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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85화 (385/760)

385화

유용태는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소녀연맹의 라이브 방송을 보았다.

연말이라 멤버들이 전부 모여서 수다를 떨었다. 보통은 두세 명 정도가 함께 방송을 하기에, 멤버 전원이 모인 건 꽤 오랜만이었다.

[네, 콘서트 드디어 끝났습니다.]

백설하가 피곤한 미소와 함께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유용태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비빔밥이 담긴 숟가락을 입으려 가져갔.

[인민이들도 손 흔들어주셨어요?]

유용태는 즉시 숟가락을 내려놓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다 문득 현타가 왔다.

‘내가 혼자 뭐 하는 거…….’

[헤헤, 감사해요. 인민이들이 응원해줘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유용태의 현타가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홀로 사는 그는 당연하게도 집에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생활도 피곤해서, 주말에 놀러 나가는 것조차 큰일처럼 느껴진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술 마시러 나가는 것도 힘이 없어서 못 하겠네.’

그리고, 집에 혼자 있으면 굉장히 적적하다. 그 적적한 공간을 채워주는 게 소녀연맹이었다.

유용태는 소녀연맹의 영상을 카페의 BGM처럼 계속 틀어둔다.

마치 가족들과 한집에 살았을 때처럼, 사람의 목소리가 비지 않고 들려온단 건 심적으로 큰 위안을 주었다.

[정말, 아…….]

조아라가 쌓인 게 많단 듯 말을 끌었다.

[해외의 인민이들을 만나는 게 좋기도 했는데, 한 달 동안 공연만 스무 번 한다는 게 진짜…….]

[스케줄이 진짜 너무하지 않아?]

리카가 맞장구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라야.]

장하양이 조아라의 어깨에 팔을 슥 둘렀다. 조아라는 뱀에게 사로잡힌 개구리처럼 굳었다.

[좋은 얘기만 하자. 잘 끝내놓고 왜 그래.]

[네, 네에.]

[나부터 하면…… 리우데자네이루 갔을 때 있잖아? 그때 너무 놀랐고 또 너무 좋았어.]

[공항에 처음 내렸을 때요?]

신아름은 브라질에서의 일이 떠오르는 듯 눈가가 빛나기 시작했다.

분명 장하양이 말할 타이밍인데, 신아름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브라질의 일을 이야기했다.

[지인짜, 진짜 인민이들 제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요. 몇천 명이 공항에 몰렸다니까요?]

‘몇천 명……?’

유용태는 소녀연맹이 해외 팬덤이 강하단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브라질 같은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몇천 명이 응집했단 건 믿기가 어려웠다.

[브라질 인민이들이 막 저희 이름 불러주고 손 흔들고, 와…….]

[공연장보다 더 많이 오셨었지?]

[네, 진짜요. 차라리 공항에서 콘서트를 열었어야 했어요. 맞다. 저희 공항 뒷문으로 나갔어요 그래서. 거기 공항 쪽 사람들도 막 당황하면서 저희 데리고 가더라고요. 정문으로는 도저히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뒷문에도 인민이분들이 계셔서…….]

‘진짜인가?’

유용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녀연맹의 활약상에 입을 벌렸다.

이젠 밥을 먹는 것도 잊어버렸다.

[아타시(저) 마지막에 울었어요!]

[야 리카, 너는 콘서트 마지막마다 울잖아.]

[그땐 진짜 많이 울었어!]

리우데자네이루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보라색 튤립’이었다.

소녀연맹이 하이라이트를 부르자 스탠딩석의 수백 명이 ‘보라색 튤립’의 안무를 췄던 것이다.

그만한 사람이 소녀연맹의, 자신들의 춤을 춰준다는 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벅참이 있었다.

[하긴, 너 첫 번째 콘서트에서 앙코르…….]

조아라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쌤 이거 말하면 안 돼죠?]

[어, 어?]

[이거 스포 아니에요?]

[그으, 그런가?]

조아라는 얄미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콘서트 DVD 꼭 사서 보세요. 아시겠죠? 진짜 인민이들도 울어요.]

유용태는 두 번째 날 서울 콘서트를 관람했었지만, ‘안 고독한 소련방’의 김마리아와 김채현으로부터 첫째 날의 이벤트를 전해 들었다.

‘나도 거기 있었으면 떼창 잘할 자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분하다.

역사적인 소녀연맹의 첫 콘서트에 참석하지 못하다니.

[그리고 또…… 브라질 인민이들의 열성적인 응원을 받은 참이잖아요. 그래서 칠레도 기대하고 갔었는데…….]

