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39화 (439/760)

438화

현재, 걸그룹을 다루는 모든 SNS와 커뮤니티에선 대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당연하게도 건전하지 않은 논쟁과 결투가 사방에서 벌어졌다.

[현세대 걸그룹 서열

1티어: 소녀연맹, 케이어스, 넛지(Nudge, SMS 엔터의 신인 걸그룹)

서열: 케이어스 >>> 넛지 > 소녀연맹]

이런 식으로 서열을 가르고자 하는 글이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올라왔다.

다른 그룹을 욕먹게 하고자 일부러 자신이 팬질하는 그룹을 내려치는 사람도 있었다.

상대 팬덤을 악성 팬덤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그 팬덤의 흉내를 내는 이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이돌 커뮤니티는 대혼란 상태였다.

[아니 ㅋㅋㅋㅋㅋㅋ 케이어스가 소녀연맹한테 차트 떡실신 당했는데 어케 서열이 더 낮음?

― 소녀연맹은 한계가 딱 눈에 보임. 컴백할 때마다 컨셉도 ㅂㅅ 같은 거 잡고 나와서 힙스터들한테나 빨림

― 어케 K천지는 말투에서부터 냄새가 나냐 ㅠㅠ

― ㅋㅋㅋㅋㅋ 케이어스가 세대교체 신호탄이고 선두인데 인기견들 어떻게든 케이어스 깔려고 혈안이네 너네들 주인들 물고 빨러 가세요

― 넵넵 ㅋㅋㅋㅋㅋ 음원 나락 망돌 케이어스나 많이 빠십셔 ㅋㅋㅋㅋ

― 케이어스가 최초로 걸그룹 판매량 박스권 뚫은 그룹임. 이렇든 저렇든 역사에 남을 그룹이란 건 안 바뀜.

― 역사 ㅋㅋㅋ 바꾸려면 차트 순위나 바꿔라 ㅋㅋㅋㅋㅋ 왜 이번엔 K천지 팬덤 조작질도 안 먹힘? (하)락세 씹인증]

옛날 같았다면 소녀연맹이 컴백하든 말든, 케이어스 팬덤인 ‘유스’는 가볍게 이런 소란을 넘겼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케이어스가 왜 락세임? ㅂㅅ 컨셉 망돌 유기견 팬덤이 주인 지키려고 열폭하는 거 개웃기네 ㅋㅋㅋ]

가볍게 넘기는 게, 불가능했다.

이 모든 혼란은 소녀연맹이 차트에서 눈부신 성과를 얻어냈기 때문에 벌어졌다.

‘인민’과 ‘유스’는 서로가 떠받드는 아이돌을 위해 커뮤니티를 전장으로 삼았다.

누구도 먼저 물러날 수 없었다.

아이돌은 그들의 우상이니까. 팬덤은 그들의 집이니까. 저마다의 소속감으로 손가락 움직이길 그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아무리 소모적인 논쟁이 많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는다.

[어차피 케이어스는 음방 명전 들어가고 또 신화 씀. 인기견들 계속 짖어라.]

음악 방송들은 한 곡과 아티스트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3주 연속 1위를 달성하면 명예의 전당에 아티스트의 곡을 등록한다.

현재 컴백 3주 차에 들어간 케이어스는 공중파 음악 방송 세 곳에서 2주 연속 1위를 달성한 참이었다.

이제 남은 횟수는 한 번.

[너네 주인 케이어스한테 딱 한 번 이긴 걸로 계속 열폭이나 해라]

음악 방송은 이전 주의 성적으로 1위를 결정하기에, 소녀연맹이 1위를 하기 위해선 주를 넘겨야만 했다.

그렇기에 소녀연맹과 케이어스는 만날 수 없다.

그게 케이어스 팬덤인 ‘유스’가 ‘인민’을 그나마 비웃을 수 있는 이유였다.

실시간 차트에선 소녀연맹이 케이어스의 모가지를 비틀고 있지만, 음악 방송에선 케이어스를 꺾을 수 없다.

