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중소기업의 아이돌 그룹이 망하는 이유는 많고도 많다. 그중 하나로 꼽히는 게 바로 좋은 곡에만 집착하는 것이다.
곡이 좋아야 뜬다.
이는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좋은 곡에 집착하는 게 어떻게 중소기업의 그룹이 망하는 이유가 될까.
‘곡과 그룹의 결합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지.’
당연하게도, 작곡가는 맞춤 곡이 아니고서야 부를 사람을 특정하지 않고 곡을 쓴다.
이게 보편적인 작곡 방식이다.
이렇게 쓰인 곡은 퍼블리셔를 통해 레이블이나 기획사 여기저기로 소개되고 구매된다.
중소 기획사들은 멤버를 모으는 것만큼이나 좋은 곡을 구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멤버들과 곡을 연계시키는 데까진 생각도, 능력도 뻗어가지 못한다.
‘곡에 그룹을 구겨 넣는 일이 다반사야.’
곡이 좋으니, 너희들은 이 곡에 맞춰져야 한다.
이게 기본적인 스탠스일 수밖에 없다.
높은 경쟁률을 뚫은 연습생들이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능력이 떨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자신의 개성과 강점을 살릴 기회 없이, 곡에 구겨 넣어지는 경험만 이어지기에.
그렇게, 결국 사람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아이돌의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멤버들은 그룹의 몰개성한 멤버1, 멤버2, 멤버3…… 이렇게 되는 것이다.
‘설령 한 그룹을 띄운 기획사더라도 다음 그룹에서 죽을 쑤는 건, 성공이 기획력이 아닌 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 기획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A&R팀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Artist & Repertory.
A&R, 쉽게 표현하자면 성공의 공식을 구축하는 팀이다.
그들은 전문적인 대장장이로, 각지에서 산출된 각양각색의 금속들을 저마다의 특성에 맞춰 가공하는 기술자들이다.
대형기획사가 성공을 계속 써 내려가는 건 자본의 힘만이 아닌, 이러한 A&R팀의 노하우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들만의 성공 공식을 완전히 확립한 것이다.
‘그들은 미숙한 중소 기획사처럼 곡에만 집착하지 않아.’
아예 자체 프로듀싱팀을 두고, 멤버들의 특성에 맞춘 곡을 공동 작곡하거나.
아니면 A&R팀이 세계 각지의 작곡가에게 얻어온 곡을 멤버들의 특성에 맞도록 변화시킨다.
이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곡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거. 혹은, 멤버들의 개성만으로 성공할 수도 없다는 거.’
그룹에 맞는 곡만을 골라낸다는 건, 그룹 멤버 각자의 개성에 맞춰진 곡이 성공 확률이 높다는 증명이다.
당연하다.
40대 남자가 부르는 상큼하고 청순한 사랑 고백 노래나, 20대 여자가 부르는 술 냄새 잔뜩 밴 발라드가 성공할 수 없듯이.
곡의 서사와 특성은 한 인간에게 맞아야만 성공할 수 있다.
“시작하겠습니다.”
레코딩 엔지니어가 시작을 알렸다.
가로 엔터의 직원들은 벽면의 소파에 앉아, 중앙 테이블에 모인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보컬 디렉터 역할을 맡은 백설하가 지시했다.
“먼저 아라부터. 도입부.”
조아라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거칠게 입가를 닦았다.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백설하가 토크백을 눌러 말했다.
“아라야.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러. 연습할 땐 잘했잖아. 이거 어려운 거 맞아.”
조아라가 맡은 도입부 가사는 ‘우’가 전부다.
‘우우우우’, 음성 모음으로 내지르는 고음의 팔세토. 마치 여우가 동포를 찾듯, 달을 보고 울부짖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가성이다.
“어려운 거 맞으니까, 수십, 수백 번 실패해도 상관없어. 그중에서 최고의 한 번을, 내가 찾아낼게.”
[……네.]
조아라는 헤드폰을 쓰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프로듀싱’ 역사상 최초의 정식 레코딩이 시작됐다.
이곳의 지휘자는 작곡가인 정지음도, A&R 2팀장 직위까지 얻은 이재호도, 가수로서 빛나는 업적을 쌓았던 손혜빈도.
심지어 메인 프로듀서인 성필도 아니다.
백설하와 소녀연맹 멤버들이다.
자신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에 참여했고, 심지어 총괄하기까지 한 곡.
그러니 그녀들이 가장 잘 표현할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도움을 주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A&R팀…….’
성필은 잠시 그 명칭을 속으로 불러보았다.
소녀연맹이 정규 앨범을 발매하기로 결정한 후, 손혜빈은 본격적인 A&R팀의 구축을 지상 과제로 내세웠었다.