공연장이 2/3만 차 있었다.

휑하게 빈 1/3을 처음 본 순간, 소녀연맹 멤버들은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었다.

장하양이 허리를 부드럽게 숙였다.

[저희가 모자라단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지구 반대편에도 저희의 음악이 들리도록 노력할게요.]

‘아니, 칠레 공연에 2/3만 찬 것도 대단하지 않나?’

브라질은 특이 케이스라고 해도, 어쨌거나 남미는 굉장히 생소한 대륙이 아닌가.

남미의 어떤 곳이든, 공연장을 절반 이상 채웠단 건 대단한 일임이 틀림없다.

이야기는 북미로 넘어갔다.

[미국이 진짜 의외였어요. 여러분 저희 미국 공연에서 몇 명이나 보러 오신 줄 아세요? 10,000명이 넘어요.]

유용태는 또 놀랐다.

미국에서 10,000명이나 동원했다고? 거의 한국과 같은 수치 아닌가.

[동부랑 서부에서 각각 2개, 3개씩 했는데요. 표도 막 몇 분 만에 매진되고…… 아, 저기 미국분 계시네요. Hello! Did you see our concert?]

[아라쨩 발음 구려!]

[뭐, 네가 해봐.]

[곰방와(안녕하세요)!]

[어이가 없네. 암튼, 제가 회사 사람들한테 들었는데요. 저희 아이돌들이…… 업계 전체로 치면 수익의 1/4이 미국에서 나온대요. 한국이랑 비율이 거의 같아요.]

‘그렇구나.’

세계에서 음악 시장이 가장 큰 나라라서 그런가. 아니면 아이돌은 전부 소녀연맹과 비슷한 건가?

유용태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소녀연맹의 성공담을 뿌듯하게 들었다.

그렇게 소녀연맹은 다시 지구를 돌아서 아시아로 갔단 모양이다. 그렇게, 총 20회에 달하는 콘서트가 전부 마무리되었다.

유용태는 거의 2시간 동안 소녀연맹의 라이브를 홀린 듯이 들었다.

‘우리 애들이 이만큼 컸구나.’

해외 투어라니, 처음 들었을 때는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결과가 좋은 듯했다.

‘2년 만에 이렇게나…….’

데뷔 때부터 응원하고 지지했던 아이돌이 이만큼 성장했다. 유용태는 그 사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을 얻었다.

‘처음 데뷔했을 땐 뭔가 쫓기는 거 같이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는데.’

그 불안과 떨림은, 사회초년생이었던 유용태와 비슷했었다.

유용태는 신아름의 외모에 끌려 프로젝트 포유를 보고, 신아름이 가로 엔터로 옮기게 되어 소녀연맹 덕질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덕질이 중반을 넘어가자, ‘무엇 때문에’ 덕질을 한다기보다는 그저 소녀연맹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면서도 꾸준히 노력하고, 또 성과를 내고, 기뻐하고, 그런 소녀연맹의 모습을 보면서 만족했었다.

팬인 자신이 저들의 성공에 일조했다고 생각하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성공에 자신을 겹쳐보았다.

어리고 가녀리게만 보이는 아이들이, 저토록 험난한 곳에서 당당히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유용태는 소녀연맹에게서 용기를 얻어왔다.

‘얘들아, 언제까지고 너희들을 지켜보면서 응원할…….’

[다음은 좀 슬픈 소식인데요, 저희 한 달간 활동을 쉬기로 했습니다. 휴가예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한 달 동안 소녀연맹을 못 보는 건가?

[아타시(저)는 라이브 자주 켤 거예요!]

리카가 카메라 앵글로 가까이 다가왔다.

유용태는 일단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쉽다.

‘아쉽긴 한데.’

이해한다.

소녀연맹은 폭풍처럼 2년을 달려왔으니까. 비록 올해는 컴백을 하지 않았지만, 일본 데뷔와 콘서트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수행하지 않았던가.

[내년에는 꼭 앨범 컴백으로, 더 왕성한 활동 보여드리겠습니다.]

백설하가 허리를 숙이자 멤버들도 차례로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때 장하양이 백설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응?]

[언니, 그거.]

[그거? 아, 그거! 저희 오늘 자정에 공식 채널로 영상 하나 올라갈 거거든요? 시간 있으신 분들은…….]

“언니.”

[시간 없으셔도 보세요! 저희의…… 그게…… 팬분들한테는 알려드리기 좀 그럴지도 모르는 TMI이긴 한데…….]