애초에 만나지 못할 테니까.

[빨갱이들 어차피 영원히 케이어스 밑임]

일주일의 차이.

그 차이가 케이어스를 왕좌에 남겨둘 것이었다.

* * *

백설하가 인터넷에 자신의 이름이나 소녀연맹을 검색하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게 자신을 상처입힐 뿐이란 사실을 깨닫고 난 후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백설하는 시간만 있으면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 다녔다.

[프로듀서 설하 천재만재 영원히 아이돌 해줘 ㅜㅜ]

“……크흨.”

백설하는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입을 재빨리 손바닥으로 막았다.

대중의 관심은 심장을 찢는 폭풍인 동시에, 때론 천상의 음료보다 더욱 달콤한 것이기도 하다.

칭찬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의 칭찬일 뿐인데도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린다.

‘아니,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야.’

팬이다.

소녀연맹과 백설하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이들이 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노래가 닿은 거야.’

백설하가 프로듀싱한 앨범과 곡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닿아, 그들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풍족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건 그에 대한 보상이다.

그리 생각하니 백설하는 또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앉은 채로 발을 마구마구 굴렀다.

“뭐가 그렇게 좋아요?”

위세라가 백설하의 맞은편에 앉았다.

백설하는 언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냐는 듯 똑바로 앉아 미소를 띠었다.

“다 봤거든요?”

“아, 그래……?”

백설하가 창피한 듯 헤헤 웃자, 위세라는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을 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았다.

음료를 앞에 두고도 마시지 않는 걸 보니, 백설하를 만나기 위해 억지로 시킨 듯했다.

“그으, 오늘은 왜……?”

백설하가 물었다.

위세라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방송국 1층의 카페는, 저녁 시간 이후인데도 자리가 별로 차 있지 않았다.

이곳의 주요 이용객들은 자리에서 커피를 음미하기보다,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는 경우가 많았다.

“언니 컴백했잖아요. 얼굴이나 보려고요. 축하해요.”

위세라가 손을 내밀었다.

백설하는 얼떨떨하게 그 손을 바라보다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악수했다.

“고마워. 나 만나줘서…….”

“왤케 친구 고픈 사람처럼 말해요.”

“아, 아니…….”

친구가 고프다?

백설하는 새삼 자신의 인간관계를 되짚었다. 막상 떠올리면, 소녀연맹 멤버들이나 에리카, 위세라를 제외하면 지인이 마땅히 없었다.

‘나 진짜 친구가 없다?!’

그때 백설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위세라가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백설하는 재빨리 주제를 바꾸었다.

“오늘 무대 괜찮았어?”

글로브는 생방송임에도 무대에 1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MC가 자신 있게 ‘만나보겠습니다, 글로브!’라고 외쳤는데도 등장하지 않은 것이다.

두 명의 남녀 MC는 약 1분간 혼신을 다하여 시간을 벌었었다.

“그거요. 걍…… 약간 소통이 꼬였어요.”

“그렇구나.”

“매니저 오빠 PD님한테 개처럼 깨졌어요.”

“개, 개처럼?”

위세라는 목이 타는지 그제야 커피를 빨대로 쪼옥 빨아들였다.

“근데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으니까요.”

“으응, 큰일은 안 난 거지?”

“적당히 잘 끝났어요.”

그러고 나서, 왠지 모르게 대화가 끊겼다.

그게 백설하를 당황시켰다.

둘 사이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위세라와의 사이에서 나올 만한 게 아니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계기가 되어 나름 친분을 다지지 않았던가. 심지어 위세라가 백설하를 도와주기까지 했었다.

‘아.’

그때, 백설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위세라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덕이었다.

옛날엔 백설하도 에리카를 보며 괜히 기가 죽었던 적이 있었다.

비슷한 나이의 동종 업계 종사자, 그렇게 생각하면 기가 죽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럴 수만은 없다.

