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21화 (421/760)

421화

홍규헌이 단호히 결론을 내렸다.

“스타일에 신경을 쓴대도 하루 2,000만 원은 아니지.”

“그렇죠…….”

이유이의 야심 찬 하루 2,000만 원짜리 의상 계획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파토 났다.

그 상태로 음방 6주를 전부 돌면 의상비만 7억이다.

물론 소녀연맹의 의상이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나머지 팬을 십만 명 정도 유입시킬 수 있다면 남는 장사겠지만, 상식적으로 그럴 리 없으니까.

“근데 이유이도 그냥 찔러본 거지?”

“진심인 거 같던데요?”

“……진짜?”

홍규헌은 이유이가 팀장급이 되더라도 전권은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반드시 옆에 한구인이나 성필을 두어야 한다.

정말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가로 엔터의 곳간이 바닥날지도 몰랐다.

“그건 그렇게 하고, 박 이사.”

“예.”

“오늘은 야근해?”

요즘 홍규헌은 성필의 건강을 신경 쓰는 일이 잦았다.

컴백 시기가 다가올수록 그녀의 걱정도 늘어갔다. 혹여라도 옛날처럼 성필이 과로로 쓰러지면 안 되니까.

“야근은 아니고요. 오늘이 ‘더 언노운 싱어’ 방영일이잖아요.”

“백설하가 지는 거?”

“그거 애들이랑 보고 가게요.”

“뭘 지는 걸 같이 보고 그래. 백설하 창피하게.”

“에이, 오히려 축하하려는 거죠. 설하가 3연패했잖아요. 아이돌 출신 ‘더 언노운’ 최고 기록까지 닿았어요.”

“하긴 상대가 상대니까. 뭐어, 오늘은 일 안 한다니까 마음 놓이네.”

“사장님은요?”

“나는 권 경리 태워서 같이 가지.”

경리 권아인은 정말 홍규헌과 같이 살게 됐다.

성필이 권아인의 입장이었으면 아마 거절했을 것이다. 퇴근해도 퇴근하지 않은 기분 아닐까.

‘어? 그럼 오히려 이득 아니야?’

성필은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즐거우니, 어쩌면 그런 생활도 나쁘지 않을지도…….

“뭐어, 박 이사한테도 방 하나 내줄까?”

홍규헌이 슥 농담을 던졌다. 마치 ‘곤란해해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음기 넘쳤다.

“그래 주시면 고맙죠.”

하지만 성필도 한 장난한다.

“알겠어, 언제 올래?”

홍규헌도 물러나지 않았다.

“내일이라도 됩니다.”

“그래, 내일 짐 가지고 들어와.”

“감사합니다 사장님.”

“항상 고생이 많아.”

두 사람의 장난은 누구 한 명이 웃지도 않은 채 진지한 분위기에서 마무리되었다.

성필은 사장실을 나오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폰으로 달력을 확인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정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바쁘단 의미는 아니었다.

‘여유가…… 꽤 있네.’

‘우리들의 프로듀싱’은 옛날부터 준비해와서인지 일정이 상당히 널널하다.

‘직원이 늘어나니까 확실히 다르네.’

옛날 같았으면, 성필은 몸 하나로 모자랄 만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성필의 수족 같은 직원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성필에게 여유가 충분했다.

‘더블 타이틀은 충분히 할 수 있어. 일정이 밀리지만 않으면 가능해. 그리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우파루파 음방 무대 공개를 몇 주 미뤄도 되니까.’

그나마 걱정되는 건 일본 컴백과 준비 기간이 겹치는 것일까.

‘웨벡스에 말해서 컴백 예정을 한 달 정도 뒤로 밀어달라고 해야 할까. 2, 3주 정도 여유를 달라고 하면 되겠지. 좋아.’

계획은 완벽하다.

이 완벽한 이 계획으로…….

‘여름에 글로브와 만나는 건가.’

한쪽을 피를 흘려야만 한다.

물론 성필은 아직 글로브 멤버들에게 애정이 있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동정하여 어영부영 컴백을 넘어갈 수도 없다.

‘지금 내가 담당하는 건 소녀연맹이고, 충성을 바치는 건 가로 엔터야.’

성필은 승리를 거두어야만 한다.