백설하는 수줍게 웃었다.

[자정에 올라올 영상,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리광처럼…… 보이실 수도 있는데에…….]

[언니 TMI 그만하세요.]

[어?! 아, 미안. 시간 넘어갔네. 그럼, 안녀엉!]

백설하가 앵글로 손 인사를 전했다. 마구마구 흔들리는 백설하의 손이 10초 이상 앵글을 가득 채웠다.

“어, 언제 꺼요……?”

카메라 뒤, 스태프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라이브가 끝났다.

유용태는 그제야 책상 위에 놓인 저녁 식사의 흔적을 치울 수 있었다.

‘한 달간 쉬는구나.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이렇게 쉬네.’

직장인들도 연차가 있으니 충분히 이해한다.

유용태는 소녀연맹이 휴가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고, 이전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그런데 자정에 올라올 영상이 뭐 어떤 내용이기에 저러지?’

* * *

김채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이튜브를 보았다. 화면에서는 소녀연맹 공식 채널 최신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길이가 무려 20분이나 됐다.

어두운 방을 배경으로 조명이 서서히 켜졌다. 원형 스툴에 앉은 조아라가 비쳤다.

[주제: 이 멤버의 고뇌와 고통]

[뭔데요 이게. 이 멤버면 누구 말하는 거예요?]

조아라가 마주 보는 스크린에 신아름의 얼굴이 떠올랐다. 조아라는 바퀴벌레라도 본 것처럼 탄식하고, 겸연쩍게 볼을 긁적였다.

[내가 얘 아픈 걸 왜 알아야 하…… 하아, 이거 그거죠? 우리들 눈물 흘리게 하려는 거.]

[아름 씨 생각하면 눈물 나세요?]

[내가 왜요. 하아, 으음, 음…….]

조아라는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얼마나 고민하면 눈까지 감고 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단 듯 껄렁하게 앉아선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다 알겠지만요. 신아름은 한번 본 춤도 그냥 바로 따라 할 수 있는데요. 네, 눈이 좋은 거죠. 나도 뭐 얼마나 어렵든 춤 카피는 바로 할 수 있긴 한데, 걔는 무슨 기계 같아요.]

[근데 이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닌데, 자기 몸이 할 수 없는 동작도 그대로 한단 거예요. 예를 들어서 몸이 한 30도만 뒤로 젖혀지는데, 얘는 본 걸 그대로 하려고 하니까 그 이상으로 가는 거죠. 당연히 다쳐요.]

조아라는 코로 낮은 한숨을 길게 뿜어냈다.

[언제였더라. ‘롱 포’ 때였는데, 바닥에 발을 찍고 무릎 아래를 홱 터는 안무가 있었어요. 관절에 무리를 많이 주는데…… 저희 춤이 다 그렇지만요. 어쨌든 그게, 아이돌이 춤을 연습한단 건 반복이거든요.]

조아라는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우리 연습 단계가 ‘빡세게’, ‘보통’, ‘슬슬’ 이렇게 세 개 있어요. ‘빡세게’는 진짜 무대에서처럼 하는 건데, 신아름 얘는 모든 연습에서 거의 다 빡세게 해요. 관절을 천년만년 쓸 수 있는 줄 알아요. 뭐, 그래서…… 결국 일이 터졌는데요.]

신아름이 그 안무를 하는 순간, 연습실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뿌득’ 소리가 났었다.

멤버들은 물론, 당사자인 신아름은 안무를 한 상태로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었다.

[인대가 좀 어떻게 됐었대요. 걔 그거 때문에 요즘도 심한 동작 하면 무릎 감싸 쥐어요. 좀 조심하지…….]

질문을 보자마자 제작진의 의도를 파악했단 듯 비협적조적인 태도를 취했던 조아라는, 자신이 뱉었던 말이 무색하게 벌써부터 울려고 했다.

[그때가 컴백 3주 차쯤이었는데, 다음 날 무대를 바로 올라가야 했어요. 회사 사람들이 ‘아름이 못 올린다’라고 했는데요, 만약 병원 말대로 할 거면 신아름 걔 일주일 넘게 무대 못 올랐어요. 아니, 아예 ‘롱 포’ 활동을 접어야 했을지도 몰랐고요. 공백이에요. 모처럼의 컴백인데, 절반도 못 채우고 끝내는 거요. 그래서 걔가 어떻게 한 줄 알아요?]

일단 방송국으로 갔다.

설설 연습해보고,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서 바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가서, 진통 주사를 맞은 뒤 리허설과 무대 모두 올랐다.

