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13화 (413/760)

413화

조아라는 러닝머신을 싫어한다.

멤버들과 짐에 가서도 유산소 운동 시간만큼은 전혀 즐겁지 않다. 시간을 버리는 기분이다.

살 같은 건 춤 추다 보면 빠지는데, 왜 굳이 따로 달리기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트레이너가 시키니 한다.

‘20분.’

시간을 정해두고 달린다.

달리기 시작하고 3분에서 7분 사이가 정말 괴롭다. 분명 익숙한 일일 텐데 호흡이 진정되지도 않고, 다리는 무겁고, 괴롭게 시계만 본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가면 마법처럼 언제까지고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이 몸이 편해진다.

그 상태로 20분을 무리 없이 달린다.

이게 평소의 자신이다.

‘속도를 올릴까?’

러너즈 하이라고 한다.

달리는 사람이 괴로움을 호소하다가 어느 지점을 넘으면 고통이 사라지는 현상.

조아라는 생각한다.

그런 게 있다면, 속도를 높이더라도 후반이 된다면 안 괴롭지 않을까.

직접 해보면, 그렇지 않다. 본인의 능력을 넘어선 속도로 달리면 20분을 채울 수가 없다.

여느 때보다 ‘Stop’이라고 적힌 버튼이 커 보인다. 그 옆에는 속도를 조절하는 버튼이 있다.

조아라는 헐떡이면서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기보다 ‘Stop’으로 손을 가져간다.

‘그만하자.’

전신으로 괴로움이 내달리며, 폐가 쥐어짜이는 듯하고, 목구멍이 바싹바싹 마르는 감각.

‘어차피 달리는 건 서투르니까.’

그리 생각하며, 조아라는 더 버티지 않고 ‘Stop’을 누른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조아라는 연습실로 돌아가는 대신 도망쳤다. 더는 못 버틸 것 같아서, 멈추지 않으면 굴러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조아라는 성필과 함께 도망쳤다.

* * *

성필은 조아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항하지 않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밥을 사준다기에 어디로 갈까 싶었는데, 도착한 곳은 샐러드 가게였다.

“아라가 처음 사주는 음식은 샐러드네.”

키오스크로 능숙하게 주문하던 조아라는, 성필이 그리 말하자 ‘아’ 소리를 냈다.

그녀가 미안한 듯 성필의 눈치를 보았다.

“그르네. 아저씨한테 처음 사주는 건데. 다른 데 갈까요?”

“아냐. 나도 샐러드 좋아해.”

“진짜요?”

“체중 관리 때문에 여기 온 거잖아. 난 또 피자 같은 거 먹으러 가는 줄 알고 쫄았었어.”

“당연하죠. 나 프로잖아요.”

“이야, 다른 사람이 먹고 싶은 건 하나도 신경 안 쓰는 마이웨이 아라 멋지다!”

“비꼴 거면 다른 데 가자고요!”

조아라가 성필을 쓰러뜨리려는 것처럼 손바닥으로 밀었다. 성필은 전혀 흔들림 없이 버텨 서서 웃기만 했다.

둘은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왔다.

2인용 테이블이 대부분인 가게는 한산했다. 점심 시각이 지났으니 당연했다.

카운터 뒤로, 느긋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천천히 샐러드를 만드는 직원들이 보였다.

“아라…….”

그때 성필의 핸드폰이 울렸다.

[설하: 이사님 아라랑 같이 있으세요?]

[설하: 직원분들이 아라가 이사님이랑 같이 나갔다고 하셨어요.]

[설하: 아직 일 안 끝나셨나요?]

성필은 프로듀싱 설명회 촬영 때문에 잠시 조아라를 빌려왔었다.

조아라는 연습하러 돌아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런데도 돌아오지 않으니 리더인 백설하 입장에선 애가 탈 것이었다.

‘역시 아라가 애들한테 말없이 도망간 거였구나.’

굳이 백설하에게 연락받지 않고서도 그런 것쯤은 눈치챘다.

예를 들어, 지금.

조아라는 핸드폰을 바라보는 성필을 초조한 눈빛으로 관찰하는 중이었다. 회사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성필에게 혼나리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성필: 아라랑 볼일 있어서 잠시 나왔어. 한 시간 정도 걸려. 미안.]

[설하: (다람쥐가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이모티콘)]

성필은 오랜만에 겪는 사태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이돌이 연습하다가 도망갔다…….

‘우리 애들이 이럴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네. 워낙 성실하게 잘해줘서.’

오히려 이런 일이 생긴 게 늦었다고도 할 수 있으리라.