그엔 성필도 동의했었다.
‘성공 한 번은 전문적인 A&R팀 없이도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KS 엔터는 전문적인 프로듀싱 파트와 A&R팀의 구축을 ‘문화기술(文化技術)’이라고까지 일컬었다.
아이돌 그룹에게 맞춤형의 틀을 제공하는 일.
그렇게, 한 번도 그룹 멤버를 보지 않은 작곡가가 쓴 곡조차 멤버들에게 딱 맞는 옷으로 변한다.
이 문화기술이야말로 케이팝 아이돌이 성공할 수 있던 가장 큰 요인.
스타를 공장처럼 찍어내는 시스템.
하지만, 그런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가수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냥 본인들이 곡을 수급하고 가사를 정하고, 또 그에 맞게 노래를 부르면 돼.’
사람들은 그것을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본인이 곡을 쓰거나 가사를 쓰지 않더라도 프로듀싱을 맡는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한다.
번거로운 문화기술이니 뭐니 다 떼고, 자신들이 생각한,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들이 표현하고픈 노래를 하는 이들.
세계의 문화를 지배하는, 지구의 문화 그 자체인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의 무기는 거창한 문화기술이 아닌, 아티스트 자체의 진정성과 태도, 솔직한 감성이다.
‘알아, 나도…….’
정호환과 윤상열이 말했듯, 자신이 꾸는 꿈은 터무니없단 걸.
어쩌면 성필은 대중음악의 영웅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회사나 기획사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이름 하나하나가 음악의 역사 그 자체이던 시대를.
재즈 아티스트가 스윙과 비밥의 시대를 그리워하듯.
록 아티스트가 90년대 이전을 그리워하듯.
성필은 겪은 적 없던 문화의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며, 그 향수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이다.
‘정 이사님이랑 윤상열은 나를 안쓰럽게 보거나, 비웃겠지.’
하지만 성필은 꺾이지 않는다.
그는 믿는다.
세상을 인도할 깃발을 쥐는 건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더 나은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으며,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며, 단 한 걸음이라도 사소하다 생각하지 않고 걷다 보면.
세상은 마침내 뒤집힌다.
뒤집을 수 있다.
‘정호환 이사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청춘의 특권은, 당연하게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것.
청춘이 패배하는 순간은, 비대한 자아를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을 사회의 일부로써 반납할 때.
‘청춘의 특권을 버릴 때.’
자연스럽게 남들과 같이 어깨를 구부리고 톱니바퀴 속으로 들어가는 것.
톱니바퀴의 정교함과 기하학적 아름다움, 완벽한 균형과 대칭, 시스템을 숭상하는 것.
‘그러고 싶지 않아.’
성필은 30대이지만, 청춘의 특권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이미 완성된 듯 보이고, 더는 발전할 수 없을 것처럼 아름다운 현재를 찬양하고 싶지 않았다.
청춘을 완전히 가지진 못하더라도 끝자락이나마 놓길 바라지 않는다.
언제나 청춘이길 기원하며.
“아라야, 레코딩 시작할게.”
성필은 그녀들이 지닌 사랑을 본다.
그녀들이 생각해낸 사랑을.
그 누구의 머리도 아닌, 그녀들의 머리에서 나온 사랑의 의미.
그녀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을.
* * *
사랑은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
리카가 그리 말했지만, 조아라는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랑은 나를 나인 대로, 상대를 상대인 대로 그저 있게 만드는 거.’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이들에게 끌리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끌린다.
그건 호기심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다르기에 알고 싶다. 그래서 다가간다. 그리고 사랑한다. 사랑이란 서로 다른 극의 자석이 끌리는 것처럼,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상대를 모르기에 상대에게 더 이끌리는 것.’
신비의 장막으로 가려진 상대를 더 알고 싶어, 그 장막을 거두고 안을 보려 한다.
이게 사랑의 추동력일 것이다.
조아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더 알고 싶었다.
상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기에 더 호기심이 인다.
미지에 대한 설렘은 그를 향한 탐험을 촉구한다.
새 장난감을 가진 듯 그를 보고, 그를 만지고, 만질 수 없는 부분을 상상하고, 닳고 닳을 때까지 영원토록 탐닉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언제나 장막 안에 있어서, 조아라의 손길에 닳지 않는다.
‘그러니까, 상대한테 맞춰줘선 안 돼.’
상대와 섞여 들어가는 그 순간이, 바로 사랑을 일으킨 신비의 장막이 사라질 때이다.
사랑이란 언제까지나 서로를 신비의 영역에 두는 것. 조아라는 그리 생각한다.