[진짜 미친년…….]

이내, 조아라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

조명이 꺼지고, 어느새 의자엔 신아름이 앉아 있었다. 장면이 바뀐 것이다.

신아름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조아라가 그랬어요? 진짜요? 울었다고요? 네? 아뇨, 별로 신기하진 않고요. 걔 보이는 거랑 다르게 눈물도 많고 기도 약하거든요. 뭔 가위를 그렇게 자주 눌리는지, 어제도 막 자다가 ‘으아아악!’ 소리 지르면서…….]

신아름은 쑥스러운 기색으로 머리칼을 쓸었다.

[저 처음 봤을 때도 좀 세게 나가니까 쫄더라고요. 아무튼…… 저 무릎 다쳤을 때요? 그게 연습하다가 그런 건데…… 그 순간 신한테 빌었죠.]

제발 아니어라.

제발 크게 다친 건 아니어라.

이 상태에서 움직이면, 안 아플 거야.

그냥 소리만 난 걸 거야.

괜찮아.

괜찮아…….

[무대에 올라야 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전혀 안 괜찮았지만요. 근데 주사 맞으면 진짜 하나도 안 아파요. 죽을 거 같다가도, 언제 아팠냐는 듯 몸이 막 움직이는데…… 네.]

신아름이 고개를 숙였다.

[서럽죠 당연히. 사람이 몸이 아프면 제일 서럽다잖아요. ‘이렇게 해서라도 무대에 올라야 하나……’란 생각이 드는데, 올라야죠. 아이돌이니까. 프로니까.]

스크린에 장하양의 사진이 떠올랐다.

[아, 하양 언니구나. 하양 언니의 고통, 고뇌…… 네? 아 뭔 불화설이에요. 그, 언니랑 좀 코드가 안 맞는 게 있긴 해요. 저희 영상에도 자주 조아라가 ‘언니 농담 통제예요’하는 거 나오잖아요. 저는 하양 언니 코드를 도저히 모르겠어요.]

아무튼.

[의외로 하양 언니가 추위를 잘 타요. 손도 만져보면 엄청 차갑거든요. 겨울에 패딩 입고도 막 바들바들 떨어요. 우리가 신기하게 보고 그러는데. 그런데에…… 저희 겨울에 시상식 무대 오르고 하잖아요? 근데 복장이…….]

신아름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얇아요. 여름철에 입는 린넨 셔츠 같은 것보다 얇아. 얇고, 여기 배도 살짝 드러나고 손목도 얇고, 목 여기 쇄골 주위도 드러나고. 암튼 추워요. 진짜 많이 추워요. 영하 10도에 여름철 복장을 입고 무대에 오르니까요.]

신아름은 입술을 꾹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근데, 근데에 하양 언니가…… 진짜 입술이 새파래지고오…… 거기 대기석에 있잖아요오 저희가아…….]

장하양은 그럼에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버텼었다. 카메라에 잡히면 아무렇지 않단 듯 밝게 웃기까지 했었다.

[그 옷으로…… 계속 이빨 부딪치며 떨면서도오…… ‘괜찮아, 난 괜찮아’라고오……. 춤추는데도 발이 떨리는데 어떻게 괜찮은데…….]

신아름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화면이 검어지고, 장하양이 나타났다. 그녀는 신아름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티 낼 수는 없잖아요. 다들 똑같이 겪는 고통이니까요. 거기 계시는 아이돌분들 다 떠셨어요. 아름이도 참…… 저만 힘든 것도 아닌데…….]

장하양은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살짝 내렸던 시선을 올려 카메라와 마주 보았다.

[사실, 아이돌은 계절마다 힘들 수밖에 없죠. 복장이 개방적이니까 여름엔 편하지 않나 하는데, 무대 서 보면 안 그래요. 여름에 가로등 근처에 벌레 모이는 거 아시죠? 그리고 저희가 공연하는 무대에 조명 엄청 쨍하게 있잖아요. 무대 잘 보시면, 무슨 벌레들이 봄에 황사 오는 것만큼 모여 있어요. 바닥에는 벌레시체가 카펫처럼 깔려 있고요. 거기서 춤추고 노래해야 해요.]

바닥에 앉거나, 눕거나, 엎드리거나, 손으로 짚거나, 그런 안무가 있으면 최악이다.

게다가 노래까지 부르니, 입에 벌레 몇 마리 삼키는 것 정도야 예사다.