소녀연맹은 서로 힘을 합쳐 많은 고난을 이겨내 왔다. 힘들 때도 서로를 지탱해주며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다.

꿈에서 그린 것만 같은 드림팀이다.

‘하지만 사람이 모인 집단이니 균열이 없을 수가 없지.’

전생의 석세스 엔터에선 워낙 연습생과 아이돌이 많았던 터라, 이런 일이 잦았었다.

아예 모든 연락과 일정을 씹고 도망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연습을 빠지는 이들은 있다.

또 지각하는 이들도 꽤 있다.

연습 시간인데도 세월아 네월아 시간만 보내는 이들도 있고 말이다.

회사와 같다.

모든 직원이 근무시간에 온전한 집중력을 유지하며 일만 하진 않는다.

아이돌과 연습생도 마찬가지다.

“주문하신 연어 샐러드 두 개 나왔습니다.”

“내가 가져올게요.”

성필의 눈치만 보던 조아라는 잘됐단 듯이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조아라가 샐러드 두 그릇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고, 식사가 시작됐다.

조아라는 포크를 몇 번 움직이더니 먹는 속도가 확연히 느려졌다. 밥을 먹은 지 얼마 안 됐으니 안 들어갈 만도 했다.

“아저씨.”

조아라는 성필을 불러놓곤 입을 꾹 다물었다.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제대로 된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이 말을 할 때가 아니라고 느꼈는지, 아니면 해선 안 될 말이라고 느꼈는지, 명백히 원래 하려던 이야기에서 몇 걸음 떨어진 주제를 꺼냈다.

“‘우리들의 프로듀싱’ 있잖아요.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왜?”

“뭔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우리들한테 프로듀싱까지 시키려는지 궁금해서요.”

“부담돼?”

조아라는 ‘롱 포’ 때도 멤버들이 낸 의견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불안해했었다.

만약 멤버들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앨범이 실패하면, 그 책임 또한 멤버들이 지게 되니 말이다.

“사람이면 부담되죠. 지금까지 잘해온 방법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조아라가 한숨을 쉬면서 포크를 놓았다. 뱃속에 음식이 안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출산율 때문이야.”

“…….”

조아라가 귀 파는 시늉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는 듯 눈을 끔뻑이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뭐요?”

“아라야, 아이돌의 주요 소비층이 어디야?”

“나이면, 10대랑 20대요.”

“아이돌은 한국 음악 시장의 주류지만, 근본적으로는 10대와 20대에게 소구(訴求)해. 그런데 우리나라 출산율이 점점 떨어지잖아. 시간이 흐르면, 짧게 잡아 10년만 지나도 아이돌 기획사의 수입은 급감할 거야.”

“뭐 얼마나 줄었는데요?”

“너 태어났던 해의 2/3보다 더 줄었지.”

“그만큼이나요?”

조아라는 ‘출산율’이란 대답에 충격받았던 것도 잊어버리고 어느새 성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앞으로는 더 떨어질 거야. 그러니까, 국내를 한정하자면 말야.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이돌의 무결성과 심미성, 캐릭터성에 10대와 20대가 열광한다면. 그 이상의 나이대를 끌어들이는 방법은 뭘까 하는 거지. 나는 그게 서사와 인간성, 아티스트십이라고 생각해.”

기획사가 만들어낸 때 묻지 않은 테마파크, 즉 아이돌에 30대 이상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성필은 아이돌이란 포맷을 유지한 채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길 바라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미래는 두 개야. 계속해서 글로벌적인 영향력을 유지해서 발전하는 것, 혹은 발전에 실패해서 소수 팬층에게만 호소하는 마이너 문화로 남는 것.”

10년, 20년 후 한국 20대 이하의 인구가 현재의 절반으로 떨어진다면.

통계적으로 생각해도 아이돌 기획사들의 국내 수입은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다.

기획사들이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선, 줄어든 팬층을 2배 이상 빨아먹을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야 할 텐데.

그게 정상적인 상황일 거라고 상상할 순 없다.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일본 아이돌 업계를 따라 변화를 추구하겠지.

멤버별 앨범 판매량에 따라 포지션을 정하고, 곡 파트를 배분하며, 방출하기도 한다. 회사는 팬들이 돈으로 최애 멤버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도록 유도할 것이다.

그룹 내에서 경쟁 시스템을 만들면, 일본에서 익히 증명되었다시피 막대한 수익을 얻어낼 수 있다.

성필은 그런 건 보기 싫었다.

