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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404화 (404/760)

404화

“섹시라니?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겠단 뜻이야? 아예 가사에서부터 곡 분위기까지 전부?”

성필이 심각하게 묻자 백설하도 당황하여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저, 저두 이젠 그런 거 안 통한단 거 알아요…….”

백설하가 아이돌을 좋아하게 된 건 2세대 아이돌이 부흥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사실상 그녀는 1세대를 제외한 케이팝의 역사를 산증인으로서 봐 온 것이다.

한때 ‘삼촌팬’이라고 불렸던 팬덤을 위시하여 강세를 떨쳤던 섹시 컨셉은, 걸그룹 3세대에 이르러선 거의 사장되었다.

“일단 비주얼적으론요.”

백설하는 폰에 저장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여름을 연상시키는 시원한 하늘색 빛깔의 핫팬츠와 크롭 스타일의 패션 화보들이었다.

그제야 성필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저희는 뭐랄까, 일상복다운 일상복을 무대 의상으로 가져간 적이 없잖아요.”

“그렇지. 제복 같은 맞춤 의상이 메인이었지. 캐주얼한 스타일이래도 조금 무거운 느낌이었고.”

“그리고 또…….”

백설하는 다음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미국 틴 드라마에 나올 법한 치어리더들의 복장이었다. 하늘거리는 치마와 산뜻한 색의 상의가 눈에 들어왔다.

“치마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소녀연맹은 치마는 많이 안 입었으니까.”

성필은 백설하가 레퍼런스로 찾은 의상들을 다시 한번 쭉 훑었다.

이제 백설하가 말하는 ‘섹시’의 정의를 알 수 있었다.

“저희 멤버들이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잖아요. 이걸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하양이만 해도 근육으로 화제가 돼서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라갔었잖아요.”

“확실히, 우리 애들은 단순히 아이돌리시하게 마른 것 이상의 매력이 있지.”

백설하가 예시로 든 옷들이라면, 멤버들에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것이다.

지금까지 소녀연맹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신체적 노력을 자랑스레 펼칠 기회가 없었다.

그녀들의 의상은 소녀연맹 세계관에 맞아야만 했고, 신체적 매력은 그녀들의 세계관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니까.

“개인적으로 포부가 있어요.”

“어떤 거?”

백설하가 다부지게 말했다.

“진짜 대중음악 한번 해보고 싶어요.”

“진짜 대중음악? 아…….”

성필은 백설하의 이야기를 단번에 캐치했다.

3세대에 이르러 보이그룹들은 점점 대중적인 노선에서 떨어져 갔다.

대신 팬덤과 케이팝 팬을 겨냥한 음악적 성과에 치중했다. 쉽게 말해, 그들만이 소비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보이그룹 팬덤은 충성심이 높으니까. 그리고 케이팝 팬 대부분은 여자이니, 보이그룹의 음악이 팬덤화되는 경향은 상업적으로 옳았지.’

보이그룹의 음악은 대중과 멀어졌지만 상업적으로는 걸그룹과 비교 불가능한 성공을 이룩했다.

아마 장기적으로는 케이팝 전체 팬의 파이를 줄이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게 나쁜 결과만을 내지는 않았다.

보이그룹은 충성도 높은 팬에 기대어, 대중만을 바라보았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음악적 혁신을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으니까.

폭력적이라고 표현할 법한 음악적 도전과 변화들은 역설적으로 해외 팬을 유입시켜 케이팝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녀연맹도 그랬어.’

3세대가 지나면 걸그룹의 팬들도 보이그룹의 팬덤처럼 견고한 응집력과 충성심을 보인다.

소녀연맹도 그런 시류에 올라타 ‘롱 포’나 ‘아라베스크’처럼 퍼포먼스적으로 도전적인 곡들을 선보일 수 있던 것이다.

게다가 대중적으로도 성공했으니, 그야말로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백설하는 그러한 방향에서 한 번 꺾길 바라고 있었다.

“차트 1위 하는 음악?”

“그, 그렇게 말씀하시면 좀 속물적이긴 한데요…….”