영원히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네가 궁금하게, 네가 나를 궁금해하게.
물론 어쩔 수 없겠지. 상대와 같아지고 싶은, 오래전 떨어진 반쪽처럼 함께하고 싶은 욕망은 거스르기 힘들다.
그렇게 신비의 장막이 해체된 사랑은, 결국 헤어짐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참아야지.’
상대가 아무리 매혹적이라도, 상대와 닮아선 안 된다. 맞춰줘서는 안 된다.
상대는 상대로, 나는 나로 있어야만 한다.
그건 괴롭기에 투쟁이다.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투쟁.
조아라의 사랑은 투쟁이었다.
전투적이라고 부를 법한 격렬하고 황홀한 사랑을 위한, 사랑의 군가(軍歌)다.
* * *
장하양은 궁금하다.
어느 구김살도 없이 당연하단 듯 사랑하는 남녀가. 그런 만남을 반복하는 이들이, 어째서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단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한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에 뛰어드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나 쉽게 서로를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걸까.’
장하양은 선천적으로 불행하게 태어났다.
사랑이란 것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자라와, 태생부터 사랑이 익숙한 이들이 멀게만 느껴진다.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 장하양은 사랑의 시작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을 만한 이유인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조차 그녀에게 사랑받을 이유가 되지 못했는데, 무엇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들겠는가.
‘천륜조차 사랑을 만들 수 없었는데…….’
어쩌면, 그건 최금진 시인이 말했듯 ‘가난한 아버지와 불행한 어머니의 교배로 만들어진 것’이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불행한 것끼리의 교배에선 행복한 것이 태어날 수 없다.
장하양은 그리 생각하며 살았다.
이건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이기에, 영원히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자신은 평생 사랑을 알 수 없으리라고 여겼는데…….
‘아니었어.’
장하양은 사랑의 이유를 찾아냈다.
그건 믿음이었다.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과 만남으로써,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이 짊어졌던 모든 슬픔과 고통과 허무함과 애처로움은,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이젠 알아.’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도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그건 자신을 믿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상대에게서도 사랑할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
그건 장하양에게 해방과 같았다.
천형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마침내 사랑을 향해, 인간의 근원을 향해 도약할 수 있게 된 자신.
장하양에게 사랑이란 해방이었다.
마침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된, 해방의 찬가(讚歌)다.
* * *
사람들은 우정의 가치를 너무 낮게 잡고 있다. 리카는 그리 생각했다.
우정은 사랑보다 낮은 단계가 아니라, 사랑과 닮은 꼴인 형제자매임이 틀림없다.
사랑 그 자체보다, 우정이 더욱 사랑에 근접해있다.
‘우정은 상대를 파괴하지 않잖아!’
사랑이란 서로의 무덤을 파고, 사랑할수록 서로의 무덤에 흙을 채워 넣는 일이다.
격렬하게 섞일수록 파국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서서히 술이 깨는 것처럼, 아침에 방금 일어나 엉망진창인 상대의 얼굴을 마침내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충격적이겠지.
술에 취했을 땐 그토록 아름답게만 보였던 상대가, 깨는 순간 ‘내가 이런 애랑?’이란 생각을 하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까 격렬함은 필요 없어.’
리카는 우정을 바란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천천히 쌓여가고, 서로의 지층과 나이테를 하나하나 기억하며 셀 수 있는 사이.
리카의 사랑은 우정을 닮았다.
그녀는 편지를 쓴다.
매일 매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해가는 마음을 글자로 남긴다. 언젠가 편지에 쓰인 잉크가 바다만큼 넘칠 때까지.
그곳엔 애인에 대한 신비가 없다.
상대는, 그리고 리카는 바다를 채운 물방울 하나하나를 보아왔을 테니까.
격렬한 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대강대강 보아 넘기지 않고, 진득한 우정을 가지고 한 방울씩 떨어뜨린 잉크로 바다를 이루었을 테니까.
‘문을 닫아두는 거야.’
활짝 열지 않는다.
리카의 문은 닫혀 있다.
하지만 잠가져 있진 않다.
상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리카는 편지를 쓴다.
한창때의 소년 소녀처럼 우정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믿으며, 자연스럽게 잉크의 바다를 만들어간다.
리카의 사랑은 청춘에 흠뻑 빠진 소녀다. 한 층씩 쌓여가는 우정을 천천히 음미하는.
소녀가 사랑에 보내는 송가(頌歌)다.
* * *
사랑은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시간조차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백설하는 옛날 정지음이 빌려준 순정 만화를 읽으며,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대사를 보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데이트에 늦은 남자에게 여자가 하는 말이었다.