“30대 이상에게도 호소력이 있을 것. 그리고 글로벌적인 영향력을 계속해서 유지할 것. 난 이 근원을 아티스트십이라고 판단하고 있어.”

성필은 쑥스럽단 듯 웃었다.

“난 아이돌이란 문화가 더 오래 갔으면 좋겠거든. 그래서 고군분투하는 거지. 나랑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겠고,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정호환과 같은 이도 존재한다. 그는 아이돌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단 성필의 주장에 회의적이었더랬다.

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었다. 이룰 수 없지만 멋진 것이라고.

성필은 그때 정호환에게 이렇게 반박하고 싶었다.

‘정 이사님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하실 때, 노래와 춤과 외모가 전부 수준급인 뮤지션이 그룹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준 사람도 없었잖아요.’

정호환도 성필과 같이 꿈을 꿨던 인물이었다. 이제는 그 꿈을 이뤄낸 게 성필과 다른 점이지만 말이다.

그런 우상에게 자신의 꿈이 부정 받았던 경험은, 성필에게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와.”

성필이 말을 마치자 조아라가 짤막하게 감탄을 뱉었다.

“난 아저씨가 뭔 병 걸려서 우리한테 자꾸 이상한 사상 주입하는 줄 알았어요.”

“……뭐, 뭐? 병? 병 걸려?”

“근데 훨씬 거창한 목표가…… 아니다.”

조아라가 헤실헤실 웃었다.

“훨씬 대단한 목표가 있었네요.”

성필은 조아라가 말한 ‘대단한 목표’란 단어에 심장이 아파 왔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이상향을 추구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성필은 프로듀서로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니까.

아이돌의 비주얼, 춤, 노래, 퍼포먼스, 거기에 더해 성필은 새로운 상품 제조 방식을 확립하고자 한다.

‘아이돌의 주체적인 성장과 그 서사.’

아이돌의 주체성과 성장마저도 상품으로 확립할 수만 있다면, 이 업계는 새로운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조아라가 감탄하는 것처럼, 성필은 순수한 꿈만 꾸는 건 아니었다.

“10년 뒤에 이 업계 망할 거니까 어떻게든 수명 연장해 보겠단 거잖아요.”

“10년 뒤에도 완전히 망할 거 같진 않은데…….”

“아이돌의 뭐가 그렇게 끌려요?”

“넌 그것도 모르고 아이돌 하고 있어?”

“알죠.”

조아라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단발을 부드럽게 뒤로 쓸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브이를 그리고 자신의 턱에 가져다 댔다.

“아름다움?”

“쓰읍…….”

“또 하양 언니나 리카 들먹이면서 내 외모 깎아내리기만 해요.”

“아니, 너 진짜 웬만한 남돌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잘생겼구나 싶어서.”

“칭찬이에요?”

“칭찬이지. 이거 봐. 뭔 만화 캐릭터처럼 외곽선이 굵직해. 혼자만 만화에서 튀어나왔어.”

“그거 내 뒤가 창이라서 역광 드는 거잖아요.”

“아, 그렇구나. 배우…….”

성필은 뭔가 말하려다가 급히 입을 막았다. 하지만 조아라는 들었다.

“배우요? 뭐, 나 배우 해봐요?”

“아…….”

“뭔데. 진짜요? 나 진짜 배우 해봐요? 나 아이돌 말고 배우 아우라도 있나?”

“아니, 배우, 닮으신 분 떠올라서.”

“누군데요?”

“유지성 님.”

남자 배우였다.

조아라의 표정이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이랑 한은하 님.”

“이 아저씨 뭐래!”

조아라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상체를 낮추며 속삭이듯 말했다.

“딴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 하지 마요. 누가 들으면 창피해서 죽어요.”

“그래. 나도 진심은 아니었…….”

“쪼오금 닮았나? 살짝 보이긴 하죠?”

조아라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성필이 애매하게 웃자, 조아라는 뭐가 만족스러운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포크를 들었다. 다시 식욕이 돋은 듯했다.

“오늘 어울려줘서 고마워요.”

“아라가 고맙단 말도 하네. 너도 성장했구나.”

“쫌 힘들어서요.”

그러리라고 생각했다.

힘들거나 고민도 없는데 연습을 땡땡이치고 도망가는 거면 인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니까.

“그래도 아저씨 위해서 힘낼게요.”

“날 위해서?”

“아이돌 산업 수명 연장을 위해!”

모든 음악 장르와 포맷은 흥망성쇠가 존재한다. 최초의 대중음악이라고 불리는 재즈도 그러했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록도 그러했다.