[얼굴을 찌푸리거나 놀란 소리를 내면 안 되죠. 무대 아래에는 관객분들이 엄청 행복하게 웃으면서 계세요. 그러니까, 저희도 웃어야 해요. 아하하, 벌레도 좀 먹어보면 적응돼요. 영양제라고 생각하면 마음도 살짝은 편해지고. 어쩔 수 없는 거죠. 겨울이든, 여름이든. 어느 직업이든 고충이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그 고충을 상회하는 보상이 있느냐고요.]

장하양은 제작진의 질문을 듣고 씨익 웃었다.

[당연하죠. 설령 불판 위에서 춤춰야 한다고 해도, 저는 아이돌 할 거예요.]

스크린에 백설하의 사진이 떠올랐다.

[언니는.]

장하양이 막힘없이 말했다.

[본인에 대한 기준선이 굉장히 높으세요. 회사분들 모두 설하 언니한테 노래 잘 부른다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언니 본인은 ‘부족한데’, ‘이게 맞나?’, ‘아닌데’ 이러시면서 우울해하세요. 처음엔 그거 보면서 ‘나를 기만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아하하.]

장하양은 양손을 꼭 모으고 무릎 위에 두었다.

[그게 어찌 보면 축복이고, 어찌 보면 저주죠. 프로 의식이 높아서 퍼포먼스가 상당한 수준까지 닿지만, 언니 개인적으로는 너무 고통스러우실 거예요. 저 멀리 뜬 별을 향해서 기약 없이 걸어가는…… 뛰지 못하고 걸어갈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언니는 계속 실망하고 계세요.]

[저는 이해할 수가 없죠. 멤버들 전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더 안쓰러워요. 대체 어떤 고통이기에 저렇게나 괴로워하시는 건지요. 명확한 기준 없이, 누가 ‘이쯤 하면 됐어’라고 말해주지도 않는 길이예요. 혼자만의 만족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는 건, 정말 외로울 거예요.]

장하양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물기가 맺혀 있었다.

[언제였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언니가 울고 계시는 거예요. 놀라서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는데, 꿈을 꾸셨대요. 노래하지 못하게 되는 꿈이요. 꿈에서 깨서, 기뻐서 우셨대요. 더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요. 그래 놓고서 그날 밤엔 ‘나 왜 이거밖에 안 되지’라면서 또 우셨어요.]

장하양은 흐느끼면서 말했다.

[정말, 저도 알고 싶어요. 언니를 위로해드리고 싶은데, 이해를 못 하겠어서, 언니 발끝도 따라갈 수가 없어서, 위로를 못 해드려요. 그런 제가, 저는…….]

장하양이 자조했다.

[제가, 소녀연맹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멋진 사람과 친구는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그래요……. 저처럼 부족한 인간은, 운 좋게 소녀연맹이라서 언니 같은 분이랑 말이라도 섞을 수 있는 거예요…….]

화면이 어두워지고, 장하양 대신 백설하가 나타났다. 백설하는 처음 나온 순간부터 울고 있었다.

[하양아아…….]

아마 장하양이 한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백설하는 계속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면서 겨우겨우 진정했다.

[기준이, 저는, 하아…….]

백설하가 눈물을 삼키고, 간신히 정상적인 목소리를 냈다.

[하하, 울면 안 되는데. 성대 상해서요. 그런데 제가 심지가 약해서 그런지 자주 울게 되네요……. 크흠, 제가 저한테 막 실망하고 그러는 건요. 네, 기준이 높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왜냐면 제가 바라보는 이상향이 저한텐 과분할 정도로 높아서요. 아이돌로 치자면 최고가 되고 싶고요. 노래 하나로 한정하자면…….]

백설하가 처음으로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웠던 학원에 한 선생님이 있었다.

[아직도 그분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를 못 잊겠어요. 정말 세상이 다 환해지고, 가슴이 벅차고, 눈물도 나구요. 그때 느꼈어요. 노래란 건 사람을 이렇게나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구나. 나도 이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노래를…….]

노래란 것을 극도로 간단하게 나누자면, 개성과 기술이란 요소가 있다.

[개성은 제가 아이돌로 활동하는 동안 계속 찾아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기술은 제가 노력한 만큼…… 아니. 노래란 건요, 노력한 만큼 올라가는 게 아니라 노력한 만큼만 떨어지는 거예요. 노력은 상승의 도구가 아니라 안전판을 마련하는 거거든요. 노력하면, 아무리 상태가 안 좋아도 최저선이 있어요. 그 최저선을 조금씩 조금씩 높여가요. 그렇게 높여가서…….]