“차트 1위 하고 싶다는 게 뭐가 속물적이야. 성공하고 싶단 거잖아. 음, 그럼 설하가 생각하는 ‘진짜 대중음악’은 뭐야?”

“제가 아직 학생이던 때는 그런 곡들이 있었어요.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아이돌 노래들요. 그런 걸 만들고 싶어요.”

“편하게 들을 수 있고 중독성 강한 노래들 말이지.”

“너무 가벼운 건 말구요.”

“음악적 완성도와 세련됨도 보장하면서, 중독성도 있고 대중 친화적이며 히트까지 할 곡이라고?”

적어도 성필은 그런 노래를 거의 떠올릴 수 없었다.

백설하는 프로듀서인 성필이 어떤 의견을 줄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성필의 입술만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성필이 말했다.

“그러니까, 설하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싶다는 거네? 설하 어렸을 때처럼, 전 국민이 부르는 노래를 만들고 싶단 거.”

“네, 네에. 안 될까요……?”

“안 되지.”

“아…….”

“옛날에 그게 가능했던 건, 텔레비전 미디어가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이야. 단 하나의 창구로 문화가 전달되니, 하나가 히트하면 국민들한테 퍼져나갔던 거지.”

현재는 문화 권력이 텔레비전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온갖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에 분산되어,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당장 우리 회사 직원들 다섯 명만 뽑아서 아이튜브 추천 영상들 확인해 봐. 전부 다 관심사랑 보는 게 달라. 그리고 자기 관심사와 관련된 것들만 보는 거야. 어쩌면 영원히.”

뉴미디어의 발달은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하도록 만들어주지 않았다.

알고리즘이란 것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기만의 벽에 갇혀서, 항상 본인의 취향에만 일치하는 관심사만을 향유한다.

“그러니까 국민적인 히트란 게 가능하려면…….”

시무룩해져 있던 백설하가 귀를 쫑긋 세웠다.

설마, 방법이 있나?

“음원 차트 1위에 두 달 이상은 걸려 있어야지.”

“……두 달 이상요?”

“그 정도면 진짜 국민적인 인지도를 가진 노래일 거야.”

“당연하잖아요…….”

“내가 하려는 말은, ‘국민적인 인지도를 가진 노래를 만들고 싶다’란 목적으로 곡을 만들 순 없단 거야.”

“아.”

“설하야, 곡을 만드는 데는 인기를 얻는 게 목표가 되어선 안 돼. 좋은 곡을 만드는 게 목표가 되어야지.”

백설하가 고개를 주억였다.

“앞뒤를 헷갈렸었네요…….”

“그래. 하지만 ‘진짜 대중음악’이란 말은 울림이 있었어.”

백설하는 아이돌계의 어두운 부분을 지적한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걸그룹이 살아남기 위해선 대중들에게 알려져야만 했었다.

하지만 현재의 걸그룹은 선배들이 물려준 ‘팬덤화’라는 유산을 누리고 있다.

케이팝 팬 자체의 파이가 커졌기에, 그들만 만족시켜도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시장이 고여. 대중적으로 히트했던 영화 프랜차이즈가, 결국에는 고인 팬덤만을 위한 시리즈만 만들게 되는 것처럼.’

물론, 팬덤을 위한 노래든 대중을 위한 노래든 결과적으로는 좋은 노래를 목표로 한다.

둘은 다른 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게 들어주는 곡을 만들고 싶다’는 백설하의 바람도 헛된 게 아니다.

“좋아, 그럼 곡부터 찾으러 가볼까?”

“넵!”

“아님 비주얼부터 고려해볼까?”

“네?”

“그것도 아니면, 설하는 컨셉부터 설정했으니 가사 키워드를 찾아볼까?”

“네, 네……?”

성필이 싱긋 웃었다.

“프로듀서 설하 씨, 뭐부터 해보실래요?”

그제야 백설하는 성필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었다.

성필은 백설하에게 프로듀서로서 방향을 설정해주길 요구했던 것이다.

백설하는 우물쭈물하다가, 역시나 가장 만만한 것을 골랐다.

“그, 그럼 곡부터…….”