아직은 소녀연맹 컴백의 윤곽이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승패를 점칠 수 있을 것이다.

‘윤상열, 넌 글로브가 풀하우스라고 했었지. 그러니까 우리와 붙는 건, 설령 우리의 패를 몰라도 도박이 아니라고.’

그런 자신감이 생길 수 있는 건 컴백을 옛날부터 꾸준히 준비해왔기 때문이리라.

‘나도 최선을 다할 거다. 설하를 믿어. 멤버들을 믿고, 우리 회사를 믿어. 우린 또 이긴다. 이전보다 훨씬 큰 성적으로.’

오늘은 승리를 위한 첫 장이 시작될 것이다.

윤상열도 오늘부터 알게 될 것이 분명하다. 소녀연맹이 진심으로 칼을 갈고 나왔음을.

‘슬슬 미리 가 있자.’

이제 퇴근 시간이다. 멤버들은 수십 분 후 1층 휴게 공간 앞 소파로 모일 것이다. 그곳에 텔레비전이 있으니까.

성필은 머리를 식힐 겸 미리 가 있기로 했다.

복도를 걷는 중, 성필은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새된 웃음소리를 들었다.

‘지금이 애들 저녁 먹고 쉴 시간이구나.’

성필은 살짝 열린 틈으로 안쪽의 상황을 보았다. 백설하를 제외한 멤버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조아라가 ‘진짜? 이거 진짜 아저씨라고?’라며 또 웃었다.

‘내 이야기인가?’

몰래 다가가서 놀려준 다음, 뭘 보고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성필은 구두를 벗은 뒤 손에 들고,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멤버들은 그가 바로 뒤에 올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성필은 멤버들이 꽤 놀라겠구나 생각하며 만족스레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천천히 멤버들이 모여 앉은 중심으로 목을 쭉 뺏다.

과연 뭘 보고 있을…….

‘어?’

그녀들이 모여서 보고 있는 건, 성필의 사진이었다.

신아름의 핸드폰에 성필의 사진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은 전에 찍었을 법한 사진이.

“얘들아?”

멤버들이 죽은 사람 목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거하게 놀랐다.

특히 신아름은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소녀연맹은 손발이 매우 잘 맞아서, 리카가 다리를 쭉 뻗어 떨어진 핸드폰의 화면을 가렸다.

성필이 리카의 다리를 치우고 핸드폰을 들었다.

“방금 아타시(저)의 종아리를 만지신 건가요! 한 이사님한테 건의하겠습니다!”

“이걸 왜 가지고 있어?”

“아니, 걍 연습하다가 옛날 생각나서요…….”

신아름은 봐달란 듯, 성필의 약점인 미안해하면서도 해맑은 미소를 띠었다.

“뭐라는 게 아니라, 놀라서 그래.”

“이거 진짜 아저씨예요?”

“응.”

옛날 돌판에는 어느 전설이 있었다.

다키스트 남자 팬이 존재한다는 전설이…….

“이거 나야.”

다키스트의 팬미팅 상황을 찍은 사진이었다.

다키스트가 선 무대 바로 앞에 어느 남자가 있었다. 뒤통수만이 찍혔지만, 짧은 머리와 건장한 체격 덕분에 남자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야, 그립네. 이때 서유선 씨가 ‘딩동댕 묵찌빠’ 추셨는데.”

“…….”

성필은 그리움이 듬뿍 담긴 아련한 표정이었다.

멤버들이 성필을 이상한 사람 대하듯 보았다.

상식적으로 남자가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경우는, 특히 팬미팅까지 갈 정도로 열성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돌 팬덤의 대부분은 여자이며, 여자가 걸그룹을 열렬히 좋아하는 건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남자가 보이그룹을 열렬히 좋아하는 건 이상하다.

흑백을 나누는 게 아니라, 희귀종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렵단 뜻이었다.

성필의 이 사진도 몇 년 전 인터넷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되었었다.

“아니, 왜요……?”

조아라는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아이돌의 팬미팅까지 간다는 건 보통 의미가 아니다. 게임으로 따지면 최종 콘텐츠까지 맛보았단 뜻이니까.