‘기다리는 시간도 데이트의 일부잖아. 데이트는 길면 길수록 좋은걸.’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하는 말 같았다. 너를 4시에 만난다면 나는 4시가 다가오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설렘과 행복으로 보낼 거라고.
‘굳이 애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백설하는 그런 사랑을 바랐다.
상대가 세계의 전부이기에, 굳이 따로 찾아볼 필요조차 없는 사랑 말이다.
상대가 헤어스타일을 바꿨다면, 상대의 일부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세상의 전부이기에, 또한 세계가 바뀐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사랑이란 얼마나 로맨틱할까.
‘마치 내가 구름처럼…… 상대한테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되는 거야.’
항상 하늘에 뜬 구름이 되고 싶다.
아니, 아니다.
구름은 너무 임팩트가 약하다.
달.
백설하는 달이 되고 싶었다.
구름처럼, 흩어지고 모이고 찢어지고 뭉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존재감 0인 무언가가 아니라.
명확하게 하늘에서 빛나는 달이 되길 바랐다.
‘존재가 당연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거부 불가능한 인력으로 연결된 사이.
태양이 빛을 비추지 않아 자신이 흐려질 때도.
사랑하는 나의 지구가 잠시 등을 돌리고 있어도.
달은 꾸준히 기다릴 수 있다.
언젠가 상대가 자신을 봐줄 거란 것을 알기에, 믿음이 있기에.
그건 지구와 달의 인연인 수십 억 년의 운명과 같을 것이다.
인연과 필연, 운명으로 연결된 영속의 연맹.
영원히 끊기지 않을 사슬처럼 팔짱을 낀 채 함께 나아가는, 종교적인 사랑과 같이 무차별적인, 서로에게 서로가 너무나 당연한.
백설하의 사랑은 운명적 연맹의 영가(詠歌)다.
* * *
신아름은 태어나길 패배하며 태어났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결점투성이에 실패작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단 의미는 그러했다.
인생 최초의 승부.
당연히 승리해야 할 전장.
보상은 무조건적으로 사랑받는 기쁨.
신아름은 그곳에서 패배했다.
후일 만회할 수 없는 패배를 지니고, 신아름은 인생 최초의 승부에서 영원토록 승리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사랑이란…….’
승리다.
만회할 수 없는 승부를 승리로 돌리는 것이어야만 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아버지가 틀렸다고, 자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인간이라고, 세상을 향해 그리 선언해야만 했다.
신아름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랐다.
‘말도 안 된단 건 알지, 나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사 전부 교환이라는 시대인데 말이다.
그런 인간은 만화나 소설 속에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기대하는 건 어린아이나 품을 법한 미성숙한 자아의 표현이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게, 바로 미성숙하단 의미니까.
신아름이 바라는 사랑은 신의 사랑, 신의 구원에서밖에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억울한데?’
나 정도나 되는 인간이다.
이 정도 생겨 먹었으면 그걸 못 바라겠는가?
물론, 신아름은 상대에게만 무조건적인 헌신을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도 상대에게 무조건의 사랑을 줄 생각이다.
조아라에게 했던 말마따나, ‘먼 해외에 있어도 전화 한 통에 달려와 주는’ 정도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신아름도 그만큼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다.
‘뭐든 해줄 수 있겠지.’
그게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저 먼 구름 위의 꿈이라도, 신아름은 전부 이뤄줄 수 있다.
그렇다.
신아름의 사랑은 불가능에 가까운 승리이자 신이나 줄 수 있는 구원과 닮았다.
2,000년 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울부짖으며, 만국 만민을 위해 대속했던 인간이자 신인 자가 했던 것처럼.
사랑은 마법이다.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마법. 그리고 신아름은 마법을 믿었다.
이게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한다면, 신아름은 다른 예시도 들 수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라스꼴리니꼬프.’
살인의 죄책감에 시달리던 라스꼴리니꼬프.
오직 신만이 구원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를 구원해준 건, 다름 아닌 가장 비천하고 가장 무식했던, 하지만 사랑을 믿었던 매춘부였다.
당장이라도 자살할 기세였던 라스꼴리니꼬프는 밑바닥 진흙탕에 기거하던 그녀의 말만 듣고 자수한다.
그리고 구원받는다.
‘아무도 뭐라고 안 하잖아?’
누구도 이걸 개연성 부족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마법이라고. 아무리 비현실적일지라도, 사랑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순수한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사회의 때가 묻어 숯덩이를 얼굴에 묻히고 다니는 어른들조차 라스꼴리니꼬프를 이해한다.
아니, 오히려 어른들이 그를 더 이해한다.