“오케이.”

성필이 폰을 꺼내어 정지음에게 연락했다.

“가로 엔터의 중추, A&R팀 집합!”

* * *

A&R팀 집합…… 시키고 싶었지만 아직 소녀연맹의 휴가가 끝나지 않았다.

첫 번째 A&R팀 회의는 모든 멤버가 참여한 상태에서 하는 게 올발랐다.

그래서 오늘은 일단 성필과 백설하만 정지음의 작업실을 찾았다.

마침 정지음과 A&R팀 직원 이재호가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재호야,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가 안 좋은 건 아니지? 좋은 인연 나타났을 때 사귀면 좋은 거잖아.”

이재호는 작업실 구석에 놓인 책꽂이를 보았다. 정지음이 장하양에게 추천받았던 ‘유리구두’는 물론 온갖 순정만화가 꽂혀 있었다.

아마 정지음의 머릿속도 저 순정만화들처럼 꽃밭일 것이다.

“네, 뭐, 그쵸. 근데 형은 자연스러운 만남을 어떻게 가지시려고요? 매일 여기 박혀서 일만 하시잖아요.”

“그…….”

“어디 놀러도 좀 가고 하세요.”

“난 아직은 커리어를 쌓아야 할 나이잖아. 일에 집중해야지.”

“……???”

“지음아.”

성필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재호가 벌떡 일어나 허리를 팍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박 이사님!”

“재호 씨도 안녕하세요.”

“형 여기 곰팡내 난다면서 안 온다더니, 오늘은 웬일로 연락까지 하고 왔어요.”

“설하랑 ‘보물상자’ 좀 둘러보게.”

“보물상자요?”

가로 엔터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떠돈다.

가로 엔터 지하, 천재 프로듀서가 잠자는 그곳에는 보물상자가 있다.

언제 어디서든 주인을 찾아 빛나기만을 기다리는 보석들이 한가득 든, 꿈과 같은 보물상자가…….

“벌써요? ‘우리들의 프로듀싱’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건 다음 달이지 않나.”

“설하가 몸이 달아서 못 견디겠대.”

“그렇겐 안 말했어요!”

“도저히 못 참을 거 같대서 데려왔어.”

“설하가 몸이 달아서 못 참을 거 같으면 어쩔 수 없네요.”

“두 분 다 징계받고 싶으세요?!”

정지음은 땅을 발로 박차서, 앉은 의자의 바퀴를 쭉 밀었다.

모니터 앞으로 순식간에 도달한 정지음은 아래쪽 서랍을 열어 포터블 SSD를 하나 꺼냈다.

이재호가 그것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드디어 이걸 쓸 때가 온 거군요…….”

“그래, 재호야. 우리가 뭐 빠져라 노력하면서, 한 이사님한테 돈 쓴다고 타박 당하면서 모아뒀던 보석들이 드러날 때야.”

정지음은 SSD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안에는 뮤직 프로듀싱 프로그램과 연동되는 오디오 파일이 가득했다.

또한 가로 엔터가 세계 각지의 작곡가들에게서 구매했던 트랙, 멜로디 라인 샘플 등이 종류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내 사랑스런 애기들…….”

백설하가 정지음을 어이없단 듯 보았다. 대체 얼마나 음악에 미쳤 아니, 열정적이면 오디오 파일만 보아도 눈에서 꿀이 떨어질까.

정지음은 정신을 차리곤 물었다.

“어떤 거 찾아요?”

“설하의 키워드는 여름이래.”

“여름!”

정지음이 기다렸다는 듯 외쳤다.

“내가 진짜 진짜 밀고 싶은 곡 있거든요? 설하야 너도 들으면 깜짝 놀랄 거다 진짜!”

“그런 게 있어요?”

“오, 지음이가 미는 거면 믿을 만하지.”

지금은 순정만화에 빠진 가녀린 20대 남성이지만, 그는 성필이 기억하는 전생에선 천재 아티스트라고 불린 작곡가다.

‘아니’와 ‘롱 포’, ‘아라베스크’로 천재성을 연달아 증명한 정지음. 그가 이렇게나 확신이 있다면 분명 멋진 곡일 것이다.

