들면서 ‘그렇구나’라고 답해주었다.
[같이 한번 2층까지 둘러보실래요?]
[아…… 음, 네.]
“저거 봐 저거. 어쩔 수 없이 해준단 티를 팍팍 내잖아. 저년 저거 딱 봐도 주변 남자들이 광대 된 것마냥 재밌게 해주는 게 익숙할걸? 그딴 식으로 살았으니까 팀장님한테 저러…….”
신아름은 계속해서 상대 여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성필 정도나 되는 사람이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데 왜 저런 식으로밖에 반응하지 못하느냔 투였다.
리카는 신아름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떨어져 백설하에게 가서 안겼다.
“쌤, 아름이 무서워요…….”
“…….”
“쌤?”
“비, 비슷해.”
“하이(네)?”
“박 이사님이랑 나랑 카페에서 데이, 아니, 미팅했을 때랑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
비슷하다!
성필은 백설하를 영입하려고 카페에서 만났을 때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화법을 구사했다.
확실히 다른 점이 있지만, 저 화법을 당했던 백설하는 느낄 수 있었다.
성필의 발화(發話)는 미리 작성한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논리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다!
“저게 박 이사님이 사람 꼬실 때 쓰는 레퍼토리인가 봐!”
“그냥 평범하게 대화하고 있는데요!”
“아냐, 리카 넌 몰라.”
“……진짜 모르겠어요!”
리카가 생각하기엔 신아름이든 백설하든 과민반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카가 뒤를 보니, 장하양이 방송을 보다 말고 일어나고 있었다.
“하양 언니?”
“가게.”
“에에, 같이 안 보시나요!”
“왜 박 이사님이 다른 여자 꼬시는 걸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장하양은 거실을 나갔다. 그녀의 말마따나, 굳이 봐야 할 필요는 없었다.
리카는 다시 싱글벙글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
“그냥 봐야겠어!”
장하양은 다시 성큼성큼 텔레비전 앞으로 와서 앉았다.
“역시 언니도 궁금하시죠!”
“어, 궁금해.”
점점 출연자들이 모이고 있었다.
출연자는 총 여덟 명으로, 남자 넷 여자 넷의 구성이다.
“헤에, 쉐프도 있네요! 한 이사님보다 요리를 잘하실지 궁금해요! 요리 잘하는 남자는 경쟁력이 있어요!”
“나는 공무원분이 괜찮은 거 같아. 안경에서 성실성이 느껴져.”
“쌤 그거 선입견이에요! 안경 썼다고 성실한 게 아니라구요!”
“쌤 공무원 좋아해요? 안정적인 걸 선호하는구나.”
“아, 아냐 아름아……. 공무원은 박봉이니까…….”
“의외로 현실적이라서 깨네요. 근데 5급이면 많이 받지 않나?”
“1호봉이면 3,000만 원 정도라는데요.”
장하양이 금세 검색해서 답을 내놓았다.
“월?!”
“연이요.”
“……연 3,000만?”
“여기 글에선 상여금이나 휴가비 생각하면 그보다는 높을 거다…… 라는데요?”
백설하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적네…….”
백설하의 ‘적다’는 발언에, 멤버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 그녀들의 금전 감각은 박살 나 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장하양, 보컬 트레이너로 일했었던 백설하마저도 근래 금전 감각이 남달라졌다.
분기마다 억 단위의 돈을 벌어들이는 그녀들에게 연봉 3,000만은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특히 동생 라인은 주변에 ‘너 연봉 얼마니?’라고 물어볼 일도 없는 터라, 이쪽으론 그다지 지식이 없었다. 그나마 아는 거라곤 성필과 한구인의 월급 정도였다.
“그럼 남자 출연자분은…….”
신아름이 손가락을 하나씩 줄였다.
“팀장님, 쉐프, 사무관이네요. 이건 뭐, 팀장님 압승이네.”
“압승은 아니…….”
“리카 너 죽을래? 압승이 아니야? 뭐가 압승이 아닌데?”
“아타시(내)가 잘못했어…….”
’빛이 나는 솔로는 그만‘ 출연이 확정된 후, 신아름은 성필과 연관된 일에 이상하게도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녀가 이토록 공격적으로 변한 건, 소중하게 여기는 성필이 만방에 공개된다는 상황에 기인했다.
신아름은 연예인이다. 텔레비전에 얼굴이 공개됐을 때 오만 가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단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성필이 그런 것에 상처 입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성필이 프로그램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당당하고 자신 있길 바랐다.
그 마음이 투영되어서 주변을 향해 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압승이라곤, 확실히 점치기 힘들어.”
장하양이 말했다. 신아름은 장하양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장하양이 검지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온다.”
[그리고 나타나는 마지막 출연자.]
신아름이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자, 온몸에 후광을 두른 남자가 나타났다.
합숙소 안에 앉아 있던 여자 출연자들이 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성필을 제외한 남자 출연자들이 경계심을 바짝 세우는 게 느껴졌다.
그만큼이나 그 남자의 출연은 충격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그 남자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한구인입니다.]
카메라가 한구인을 잡자, 갑자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드라마로 장르가 변환되었다.
확실히 장하양의 말마따나 압승이라고 하기엔…….
“아슬아슬하게 승리, 정도로 하자.”
“……?”
뭐, 아무튼 장하양은 성필이 아슬아슬하게 이겼다지만.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작진은 위기감을 연출할 모양인지, 한구인의 출연 후 거의 5분을 그의 독무대로 만들었다.
딱히 연출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오면서 태양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소녀연맹 멤버들은 ’설마 아니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 이사님이 개그 치려나 봐!”
저런 짓을 했다간 얼굴로 벌어놓은 점수를 죄다 잃게 생겼다.
멤버들은 성필을 볼 때와는 달리, 한구인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가 망가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제발 그가 좋은 인연을 만나 연애에 골인하길 빌었다.
그러니 이상한 개그는 하면 안……!
[네? 왜요?]
[선선(SunSun)하니까요.]
끝났다.
모두가 한구인의 패배를 예감하던 때.
[아하하핳!]
여자 출연자들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자지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