백설하가 손을 높이 뻗었다. 팔을 뻗을 수 있을 만큼 뻗어서 천장을 가리켰다.

[마침내 닿는 거예요. 피아노처럼, 원하면 원하는 만큼의 음을 낼 수 있는 경지에. 그 어떤 상황에서라도 가수로서의 본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경지가 존재해요. 그게 저의 기본이고, 반드시 갖춰야 하는 능력이며, 거기까지 닿는 게 제 노래를 들어주는 팬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바라는 기준이니까…….]

백설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아마, 영원히 괴로울 거예요. 시시포스…… 마, 맞나요? 그, 영원히 돌 굴리는…… 아, 맞아요? 네, 시시포스처럼요…….]

스크린에 리카의 사진이 떠올랐다.

[리카는…… 활기차요. 고민이라곤 없을 거 같은데, 숨기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으, 저희 회사 이사님이 자주 저희를 별에 비유하시거든요? 리카도 그래요. ‘아타시(저)는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에요!’이러는데, 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 같아요.]

리카는 주위의 별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자신의 빛은 참으로 볼품없다고.

[무엇 하나 특기가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리카는. 리카가 작곡하잖아요. 그것도 그런 생각 때문에 열심히 한 거예요. 매일 노트북 눈이 빠져라 바라보면서요. 사실, 리카가 기계를 만지는 데 흥미는 없거든요. 작곡 프로그램, 그 복잡한 걸 하루 몇 시간이나 보는 건 고역이었을 거예요.]

심지어 아이돌 활동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 아닌가.

그것을, 리카는 몇 년이나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현재의 실력을 가지게 됐다.

[저는 그게…… 그게 되게,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불쌍했어요.]

리카는 작곡을 배우는 것에 필사적이었다.

작곡이란 눈에 보이는 능력이 아니다. 춤이나 노래처럼 퍼포먼스에 그대로 드러나지 않으니까.

노력해봤자 아이돌 활동하면서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능력을, 리카는 괴로워하면서도 부단히 갈고닦았다.

[리카는, 네…….]

백설하는 겨우 그친 눈물을 또 한 방울 떨어뜨렸다.

[자기가 빛나는지 모르는 별이었어요. 그래서 막 자기도 빛나겠다고 태양으로 다가가는데…… 열기에 괴로워하면서도 다가가는데…….]

백설하가 눈물을 닦았다.

[옛날에, 도저히 아닌 거 같아서 리카를 혼냈었어요. 그렇잖아요. 그 재능 있는 애가 미래에 쓸지도 안 쓸지도 모르는 기술을, 심지어 괴로워하면서 매일 붙잡고 있는 모습이요. ‘너 이런 거 만질 시간에 노래나 춤을 더 연습하라’고, 혼냈었어요. 그때 리카가 뭐라고 한 줄 아세요?]

백설하가 어깨를 쓸면서 말했다.

[내가 내 시간에 뭘 하든 그건 내 마음이에요, 라고 했어요. 그때만큼 리카가 진지했던 게, 어…….]

백설하는 언젠가를 떠올리는 듯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소름이 돋아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 일본 데뷔 쇼케이스? 그때 빼고는 처음 봤었어요. 저는 되게 놀라서, 또 제가 리더였으니까, 리카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혼냈죠. 평소엔 제 말도 잘 따르고 살갑던 애였는데, 입술을 비쭉 내밀고 다 무시하는 거예요. 리카는 진심이었어요.]

별은, 혼자서만 자신의 찬란함을 몰랐다. 그래서 뜨거운 태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결국, 태양이 되었다.

백설하가 눈물과 함께 뿌듯하게 미소 지었다.

[리카가 안타깝지만, 그땐 제가 잘못했었죠. 카와이 베이스의 신을 놓칠 뻔 했잖아요. 안타깝고, 자랑스럽고, 대견해요. ……네, 네? ‘리카 사랑해’라고 하라구요? 아, 다른 멤버들도 다 했어요?]

백설하가 팔로 하트를 그렸다.

[리카 사랑해! 네? 뽀, 뽀뽀도?]

백설하가 눈을 감으면서 입술을 내밀었다.

[리, 리카 사랑해! 쪽!]

화면이 어두워지고, 리카가 나타났다. 그녀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젊었을 때의 열정이 그립네요…….]

리카는 손뼉을 맞닥뜨려 큰 소리를 냈다.

[옛날의 아타시(저)는 그랬었죠! 그리고 그때 한 가지 배운 게 있어요!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남들 말은 듣지 말라는 거요! 멤버들도 회사분들도 다 저한테 ‘리카 넌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영리한 저는 알았죠! 이대로는 저에게 미래가 없단 걸요!]