한때 서구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걸그룹과 보이밴드도 결국 몰락했다.

언젠가 케이팝 아이돌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일렉트로닉과 댄스 팝도 쇠퇴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이돌이란 포맷 자체가 몰락할지도 모르고.

“내가 쫌만 참을게요.”

성필은 조아라의 당돌한 선언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기쁨에서 나온 웃음이었다.

“아직 수명 연장 운운할 단계는 아닌데.”

적어도 성필이 회귀하기 직전까지, 케이팝 시장 규모는 매년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었으니까.

“지금이 황금기야.”

“아니죠.”

조아라가 쯧쯧 혀를 차며 손가락을 저었다.

“우리가 탑에 오를 때가 황금기죠.”

문득 성필은 콘서트 VCR 촬영 때가 떠올랐다. 그때 조아라가 이리 말했던가. 성필과 같은 꿈을 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조아라가, 소녀연맹이 탑의 위치에 오르는 순간은 그녀들이 최고의 아이돌이 될 때일 것이다.

그때가 케이팝의 황금기일 거다, 라고…….

“아라야.”

“네.”

“이제 5년 남았어. 5년 동안 우리 둘 다 힘내서 해보자.”

“5년이나요? 5년이나 더 아저씨 얼굴 봐야 해요?”

“뭐 5년 지나면 안 보게?”

“봐야죠. 음, 아이돌 그만두면 배우나 해볼까?”

“연기도 안 배운 애가 배우는 어떻게 하게.”

라고 말하는 성필은, 조아라가 연기에 꽤 소질이 있단 것을 알았다.

전생에서 그녀는 배우로 작품에 출연한 적도 있으니 말이다.

“걍 해본 말이에요.”

그리 말하는 조아라는, 처음 성필을 잡아끌고 도망갈 때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적어도 얼굴 가득 쌓여 있던 괴로움과 고민은 사라진 듯했다.

“그럼 뭐, 아저씨가 적당히 정해줘요.”

“적당히 정해줘? 뭔?”

“어? 최고의 아이돌이 재계약해 준다는데 그런 식으로 반응하기에요?”

“벌써 된 거야?”

“5년 뒤의 나는 됐겠죠.”

“그럼 절하면서 받아야지.”

“그래야죠. 뭐…… 5년보다 더 오래 보겠네요.”

조아라가 연어를 씹으면서 성필을 보았다. 무언가를 먹으면서도 그녀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정말 만화 캐릭터처럼 윤곽선이 뚜렷한 얼굴이다. 마치 그녀에게만 효과가 덧칠해져 있는 듯했다.

* * *

조아라가 연습에서 도망간 지 약 1시간 30분이 됐을 무렵, 그녀가 회사로 복귀했다.

그녀는 연습실 앞에서 몇 번 심호흡을 하다가 문을 열었다.

리카와 신아름은 다른 트레이닝이 있는지 자리에 없었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백설하와 장하양뿐이었다.

“아라 왔어?”

장하양이 싱긋 웃으며 조아라를 반겨주었다. 조아라는 머쓱하게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

“아라야.”

등을 돌린 백설하가 조아라를 불렀다.

백설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일부러 무게를 잡으려는 듯 톤을 깔지도 않았고, 칼로 베듯이 날카로운 어투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거울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가 냉정할 따름이었다. 거울이란 필터를 거치고도 백설하의 눈빛에 달라붙은 서리가 녹지 않았다.

“너 때문에 트레이너쌤 오셨다가 그냥 가셨어.”

“…….”

“말이라도 할 수 있었잖아. 오늘은 힘들다, 못 하겠다, 한마디라도 할 수 있잖아.”

조아라는 입을 열었다가, 힘없이 닫았다.

백설하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쌤한테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차라리 이렇게 혼나는 편이 나을 지경이다.

조아라 스스로 ‘힘들다’거나 ‘못 하겠다’고 말할 바에, 땡땡이쳐서 백설하를 실망시키는 편이 백배 천배 낫다.

조아라가 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백설하는 본인의 목표를 하향 조정할 테니까. 조아라는 사랑하는 언니의 목표와 꿈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죄송합니다.”

차라리, 그냥 버릇없는 아이가 되는 편이 나았다.

조아라가 고개 숙여 사과하자, 지켜보고 있던 장하양이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조아라는 묵묵히 그 포옹을 받아들였다.

거울 속에 비친 백설하가 조아라를 나무라듯 눈꺼풀을 반쯤 내렸다. 조아라는 더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내가 쫌만 더 참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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