“제가 이거 한 석 달 전에 꽂혔었거든요!”

“너무 옛날에 꽂혔잖아.”

“들어보기나 하세요. 완성된 건 아니에요.”

“제목은?”

“‘우파루파’요.”

“우파루파?”

백설하가 자신의 머리 위에 양손을 올렸다. 그리고 손을 강아지의 귀가 움직이듯 꼼지락거렸다.

“우파루파…… 이 우파루파요?”

“설하야 제발 나한테 플러팅 좀 그만해!”

“한 적 없는데요?!”

“귀여우니까 다시 보여줘. 동영상으로 남겨서 보관해야겠다.”

“안 해요!”

그때 스피커를 타고 경쾌한 사운드가 퍼졌다.

잠시만 들어봐도 세련된 느낌의 팝 댄스곡이란 게 느껴졌다.

정지음이 신나서 말했다.

“아직 멜로디 라인은 없는데, 하이라이트만 제가 불러볼게요.”

멜로디 라인이 없다 보니, 곡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단계는 아니었다.

성필과 백설하는 그저 곡의 분위기만 느꼈다.

아마 1절 벌스 파트일 부분이 끝나자, 하이라이트를 예고하듯 몇 가지 악기가 빠져나갔다.

“AABC 구조 곡인가 봐요.”

“응.”

A(벌스) ― A(벌스) ― B(브릿지) ― C(하이라이트).

이런 식으로 구성된 곡을 AABC라고 한다.

대부분의 곡이 이런 형식을 지니고 있으며, 당연히 히트곡들도 이 구성을 따른 경우가 많았다.

“여기요, 온다, 와요.”

갑자기 모든 사운드가 사라졌다.

브릿지가 끝났다.

그 시간은 1초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하이라이트가 시작됐다. 벌스와 그다지 바뀌지 않은 악기 구성이지만, 템포가 살짝 가속하여 하이라이트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딱히 특이한 건 없…….”

갑자기 정지음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노래했다.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루파 우파루파 루파!”

그것을 또 반복했다.

상체를 기괴하게, 아마 춤이겠지만, 그는 기괴하게 몸을 움직이면서 노래 불렀다.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루파 우파루파 루파!”

성필과 백설하는 넋이 나가서 정지음의 하이라이트 퍼포먼스를 지켜보았다.

정지음은 도저히 흥을 주체할 수 없는지 이재호마저 끌어들였다.

졸지에 정지음과 함께 성필의 앞에 서게 된 이재호. 그는 눈을 질끈 감더니, 뮤직 프로듀서의 명령에 따라 어색한 춤을 추었다.

“같이!”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루파 우파루파 루파!

그렇게 1절이 끝났다.

정지음은 상쾌하게 땀을 닦곤 노래를 정지시켰다.

“어때요?”

“…….”

“…….”

성필과 백설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둘은 서로의 눈에서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아니, 두 사람의 눈엔 너무나 많은 감정이 혼재해 있어서 읽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

정지음은 10초의 침묵이 뜻하는 바를 이해했다.

“원래 제가 생각했던 가사는 후반부에 ‘우파 우파루파 우파!’였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우파(右派)’를 반복 가사로 넣는 건 소녀연맹한테 논란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루파’ 반복으로 바꿨어요.”

“이야, 잘했다 지음아. 그렇죠 재호 씨?”

“뮤직 프로듀서로서의 감이 잘 발휘된 사례로 사료됩니다.”

“그래. 제목이 ‘우파좌파’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 반복어를 우파가 아니라 루파로 바꾼 건 진짜 신의 한 수 같다.”

“형도 농담이 많이 늘었네요, 하하.”

“내가 한 말 전부 농담이고 비꼬는 거거든?! 루파든 우파든 아무도 신경 안 써!”

“손나(그런)!”

“문제는 그게 아니…….”

갑자기 성필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리고 그는 어딘가 먼 곳,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듯이 동공이 풀렸다. 마치 뇌가 더 시급한 일을 처리하느라고 정지한 것 같았다.