‘우리 소녀연맹이 케이어스랑 마주쳤을 때마다 움츠러들었던 것처럼.’

아이돌 사이에선 성적으로 계급이 갈리는 느낌이 든다.

그건 아마 팬들이 급을 가리는 데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돌 본인은 그럴 마음이 없더라도, 팬들의 인식이 아이돌에게 투영되는 거겠지.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압도되곤 한다.

“근데.”

위세라가 짧으면서도 긴 침묵을 깼다.

“언니 아쉽겠어요.”

“어, 어? 뭐가?”

“모처럼 소녀연맹 음원 성적 좋잖아요. 케이어스 세로로 쪼갤 정도로 좋은데, 막상 만날 수가 없으니까요.”

“…….”

그렇다.

백설하가 컴백 전날 가로 엔터의 사람들을 모아두고 ‘승리를 주세요’라고 했던 게 무색하도록, 소녀연맹은 케이어스와 마주칠 수 없게 됐다.

케이어스는 이번 주 음방에서 3주 연속으로 1위를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으로 갈 것이다.

소녀연맹의 성적이 음방에 집계될 기간에, 이미 케이어스는 떠나가고 없다.

“그래도.”

백설하가 컵을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 있자, 위세라는 분위기를 풀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이미 차트가 증명하잖아요. 언니가 케이어스 이겼어요.”

“아냐.”

“네?”

“우린…….”

소녀연맹은.

항상, 항상, 항상.

“무대 위에서 패배를 곱씹었어.”

케이어스와 만나 그녀들이 환호와 빛을 받은 것을 보며, 소녀연맹 멤버들은 진심 없는 미소와 박수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소녀연맹이 데뷔했을 때, 케이어스에게 밀려 수많은 음악 시상식에서도 박수 기계가 되지 않았던가.

“승부란 건 눈앞에서 결과가 보여야 해.”

그리고 백설하는 승리를 바란다.

이대로 맥없이 끝내고 싶진 않다.

케이어스와 함께 컴백한단 소식을 듣자마자 우중충해졌던 과거를 떠올리면 지금의 자신이 웃기기만 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원래 자기 자신을 알면 적도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애초에 예전과 같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왕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이토록 높이 올랐다.

어쩌면 케이어스를 이렇게나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는 마지막일지도 몰랐다.

그 기회를 버리고 싶지 않다.

“한 번, 제대로 만나고 싶어.”

만나고 싶었는데…….

“헤헤.”

백설하가 심각했던 표정을 느슨하게 풀었다.

“그래도 방법은 없겠지.”

“우리가 줄게요.”

“……어?”

위세라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였다.

“이번 주 공중파 음방들에서 글로브가 케이어스를 꺾고, 1위를 딸게요.”

그러면 케이어스는 3주 연속 1위 달성에 실패하고,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한다.

앞으로 3주 더 음악 방송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케이어스는 음방마다 소녀연맹을 마주하게 될 테고…….

“질리도록 케이어스를 내려다볼 수 있을걸요?”

“…….”

“지금 못 믿는 거예요?”

“아냐 아냐! 믿어! 그…….”

글로브는 케이어스가 출연하지 않는 케이블 음방에선 무서운 기세로 1위를 따내는 중이었다.

“그치만 그게 하고 싶다고 되는 게…….”

“무시하는 거 열받네요. 그래도 귀여우니까 봐줄게요.”

“어?!”

“음악 방송에서 가장 비율이 높은 건 음원 점수예요. 케이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차트에서 떨어지고 있고요.”

당연히, 아직도 TOP10을 지키고 있는 글로브에게 기회가 있다.

“안 그래도 케이어스 걔네들 나락 가는 거 보고 싶었어요.”

“……케이어스가 싫어?”

글로브가 케이어스를 싫어할 이유가 있나?

이번에 만난 걸 제외하곤, 글로브가 케이어스와 직접적으로 맞붙었던 건 데뷔뿐일 텐데.