제작사가 내놓은 온갖 콘텐츠를 즐기며, 종결 아이템까지 맞추며, 최종 레이드까지 수백 번 클리어한 사람.

그게 바로 아이돌 팬미팅 참석자다.

“다키스트를 왜……?”

어떻게 남자가 보이그룹을 덕질하느냐.

아니, 성필이 보이그룹을 덕질한다고?

멤버들은 성필이 케이어스 덕질을 어떻게 하는지 보아왔다. 그것에 다키스트를 대입하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양성애, 악!”

성필이 리카의 정수리에 콩 주먹을 먹였다.

“너희 좋아해 주시는 여자 인민이들한테 사과해.”

“남자가 보이그룹을 좋아하는 건 전혀 다른 얘기예요!”

“아니, 당연히 내가 걸그룹 좋아하는 거랑 느낌이 다르지.”

아이돌을 좋아하는 형태는 여러 가지다.

아이돌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

아이돌의 퍼포먼스와 곡에만 흥미가 있는 사람.

아이돌을 연애 감정으로 좋아하는 사람.

아이돌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아이돌 팬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아이돌의 기획사를 좋아하는 사람.

아이돌의 캐릭터를 분석하길 좋아하는 사람.

아이돌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

그냥 돈 쓰고 싶은 사람.

흔히 ‘빠돌이’, ‘빠순이’란 단어로 뭉뚱그려 표현되는, 광적인 애착을 지닌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여느 콘텐츠들과 같이 다양한 즐기는 법이 있다.

“나는 보이그룹을 덕질하면, 성장 서사를 좋아해. 그래서 데뷔할 때부터 좋아한 그룹이 아니면 거들떠도 안 봐.”

“내가 왜 박 이사님이 남자 좋아하는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

장하양이 갑자기 그리 말했다.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입 밖으로 낸 모양이다.

성필은 더 들어보란 듯 손을 저었다.

“무대 하나하나마다 ‘나 진짜 잘해봐야겠다’란 의지가 보이거든.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소중해. 물론, 연차가 쌓여서 대충 추는 게 보이면 슬퍼지지…….”

장하양은 신아름을 쳐다보았다. 옛날부터 이런 사람이었냐고 묻는 듯했다. 신아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부터 이런 사람이었다고.

“걸그룹이라서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정말 아이돌이면 다 좋아하시는 거네요!”

“오, 리카. 이해해주는구나.”

“아뇨! 그럼 박 이사님은 갤러리에 남자 사진을 넣어두고 보면서 좋아하시는 건가요!”

“나도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그렇게까지 몰입할 순 없어…….”

그때 성필의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오, 마침 잘됐다. 어떤 느낌인지 보여줄게.”

장하양은 불안하게 성필의 핸드폰을 보았다.

[뷔라이브: 시에이스 규영의 라이브가 시작됐어요!]

“남돌 뷔라이브 알람 설정까지 돼 있어?!”

실제로 성필이 보이그룹에 관심 있는 것을 본 멤버들은 아까보다 더 경악했다.

“오, 아저씨 시에이스 덕질해요?”

조아라가 은근 반가운 투로 물었다.

그녀는 데뷔 전 ‘어떤 아이돌 컨셉이 좋아?’란 질문에 시에이스의 무대 영상을 보여준 적도 있었다.

“어, 음, 아니.”

“네? 근데 왜 규영 선배 뷔라이브 알람 돼 있는데요?”

성필이 침묵을 지켰다.

심상찮은 기운을 감지한 멤버들이 성필을 둘러쌌다.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가선 안 될 일이란 예감이 들었다.

성필이 뒤늦게 변명했다.

“예, 옛날에 아라가 규영 씨한테 쪽지 받은 거 아니냐고 오해했던 적 있잖아. 그래서…….”

“……그래서?”

조아라가 희미한 흥분을 담아 물었다.

“뭐, 나 감시하려고 알람 받았다고요? 으하핰! 뭔데 아저씨 의심 개많아!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도 그걸 아직까지 신경 써요?”

“당연히 의심은 진작 접었지.”

“그럼요?”

“보다 보니까 애가 괜찮더라.”

조아라의 표정이 확 썩었다.

성필은 규영의 라이브를 켰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규영이 팬들에게 나른히 인사를 전했다.