리카가 멤버들의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그렇잖아요. 이렇게나 다들 빛나고 있어요! 저만 선명하지 않아요! 그게 보이는데, 남들 말만 듣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어요! 에헤헤, 물론 다른 분들이 저를 인정해주시는 건 기분이 좋죠.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인정만큼이나 저 자신의 인정도 중요해요!]

리카는 할 말을 고르는 듯 손바닥을 비볐다.

[옛날에, 저를 영입하셨던 분이 해주셨던 얘기가 있어요. 제가 막 이것저것 해보려다가 몸살이 걸렸던 때예요. 그분이 ‘리카 네가 행복한 걸로 됐다’라고 하셨어요. 느낌이 팍 왔죠. 나인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 라는 게 아니에요. 제가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제가 노력하기 때문이라구요. 그걸 느꼈어요.]

리카가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남들이 완벽하다고 해도 저는 계속 달려갈 거예요! 더 빛나는 미래를 위해서! 어떤가요, 저의 프로 의식이!]

제작진의 소소한 박수가 사운드를 채웠다. 리카는 한껏 고무되어 당당히 가슴을 폈다.

[아타시(저)는 아이돌이니까요! 아이돌이 됐으니까요!]

리카가 머리띠를 질끈 묶는 제스처를 취하고 살포시 웃었다.

[아타시(저), 아이돌이 됩니다!]

장난스레 웃는 그녀의 앞에 조아라의 사진이 떠올랐다.

[아라쨩! 너무 멋져 너무 예뻐!]

리카는 조아라의 사진을 향해 손키스를 여러번 날렸다.

[에에, 근데 아라쨩은 아타시(제)가 옆에 있어줘서 고통 같은 건 없을걸요? 인간 마약 이시카와 리카예요! 아, 마약이란 말 쓰면 안 되나요? 어어, 인간 약물 이시카와 리카예요!]

물론, 약물로 고통을 잊는 건 순간뿐이다.

[앗, 아라쨩의 대단한 점부터 말해도 되나요! 아라쨩은요 춤을 정말 사랑해요! 춤도 잘 춰요! 아라쨩 휴일에 뭐 하는지 아세요? 춤춰요! 아라쨩 몸 보면 우와, 정말, 이야, 이걸 어떻게, 인간이 어떤 신체적 분야의 극한에 이르면 이렇게 되는구나 싶어요!]

그런 조아라도 컴백 기간이 되면 근육통에 시달린다.

[의외로 춤이란 게 매우 매우 힘들단 사실을 아시나요! 특히 소녀연맹 춤은 힘들기로 아이돌계에 소문이 자자해요! 물론 제가 만든 소문이에요! 그래서 컴백 준비할 때는 근육통이 없을 때가 없어요. 아라쨩이라도 예외가 아니라구요! 그런데 아라쨩은 저희가 근육통으로 골골거릴 때도 거침없이 움직여요!]

‘으아 자극 죽인다!’라고 하면서, 괜히 더 강한 모습을 보인다.

[이건 비밀인데요, 아라쨩이 살짝 아픈 걸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정말 비밀이에요! 막 아프다고 하면서도 근육통 걸리면 그 부분을 저한테 꾹 밟아달라고 한다니까요! 눈물 흘리면서도 계속 밟아달라고 해요! 아라쨩 엣찌(음란)! 앗, TMI였나요?]

리카는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라쨩은 회사에 와서도 춤을 춰요! 숙소에서도 춤을 춰요! 쉬는 날에도 춤을 춰요! 일이랑 취미가 다 춤이에요! 그래서, 바닥이 없어요.]

갑자기 리카가 눈꼬리를 추욱 늘어뜨렸다.

[아라쨩은요, 아이돌로서 퍼포먼스에서 실수하잖아요? 그걸 해소할 방법이 없어요. 춤이 취미니까, 취미에 시간을 들이면서도 괴로워하는 거예요. 춤을 추면 실수한 게 떠올라서 괴롭고, 아프고, 또 고통스러울 텐데도, 춤밖에 추지 못하니까 계속 고통스러워하는 거예요. 그게 저는,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에…….]

방법이 없다.

춤이 곧 인생인 인간에게 뭐라 하겠는가.