백설하는 위세라가 왜 이렇게 승부욕을 불태우는지 알 수 없었다. 이번 컴백에서 계속 밀려서 그런 것일까?

백설하가 이유를 곱씹는 도중.

“네.”

위세라가 즉답했다.

“싫어요.”

* * *

윤상열은 석세스 엔터의 연습실들을 차례로 돌았다. 연습생들은 그가 들어오면 움찔하다가도, 익숙하단 듯 연습을 이어갔다.

그렇게 윤상열은 한 연습실에서 수십 분을 있다가 나가곤 했다.

“아, PD님 안녕하세요.”

보컬 개인 트레이닝이 이루어지는 보컬룸.

방 안에는 트레이너와 연습생 한 명이 있었다. 연습생은 윤상열을 보자마자 빳빳하게 굳어 겨우 허리를 굽혔다.

윤상열은 손을 내저으며 트레이닝을 계속하라고 했다.

총괄 프로듀서가 곁에 있는데 트레이닝이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결국, 연습생은 자꾸만 나오는 삑사리에 울먹이기까지 했다.

“…….”

윤상열은 몇 분 더 지켜보다가 보컬룸을 나섰다. 그렇게 몇 개의 보컬룸을 쭉 둘러보고 난 윤상열은, 다시 안무 연습이 이루어지는 연습실을 처음부터 돌기 시작했다.

이게 요즘 윤상열의 일과였다.

연습실을 돌면서,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으면 수첩에 끄적이길 반복했다.

밤이 될 동안 그 행위를 반복한 윤상열은, 8시 즈음 복도에서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

두 명의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멈춰 섰다.

“…….”

“…….”

글로브의 리더인 라희였다.

라희는 음방을 마치고 바로 온 듯, 풀메이크업과 무대 의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윤상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윤상열은 그녀의 눈빛을 마주 보다가, 아무 일 없단 듯 그녀를 지나쳐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보였을 때, 라희가 입을 열었다.

“벌써 새 그룹 생각하시는 거예요?”

윤상열은 걸음을 멈추었다.

드물게도, 그가 답했다. 변명하듯이 살짝 빠른 어조로.

“‘벌써’가 아니지. 너희도 이제 3년 차니까. 2년, 3년 뒤엔 새 그룹이 나와야 해.”

“그래서, 우리한텐 신경도 안 쓰시는 거예요?”

라희는 발소리를 들었다.

윤상열이 신은 운동화의 굽이 바닥을 밟는 소리.

툭, 툭, 툭.

윤상열이 뒤로 돌아 자신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라희는 보지 않고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경 안 쓰길 바라고 있는 거 아니었나? 오히려 기뻐해야지. 더는 갈구지도 않으니까.”

“저희가 모자랐어요?”

라희가 이를 악물고 뒤로 돌았다.

윤상열의 얼굴이 보였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표정이지만, 미묘한 균열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아니요. 저희는 PD님이 요구한 선에서 단 한 걸음도 뒤로 안 물러났어요. PD님이 최종 평가에서 ‘여기서 더 떨어지지 마라’고 한 완성도를 계속 유지했어요.”

“…….”

“지금까진 성적으로 우리한테 실망한 적도, 혼낸 적도 없으시잖아요. PD님의 기준에 맞기만 하면 된다. 그게 저희에게 준 목표였잖아요. 그런데 왜 이번엔…….”

라희가 고개를 사선으로 내렸다. 그녀는 숨을 고르는 듯 눈을 질끈 감더니, 주먹을 꽉 쥐고 다시금 시선을 위로 치켜올렸다.

“우린 계속 나아가고 있어요. 적어도 뒤로 가고 있진 않아요. PD님의 기준에 맞췄어요. 다들 죽도록 노력해서 닿았어요. 그러니까, 빈말이라도 모두한테 ‘수고했다’ 정도는 말씀하실 수 있잖아요.”

“너희는.”