‘그러니까, 나는 포기 안 해.’
불가능해 보이는 승부를 향해, 신아름은 이번에야말로 승리하기 위해 나선다.
신아름의 사랑은 승리다.
그녀의 사랑은 승리를 향해 바치는 개선가(凱旋歌)일 것이다.
* * *
투쟁의 군가(軍歌).
해방의 찬가(讚歌).
소녀의 송가(頌歌).
연맹의 영가(詠歌).
승리의 개선가(凱旋歌).
사랑이란 단어는 하나다.
하지만 그 의미는 하나가 아니다.
사람의 수만큼 많은 사랑의 의미가 있다.
소녀연맹의 사랑 또한 다섯 빛깔이다.
투쟁.
해방.
소녀.
연맹.
승리.
우리들의 연맹, 소녀연맹.
자유와 저항을 부르짖었던 소녀들은 반쪽의 투쟁을 마치고, 남은 절반의 투쟁으로 향한다.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한 투쟁이다.
세계를 향한 저항은 반쪽일 뿐이다.
세계가 검게 물들었다면 개인도 그 먹의 일부다.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청춘을 제외하곤.
아직 자신들은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할 수 있는 유통기한이 끝나기 전.
그녀들은 새로운 전장으로 나선다.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싸움으로.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선을 넘지 말라며 제지하고.
그래선 안 된다고 말할지라도.
자신은 자신 외의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과 격렬히 싸우며 마침내 홀로 우뚝 서는 것.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아티스트라 부르고.
철학자들은 그 상태를 실존(實存)이라 한다.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한 발자국.
실존을 위한 한 걸음.
그게.
“됐다.”
레코딩 엔지니어가 CD를 들었다.
“레코딩 끝났어요.”
CD가 반짝였다.
그건 백설하와 소녀연맹의 영혼. 그녀들의 실존을 증명하는 첫 번째 퍼즐이었다.
백설하는 소녀연맹의 사랑을, 영혼을 손에 쥐었다.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술을 씹었다.
감격 때문에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참으려 했는데, 예상외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뭘까. 이 형언할 수 없는 따스함은. 가슴으로부터 혈관 끝까지 퍼져나가는 기쁨은.
‘아, 그래…….’
흔한 비유다.
아티스트는 부모이고 작품은 자식이라고.
그럼 이 행복은 출산의 기쁨과 비슷하지 않을까.
어머니는 자주 백설하나 다른 동생들을 품었던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너는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를 거야.’
특히 출산할 때의 고통은, 삶을 살면서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과속으로 결혼하셨다.
산통이 온 날, 아버지는 어머니의 곁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어떡해’란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그 순간 어머니는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는 모양이다.
아버지의 머리칼을 붙잡고 ‘나쁜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너 때문에!’라면서, 수 시간을 고통에 찬 비명만 쏟아냈다던가.
아버지는 묵묵히 머리칼을 쥐어뜯기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 백설하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곤 했다. 마치 자신이 어머니에게 고통을 준 것만 같아서.
‘그럼 나 있는 게 싫었어……?’
그럴 때면, 어머니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진한 온기가 서린 미소로 바뀌곤 했었다.
‘싫기는. 네가 태어나길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많이 아프긴 했지만…….’
백설하가 태어나, 손에 겨우 들어올 만큼 작은 생명을 볼 때, 어머니는 십수 시간의 고통마저 잊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백설하가 태어나면 자신이 울 줄 알았더랬다.
그런데 아니었다.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이.
‘그렇게나 행복할 줄 알았으면, 네 아빠 머리도 안 쥐어뜯었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생명.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놓았단 충만감은, 일국(一國)을 이룬 정치가나 세상을 호령한 황제와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한 행복에 눈물은 어울리지 않았다.
오직 웃음뿐이었다.
어머니에게 질리도록 들었던 그 이야기를, 백설하는 현재의 자신과 겹쳐보았다.
완전히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순 없겠지만.
‘엄마는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그래, 성필이 처음 ‘우리들의 프로듀싱’을 맡겼을 땐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었다.
프로듀싱 과정에 참여하면서는 매일 잠도 제대로 못 들 만큼 고통스러웠더랬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순간, 그녀는 창작 과정을 지배했던 모든 고통을 잊어버렸다.
오직 가슴을 채우는 충만감뿐이었다.
백설하는 CD를 가슴에 품었다.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박 이사님, 감사합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런 기쁨은, 어쩌면 평생토록 느껴보지 못했겠지.
백설하는 뒤로 돌았다.
창조를 함께 한 산파(産婆)들이 보였다.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함과 애정만이 느껴진다.
그녀가 가로 엔터의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레코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