춤을 추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직접 보면요, 빛나고 있어요. 아라쨩은 누구보다 빛나고 있어요! 스스로를 태워서 빛을 내는 거예요! 눈부셔요. 너무 눈부시지만, 또 보고 있으면 슬퍼져요. 그래서 아라쨩은 기쁠 때는 한없이 기쁘고, 슬플 때는 한없이 슬퍼해요. 그리고 슬퍼하면서도 춤을 추는 모습이 너무…….]

리카는 눈물을 흘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상태로 조아라를 향해 환호를 보냈다.

[아라쨩 톳테모 스테키(너무 멋져)! 반할 거 같아! 아니 이미 반했어! 꼭 아타시(나)한테 장가와야 해!]

리카가 과장된 환호를 멈추고, 허탈하게 말했다.

[사실, 아라쨩만이 아니라 다들 너무 빛나요. 이런 사람들이 옆에 있는데, 제가 어떻게 초조하지 않겠어요…….]

화면이 검어지고, 멤버들 전원의 모습이 비추었다. 그녀들은 모두 눈가가 발갛게 부어 있었다.

[뭐, 보니까 다들 한바탕 울었구만? 신아름 너도 눈물이란 게 있긴 하구나.]

[아하하, 아름이 우리 앞에서 아기처럼 운 적도 있…….]

[언니 그건 왜 말해요! 우는 게 뭐 자랑이라고!]

[마아(뭐어), 쌤이 운 건 전혀 놀랍지 않네요! 스탭분들, 쌤이 제일 많이 울었죠? 아니, 안 답해도 괜찮아요! 이미 알겠어요!]

[……흐끅.]

백설하는 멤버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고도 울려고 했다. 멤버들이 당황하면서 리더를 달랬다.

[네에, 리더가 오열하고 있는 상황이라 아타시(제)가 대신 말하겠습니다!]

리카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희, 한 달간 쉬다 오겠습니다!]

이어서 조아라가 말을 받았다.

[돌아올 때는 더 멋진 모습 보여줄게요.]

장하양이 웃었다.

[아하하, 기다려주실 거죠?]

신아름은 백설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말했다.

[아예 한 달을 비우는 거니까 많이 적적하시겠지만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야 신아름, 그런 말을 왜 해.]

[뭐가. 내가 틀린 말 했어?]

[우린 완벽한 모습만 보여줘야 하거든? 우린 사람 아냐, 아이돌이지.]

[그래, 넌 쉬지 마라.]

[안 쉴 건데? 매일 스튜디오 나가서 춤 연습할 건데?]

[그러세요 네.]

신아름은 백설하를 일으키며 카메라 쪽으로 몸을 돌려주었다.

백설하를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팬들을 향해.

김채현을 향해, 웃었다.

[여러분, 2년 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덕에 분에 넘치는 행복을 받았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감사했습니다, 정말요. 이렇게 큰 사랑을 주셔서, 저희 멤버들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손을 맞잡고 허리를 숙였다.

[내년에, 다들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요.]

영상이 끝났다.

이불을 뒤집어쓴 김채현은 울고 있었다.

“소련이들 수고했어어…….”

잘 쉬다 와.

꼭 건강한 모습으로, 내년에 다시 만나자.

* * *

백설하는 못 쉰다.

그녀는 숙소나 본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멤버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어, 설하 한숨 쉬어? 네가 하겠다면서.”

“그렇죠…….”

성필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방송국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가자, ‘더 언노운 싱어’ 첫 미팅.”

“네.”

연초의 방송국은 여러 특별 프로그램 제작과 기획으로 한창 바쁘다. 마치 업계의 성수기를 보는 듯하다.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 모두 자신이 가장 바쁘단 듯 뛰어다니고 있었다.

백설하는 그런 사람들을 신기하단 듯이 바라보았다. 그때 성필이 무심히 말했다.

“설하야, 내가 네 예명 생각해봤거든.”

“정말요? 어떤 건데요?”

백설하는 성필이 자신의 예명까지 생각해주었단 게 기뻤다. 그녀는 두근두근 성필의 말을 기다렸다.

“‘노래도 잘 부르는 귀여움 천재’ 어때?”

“노래가 아니라 귀여움에 방점이 찍혔잖아요!”

“싫어?”

“싫고 말고 그딴 건 절대 안 해요!”

“그딴 거라니…….”

“아, 아, 죄, 죄송합니다…….”

“그럼 할 거야?”

“안 해요!”

그때 성필은 누군가 자신의 등을 톡톡 두드리는 것을 느꼈다. 살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자연스레 백설하도 뒤를 보았다.

주먹이 천천히 뻗어왔다.

“예에, 토모다치(친구).”

에리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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