윤상열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조차도 모르는 이유로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말하지 말라는 듯 입 주위의 근육이 경직됐다.

하지만 결국 말했다.

“못 닿아, 이제. 어디에든.”

정적이 일었다.

윤상열은 탈진한 사람처럼 비척비척 다시 등을 돌렸다.

그러자 라희가 말했다. 심장에서부터 쥐어 짜내듯 한계까지 응축된 감정을 담아서.

“케이어스에요?”

윤상열은 답 없이 라희에게서 떠나갔다.

라희는 제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얼마간 그러고 있었을까, 위세라가 그녀의 뒤로 다가와 어깨를 팔로 감쌌다.

“가자.”

“…….”

라희는 위세라가 이끄는 대로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떼어내고 달렸다.

“라희야!”

위세라는 라희가 윤상열에게 달려간다고 생각했다. 달려가서 드롭킥이라도 먹여주려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하지만 라희가 찾아간 곳은 글로브를 담당하는 매니지먼트 1팀장이 있는 사무실이었다.

이제 막 퇴근하려던 1팀장은 라희의 방문에 의아한 기색을 비쳤다. 그도 그럴 게, 라희는 아직 무대 의상도 벗지 않은 데다가 급히 왔는지 숨까지 헐떡였으니까.

“팀장님.”

“어, 라희야. 무슨 일 있어?”

“저희 나갈 수 있는 예능에 다 내보내 줘요.”

“뭐?”

라희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홍보할 수 있는 모든 곳이란 곳엔 전부 다 내보내 주세요. 라디오든 버스킹이든 길거리 무대든 어디든 다 상관없어요.”

“어, 그으, 그건 내가 마음대로 할…….”

“이제 윤 PD님 우리 신경 안 써요!”

그 외침이 1팀장의 마음에 닿았다.

1팀장이 우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최근 윤상열은 글로브에게서 관심이 떠난 것처럼 행동했다.

더는 글로브에 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드디어 매니지먼트팀이 독립성을 되찾았다, 라면서 좋아할 일만은 아니었다.

메인 프로듀서가 그룹을 놓은 건 아닐까. 그렇게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한 번.”

라희가 피맺히는 심정으로 단어 하나하나를 씹듯이 내뱉었다.

“단 한 번이라도 케이어스를 꺾고 싶어요. 단 한 명이라도 우리 노래를 더 들어서, 꺾을래요.”

“…….”

1팀장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희는 사무실을 나섰다. 그리고 멤버들이 모인 연습실로 들어왔다.

다른 글로브 멤버들은 벌써 옷을 다 갈아입은 뒤였다. 다들 아직도 무대 의상 차림인 라희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라희야?”

지유의 부름에도 아랑곳 않고, 라희가 갑자기 폰을 꺼내어 라이브 방송을 켰다.

곧이어 수백 명이 라이브로 들어왔다.

알림을 받자마자 들어온 이들이었다.

음방을 마친 후라서 그런지 ‘수고했다’는 채팅이 많았다.

라희는 라이브 카메라 안에 자신의 얼굴과 멤버들을 한꺼번에 담았다. 클렌징 티슈로 미리 화장을 지웠던 양소민이 허겁지겁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스(Earth).”

라희가 글로브의 팬덤을 불렀다.

곧이어 채팅창이 ‘네!’라는 대답으로 물들었다. 시청자도 천 명 단위를 넘었다.

“우리, 성적…….”

라희의 눈엔 아까보다 더 밝고도 강렬한 불꽃이 감돌았다. 언젠가는 그녀 자신을 태워버릴 것처럼 하늘 높이 치솟을 화염이었다.

“성적, 신경 써요. 죽도록 신경 써요.”

라희가 부탁하는 듯 양손으로 폰을 붙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이 저희의 마지막 활동이라 생각하고, 도와주세요…….”

폰을 붙잡은 손이.

“저희에게…….”

숙인 고개가.

“승리를…….”

처절하게.

“주세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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