[저녁 먹을 거예요. 초밥요. 연어 초밥.]

규영이 배달 온 용기를 들어 연어 초밥을 보여주었다.

“규영 씨는 배달 음식으로 연어 초밥만 드셔. 그것도 한 예닐곱 개 집어 드시다가, 나중엔 밥은 빼고 연어만 골라서 드셔. 욕망에 져서 배달시켰지만, 식단 관리 때문에 단백질이 풍부한 연어 초밥만 시키는 거야. 그걸로 죄책감을 없애려는 거지. 벌써 연차가 쌓여서 아이돌 중 꽤 선배인데 아직도 자기관리에 열심이셔. 대단하지? 항상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내가 아니라 아저씨가 규영 선배한테 관심 있구만.”

[‘더 언노운 싱어’요? 아뇨, 노래 경연 프로그램은 안 봐요. 아, 그래도 소녀연맹 설하 씨? 나왔다면서요. 회사 분들이 말하던데요.]

“아타시(나) 충격받았어. 이거 뭐야?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정체 안 밝혀졌다고요? 어떻게 아냐니. 아니…… 크흨, 목소리 들으면 다 알죠. 아아, 오늘이 설하 씨 방어전이에요? 그렇게 관심 많은데 제 방송 보고 계셔도 돼요?]

“야, 너희들 그만해.”

신아름이 시무룩해진 성필을 감쌌다.

“팀장님이 뭘 좋아하든 뭔 상관이야? 그게 너희들한테 피해 주냐? 왜 팀장님 기죽이고 그래.”

“아름아아…….”

“팀장님 뚝 그쳐요.”

“안 울었…….”

“난 팀장님이 뭘 좋아해도 절대 욕 안 하고 계속 옆에 있을게요.”

“아타시(나)도!”

“에비 에비, 리카 저리 가. 너 팀장님 계속 욕했잖아.”

“지가우(아냐)! 아라쨩한테 맞춰준 거야! 박 이사님 믿어주세요!”

“여기서 날 걸고넘어진다고?”

“암튼 너희들.”

신아름이 으름장을 놓았다.

“자꾸 팀장님이 편하게 대해준다고 이렇게 버릇없이 굴지 마.”

신아름이 정상적으로 반론하자, 멤버들은 입이 열 개로 모자랐다.

남자가 보이그룹을 덕질한다는 사태를 처음 보아서 너무 놀란 나머지, 성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낮잡아 보거나 모욕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도 그럴 권리는 없으니까.

“고멘나사이(죄송합니다)…….”

“뭐, 아저씨 미안해요. 딱히 나쁘다곤 생각 안 했어요…….”

“아하하…… 너무 놀라서……. 그러고 보면, 다른 걸그룹 좋아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얘들아, 고마워…….”

[그쵸. 여러분 고마워요. 그럼 예능은 다시보기로 보시고, 지금은 저랑 같이 저녁 먹고 얘기해요. 계속 봐주실 거죠?]

띠링.

[뷔라이브: 케이어스 진저의 라이브가 시작됐어요.]

“…….”

“…….”

“…….”

“…….”

멤버들의 눈이 성필의 손으로 향했다. 그의 손이 어떻게 움직일지,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찰했다.

성필은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규영의 라이브를 끄고 진저의 라이브로 이동했다.

[‘유스’들 오랜만임미다. 예, 예, 안녕하심미까. 다들 안녕함미다. 저녁은 샐러드랑 미트볼 스파게트 먹었슴미다. 참고로 샐러드엔 드레싱 안 뿌렸슴미다. 미트볼 스파게티 소스도 희멀건하고 간 거의 없는 거 뿌렸슴미다. 체중 관리 때문임미다. 너무 괴롭슴미다. 일 대충 하고 돈 많이 벌고 싶슴미다.]

“헤헤, 진저 씨 귀엽당.”

“아니 좀 망설이는 척이라도 해봐요 쫌!”

“그치만, 그치만……!”

성필이 처절하게 외쳤다.

“케이어스를 라이브 거의 안 해준단 말야! 일주일에 한 번이면 많은 거란 말야! 지금 안 보면 못 봐아아아아!”

멤버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곤, 조아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양 언니 말이 맞네요. 여돌 안 보고 남돌 보는 게 차라리 낫네.”