성필이 그런 상태가 되자, 정지음은 당황하면서 걱정스레 그를 불렀다.

“형? 형 왜 그래요? 괜찮아요?”

그 순간, 성필이 정신을 되찾듯 눈을 부릅떴다. 그는 숨을 몇 번 거칠게 쉬더니, 정지음의 어깨를 붙잡았다.

“지음아 네 말이 맞아.”

“또 비꼬는 거예요?”

“아니. 확실히 ‘우파’를 반복하는 건 논란이 됐, 아니, 될 거 같아. 진짜 잘 생각했어.”

“어, 예……. 그, 비꼬는 거 맞죠?”

“아니야, 지음이 넌 천재야! 리스크 관리 능력이 말도 안 되게 높구나 너!”

“그만 놀려요.”

“진짜라니까!”

성필은 정지음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진심으로 그의 안목에 경탄을 보냈다.

“그래도…… ‘우파루파’는 좀 그런 거 같아. 이미지 체인지가 너무 극적이잖아.”

“그렇긴 하죠. 수록곡 정도로 넣어볼까요.”

“그래, 우파루파…….”

우파루파.

우파루파.

루파 우파루파 루파…….

“루파, 우파루파…….”

이상하게 머리에 계속 맴돈다.

‘어쩌면 이거 엄청 좋은 곡이 아닐까?’

성필은 뇌가 헤집어진 기분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소녀연맹에게 어울릴 곡이 아니다. 그런데 머릿속엔 계속 정지음의 기묘한 춤과 ‘우파루파’란 가사가 떠돌아다닌다.

잘 때도 생각날 거 같다.

“저어, 이제 그만하구…….”

백설하는 정지음의 작업실로 올 때만 해도 비장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막상 오니 정지음의 기이한 퍼포먼스와 ‘우파루파’라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곡의 시연만이 펼쳐졌다.

슬슬 진지하게 프로듀싱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지음 오빠, 전에 그 곡…….”

“의외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는데?”

“네?!”

“그쵸? 괜찮죠? 좋죠?!”

정지음은 거의 펄쩍 뛸 만큼 기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필에게 인정받았으니 말이다.

가로 엔터의 소녀연맹 메인 프로듀서 박성필.

그는 맨바닥에서 소녀연맹이란 그룹을 일궈낸, 한국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을 프로듀서다.

가로 엔터의 직원들은 성필이 만들어낸 거대한 성공을 직접 보아왔다. 그의 인정은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진다.

즉, 그가 ‘괜찮다’고 한 곡은 성공으로 이어지는 프리패스나 마찬가지.

정지음은 ‘우파루파’를 성필이 인정해줬단 게 기쁘기 그지없었다.

“두, 두 분 다 진심인…….”

“설하야, ‘우파루파’에 맞춰서 즉석 댄스 춰줄 수 있어?”

“네……?”

“그럼 감이 더 잘 올 거 같은데.”

“잠깐…….”

백설하가 저항할 새도 없이 정지음이 곡을 재생했다. 곧바로 ‘우파루파’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었다.

백설하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을 강아지의 귀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꼼지락거리면서, 좌우로 낮게 폴짝폴짝 뛰었다.

“우, 우파루파 우파루파. 루파 우파루파 루파.”

“더 활기차게! 여름을 표현해봐!”

“우파루파! 우파루파! 루파! 우파루파! 루파!”

얼굴이 발갛게 달한 백설하.

그녀는 손으로 토끼 귀를 만들고 토끼처럼 폴짝였다. 나름대로 손을 이용해 우파루파의 뿔을 표현한 것이겠지만, 뿔보다는 귀로 보인다.

“우파루파…….”

정지음이 곡을 멈추었다.

백설하의 움직임도 뚝 멈추었다.

세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속닥댔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성필이 말했다.

“진짜 된다 이건.”

“…….”

“설하야, 이게 진짜 대중음악이야!”

백설하가 눈을 살포시 감았다.

눈물이 유리알처럼 또르르 떨어졌다.

네가 선택한 진짜 대중음악, 견뎌내라 백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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