“아하하, 케이어스 뒤졌다. 소녀연맹이 섬머퀸 타이틀 쥐고 케이어스 커리어 나락으로 박는다.”

“언니?!”

* * *

‘멤버들이랑 같이 노는 건 오랜만이네.’

노는 거라지만, 다 함께 ‘더 언노운 싱어’를 보는 것일 뿐이다. 심지어 회사에서.

하지만 백설하는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한단 게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요즘은 다들 바빠서, 숙소에서 리카가 걸핏하면 권하던 보드게임도 함께 하지 못했으니까.

‘과, 과자 조금 사 왔는데 박 이사님이 뭐라고 하진 않으시겠지?’

편의점 과자 코너에서 30분을 고민하며 칼로리가 가장 낮은 것 세 봉지를 사 왔다.

백설하는 1층 휴게 공간 소파에 앉아 멤버들이 오길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됐다.

‘애들이 늦네. 박 이사님도.’

10분이 지났음에도 다른 이들은 나타날 기미가 안 보였다.

백설하는 퇴근하는 이들에게 인사하는 것 외엔 할 일도 없었다.

혹시 다들 잊었나 해서 단톡방에 언제 오냐고 물어보았다. 몇 분이 지나도 읽는 사람이 없었다.

‘……나 혼자만 기대한 거야?’

다들 벌써 잊어버린 거야?!

그때 2층 계단에서 멤버들과 성필이 내려왔다. 백설하는 죽던 와중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방금까지만 해도 일그러졌던 얼굴이 확 펴졌다.

“와, 왔구나!”

“설하야 미안. 좀 일이 있어서.”

“아, 아녜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필과 멤버들이 오순도순 자리를 잡았다.

백설하는 텔레비전과 가장 가까운 앞에 있었기에, 뒤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했다.

다른 멤버들은 성필을 타박하듯 여기저기를 팔꿈치와 손으로 쿡쿡 찔러댔다.

“저, 그런데 왜 늦으셨어요? 애들이랑 뭐 하셨어요?”

백설하가 돌아보자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집단 괴롭힘이 멈추었다.

성필도 시치미를 뚝 뗐다.

“아이돌 관련 얘기 하다 보니 시간을 못 봤어. 미안, 많이 기다렸지?”

“아녜요 저도 방금 왔어요! 아, 얘들아 나 과자 조금 사 왔거든. 이사님 괜찮을까요……?”

성필은 백설하가 산 과자의 칼로리를 확인했다.

“괜찮겠네. 입이 심심하면 안 되지.”

“헤헤, 감사합니다. 아, 에리카한테 톡 왔어요. 잘 보고 있대요.”

케이어스의 이야기가 나오자 성필이 움찔했다.

“이번에도 파이팅…… 헤헤, 에리카가 응원해주는데 미안하네요. 이번엔 지는 거 나올 텐데.”

“그게 무슨 소리야. 삼 연승만 해도 기립박수 받고도 남아.”

프로듀싱 일정이 바빠 우스갯소리로 ‘패배를 알고 싶다’라 말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사 연패를 달성하여 아이돌 출신 ‘더 언노운’ 기록을 깨고 싶었다.

성필의 말마따나 대단한 기록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살짝 아쉽다.

“아, 이제 무대 나오려나 봐요.”

멤버들이 화면 안의 백설하에게 집중했다.

성필도 그러했다.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시작이다.’

현재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퍼포먼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노래도 잘 부르는 귀여움 천재’.

인터넷에 검색만 해보아도 귀여움 천재가 백설하란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는 건 아예 다른 이야기다.

백설하가 귀여움 천재임이 밝혀지면, 그 인지도와 인기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성필은 이 상황에 집중했다.

‘소녀연맹의 비상을 알리는 신호탄.’

백설하가 그랬던가? 국민적인 인지도를 가진 곡을 만들고 싶다고.

‘한국의 외딴 산골까지 설하의 명성이 전해질 때까지, 알리고 또 알린다.’

성필이 백설하의 바람을 이루어줄 것이다.

그리고.

‘윤상열, 똑똑히 봐라.’

소녀연맹과 컴백 시기를 맞추는 게 도박인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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